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긍정의 파이터다! - 고졸출신 알코올중독자가 억대연봉자로 우뚝 선 인생역전기!
이희성 지음 / 길벗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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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허리와 무릎통증 때문에 21살의 한창 나이에 권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희성씨, 그는 고교 3학년때 프로로 데뷔하여 신인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권투가 전부였던 그는 부상으로 세계챔피언의 꿈이 날라가자, 술에 빠져 한때 알콜중독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절망과 시련을 극복하고 기업체 및 관공서 등에 출강하여 컨디션트레이닝이라는 독특한 분야에서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컨디션트레이닝 강의란 몸을 회복시켜 주는 운동일뿐만 아니라 호흡과 명상을 통해 마음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는 심신회복운동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이라는 꿈을 꾼다. 타인의 성공사례는 내 꿈의 달성에 유익한 길잡이가 된다. 고졸학력과 알콜중독이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 억대 연봉강사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는 그의 인생역전기를 들추어 본다.

 

권투는 나의 사랑

 

동양챔피언 출신인 이모부를 보면서 그는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장남이라며 그의 부모님은 극구 반대하였다.

중학교 2년때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그는 가출을 했다. 부천 신문보급소에 취직하여 돈이 모이면 권투체육관에 등록할 심사였다.

그러나, 너무 힘이 들어 일주일만에 귀가하고 만다.

1년 재수끝에 영동고교에 진학한 후, 공부한다며 학원등록비를 받아 부모 몰래 권투체육관에 등록했다. 부모님도 이를 눈치챘지만 가출이 두려워 내버려두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아하고 하고 싶은 운동이라지만, 단기간에 도가 지나친 훈련은 화가 되는 법이다. 반복되는 고된 훈련으로 몸에 무리가 왔다. 아침에 눈뜨면 일어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이도 태어나서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 과정을 거친다. 욕심이 앞서 그는 걷기도 전에 뛰어 버린 꼴이었다. 잘못된 훈련이 오히려 그에겐 독이 되고 말았다. 이후 허리통증은 그의 선수생활 내내 그를 괴롭히고 만다.

 

1981년 2월 고교 2학년때 데뷔전을 치루었다. 첫 출전에 상대를 보기좋게 KO로 물리쳤다. 그러나, 이후 성적은 연속 패배로 전적 6전 1승 5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나름 패인을 분석한 결과, 복싱 시작이 겨우 1년 정도인지라 절대 연습량이 부족했고, 근성과 체력이 부족하며, 난타전 위주의 아마츄어 경기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다.

 

프로선수로 다시 출발하다

 

우선 체력강화에 주력했다. 겨울방학 2달간 동네 뒷산을 매일 아침 전력질주로 뛰어 올랐다. 갈수록 체력이 향상됨을 느꼈다. 그런데, 운동후 허리와 무릎이 조금씩 아파왔다. 목표와 실천은 훌륭했지만 방식이 나빠 결국 자신을 해치는 노력이 된 것이다.

1982년 2월 부산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판전승으로 장식했다. 두번 째 경기는 전라도 광주에서 급히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체중 감량에 실패하면서 신나게 얻어 맞고 판정패했다.

 

5월, 제 2회 KBS 프로복싱 신인 선수권대회에 페더급으로 출전하여 오른손 주먹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고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7월 31일 오후 4시에 열림 결승전은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상대선수를 3번이나 다운시키며 KO승을 거두었다. 1승 5패 전적의 아마츄어 출신이 프로 신인왕이 된 것이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플라이급 신인왕은 전 세계챔피언 유명우였다.

4개월 후 11월엔 국제경기를 가져 태국선수를 KO승으로 이기며 거칠 것이 없었다.

 

하루 아침에 주위에서 유명인으로 부추기자 오만해졌다. 겸손해야 하기엔 너무 어린 탓이었다. 필연적인 결과가 뒤따랐다.

