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방탄생활 -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후회 없이 행복하게
팀 누나즈 지음 / 가디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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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2-08-08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서평 등록이 안되네요.ㅠㅠ
 
우리술 익스프레스 - 와인, 위스키, 사케 못지않은 K-술의 매력
탁재형 지음 / EBS BOOKS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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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내 SNS 프로필에 적혀 있던 타이틀은 ‘제법 성공한 술꾼’이었다. 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 제조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닌, 그저 술을 사랑하고 술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주제에 나라의 큰일에 쓰일 술을 추천하고, 좋은 술이 자웅을 겨루는 자리에서 그 술을 심사하고, 마셔본 술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여러 사람의 군침을 돌게 만든다면 그것이 ‘성공한 술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애주가의 오지랖으로, 이 글을 썼다. - '시작하는 글' 중에서




우리술의 탄생


알코올 향을 통해 잘 익은 과일을 발견하는 방법에 능숙해진 우리 조상들은 과즙을 함빡 머금은 프루츠 칵테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과일을 담아두었던 그릇 아래에 고여 있는 미심쩍은 액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세심하게 관찰해보니 매혹적인 향을 풍기는 걸 알게된 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을 것이다.


일단 이 매력적인 향이 거부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 중에서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아마도 그 액체에 최초로 손을 댔을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은 점차 그 오묘한 맛과 향에 빠져 연거푸 손 바가지로 액체를 들이켰을 것이다. 이후 얼굴이 홍조색으로 바뀌면서 점점 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헤퍼지고, 기분이 엄청 좋아짐을 느끼다가 결국엔 잠에 푹 빠져들어 코를 골았을 것이다.


우리술은 대부분 '곡주穀酒'이다. 뽀얗고 걸쭉한 탁주濁酒, 우아한 향의 맑은 액체인 청주淸酒, 뜨거운 불기운을 담은 소주燒酒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술의 구분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안동소주


예로부터 안동은 소주의 고향이었다. 몽골군이 한반도를 유린하던 시절, 이들이 병참기지로 삼았던 개성, 안동, 제주 등지에서는 증류주 문화가 꽃을 피웠다. 안동은 대대로 사대부의 고장이었다. 집집마다 제사를 비롯해 손님을 치를 일이 많아서 소주는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였다.


소주를 빚는 방법, 즉 제조법은 가문마다 달랐다. 이를 '가양주家釀酒', 즉 집에서 담근 술이란 의미다. 술을 잘 빚기로는 역시 아낙네의 솜씨를 따를 수가 없었다. 안동소주는 안동 반남 박씨 가문의 가양주인데, 현재 '명인안동소주'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찬관 대표의 할머니도 그런 분 중 한 분이다.


문배술


들큼하고 씁쓸한 희석식 소주가 우리가 오랫동안 마셔오던 것인줄만 알고 지내던 시절에도 문배술의 이름 석 자 정도는 애주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축구라는 경기를 떠올리면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떨쳤던 차범근 이름 석자 정도는 모두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문배술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자부심이었다. 심지어 그 이름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술에 담긴 향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도 그러했다.


'문배'가 '야생 배'의 일종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문배술이 배로 만든 과실주로 착각하기 쉽겠지만 사실은 곡물인 '수수'와 '조'로 만든 '증류식 소주'이다. 전혀 배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문배술에선 상큼한 배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문배술의 고향은 평양이다. 겨울이 길고 땅이 척박해서 논농사가 어려운 북한땅에선 쌀보다 흔한 밭농사 작물인 수수와 조로 술을 담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배술의 전통을 잇고 있는 이승용 문배주양조원 실장의 고조모인 박씨 부인이 집안 대소사에 내놓던 소주가 바로 '문배술'이다.


