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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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계속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며칠이 지나자 그이는 글을 쓰라면서 이 작은 노트를 주었다. 검은색 가죽 표지에 두껍고 하얀 백지가 묶인 노트. 나는 첫 번째 페이지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연필을 뾰족하게 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왜 그녀는 침묵했을까?

 

작가 알렉스 마이클리디스는 사이프러스에서 그리스계 사이프러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시나리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가 그의 첫 발표작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언론에서 극찬한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이 소설의 모티브는 에우리피데스의 유명한 그리스 비극 <알케스티스>에서 차용했다. 즉, 사랑하는 연인을 대신해서 죽은 여인 알케스티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신화에 따르면 남편인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기꺼이 목숨을 내준 알케스티스는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지옥에서 현세로 되돌아오지만 살아난 이후로 침묵을 고수한다.

 

"하지만 그녀는 왜 말하지 않는가?"

-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일반적으로 미스테리나 스릴러 소설의 경우, 일정한 프레임을 지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잔잔한 일상의 흐름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사건이나 일이 발생되는 도입부가 있고, 이어서 이 사건이나 일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전개과정을 거친다. 중간중간에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성장 배경들을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스토리 이해를 돕고 나아가 향후 전개 과정을 미리 엿보게 만든다. 그리고 반드시 포함되는 게 있으니 바로 '반전'이다. 스토리의 클라이막스이자 독자의 집중을 최대한 끌어들인다. 이 소설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베린슨 부부는 결혼 7년 차의 예술가 부부로 큰 저택에 살고 있다. 남편 기브리엘 베린슨은 사진가로, 아내 앨리샤 베린슨은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앨리샤는 현재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나아가 남편 가브리엘은 그녀 세상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슬럼프에 빠져 어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이는 심리적인 병으로 전형적인 우울증세로 보인다.

 

이에 남편 가브리엘은 아내 앨리샤의 기분 전환을 위해 예쁜 선물을 건넨다. 검은색 가죽 표지에 히얀 백지가 묶인 그런 노트였다. 남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앨리샤는 하루의 일상을 낱낱이 노트에 기록하면서 스스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남편이 일하러 나간 후 넓은 저택에 홀로 외롭게 남겨진 그녀의 일상은 그리 거창할 것도 사실상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외에는 고작 집 밖에 비치는 광경을 바라보거나 이웃 사람들과의 수다 정도다.

 

평범한 일상의 흐름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앨리샤가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을 총기 발사로 살해한 것이다. 더구나 늦게 귀가한 남편 가브리엘의 얼굴에 다섯 발이나 쏘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이지만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브리엘은 손발목이 철사줄로 묶인 채 총에 맞아 절명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죽음 때문에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탓인지 이후 그녀는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문을 닫아 버린다. 침묵에 빠진 그녀는 과거 정신질환을 앓은 사실이 있었다는 이유로 북런던에 위치한 정신질환 범죄자 감호 병원 '그로브'에 수감된다. 가브리엘의 살해 사건은 그 진실이 외면된 채 앨리샤가 진범임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그대로 묻히고 말 것인가?

 

그녀는 병원의 일인용 병실에 누워 있었다. 경찰이 그녀의 변호사가 동석한 가운데 심문을 했다. 앨리샤는 심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백한 입술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입을 씰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브리엘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았을 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체포당하는 순간에도 입을 다문 채 죄가 없다고 부인하지도, 그렇다고 자백하지도 않았다.앨리샤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 20쪽 중에서

 

이후 앨리샤의 사건에 관심을 가진 한 범죄 심리상담가가 등장한다. 테오 파버라는 인물이다. 그는 앨리샤의 이야기를 접한 후 그녀의 심리 치료를 담당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지금껏 어느 누구도 엘리샤의 닫힌 말문을 열지 못했는데, 과연 이 상담가는 침묵의 환자 앨리샤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앨리샤는 입을 연다

 

한편, 소설의 전개는 화자話者 두 명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 한 명은 주인공인 침묵의 환자 앨리샤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심리상담가 테오 파버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수감자와 심리치료를 맡은 상담가의 입장은 정반대이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이어지면서 둘 사이엔 공교롭게도 곤통점이 숨어 있다. 즉 한 사람은 젊은 시절 마리화나를 흡연했던 후유증을, 다른 한 사람은 정신병을 앓고 약물을 복용한 경험을 가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스토리의 전개가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사건의 결말이나 사건의 진범 등을 캐치할 수 있는 내용을 살짝 드러내 놓는다. 예를 들면, 심리상담을 진행하던 테오 파버가 엘리샤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 테오 파버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추적한 끝에 그 현장을 목격하는 장면, 혐의를 입증할 앨리샤의 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앨리샤에 두려움을 느끼는 테오

