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아픈 사랑에 답하다 - 사랑에 아파하는 영혼들을 위한 심리 정화 솔루션
이규환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이규환정신분석 전문의, 10년도 넘게 마음이 아픈 사람, 마음에 상처를 입어 슬픈 사람, 외로움과 고독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먼저 터득한 지혜나 지식을 나누는 데 힘쓰고 있다1996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 상담 공간 '한마음 정신건강 상담실'과 2000년 10월, 16명의 의사와 함께 '마음클럽'이라는 상담카페를 열어 심리 치유 상담을 했다.

 

그는 가톨릭대학교 의대대학을 졸업, 대전 성모병원과 강남 성모병원에서 정신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경기도 평택에서 '이규환 신경정신과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강연 및 출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 건강 전도사로 자리 잡았으며, 저서로는 <의사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마음건강 X파일>, <스토킹의 심리학> 등이 있다.

 

우리들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의 이별에 아파하지만, 또 다시 사랑에 빠지는 반복 행위를 한다. 이에 저자는 심리학과 정신 분석학의 관점에서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고통과 혼란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 아픔을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은 총 2부(처음부터 '사랑하는 너'란 없다, 심리학이 섹스를 말하다)로 구성되었는데, 심리학적으로 풀어본 사랑과 이별, 섹스, 결혼에 대한 처방전을 만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물에 빠지다. 웅덩이에 빠지다 등등, '빠지다'라는 용어의 어감은 부정적이고 두려운 것을 대상으로 사용한다. 한번 생각에 보자. 같은 물 속인데, 물에서 물장구치며 재미있게 놀았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물속에 빠지다'라기보다는 대신에 '물속에서 놀았다'라고 대체로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할까? 이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허우적대며 방황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 아닐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왜 사랑하려고 하지?'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답은 '외로워서'일 것이다. 홀로 산다는 게 너무 외로워서 둘이 만나 사랑을 하면 외롭지 않기 때문이란다. 정말 과연 그럴까? 사랑을 하면 외로움이 졸지에 사라지는 걸까? 저자의 답은 나와 마찬가지다. 결단코 '네버never'이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자. 계속 가다 보면 도달하는 곳은 어머니의 자궁 속일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 씨앗은 이곳에 자리잡기 때문이다. 정말 포근하고 안전한 곳이다. 체온과 비슷하게 따뜻한 물속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곳은 가히 에덴동산이요, 낙원이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이곳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필연적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다. 바로 탄생이다. 지금껏 지내오던 환경과의 이별 때문에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

 

이때의 상실감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모체 상실에 따른 근원적 상실감'이라 했다. 출생의 충격에 따른 상실감의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는 의식 저 너머에 있는 모든 상실감과 외로움의 원형으로 말이다. 이 상실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감정을 소통시키고 싶어 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이 근원적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과 사랑을 찾아 방황한다는 뜻이다.

 

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은 다리가 넷, 팔도 넷인 거인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신을 능가할 만큼 강햇고 그래서 교만했다. 이에 신들은 이런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몸을 반쪽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기원전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 대왕이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을 향해 내린 판결이 '아이를 둘로 갈라서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말한 것처럼. 이후 인간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랑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이 완전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외로움과 고독의 반대어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왜 우리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가 아니고 외롭고 고독할까? 왜냐하면 외로움이라는 그릇의 뚜껑이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외로움을 덮을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상실감을 메워주었는지 몰라도 사랑의 열정과 희열이 식으면 또 다시 그 빈 곳의 허전함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를 우리는 종종 사랑의 탓으로 돌린다. 우리 사랑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너와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이 아니다. 상대를 잘못 고른 것도 아니며 사랑의 방식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사랑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랑도 우리의 근본적인 외로움은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은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사랑을 소유한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적은 뭘까? 서로를 소유하려는 마음이다. 사실상 이런 소유욕은 사랑하는 연인들 간에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연인과의 교제를 떠올려보라.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모님 아래서 성장했는지 등등 궁금해지는 게 점점 많아진다. 물론 이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상대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결말은 달라진다. 그것도 완전히.

 

소유란 어떤 개념인가? 물질이나 대상을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유해야 하는 것도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소유해야만 굶지 않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사랑이 음식처럼 소유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은 물질이 결코 아니다. 추상적인 감정일 뿐이다.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단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행동들' 뿐이다.