국가무형문화재 '문배주'보유자인 이기춘 명인이 자란 환경은 '누룩 뜨는 냄새와 술 익는 냄새' 속이었지만, 직장은 술과 문관한 대한항공에 입사해 17년간 경영조정실, 회장 비서실 등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직장에서 퇴근한 후 아버지 이경찬 선생의 뜻에 따라 새벽까지 꾸지람을 들으며 문배술을 내리는 기술의 전수가 이어졌다고 한다.


한산 소곡주


소곡주는 "무왕이 신하들과 함께 소곡주를 마셨다"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소곡주는 누룩을 적게 쓰고 저온장기발효를 거쳐 만든 술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원군을 이끌고 귀국한 왕자 풍이 이끈 백제부흥운동이 실패하자 망국의 슬픔을 달래고자 당시 주류성에서 여인들이 흰 소복을 입고 술을 빚았는데, 이 술이 소곡주라는 백제역사와 관련된 얘기도 있다.


한산 소곡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쌀로 빚은 술이라서 사장될 위기가 있었다. 1979년, 고 김영신 할머니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소곡주를 인정받았지만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은 법으로 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산면에서 워낙 소곡주가 유명했기에 잔칫집에 불려다니며 할머니는 술을 빚어주었다고 전한다.


소곡주를 만드는 과정은 맵쌀을 갈아 먼저 백설기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덕을 잘게 부순 뒤 누룩즙을 섞어 삼사일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한다. 이때 메주콩과 말린 구절초를 함께 넣어준다. 메주콩은 술이 쉽게 쉬는 걸 막기 위함이고, 구절초는 특유의 향과 함께 발효시의 잡균을 방지할 목적이다.


우리술에 지역성을 담다


중소 규모의 전통주 양조장들이 생존을 위해, 혹은 전통주의 복원이라는 장인의 열정을 바탕으로 프리미엄급의 우리술을 재창조해 냈다면, 대형 양조장들의 경우엔 시장 점유율의 회복과 확장을 위해 대중의 니즈에 부합하는 새로운 술을 만들어내는 접근을 시도했다. 이런 업체들의 경우엔 매출 규모가 크고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통주 면허를 받지 못하고 일반주류제조면허로 영업을 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젊은 양조자들이 우리술 관련 창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돈이 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2017년의 온라인 쇼핑몰 판매 허용이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다른 종류의 술들이 모임의 감소와 건강 중시 풍조 속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택배를 통해 문 앞으로 배송되는 시스템과 유통 마진을 뺀 '가격 경쟁력'에 기인한다. 이는 코로나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트렌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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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빈틈을 채워주는 교양 콘서트
김도균.이용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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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2-08-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서평등록이 인 되네요.ㅠㅠ
 
나를 내려놓으니 내가 좋아졌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최화연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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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기긍정감이 의외로 낮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생활 방식이나 업무 방식은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법’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었지요. - '머리말' 중에서




우리는 하루의 절반을 내 일상을 보여주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보낸다. 그렇게 해서 SNS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내 안에 타인 중심주의를 심어놓는다.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았다’보다 ‘남들은 오늘 이렇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책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내 마음 들여다보기',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네모토 히로유키는 1972년 생으로 2000년부터 전문상담사로서 1만 5천 건이 넘는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와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연간 100건 이상의 강연을 열고 있다.


'행복한 것'과 '행복한 편인 것'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네'하고 즉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받고 멈칫거리며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런 말을 하면 괜찮을지 여부를 말이다. 그래서 '행복한 편이다'라고 말한다.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지, 행복한 편은 뭔가? 왜 그럴까? 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이렇게 말하면 욕 먹을 게 아닐지 그만큼 자신이 없는 것이다. 행복은 '나의 기준'이지 '남의 기준'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쾌적한 집에 살면서 가족이 화목하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친구도 많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행복’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높게 설정하면 행복해도 된다는 허가를 스스로에게 내릴 수 없습니다.(27쪽)


성실함은 왜 힘들게 할까?