 

테오, 아내의 불륜현장을 목격하다

 

앨리샤의 일기 

 

 

압도적인 데뷔작이다


그리스의 비극 <알케스티스>의 내용에 의하면,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지옥에서 다시 현세로 귀환된 아드메토스의 아내 알케스티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궁금해하는 아드메토스에게 헤라클레스는 마음을 달래는 제사를 올려야 하며 세 번째 햇빛이 다가와야 말을 할 수 있다고 답한다. 아마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서 다소 회복 시간이 필요함을 언급하는 듯하다. 이에 힌트를 얻는 작가는 앨리샤가 남편으로부터 배신당한 마음 때문에 입을 닫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작가는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일했던 경험과 나중에 직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경력 등을 되살려 압도적인 데뷔작을 창작했다. 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정신과 의사인 누나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2년간 근무한 적도 있었기에 정신질환자들과 의료진에 관한 상황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곧 여름이다. 휴가 때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위도 잊을 수 있을 듯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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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기출문제집 중급편 기출문제집 + 기출해설집 세트 - 전2권 - 3, 4급 시험 대비, 핵심 키워드 연표 제공
설민석 지음 / 단꿈드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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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먼저 개인적인 얘기부터 해보려한다. 나의 딸은 현재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평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나는 역사도서라면 가리지 않고 역사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역사만화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집엔 역사와 관련된 도서들이 정말 많은 편이었다. 특히, 내가 자주 읽는 사기, 십팔사략, 초한지, 삼국지의 경우엔 만화 전집이 있어서 두 딸들도 이를 자주 읽었고 때론 나에게 읽어 달라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국민이라면 한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느 날, 딸이 나에게 시간날 때 한국사 능력시험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그러겠다고 답해 놓고서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거의 일년은 지난 듯하다. 요즈음 나는 회사 경영에서 은퇴를 하고 고문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나는 편이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학교 친구나 지인들과의 모임에 빠지지 않는 게 술인데, 딸은 이를 경계하면서 나에게 권한 게 바로 한국사 다시 공부하기였다.

 

한국사 강의와 관련해 몇 권의 책들이 시중에 발간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딸에게 추천받은 게 설민석 쌤이 진행하는 이 책이었다. 이 책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매스컴을 통해 우리들에게 얼굴을 알린 역사전문가 설민석 쌤이 대표로 재직 중인 단꿈교육에서 출간되었다. 기출제된 문제들을 설민석 쌤이 해설하고 있는데, 크게 3개 파트로 구성되어 테마 36개로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제34회에서부터 제37회까지 이미 출제된 문제를 실제로 풀어보며, 이어서 이에 대한 꼼꼼한 해설이 뒤따른다.

 

 

이렇게 기출 문제집기출 해설집 2권이 세트인데, 이 책은 인터넷 강의를 통해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강의는 설민석 쌤이 대표로 재직 중인 (주)단꿈교육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소정의 수강료를 결제한 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어디에서든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에 언제든지 수강할 수 있다.

 

그런데, 당초 이 책을 배송받을 때만 하더라도 수강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지방에서 진행하고 있는 회사일에 다소 문제가 생겨 이를 해결하는 일에 투입되다 보니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공부를 토대로 이 체험기를 쓰려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앞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체험기를 올려봐야겠다.

 

   

 

이 책으로 공부하면 마치 수업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문제 풀이를 한다. 특히, 설민석 쌤이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포인트를 콕 짚어주기 때문에 효울적인 시험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 정리 코너를 별도로 배치하여 수험생들이 헷갈려하고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개념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홀로 공부하는 수험생에 딱 맞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다 보면 단꿈에서는 이렇게 강조한다.

 

 

 

 

 

자, 이제 인터넷으로 수강하면서 체험했던 부분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비록 전체 강의를 모두 수강하지 못했지만 수강했던 내용들 중심으로 이 글을 쓴다. 지구상의 역사에서 단일 왕조로서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는 신라 왕조 뿐이다. 혹자는 로마제국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설 쌤은 로마의 경우 공화정으로의 변신이 있었기에 단일 왕조로 보기엔 미흡하다는 해설이었다.

 

아무튼 신라의 역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따르면 상대上代, 중대中代, 하대下代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험 출제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번성기인 중대 시기에 재위한 신문왕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왕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로 왕권 강화에 힘썼다고 한다. 특히, 패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흡수하기 위해 설화까지 활용해서 마치 하늘이 통일신라를 돌봐주는 것처럼 했다는 설명이다. 바로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였다.

