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 모두가 행복한 경제
김태훈 지음 / 남해의봄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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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장난 줄만 알았던 화재 사건이 오히려 직원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들이 몸담았던 성심당은 생각보다 훨신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직원들은 현장 복구 과정을 거치며 몰라보게 성장햇다. 회사가 단순한 이해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 '조금 긴 프롤로그' 중에서

 

 

성심당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

 

저자 김태훈은 일찍이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20대 후반부터 문화정책 분야에서 일했다. 고향 경남 창원의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7년 동안 정책과 홍보, 음악사업팀장 등의 업무를 맡아 문화산업 전반에서 폭넓게 일했다. 2011년부터 경남도민일보와 공동 설립한 지역 스토리텔링 연구소장을 맡아 ‘마산 원도심의 창동 오동동 이야기’를 비롯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5년에는 여행인문학을 지향하는 ‘또다른세상협동조합’을 설립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성심당과는 6년 전부터 인연이 생겨 지역 문화와 함께 성장하는 로컬 기업 사례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 저서로는 공저로 참여한 <소리바다는 왜>, <스토리텔링 레시피>, <가는 길이 내 길이다> 등이 있다.

 

성심당은 1956년 밀가루 두 포대를 자산 삼아 대전역 노점 찐빵집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60년 동안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나눔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매월 3천만 원 이상의 빵을 대전 시내 양로원과 고아원 등지에 기부해왔다. 2005년 큰 화재로 위기에 봉착했으나, 직원들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식탁을 위해 KTX로 매일 갓 구운 빵을 배달해서 더 유명해진 성심당은 이제 직원 4백여 명이 함께하는 대전의 자부심이자 대전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EOC(ECONOMY OF COMMUNION)_모두를 위한 경제'를 적극 실천, 한국 경제 전반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업 경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흥남부두의 추억

 

배는 하나둘 떠나갔지만 부두 위 사람들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마침내 배 한 척만 남은 22일 아침, 부두에는 아직 1만 5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강추위 속에서 간절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청을 뜯어 만든 깃발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임길순과 일행들을 미군 한 명이 유심히 쳐다보고 있엇다. 그가 다가와 깃발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 신자증명서와 묵주를 들어 보이며 가콜릭 신도라는 사실을 알렸다.

 

미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더니 배로 돌아갔다. 바다 위에 떠 있던 마지막 배가 부두에 접안하고 피난민을 맞이할 준비를 마칠 즈음 아침에 만난 미군이 헌병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임길순 일행을 배로 인도해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기적처럼 배에 자리를 잡고 나자 일순간에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리가 좁아도, 허기가 져도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임길순은 그때 다짐했다.

 

"이번에 살아날 수 있다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 

 

 

튀김 소보로

1980년 5월 20일, 단팥빵과 소보로, 도넛의 3단 합체품 튀김소보로가 성심당 매장에서 튀겨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튀김소보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반죽이 뜨거운 기름 속에 들어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또 마침내 붉은색으로 익어 꺼낼 때쯤이면 손님들의 입안은 이미 침으로 가득 고여 있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까지 총동원한 기다림은 바로 구매로 이어졌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웠는지 갓 구워낸 튀김소보로를 싹쓸이하는 손님들이 등장했다. 뒷쪽 손님들 사이에서 불만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거듭되는 싹쓸이는 다른 손님을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고, 더 오래 기다린 손님들은 더 많이 싹쓸이하고 싶어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급기야 고성을 주고받던 손님들이 서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육탄전을 벌이는 일까지 생겼다. 이때 번호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혁신제품 포장빙수

 

어떻게 하면 집에서도 녹지 않고 시원한 팥빙수를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영진(2대 CEO)의 머릿속에 병원에서 본 장면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바로 링거병을 보관하던 스티로폼 박스였다. 링거액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스티로폼 박스를 팥빙수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영진은 당장 스티로폼 박스를 구해서 반을 잘라 그 안에 빙수를 넣고 실험해 보았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그 박스를 철봉에 매달고 녹을 때까지 흔들어도 봤다.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빙수가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세 시간을 버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 시간이면 제법 먼 거리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곧바로 스티로폼 포장 박스를 디자인해서 '3시간 氷 OK 포장빙수'가 탄생했다. 1983년 여름, 전국 최초의 포장빙수였다. 이렇게 포장빙수는 성심당의 혁신 아이콘이었다.

