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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처럼 생각하기 (아트 힐링 에디션) - 소진되고 지친 삶을 위한 고요함의 기술
제이 셰티 지음, 이지연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8월
평점 :
이 책은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적 지식은 물론, 저자가 아슈람(인도의 전통적인 수도원)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부정적 생각과 습관을 극복하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평온과 존재의 목적에 닿을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훈련 방법을 따른다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줄이고, 인간관계를 개선하며, 내면에서 찾은 재능을 세상에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책 실물)
책의 저자 제이 셰티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인도로 출발, 뭄바이에서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년 뒤 런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는 스승 가우랑가 다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조언 때문이었다. 현재 그는 ‘소셜 미디어로 지혜를 전하세요’라는 영상 시리즈로 100억 뷰를 기록, 5천만 명의 열렬한 팬을 보유하고 있다.
‘소진되고 지친 삶을 위한 고요함의 기술’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이 책은 총 3개 파트에 걸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체성, 부정적인 생각, 두려움, 의도, 목적, 루틴, 마음, 자존심, 감사, 관계, 봉사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도서 제목이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농구장을 휘젓고 싶다면 마이클 조던처럼, 뛰어난 기업 전략을 세우려면 일론 머스크처럼, 환상적인 고연을 펼치려면 비욘세처럼 생각하면 되듯이 내 마음을 수련하고 싶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인 수도자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원숭이 같은 마음 vs 수도자의 마음)
나아가 이 책의 내용에서 우리들이 배울 점은 앞서 소개한 바처럼, 정체성에서부터 봉사까지 총 11개의 주제를 따라가며 우리 내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목적을 찾기 위한 마음 수련 과정인 셈이다. 이제, 인상깊은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정체성(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나’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날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다.” - 미국 사회학자 찰스 호턴 쿨리(1864~1929년)
우리의 정체성은 온통 ‘남이 생각하는 나’에 파묻혀 있다. 우리의 자아상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는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메소드 연기’에 충실한 영화배우가 맡은 배역에 너무 빠진 나머지 일상도 그 배역처럼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롤 모델을 따라하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다보면 진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나 자신의 가치관을 무시하면서까지 ‘남들이 생각하는 나’에 맞춰 살려고 애쓴다.
부모, 친구, 교사, 미디어의 목소리는 젊은이들의 미릿속에 온갖 신념과 가치관의 씨앗을 뿌린다. 사회가 정의를 내린 ‘행복한 삶’은 모두의 행복한 삶인 동시에 그 누구의 행복한 삶도 아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뭘까? 머릿속의 소음을 걸러내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바로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세우는 첫 번째 단계다.
(사진, 머릿속 상황들)
주변 세상의 의견이나 기대, 의무에 대한 소음을 걸러내고 나면,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는 세상을 다시 안으로 들이는 것이다. 내가 외부 영향력에서 벗어나라고 했던 것은 세상 전체를 무한정 ‘꺼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수도자의 마음이 되어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한다. 이때 어려운 것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55쪽)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은 어디에나 있다. 날마다 우리들은 부정적인 것들의 폭격을 받는다. 비난을 많이 받는 것만큼이나 남을 많이 비난한다. 오늘 기뻤던 작은 일보다는 아프거나 괴로웠던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자신을 이웃과 비교하고, 배우자를 험담하고, 면전에선 감히 하지 못하는 친구의 뒷담화도 서슴치 않는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들이 10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피실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에겐 지루함을 느꼈을 때를 주제로 짧은 에세이를 쓰게 하고, 다른 집단엔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던 때나 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때의 상황을 쓰게 했다.
이후 피실험자들에게 간단한 과제가 있는데 연구진을 도와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우에 대해 글을 썼던 피실험자는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연구진을 도와줄 가능성이 26 퍼센트 낮았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 피실험자는 나중에 이기적인 태도를 표출할 가능성이 더 컸다. 나아가 실험이 끝난 후 쓰레기를 버린 채 떠나고 실험용 펜을 가져가기까지 했다.
부정적인 사람의 유형
불평꾼~ 끝없이 불평하며 해결책은 찾지 않는다
삐딱이~ 칭찬도 삐딱하게 받는다
피해자~ 남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남 탓한다
비평가~ 생각이 다를 경우 상대를 비난한다
명령꾼~ 남들을 압박해서 일을 성사시키려 한다
경쟁꾼~ 자신의 선택이 돋보이도록 남을 통제하고 조종한다
통제자~ 친구나 배우자의 일상을 감시하고 지시하려 한다
(사진, 부정적 사람 유형)
의사도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리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스님들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병이 있고, 누구나 아직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건강 문제로 우리가 남을 비난하지 않듯이, 나와 다른 죄악을 가졌다는 이유로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스승인 가우랑가 다스 스님은 짧은 비유를 통해 이런 조언을 되풀이해서 들려주었고, 우리는 그 말을 되새기며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정적 행동을 비난하는 대신에 그 감정을 진정시키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행동으로 바꾸려 노력했다.
‘나와 다른 병이 있다고 남을 비난하지 마라.’
‘누구도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진, 알아채고 멈추고 바꿔라)
두려움
두려움은 죽음을 막지 못한다.
두려움은 삶을 막는다.