 

이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설화인데,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다. 죽어서 바다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이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 흩어져 있던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호국 사상과 모든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성골의 대가 끊기고 이후 진골 출신의 김춘추 계열이 왕위를 계승했던 중대 시기엔 정치적으로 다소 불안정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설화가지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신문왕은 삼국시대의 영토를 그대로 본받아 과거의 신라, 고구려, 백제 영토에 각각 3개 주를 편성함으로써 평등하게 예산을 배정했고 군의 주둔도 1개주에 1개(발해와 맞닿은 주엔 2개)를 배치했다. 아래는 강의시의 장면들이다.

 

왕권과 신권의 관계 추이

 

만파식적 설화

 

        신문왕의 포용정책

 

 

이어서 하대 시기엔 진성여왕과 해상왕 장보고에 관련된 내용들이 출제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신라의 여왕 세 명 중 가장 정치를 엉망으로 한 인물이라는 해설이었고, 공권력이 지방 곳곳에 미치지 못하자 지방 호족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고려 창업의 주역들이 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고 이때 나라의 재건을 위해 당나라에서 벼술을 하던 천재 최치원(육두품)이 귀국하여 왕에게 시무십일조라는 개혁안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함으로써 육두품 세력 또한 고려 창업의 주역으로 돌아서고 말았고, 흉년이 들어 수탈에 반기를 든 원종과 애노의 농민 반란 등 정치적 상황을 강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보고는 국가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강성했다고 한다. 보고를 짱 잘하는 사람으로 암기하란다,ㅎㅎ 

 

 

신문왕과 진성여왕의 출제 빈도가 높음

 

 

누구나 능력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

 

 

 

 

책은 충분한 도식과 도표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출제 빈도를 빅데이터로 제시함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효율적으로 공부에 임할 수 있으므로 능력시험에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비록 이번 5월에 시행된 시험엔 도전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충실하게 준비하여 다음번 회차에 도전하려 한다. 설민석 쌤이 핵심을 콕 짚어주기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능검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프리패스  https://pass.dankkum.com/Event/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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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유토피아 십승지를 걷다
남민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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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술서적이 아닌 역사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힐링 명소를 찾아가는 '역사기행서'이자 '감성여행서'다. 선각자들의 지식을 빌려 미흡한 공부를 하고 현장을 찾아가 향토사학자와 마을 원로들에게 탐문하면서 스토리를 완성해나갔다. 그 때문에 이 책의 역사 속 이야기는 정사와 야사, 구전, 그리고 실제로 살아온 사람들의 사례가 공존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엔 십승지라는 유토피아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남민은 오랜 여행을 통해 여행의 개념을 새로 쓰고 있다. 여행이란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꿔 가는 고품격 문화생활이자 평생교육임을 강조한다. 마을마다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통해 우리가 즐기며 배울 점을 찾는 인문학 여행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매년 이탈리아에서 서양미술사와 르네상스 문화예술, 유럽사를 공부하며 우리나라 문화관광자원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석사학위, 이탈리아 로마 A.M.I 아카데미아 르네상스 미술사 과정 디플로마, 피렌체 트릴로음악학교 예술경영 마스터클래스 디플로마를 각각 취득했던 그는 현재 국내 주요 기업, 공무원, 대학, 도서관, 기관 등에서 여행 인문학 강연과 리더십 강연 및 리더십 트립을 인기리에 진행하고 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여러 차례 인문여행 해설을 했으며, 유력 포털사이트에 여행 인문학 글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근현대사를 따라 떠난 여행>, <내 인생에 잊지 못할 대한민국 감성여행지> 등이 있다.

 

예언서로 불리는 <정감록>에는 총 열 곳의 십승지가 나온다. 조선 최고의 술사가 소백산을 지나는 길에 말에서 내려 배알했다고 하는 영주 풍기,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일가족이 은둔한 땅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지 않고 숨어 살았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봉화 춘양, 숨어 살면 어떠한 변고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은 속리산, 백두대간과 지리산 바래봉이 에워싸고 있어 외침으로부터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남원 운봉, 6·25 전쟁 때 마을을 둘러싼 높은 산들이 총알받이 역할을 해주어 주민들을 무사히 지켜낸 예천 금당실이 그곳이다.

