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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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지막 선비를 자처하는 할아버지, 시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아버지,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사학과 전임강사인 이혼녀 여동생, 갖은 고생 끝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고모.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도 그에게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입사시험 88연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동석. 동석의 가족들에게는 각각 돈이 필요한 사연이 있다. 그때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돌아와 60억 유산이 있다고 말하는데

 

 

 

 

거액의 유산을 갖고서  67년 만에 귀환한 할머니

 

 

<할매가 돌아왔다>(2012)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김범은 1963년 서울 출생으로, 2001년 조동선 소설 창작반에서 소설 공부를 시작, 90번에 가까운 낙방 끝에 2009년 단편소설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는 등 이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2015년 20부작으로 방영되었던 SBS 주말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2014)와 <천하일색 김태희>, <5번 교향곡>(2013년, 전자책) 등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제니 할머니가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고자 벌이는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고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완전히 잊혀졌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귀환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더러운 잡년'이라고 쌍욕을 하고, 고모는 '이봐요'라고 부르며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무슨 낯으로 이제야 돌아왔냐며 야단이다.

 

 

 

 

"너희에게 줄 유산 60억이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말 한 마디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워낙 거액이다 보니 이를 무시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후 소설은 뻔하게 예상되는 대로 전개된다. 가족들의 60억 쟁탈전은 어떻게 될까. 60억은 진짜로 있는 걸까. 아무도 관심 없는 할머니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등등.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평가와 함께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한여름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최달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으로 불시에 들이닥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정끝순 여사로 달수네 가족들이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고만 알고 있는 바로 그 할머니의 귀환인 것이다. 잠결에 벨 소리를 들은 달수의 아들이자 청년 백수인 동석은 현관문 확대경을 통해 누가 왔는지 살펴보았다.

 

몸이 조그마한 노파가 깃털 달린 밤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동전 사이즈의 은빛 반짝이가 주렁주렁 달린 요상한 원피스 정장을 입었는데, 눈은 커다랗고 뺨이 빨간 모습을 하고 문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무런 답이 없다. 재차 물었더니 자신은 정끝순이라고 밝히면서 최달수 집이 맞냐고 물어왔다. 동석은 아버지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노인인지라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잽싸게 집 안으로 들어와 응접실 소파에 덜컥 앉더니 동석이 최달수의 아들임을 확인하고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할머니다"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내 할머니라니. 그렇다면 아버지의 어머니란 얘기고 할아버지의 아내란 소리며 어머니의 시어머니란 말씀인데. 가만있자,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부활하신 것이었다. 이에 동석은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그녀에게 돌진했다.

 

커다랗고 동그란 할머니 눈이 더 크게 벌어지는 걸 보며 조그만 몸뚱이를 힘껏 껴안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 없이도 충분히 감격적인 할머니와 손자의 첫 만남이었다. 이 노파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어떤 오해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마치 부활이나 한 듯 오랫만에 귀환한 감동적인 일로만 여겼던 것이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했다. 거액의 유산이 있다는 말에 언제 우리들이 할머니를 원망했냐는 듯이 마치 주인한테 충성을 다짐하는 개처럼 꼬리를 내린다. 심지어 백수로 지내는 동석은 자신의 방까지 할머니에게 빼앗기고 거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편, 동석은 할머니와 함께 종이공예를 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듣게 된다. 

 

선비 출신이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백파 최종태)는 자신의 울분을 할머니에게 분풀이함으로써 카타르시스했다. 말하자면 가정 폭력이다. 세상에 제일 못난 남자가 자기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 내력인지 몰라도 사회운동기로 활동하며 정치인을 꿈꾸었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이다.

 

한편, 동석의 영원한 짝사랑 대상이던 현애도 동석의 절친 상우와 결혼한 뒤 폭행에 시달리다 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낸다.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동석은 상우의 여동생 상희와 결혼하고, 상희가 돈벌러 나가는 대신에 백수 동석이 가사일을 전담한다. 다행스럽게도 죽기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 관계가 복원된다. 소설은 할아버지의 사망과 할머니(미국명 제니)의 미국 귀환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60억 유산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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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양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김대웅 엮음 / 노마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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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지식은 모자라면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너무 넘쳐도 탈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내기도 힘들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이 모두 유용한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전혀 쓸모없는 허접스런 것들도 있고, 정확성과 사실성이 모호한 것, 서로 견해와 해석이 엇갈리는 것, 불확실한 것, 이른바 '가짜뉴스'까지 판쳐서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자

 

책의 저자 김대웅(엮음)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고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나와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지금은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영어잡학사전>, <커피를 마시는 도시>, <그리스 신화 속 7여신이 알려주는 나의 미래>, <제대로 알면 더 재미있는 인문교양 174>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배꼽티를 입은 문화>, <반 룬의 세계사 여행>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마르크스 전기>(1, 2), <마르크스 엥겔스 주택문제와 토지국유화>,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루카치 사상과 생애>, <영화 음악의 이해>, <무대 뒤의 오페라>, <패션의 유혹>(공역),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영어 이야기> 등이 있다.