성실한 사람일수록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도 창의력이 필요하거나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책임감도 강해 서 고민을 혼자 끌어안기 쉬운 데다 뭐든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스스로를 옥죄는 상황을 자초한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여라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처럼 미래의 행복만을 꿈꾸면서 현재의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가르키는 말이다. 즉 현재의 내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등 현시점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게 없는 무언가(파랑새)를 찾아 헤맨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오늘의 최고는 어제의 최고와 다를 수 있다. 오늘 하루도 오전과 오후가 다르기도 한다. 아침형 인간은 오전에 컨디션이 좋고 아침 활동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저녁이 될수록 컨디션이 좋아진다. 그렇다. 미루지 말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으로 집중하라.


매력과 장점 찾기


자신의 매력과 장점을 찾는 과정 자체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치유하는 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시간을 많이 들여 이 과제를 수행해보자. ‘나의 매력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생각이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비교 대신 행복하다고 착각하라


심리상담가인 저자는 현대인들이 과거 시대에 비해 매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즐기는 듯 보이는데도 전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쉽게 지치는 이유를 밝힌다. 바로 끊임없는 비교와 지나치게 높은 기준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잘사는 것의 기준, 성공의 기준, 부자의 기준' 등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사실상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높은 기준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물론 꿈과 이상을 좇으며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늘 다음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바보처럼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다.


방하착放下着


불가에선 '방하착'이란 말이 있다.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는 가르침이다. 텅 빈 마음, 즉 마음의 실재를 일컫는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책 제목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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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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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등장하는 스물다섯 명의 인물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투옥이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끝내 지키려 한 삶의 원칙이 있었다. 자유와 평등, 여성 해방과 노동 해방,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등등. 추구했던 목표는 각자 달랐지만, 자신이 삶의 원칙으로 세운 가치들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곰곰 돌이켜보면, 모두 공동체의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진 존재들이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을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고공투쟁 노동자 강주룡을 비롯해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그리고 위안부 참상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 등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긴다. 2부에서는 최초의 도전을 감행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을 비롯해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던 박열이나 바이러스 퇴치 역사의 전설 이호왕의 이름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선 시대와 불화한 이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1960년대 문학소녀의 대명사’ 전혜린,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 ‘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 김승옥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바 이들은 명성을 드날렸으나 시대와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방황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 책에 소개되는 25인의 20세기 인물들의 삶에서 다소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 최초의 고공투쟁 노동자


한국 최초로 '고공농성'을 실행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여성노동자 강주룡(1901~1931)이다. 그녀는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공이었다. 평양의 상징 대동강 을밀대에 올라 농성하다 끌려 내려와 구속된 후 단식 저항을 하다가 3개월도 안 돼 죽고 말았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휘청거리던 조선고무공업계의 공장주들은 불황 타개책으로 임금 인하를 단행한다. 하루 열다섯 시간 넘게 일해도 고무신 한 켤레 값도 못되는 일당을 받던 노동자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1930년 8월 사용자 연합인 '평양고무공업조합'이 기존 임금에서 17% 삭감 조치 방침을 노동자들에게 통보했다.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일제 권력과 결탁한 자본가들을 비판하며 반대 투쟁을 일으켰다.


1년 가까이 이어진 투쟁에도 별 성과가 없자, 1931년 5월 16일 평원고무공장 여공들은 단체로 단식 파업에 돌입했다. 평양 전체 2,300 여 명의 고무직공들을 대표해 이들이 앞장서서 투쟁을 전개한 셈이었다. 이 파업을 주도했던 강주룡은 일본 경찰의 개입으로 여공 20명과 함께 공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포기를 모르는 그녀는 2층 누각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농성에 돌입했다.


강주룡의 고공농성과 죽음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노동자의 임금 문제가 무산자無産者 대중의 생존권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여공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란 사실을 각인시켰다.


평양과 경성을 비롯한 전 조선의 공업지대에서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단결해 거센 투쟁을 시작했다. 동맹파업, 단식투쟁, 고공농성 등 강도 높은 저항이 이어졌다. 1930년대는 소비 문화가 꽃피는 ‘모던 조선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노동자 무산대중의 생명권과 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일본군 전쟁 범죄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


1991년 8월 14일 김학순(1922~1997년) 할머니는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계 최초로 공개 증언했다.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절절하고 힘찬 결기가 느껴지는 '사회적 고백'이었다.