 

 

잿더미 앞에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매출이 급감하자 건물 매입시에 빌렸던 은행 차입금 50억원에 대한 이자 갚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건물을 팔아 빚을 먼저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건물은 팔리지 않았다. 원도심 자체가 쇠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다. 성심당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가장 힘든 고비를 넘어가고 있던 중에 2005년 1월 22일 토요일 저녁, 설날을 며칠 앞두고 성심당에 큰불이 났다. 옆 건물을 태운 불이 성심당으로 건너와 3층 공장이 완전히 전소됐다. 성심당의 모든 기능은 일시에 정지됐다. 결정적인 한방이었다. 마치 무적의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근근이 버텨내던 도전자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좋게 KO를 당한 격이었다.

 

 

새로운 비전

 

선대 임길순의 나눔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지만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과 재정난을 겪으며 영진은 은퇴까지 고민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렇게 캄캄하던 터널 속에서 영진 부부는 필리핀의 포콜라레새인류학교에서 'EoC(모두를 위한 경제)'를 만났다. 이는 기업이 경영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실천하는 경제 개념이다.

 

필리핀에서 귀국한 부부는 곧바로 사업 현장에 EoC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당시 직원 한 명의 월급에 준하는 100만 원을 가난한 사람을 위한 EoC 기금으로 내어주는 것이었다. 1999년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지 2년도 채 안 되던 시기로 사회 전체가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기업들은 회사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인건비부터 손을 댔다. 명예퇴직과 정리 해고가 범람했고, 그 결과 가정이 파괴되고 노숙자가 폭증했다.

 

경영난에 빠진 성심당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직원 수와 제품 수가 너무 많아서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제품의 종류를 단순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이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쳐내는 구조조정 대신 매출을 더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심당의 존재감

 

성심당은 서울 롯데백화점에 입점해달라는 요청을 사양했다. 롯데백화점뿐만 아니라 많은 유통업계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서울 입점 러브콜을 보냈지만 모두 거절했다. 서울은 대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지만, 성심당은 대전을 벗어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심당이 굳이 대전을 벗어나서까지 영업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진은 이렇게 말했다.

 
"대전을 벗어나 서울에 자리 잡은 성심당을 과연 성심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돈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겠지만 돈을 많이 버는 대신 우리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대전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성심당을 소개하고, 빵을 선물하며 대전에 성심당이라는 역사를 지닌 로컬기업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대전에 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그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성심당의 거룩한 노동

 

성심당에는 '노동'이 있다. 돈이 돈을 낳는 파생상품 따위는 성심당에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답시고 부동산이나 금붙이를 사들이지도 않는다. 대신 사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성심당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직하게 일한다. 그리고 그 노동을 소중하게 여긴다.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할 때는 말단 직원에게 미루는 대신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떠안는다. 성심당의 소통은 바로 이런 '정직한 노동' 위에서 이뤄진다.

 

 

"백년가게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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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 (리커버)
마츠나가 노부후미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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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엄마와 이성(異性)이라는 이유로 많은 문제가 생기는 반면, 딸은 엄마와 동성(同性)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딸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고 성공을 거두기를 원하기 때이다. 그리고 엄마의 이런 바람은 '딸의 인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지나친 욕심으로 변질되면서 매우 위험한 모녀 관계를 초래하기도 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딸을 엄마의 과거로 만들지 말라

 

책의 저자 마츠나가 노부후미는 일본 최고의 교육설계사이자 '기적의 과외 선생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7년 동경에서 출생,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교육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주사위 학습법, 단기 영어 학습법 등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남학생과 여학생들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즉 어렸을 때 충분히 놀아본 사내아이일수록 공부도 잘한다는 사실과 딸의 인생에는 역전 홈런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습관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에 맞는 현명한 교육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현재 이러한 아이들의 성별 특성을 기반으로 학습 상황에 따른 공부법을 제공, 매년 수백 명의 학생을 최고의 명문 대학에 합격시키고 있다. 저서로는 <작은 소리로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 <딸은 세상의중심으로 키워라>, <아이가 스스로 책상에 앉는다>, <아들의 평생 성적은 열 살 전에 결정된다> 등이 있다.

 

일본 최고의 교육컨설턴트인 저자는 아이들의 성향, 학습 환경, 부모들의 태도 등을 집중 분석한 결과,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아들은 열세 살 이전까지 몸으로 부대끼며 놀았던 경험이 학습능력으로 이어져 청소년기에도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지만, 여자아이는 한번 길들여진 습관을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아이는 어릴 적 차곡차곡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고, 선행학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을 다룬다.

 

 

 

 

'수다'에서 시작되는 대화기술

 

많은 여성들은 쉴 새 없이 얘기하면서 상대방의 표정 관찰, 관심도 측정 등을 살펴 임기응변으로 화제를 바꾸는 대화기술을 구사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의 '수다의 역사'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대화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향상된 아이는 국어 실력이 금방 늘어난다.