 

책은 총 9장에 걸쳐서 가볍지만 제법 쓸 만한 74가지의 지식을 담고 있다. 즉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갖가지 담론들, 알아두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교과서적 지식이나 일반상식 수준을 넘어서 꼭 알아둬야 할 만한 전문지식들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고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

 

인류는 획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동물계의 가장 상층부에 군림할 수 있었다. 즉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뇌용량의 커다란 증가, 수렵과 채집, 사라진 체모體毛, 언어 사용, 불의 사용, 끊임없는 이동 등이 인류 진화의 핵심 요소들이다. 이러한 핵심적인 진화를 초래한 원동력은 놀랍게도 인류만의 독특한 짝짓기 때문이었다.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인류는 두 발로 직립보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남녀가 서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이에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던 남자의 성기가 뚜렷하게 보였으며, 여자는 후배위後背位 자세로 교미할 때 남자의 시선을 끌었던 엉덩이가 안 보이게 되자, 엉덩이 모양과 비슷하게 큰 유방을 갖도록 진화했으며, 입술은 마치 음부를 옆으로 눕힌 모습과 비슷해졌다.

 

나아가서 여자는 등을 바닥에 눕힌 자세로 남자가 자신의 몸 위로 올라 짝짓기를 하는 정상위正常位 자세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는 매우 큰 의미를 지녔다. 남녀가 성행위를 할 때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밀착하면서 친밀감과 유대감이 크게 높아졌고, 서로의 섬세한 애무행위가 성적 충동을 더욱 자극할 수 있었다. 뇌용량의 획기적인 증가로 인해 여타 동물들과는 달리 자의식自意識을 갖게 돼 짝짓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쾌감'을 인지하게 됐다.

 

이는 정말 대단한 체험이었던 것이다. 모든 동물의 짝짓기는 후손을 만들어 종족을 계승하고 보존하려는 성본능 행위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인류는 쾌감의 체험으로 생식과는 분리된 짝짓기, 오직 쾌감을 얻기 위한 상시적인 짝짓기가 가능해졌다. 또한 그에 따라 짝짓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욕구가 더욱 높아졌다.

 

 

 

남자와 여자의 쇼핑 패턴은 왜 다를까?

 

아내와 함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들리면 나는 항상 아내의 쇼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나에게 필요한 스니커즈나 면도날 등을 구매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릴 필요가 없지만, 아내의 경우는 나와 영 딴 판이다. 이젠 찬바람이 불어온다면서 스카프를 마련하려고 매장마다 들러서 일일이 확인해보고 구매한다. 이제 쇼핑이 끝났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세일 안내가 고지된 의류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이것저것 살펴본다. 그런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매장에 들러 식품코너에서 반짝 세일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책은 목표지향방향지향이라는 습성을 통해 이를 비교한다.  


약 200만 년 전,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인류로서의 제 모습을 갖췄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해결했다. 남자들은 사냥으로 고기를 확보했고, 여자들은 열매와 뿌리, 견과류 따위의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했다. 그래서 사냥에 나선 남자들은 멧돼지나 토끼 따위의 사냥감을 발견하면 그 목표물을 줄기차게 뒤쫓아 기어코 포획해야만 했다. 오직 목표물에만 집중한다.

 

반면에 여자들은 식물성 먹거리를 구하려고 어느 곳에 열매나 견과류가 많은지 사방을 두루두루 잘 살펴봐야 했으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한번 열매나 견과류가 풍부한 장소를 찾아내면 그 장소를 기억해둬야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남자는 목표지향적이고 여자는 방향지향적인 습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인류 조상의 이런 습성은 유전자로 후손에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외계에는 과연 E. T.가 존재할까?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설'은 지금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존재할까?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외계에는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단언했다. 호킹 박사 외에도 거의 모든 우주과학자들 또한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지적 생명체란 지구인들처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우주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항성과 행성들이 존재한다. 행성들 중에서 기후를 비롯한 갖가지 환경이 지구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행성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지구인처럼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아직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추측이긴 하지만 누구도 이를 단정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지라도 지구인들과 우연히 조우하거나 의도적인 접촉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행성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 우주 공간은 그 크기가 무한대다. 태양계를 벗어나면 아무리 가까운 행성도 빛의 속도로 수백수천, 아니 수만 광년 또는 그 이상 가야 한다. 현 수준의 지구 과학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한편, 지적 생명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도의 문명을 지닌 생명체가 왜 아직까지 그들의 존재를 우리 지구인들에게 알리지 않는가라는 의문점을 제기한다. 지구 문명이 그들에 비해 워낙 열악해서 아예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발생한 재앙으로 인해 모두 멸망해 버린 것일까? 지구라는 행성도 수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던 것처럼, 고도의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도 문명의 폐단으로 인해 멸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래 사진을 보라. 이렇게 큰 기하학 도형을 고대 지구인이 그릴 수 있었을까? 여전히 흥미로운 이슈로 남는다.