 

사랑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은 싱대를 아니 사랑을 소유하려 든다. 정확하게는 '사랑의 행동들'을 소유하려고 한다. 행동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은 점점 자라서 상대의 의식조차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상대의 말랑말랑한 뇌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무슨 기억이 담겨 있는지 모두 알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심지어 이미 사라져 버린 지나간 과거의 일조차도 그들의 소유욕의 대상이 된다. 오늘은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 왜 나 대신 친구와 영화를 보았는지, 어제는 왜 밤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갔는지 마치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듯이 귀찮게 한다. 이리 되면 우리들은 외치고 싶어진다.

 

 "내가 니끼가(너의 것이냐)?"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연인을 만나 핑크빛으로 물든 사랑을 할 때, 대체로 우리들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다고 가정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본 모습인 실재實在 그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와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다 잘 알고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가정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가정하지 말고 단지 그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야 하며, 그에 대해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더라도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그에 대해 생각하고 가정하는 것을 줄일수록 그의 본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정복과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먹었다', '따 먹었다'는 말은 성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성행위와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바이블에서 금기시하는 7대 죄악은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인데,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뱀은 이브의 성적 욕구를 상징하며 성숙한 이브가 아담을 유혹해 성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꿈의 해석>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성행위로 해석함으로써 '먹는다'와 '따 먹는다'를 같은 의미로 간주하는 셈이다. 즉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아담은 기쁨의 대가로 얻은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평생 노동을 감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행위를 '먹었다'라고 표현할 때엔 심하게 화를 낼 것이다. 아마도 먹힌 쪽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외형상 먹히는 쪽은 남성의 거시기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아마존의 한 부족은 성행위를 '거시기 따 먹기'라고 더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아무튼 '먹었다'란 표현은 성행위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정복하고 소유한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 성욕을 일으키는 상대가 슈퍼 울트라 파워(팔루스)를 지닌 존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즉, 사랑하는 상대로 인해 부족한 자기 자신이 채워질 수 있고 완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 남자는 있지도 않은 슈퍼 울트라 파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과 사랑의 행위를 통해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며, 여자는 슈퍼 울트라 파워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자를 통해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성에 관한 한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체계가 있다. 

 

"배우자와의 성행위가 가장 떳떳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에서 초콜릿에서 푸아그라, 감자칩에 이르기까지, 에덴동산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금기시한 음식을 소개하고, 아울러 그 의미도 다루고자 한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음식을 금기시한다면 거기에는 대부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성경에는 금기시한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면, 먹을 때 갖는 죄책감을 기준으로 그 음식을 평가한다. - '머리말' 중에서

 

 

성경이 금기시한 금기 음식을 살펴본다

 

책의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은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대개 일정한 거처를 두지 않고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카트만두, 시드니, 산크리스토발, 콜카타, 샌프란시스코 등은 모두 저자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항구도시다. 여행하거나 글을 쓰거나 카페에서 한가히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는 잡다한 일을 하는데, 요리사, 연극 연출가, 펑크 뮤지션, 포도 따기 일꾼, 화장실 관리인, 관현악단 지휘자, 밀매업, 고전음악 작곡가, 펑크음악 잡지 편집자,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의 자원봉사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마더 존스(Mother Jones)>, <LA 위클리(LA Weekly)>, <베이 가디언(Bay Guardian)>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지독한 커피광이자 여행광으로서의 이력이 잘 드러난 첫 번째 책 <커피 견문록>을 통해 명실공히 커피 사회인류학자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외 저서로 단편소설집 <강간의 기술(The Art of Rape)>과 금기의 음식 역사를 다룬 <악마의 정원에서(In The Devil's Garden)> 등이 있다.

 

이 책은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를 살펴본다. 선악과의 정체에서부터 스낵과 폭력의 관계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맛과 유머의 향연이 펼쳐진다. 저자는 시대별로 금기시되었던 음식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함께 다루고 있다. 금기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전해주며 금기시된 음식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단테<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과 동일한 항목으로 각 장을 나누어 특정 사회에서 혐오했던 악덕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금기시된 음식을 살펴본다. 금기 음식을 쫓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실제로 겪은 저자의 경험담과 본문에 등장한 갖가지 희귀한 요리의 조리법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폭식暴食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이유가 식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는 신학자들의 말일 뿐이다. 이브의 진짜 죄는 맛있는 음식에 유혹당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행동이 바로 대식의 본질인 것이다. 폭식의 죄는 '지나치게' 먹는 데 있지 않고, 단지 먹는 것을 '탐닉하는' 데 있다. 먹는 것을 탐닉한다는 의미는 바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속세의 쾌락을 추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개똥철학이다.

 

"음식을 탐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중세의 성인聖人들현대의 패션모델들은 매우 이질적인 종류의 완벽함을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순전히 정신적으로, 다른 한쪽은 육체적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극단적인 절식절식을 택했다. 오늘날엔 빼빼마른 사람을 미인으로 치는 게 유행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성녀성녀들도 요즘 여성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상당수는 강박적인 절식을 했으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까지 햇다.