대학 툭기생 입학원서에 부모님 동의 도장을 받아 오라는 선생님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 자신을 몰라 보냐며 원서를 찢어 버리는 안하무인 행동을 한 것이다. 대학을 포기한 결과로 이후 그는 유흥가의 검은 손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권투를 포기하다

 

고교졸업후 1983년 3월 마산에서 10라운드 경기가 잡혔지만 허리통증으로 시합 2주 전부터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경기 당일 무리한 체중감량을 한 채 링위에 올랐으니 결과는 뻔했다. 3라운드에 경기를 포기했다.

이후 무릎과 허리디스크 교정치료후 통증이 없어지자 훈련을 재개했다. 그러나, 1주일만에 통증이 재발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치료하는 동안 체중이 62킬로그램에서 80킬로그램으로 불어났다. 결국 허리와 무릎통증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권투를 포기했다.

 

친구가 웨이터로 일하는 술집에서 공짜술 마시며, 외상술값 받으러 다니는 일이 그의 주된 일이 되어 버렸다. 회수한 외상값의 20%를 수수료로 받았지만 이 또한 술값으로 모두 날렸다. 영화 [록키]의 주인공 발보아처럼 건달 일을 하면서 그는 서서히 알콜중독자로 변하고 있었다.

 

군 입대와 전역, 그리고 술버릇

 

자기 파괴적인 생활에서 벗어 나고자 그는 입대를 결심했다. 허리통증의 소견서만 첨부하면 사실 그는 군면제 대상이었다.

술 버릇은 군에서도 여전했다. 수차례의 해프닝을 연출하며 술로 시작한 군 생활이 술로 끝이 났다. 술을 끊겠다고 입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결국은 3년이란 세월을 허송한 셈이었다.

 

군 제대후 권투영화의 주연배우를 보조하는 일에 종사했다. 촬영이 끝나고 쫑파티하는 날, 기어히 일을 내고 말았다. 감독에게 행패를 부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은 이렇게 번번히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자살시도, 그리고 또 다른 출발

 

10월 어느 날, 신세를 비관하고 올림픽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차가운 물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들어 죽을 힘을 다해 한강둔치로 헤엄쳐 나왔다. 이후 뭐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에 조계사 연수원에서 석달간 지압도 배우고, 얼치기 테니스 강사도 했다.

1988년 나이 25살에 건강식품대리점을 개업했다. 아버지는 마천시장 그릇가게를 폐업하고 사업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다시 자포자기 상태가 되면서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술김에 옆집 치킨 가게 네온사인 간판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다음날 술이 깨자 너무 창피했다. 50만원을 들고 가출했다. 부산 태종대에서 놀다가 강화도로 갔다. 어버이날 강화도 터미널에서 수면제 20알을 구입했다. 소나무 아래에 앉아 소주를 들이키고 수면제 20알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시간이 가도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약국에 들러 화풀이하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면 해결책이 보이는 법이다. 우선 허리와 무릎통증 치료에 전념했다. 한국자연건강회에서 식이요법과 교정운동을 하면서 내친 김에 지도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후 안양에 있는 안현필 선생의 체질개선연구회에서 강좌를 수강했다. 자세교정운동을 통해 허리와 무릎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서, 기공, 단전호흡, 요가, 명상호흡 등 여러 수련원을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1990년, 운동공학 피지컬트레이너 자격 취득을 위해 2년 과정을 시작했다. 자격은 취득했지만 프로구단이나 국가대표팀의 트레이너로 취업하기에는 고졸학력으로 힘에 겨웠다. 좌절보다는 해결책을 찾았다. 졸업한 영동고교 핸드볼 선수에게 피지컬트레이닝을 실시했다. 만성 허라통증으로 고생하던 한 선수가 3일간의 집중치료로 효과를 보자, 그 선수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후 이 선수의 어머니도 허리가 아프다며 치료를 요청해서 친구분들과 함께 치료해 주었다.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고 3 여학생도 효과를 보면서 입소문이 나자 고객이 많이 생겼다.

