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인사이트 2030 - 60개의 키워드로 미래를 읽다
로렌스 새뮤얼 지음, 서유라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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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03년 독일의 수학자 겸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미래가 있을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 그의 명언은 현재를 살아가는, 특히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이들이 그토록 미래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확실히 설명해준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는 미래는 언제나 높은 가치와 중요성을 동시에 지닌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 '들어가며' 중에서

 

 

"미래는 인간의 놀라움을 자극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나태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미국의주요 주간지 <뉴요크>의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의 발언(1997년)에는 미래 지향적인 생각이 현재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신념이 담겨 있다. 그는 "미래란 언제나 현재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를 혼란과 욕망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들을 물리친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고 덧붙인다. 비슷한 관점에서 데이비드 윌슨은 <미래의 역사>에서 "예언과 예측이 실제로 벌어질 일을 그대로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현재에 닥친 공포와 희망, 욕망에 대한 해답을 상당 부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트렌드 인사이트 2030>의 저자 로렌스 새뮤얼은 문화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문화 역사학자다. 마이애미와 뉴욕 소재의 컨설팅 회사 아메리컬쳐 창립자로서 떠오르는 문화 트렌드를 비즈니스 기회로 전환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의 대모'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그는 1990년 이래 포천 500대 기업과 다수의 대형 광고 에이전시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해왔다.

 

미국 최고의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는 제이피 모건의 의뢰로 미국의 부유층 문화를 파헤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문화인류학에 기반한 독특한 방법론을 활용하여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5개 유형으로 분류한 것으로, 문화 컨설턴트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고 평가받았으며 다수의 미디어에 조명되기도 했다. 더불어 미국의 대중심리학 매거진 <사이콜로지 투데이>의 블로거로, 게시한 글은 수십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저서로 <미래가 변하고 있다>, <미래의 역사>, <미국의 부유층 문화> 등이 있다.

 

 

 

 60개의 세계적인 트렌드

 

 

비즈니스와 정치는 더욱 더 공생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비즈니스와 정치는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공생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개중에는 아예 '폴리-비즈니스Poli-business'라는 합성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미래의 기업인들은 정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하며, 정치인들은 비즈니스 언어에 보다 친숙해져야 한다.

 

조직 관리자들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사업 환경에서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해야 한다는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했다. 우리가 긴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회 변화의 속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남은 21세기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역설과 모순은 문화인류학의 발전 과정에 필히 뒤따른다

 

사방에서 발견되는 역설모순은 어떻게 보면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가령 다양성과 보편성의 대두는 세계가 얼핏 보기에 정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동시에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다. 기술적 진보와 인도주의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세계화와 현지화의 기이한 역학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또 다른 이분법이다.

 

신흥국 국민들이 물질적 가치에 강하게 끌리는 반면,

선진국 시민들이 물질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현상

또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범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반적 시장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종과 민족이 사회적 트렌드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전제로 운영 및 성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새로운 주류'다"

 

이제는 낡아빠진 '주류-비주류' 기반의 문화적 잣대를 버리고 인류의 대부분이(어쩌면 전부가) 범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래서 리서치, 마케팅 전문회사 에스니팩츠는 위와 같이 말했다. 마케터들은 세계시장의 개별 소비자를의 인종 혹은 민족 기준으로 깔끔하게 나누려는 태도를 버리고, 우리가 범문화주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저자는 이 새로운 접근법이 소비자를 자로 잰 듯 구분하는 기존 모델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문화적 경험에 좌우되는 사회적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21세기 최대의 문제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은 모든 정치, 경제적 이슈를 초월하는 21세기의 최대 문제가 될 것이다"

- 피터 피터슨의 <잿빛 새벽>(1999년) 중에서

 

피터 피터슨억만 장자 비즈니스맨이다. 이미 그는 오래 전에 인구통계학을 근거로 우리들에게 위험성을 예고했다. 즉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에 들어서면 수많은 노인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 경제와 헬스케어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심지어 주요 납세자인 밀레니얼 세대와 수혜자인 베이비붐 세대 간에 전쟁 수준의 갈등이 발생한다고 전망하는 이들까지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세상에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향후 20~30년 동안 자선 활동 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인구는 바로 베이비붐 세대다. 그들은 가장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대로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무감을 지니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족적을 남기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존재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까?"