- 붓다
두려움이나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직장인들이 매일 대하는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괜찮다. 두려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일종의 경고 신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수십 년 전 과학자들이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바이오스피어 2라는 인공생태계를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다. 유리와 쇠로 구성된 거대한 돔 내부에 정화된 공기, 깨끗한 물, 영양가가 풍부한 토양, 다량의 자연 채광 등을 공급했다. 돔 내부의 동식물군에게 이상적인 생존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내부의 나무들이 일정 높이까지 자란 뒤 자꾸만 쓰러졌다. 돔 내부엔 바람이 없어서 건강한 줄기와 뿌리로 성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을 경우 오히려 변화와 도전을 겁낸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간헐적 스트레스 요인(직장의 큰 프로젝트 또는 새집으로의 이사 등)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성공적으로 대처하면 마치 바람 맞으며 성장한 나무들처럼 더 건강할 뿐만 아니라 성취감과 함께 행복감도 더 증가한다고 한다.
두려움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두려움이 집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뭔가를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생활양식, 고가의 외제차량 같은 물질적인 소유물 등이 실제론 그렇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런 관계 등에 매달린다. 이는 ‘원숭이 같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시적인 것들에 매달리면 이것들이 오히려 나 자신을 지배할 정도로 큰 힘을 갖게 되어 고통과 두려움의 원천이 된다.
노천탕과 호화 주방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에어비앤비 집에서 일주일 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매 순간을 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허락된 이런 조건들이 일시적인 것임을 인정한다면 이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살겠는가 말이다. 천상병 시인의 아름다운 시귀詩句처럼 우리들은 잠시 지구에 소풍을 온 사람인 것이다. 초연한 삶을 추구하자.
자존감
겸손해지면 배움에 마음이 열린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또한 이런 점을 지적했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참뜻은 바로 자신이 무식한 사람임을 깨닫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렇다. 배움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못된 자신감은 자존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기적인 욕망을 모두 버리고 나와 내 것이라는
자아의 새장을 깨고 나간 사람은 영원히 자유롭다.
- <바가바드 기타>, 2장 7절
잘못된 자아는 내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하하며, 내가 모든 걸 안다는 생각을 보호하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정체성이다. 나를 보호하려고 잘못된 자아를 신뢰한다면 스스로 쇠로만든 갑옷을 입고 있다는 착각을 하지만 실상은 종이로 된 갑옷을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으로 전장에 나서면 종이 칼에도 쉽게 상처를 입고 만다.
단속하지 않으면 자존심은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 자존심은 가면(페르소나)이다. 자신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정직하지 못한 버전의 ‘나’를 만들어낸다. 허영과 자존심은 동일 선상에 있다. 세상에 표출되는 외관을 꾸미는데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 이러니 자존심은 더 많은 걸 원한다.
자존심은 시선, 인정, 칭찬을 갈구한다.남을 깎아내라고 나를 치켜세우려 한다. 더 훌륭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더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살면서 내 본모습이 아닌 사람으로 가장하며 허세를 부리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진짜 나보다 못한 모습이 되고 만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잘못된 자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타고난 능력을 저급하고 이기적인 목적에 사용하며 자기자신을 상실한 결과 감옥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자존심은 양날의 검이다. 잘못된 자아는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기 쉬운 만큼 쉽게 산산조각 내고 만다. 약점이 노출되고 나면 그동안의 자존심은 더 이상 방어할 말이 없다. 아마도 앞서 영화의 주인공도 그랬을 것이다.
겸손이야말로 자존심을 고치는 묘약妙藥
부풀려진 자존심과 건강한 자존감을 서로 헷갈려서는 안 된다. 자존심은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존심은 스스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320쪽)
(사진, 자존심 vs 자존감)
봉사
저자는 3년간 아슈람에서 스승으로부터 진정한 삶을 위한 자아찾기와 내면공부를 수행했다. 이후 스승의 조언에 힘입어 자신의 배움과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아슈람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귀국했다.
그가 인도 아슈람에서 승려 생활을 하면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가장 고귀한 목적은 봉사하는 삶이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타심利他心에 연결되는데, 내면의 평화와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즉 이타심은 자아를 치유한다.
수도자들은 봉사하는 삶을 산다. 책 제목으로 표현한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란 궁극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의미한다. 자연을 유심히 관찰해 보라. 자연은 늘 봉사하고 있다. 태양은 열과 빛을 제공하고, 나무는 산소와 그늘을 주며, 물은 갈증을 해소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세상 전체를 하나의 학교라고 본다. 불은 뜨겁고, 태양은 밝고 따뜻한 것처럼 봉사는 인간 의식의 본질이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봉사가 여러모로 삶을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봉사는 우리를 이어준다
봉사는 감사하는 마음을 증촉시킨다
봉사는 연민을 키운다
봉사는 자존감을 높인다
봉사하면 운 나쁜 하루가 해결된다. 봉사하면 내가 지고 있는 짐이 가벼워진다. 봉사는 남을 돕고, 나를 돕는다. 우리는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지만, 봉사의 기쁨을 얻게 된다. 봉사는 사랑을 교환하는 일이다. 봉사하는 삶을 살면,
불평하고 비난할 시간이 없다.
두려움이 사라진다.
감사함이 느껴진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직통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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