 

건강교실을 오픈하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1993년 송파구 오금동에 <바른자세 건강교실>을 오픈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운영이 되질 않았다. 신문에 실린 약수터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매일 아침 약수터에서 홍보전단지를 전하며 몸푸는 방법을 가르쳤다. 매일 회원이 증가했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일손이 달려 트레이너와 여사무원도 채용할 정도였다.

 

술로 인해 예약손님과의 약속을 못지키는 일이 종종 생겼다. 이를 불평하는 손님은 발길을 끊었다. 그래서, 1994년 5월부터 단주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96년 3월 10일 마지막 잔으로 완전히 술을 끊었다. 13년 째 술은 입에도 안댄다.

 

IMF 여파로 건강교실 운영이 어려웠다. 연세대 야구부 트레이너도 잠시 맡아보고, 아리랑축구단의 무보수 트레이너를 자청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영화계의 김영성 이사가 말솜씨가 재미있다며 강의를 해보겠냐고 물어왔다. 첫 강의 준비를 위해 한달 동안 밤을 새며 "컨디션트레이닝"이란 강의안을 준비했다.

 

드디어 강의를 하다

 

수원 컨트리클럽에서 1시간 30분짜리 강의였다. 건강상식 30분, 몸풀기체조 1시간으로 강의를 구성했다. 부담 탓으로 강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해 간 강의안을 무시하고 운동장이나 약수터에서 했던 것처럼 서로 즐기는 강의를 했다. 평가가 좋았다.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두번 째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백화점 판매원 대상이었다. 매일 1시간씩 65회차 강의였다. 집중과 공감, 이 두 가지가 강의 성공의 열쇠이다.오늘도 이런 멘트로 강의를 시작한다.

"여러분, 저는 고교때 권투한다고 공부는 너무 안했어요. 전교 꼴지는 아니고 2등, 뒤에서! 나보다 못한 놈이 다행히 한 명 더 있었어요"

 

휴일마다 강의 소재를 위해 대학로에서 개그콘서트를 관람하며 재치있게 말하는 방법을 벤치마킹하고 집에선 거울을 보며 수없이 반복연습을 한다. 그래서, 건강교실과 강의를 병행하는것이 힘에 부쳤다. 고민끝에 건강교실은 문을 닫았다. 월 80만원의 강의 수입이라 오후엔 건강벨트를 만들어 일산 학원가를 돌며 팔기 시작했다. 건강벨트는 공부할때 집중력을 높여준다. 개당 겨우 300원을 버는 일이었다. 재개발지역 철거용역팀에 들어오면 1년에 1억원을 주겠다는 주먹계 친구, 대기업 임원 월급을 주겠다는 유흥업소 주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떳떳하게 벨트를 팔러 다녔다. 다행스럽게도 백화점 강의 요청이 뒤따랐다.

 

명강사 42호로 위촉되다

 

그의 10년후 목표는 요가, 명상, 권투를 응용한 건강체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컨디션트레이닝 센터를 건립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뒤로 미루고 그는 명강사가 되겠다는 목표에 도전했다. 월 80만원을 받던 초보강사가 월 일천만원을 받는 특급강사로 성장했다. 2006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사단법인 강사협회에서 선정하는 명강사 42호로 위촉받았다.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갈고 닦아,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성장을 하게 된다. 의지를 갖고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찬란한 희망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꼴찌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꼴찌에만 머물러 있고 벗어 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살아오면서 배웠다"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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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 하인리히에서 깨진 유리창까지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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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데, 왜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할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리하고,독독한 사람들이 쳐놓은 덫과 함정에 빠지지 않는 행운을 어디에서 구할까? 

지금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고 그런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들은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성공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쓰고 있는 성공 방정식은 무엇일까? 

인생을 살면서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에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까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법칙을 100 가지로 정리했다. 당해 법칙에 대하여 백과사전 식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다. 