 

베이비붐 세대는 불멸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 그들의 연령을 고려하면 이러한 욕구가 얼마나 진지한 것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가치 있는 사고방식이며, 덧없는 '안티 에이징'에 매달리는 것보다 생명을 연장하거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훨씬 건설적인 방법이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의 약65%는 어떤 식으로든 자선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그들의 엄청난 수를 감안하면 각종 자선 단체들이 기쁨에 들떠 있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유대감

 

비인간성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디지털 세상의 확장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가 생각한 해답은 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연결성Connectivity에 대항하는 개념인 유대감connected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대감을 통해 인간이 관계 속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가족과 친구,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관계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핵심 열쇠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하고 있는 파티위드어로컬닷컴의 창립자  페네시의 설득력 있는 결론이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인터넷은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서 사람들을 모아주며 연결성만큼이나 유대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

 

과거의 과학순수한 연구 목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오늘날의 과학계에서는 기술 연구와 상품화 전략이 2인조 스포츠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과학의 앞날에 무시무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존재하지만, 과학계가 생명과 인간성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 한 상황이 현재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사회적 변화를 눈여겨 봐야 한다

 

타 영역의 모든 흐름은 사회적 변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세계가 점차 인종, 민족 등에 대한 차별 없는 '범문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고령화'가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심화될 것이고,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비중이 이미 큰 폭으로 증가한 지금,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사람이 '도시'로 대규모 이주해갈 것을 암시한다. 가족 규모가 단기간에 급격하게 줄어 '마이크로패밀리'화 되면서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상과 동시에 1인 가구들이 '공유 주택'에 모여 사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비즈니스 운영을 위해 특히 사회적 트렌드를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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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이랑 오늘도 걱정말개 - 노잼 일상을 부수러 온 크고 소중한 파괴왕
오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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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이는 내가 소망했던 천사견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개 무식자’ 시절 생각했던 것처럼 악마견도 아니었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신체가 다르듯, 밀란이도 아주아주 발랄한 성격과 튼튼한 몸을 타고난 개성적인 개일 뿐이었다. 밀란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전처럼 화가 나거나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웃음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사고를 치는 모습도 귀엽게 느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고뭉치 개 밀란이와 살아가는 이야기

 

책의 저자 오혜진은 4년 전 '래브라도 리트리버=천사견'이라는 착각으로 밀란이를 덜컥 입양한 뒤 지금까지도 파괴왕 밀란이에게 잡혀살고 있다. 강아지는커녕 어릴 때 키워본 동물이라고는 소라게가 다인 개 무식자라, 처음에는 틈만 나면 밀란이와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잠시만 눈을 떼도 온 사방을 헤집어놓는 밀란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든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밀란이를 파양하거나 체벌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신체가 다르듯, 밀란이도 아주아주 발랄한 성격과 튼튼한 몸을 타고난 개성적인 개일 뿐' 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꽤 쓸 만한 매니저가 되어, 하루하루 밀란이와 전쟁 같지만 사랑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사고뭉치 강아지 밀란이와 가족들이 싸우고 사랑하고, 화내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이라고는 어렸을 때 소라게를 키워본 게 전부였던 '개 무식자'인 그녀와 뼛속까지 '파괴왕' DNA로 가득찬 2개월짜리 강아지와의 동거는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막연하게 맹인 안내견이자 인명 구조견으로 알려진 래브라도 리트리버였기에 당연히 '천사견'일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입양했지만, 현실은 '악마견'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후회될 정도로 사고뭉치에 말썽꾸러기였다.

 

문짝이며 가구며 세간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것이 일상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온 사방을 헤집어 놓아 손해배상에 적지 않은 돈을 쓰기도 했다. 밀란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사람의 아기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지는 않은 것처럼 밀란이도 어떤 성격을 가졌든 내가 책임져야 할 우리 가족이라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밀란이의 탄생

 

이름 이밀란, 여자, 2014년 4월 2일 출생. 이게 애완견 밀란이의 견犬적사항이다. 사실 견주인 엄마는 지금 속이 타들어가고 썩어문드러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야 책에서 가르쳐주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나같은 견공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입에 넣어봐야 알고,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야 뭐가 뭔지를 안다. 그러다보니 뭐든 입으로 물어뜯고, 씹고 하면서 조금씩 알아간다.   

