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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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자유와 평등, 민족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가치관들이 모두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과 전 세계에 그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이렇듯 절대 권력의 왕정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의 국민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해온 프랑스. 유럽대륙 한복판에 자리한 채 수많은 주변국들의 부침을 받으면서도 최강대국의 지위를 놓치지 않은 프랑스의 저력은 과연 무엇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프랑스의 실체를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앙드레 모루아<프랑스사>다. 

 

 

프랑스 역사저술의 완결판

 

1793년 1월 16일, "국민이여, 짐은 죄 없이 죽는다"라는 외침과 함께 루이 16세의 목이 단두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지 4년 만에 벌어진 이 참극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형에 찬동했다는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전력을 다해 혁명을 유지, 발전시키지 않으면 자신들도 곧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은 19세기 유럽 정치 혁명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책의 저자 앙드레 모루아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전기작가이며, 역사가이다. 그의 본명은 에밀 헤르조그, 1885년 프랑스 엘뵈프에서 태어나 루앙에서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대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로 손꼽히는 알랭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역사서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7년 <영국사>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1943년 <미국사>를 펴내며 역사가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책도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인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를

 

 

 

 

 

 

 

 

 

프랑스의 기원

 

기원전 10세기경 알프스 산중에는 리구리아인, 피레네 산중에는 바스크인의 선조로 추정되는 이베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지중해를 건넌 페니키아인의 선원들도 와 있었다. 당시 셈족 상인들이 진주, 토기, 화려한 색깔의 직물 및 노예를 교역했다. 그 뒤를 이어 그리스 항해자들이 해안지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동방 문명, 종교사상, 신비주의, 화폐, 올리브 재배법, 비교적 완전한 언어 등을 들여왔다.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의 포카이아에서 건너온 항해자들이 건설한 마살리아는 그리스상인들이 브리튼(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구입한 주석을 게르마니아 지방의 육로와 하천을 통해 들여와 수출하는 무역항이었다. 그리고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그리스인이 건설한 식민 도시 니카에아(니스), 이가테 튜케(아그데), 앙티폴리스(앙티브) 등이 남프랑스 해안지대에 산재했다. 프로방스 지방의 풍물은 그리스인의 풍습으로 바뀌었고 이 지방에 올리브나무뿐 아니라 삼나무, 무화과, 포도, 석률 등이 들어왔다.

 

메로빙거 왕조의 역사는 갈로-로마의 주교 그레고아르를 통해, 훨씬 근대에 와서는 역사가 오귀스탱 티에리(1795~1856년)가 저술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자유주의자인 티에리는 자신을 갈로-로마인의 훗손으로 맏고 싶어 하는 프랑스의 일반 민중을 프랑크족 후손인 이기적인 계급과 대립시키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다고베르트 1세왕(629~639년)의 치세는 메로빙거 문명의 절정기로 이탈리아, 스페인, 게르마니아까지 관여했으나 이후로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메로빙거 궁전은 창녀굴이고 프레데공드는 굉장한 요녀다"

 

프레데공드 왕비와 브룬힐데 왕비 사이의 투쟁은 30여년 동안 이어졌다. 힐페리히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모의 시녀 프레데공드는 모략 끝에 왕비가 되어 경쟁자들을 교살하고 그 소생들까지 박해한 역사상 매우 간악한 여자 중 한 사람이었다. 스페인 서고트 왕국 출신으로 벼락출세한 프레데공드와 동서지간인 브룬힐데는 프레데공드보다 16년을 더 살았으나 결국 아들인 클로타르 2세(584~629년)을 통해 사후 승리를 거둔 셈이다. 늙은 브룬힐데는 신하의 배반으로 클로타르 2세에 붙잡혀 달리는 말에 매달려 죽는 참혹한 처형을 받았다.

 

메로빙거 궁전의 생활은 터키의 할렘과 노예시장을 방불케 했다. 할렘에 득실거리던 수많은 여인은 왕비가 되려고 온갖 음모를 꾸몄다. 국왕이 사망하면 왕자들이 왕국을 분할 상속하는 관습으로 인해 왕위를 계승할 때마다 형제간에 불화가 발생했다.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형제들은 다른 형제에게 음모를 꾸몄고 패자는 처형내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왕들은 모두 처자를 살해했고 누구나 얼마 되지 않은 금전에 매매되었다. 다고베르트 왕처럼 명망 있는 군주도 수많은 첲첩으로 인해 심신을 소모한 나머지 서른네 살에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존속되기는 어렵다.