 

현대의 '성인'은 성직에 몸담아 성인의 지위를 얻는 대신, 패션 디자이너나 사진작가들과 함께 다른 세상 같은 환상을 창조해 낸다. 그런 다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잡지들을 통해 이 환상을 대중과 함께 누린다. 그런 다음 이 패션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들은 계속 쏟어져 나오는 잡지들을 통해 이 환상을 대중들과 함께 누린다. 잡지에 실린 이런 장면들이 중세의 성인들이 보았던 환상만큼이나 낙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무리한 금식은 환각을 겪기 쉽다" 

 

4세기의 수사 성聖 제롬은 딸들에게 누더기 옷을 입혆고 계속 단식을 시켜 '그들의 자그만한 몸의 열기'를 식히라고 추종자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최초로 웨이프룩(뺨이 홀쭉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의 초췌한 스타일)을 창시했다. 그는 또 참된 숙녀'뭘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여자라고 규정해, 그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딸을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식사하도록 만들어 그 치욕스런 행동을 아무도 볼 수 없게 했다.

 

제롬의 이 이론이 서구의 패션계 거물들에게 공감을 산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제롬의 이론도, 패션이라는 분야도 모두 역사상 가장 섹시한 죄가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폭식이라고 여기는 문명에서 생겨났지 않은가. 당시 제롬의 여성 추종자 중 블래실라제롬의 규정을 따르다가 죽고 말았다.

 

 

나태懶怠

 

나태는 7대 죄악 중 현대의 미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악덕이다. 그런데, 나태를 야기하는 음식을 법으로 금했다는 스타르타 법전이 기원전 7세기에 등장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식사는 공동식당에서 먹도록 했고, 식사의 양도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밖에 주지 않았다. 모든 국민의 공통식 메뉴는 돼지고기 삶은 국물, 피, 식초, 소금 등으로 만든 '시커멓고 묽은 수프'였다. 심지어 배가 불룩해 몰래 뭔가 먹는 것처럼 보이는 시민들은 모두 추방당했다. 웃기는 사실은 이 법전을 만든 리쿠르구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한다. 

 

현대의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생각해보라. 현대의 미국과 스파르타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있다 뿐이지, 이상적인 노동자를 만들기 위해 음식을 이용한다는 원칙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스파르타에서 먹는 것을 즐긴 시민들을 추방했다면, 현대 미국에서는 그들에게 급여를 더 적게 준다(여자들에게 대략 7퍼센트 임금을 적게 주니 말이다). 오늘날의 패스트푸드점과 스파르타의 공동 식당은 둘 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느라 꾸물거리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의도로 생긴(생겼던) 것이다.

 

"인스턴트가 이상적인 노동자를 만든다"

 

스파르타인들이 먹었던 터무니없을 만큼 형편없는 음식이 그랬듯이, 오늘날의 간편 식품들 역시 아주 비위가 상해서 그걸 먹고 있느니 차라리 일하러 가는 게 더 나아 보이게끔 한다. 그로 인해서 간편 식품은 이를 생산하는 회사들에게 상당한 수익성을 안겨주고 있다. 정말 이상적인 수익 구조가 아닌가. 현재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일자리로 서둘러 되돌아가기 위해 더 질이 나쁜 음식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불경不敬

 

로마의 사제들이 거행하는 여러 불경스러운 축제들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사제들은 생선과 야채만 먹도록 제한하고 있는 가톨릭교의 사순절 규율에 맞추려고 음식들을 위장해서 내놓았다고 한다. 즉 잘게 다진 식용 수탉으로 크림색의 수프를, 아몬드로 만든 비늘로 덮어서 꿩고기를 송어로 위장했던 것이다. 

 

이보다 단순한 사례도 있다. 성직자들은 사순절에도 먹을 수 있게 하려고 갓 태어난 토끼를 '물고기'로 분류하기도 했다. 토끼를 우리(키우는 울타리)에 가두어 기르는 방식은 이 일로 인해 비롯되었다. 그런 분류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 뱃속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죽여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남미의 선교사들도 이구아나를 물고기로 분류하는 비슷한 창의력을 선보였다. 이구아나가 강가의 나무에서 일광욕을 할 때가 본래의 모습이라면서 말이다.