MIT 대학의 존 마에다 교수는 자신의 저서 <단순함의 법칙>에서 디지털 시대의 성공 키워드는 "단순함" 이라고 말했다. 조금 모자란 듯한 여백에 많은 상상력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의 마술사 스티브 잡스도 자신이 설립한 회사 애플에서 쫓겨나서 방랑생활을 하다가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그가 기적적으로 애플을 회생시킨 화두가 바로 "우아한 단순함" 이었고, 이를 테마로 디자인한 상품이 바로 유명한 "아이팟"이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가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단이 함락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조나라는 동맹국인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제나라는 구원군 대장에 전기, 참모에 손무의 손자인 손빈을 임명하여 출병을 시켰다. 전기가 한단으로 진격을 감행하려 하자, 손빈은 이를 제지했다. 

"싸움의 기본은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치는 것입니다. 나의 강점으로 적의 강점과 대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위나라의 정예군이 모두 조나라에 출병했기에 사실상 위나라의 수도는 텅 빈 상태였다. 손빈은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하면 위나라의 정예군은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지략이었다. 더구나, 위나라의 군대가 먼 길을 서둘러 귀국하면 지칠 것이 분명하므로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한 수 앞까지 내다본 것이었다. 이것이 병법 36계 중 제 2계인 "圍魏救趙" 전략이다. 

한국동란시의 인천상륙작전도 일종의 위위구조 전략이었다. 북한의 주력군이 대부분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이 작전으로 보급로를 끊어 버리자 북한군은 서둘러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84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그러나, 골드러시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돈 번 사람은 금채굴기술과 정제기술을 가르친 사람이었다. 또한, 송금업자와 청바지 장사꾼이 돈을 번 것이다. 리바이스 형제는 쉽게 헤지지 않는 청바지를 만들어 떼돈을 번 것이다. 그래서, 현대 마케팅에선 "청바지의 법칙"이 있다. "골드러시에는 금맥을 찾지 말고 청바지를 팔아라" 

이 책에서 만나는 법칙 대부분 우리들에게 유익한 지식들이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전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불과 몇 가지의 원칙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도 정말 유용하다고 느끼는 몇 가지의 법칙을 깊이 새겨두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에 나는 다음 한 가지를 마음에 깊이 새기려고 한다.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은 흉년이 들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풀었다. 또한, 나라에 난이 일어나면 사재를 털어 군자금을 대었다. 이는 그의 정신적 스승인 홍득주의 말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를 평생의 신조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물은 흔히 우물에 비유된다. 그런데, 좋은 우물이란 장마든 가뭄이든 일정한 수위를 유지한다. 따라서, 재물이란 좋은 우물과 같아서 남에게 베푼 만큼 다시 채워지는 것이다. 주역에도 이런 말이 있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베풀면 반드시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우물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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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이뤄낸 기적의 영업교실 - 벼랑 끝에 서 있던 아버지는 어떻게 억대 영업맨으로 변신했을까?
시마 모토히로 지음, 김하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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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 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영업입문서이다.

구조조정으로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한 저자의 아버지는 20여 년간 봉직한 기술직 사무원을 뒤로 하고 가족부양을 위해 여러 사업에 도전해보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뿐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이 아버지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 영업맨용 가이드" 를 손수 만들어 아버지에게 영업기술을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아들은 영업에 천부적인 재질을 보인다. 고교 졸업후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한달에 300대 이상을 팔아 치우며 불과 4 개월만에 판매원 300명을 담당하는 영업 매니저로 승진한다. 저자 시마 모토히로씨는 실제인물로 현재 영업 컨설팅 전문회사인 "아일랜드 브레인" 의 대표이사이며, 100여 개 기업의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보험대리점을 창업하여 영업에 필요한 실무지식을 익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검증된 영업 노하우를 정리하여 2002년 12월 아버지를 위한 영업교실을 개강했다. "0" 단계에서 "30" 단계까지 단계별로 영업의 달인이 되는 영업기술을 가르친다. 특히, 모든 것은 "0" 에서 시작하기에 "0" 단계를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어 영업에 대한 바람직한 사고방식, 성공하는 영업과정, 그리고 성공하는 영업을 위한 자기관리 순으로 영업의 기초를 다지는 교육을 실시한다.

 

고객은 신이 아니라 영업맨과 대등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즐겁게 뛰어야 결과도 즐겁다.