 

또한 공주 유구, 마곡은 일제강점기 때 평안도 주민들이 베틀을 싣고 들어와 정착한 곳이며, 영월 연하리, 미사리, 노루목은 주민들이 6·25 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퇴각하는 인민군이 살아남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무주 무풍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변을 담보하기 위한 99칸의 행궁이 지어졌으며, 여기에 깊은 계곡이 '사람을 살리는 땅'이자 허균이 <홍길동전>의 소재가 된 부안 변산, 몸을 영구 보전할 수 있는 최상의 피신처로 알려진 합천 가야도 있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정권의 안정화를 도모하고자 잔인한 폭압정치를 펼쳤다. 그의 독재정치는 백성들에게 사지를 짖어 죽이거나 삼족을 멸하는 등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공포정치였다. 어쩌면 현 북한의 김씨 왕조도 이를 본받아서인지 매우 닮아있다. 기록상으로는 진나라 2천만 명 백성 중 100만 명 넘게 죽어나갔다고 한다. 이에 살고 싶은 백성들은 살 곳을 찾아 은둔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세월이 흘러 기원후 4세기 동진東晉 시절, 중국 후난성의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그가 가던 계곡의 양편엔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고 큰산과 수원지, 그리고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어부는 배를 묶어놓고 비좁은 동굴 소로를 기어들어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의 눈 앞엔 별천지가 펼쳐졌다. 동굴 안엔 넓은 평지의 논밭과 예쁜 꽃, 그리고 새소리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의 방문이 신기해서 어부에게로 몰려들었다. 어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면서 어부의 사연을 듣더니 자신들의 조상은 진나라 때 전쟁을 피해 이 산속에 숨어들어와 이곳에서만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도화원기桃花源記>에 실린 내용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폭정에 시달린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은둔의 땅을 찾아 떠났다. 이들은 이런 곳을 '이상향理想鄕'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에선 아틀란티스, 아발론 섬, 엘도라도가 있으며, 중국에선 무릉도원, 샹그리라, 삼신산 등이 그러하다. 또 종교에서도 낙원은 빠지지 않고 얘기한다. 불교의 서방정토(극락세계)와 기독교의 에덴동산이 바로 그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세상'이란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면 동양에 위치한 한국 땅에는 이런 이상향이 있었을까? 이상향의 의미를 죽임을 당하는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 생존을 위한 장소로 규정한다면, "있다"라고 답할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십승지十勝地'다. 이는 정감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곳'이다. 서양이나 중국의 이상향과는 달리 한국의 십승지는 그 실체가 확실하다. 정감록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미래의 국운을 예언한 도참서이자 살아남기 위해 '십승지'라고 하는 피신처에 찾아가는 비법을 제시한 비결서다.

 

정감록은 지은이가 불분명하고 언제 쓰여졌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수많은 이들의 손에 의해 필사로 전해져 왔기에 그 종류가 무려 육칠십종에 이른다고 한다. 아무튼 이씨 조선왕조가 국운을 다한 후 800년을 이어갈 정씨 왕조가 계룡산에서 등장하고, 이어 조씨의 1천 년이 가야산에서, 다시 범씨의 600년이 전주에서 이어진다고 했으니 정감록은 감히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이른바 '금단禁斷의 서書'였다. 그 누구도 천기누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경북 봉화 춘양春陽

 

정감록의 지명은 옛 지명이라 혼란스럽지만, 현재 주소지로 말하면 알기 쉽다. ㅇ이곳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일대이다. 태백산 남쪽 거대한 산들 속에 둘러싸인 분지에 여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옛날에는 산으로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마을이었다. 계곡의 물줄기인 운곡천 협곡 외엔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다. 정감록엔 이곳을 2천 년 전의 작은 부족국 소라국召羅國의 옛터라고 표기하고 있다. 

 

춘양 도심촌은 풍산 류씨에겐 생명을 보존할 최후의 이상향이었다. 임진왜란 때 집단 이주했으며, 이후에도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이곳의 향수를 찾아들었다. 선조가 왕궁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란을 계획하자 당시 좌의정이던 류성룡은 3살 위 형의 해직을 왕에게 간절하게 읍소했다. 형이 팔순 노모를 전란 속에서 보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모두 북으로 피신하는데, 류성룡의 형은 반대로 왜군과 마주칠지도 모를 남쪽으로 향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고향은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다. 그는 노모와 풍산 류씨 일족 100여 명을 인솔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땅' 춘양 도심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땅이 십승지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했던 것이다. 실제로 도심촌의 류씨 일족은 단 한 명도 다친 이가 없었다고 한다.