 

중세기 프랑스 문명의 형성 

중세기는 고대 문명과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있었으나 그렇다고 참담한 암흑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세기 문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인간에게 도덕적, 사회적 평등을 부여하는 한편 서유럽의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았다. 물론 아테네, 로마, 비잔틴, 알렉산드리아가 과거에 성취한 문명은 12세기의 파리에 비견할 수 없을 만한 수준이었으나 고대 문명이 계속 발전하려면 새로운 접목이 필요했다.

 

프랑스 중세기 문명의 독창성은 지중해적 요소와 야만족의 요소를 융합해 새롭게 빚어낸 데 있었다. 프랑스 문명은 주변 문명이다. 인류의 새로운 개화 현상은 여러 가지 영향을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지역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프랑스는 지중해 해안에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세계와 대서양 해안에서,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과 피레네 산맥 지방에서, 이슬람교도와 라인 강 유역에서 야만족과 접촉했다. 이런 혼합을 통해 프랑스는 유럽 중앙의 영구적인 한 지방으로 머물 운명을 모면했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일찍이 10세기에 태동해 12세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 사상과 예술은 전 유럽에 널리 전파될 기세였다. 

 

 문예부흥과 졸교개혁에 따른 프랑스의 변화

 

문예부흥은 하나의 정신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혁명이 스스로 고대 철학과 스콜라 철학 간의 사상적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믿는 동안 사실은 그 속에 국가주의, 프랑스 혁명, 근대 과학, 심지어 세계대전의 싹까지 잉태되고 있었다. 18세기 사람들은 국왕이 옥좌에 있고, 영주가 성관에 있으며 사제가 성당에 있는 것을 보고 본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문예부흥에 따르는 지적혁명은 종교개혁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문예부흥의 기본적인 본질은 계시된 진리라는 관념과의 절연이었다. 사실은 신교도 계시를 전혀 부인하지 않았고 단지 계시의 한계를 성서의 권위로 제한하려 했을 뿐이다. 20세기에 인문주의혁명은 가톨릭과 같은 정도로 신교도를 위협했다. 이 관점에서 신구교 간 종교전쟁은 형제간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은 실제로는 대립하는 운동이었다. 나중에 프랑스의 신교도는 기타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이었고 문예부흥의 조류와 사실상 합류했다. 물론 16세기에는 위그노파의 어느 누구도 신교도의 이러하 변모를 예상하지 못했다. 칼뱅은 브리소네 주교보다 자유주의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에베르와 당통이 죽자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다. 지나치게 힘을 얻은 그는 자기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했다. 그는 계속해서 혁명재판소에 보다 많은 사람의 목을 요구했다. 주교, 수도사, 무신론자, 왕당파, 공화주의자, 베르됭의 처녀들(1792년, 베르됭에 진주한 프로이센군을 환대한 처녀들), 징세 청부인 등이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로베스피에르는 전능했으나 전도가 막연했고 감각조차 상실한 상태였다. 목월 22일(1792년 6월 10일)에 발표된 법령이 개회 중에도 의원의 불가침권을 박탈해 생명을 위협하자 가장 겁이 많은 의원들도 이제 국가를 위해 행사하지 않던 용기를 발휘했다. 교활한 책사 푸셰는 공회, 특히 마레당을 움직였고 공안위원회에서는 카르노와 그의 동지들이 생쥐스트의 협박을 받고 로베스피에르의 적으로 전향했다. 처형은 더욱 극심해졌고 홀로 남게 된 과부와 고아들은 로베스피에르를 저주했다.

 

로베스피에르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는 사태가 발생했다. 유력한 의원 장 랑베르 탈리앵이 혁명재판소에 출정하려하자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 치열함을 알고 있던 로베스피에르는 선수를 쳤다. 즉 1794년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에서 연설을 통해 보안위원회와 공안위원회의 숙청을 요구했다. 다음날 생쥐스트는 국민공회에서 교묘한 연설로 전제정치와 탄압, 국민의 대표인 위원의 권한 침해 등을 금지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을 제의했다. 공회는 곧 무기한 개회를 선언했다.