 

"미식이 있는 곳에 궤변이 있다" 

 

불교를 창시한 부처육식 금지령"구하지 않으며/응답도 없다"는 조항을 두면서, 신자들이 송아지의 정강이 고기를 보고 그것이 자신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이라는 식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인식을 버린다면 어느 때고 그 고기 요리를 번뇌 없이 즐거이 볼 수 있다는 본질적인 견지를 설파했다. 이 중에서도 진정으로 뛰어난 변호사들은 태국의 승려들이다. 몇몇 승려들이, 자신들이 '물에서 끌어낸' 것이 아닌 만큼 자신들이 물고기를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선을 먹어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말이다.

 

 

"인위적인 낙원은 가짜로 포장된 것이 많다. 먹는 즐거움이 바로 낙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사결정의 함정 - 완벽한 당신도 빠져드는
카이 위르겐 리츠 지음, 두행숙 옮김 / 비즈니스맵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가 잘못하는 것에 대해 내가 상기시키다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틀린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다른 많은 동료들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그가 쌓은 경험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나의 대화 파트너들은 자신들의 의사결정 모형에 대해 너무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그럴싸한 그런 방법들을 다름 아닌 그들의 부모, 학교, 동료, 책,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많은 경로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의사결정이 실패와 성공의 근원이다

 

책의 저자 카이-위르겐 리츠(KAI-JURGEN LIETZ)는 독일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의사결정 코치이다. 독일 주요 기업들의 의사결정과 그 실행에 대해 조언해왔던 그는 여러 해 동안 의사결정 자문을 해왔기 때문에 좋고 나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유들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의 고객들은 무역, IT, 화학, 건강 그리고 광고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경영은 끝없이 계속되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경영진은 기업이 나아갈 바를 정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좌우되기도 한다. 성공한 의사결정은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더 큰 성공을 이루게 하지만, 반대로 실패한 의사결정은 기업을 한 순간에 나락에 빠뜨리고 심할 경우 소멸하게까지 한다.

 

최고경영자CEO최고의 의사결정자가 아니다. 그들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자신이 익혀온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 방식에 내재된 잘못된 점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계속 반복한다. 자신의 의사결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매번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 가운데 15가지 유형을 발견, 이를 의사결정의 함정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함정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히려 일상적으로 일을 하는 가운데 동일한 사람에 의해 반복되는 일정한 의사결정의 오류를 의미한다.

 

 

 

 

솔로몬 대왕의 탐색적 의사결정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솔로몬 대왕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솔로몬의 재판'이다. 우리들은 이를 익히 알고 있다. 기원전 950년경,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받던 솔로몬 대왕에게 특별한 소송 하나가 제기되었다. 그 내용인 즉, 같은 집에 살고 있던 두 여인이 모두 최근에 출산을 했는데, 한 여인이 잠을 자다 실수로 자신의 아이를 눌러 죽이고, 다른 여인의 아이와 바꿔치기 했다는 고소였다. 하지만 고소를 당한 여인은 실제 상황은 정반대라고 항변했다.

 

여기서 솔로몬 대왕은 살아남은 아이를 칼로 정확히 반을 갈라 두 여인에게 공평하게 니눠주라고 판결한다. 이때 고소를 당한 여인이 외친다. "제발 그 아이를 살려서 저 여자에게 주십시요!" 이에 반해 고소를 한 여인은 "그 아이는 저 여자한테 가도 안 되고 저한테 와도 안 됩니다. 그러니 아이를 둘로 갈라주십시요!"라고 말햇다. 그러자, 솔로몬 대왕은 아이를 죽이지 말고 생모인 저 여인에게 주라고 최종 판결한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솔로몬은 여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취미로 우표를 수집하듯이, 그는 자신의 하렘을 채우기 위해 매번 새로운 여성과 결혼했다. 그래서 그는 약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정부가 있는 호화로운 하렘의 장관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아이의 진짜 어머니라면 자기 아이를 죽게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의 어머니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렀을 것이다.

 
탐색적인 의사결정이란 자신이 이전에 확실히 알고 있지 못한 관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한 가지 좋은 수단이다. 특히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그렇다. 의사결정을 내렸을 때 곧 그 여인이 그것을 '옳은' 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왕은 그 대안이 실제로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솔로몬에게 주어진 의사결정 도식은 아래와 같다.