 

명의 지원군이 한양에 입성하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크게 왜를 물리침으로서 종전이 거의 확실시되자 선조와 북인세력들은 노골적으로 서애 류성룡을 제거하여 했다. 이에 서애는 스스로 사직을 청하고 결국 파직되고 만다. 공교롭게도 절친 사이인 이순신 장군이 이날 새벽 전사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사망엔 3가지 설이 뒤따른다. 첫째는 전사戰死, 둘째는 자살, 셋째는 은둔이다. 여기서 은둔설의 장소가 바로 춘양 도심촌이다. 

 

이순신의 장렬한 전사가 역사의 정설이지만 자살이나 은둔을 했다고 해도 이 또한 그의 우국충정을 시기하고 국난 앞에서 당쟁과 입신양명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실권자들의 희생양일 뿐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이순신 장군보다 3살 위이지만 어릴 때부터 서울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에서 자라면서 평생 동지로 살아왔다. 문관이던 서애는 무관인 이순신의 뒤를 항상 돌봐주었다. 춘양 도심리는 십승지라는 이유로 류성룡과 형 운용, 모친, 그리고 100여 명의 일족이 전란에 피신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에 이순신 장군마저 은둔해 살았다는 설까지 품고 있는 마을이니 보통 마을은 아니다.

 

 

전남 남원 운봉

 

운봉은 지리산 북서쪽의 바래봉 기슭에 위치, 남원시에서는 가까운 동쪽에 있다. 해발 200미터 대의 남원시와 비교하면 운봉은 고원지대에 속한다. 남원은 섬진강 수계를 가졌고, 운봉은 낙동강 수계를 가졌다. 역사상 남원은 백제 땅이요, 운봉은 신라 땅이기에 지금도 경상도 방언이 남아 있다. 그 경계선이 여원치다.

 

난세엔 전국 각처에서 민초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정착했다. 동쪽엔 팔랑치가 있고, 서쪽엔 여원치가 있고, 북쪽엔 덕유산 자락이 막았으며, 남쪽은 지리산 바래봉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서 사면이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는 형세다. 경상도 방향에선 팔랑치, 전라도 방향에선 여원치를 넘어야 비로소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두 고개만 방어하면 안전한 십승지가 되는 것이다.

 

남원 지방의 설화를 고증한 결과, 놀부와 흥부는 실존 인물임이 밝혀졌다. 놀부인 형은 박첨지, 동생 흥부는 춘보가 실존 인물이다. <흥부가>의 '제비 노정기'와 '박타령' 속에 나오는 지명을 고증해서 밝혀진 곳은 운봉고원 한 켠에 있는 인월면 성산리가 놀부와 흥부의 출생지였고, 훗날 흥부가 전국을 유랑하다 돌아와 정착해 복받은 곳은 이웃 아영면 성리였다고 한다. 이 두 마을은 아직도 놀부와 흥부를 위한 제를 올리고 있다. 삼월 삼짇날 박첨지 제사를 지내고 정월 보름에는 춘보망제를 지낸다.

 

이 성리에는 수십 년 전까지도 사금을 채취하러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다면 흥부도 실제로 이 사금을 캐서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리 근처는 정감록에서 십승지로 꼽아 임진왜란 때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살았다고 한다. 남원 운봉은 이러한 판소리 소재 발원지인 동시에 동편제를 탄생시킨 고장이기도 한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듯하다. 

 

 

 

전북 부안 변산

 

십승지 중 유일하게 서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왜구의 잦은 노략질로 인해 해안 지역은 마땅한 피신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부안 변산은 당당하게 십승지에 이름을 올렸다. 왜냐하면, 변산의 바다와 들판, 그리고 깊은 계곡이 '사람을 살리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 알려진 허균이 관직에서 파직된 후, 변산 우반동 정사암靜思庵에 들어와 <홍길동전>의 이상국가 모티브를 발견했고, 반계 유형원도 변산의 우반동에 들어와 <반계수록>을 집필했다. 


우반동은 원래 유형원의 선조인 유관에게 세종이 내린 사패지賜牌地가 있었으며, 유형원의 할아버지 유성민이 벼슬(형조정랑)을 마친 후 내려와 별장을 짓고 살던 곳이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면 도연명이 항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보는 듯하다. 은둔의 땅은 그렇게 이들을 보듬어 안았다.

 

우반동에 정착한 유형원은 북서쪽 산 중턱에 반계서당을 짓고 독서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때 읽은 책이 무려 1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정치는 물론 전국을 여행하며 익힌 경제와 지리, 병법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이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유형원은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고요한 후에야 안정을 얻을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도다"라고 하며 자신의 생활에 만족했다고 한다.