 

"폭군은 물러가라!"

 

의장의 명령에 따라 헌병들이 로베스피에르 형제와 생쥐스트를 체포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었음을 알게 된 파리 코뮌은 교도소에 명령해 로베스피에르의 수감을 거부하고 시청으로 연행하게 했다. 다음 날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일당과 함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단두대에 올랐다. 군중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폭군들아 죽어라, 공화국 만세!"

 

체제 동요 이후의 프랑스

 

1815~1870년 프랑스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정치체제가 불안정하고 다양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사실상 인구적, 산업적, 군사적 우월성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권력이란 피통치자 대다수의 지지 없이는 권세를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지지가 없어지는 순간 무정부 상태나 민심 동요가 일어나고 심하면 내란이 발생한다. 대혁명은 국왕에게서 존엄성을 박탈했고 그 후부터 프랑스에서는 정통성의 존재가 모호해졌다.

 

일부에서는 정통성이 부르봉 가문의 속성이라 믿었고 1870년에도 앙리 5세를 왕위에 추대하려고 완강히 고집하는 왕정주의자가 적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샤를 10세의 그림자는 왕가의 존엄성을 흐려놓았다. 파리의 민중은 부르봉 가문의 국왕을 두 번이나 타도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공화주의자들은 이 가문이 반동과 복수를 벼르는 당파의 수령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분가는 상속권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마저 잃어 아무런 정통성이 없었다. 제정은 망명 중인 나폴레옹 3세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직 나만 시국을 수습할 수 있다"라고 말했으나 왕위 계승권과 자코뱅주의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보나파르트주의는 모순을 내포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없었다. 대다수 귀족계급과 시민계금은 공화정체제를 공포정치와 무질서로 인식했다. 아무튼 어떤 정치체제든 프랑스 국민을 분열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5 공화국의 출범

 

10월 5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드 골 장군을 지지하는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 선출을 광범위한 선거인단에 위임했다. 이제 국가원수 선출을 의회가 아니라 프랑스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선거인이 담당한 것이다. 코티 대통령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으므로 가망성 있는 유일한 후계자는 국민 절대다수의 신임을 받던 드 골 장군뿐이었다.

 

드 골 대통령의 ㅈ지방 순행은 그의 인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프랑스 국민은 그들이 되찾은 자신감이 외국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지했다. 곧 자본이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과거의 음울하던 정세는 일변했다. 그동안 프랑스 통화는 외국의 불신을 받았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외화보유고가 20억 달러에 달했고 새로운 차관을 요청하는 대신 과거의 차관을 상환할 정도가 되었다.

 

경제적 지위가 강화됨에 따라 프랑스는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을 통합하는 구상을 지지했고 경제공동체와 프랑스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강조하는 대서양공동체 등의 결성에도 찬성했다. 정부가 당면한 중요한 기본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알제리~ 알제리의 미래를 자유투표로 선택하는 자결 방식을 제의

프랑스 연합~ 계속 정치적 유대를 맺는 그룹, 독립해서 프랑스와 유대를 유지하는 그룹

핵무장~ 국가방위를 동맹국가의 선의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세계정세~ 독일과 원만한 관계, 이탈리아와 친선관계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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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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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어떤 감정이며, 그것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행복이 내일도 지속될까.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상태다.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 그것이 곧 행복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환경이 나의 행복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책의 저자 배철현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동시에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그 종교들을 탄생시킨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헬레니즘 문명을 가르치고 있다.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와 법무부가 진행하는 서울남부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 주임교수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등이 있다.

 

그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수련이 뒤따라야 함을 강조한다. 이때 필요한 도구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생각'이다. 마치 태권도를 배우는 과정처럼, 흰 띠에서 출발해 노란 띠, 파란 띠, 빨간 띠, 그리고 검정 띠에 도달하는 그런 생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육체의 흔련과 마찬가지로 정신도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점점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자신의 임무를 실천해나가는 긴 여정인데, 이 여정엔 늘 예상하지도 않은 '괴물'이 등장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너무 쉽게 타인의 평가와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마음가짐이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됐는데, '고독, 혼자만의 시간 갖기', '관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기', '자각, 비로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용기, 자기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 순으로 총 28개의 주제어로 자기수련에 관한 글을 담고 있다. 이글은 지난 1년 동안 한 신문사에 연재되었던 '배철현의 심연'이다.