 

성공하는 영업에는 방정식이 있다. "접근" - "제안" - "다시 제안" - "마무리" - "사후고객관리" - "업 세일(Up Sale)" - 소개, 입소문" 의 일곱 가지 흐름을 거친다며 이를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영업의 달인은 신규고객의 개척보다는 오히려 기존고객을 관리하며 영업망을 넓혀 나간다며 세부사항 등을 설명한다.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을 완벽하게 연구하라.

하루 30분관리 - 오늘 일과를 되돌아보기(5분), 내일 일과를 머리속에 그리기(15분), 잠자기 전 꿈을 재확인하기(15분)

무작정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식보다 구매의사가 있는 잠재 고객을 효율적으로 찾아내어 예약하고 만나라.

 

매출을 쑥쑥 올려주는 달력용 수첩활용법도 제시한다.

- 상담예약만 기입한다

- 영업과 그 외의 일정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 영업시간을 정해 둔다 (예, 오전 9시 - 오후 6시)

영업과 관련된 상담 약속에는 밑줄을 긋거나 형광펜으로 표시하여 눈에 잘 띄게 하라.

 

또한, 고객의 의견을 먼저 경청한 후에 제안을 하라, 계약후엔 안전한 납품 여부를 점검하고 친필로 쓴 감사편지를 발송하라, 정성어린 편지 한통으로 떠났던 고객의 40%가 돌아왔다 등을 강의하면서 신뢰를 중요성을 언급하며 강의를 마친다.

- 입소문이 무섭다. 신뢰를 또 다른 신뢰를 낳는다.

- 영업은 인간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상품이 아니라 인간성을 팔겠다는 각오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최근에 종영된 TV 드라마 <열혈 장사꾼>은 카 세일즈맨의 꿈, 열정, 애환 등을 다룬다. 이 드라마 내용 중에 지방자치단체의 관용차량 교체용 대형 구매입찰건이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열혈 장사꾼인 주인공 하류는 자신의 응찰을 포기한다고 공표한다. 그 이유는 관용차량의 상태가 양호하여 교체의 필요성이 전혀 없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소견을 당당히 밝힌다.

믿음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힘이다. 저자가 강의한 영업기술을 잘 활용하여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영업일선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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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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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20 세기 만화사를 정리한 책이다. <소년챔프> 등의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저자가 우리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을 하나씩 들춰내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어릴 적 학교를 파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들리던 곳이 동네 만화방이었다. 용돈이 없어 기웃대기라도하면 외상으로 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주인 아저씨, 만화방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모두 아련한 옛 추억들이다.

 

코주부, 고바우, 라이파이, 꺼벙이, 독고탁, 이강토, 둘리, 구영탄, 토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 캐릭터들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습에 열광하면서 그 모습이 나인양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저자는 "막연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할 거라고 믿었던 미래에 대한 환상과 함께 만화의 영웅들은 나를, 우리를 지탱시켜준 희망" 이었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 있기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한다.

 

이러한 추억의 시간을 되돌려 마치 타임머신을 탄듯,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 만화사"란 제목을 붙여 이 책은 우리에게 당시의 인기 만화들을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만화사가 100년이나 되었다해도 그 캐릭터가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 기회에 만화사를 요약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30 - 50대에게는 추억을, 10 - 20대에겐 흥미를 제공한다. 만화 캐릭터에 대한 향수가 새대별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소위 1 세대의 추억이라면 김용환의 코주부, 김성환의 고바우, 산호의 라이파이가 될 것이다. 코주부는 그 시절 서민들의 다정한 이웃집 가장의 모습이었고, 그들의 눈높이에 적당한 삶의 애환을 대변하는 캐릭터였다. 특히, 뛰어난 과장법과 비유법을 활용하여 풍자가 생명인 만화의 본질을 잘 보여주었다. 김성환의 고바우는 50년에 걸쳐 2000년 9월 29일 문화일보를 마지막으로 총 14,139회를 연재했다. 고바우를 통해 대중들은 시류의 흐름을 읽기도 하고, 분출하기 어려운 속내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했다.