 

 

 

의사결정의 3요소

 

좋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구성요소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의사결정이라고 정의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음의 정의가 보여주듯, 내가 내리는 정의는 어떤 완전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의사결정의 3요소

 

1. 의사결정의 명확성

2. 매력적인 대안

3. 실행에 옮기기 위한 지원

 

"의사결정이란 자기 자신의 수요에 근거해서 여러 대안 가운데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목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 원하거나 원하지 않은 결과, 해결해야 할 문제, 그리고 이용해야 할 기회에서 드러난다. 의사결정은 그저 순수하게 생각의 유희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의사결정자에게는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와 능력이 전제된다

 

 

의사결정의 함정

 

의사결정의 함정이란 의사결정자 자신이 함정으로 인식하지 않는 의사결정의 오류를 말한다. 그들은 이런 오류들을 매번 되풀이한다. 이런 함정들 가운데 특별히 복잡한 것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어떤 함정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것이 위험하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우리가 받은 교육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많은 습관이 스며 있어서 설령 인정받는 의사결정자라고 하더라도 종종 이런 것들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함정의 15가지 유형

 

유리함-불리함의 함정~ '질'이 아닌 '양'으로 결정

공급의 함정~ 주어진 대안만으로 해결

코끼리의 함정~ 엉뚱한 기준이 중요해짐

사실들의 함정~ 오직 사실에만 집착

가장자리의 함정~ 극단적인 평가에 중점

이거냐-저거냐의 함정~ 하나만 해야 돼

무선택의 함정~ 할 거냐, 말 거냐

혼동의 함정~ 의사결정의 목표와 문제를 동일시

몰이사냥의 함정~ 극한 압박 상황이 함정으로 내몬다

수락의 함정~ 허점이 있어도 받아들인다

수수께끼의 함정~ 쓸데없는 비밀유지

달팽이의 함정~ 결정을 끝없이 미룬다

곰의 함정~ 주변에 안 좋은 대안들만 있음

전진의 함정~ 무조건 전진

정보의 함정~ 잘못된 정보로 결정

 

 

장기적인 실효성과  효과

 

실효성옳은 일을 한다는 뜻이며, 효과적이란 말은 일을 올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둘 다 중요하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경험능력이다. 우리들이 좋은 방법론을 사용하면 많은 것들을 더욱 좋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더 든 의사결정자의 경험들이 더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선 신중하게 이를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나중에 잘못이 발견되더라도 배울 점을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10년 동안 직장에서 근무해왔다고 상상해보자. 처음 몇 년 동안 그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만 의사결정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지난 5년 전부터 그에게 더 많은 일을 믿고 맡기면서 상황이 변해 이제 그는 더 큰 일들에 대해서도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허락받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직장 생활을 해오는 동안에 아마도 잘 기록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 다섯 번쯤 될 것이며, 추측건대 한번도 기록한 적이 없고 그래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던 의사결정을 '맹목적'으로 내린 것은 아마 2만 번도 넘을 것이다. 

 

의사결정시 기록해야 할 내용

 

의사결정의 목표

의사결정의 유발인자(문제 및 기회)

자신의 의사결정 기준들(중요도)

대안들

의사결정과 간단한 이유 설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급보다 내 사업 -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책
윤태성 지음 / 해의시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월급쟁이는 지금 다니는 직장을 생각하는 시기보다 더 빨리 그만두기가 쉽다. 2016년부터 우리나라 기업의 정년은 60세가 됐다. 하지만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 월급쟁이는 18퍼센트에 불과하다. 2016년에 조사에 따르면 월급쟁이들은 자신의 정년을 남성은 평균 51.7세, 여성은 49.9세다. 기업의 형태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는데 공기업 54.8세, 중소기업 50.8세, 대기업 48.8세였다. 50세 언저리에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면 정년 연령이 더 올라가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재취업이 어렵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가 되고 있다. 사업은 월급쟁이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월급쟁이보다는 창업을 권하다

 

책의 저자 윤태성은 대학 졸업후 두산기계에서 근무하다가 장래를 고민한 끝에 회사를 사직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대학에서 지능형 제품설계를 주제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도쿄공업대학 조수로 임용되어 일본 문부성 소속 공무원인 문부교관으로 근무했으며 지식관리 연구가 계기가 되어 도쿄대학 조교수로 이직했다. 그러나 창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데이터 가시화 소프트웨어 벤처인 '오픈놀리지'를 창업했다.

 

현재는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식 비즈니스와 서비스 혁신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저서로는 <답을 찾는 생각법>, <고객은 독이다>,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탁월한 혁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융합시대 핵심 키워드: 지식 비즈니스가 뜬다!>, <오픈 놀리지: 지식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막강 데이터력> 등이 있다.

 

그는 경영학 서적에 나오는 어려운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고객 관리가 아니라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창업을 위한 실무교본인 셈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막연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내 사업을 준비하는 7가지 포인트'라는 실제적인 지침을 통해 안내하고 있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사업계획의 바이블이 될 것이다.