 

 

정말 서러워서

 

밀란이도 여자니까 화장품에 관심이 좀 많다. 그래서 화장품을 뜯어 발라보다가 냄새가 하도 좋기에 맛이 궁금해 몇 통 좀 먹었다. 근데 엄만 그거 갖고 왜 남의 화장품에 손대냐며 화를 냈다. 아니 우리가 남이가? 식구라며! 또 한 번은, 엄마가 "아무것도 안하고 소파에 누워 책만 읽고 싶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기억해뒀다 방안의 물건을 다 끄집어내서 거실에 갖다놨다. 손만 뻗으면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이 다 닿으니 안 움직여도 되고 얼마나 편하겠는가? 중간에 힘 조절을 쪼까 못해서 망가진 물건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보곤 내 마음도 모르고 화를 냈다.

 

 

 

엄마가 날 포옹해줬다

 

엄마를 처음 만난 날, 밀란이는 형제들과 케이지 안에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밀린이를 귀엽다고 데려가면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었다. 그래서 밀란이는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온갖 재롱을 부렸지만, 엄마는 오히려 피하면서 장난 치지 말라며 화를 내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엄마가 오늘 사과한다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엄마는 밀란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밀란아, 사실은 말이야…. 처음엔 네가 참 귀여웠는데, 어느 순간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져서 점점 감당이 안 되더라. 물건도 다 박살내고 집안을 난리 쳐놓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다른 집에 보내도 예쁨받지 못할 것 같고, 버린다는 건 생각도 못 하겠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아빠한테만 모두 맡기고, 널 외면했어…. 아까 네가 수술 끝나고 눈도 팅팅 부었는데, 이런 나도 엄마라고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더라. 마음이 너무 아팠어. 너 기운 없는 걸 보느니, 사고 치는 게 더 낫겠어"

 

개새, 이는 나한테 욕 아닌가?

 

이젠 내 체력의 비밀도 알게 됐겠다, 나도 더 이상 꺼릴 게 없어 엄마와 공놀이를 하면 성이 찰 때까지 놀아달라고 조른다. 아무리 던져줘도 내가 지치지 않고 날듯이 빠르게 뛰어오자, 엄마가 "우리 밀란이, 개 같지 않고 새 같네?" 하고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공을 던질 때 악쓰듯 기합을 외치기 시작했다.

 

"공 갖고 날아와라, 이 개새야!!”

 

여기서 '새' 할 때 시옷 발음이 조금 세게 나온 것 같고… 평소 내가 물건 망가뜨릴 때 하던 욕 발음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분명 날아다니는 새와 비교를 하긴 한 것 같으니 뭐라 따질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공을 던져줄 때마다 "개새!", "이 개새야!"라고 외친다. 던져주니까 입에 물고 재빨리 가져오긴 하는데, 기분이 영 찝집하다. 칭찬 같은면서도 욕을 하는 것만 같다. 

 

 

 

네가 저지른 인테리어를 강추위는 알고 있다

 

밀란이가 저지른 인테리어 작업(?) 중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하나 있는데, 개춘기 시절 베란다 중문 실리콘을 뜯어버린 일이다. 속이 하도 답답해서 바람이나 솔솔 통하게 하려고 한 짓인데 요즘 들어 후회하고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요즘은 바람 들어오는 게 '솔솔' 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추운지, 식구들은 집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지낸다. 소파에도 작은 전기장판을 깔아놨는데, 하도 추워서 염치없게 밀란이가 독차지하고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미안하긴 하지만, 견공도 살아야 한다.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하나뿐인 미니 난로도 밀란이의 전용 물품이다.

 

 

개도 감정이 있다는 걸, 너희 인간들은 알까?