 

그러므로 여자아이의 수다능력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가끔 딸의 수다 능력을 무시하는 부모가 있다. 예를 들어 "밥 먹을 때는 떠들지 마!"라며 불같이 화를 내는 봉건적인 할아버지, 아니면 "피곤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라며 모처럼 꺼낸 딸의 이야기를 중단시켜버리는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아빠, 그리고 수다를 잘 못 떠는 엄마가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시간이 가장 긴 엄마가 수다를 못 떠는 상황이 제일 심각하다. 따라서 성격상 평소에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엄마일지라도 "응응", "그래서?"라고 맞장구를 침으로써 딸이 많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딸의 인생, 습관으로 결정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습관을 쉽게 들이지만 한번 몸에 밴 습관은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 찬물로 설거지 하기가 쉽겠는가 말이다. 또 전화 한 통으로 장보기와 배달이 되는 걸 경험한 사람이 매일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골라 귀가하는 일은 너무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한번 올라간 생활수준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더라"

 

여자아이는 쉽게 습관을 들이고, 습관이 되면 이를 쉽게 고치지 못한다.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거나, 쩝쩝 소리를 내며 먹거나, 의지에 발을 올려 놓고 식시하는 등의 행동은 빨리 고쳐야 한다. 나중엔 바로잡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자녀들의 이런 행동을 일일이 지적한다. 물론 지나친 자적질이 아이를 위축되게 만들어, 심하면 부모의 지시 없이는 아무일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딸은 엄마의 잔소리에서 뭔가를 배운다. 밥을 먹는 자세에 대해 엄마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면 할머니집에 가서는 오히려 바른 자세로 밥을 먹는다. 어릴 적에 엄하게 교육받은 딸이 나중에 성장해서는 그토록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회상한다. 그렇다. 여성들은 이렇게 쉽게 습관을 들인다.

 

 

힘들어도 계속하는 인내력

 

엄마들 대부분은 딸에게 악기를 배우게 한다. 사실상 악기를 익히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특히, 엄마 자신이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특정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면 더구나 악기를 가르치려고 한다. 악기를 배운다는 게 인내심을 배양하는 데 매우 효과적임을 스스로 경험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악기를 배우던 딸이 중도에 투정을 부리거나 포기하려 해도 계속 시킨다.

 

모든 공부는 고비가 있다. 이를 넘기면 재미를 느끼고 즐거워한다.

 

여자아이의 학습능력은 꾸준하고 착실하게 공부함으로써 향상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재미없고 힘들어도 계속하는 인내력'을 길러야 한다. 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면 중도에 그만두게 하면 안 된다. 달래고 어르고, 그래도 싫어한다면 야단을 쳐서라도 날마다 연습하게 해야 한다. 끝까지 배우는 습관이 여자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피아노를 잘 치면 똑똑해진다, 이를 명심해라.

 

 

엄마의 독서습관

 

양서良書를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법은 없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다. 지능 향상의 핵심이 바로 독서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양한 것을 알게 해준다는 것도 매력의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책은 상상력을 길러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명작이 영화로 제작되었음이 이를 입증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들은 작품 속에 빠져들어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주인공의 얼굴에서부터 풍경과 거리의 모습, 때로는 냄새와 맛까지 상상에 한계란 없다. 만들어진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이처럼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책을 읽고 상상하는 힘은 바로 감수성과 호기심을 넘어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똑독한 아이는 책을 많이 읽는다. 이 아이의 부모는 더 독서를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애정표현을 자주 해라

 

딸에게 통하는 애정표현은 사내아이와 다르다. 이에 관해 저자는 '네가 있어서 정말로 기쁘다'란 말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럴지라도 딸은 아마도 '사랑스럽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말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결코 할 수없는 말이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사랑스럽다'고 말해주자.

 

적절한 때에 아이에게 건넨 '사랑스럽다'는 말은 아이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다,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고, 나아가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는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아이에게는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용기를 내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귀한 딸일수록 엄하게 가르쳐라', '여자아이는 인생모델을 흉내 내며 성정한다', '딸에게 눈치로 판단할 줄 아는 법을 가르쳐라', '올바른 쇼핑은 판단력을 길러준다', '좋은 아빠는 딸에게 이상형의 남자가 된다', '딸의 용돈을 줄여라' 등등의 딸의 교육법을 소개한다. 끝으로 호기심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 남성이 절대로 여성을 이길 수 없는 점은 바로 섬세한 감수성임을 인정한다. 