 

 

 

 

 

창업가 마인드를 가진 월급쟁이도 있다

 

월급쟁이와 달리 창업가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에 반해 월급쟁이 중에는 꿈만 꾸고 실제로는 평생 내 사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창업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꿈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시도했다는 거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이 바로 창업가.

 

월급쟁이 중에도 마치 창업가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다. 천성적으로 성실한 경우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목적 가운데 하나는 출세다. 보통은 직원이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면 어느 정도 직위까지는 별 탈 없이 승진한다. 또 다른 목적은 내 사업을 하기 위해서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다. 직장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내 사업을 시작하거나, 혹은 직장 자체를 내 사업의 고객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은 월급쟁이라도 창업가 마인드로 일한다.

 

 

내 사업을 5W2H로 나누어 준비한다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고 막연한 문제는 맞닥뜨려도 풀 수가 없다. 이럴 땐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가 너무 크다면 몇 개로 나누어 부분 최적화를 한다. 내 사업에 관한 문제를 작게 나눌 때에는 '5W2H'로 나누면 알기 쉽다. 이언제 When, 어디서 Where, 누가 Who, 무엇을 What, Why, 어떻게How, 얼마에How much를 나타내며, 이들은 필수 항목 3가지와 보조 항목 3가지, 실행의 타이밍 1가지로 구성된다.

 

내 사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5W2H로 나눈 후 하나씩 따져 확인하다보면 어느 틈엔가 내 사업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항목별로 하나하나 체크하는 과정이야말로 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주의할 점도 있다. 5W2H 각각에 대한 부분 최적화를 다 모은다고 해서 반드시 전체 최적화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 사업을 실제로 실행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도 많다. 이런 내용은 사업을 실제로 진행하면서 데이터를 다시 입력하고 새롭게 최적화해야 한다. 전체 최적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내내 끊임없이 진행된다

 

 

나의 스토리에 어울리는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 

내 사업에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사업 아이템과 나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경력과 내 사업을 잇는 스토리가 있으면 왜 이런 사업 아이템이 탄생했는지 고객이 이해하기 쉽다. 왜 이 상품을 개발하려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거꾸로 이해해도 좋다. 관련된 경력과 지식이 전혀 없는 사업 아이템이라면 스토리를 만들기가 어렵다. 스토리를 만들기 어렵다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업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업 아이템은 다루지 말아야 한다. 나만 만들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해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알파고의 경우가 그렇다. 이는 바득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인간과 컴퓨터가 대국을 두는 프로그램이다. 예전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인공지능의 붐이 도래하면서 카이스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엔 인공지능 수업이 한두 과목 정도였지만, 지금은 카이스트 학생의 필수과목이 되었다. 

 

 

100만 원짜리 갈비탕에도 전략이 숨어 있다

 

내 사업을 생각할 때에는 상품의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때에 약간의 가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10배나 100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플러스 차별화나 마이너스 차별화가 아니라 슈퍼 차별화를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갈비탕은 어느 식당에서나 한 그릇에 1만 원 정도 한다. 어떤 식당에서는 가격을 낮추어 고객을 늘리기 위해 갈비 양을 약간 줄이고 9,000원에 판매한다. 혹은 갈비 양을 약간 늘리고 11,000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경쟁자보다 10퍼센트 가감된 가격이다. 이 정도 차이라면 고객은 뭐가 다른지 차별화 요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격이 약간 비싸다거나 약간 싸다는 느낌을 받는 정도다.


하지만 한 그릇에 10만 원하는 갈비탕이라면 어떨까? 놀라서 메뉴를 다시 한 번 쳐다볼 거다. 만약 100만 원하는 갈비탕이라면 고객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메뉴에 숫자를 잘못 적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그릇에 100만 원하는 갈비탕이 있을까? 이 가격의 핵심 가치는 갈비탕이 아니라 갈비탕을 담는 그릇에 있다. 갈비탕을 다 먹고 나면 그릇을 포장해서 가져가라고 준다. 갈비탕은 사실은 공짜다. 만약 최첨단 신소재로 만든 그릇이라면 혹은 비싼 골동품이라면 100만 원이라는 가격에 수긍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10만 원 하는 커피도 만들 수 있다. 커피는 공짜이고 커피 잔을 10만 원에 파는 식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실무

 

명함을 준비한다

사무실과 비품을 마련한다(합리적인 수준)

지식을 축적한다

외모와 복장을 관리한다

 

 

내 사업을 준비하는 7가지 포인트

 