김학순의 증언 이후 우리 사회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식민 지배와 전쟁의 참상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사회적 경험으로 남게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김학순 이후 용기를 얻은 많은 위안부 할머니가 저마다 자신의 끔찍한 과거를 증언하기 시작했다. 김학순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여성 활동가였다.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혁명가


경북 문경 출생인 박열(1902~1974년)은 어릴 적부터 명석해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당대 명문 서울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에 진학, 삼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해 10월 그는 일제가 마련한 규율과 질서 하의 교육 과정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 자퇴를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구두닦이,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정부 단체인 '흑도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아나키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자신의 소울 메이트인 가네코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열혈 아나키스트로 활약했다.


192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모순도 극심한 탓에 이를 해소할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였던 것이다. 특히,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던 청년들에게는 아나키즘이 세상을 변혁시킬 방안으로 기대를 받았다.


박열과 가네코 커플은 제국주의의 정점에 일본천황이 있다고 판단, 천황을 처단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책이라고 결론내고서 천황 암살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실행했다. 박열은 천황이 기거하는 궁성의 우편배달부로 위장 취업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이 발각되어 박열 커플은 일본 사법당국에 긴급 체포되고 말았다.


박열과 가네코는 끝내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이내 둘은 천황이 내린 특별조치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받는다. 박열은 형의 경감 소식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으며, 가네코는 천황의 칙서를 받자마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일제는 조선인 대역죄인도 감싸 안고 용서해주는 천황의 대범한 풍모를 연출할 의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의 정당치 못한 사법 조치 자체를 무시하겠다는 뜻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한국 여성운동을 이끈 용기 있는 언론인


조성숙(1935~2016년)은 평생 언론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서울 동숭동에 위치했던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그녀는 <여원>을 발행하던 학원사에 입사했다. 잡지사 기자 생활 중 남편을 만나 결혼, 20대 중반 몇 년을 가정주부로 지내다 196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동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그녀는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일했다. 노골적인 검열 속에서도 정권을 비판하는 논설이 몇 차례 나가자 즉각 압박이 들어왔다. 정부가 나서서 광고주들을 윽박질러 광고를 싣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를 포함한 기자들은 해고조치되고 복직 투쟁을 벌였다. 이후 그녀는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병상에서 흐려진 기억을 되살리고 불편해진 손을 움직여, 언론인 생활 40년을 회고했다. 그 기록이 바로 <한겨레와 나>다. 이 책에는 ‘동아투위’ 활동과 한겨레 창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설명이 담겼다. 여성 운동가이며 민주 언론인이기도 했던 조성숙 개인의 자랑스럽고 보람된 발자취인 동시에, 한국 언론이 독재와 자본에 맞서 싸우며 성장한 가장 내밀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개척자


눈을 희번덕거리는 ‘광인의 낫질’ 씬, 바로 이 한 장면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됐다.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화가 나 있는 건지 미쳐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피지배자의 기이한 모습. 조선인 관객들은 나운규(1902~1937년)의 성난 얼굴을 보며 만세 운동이 좌절된 이후 겪었던 깊은 상실감을 보상받았고, 거칠 것 없이 날로 번성하던 제국 일본의 지배자들은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희열’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예술적 능력은 귀하고 드물다.


1960년대 고독한 영혼의 상징


문학 소녀 전혜린(1934~1965년)의 삶을 그 누구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듯이, 그녀의 죽음 역시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불가해의 영역일 뿐이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과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다만, 그녀의 결단은 한국 사회의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측면들과 결부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이며 대중의 정서를 크게 격발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녀의 죽음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과 남성 지식인 주류 문화가 구축한 세계의 질서에 대한 마지막 저항 혹은 굴복의 한 장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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