 

"엄마가 감수성이 풍부해야 딸도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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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건배사 - 특별한 날, 30초의 승부 스토리 건배사 시리즈 1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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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을수록 어려운 게 있다. 음익은 15초 CM송이 가장 어렵듯이 말도 건배사가 가장 어렵다. 던 30초 안에 승부가 갈리는 게 바로 건배사다. 술자리 스타는 여럿 있다. 노래 잘해서 스타가 된 사람, 폭탄주 제조를 잘해서 스타가 된 사람. 그런데 건배사를 잘해서 스타가 된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짧고 이팩트 있는 말 몇 마디만 외워두면 당신도 술자리 스타가 될 수 있다. - '건배사,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스토리 건배사가 진짜다

 

책의 저자 김미경은 스타 CEO들의 스피치 선생님, 기업교육 강사이자 컨설턴트, 라이프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1964년 충북 증평에서 태어난 그녀는 연세대 음대를 졸업했고, 중앙대 산업대학원 산업전문지도자 과정과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9세 때 독학으로 강의를 시작한 후 16년간 여성 마케팅 전문 컨설팅 업체인 W.Insights와 미래여성연구원 대표로 재직하며 각종 교육 현장, TV, 라디오 등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라이프 코치이자 전문 강사이자 기업교육 컨설턴트로 성공을 거뒀다. MBC희망특강 '파랑새'에서 그 어떤 주제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통찰력과 특유의 통쾌한 입담으로 '국민 강사'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음악에 숨어 있는 감동과 설득의 법칙을 찾아내 스피치에 접목시켰다. 이를 토대로 2008년 아트 스피치 과정을 개발해 스피치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주요 저서로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나는 IMF가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당하지 말고 당차게 살아라>, <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여성 마케팅> 등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건배사는 삼행시 또는 축약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생겨버렸다. 축하하는 모임이든 위로하는 모임이든 젊은이들이 모였건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모였건 상관없다. 건배사는 무조건 '당나귀' 아니면 '재건축', '원더걸스' 등의 축약어 일색이다. 하지만 모든 말에는 이에 어울리는 때와 장소가 있다. 건배사도 마찬가지다. 어울리는 건배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제 엉터리 삼행시나 축약어 스타일의 건배사는 모두 잊어버리라고 강조한다. 재삼 삼탕의 흘러간 유행어가 아니라 가장 짧은 순간에 수십 수백 명의 마음을 뜨겁게 하나로 뭉치게 하는 화산 같은 자작곡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웃자고 가볍게 내뱉는 건배사는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인물평점을 깎아먹을 뿐이다.

 

 

 

 

친구 결혼식에서

 

자기 아내 될 사람이 김태희보다 더 예쁘다는 친구는 콩깍지가 팍 씌운 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게 2년이 지나면 다 벗겨진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소신 있다고 말하던 사람이 이제는 "완전 똥고집이야"라고 말하고, 또 통이 크다고 좋아하더니 요즘에는 "왜 이렇게 낭비를 많이 하냐?"라고 말하며, 자상하다더니 지금엔 "쫀쫀해서 못 살겠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다들 이렇게 변한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몇 년이 지나도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게 사랑의 본드로 꽉 붙였으면 좋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꽉 붙여'를 외치면 여러분은 다 함께 '콩깍지'를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꽉 붙여 콩깍지

 

참고로 이때 똥고집, 낭비, 자상, 쫀쫀 등은 딱딱 끊어서 말하면 청중들이 몰입하므로 마지막 구호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회식 자리에서

 

나는 참 빈틈이 많은 사람입니다. 실수도 많고 경험도 부족하죠. 그러나 저는 제 빈틈이 제 자산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제 빈틈을 사람들이 참 좋아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불쌍하다고 채워주고 어떤 분은 착하다고 채워주고 또 어떤 분들은 인간적이라며 제 빈틈을 채워주더라고요. 옆에 앉아 있는 동료를 한 번 봐주십시오.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서로 조금씩만 채워줍시다. 제가 '빈틈을'이라고 외치면 여러분은 '채워주자'라고 외쳐주세요.

 
빈틈을 채워주자


이 건배사는 나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청중도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서로를 쳐다보게 하는 퍼포먼스를 잘 연출해야 재미있다.

 

 

친구의 첫 취직 기념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깡소주에 새우깡으로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도 드디어 물주가 생겼습니다. 만날 빈대 붙던 길동이가 드디어 취업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고기 안주에 양주를 먹어보게 생겼습니다.