 

어릴 적엔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그런데, 밀란이도 나이들면서 무서운 게 생겼고,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눈치가 9단이다. 무서운 건 아빠의 불호령이다. 평소에는 밀란이와 잘 놀다가도 혹 밀란이가 실수하거나 잘못 행동을 하면 가치없이 혼을 내기 때문이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도 있고, 열받으라고 친 사고도 있었다. 

 

개도 이렇게 상호모순되는 양가兩價감정을 느낀다는 걸, 인간들은 알까? 입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뜯으면서,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낀다. 식구들이 집에 들어와 난리 난 집을 본 순간,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고 귀를 뒤로 접고 항복의 배 까기를 하는 비굴한 모습.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는 아무 눈치 안 보고 떳떳했는데. 왜 "안 돼!"라는 말을 알아듣게 된 걸까?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가 가장 행복했다.

 

 

우리 함께, 영원히

 

자서전을 쓰면서 식구들을 많이 한심하게 표현하고 별로 안 좋아하는 척했지만. 사실 밀란이에게 가장 특별한 건 바로 우리 식구다. 그리고 밀란이도 이들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서로 오해도 하고 미워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우린 평생 함께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다. 그리고 밀란이가 아니면 누가 이 모자란 오합지졸을 거둬주겠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끌어안고 살아야지. 인간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개의 수명이지만, 죽는 날까지 이렇게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면서 보낼 거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알아보고 데려와줘서 많이 고마워.

 

 

 

끝까지 함께 살아야 행복이다

 

우리집 애완견 보리는 큰딸의 과외교사가 갓 출생한 새끼 마르티즈를 딸에게 준 선물이었다. 엄마젓을 빨던 녀석이 차를 타고 멀리 이사온 탓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지금도 보리는 승용차를 타고 함께 이동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 불안해하고 안절부절하기 때문이다. 이제 노견에 접어들어 병치레도 자주 하고 관절이 시원찮아서 수의사가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우리 부부가 산책 준비한다고 부시럭거리면 금방 따라 나선다. 애완견이 말썽을 부린다고, 사료값이 많이 든다고 하면서 키우던 애완견을 버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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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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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들은 뜨겁고 찬란하였으나 일상이 무너진 시간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오래도록 절룩거린 뒤 겨우 잡은 안온함은 말 그대로 별것이 아니었다. 봄이 오면 꽃을 구경하고 수업에 들어가고, 기숙사에 돌아가 잠을 자고 아르바이트 비를 받는 날이면 술을 마시고, 그렇게 일학년이 이학년이 되고 삼학년이 되는 일. 흔해빠진 대학생의 일상, 나에게는 몹시 간절했던 풍경들. - '프롤로그' 중에서

 

 

살아있는 이 일상에 행복감을 느낀다

 

책의 저자 문지안은 스물두 살에 다니던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삶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두해 후 서울대에 입학해 새로운 걸음을 떼려는 순간 암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큰 수술 후 불필요한 세포들과의 이별을 기다리는 동안 갈 곳 없는 토끼와 함께 지내며 안온한 일상의 의미를 알아갔다. 전공 수업에서 마주한 실험동물들이 자신의 토끼와 같은 모습임을 보아버린 뒤, 사는 일이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들로 여러 차례 멈춰 선 후, 말하지 않는 존재들과 함께하는 안온한 일상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가구 공방 애프터문을 운영하며, 여섯 마리의 개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암에 걸린 환부를 도려내는 절제술을 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암치료에 돌입하지만, 그녀는 항암 치료를 거절하고 학교로 복귀했다. 잘 걷지 못해서 강의실을 이동할 때마다 걷다 쉬다를 반복할 정도였다. 이 때 새삼 깨달은 사실이 몸 아픈 이들의 불편이었던 것이다. 암에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 5년 동안 동원의 암세포가 자라나지 않으면 종결된 것으로 간주하므로 그녀는 몇 개월마다 검사를 받는데, 다행스럽게도 재발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전공자이면서 한 때 로커였고 오랫동안 디자이너였던 남자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이 남자는 가구 공방의 경영에는 관심이 1도 없이 그저 단순한 작업자로 남기를 바란다. 그런데, 따뜻한 마음씨를 소유한 탓에 집 없이 불쌍하게 길거리를 방황하는 개나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거나 집을 지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개와 고양이들이 이들의 공방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고

모든 인연의 끝에는 헤어짐이 있다.