 

 

 

영월 연하리, 미사리, 노루목

 

십승지 마을 중 영월은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태소백의 기운을 받아 사람을 살리는 마을로 유명세를 떨쳣다. 얼마나 운둔의 땅이기에 주민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살았을까? 당연히 피난길을 떠난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퇴각하던 인민군과 빨치산이 살아남기 위해 이곳을 찾아들어왔다니 웃지 못할 사연 아닌가 말이다.

 

16세기 초반, 정치적으로 급진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는 위훈삭제라는 훈구파의 척결을 부르짖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당시 중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림파들은 유교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조초위왕'이라는 사건에 휘말려 중종조차 이들의 개혁을 의심하면서 결국 1519년(중종 14년)에 조광조를 비롯한 70여 명의 신진사림파들이 숙청되고 사약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기묘사화己卯士禍다. 젊은 나이에 사림의 영수가 된 조광조는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39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조광조의 후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양을 떠나 숨어든 곳이 바로 영월 미사리未死里다. 삶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했던지 이곳을 '죽지 않는 마을', 즉 미사리라 불렀다. 오늘날 김삿갓면 와석2리다. 한양 조씨가 이곳에 한때 40가구가 살 정도로 몰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한 곳을 조촌趙村이라고 불렀다.

 

 

 

십승지, 선조들의 풍수 결과물이다

 

십승지로 거론되는 곳들은 한결같이 주위에 높은 산으로 둘러처져 있다. 한국 풍수론의 대가 최창조 전 서율대 교수는 "풍수란 이 땅에서 살아온 선조들의 딸에 관한 지혜의 집적"이라고 설명했다. 즉 풍수는 종교와 같은 신앙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축적해놓은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의 이상향이므로 십승지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올 여름 국내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이 책과 함께 십승지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컬쳐300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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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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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비싼 인테리어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는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주체적 공간의 의미를 찾아서

 

이 책의 저자 김정운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화가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귀국한 후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중앙선데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에디톨로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책은 '슈필라움'이라는 독일어 단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로는 이에 합당한 한국어 번역이 없는데, 굳이 하자면 '여유 공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슈필라움'은 '슈필(놀이)''라움(공간)'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의미한다. 즉 물리적 공간은 물론이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그런 말인 것이다.

 

저자는 한때 문화심리학자로 유명세를 떨치며 공중 매체에도 자주 출연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뭔가의 깨달음을 얻고선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일본으로 그림 공부한다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귀국해서는 화가로서의 인생을 펼치고자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 여수에서 간섭받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왜 그는 여수에서의 생활을 선택했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 해답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에는 24가지의 키워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결국 모두 '슈필라움'으로 통한다. 세상의 모든 길이 세계 최강 로마제국으로 통한 것처럼 말이다. 즉 '슈필라움'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서 어떤 삶을 새롭게 꿈꿀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책의 내용은 지난 몇년 간 조선일보에 '김정운의 여수만만 麗水漫漫'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나는 딸 둘을 가진 가장으로서 사십대 초반에서 오십대 후반까지 절정의 직장 생활을 보냈다. 일이 좋아서 회사와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소위 '주인의식'이 충만한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결혼까지도 늦은 만혼이었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노처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생활 덕분(?)에 행운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사전에는 오직 '회사' 뿐이었다. 그래서 늦게 결혼한 아내조차도 나에게 회사 어딘가에 '꿀단지'를 숨겨 놓았는지 연신 궁금해했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록 주체성은 완벽한 게 아니었을지라도 회사엔 나만의 집무공간인 임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곳에서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만들면서 직원들을 독려하는 지휘소로 활용했었다. 심지어 나는 이 방을 간단한 숙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놓고 있었다. 접이식 간이침대와 세면도구, 커피포트, 사발면 두세 박스, 심지어 양말과 내의 그리고 여벌의 정장과 와이셔츠 등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나만의 독립공간은 심리적으로 나에게 편안함과 여유를 제공했고 반대 급부로 나의 비싼 노동을 착취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아내와 관련된 얘기를 해보겠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아내만의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른바 작은 법당이다. 아내가 직접 마련한 곳으로 여기서 새벽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기 전 예불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신앙 생활을 했던 터라 이런 삶이 아내에겐 매우 익숙한 의식이다. 그리고 나 또한 향 냄새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내의 경전 읽는 소리를 따라 흥얼댄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방이 있어서 사생활이 보호되었기에 이를 매우 만족해했다. 가끔 아내는 같은 여성인지라 아이들 방에 침입해서 야단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임주의식 교육법을 채택하고 있던 나는 이런 문제로 아내와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만수산 더렁칡을 읊어대면 아내는 한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다. 위의 세 가지 상황은 모두 저자가 말하는 '슈필라움'으로 통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문은 바로 주체성과 자율성에 있다. 스스로 생각한 바가 있어서 그 목적에 합치하는 독립된 공간이어야만 진정한 '슈필라움'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공간이라면 나치 치하의 수용소도 '슈필라움'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심리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부재하는 이런 곳은 결코 '여유 공간'이 아닐 것이다.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이다. 저자가 불현듯 일본화를 배운다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공간을 바꾸고, 이후 여수 바닷가의 '미역창고'를 구입해 작업실인 미역창고美力創考로 활용하는 것도 결국엔 자신만의 주체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인 것이다. 5톤 트럭 한가득 서울에 있던 책을 섬으로 가져와 서재를 꾸미고 그림도 그리면서 집필활동도 이어가려 한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만의 슈필라움이 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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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19-05-3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아직 마련은 못하였네요. 아내의 작은 공간인 법당에서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겸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생활로 하루를 열고 닫는 일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긱 워커로 사는 법 - 원하는 만큼 일하고 꿈꾸는 대로 산다
토머스 오퐁 지음, 윤혜리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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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경제는 독립 계약자와 프리랜서들이 단기로 일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하는 방식을 뜻한다. 긱 경제는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는' 전통적인 직장 생활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긱 워크를 중개하는 플랫폼의 성장으로 2025년까지 전 세계 6,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 예측했다. 긱 경제가 발전하면서 직업 안정성 그 이상을 원하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긱 경제에서 살아남는 법