오늘 새로운 물주의 탄생을 축하하며 건배합시다. 제가 '화끈하게'라고 외치면 다 같이 '쏴라'를 소리 질러주세요.


화끈하게 쏴라

 

 

계약이나 프로젝트를 실패했을 때

 

이상한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망한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만 골라서 뽑아요. 프로젝트에 실패한 사람에게 먼저 승진 기회를 줍니다. 그러고도 회사가 잘 굴러갈까 싶지요? 그런데 참 잘 굴러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빌 게이츠 회장이 CEO이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실패도 능력이라는 겁니다. 실패를 해봐야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알 수 있고 성공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시죠? 그럼 이제부터 질리도록 실패해봅시다. 제가 '실패도'라고 외치면 다 함께 '능력이다'를 외쳐주세요.

 
실패도 능력이다

 

 

신년회에서

 

얼마 전에 트위터의 황제 이외수 씨가 재미있는 트윗을 남겼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 알겠다. 여자의 모든 변덕은 사랑해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 동감하십니까? 아내의 잔소리가 바가지로 들리면 여러분은 아직도 철이 덜 든 것이고 순정으로 들리면 드디어 철이 든 것입니다.


우리 새해엔 남자들이 철 좀 들자는 의미에서 제가 '아내의 바가지는'이라고 외치면 여러분은 '순정이다'라고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의 바가지는 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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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 광狂, 폭暴 - 제국을 몰락으로 이끈 황제들의 기행
천란 엮음, 정영선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스무 명의 황제는 하나같이 어리석은 군주나 폭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행동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나라를 거의 그 지경까지 몰고 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20명의 어리석은 황제들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거의 미치광이와 같은 기이한 행동을 일삼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의 운명까지도 패망으로 이끈 어리석은 황제들이다. 이 책을 엮은 천란은 북경대 중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고대 문학 석사. 고대 문학, 고대 역사 방면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관련 분야의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황궁의 비밀>, <청소년을 격려하는 365가지 역사 이야기> 등이 있다.

 

비록 오래 된 중국사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군주의 행동일지라도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기이함의 극치를 보인다. 즉 주색에 빠져 끝내 복상사한 황제, 유모와 놀아난 황제,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고모를 후궁으로 삼은 황제, 신선이 되려고 한 황제, 전쟁을 군사놀이로 알고 궁을 빠져나가 몰래 전쟁터로 달려간 황제, 사랑하는 여인에게 재미난 전쟁 장면을 구경시켜 주려다가 적에게 포로로 잡힌 황제 등이 바로 그들이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목공이나 기예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황제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나라의 경영을 내팽개치고 다른 일에 탐닉했던 것은 어쩌면 살벌하게 죽고 죽이는 냉혹한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도피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살아남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하늘은 너를 멸망시키기 전에 먼저 너를 미치게 한다'

 

 

진나라 2대 황제 영호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의 시황제 뒤를 이은 2대 황제는 본디 황제가 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환관이자 스승인 조고의 간계로 인해 유서가 조작되면서 형인 부소를 제치고 황제의 위에 올랐다. 이때 진시황에게 중용되었던 이사도 조고의 유혹에 빠져 조작에 동참하고 만다. 그런데, 이게 2대 황제의 치명적인 약점이었기에 이름만 황제인 호해는 나라를 주무르는 실력자 조고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호해와 관련된 유명한 고사성어가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이 고사를 좀 더 살펴보자. 조고는 함께 유언 조작에 나섰던 승상 이사를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 자리를 꿰차면서 대권을 손에 쥐었지만 늘 불안한 것은 과연 환관 출신인 자신을 대신들이 따라줄지의 여부였다. 이때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게 바로 이 고사의 탄생이다. 즉 아침 조회 모임에서 그는 호해 황제에게 말 한 필을 선물한다면서 사슴 한 마리를 데려왔던 것이다. 이에 황제는 사슴이 맞다고 말하고, 조고는 계속 말이라고 우겼다. 할 수 없이 황제는 대신들에게 말인가, 사슴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신변의 두려움을 느낀 대부분의 대신은 말이라고 답했다. 이때 사슴이라고 답한 신하는 조고가 나중에 구실을 만들어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20살에 황제가 된 그는 욕심 많고 무지몽매한 탓에 자신의 안위와 향락을 위해 20여 명의 형제자매와 나라의 대신들을 미친 듯이 살해했다. 이런 과정에 조고는 어린 황제에게 충성하는지를 판가름하는 수단으로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노루를 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충한 인물, 즉 역심을 품은 인물로 간주해 처벌하도록 만든 간신이다. 이처럼 나라가 위기의 끝을 향할 때는 어리석은 군주와 간신이 반드시 만나는 법이다. 호해 황제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미치고 만 것이다. 