끝이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는 동안 더 만많은 존재와

좋게 닿았다가 헤어질 수 있겠지.

 

닿아있는 시간이 따사롭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세상에는 왜 키우는 사람, 버리는 사람, 거두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털이 빠져서, 늙어서, 품종이 안 좋아서, 짖어서, 말을 안들어서 등등의 이유가

어떤 이들에게는 함께 살던 존재를 내칠 이유가 되는 것일까.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존재를 버리는 일이 당연하다면

늙은 날의 우리들은 어떠할까, 오늘의 우리들은 어떠할까.

 

 

 

"행복이라는 가치는 찰나의 반짝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비어져 나오는 감정을

홀로 안고 잠드는 밤,

떠나간 존재의 빈자리를

손으로 쓸어보는 새벽,

존재를 보내었으나

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겨울,

삶이 몇 도쯤 서늘해졌음을 깨닫는 봄,

긴 시간을 관통하는

개인의 통증들.

 

괜찮지 않다거나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서늘함을 내포한 평정 상태에

천천히, 아프게 적응해 갈 뿐이다.

 

 

절박한 순간에 필요한 것은

가능성 있는 수많은 이들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떠오르는 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흔쾌하면

세상이 나에게 흔쾌한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거절당하지 않은 절실함은

내리막으로 치닫는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변곡점이 되어 준다.

 

 

 

내 손으로 옷을 입고 벗고

타인의 도움 없이 용변을 해결하고

생각하는 바를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으며

고양이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개의 등을 쓰다듬는 촉감을 느낄 수 있고

봄 하늘의 푸르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오늘.

 

건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무탈한 오늘,

당연한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이에게는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으며

결국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아질 지점.

훗날 돌아보면

전성기였다고 기억할지도 모를

 

무탈한 오늘.

 

 

"일상이 곧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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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아픈 사랑에 답하다 - 사랑에 아파하는 영혼들을 위한 심리 정화 솔루션
이규환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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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 이규환정신분석 전문의, 10년도 넘게 마음이 아픈 사람, 마음에 상처를 입어 슬픈 사람, 외로움과 고독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먼저 터득한 지혜나 지식을 나누는 데 힘쓰고 있다1996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 상담 공간 '한마음 정신건강 상담실'과 2000년 10월, 16명의 의사와 함께 '마음클럽'이라는 상담카페를 열어 심리 치유 상담을 했다.

 

그는 가톨릭대학교 의대대학을 졸업, 대전 성모병원과 강남 성모병원에서 정신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경기도 평택에서 '이규환 신경정신과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강연 및 출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 건강 전도사로 자리 잡았으며, 저서로는 <의사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마음건강 X파일>, <스토킹의 심리학> 등이 있다.

 

우리들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의 이별에 아파하지만, 또 다시 사랑에 빠지는 반복 행위를 한다. 이에 저자는 심리학과 정신 분석학의 관점에서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고통과 혼란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 아픔을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은 총 2부(처음부터 '사랑하는 너'란 없다, 심리학이 섹스를 말하다)로 구성되었는데, 심리학적으로 풀어본 사랑과 이별, 섹스, 결혼에 대한 처방전을 만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물에 빠지다. 웅덩이에 빠지다 등등, '빠지다'라는 용어의 어감은 부정적이고 두려운 것을 대상으로 사용한다. 한번 생각에 보자. 같은 물 속인데, 물에서 물장구치며 재미있게 놀았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물속에 빠지다'라기보다는 대신에 '물속에서 놀았다'라고 대체로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할까? 이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허우적대며 방황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 아닐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왜 사랑하려고 하지?'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답은 '외로워서'일 것이다. 홀로 산다는 게 너무 외로워서 둘이 만나 사랑을 하면 외롭지 않기 때문이란다. 정말 과연 그럴까? 사랑을 하면 외로움이 졸지에 사라지는 걸까? 저자의 답은 나와 마찬가지다. 결단코 '네버never'이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자. 계속 가다 보면 도달하는 곳은 어머니의 자궁 속일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 씨앗은 이곳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정말 포근하고 안전한 곳이다. 체온과 비슷하게 따뜻한 물속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곳은 가히 에덴동산이요, 낙원이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이곳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필연적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다. 바로 탄생이다. 지금껏 지내오던 환경과의 이별 때문에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