누구나 한번은 내 사업을 꿈꾼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도서일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사업이나 해볼까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창업 준비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정교사인 셈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아니고, 길다고 보면 천 년도 더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일생이다. 하지만 짧은지 긴지는 꼭 흐른 세월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일들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또는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내 생애를 말하자면, 옛날 고향에 있을 때는 쟁기와 소쿠리를 짊어졌고, 장마에는 나비가 밀을 먹어버릴까 걱정했으며, 가뭄에는 묘판에 물이 부족한 것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한탄하여, 겁 없게도 국가의 우환을 자신의 우환이라고 여겨 줄곧 살아왔던 초가집을 떠나 서쪽의 수도 [교토]로 갔다. - '머리말' 중에서

 

 

일본 근대화의 공로자

 

책의 저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막부 말기였던 1840년,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논어>, <대학> 등의 고전을 익혔다.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신하였으나, 막부가 무너지면서 메이지 신정부의 관리가 되어 근대 일본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요시노부의 신하였던 1867년, 27살의 나이에 파리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며 유럽 자본주의를 체험했다.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귀국 후 메이지 신정부에서 대장성 조세사정, 개정국 국장을 역임하며 일본의 조세, 화폐, 은행, 회계 등을 개혁했다. 1873년 '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선다'는 신념으로 관직을 내려놓고 철도회사, 가스회사, 전등회사, 방직회사 등 500여 개의 기업을 세웠다. 그중 다수는 지금도 일본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도쿄양육원, 일본 적십자사 등 600여 개의 자선기관을 세우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미국, 중국, 인도 등에서 민간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도덕 경영'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고 실천했다. 이는 그의 저서 <논어와 주판>에도 잘 녹아있다. 1926년, 1927년에는 연속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가 지금도 세계 각국 CEO들의 모델로 꼽히고 있는 이유는 그가 성공한 경영인이기도 했지만, 경영 철학을 만들고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부사와가 현재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기업 설립, 운영에 관한 업적도 업적이지만, '도덕 경영'이라고 하는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 때문일 것이다. 특히 <논어>를 경영인의 필독서로 생각한 그는 부를 이루는 근원은 인의 도덕이며, 올바른 도리에 따라 쌓은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영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도덕, 경제 합일설은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 '역주자의 말' 중에서

 

 

 

 

엄한 아버지 밑에 될 성 싶은 인물이 나온다

 

인물을 이해하려면 인물의 가계家系를 살펴봐야 한다. 시부사와의 아버지는 어머니 집안의 데릴사위였는데,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고지식하게 일했던 분이다. 그런 와중에 시詩나 하이카이俳諧(이후 하이쿠로 발전함)를 짓기도 하는 풍류風流 기질도 있었다. 자신에겐 무척 엄햇지만, 남에게는 관대해서 도와주는 일에 정성을 다했으며, 평소 근검勤儉을 실천하며 오직 가업家業을 위해 노력하는 견실한 사람이었다.

 

6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시부사와는 이후 14~15세까지 독서, 검술, 습자 등을 배웠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품성 수양이었을 뿐,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농업과 장사에 신경 써야 하므로 가업에 종사할 것"을 지시했다. 주야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집안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1854년, 즉 그의 나이 15살 때 에도에 나가서 책 상자와 벼루 상자를 사온 적이 있었다. 문구점에서 오동나무가 2개 붙어 있는 책 상자와 오동나무 벼루 상자였는데, 나중에 집에 도착한 이 물건들을 본 그의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었다. 이런 식으로 살면 집안을 무사하게 보전할 수 없으므로 불효자식을 두었다고 탄식했다. 

 

사치에 물든다는 것은 원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차이가 없는 것이다. 미세한 부분이라도 그 분수에 따라 처음 시작될 때 잘 자제하지 않으면, 마침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예로부터 얼마든지 그 예가 있다. 지금 이렇게 화려한 벼루 상자와 책 상자를 살 정도라면 다음엔 집도 서재도 맘에 안 든다며, 만사에 사치해서 결국 집안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사전에 엄히게 교육을 했던 것이다.

 

 

 

막부의 신하가 되다

 

알에서 부화한 누에는 네 차례 잠을 자고 먹기를 반복한 끝에, 고치가 된 후 이어서 성체가 된다. 나중엔 결국 알로 돌아간다. 주인공 시부사와도 농민으로 태어나 경작을 주로 하는 신분이었다. 당시는 막부가 모든 것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폭정暴政 수준이었다. 비록 농민이었지만, 이런 상태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속될 경우 망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당시의 도쿠가와 정치는 문벌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능력이나 지식이 뛰어나도 신분의 상승은 더 이상 오를 수 없었다. 이에 시부사와는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 막부를 전복시키는 일에 가담한다.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려면 역도逆道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히토츠바시가家에 출사出仕했다. 위태로운 시세에 처해 있으면서 자신의 본분이 아니라고 정치에 입을 열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정말로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분골쇄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더 넓은 세계 유럽으로 견문을 떠나다