 

 

첩들과의 육욕에 빠져 아들까지 죽이다

 

고대 중국의 어리석은 군주를 나열해 보면 한나라 성제 유오가 단연 으뜸이다. 그는 19세에 황위에 올랐지만, 주색에 빠져서 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천리마'와 같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천리마에는 한참 못 미치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인물이었다.

 

이미 주색에 빠져 지내던 그는 황제가 된 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개버릇 남주나'라는 말처럼, 그는 한눈에 반해서 자신의 고모뻘인 황후 허씨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도 양에 차지 않아서 하급 궁인의 미모에 반해 이를 취하고 신분까지 상승시켜 반 첩여(비빈들의 서열상 '소의' 바로 아래 서열임)를 곁에 두고 육욕을 즐겼다.

 

반 첩여는 미모뿐만 아니라 재능과 학식까지 골고루 갖춘 여인이었기에 성제의 지나친 방탕을 제지했다. 하지만, 성제는 여인의 재능보다는 오직 미색만을 탐했다. 마침 그의 눈에 조비연이라는 춤 솜씨가 빼어난 무희가 눈에 쏘옥 들어왔던 것이다. 이 여인은 쌍둥이(의주, 합덕 자매)로, 둘 중 언니의 춤은 워낙 출중해서 마치 제비가 나는 듯한 자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 '조비연'이다. 그날로 바로 그녀는 '첩여'의 지위를 얻었다.

 

성제가 조씨 자매를 총애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이 자매들은 나중에 내팽개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후궁들이 성제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모두 죽이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런데, 조씨 자매가 임신을 하지 못한 것은 성제를 유혹하려고 항상 사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본디 사향은 피임이나 유산에 사용했을 정도로 임신과는 상극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나라는 외척 왕씨의 수중에 놀아나고 있었다. 결국 성제는 조합덕의 품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북제의 마지막 군주 고위

 

북제의 군주 고위(재위 556~577년)는 무능하고 호색을 즐긴 왕이었다. 예부터 북제의 황실은 음란하고 난폭하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것도 전통이라고 고위는 북제의 명맥을 마감시킬 정도로 매일 주색에 빠져 지내며 국정은 나몰라라 했다. 그는 풍소련을 알게 된 후 항상 그녀의 곁을 떠나질 못했다. 또한 요란스로울 정도로 궁을 짓고 극도의 사치를 즐겼다. 얼마나 웃기냐 하면 그가 기르는 닭, 말, 개 등 가축에도 관직과 녹봉을 주었으며, 이를 만류하면 대신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북주의 무제가 북제를 공격해올 때 그는 풍소련과 함께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이른 새벽부터 병사들이 북주의 침략을 세 번이나 보고했지만, 그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첨을 일삼는 신하는 황제 옆에서 보고하는 병사를 오히려 나무랐다. "황제께서 지금 사냥 중이신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변경 지역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반사이거늘 왜 이리 보채는 것이냐!"라고 말이다.

 

북주의 군대가 평양성(현재의 산시 린펀)을 함락시키자, 결국 대군을 이끌고 직접 출정하여 평양을 향해 곧장 진격했다. 이때도 그는 풍소련을 두고 가기가 아쉬워 동행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북주의 군대를 어떻게 격퇴해서 잃은 땅을 되찾느냐가 아니라 내친 김에 풍소련에게 주변의 명승고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북제는 전쟁에서 패했다. 패잔병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무기도 지천으로 널렸다. 정신없이 도망가던 고위는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사람을 진양으로 보내 황후의 조복과 인수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바로 풍소련을 황후로 봉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후의 예복을 입은 풍소련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는 흐뭇해했다. 정말 한심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중에 몇 차례 전세를 뒤집을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풍소련이 말도 안 되는 간섭을 한 탓에 그는 승산이 있던 전쟁에서 끝내 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패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풍소련에게 아무 탈이 없으면 됐지, 전쟁에서 진 게 무슨 대수인가?" 마침내 도망치던 그는 아들과 함께 북주의 무제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는 그에게 그다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풍소련까지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무제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풍소련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역사는 이 인물을 '걱정 없는 천자'로 기록하고 있다.

 

 

환관들에 추대되어 황제가 되다

 

중국 역사는 당나라 목종, 문종, 무종, 선종, 의종, 희종, 소종 등 일곱 명의 황제들은 환관들에 의해 황제 자리에 오른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희종은 12살에 황제가 되었지만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고작 닭싸움, 활쏘기, 검술, 음악, 장기, 도박 등이 전부였다. 그는 나라의 모든 정치 권한을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환관 전령자에게 모두 일임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령자는 권력을 손에 쥐고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에 마침내 '황소의 반란'이 발생했다.