 

 

   

고독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 탈레스

 

천재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자신의 욕망을 탐색하고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며 삶을 통해 실현한다. 천재는 남다른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생각은 매일매일 변화를 거듭하며 나 자신을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하는 높은 차원의 시선이다. 그 시선은 어제까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를 아낌없이 버리고, 그 한계를 선명하게 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 있더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몰입한다.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임무를 찾아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몰입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에게 인내를 선물한다. 그 인내는 내가 몰입한 임무를 더 깊이 사랑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회개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틀과 규율을 어겨서 그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다. 회개란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미세한 소리에 반응하는 영적인 운동이다. 엘리야는 고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왕 주위에서 배금주의를 부추기며 아부하는 950명의 예언자들과 정면으로 대결한다.

 

하지만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은 자신들의 통치를 방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죽이려 하자,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 황량한 불모의 땅에 들어선 그는 화산 분출로 아루어진 험준한 산속 동굴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일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아온 그였지만 돌아온 것은 왕으로부터의 살해 위협뿐이었다.

 

그는 동굴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듣는다. 이는 온전히 몰입할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내면의 소리' 였다.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불평을 쏟아낸다. "일생을 올바르게 살아왔는데...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그러자 마음의 소리가 말한다. "나는 네가 찾아다닌 바로 그 신이다.산 위에서 나를 찾아보아라!"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산이 쪼개지고, 지진이 일어나면서 화산이 분출하고 용암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 속에 신은 없었다. 불이 휩쓸고 지나간 한참 뒤에야 어떤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섬세한 침묵의 소리'였다. 마침내 엘리야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가 바로 신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신이란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소리, 온 마음을 집중할 때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소리임을 깨닫는다.

 

 

관조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 소크라테스

 

이 우주에서 시간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돌이킬 수 없다. 오직 미래라 일컬어지는 미지의 경계로 만물을 강제 진입시킨다. 인간에게 남겨지는 것은 과거라는 기억뿐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어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그저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면 과감히 잘라내자. 그것만이 우리를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진입하게 해줄 것이다. 단절이란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이다. 

사유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나의 생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낼 조각품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정을 부단히 움직이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몰입이란 자신을 새로운 시점, 높은 경지로 들어올려 그곳에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이다. 몰입은 또한 군더더기를 버리는 행위다. 알게 모르게 편견과 고집으로 굳어버린 자신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과감히 유기하는 용기다. '심연'은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이다. 이 심연의 존재를 알고 운명적인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우리느 '영웅'이라고 한다.

 

 

자각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 힐렐

 

우리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같이 철학적이고 영적인 질문들은 자립을 모색하는 첫 걸음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남긴 이야기에 의지해 찾으려 한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과 그들의 사상을 숭배하는 학파의 이론, 창시자를 신격화한 종교의 교리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길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곧 내가 추구해야 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용기

 

"인생은 두 가지 길뿐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이다" - 아인슈타인

 

‘교육’이란 이 편안한 세계가 결국 나 자신을 질식시키는 ‘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자극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알을 깨도록 용기를 주는 멘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편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해 다른 여러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다.

 

열정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힘이다. 열정은 타인을 위한 보여주기가 아니다. 열정은 자신의 성장을 막고 있는 정신적인 콤플렉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그 민낯을 드러낸다. 자신의 약점을 응시하다 보면 우리릐 뇌는 자동 저정 상태로 진입한다. 이것을 '몰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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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 이야기 - 페이스북을 만든 꿈과 재미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움직이는 서재) 7
주디 L. 해즈데이 지음, 박수성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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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일 때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면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얻을 수 있으며 평화를 지켜가는 든든한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마크가 실현하고 싶은 '진짜 꿈'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미래를 향한 저커버그의 '진짜 꿈'

 

타임지 선정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016년 포춘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CEO 등, 이는 미래를 볼 줄 아는 통찰과, 인간과 기술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췄기에 IT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적합한 롤모델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게 보내는 찬사들이다. 