 

 

 

인간의 기억은 믿을 만한가?   

 

'기억記憶'이란 과거에 체험하고 경험하고 목격한 것, 습득한 지식 등을 머릿속에 새겨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내는 것이다. 뇌가 획득한 온갖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신비롭게도 인간의 뇌에 저장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사고思考, 판단, 결정, 선택이 가능하고 학습과 예상과 상상(추론) 등이 가능하다.

 

한편, 뇌는 기억하는 기능과 함께 '망각忘却'의 기능도 동시에 함께있다. 망각은 기억의 반대되는 행위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문제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자기 나름으로 대수롭지 않았던 잡다한 기억들을 잊어버리게 하고, 낡은 지식이나 정보를 잊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학습할 수 있게 하며, 고통스런 경험도 차츰 잊어버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이 조화를 이루어야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은 법이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개인차, 질병, 심리, 편견 등 다양한 요인들이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거기다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습성도 기억의 정확성을 그르친다. 또한 기억은 저마다의 지적 수준, 신분과 지위, 학력, 직업, 환경, 성별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그에 따라 체험과 경험도 다르고 기억하는 정보와 지식도 큰 차이가 있다. 아울러 기억하려는 정보의 수준과 가치, 뇌에 저장된 정보량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한 기억을 되살릴 때 그 판단과 관점과 수준에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따라서 우리의 기억에는 객관적 정확성보다 개인에 따라 오류와 착오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 결국 인간의 기억은 결코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처럼 부정확한 우리의 기억이 어떤 사실이나 진실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관적 진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항 것들만 지적하거나 강조함으로써 팩트를 오도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진실은 의도적인 왜곡인 셈이다. 요즘 친여권 인사들이 남발하는 '가짜뉴스'가 바로 인위적 진실인 것이다.

 

 

 

알면 도움되는 교양 지식들

 

이밖에도 책은 '인류의 진화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끝나는 것일까', ' 여자는 왜 남자보다 털이 적을까', '결혼제도는 마침내 사라질 것인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유대인은 왜 그렇게 미움을 살까', '인간성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노력일까, 운일까',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가', '정의는 결국 이기는가', '비만과 요요현상', '팬티의 역사' 등 우리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들이 많다. 스스로 지식 부족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분이라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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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타임워프 -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
김신현경.김주희.박차민정 지음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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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흥행에 핵심에는 승리가 있다. 그리고 이 '승리'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은 세 종류의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 팬, 살아 있는 여자, 그리고 죽은 여자. (린사모로 대표되는) 아시아 금융 자본과 (전원산업으로 대표되는) 강남 부동산 자본이 한류 스타 승리의 명성과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연예계 인맥이라는 가치에 투자했고, 그 결과 클럽 운영을 명목으로 각종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버닝썬 카르텔'이 탄생하고 또 공고해질 수 있었다. - '본문'(32쪽) 중에서

 

 

페미니즘, 한국 사회가 지금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저자 김신현경은 한국의 미디어산업 변동과 연예인의 존재 양상 변화를 규명한 논문으로 2014년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산업과 새로운 노동주체성에 대한 관심을 발전국가 및 국가 건설기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의 동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이토록 두려운 사랑>, 공저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일상의 여성학>,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공역으로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등이 있다. 

 

 

공저자 김주희는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섹슈얼리티 산업 연구자. 10대 여성들의 몸과 성역할을 자원 삼아 수익을 내고 있는 '티켓 다방'에 대한 연구로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막달레나의집 현장상담센터에서 기지촌 현장 활동을 했다.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에 관한 논문으로 2015년 여성학 박사 학위 취득 후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성매매 산업 내 '부채 관계'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으로 한국여성학회 제3회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을들의 당나귀 귀> 등을 함께 썼다.

 

 

공저자 박차민정은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성적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들이 만들어져온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명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조선의 퀴어>가 있으며, <1920~30년대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 <1920~30년대 '성과학' 담론과 '이성애 규범성'의 탄생>, <AIDS 패닉 혹은 괴담의 정치>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 명의 저자들은 근현대사, 대중문화 산업, 성매매,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연구하며 한국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해왔다. 이런 오랜 연구를 통한 분석에 더해, 지금의 페미니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들을 병치시킴으로써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해석한다. 즉 버닝썬 게이트를 88올림픽 시기의 환대 문화와 연결 짓고, 고 장자연 사건을 10,26의 여성 연예인들과 나란히 봄으로써 지금의 이슈들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균열임을 밝힌다.