 

이 책의 저자 토머스 오퐁은 중소기업을 위한 정보 사이트 올톱스타트업의 창시자이자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행동에 관한 최고의 글을 모아 무료로 제공하는 주간 뉴스레터 포스탠리 위클리 발간자다. 그는 매주 최고의 웹 트렌드와 기술 콘텐츠를 직접 선정하며 뉴스레터의 큐레이터 역할도 담당한다.

또한 그는 블로그 운영 및 전략, 사업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마케팅 컨설턴트로, <잉크매거진>과 <허프포스트>에서 칼럼니스트로 동분서주 활동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력을 바탕으로 <미디엄>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음에 따라 비즈니스인사이더, 쿼츠, CNBC, 안트러프러너, 옵저버, 쏘트카탈로그, 포켓히츠, 더뮤즈 등의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즉 '긱 경제'에 가장 적합한 근로인 셈이다. '긱 경제'란 고용주가 필요에 따라 단기 근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 프로젝트의 일을 맡기는 그런 경제 방식을 일컫는다. 근로자는 필요할 때만 일을 구하므로 이를 '긱 워크' 또는 '독립형 일자리'라고 한다. 현 시점에서 바라볼 때 프리랜서, 단기 계약직, 시간제 근로 등이 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어찌 보면 이런 형태의 근로가 '긱 경제'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긱 경제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스스로 선택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필수 지침을 제안하고 있다.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독립형 근로에 대한 개념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성공적으로 자기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긱 워커로서 효율적으로 개인의 재무를 관리하는 법, 클라이언트 관리법, 무리한 요청을 현명하게 거절하는 법, 업무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 등을 담고 있다. 또 '긱 경제' 구조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미리 그려볼 수 있게 한다.

 

 

 

 

긱 경제와 독립형 일자리

 

'긱 경제'라는 용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에 탄생했다. 당시 해고된 실직자들은 생계를 위해선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임시직 또는 시간제 근로 형태로 다수의 근무지에서 일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유연한 노동 형태를 말하는데, 사실상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방식이었다. 19세기 산업화 이전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케임브리지 사전에선 '긱 경제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임시직으로 일하거나 개별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는 경제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긱 워크(독립형 일자리)는 보통 임시직이며, 기술 분야에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기술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업무 자율성이 매우 높다는 특징을 지녔으며, 의뢰받은 일이 완료될 때 수입이 발생한다. 독립형 근로자 또는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는 긱 워커는 고용주와 단기 계약을 체결한다. 이와 같은 노동 시장의 트렌드와는 달리 한국 노동 시장은 민주노총이 임시직 또는 계약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달라고 생때를 부리며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그냥 방치하는 대통령도 구시대적 마인드를 지닌 듯하다.