 

그는 컴퓨터 덕후였던 10대 시절부터 재미를 위해 프로그램 개발을 했으며, 페이스북 창업 이후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가장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연결시키려 도전한다. 이 책은 모든 이에게 좀 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보다 투명한 세상을 만드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으로, '재미'와 '교육적 가치'라는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IT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 주에서 컴퓨터 마니아였던 치과 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대인 가정의 균형 있는 교육을 받고 자란 컴퓨터 영재다. 고등학교 시절 '시냅스'라는 사용자 취향 저격형 음악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사와 AOL에서 1백만 달러에 프로그램 인수 제안을 하였으나 진짜 멋진 개발자가 되려면 돈에 이끌려선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그 제안을 거절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개발자로서의 진화는 계속되어 사람을 연결시키는 '더페이스북' 서비스를 하버드 대학에서 먼저 시도하다 미국 전 지역의 대학에 공개하면서 페이스북(21세에 개명한 회사명)을 창업했다. 이후 미국 전역의 고등학교에 공개하면서 사업에 전념코자 다니던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22세에 페이스북을 일반에 공개했으며 회사를 10억 달러에 사겠다는 야후의 제안을 거절하며 젊은 개발자다운 패기와 배짱을 보였다.

 

'페이스북 선거'라 불렸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세계 최대의 SNS로 자리매김하였다. 2010년 <포브스>지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 1위'로, 같은 해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후 매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2015년 딸의 출생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페이스북 보유지분 99%(한화 52조 원)를 기부하는, 세계가 놀랄 만한 결정을 하여 '생각의 크기'가 남과 다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찍부터 컴퓨터와 친했다

 

마크 저커버그의 부모는 유대인의 전통 교육방식인 '하브루타'를 받고 자란 유대인 출신이다. 이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목표를 지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식들의 교육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호기심이 많았던 마크 저커버그의 생각을 확장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아들이 한 살일 때 치과 의사이자 컴퓨터 매니아였던 아버지 에드워드는 컴퓨터를 진료실에 비치해놓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컴퓨터를 접하면서 활용법을 익히게 되었다. 마치 텔레비전처럼 아들에게 컴퓨터는 익숙한 전자제품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컴퓨터 모델은 고가였다. 개인 의사가 컴퓨터를 비치한 경우는 당시로선 최초였다.

 

열두 살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저크넷'을 개발할 정도였기에 그의 부모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도해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개인교사로 채용했다. 수업의 효과는 엄청났다. 개인교사는 마크가 엄청난 지적 능력을 지닌 컴퓨터 천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실력으로 가르치기엔 역불급임을 인정하고 그 자리를 사직하고 말았다.   

 

아들의 컴퓨터 재능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깨달은 부모는 아들의 교육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곳을 알아본 후 아들의 교육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답스 페리에 있는 머시 대학을 택했다. 이 대학에선 목요일 저녁마다 대학원 수준의 컴퓨터 강좌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크는 아버지와 함께 어른들 사이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다른 수강자들 눈에는 아버지를 따라온 아들처럼 보였다. 어느 날 강사는 마크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스터 저커버그,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와 수업에 같이 오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왜냐하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에 와서 지루하게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가 딱해 보여서요. 아이가 여기가 아니면 갈 데가 없는 건가요?"


"선생님, 이 강좌를 신청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저예요!"

 

 

마크는 언제나 개발자, '시냅스'를 개발하다

 