 

 

 

88 서울올림픽과 유흥업소 지원 정책

 

88 서울올림픽은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모멘트를 제공하는 매우 의미가 큰 국제 스포츠 이벤트였다. 왜냐하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은연 중에 충분히 글로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국민의 의식이 선진화되었고 또 사회의 제반 인프라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고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전두환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를 통해 <국민참여운동백서>의 내용 속에 내 집 앞을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해 전 세계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촉구했다. 이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가족의 일상에 잘 담겨져 있다. 정부는 한국의 빈곤한 모습을 숨기고 국제적 잔치를 과시하는 그런 행정들을 속속 펼쳤다. 이에 양동 재개발로 대표되는 서울 도심부의 재개발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의 양동은 서울의 유명 집창촌이었다. 윤락여성들은 갱생 시설로 보내졌다. 상품화된 성의 범람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빈곤의 모습을 감추려는 시도였다. 1986년 1월, 전두환 정권은 일본인들로부터 기생관광이라는 오명을 듣던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총 20억 원의 특별융자금을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의 관광객용 지도에 요정의 위치를 각국 언어로 상세하게 밝혀놓았다. 나아가 서울시는 룸살롱과 카바레 등 103곳을 '모범업소'로 지정해 여러 특혜를 주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홍등가'처럼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성매매 업소 '유리방'이 본격 등장하기도 했다.

 

 

버닝썬 게이트와 여성 동원의 정치

 

2019년 우리 사회에는 '버닝썬'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고발되었다. 서울 강남에 소재하는 한 클럽에서는 약물강간, 성매매, 불법 촬영 등 선을 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서프라이즈 수준의 밤문화였던 것이다. 이 클럽은 이미 젊은 세대에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끈 아이돌 출신이 경영하는 유흘업소였다.

 

"여자가 있으면 손님은 온다"

 

주인공은 바로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였는데, 클럽의 명성은 세 종류의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 팬, 살아 있는 여자, 그리고 죽은 여자. (린사모로 대표되는) 아시아 금융 자본과 (전원산업으로 대표되는) 강남 부동산 자본이 '한류 스타 승리의 명성과 연예계 인맥'이라는 가치에 투자했고, 클럽 운영을 명목으로 각종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버닝썬 카르텔'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사건의 배후 세력들을 충분히 파헤치지 못한 진행 중인 사건이다.

 

클럽 관계자, 성폭력 가해자, 불법 촬영자, 불법 촬영물 공유자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된 여성들의 육체가 만들어낸 한국 클럽의 스펙터클은 글로벌 투자자, 아시아 재벌, 한국 남성들이 강남의 버닝썬에서 기꺼이 비용을 지출하는 선결 조건이 되었으며, 아이돌 사업가는 이렇게 보증된 여성들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투자 가능성을 확장해나갔다. 더구나 유출된 한국 여성들의 동영상은 글로벌 포르노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장자연 사건의 의미

 

1979년 10월 26일,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서는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시해했다. 사건 현장은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그리고 젊은 여성 2인이 동석한 연회자리였다. 이날 동석한 여성은 모델겸 배우였던 여대생과 당시 인기를 끌던 여가수로 강제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김 대표가 항상 술자리에 불러냈다. 회사에서 자연이는 그런 용도로 이용당했다"

- 장자연 주위 인물과의 인터뷰 내용(2009년 한 언론사) 

 

2009년 3월 7일, 당시 인기리에 방여되던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단역으로 이제 얼굴을 알리던 신인 여배우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남긴 소위 '장자연 리스트'는 성접대 상대방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여배우가 소속된 기획사의 사장이 사업상의 술자리에 그녀를 동석시키고 심지어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잊혀지던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권력형 성접대' 사건으로 결론내고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구속으로 종결되었다

 

사건의 의미는 여기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입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짐작할 만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여성 연예인의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한국의 정치, 경제, 언론의 남성 동맹과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장자연이 그토록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결국은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었던 '고통'을 저질스러운 개인에게 잘못 걸린 한 연예인의 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양공주에서 원정녀로

 

한국 사회에서의 양공주는 넓게는 미국인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한국 여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용어로, 실제는 보통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지칭한다. 때로 '유엔 마담', '유엔 사모님', '양갈보'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 영토 내 미군 기지촌에 거주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여성들이다.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기지 안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기도 했고 미군의 아내 신분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많은 여성들이 한국 기지촌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도착 즉시 미국의 안마시술소나 술집으로 인신매매되기도 했다. 또 많은 여성들이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서 현지 블로커의 도움으로 미국 내의 군 기지 주변 성매매 업소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한인 여성들이 더 이상 미군과의 결혼을 통해 미국 성매매 산업에 충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했다. 즉 2008년 11월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90일 이내의 관광, 상용 목적으로는 미국으로의 입국이 간편해짐에 따라 성매매를 목적으로 단기간의 원정을 떠나는 소위 '원정녀' 현상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동시대 한국의 성매매 경제 규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로 '코리안 바(Korean bar)'가 이미 고유명사가 된 사실이 보여주듯 한국식 룸살롱과 같은 영업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성매매 업소는 대형화되었고 각 업소 영업 방식이 세분화되고 등급화되면서 성매매 산업의 경제 규모가 팽창했다. 룸살롱은 더 이상 화이트칼라 남성들만 찾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계층 남성들의 놀이터가 되어야 했고, 룸살롱은 가격 수준, 접대 여성들의 외모 등급과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의 범주에 따라 세세하게 등급화되었다.