1867년, 프랑스 박람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료에 따르면 이 박람회는 1855년, 1867년, 1878년, 1889년, 1900년, 1925년, 1931년, 1937년 등 총 8회 열렸다. 이 박람회엔 여러 나라의 제왕들이 참석하므로 일본도 다이쿤大君의 친척을 파견하면 좋겠다고 프랑스 공사가 제안해 왔다. 몇 차례 상의 끝에 민부공자 도쿠가와 아키타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7명의 수행원을 붙이기로 하자, 시부사와는 호기로 판단하고 파견을 부탁했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 가서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대박람회에 참가하러 왔다는 취지의 국서를 봉정하고 답서를 받아 공식적인 의식을 마쳤다. 시부사와는 공자 신변의 일을 살피거나 혹은 일본에 공적인 문서를 발송할 때에 그것을 집필하거나 했다. 또는 야마다카를 비롯하여 공자 직속의 사람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거나 공자를 위해 잡화를 매입하거나 하는 일도 했다. 마치 서기와 회계를 겸한 거 같은 직책이었지만 평소에는 매우 한가했기 때문에 그사이에 프랑스어를 공부할 생각을 했다.

 

박람회 공식 행사가 끝난 후에는 공자의 유럽 각국 순회 계획이 사전에 짜여 있었다. 먼저 스위스, 네델란드, 벨기에를 둘러보고, 이어서 이탈리아, 영국, 그리고 상황을 봐서 독일, 러시아도 둘러볼 계획이었다. 8월 초순부터 스위스 순방을 시작해 여러 나라를 거쳐서 11월 초 영국을 방문하고 그달 하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11월 말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학 교사를 고용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이국 땅에서 일본의 정볍政變 소식을 접했다 

 

 

메이지 新정부의 관리로

 

막부 정치의 종말은 시부사와에겐 커다란 행운의 기회였다. 이런 정변은 외국과의 교제가 더욱 중요해질 게 분명했다. 즉 외국에 관한 학문은 점점 필수적인 상황으로 변할 것이다. 속히 귀국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는 유학을 위해 각종 경비의 절감을 통해 장기 유학을 꿈꾸었지만, 수행하는 공자가 미토가家를 상속받아야 하는 일이 생기자 할 수 없이 귀국해야 할 상황이었다. 

 

모든 게 '그림의 떡'이 된 상황이 되자 그는 메이지 원년(1868년) 12월 3일, 일본으로 귀국했다. 메이지 2년 12월 초순 도쿄에 도착하여 태정관에 나가보니 생각지도 않게 대장성 조세사정租稅司正이라는 직에 임명되었다. 곧바로 대장성에 출두하여 배명의 건을 보고했다. 당시 대장성에는 한 사람의 지인도 없고 또 직무에 대해서도 실제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대체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사직을 결심하고 대장성의 오쿠마 대보大輔와 면담했다. 여기서 유신정부는 시부사와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감동을 받고 관리로 일할 결심을 굳혔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실업가를 꿈꾸다

 

시부사와는 오사카 조폐국에 용무가 있어 오쿠마, 이토 등과 동행하여 오사카까지 여행한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곰곰이 일본 장래의 경제를 생각해 보니, 결국 정부에서 아무리 마음을 쓰고 힘을 다해 화폐법을 정하고 조세율을 개정하고 회사법 또는 합본 조직을 마련하고 식산흥업의 도움을 준다 해도 지금의 상인으로는 도저히 일본의 상공업을 개량하거나 진보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상업에 투신하여 미치지 못하더라도 솔선하여, 부진한 상업을 작흥시키고 일본 장래의 상업에 일대 진보를 이루려는 뜻을 세웠다.

 

 

 

 

진정한 부의 창출은 도덕 경영에서 시작된다

 

일본의 근대화와 자본주의에 앞장섰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유럽의 주식회사 제도를 도입해 철도회사, 가스회사, 전등회사, 방직회사 등을 설립했다. 그가 세운 '삿포로맥주', '임페리얼호텔', '도쿄전철' 등은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으로 존재한다. 많은 후대인들로부터 찬사 받는 이유는 그가 이룬 경제적인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일본에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들어오기도 전, 즉 상업이 무시 받던 시기에 경제의 중요성을 통찰했으며, 동시에 경제 부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도덕'을 꼽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즈음의 경영자들이 종종 '모럴 헤자드'에 빠져 세인들로부터 비난의 손짓을 받는다. 그래서 시부사와의 도덕 경영이 더욱 깊게 와 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