 

황제를 쉽게 다루려면 어렸을 적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 당나라 의종은 아들이 일곱 명이었는데, 환관들은 궁리 끝에 황제가 위독한 틈을 타서 큰 아들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희종을 즉위시켜 '문생천자門生天子'(환관에 의해 판정된 천자)로 삼았다. 희종은 자신을 황제로 추대한 환관 유행심과 한문약을 공작에 봉했다. 가장 큰 총애를 받은 환관은 전령자였다.

 

당나라 때의 대환관 구사량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문생천자 길들이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황제를 한가로이 내버랴두지 말고 수시로 미인들과 음주가무에 빠지도록 유혹하라. 게다가 수법을 자주 바꾸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마라. 그와 동시에 가능하면 책을 멀리 하도록 하고, 특히 학자들과 가까이 할 기회를 절대로 주지 마라'라고 말이다. 지난 왕조들의 멸망 사례를 보기라도 하면 자신들을 멀리하고 배척할 게 뻔하니까. 

 

 

제국을 몰락으로 이끌다

 

이밖에도 책은 황후와 함께 미친듯이 재물을 긁어 모았던 당나라 장종, 자신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려고 신선이 되려 했던 명나라의 세종,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똑똑한 동생을 제치고 바보임에도 황제가 된 진나라 혜제 사마충, 친누이와 고모를 후궁으로 들인 송나라의 전폐제 유자업, 황궁에 시장을 차려놓고 상인 역할에만 몰두한 동한의 영제 등의 이야기가 제국의 멸망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무릇 리더하면 이런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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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역사 -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만남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헬게 헤세 지음, 마성일 외 옮김 / 북캠퍼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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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든 수도원에서든 혹은 전쟁터에서든 세계사를 움직인 인물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이들의 만남은 열정으로 가득 찼고 좌절과 희망이 교차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만남의 이야기들이 새롭게 조명되며 긴장감 넘치는 사유의 길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역사는 만남의 연속이다

 

이 책의 저자 헬게 헤세는 독일의 기획자이자 작가이며 대학에서 철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단편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주요 언론에 문화, 역사, 경제에 관한 칼럼과 시리즈 기사를 다수 연재했으며, 다양한 학술 참고문헌을 편집했고, 저서로는 독일의 역사잡지 <다말스DAMALS>'올해의 역사책'으로 선정한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를 비롯해 <단 한줄의 역사>, <처칠 스타일로 승부하라> 등이 있다.

 

 

책은 철학, 과학, 정치, 예술,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인 인물의 만남을 추적한다. 즉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같은 경쟁 혹은 대립 관계뿐 아니라,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랑까지 말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역사의 경계에 섰던 두 사람의 만남과 그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의 다양한 문제와 의미를 되새긴다.

 

 

저자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질문은 던졌다기보다 역사가 묻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종교에 대한 믿음이 과학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 시대를 살았던 요하네스 케플러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만남에 부쳐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또 어디에서 끝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그의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의 삶 가운데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 식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약 2400년 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 교외, 올리브 나무 언덕에서 한 노인과 청년이 나란히 길을 걸어가며 열띤 대화를 주고받는다. 노인은 플라톤, 청년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들 앞에서 갑자기 올리브 열매 하나가 땅에 떨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올리브 열매를 찾으려고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인 채 열심히 바닥을 살폈다. 이리저리 몇 걸음오가다 결국 플라톤이 올리브 열매를 발견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올리브 열매를 집어 올린다.

 

이 올리브 열매를 놓고 두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인식한다. 플라톤은 모든 존재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올리브 열매의 이데아와 실제 오리브 열매가 어떤 관계인지를 탐구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금해 하는 것은 올리브 열매의 본질과 자연에서의 위상이다. 즉 플라톤은 모든 사물의 배후를 탐색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경험한 개별자의 본질에 주목한다.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1118년 어느 이른 아침, 사람들이 파리 골목길을 향하고 있었다. 간밤에 비명이 울려 퍼진 집에는 아벨라르가 거세된 채 방에 누워 있었다. 아벨라르는 당대의 유명인사들로부터 논리학과 변증법을 배운 탓에 이후 공개적 논쟁에서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승리했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에 놀려들어 명성과 함께 부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는 스승을 노골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결국 대학에서 추방당해 파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1114년, 아벨라르가 도착한 파리는 인구가 3~4천 명 정도로 센 강의 중앙에 잇는 시테섬의 좁은 골목길에 밀집해서 살고 있었다. 당시 성당에는 학교가 없어서 학생들은 아벨라르의 논리학 강의를 수강해야 했다. 1116년 어느 날, 아벨라르는 성당 주변에서 꽃다운 나이의 엘로이즈를 보게 되었는데,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즉각 신상을 수소문해서 그녀의 후견인인 삼촌 퓔베르의 집에 숙식을 요청했다. 그러자 퓔베르는 엘로이즈의 가정교사 노릇을 해달라며 쾌히 승락했다.