 

오늘날의 등급화된 성매매 산업에는 여성들의 이동을 끊임없이 권장하는 브로커와 성형, 헤어, 의상 등의 상인이 함께 포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더 많이 투자한 여성'이 높은 등급에 속하므로 주변의 상인들에겐 이익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쉴 새 없이 업소를 이동하며, 잠시 해외 업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바로 '원정녀'의 탄생이다.

 

 

페미니스트 정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해자는 '우리' 민족 외부에 있다고 가정되어 규탄되면서 식민지 피해자로서 '우리'는 더욱 결속된다. 물론 가해국 일본을 규탄하고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우리'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은 전시 일본군에 의해 제도화된 성폭력 사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말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의 삶의 경험도 피해를 구성하는 일부다. 그렇다면 현재의 민족주의적 방식의 '위안부' 기억 활동을 통해 '우리'가 결속되는 데 정작 누락되어 있는 것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일 것이다.

 

 

사랑과 연애의 사이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랑과 연애라는 이슈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순수한 감정으로 여기는 사랑과 연애 이면에 권력과 폭력이라는 어두운 면이 자리잡고 있다. 책은 이와같은 사랑과 연애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성학 입문서인 셈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그때의 사건 사고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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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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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규모와 시각의 차이 때문에 평면을 '모호'하게 인지한다. 바다에서 배는 평평한 대양 위에 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는 곡선이지만 착각하여 평평하게 보일 뿐이다. 반면에 우주정거장에서지국의 둥근 모습을 바라보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진다. - '당연한 듯 특별한 평평함의 세계' 중에서

 

 

평면의 실체를 파헤치다

 

책의 저자 B. W. 힉맨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의 역사학과와 서인도대학교의 명예교수이다. 역사와 지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서인도대학교의 모나 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으며 자메이카에서 약 30년간 살았다. 음식의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2008년에 <자메이카 음식 : 역사, 생물학, 문화>를 출간했고 이후에는 노예의 역사를 다룬 책을 썼다. 대표적인 저서로 <식량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2012), <카리브 해의 역사>(2011) 등이 있다.

 

고대로부터 평면은 인간들에게 당연하고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우리들은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산다. 이를테면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바닥과 벽, 도로와 철도, 의자와 테이블 등 평면은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 대부분은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데도 우리들은 왜 평면성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할까? 평면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것일까?

 

평면은 굴곡 없음, 수평, 예측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속성은 이동과 활동에 최적화된 것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효용성이 크다. 반면에 평면은 단조로움, 단일성, 부재, 결핍, 평범, 결함과 같은 뜻도 담고 있다. 흔히 우리는 흔히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것을 더 높게 평가한다. 평평한 풍경은 특징 없음, 지루함, 흥밋거리가 없음, 우울함으로 폄하되기 쉽다.

 

 

 

 

 

정말로 지구는 둥글까?

 

 

우주에서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는 거의 완벽하게 둥근 구형球形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에 들어서 비로소 나타난 시각이다. 과거엔 두 다리를 닿고 있는 이 땅을 평평한 것으로 이해했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 베다에 의하면, 우주는 본디 3 부분으로 구성된 통일체인데, 신이 지구, 우주, 하늘로 나누었다고 한다. 5~9세기 인도에서 편찬된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은 지구를 달걀 모양의 우주 중심에 위치한 '평평한 원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이 지구의 표면을 평평하다고 이해하면 어려운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즉 지구는 어떻게 안정성을 유지했을까? 또 일출과 일몰, 별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날씨가 맑은 날에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고 꽤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반면에 지평선에서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착각이라는 것은 땅을 조금만 돌아다녀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둥글게 펼쳐진 듯 보이는 창공과 근본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땅 역시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많은 문화에서 택한 해결책은 지구가 바다에 떠 있는 원반이고 단단한 반구로 덮여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이런 지구 중심 모형에서 평평한 땅은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천체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이 모형의 주된 목적은 진짜 미스터리인 지구와 하늘 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 혹은 공간의 기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지된 우주에 관한 수수께끼였다. 물질이 생기려면 창조 행위가 필요하지만 공간은 그냥 한없이 그 자리에 있다. 공간은 창조되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기정사실로 취급된다. 이러한 이해는 평면 개념이 당연시되는 데 기여했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

 

개천설蓋天說~ 하늘이 '뒤집어놓은 그릇' 모양의 지구를 덮고 있으며, 땅은 '장기판처럼 사각형'

혼천설渾天說~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일주운동을 하며, 땅은 구형

 

중세 시대 내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우주론 문헌은 주로 유럽의 학자들과 성직자들만 보았고 지구가 네모라는 개념을 포함한 이론적 논쟁이 13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서 자국어로 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전 세계를 세 부분으로 나눈 평평한 원으로 상상했다. 이는 T-O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O안의 T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있고, 원의 바깥 띠는 바다였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왜 평평하게 만들어야 할까?