 

1950년대 말부터 발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산호의 라이파이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수호하는 한국판 슈퍼맨이다. 총알을 피하고, 빛보다 빠른 제비기를 타고, 유도창, 무선호출기 등을 갖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악당들을 물리친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SF 만화였기에 당시로선 신선한 장르였다. 라이파이가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의 모습이라면, 길창덕의 꺼벙이는 재치 넘치는 착한 악동의 이미지로 똑똑한 주인공과는 대별되는 캐릭터였다.

 

수많은 만화가들에 의해 캐릭터가 지금도 개발되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아기 공룡 둘리는 한국 만화의 위상을 높여준 캐릭터이다. 저자는 만화의 캐릭터를 세대별로 분류하고 그 특징들을 각각 설명하고 있다.

1940 - 1950 : 친근한 이웃, 영웅화, 초인화 - 코주부, 고바우, 주먹대장, 라이파이

1960 - 1970 : 귀여운 주인공, 명랑 만화, 만화스타 춘추전국시대 - 꺼벙이, 일지매, 고인돌, 독고탁, 이강토, 다모, 강가딘 등

1980 : 획일화된 영웅 이미지는 싫다 - 복수의 화신 최강타, 사랑에 감염된 영웅 오혜성 등 

1990 : 사회성과 시대성을 띄고 있는 캐릭터 -  변금련, 황대장, 남궁건, 이화, 토끼

 

저자는 한국의 만화사를 캐릭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총 26 명의 만화가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담긴 회고와 함께 "아직 인생의 희망이 남아 있던 시절, 장차 영웅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우리를, 우리가 꿈꾸던 세계로 이끌었던 만화 주인공들에 대한 비망록"이라는 그의 말이 무척이나 공감된다.

 

최근에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아이돌, 아이콘이라는 용어가 부상하며 캐릭터성을 대변하고 있다. 만화의 사회적 영향력이 위축된 사이에 다른 분야의 스타들이 아이돌과 아이콘이란 이름으로 대중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만화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만큼 만화 주인공 역시 보다 업그레이드 된 캐릭터로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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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지우.송호창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코믹한 판토마임의 소재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 거리 한복판에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주변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세 명이 함께 허공을 바라보자, 주변사람들도 한 둘 따라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 책은 동조의 위험과 이견의 중요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앞서 코믹한 장면이 바로 동조현상이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정보와 평판을 의식한 것이다. 즉, 개인의 신념과 행위에는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요소는 타인들의 행위와 진술을 통해 전달된 정보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보편적인 열망이다.

 

재판과 같은 사회적 현상에서도 동조현상이 나타난다.

덜 보수적인 판사가 보수적인 두 명의 판사와 함께 판결을 내릴 경우, 그 판사는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의 상황인 덜 민주적인 판사가 민주적인 두 명의 판사와 함께 판결을 내릴 경우에 그 판사는 민주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조는 사회적인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이견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동조가 유행병처럼 파급되면 사회적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더욱 심해지면 집단 편향성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압력은 개인과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집단 사고라는 개념은 어빙 야니스가 주창한 것으로,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은폐, 히틀러에 대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 에드셀을 판매하겠다는 포드의 결정,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챌린저호를 발사하겠다는 NASA의 결정,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등은 집단 사고의 결과물이다. 불충분한 조사나 왜곡된 정보 처리 등으로 말미암아 부적적한 선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단 간 다툼, 극단주의, 테러, 전쟁, 기업의 성공과 실패, 언론 자유의 중요성, 법에 대한 순응과 불응, 고등 교육에서의 적극성 시정 조처를 둘러싼 논란 같은 여러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이견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발가벗은 임금님"을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도 벌거숭이임에도 마치 옷을 입은 임금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런 기만적인 행동이 만연되어 있기에 쉽게 물리치기도 어렵다.

 

저자는 "이런 부정의, 억압, 집단폭력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에 누군가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집단적인 합의 속에 숨겨진 모순점을 밝히고자 한다면 그들은 처벌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직장을 잃거나 아니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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