 

이때의 상실감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모체 상실에 따른 근원적 상실감'이라 했다. 출생의 충격에 따른 상실감의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는 의식 저 너머에 있는 모든 상실감과 외로움의 원형으로 말이다. 이 상실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감정을 소통시키고 싶어 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이 근원적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과 사랑을 찾아 방황한다는 뜻이다.

 

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은 다리가 넷, 팔도 넷인 거인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신을 능가할 만큼 강햇고 그래서 교만했다. 이에 신들은 이런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몸을 반쪽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기원전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 대왕이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을 향해 내린 판결이 '아이를 둘로 갈라서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말한 것처럼. 이후 인간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랑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이 완전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외로움과 고독의 반대어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왜 우리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가 아니고 외롭고 고독할까? 왜냐하면 외로움이라는 그릇의 뚜껑이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외로움을 덮을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상실감을 메워주었는지 몰라도 사랑의 열정과 희열이 식으면 또 다시 그 빈 곳의 허전함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를 우리는 종종 사랑의 탓으로 돌린다. 우리 사랑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너와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이 아니다. 상대를 잘못 고른 것도 아니며 사랑의 방식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사랑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랑도 우리의 근본적인 외로움은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은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사랑을 소유한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적은 뭘까? 서로를 소유하려는 마음이다. 사실상 이런 소유욕은 사랑하는 연인들 간에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연인과의 교제를 떠올려보라.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모님 아래서 성장했는지 등등 궁금해지는 게 점점 많아진다. 물론 이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상대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결말은 달라진다. 그것도 완전히.

 

소유란 어떤 개념인가? 물질이나 대상을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유해야 하는 것도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소유해야만 굶지 않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사랑이 음식처럼 소유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은 물질이 결코 아니다. 추상적인 감정일 뿐이다.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단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행동들' 뿐이다.

 

사랑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은 싱대를 아니 사랑을 소유하려 든다. 정확하게는 '사랑의 행동들'을 소유하려고 한다. 행동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은 점점 자라서 상대의 의식조차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상대의 말랑말랑한 뇌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무슨 기억이 담겨 있는지 모두 알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심지어 이미 사라져 버린 지나간 과거의 일조차도 그들의 소유욕의 대상이 된다. 오늘은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 왜 나 대신 친구와 영화를 보았는지, 어제는 왜 밤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갔는지 마치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듯이 귀찮게 한다. 이리 되면 우리들은 외치고 싶어진다.

 

 "내가 니끼가(너의 것이냐)?"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연인을 만나 핑크빛으로 물든 사랑을 할 때, 대체로 우리들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다고 가정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본 모습인 실재實在 그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와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다 잘 알고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가정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가정하지 말고 단지 그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야 하며, 그에 대해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더라도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그에 대해 생각하고 가정하는 것을 줄일수록 그의 본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정복과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먹었다', '따 먹었다'는 말은 성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성행위와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바이블에서 금기시하는 7대 죄악은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인데,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뱀은 이브의 성적 욕구를 상징하며 성숙한 이브가 아담을 유혹해 성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꿈의 해석>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성행위로 해석함으로써 '먹는다'와 '따 먹는다'를 같은 의미로 간주하는 셈이다. 즉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아담은 기쁨의 대가로 얻은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평생 노동을 감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행위를 '먹었다'라고 표현할 때엔 심하게 화를 낼 것이다. 아마도 먹힌 쪽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외형상 먹히는 쪽은 남성의 거시기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아마존의 한 부족은 성행위를 '거시기 따 먹기'라고 더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아무튼 '먹었다'란 표현은 성행위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정복하고 소유한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 성욕을 일으키는 상대가 슈퍼 울트라 파워(팔루스)를 지닌 존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즉, 사랑하는 상대로 인해 부족한 자기 자신이 채워질 수 있고 완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 남자는 있지도 않은 슈퍼 울트라 파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과 사랑의 행위를 통해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며, 여자는 슈퍼 울트라 파워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자를 통해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성에 관한 한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체계가 있다. 