 

 

농업은 토목공사에 크게 공헌을 했고 대개는 지역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농업은 또 삼림의 벌채를 유도하고 숲을 평평하게 만든 곳에 공터를 만들어냈다. 처음 농업이 등장한 지역은 작물 재배, 가축 사육, 그리고 도시화가 시작된 지역과 마찬가지로 숲이 울창했다. 또 불의 사용은 사냥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숲이 덮힌 지역을 파괴, 그 자리에 탁 트인 초원이 들어서도록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현대의 자본집약적 농업은 평평한 땅, 대규모 농장과 경지를 선호한다. 경작과 수확에 사용되는 고가의 대형 농기계들을 이런 환경에 도입했을 때 수익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상의 커피는 가파른 비탈에서 자라지만 수확용 기계는 그런 지형에서 넘어져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기계를 값비싼 노동력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지역에서는 가파른 비탈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평평하다는 이점이 있는 환경에서 커피를 재배한다.

 

 

이렇게 농업의 경제학평평한 부지에 대한 선호(특히 평지가 매우 넓을 때)와 대형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농지를 만들고자 땅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쌀이나 밀, 그리고 옥수수 등 곡물 농사에서 현대식 농기구들은 변화 없는 평평함을 요구한다. 1900년경 증기기관을 농기계에 사용했을 때는 땅을 매끈하게 고르고 엔진이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기계 앞쪽에 무거운 롤러를 부착했다. 이렇게 땅의 표면을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최대의 수익을 내는 형태가 가능해진 것이다. 평평한 땅은 농업의 원자재인 셈이다. 그래서 농지의 평평함은 경제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전달하는 매체는 평평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문자, 도형, 그림 등 수많은 형태의 표현에는 일반적으로 평평한 표면을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평평하고 매끄러운 표면이라 할지라도 나무 몸통, 돌기둥 등은 비교적 관리가 어려웠다. 그리고 판독도 힘들었다. 또한 동굴의 벽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휴대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쓰기와 읽기라는 측면에서 평평한 표면에 대한 수요는 증가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존이라는 효율성을 감안할 때 가볍고 부피가 작은 표면이 당연히 필요했던 셈이다.

 

기원전 3000년 경, 고대 이집트에선 혁신적인 파피루스가 등장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었고 보통 20장을 연결해 두루마리로 만들었다. 특히, 표준화된 너비와 품질로 만들어져서 평평하고 유연한 표면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문학적인 글을 쓰기엔 흰색과 노란색 파피루스가 선택되었고, 갈대 붓이나 펜으로 글을 썼다. 이후 두루마리의 경쟁자로 코덱스(책자본)가 등장했다. 낱장을 끈으로 묶어서 양면에 글을 쓰는 형태였다.

 

이후 기록의 도구로 종이가 발명되면서 대변혁이 일어난다. 종이는 기원전 200년 이전에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는데, 600년 경에는 나무껍질, 대나무, 등나무, 대마, 천 등으로 만든 종이가 흔히 사용되었지만 이 종이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한 번에 한 장씩 만들어 펼친 뒤 햇볕에 말렸기 때문에 평평함의 정도가 균일하지 않고 다양했다. 중국의 이 발명품은 먼저 인근 국가인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800년 경에 종이 제조 기술이 서쪽 유라시아로 전파되기 시작됨으로써 양피지와 파피루스를 대체했다.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처리되고 전달되건, 우리가 이를 시각화하는 방법은 평평한 2차원의 표면 위 하나의 상으로 펼쳐진 세계의 평평한 이미지에 대한 해석과 여전히 연결된다. 인간의 시각 체계는 이미지의 깊이 단서를 이용해 구성 요소들의 공간적 배치를 구성하고 3차원 속성들을 인식하도록 발달했지만, 컴퓨터가 생성한 디스플레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볼 때 관찰되는 왜곡이 어떤 경우에는 평평함의 단서로 설명될 수 있다.

 

 

평평함에 대한 이런 단서들이 나타나는 것은 모니터를 볼 때 초점거리가 고정되어 있고 머리 움직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큰 평면 스크린의 몰입형 디스플레이로 보면 거리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된다. 이런 인식상의 문제가 있고 눈과 프레임에 해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메시지이건 대개 그 전달 매체는 계속해서 평평한 표면이다. 

 

 

 

 

전자광학 디스플레이 장치들의 평면화

 

 

표면이 곡면이던 텔레비전과 거의 모든 전자광학 디스플레이 장치들이 19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평면화되어왔다. 이런 변화의 주된 원인은 얇고 가벼운 평판의 제작이 가능해져서 이동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평판디스플레이는 휴대폰부터 랩톱, 디지털시계, 노트북컴퓨터, 디지털카메라,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품에서 볼 수 있고 광원이 음극선관에서 액정, 플라즈마, 유기재로 바뀌면서 계속 평평하게 유지되어왔다.