 

아벨라르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사냥감을 위협하거나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수학을 공부하거나 교회 성인들과 그리스, 로마 사상가들의 저서를 공부할 때 그는 이 젊은 여인을 맘대로 유혹했다. 그들은 책을 보는 대신 서로의 눈을 보았다. 곧 그들은 말을 주고받기보다는 키스를 더 많이 했다. 아벨라르의 손은 책장보다는 엘로이즈의 가슴에 더 자주 머물렀다. 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잠자리를 함께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애정 행각 장면을 목격한 퓔베르는 극도의 분노를 폭발하면서 아벨라르를 집에서 내쫓았다. 이때 엘로이즈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다. 1118년,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고향집에서 아들을 낳고 아벨라르의 여동생에게 양육을 맡겼다. 이후 아벨라르는 퓔베르를 설득해 비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다. 결혼과 가족이 그의 학문에 방해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작은 예배당에서의 결혼식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비밀 유지를 어기고 풸베르가 결혼 사실을 퍼트리고 다녔다. 아벨라르는 퓔베르의 복수를 두려워했다. 결국 퓔베르는 친척들과 함께 잔인한 복수극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범죄에 동원된 하수인들은 시골에서 동물들을 상대로 거세를 연습까지 했다. 거사 당일 밤에 매수된 아벨라르의 하인이 하수인들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아벨라르는 이들에게 거세당하고 만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폴 고갱은 1882년 증시 붕괴 후 직장을 잃었다. 이때 그는 그림에 전념하는 기회로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넷, 나머지 인생을 온전히 예술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유부남이었던 그는 그림을 팔아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감을 얻어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고집불통의 성격에 싸움이 잦아 일감을 구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괴로워하지도,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고갱은 파리 미술계에서 테오를 알게 되어 그로부터 후원을 받았지만 1888년, 고갱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테오는 고갱에게 매월 한 점의 그림을 넘기고 아를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과 함께 산다면 메월 150프랑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사실상 이 제안은 테오의 형 고흐의 아이디어였다. 어쩔 수 없이 고갱은 이를 수용했다.   


"이런 제기랄, 온통 노랑이야"

 

고갱이 고함을 쳤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서다. 고흐는 태양의 강렬한 색과 하늘의 푸른색 등 자연의 색감을 좋아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노랑을 사용했다. 태양이 작렬하듯 노랗게 이글거리는 해바라기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고갱은 화폭 여기저기에 노란색을 칠하는 고흐가 못마땅했다. 고흐가 좋아하는 화가나 그림은 고갱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둘은 늘 일상의 모든 것을 두고 다투었다. 싸우지 않으면 침묵하거나 각자의 작업으로 도피했다. 함께 동거한지 약 두 달이 경과한 12월 23일, 고흐는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생각에 고갱은 이 좋은 도시 아를도, 우리가 작업하는 노란 집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싫증이 난 것 같아' 라고.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섰다. 말년을 타히티에서 보낸 고갱은 먼저 세상을 떠난 고흐를 어떻게 추억했을까? 자신의 오두막 앞에 노란색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아서 밀러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대표되는 아서 밀러는 미국 극작가이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배우 이브 몽땅, 존 F 케네디 등 유명인들과과 염문설을 뿌렸던 마릴린 먼로는 세계적인 섹시 심볼로 대변된다. 그런데, 이 둘이 5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책은 '완벽'이라는 키워드로 두 사람의 만남을 조명했다. 먼로가 주연을 맡았던 위대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15쌍의 역사적 만남

 

그 시대의 라이벌이자 친구, 연인, 혹은 소울 메이트로 연결되는 인물들은 앞서 소개한 빈세트 반 고흐와 폴 고갱 말고도 여럿 있다. 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윈스턴 처칠과 찰리 채플린, 아서 밀러와 매릴린 먼로,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등 그 이름도 쟁쟁한 총 15쌍의 역사적인 만남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들의 인물사를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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