 

"배우자와의 성행위가 가장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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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에서 초콜릿에서 푸아그라, 감자칩에 이르기까지, 에덴동산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금기시한 음식을 소개하고, 아울러 그 의미도 다루고자 한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음식을 금기시한다면 거기에는 대부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성경에는 금기시한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면, 먹을 때 갖는 죄책감을 기준으로 그 음식을 평가한다. - '머리말' 중에서

 

 

성경이 금기시한 금기 음식을 살펴본다

 

책의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은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대개 일정한 거처를 두지 않고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카트만두, 시드니, 산크리스토발, 콜카타, 샌프란시스코 등은 모두 저자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항구도시다. 여행하거나 글을 쓰거나 카페에서 한가히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는 잡다한 일을 하는데, 요리사, 연극 연출가, 펑크 뮤지션, 포도 따기 일꾼, 화장실 관리인, 관현악단 지휘자, 밀매업, 고전음악 작곡가, 펑크음악 잡지 편집자,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의 자원봉사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마더 존스(Mother Jones)>, <LA 위클리(LA Weekly)>, <베이 가디언(Bay Guardian)>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지독한 커피광이자 여행광으로서의 이력이 잘 드러난 첫 번째 책 <커피 견문록>을 통해 명실공히 커피 사회인류학자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외 저서로 단편소설집 <강간의 기술(The Art of Rape)>과 금기의 음식 역사를 다룬 <악마의 정원에서(In The Devil's Garden)> 등이 있다.

 

이 책은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를 살펴본다. 선악과의 정체에서부터 스낵과 폭력의 관계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맛과 유머의 향연이 펼쳐진다. 저자는 시대별로 금기시되었던 음식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함께 다루고 있다. 금기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전해주며 금기시된 음식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단테<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과 동일한 항목으로 각 장을 나누어 특정 사회에서 혐오했던 악덕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금기시된 음식을 살펴본다. 금기 음식을 쫓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실제로 겪은 저자의 경험담과 본문에 등장한 갖가지 희귀한 요리의 조리법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폭식暴食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이유가 식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는 신학자들의 말일 뿐이다. 이브의 진짜 죄는 맛있는 음식에 유혹당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행동이 바로 대식의 본질인 것이다. 폭식의 죄는 '지나치게' 먹는 데 있지 않고, 단지 먹는 것을 '탐닉하는' 데 있다. 먹는 것을 탐닉한다는 의미는 바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속세의 쾌락을 추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개똥철학이다.

 

"음식을 탐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중세의 성인聖人들현대의 패션모델들은 매우 이질적인 종류의 완벽함을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순전히 정신적으로, 다른 한쪽은 육체적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극단적인 절식절식을 택했다. 오늘날엔 빼빼마른 사람을 미인으로 치는 게 유행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성녀성녀들도 요즘 여성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상당수는 강박적인 절식을 했으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까지 햇다.

 

현대의 '성인'은 성직에 몸담아 성인의 지위를 얻는 대신, 패션 디자이너나 사진작가들과 함께 다른 세상 같은 환상을 창조해 낸다. 그런 다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잡지들을 통해 이 환상을 대중과 함께 누린다. 그런 다음 이 패션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들은 계속 쏟어져 나오는 잡지들을 통해 이 환상을 대중들과 함께 누린다. 잡지에 실린 이런 장면들이 중세의 성인들이 보았던 환상만큼이나 낙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무리한 금식은 환각을 겪기 쉽다" 

 

4세기의 수사 성聖 제롬은 딸들에게 누더기 옷을 입혆고 계속 단식을 시켜 '그들의 자그만한 몸의 열기'를 식히라고 추종자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최초로 웨이프룩(뺨이 홀쭉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의 초췌한 스타일)을 창시했다. 그는 또 참된 숙녀'뭘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여자라고 규정해, 그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딸을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식사하도록 만들어 그 치욕스런 행동을 아무도 볼 수 없게 했다.