2000년에는 전 세계에 보급된 평판디스플레이 기기가 20억 개에 이르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기기들이 제공하는 2차원의 이미지를 보면서 일상을 보낸다. 이렇게 평면화된 2차원의 가상 세계에 중독된 사람들이 받는 심리학적, 생리학적 영향은 파멸적일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런 중독자들은 히키코모리로 불리는데 보통 집, 혹은 심지어 자신의 침대를 떠나기 싫어하고 실제 세계보다 가상 세계를 더 좋아해서 때때로 굶어 죽거나 방치되거나 자살까지 이르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문제화될 소지도 충분히 엿보인다. 평평함이 만들어낸 몰가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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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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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도자들이 한 행태를 저들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망한다. 찬란한 문화전통과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성리철학과 슬기로운 성왕이 조선을 지배했는데, 그 조선이 망했다.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선은, 1밀리미터도 오차가 없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망한 것이다. 두 번 망하지 않기 위해, 200년 아니 500년 전부터 이 나라 지도자들이 헛디딘 땅들을 찾아 징비를 해볼 작정이다. 미래를 위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 ''프롤로그' 중에서

 

 

 

 

대한민국을 징비하다

 

 

책의 저자 박종인은 1992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주로 여행을 담당했다. 2015년부터 '박종인의 땅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역사 기행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TV조선에 역사 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 잘못 기록된 역사를 땅에 남은 흔적을 통해 확인하는 TV 시리즈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 기행 <여행의 품격>과 글쓰기 가이드 <기자의 글쓰기>, 인물 기행 <한국의 고집쟁이들>, <행복한 고집쟁이들>, <골목길 근대사>(공저), 여행 에세이 <내가 만난 노자>, 인도 기행서 <나마스떼>,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공저)와 한국 여행 가이드북 <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 등이 있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운명의 1543년)에서는 당시의 조선과 일본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비교한다. 즉 일본의 열다섯 살 어린 영주는 모든 재산을 털어서 서양의 우수한 무기 철포를 일본 전역에 보급하는 반면, 조선의 명종과 선조는 귀화한 왜인과 대마도주에 의해 제 발로 굴러들어온 총을 제작하기는커녕 창고에 처박아버리고 마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들에게 문호 개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제2부(닫아버린 눈과 귀)에서는 어떻게 일본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가는지를 소개하고, 이에 반해 성리학이라는 학문에 매몰된 조선의 지배계층은 서원書院을 설립, 오히려 상공업商工業을 억압하고 과학을 무용화시키는지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제3부(근대의 서막, 종말의 서막)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대처를 비교하면서 무기력하게 망해가는 대한제국의 말로를 보여준다. 

 

 

 

 

'눈 뜬 놈이 이긴다'

 

큰 배 한 척이 들어왔다. 선원만 100명이 넘었다. 생김새도 기이했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동승했던 명나라 유생 오봉은 이들이 서남만인西南蠻人 상인들이라 했다. 이틀 뒤 도주 다네가시마 도키타카가 이들을 만났다. 이들 손에는 두세 자짜리 작대기가 들려 있었다. 작대기는 가운데가 뚫려 있었다. 바위 위에 술잔을 놓고 그 작대기에 눈을 대고 겨누니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나며 잔이 박살났다. 은으로 만든 산도 무너뜨리고 쇠로 만든 벽도 뚫을 것 같았다. 도키타카는 "보기 드문 보물이로다"라며 거금을 주고 두 자루를 사고 화약 제조법도 배워 가보로 삼았다. 열다섯 살이던 도키타카는 "모든 이가 원하는 것이니 내 어찌 이를 혼자 숨겨두겠는가"라며 기슈에 있는 승병 장군 스노기노보에게 보냈다. 한 자루는 대장장이인 야이타 킨베에게 하사해 역설계를 명했다.

 

이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1543년 9월 23일부터 며칠 동안 다네가시마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실로 여기서 말하는 작대기는 100년 전 유럽에서 발명된 화승총, 아쿼버스였다. 41살의 대장장이 야이타는 철포를 분해, 자체 제작에 돌입했다. 하지만 나사가 문제였다. 이런 부품에 무지했던 터라 국산화의 길은 불가능했다. 이에 야이타는 자신의 외동딸을 포르투갈인 기술자에게 바치며 기술을 전수받았다. 일본의 첫 국제결혼 사례이다.  