 

긱 경제는 개인과 기업 양쪽 모두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에 의하면 영국 전체의 전일제 및 시간제 근로자 3,200만 명 중 대략 500만 명(15.6%)이 긱 경제 형태로 일하고 있다. 긱 워커의 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추세에 비추어볼 때 긱 워커야말로 미래형 직업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맥킨지는 긱 경제를 통해 세계 노동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온라인 플랫폼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무대로 하며, 독립형 근로자와 고용주 간의 수급을 빠르게 이어줄 수 있고, 업무 참여 방식이 간단하다는 특징이 있으므로 유연 근로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긱 경제의 신뢰도를 높일 뿐 아니라 독립형 근로자가 미래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고 풍부한 포트폴리오 구축을 돕는다. 오늘날 노동력의 유동성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에서든 처리하고 전송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졌다. 이제 업무와 장소는 분리된 개념이 됐다. 

기업들이 독립형 근로자를 고용하려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단순히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들에게까지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그들은 단기 노동력이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하이테크 스타트업에서 시간제 독립형 근로자로 일할 수도 있게 됐다. 이는 새로운 일을 개척해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진 기회다. 독립형 근로자가 되는 것은 현재 하는 업무의 범위를 넓히고 수입원을 다각화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긱 경제는 누구나 독립형 근로자를 경험해보고 자신만의 능력을 활용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을 수 있는 체제다. 향후 사람들은 점점 더 독립형 근로자를 추구할 것이다.

 

'긱 경제' 트렌드가 계속되는 이유

 

이젠 정규직도 재정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

근무의 유연성은 근로자들에게 점차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근무 조건을 정하고 업무 일정을 조정하고 싶어 한다

노동의 전문화로 기업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고용하기 쉬워졌다

기업은 점점 더 많은 프리랜서를 고용하고 있다

기업이 직원 채용, 교육, 장기 고용에 투입하는 비용이 계속 늘고 있다

기업은 더 민첩하고 유연한 경영 방식을 추구한다

독립형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회 인프라 시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긱 워커가 되려면

 

일자리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합의에 의해 성립된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경쟁력이 있어야만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트렌드가 '긱 경제'로 진행되는 추세 하에서 여러 기업체, 즉 고용주들은 경쟁력 있는 전문가들과 단기 계약을 추진할 게 뻔하다. 따라서, 새내기 긱 워커는 고용주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

 

모든 긱 워커의 여정은 바로 고용주를 찾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링크트인, 미디엄, 자신의 블로그 등에 콘텐츠를 올려보자. 자신의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링크트인을 이용해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의 다른 전문가들과도 정보를 공유하라. 온라인 및 오프라인상에서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독자와 고용주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긱 워커는 고용주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마음대로 가정하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일부 긱 워커는 결과물의 초안이나 처음 맡은 업무의 결과물을 전송한 뒤 고용주의 피드백을 받고 충격에 빠진다. 이런 일을 미연에 예방하려면 뭐든 궁금한 사항이 있을 경우 고용주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로서 긱 워커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고용주의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긱 워커로 활동하려면 자신의 업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스스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왜냐하면, 근면하면서 열심히 뭔가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다. 어떻게 해야 높은 생산성이라는 성적표를 거머쥘 수 있을까? 책은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체크리스트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이때 일간 체크리스트와 주간 체크리스트를 구분, 작성해야 한다.

 

 

재무계획을 준비하라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매월 꾸준한 수입이 없어서 이를 고민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강구되지 않는 상태에서 풀타임 긱 워커로 활동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두고 긱 워커로 출발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 중도에 그만두기 쉽기 때문이다. 생계 유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 부양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업무추진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등등에 대해서 완벽한 계획이 사전에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에 저자는 "최소 3개월 동안 수입이 없더라도 생계 유지가 가능할 정도로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력서 대신에 포트폴리오

 

기업들과 고용주는 과거와 달리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에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묻는다. 그렇다. 이제는 이력서 대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할 때다. 어느 분야에서 유명해지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춰 그동안의 업적을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다.

 

포트폴리오에 사진, 영상, 업무 기록의 링크,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추천 글 등을 추가해 효율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고용주의 눈에 띌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 이제 모든 사람이 링크트인 프로필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느 분야에 강점이 있는지,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인지 나타내줄 포트폴리오를 갖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긱 워커'가 대세다

과거 시대의 유물인 평생직장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이젠 일종의 프리랜서인 '긱 워커'가 대세다. 갈수록 기술이 진보하면서 우리들의 삶의 흐름 또한 점점 더 빨라진다. 이와 같은 트렌드로 인해 '긱 경제'의 출현은 숙명적인 현상이다. 노동 시장의 트렌드도 시대적 소명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젠 '긱 워커'가 대세다. 누구나 다 될 수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누구나 다 성공할 순 없다. 책은 경쟁력 있는 '긱 워커'가 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긱 워커'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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