마크의 다음 목표는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엔 아이팟이 대중화되기 전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컴퓨터로 음악을 듣다가 다 끝나면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만 햇다. 또한 듣고 싶은 음악 목록을 일일이 지정하는 것도 불편햇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마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코딩 실력이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친구 애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애덤, 재생 목록이 끝날 때마다 일일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게 귀찮지 않아?"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아니지. 만약 컴퓨터로 음악을 계속 틀어야 한다면 굉장히 불편한 일일 거 아냐"
"그러면 음악이 끊어지지 않게 재생 목록을 최대한 길게 만들면 되잖아"
"긴 재생 목록을 만들려면 마우스 클릭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질걸?”
"그래서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을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애덤,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컴퓨터가 알아서 재생 목록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귀가 솔깃해진 애덤은 마크의 제안대로 프로그그램 개발 계?을 짜디 시작했다. 몇 달 동안 고생한 끝에 둘은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바탕으로 디지털 목록을 생성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 소프트웨어인 '시냅스'를 개발 완료했다. 그리고 이를 졸업 과제물로 제출했다. 이후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에서 백만 달러에 매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둘은 함께 고민한 끝에 무료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개발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앞으로 진짜 멋진 개발을 해서 내 꿈을 이루고 싶어"

 

 

하버드 촌티, 엄청난 일을 벌이다

 

하버드에 입학한 마크는 폴라리스 소재의 후드 점퍼와 청바지, 흰 양말과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등의 그의 패션 센스엿다. 가히 촌스러움을 넘어 패션 테러리스트 격이었다. 이런 비호감 패션 덕분에 그는 2학년이 될 때까지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하버드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공간은 사교클럽과 기숙사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버드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다양한 클럽에 가입한다. 그래서 그도 유대인 학생 사교 클럽에 가입했지만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마크의 관심을 끄는 웹 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로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2003년 초, 인터넷에 공개된 '버디 주'였다. 이를 개발한 이는 바로 그의 고교 친구 애덤이었다. 애덤은 칼텍으로 진학하는 바람에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마크는 일주일 동안 밤을 세워 2학년 가을 학기가 시작될 무렵, 매우 간단한 형식의 '코스 매치'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는 학생들이 신청한 수업 과목들을 공개하는 사이트엿다. 이를 토대로 서로에게 수업 과목을 신청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사이트는 하버드생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그래서 마크는 졸지에 하버드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후 윙클보스 형제와 디브야가 진행하던 '하버드커넥션'에 동참했다가 탈퇴를 선언했는데, 탈퇴에 앞서 '더페이스북닷컴'이란 사이트를 등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장 7년이라는 기나긴 소송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즉 윙클보스 측은 아이디어가 도용되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크는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고 '코스 매치'는 한 가지 예였다.  

 

마크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웹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에두아르도 세버린,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 아리 하시트 등 믿을만한 극소수의 친구들에게만 털어놓았다. 이 일은 혼자만의 힘으론 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들의 동의와 참여가 필요했다. 모두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마크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전부터 구상하던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웹 사이트가 하나 있어. 사용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관심사, 좋아하는 것들, 자신에 대한 정보와 친구 목록 등 자신을 표현하고 공개할 수 있는 사이트지. 물론 사용자들끼리 다른 사람의 정보를 볼 수도 있고, 서로 의견도 나누면서 소통할 수 있어"


"내가 듣기에 '버디 주'와 '코스 매치' 등을 이것저것 합쳐놓은 백화점 버전 같은데"
"비슷해. 이제 하나의 사이트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얻길 원하니까"

 

 

세상을 연결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다

 

"오 마이 갓, 난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10억 달러를 눈앞에서 거절하다니요. 괴물 청년이에요. 하하하!"


200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로부터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페이스북의 평가금액은 150억 달러(약 17조 원)였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즉시 한방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번에도 마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늘 꿈꾸던 황금 같은 기회였지만 마크는 페이스북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액의 제안들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마크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지 제가 만든 것을 거액에 팔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꿈을 지키려는 치열한 싸움

 

2013년이 되자, 마크는 자신의 진짜 꿈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통신 기업들의 협력을 얻어 인터넷닷오알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도,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 콜롬비아 등 인터넷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낙후지역의 사람들에게 무료로 인터넷을 공급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을 위해선 엄창난 사업비와 새로운 첨단 기술이 필요했다. 이들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대안으로 드론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타인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추진하려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이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인가, 그 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거기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마크는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일,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하는 것이기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주저앉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했다.