조선에도 철포가 찾아왔었다. 일본보다 12년이나 늦은 1555년 5 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대마도 사람 평장친은 동래에 와서 자기를 조선이 받아주면 총통 만드는 법을 전수하겠다고 하자 다음날 사간원이 명종에게 "총통을 주조해야 하는데 철재가 없으므로 버려둔 큰 종으로 총통을 주조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삼 정승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불교 신봉자인 명종은 딱 부러지게 "오래된 물건은 신령스러우니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부수어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당시는 왜구가 호남을 침탈한 '을묘왜변' 때였으므로 정말 한심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1589년 7월 1일, 대마도 사람들이 경복궁을 방문해 선조에게 조총을 바쳤다. '대마도주 평의지 등이 조총 수삼 정을 바친 것이다. 우리나라가 조총이 있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그날 평의지는 공작새 한 마리도 선물했다. 조선 정부는 공작새는 남쪽 바다 섬에 풀어주고 조총은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그 총으로 사격을 했고 분해를 했고 청소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아이로니하게도 3년 뒤인 1592년 임진년, 도요토미의 조총 부대가 조선 땅을 일순간에 유린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전쟁 발발 100년 전까지 조선은 무기 강국이었다. 화약도 만들고, 화기도 만들면서 왜구를 경계하는 그런 나라였다. 1479년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기술 유출을 우려해 '화약 장인'의 동행을 금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첨단 군사국가였다. 이후 조선은 무기에 대해 무관심했고, 반면 일본은 필요성을 절감했던 탓에 유럽으로부터 화약과 철포를 수입해 자제 제작함으로써 무장화까지 성공했던 것이다. 이런 차이는 결국 나라 지도자와 지배계층의 통찰력 부족 때문인 것이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은 임진왜란이라는 대형 전란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비리를 삼가하자는 가르침을 담았다. 물론 임진왜란 발발 당시 영의정이란는 직책을 맏았던 고위 관료 류성룡이기에 책임론에선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만큼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이 명심하고 간직해야 할 점이라고 본다.

 

저자 박종인도 이런 점을 기저에 갈고 1543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조선과 일본을 비교해 나간다. 한편,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유럽인의 사고를 지배했던 천동설天動說이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구가 움직인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년)라는 지동설地動說로 바뀌면서 대항해의 시대는 더욱 가속화됨으로써 일본에 도착한 포르투갈인은 최초로 일본에 총포를 제공한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이란 통치이론에 매몰된 왕과 지배계층의 사대주의 추구로 인해 단지 외국 문물을 '오랑캐의 것'으로 폄하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으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말이다.

 

"비록 조총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쏠 때마다 다 맞힐 수가 있겠습니까?"

 -신립

 

특히, 당시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는 신립은 류성룡의 충고(조총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요새인 문경 새재를 방치하고 충주 달천변 진흙탕에 배수진을 쳤다가 팔천 여명의 정예부대를 몰살시키고 자신도 탄금대에서 투신, 생을 마감했다. 탄금대에 세워진 그의 기념탑은 전승기념이 아닌 실패 기억탑인 셈이다.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전란으로 인해 풍전등화 위기에 처한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순신, 권율, 김시민 등의 군사 지도자와 의병 및 승병 등의 목숨을 건 항전 덕분에 결국 나라와 백성을 보전했지만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 탓에 국토와 민심은 황폐화되고 말았으며 이후에도 나라의 지도자와 지배계층이 크게 각성하지 못했기에 조선의 국운은 점점 쇠퇴해 마침내 대한제국의 말로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책을 마감하고 있다.         


황제라 친한 고종의 대한제국 때인 1902년 5월 30일 아침 경운궁 함녕전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다음날 아침 또 잔치가, 밤에 또 잔치가, 6월 1일 아침과 밤 또 잔치가 열렸다. 잔치는 6일, 18일에 또 열렸다. 19일 밤에는 제국 영빈관인 대관정(현 프라 자호텔 뒤편)에서 '각 공사, 영사와 신사를 청하여 기악으로 잔치를 벌였다' 궁궐 잔치에는 평양, 선천, 진주와 서울에서 무용과 음악을 맡은 기생 80명이 동원됐다. 매천 황현에 따르면 궁내부에서는 잔치를 위해 프랑스제 촛대와 밥그릇을 구입했다.

그 해 굶주린 경기도민들이 파주에 있는 인조릉 장릉 송림을 침범해 나무껍질을 모두 벗겼다. 왕릉을 지키던 병사들은 이를 막지 못했다. 송림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죽은 사람이 줄을 잇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 공식 명칭은 '어극 40년 칭경예식稱慶禮式'이다. 11세에 왕위에 올라 40년이 된 것이다. 기념식은 10월 18일로 예정됐다. 하지만 여름부터 창궐한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어서 행사는 거듭 연기됐고, 그해를 결국 넘겼다. 1902년 8월 10일, 칭경예식사무소가 의정부에 보낸 공문에는 칭경행사 비용이 100만 원으로 나와 있다. 당시 대한제국 총예산은 758만 5,877원(세출 기준)이었으니, 나랏돈 13.2%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얼마나 황당한 낭비인가 말이다.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세 가지 사건

 

1543년 3월 21일, 유럽 - 지동설 발표

1543년 9월 25일, 일본 - 철포 수입

1543년 날짜 미상, 조선 - 서원 설립 

 

 

 

 

대한민국 징비의 열쇠

 

 

개방교류, 다양성대중의 각성. 이 네 가지 단어에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한 나라 백성을 고난으로 이끌었고 한 나라 백성을 부강한 나라로 이끌었다. 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게 서기 1543년에 벌어진 세 가지 사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징비懲毖의 열쇠'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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