 

제롬의 이 이론이 서구의 패션계 거물들에게 공감을 산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제롬의 이론도, 패션이라는 분야도 모두 역사상 가장 섹시한 죄가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폭식이라고 여기는 문명에서 생겨났지 않은가. 당시 제롬의 여성 추종자 중 블래실라제롬의 규정을 따르다가 죽고 말았다.

 

 

나태懶怠

 

나태는 7대 죄악 중 현대의 미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악덕이다. 그런데, 나태를 야기하는 음식을 법으로 금했다는 스타르타 법전이 기원전 7세기에 등장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식사는 공동식당에서 먹도록 했고, 식사의 양도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밖에 주지 않았다. 모든 국민의 공통식 메뉴는 돼지고기 삶은 국물, 피, 식초, 소금 등으로 만든 '시커멓고 묽은 수프'였다. 심지어 배가 불룩해 몰래 뭔가 먹는 것처럼 보이는 시민들은 모두 추방당했다. 웃기는 사실은 이 법전을 만든 리쿠르구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한다. 

 

현대의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생각해보라. 현대의 미국과 스파르타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있다 뿐이지, 이상적인 노동자를 만들기 위해 음식을 이용한다는 원칙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스파르타에서 먹는 것을 즐긴 시민들을 추방했다면, 현대 미국에서는 그들에게 급여를 더 적게 준다(여자들에게 대략 7퍼센트 임금을 적게 주니 말이다). 오늘날의 패스트푸드점과 스파르타의 공동 식당은 둘 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느라 꾸물거리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의도로 생긴(생겼던) 것이다.

 

"인스턴트가 이상적인 노동자를 만든다"

 

스파르타인들이 먹었던 터무니없을 만큼 형편없는 음식이 그랬듯이, 오늘날의 간편 식품들 역시 아주 비위가 상해서 그걸 먹고 있느니 차라리 일하러 가는 게 더 나아 보이게끔 한다. 그로 인해서 간편 식품은 이를 생산하는 회사들에게 상당한 수익성을 안겨주고 있다. 정말 이상적인 수익 구조가 아닌가. 현재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일자리로 서둘러 되돌아가기 위해 더 질이 나쁜 음식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불경不敬

 

로마의 사제들이 거행하는 여러 불경스러운 축제들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사제들은 생선과 야채만 먹도록 제한하고 있는 가톨릭교의 사순절 규율에 맞추려고 음식들을 위장해서 내놓았다고 한다. 즉 잘게 다진 식용 수탉으로 크림색의 수프를, 아몬드로 만든 비늘로 덮어서 꿩고기를 송어로 위장했던 것이다. 

 

이보다 단순한 사례도 있다. 성직자들은 사순절에도 먹을 수 있게 하려고 갓 태어난 토끼를 '물고기'로 분류하기도 했다. 토끼를 우리(키우는 울타리)에 가두어 기르는 방식은 이 일로 인해 비롯되었다. 그런 분류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 뱃속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죽여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남미의 선교사들도 이구아나를 물고기로 분류하는 비슷한 창의력을 선보였다. 이구아나가 강가의 나무에서 일광욕을 할 때가 본래의 모습이라면서 말이다.

 

"미식이 있는 곳에 궤변이 있다" 

 

불교를 창시한 부처육식 금지령"구하지 않으며/응답도 없다"는 조항을 두면서, 신자들이 송아지의 정강이 고기를 보고 그것이 자신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이라는 식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인식을 버린다면 어느 때고 그 고기 요리를 번뇌 없이 즐거이 볼 수 있다는 본질적인 견지를 설파했다. 이 중에서도 진정으로 뛰어난 변호사들은 태국의 승려들이다. 몇몇 승려들이, 자신들이 '물에서 끌어낸' 것이 아닌 만큼 자신들이 물고기를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선을 먹어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말이다.

 

 

"인위적인 낙원은 가짜로 포장된 것이 많다. 먹는 즐거움이 바로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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