 

마크가 시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당신은 인터넷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공급했을 때 어떤 변화와 이익이 생길 거라고 보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자선사업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기부경제를 통해 제 꿈을 실행해보려는 겁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낙후된 지역에 인터넷이 보급되면 그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과 건강, 직업 등 많은 정보들이 제공될 겁니다. 그러면 정보의 격차가 해소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지요. 우리가 하려는 일은 그럴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런데 기부경제의 효과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인터넷 이용자가 3배로 늘어날 겁니다. 그러면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나 가능성도 3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기회와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있으면 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라도 활력을 가질 수 있고,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회까지 활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이것이 제가 기부경제를 통해 이루려는 꿈입니다"

 

 

 

10명의 사람이 연결되면 1명의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부 결정을 발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마크 저커버그의 리더십은 특이하고도 독특해 보인다. 가진 것을 기꺼이 남을 위해 내놓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역할을 '내일'을 바라보며 '다음'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자세 또한 매우 훌륭해 보인다. 비즈니스를 통해 재산을 좀 축적했다고 일국의 대통령 자리를 넘나보는 그런 부류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의 앞날에 화이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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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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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알루미늄 전문기업 알루코그룹(전 동양강철) 회장 박도봉과 어지러운 세상에 일침을 날려온 실천하는 인문주의자 김종록이 만났다. 박도봉 회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3D 제조업으로 1조 매출 흑자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이 책은 베이비붐 세대의 시골 흙수저 출신 창업가가 창업성공 신화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인터뷰 형식을 통해 담담히 풀어내는 한편,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경영인과 인문학자가 고민하고 좌절하는 이 땅의 청장년들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조언과 사회를 향한 변화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산업 현장에서 꿈을 키우다

 

"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막막합니다. 나부터라도 일자리를 더 만들고, 무언가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내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 박도봉

 

 

 

박도봉 회장은 산업화 3세대에 해당하는 중견기업 창업자다. 정부로부터 금융 특혜를 받던 산업화 시기도 아니고, 국내에서는 버텨내기도 어렵다는 5대 취약 산업(열처리, 주물, 주조, 단조, 도금)으로 현재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대다수의 우리 시대 청춘들처럼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지방에서 상업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며 창업자의 꿈을 키웠다.

백수 시절에 현재의 아내를 만나 방 두 칸짜리 반지하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겨우 옷장과 생필품을 들여놓을 정도로 옹색한 집이었다. 차일피일 취업을 미루며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무렵, 처형이 다니던 'H열처리회사'에 취직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허름한 열처리 공장에서 2년 가까이 기름밥을 먹다가 1인 청년 창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당포와 처형에게 빌린 600만 원으로 창업했다.

그는 대전상고와 목원대 상업교육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 중소기업 노사지도학과를 다니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쇳가루와 기름때 전 현장 노동자로 출발하여 특유의 영업력과 신기술 개발로 (주)케이피티를 설립하고 코스닥에 상장시킨 창조경제의 모델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로 법정관리 중인 동양강철을 2002년 인수해 재상장시키면서 ‘고래를 삼킨 새우의 신화’로 재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상장폐지된 기업이 재상장된 첫 사례다. 전 세계 경제의 세계화 추세를 미리 예측해 2007년에 이미 베트남에 진출, 현대알루미늄VINA를 설립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무대에서 비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파나소닉, 샤프, 소니, 필립스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글로벌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2016년 한국언론문화진흥원 '한국경제를 빛낸 인물', 2014년 TV조선 경영대상, 2011년 매경이코노미 '대한민국 100대 CEO', 2010년 대전MBC 지역경제발전 부문 한빛대상, 2010년 대한경영학회 최고경영자대상, 2006년 지식경제부 석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그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자 창조경제의 산증인이다.

 

 

 

땀이 혈통이다

 

태어날 때부터 승자와 패자가 정해져버린 계층 고착화는 '금수저, 흙수저론'을 낳았어요. 그런데 이렇다 할 패자부활전도 없다면 정직한 노동이 무의미하게 돼요. 청년들의 노력 또한 헛수고에 그치는 거지요. 심각한 문젭니다. 헬조선, 탈조선이 왜 나왔겠어요. 각자도생할 거면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왜 필요해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와 우리 그룹에서도 힘닿는 데까지 이바지할 생각입니다.

 

박도봉은 오직 땀 흘려 정직하게 모은 돈만을 인정한다. 최근에 새롭게 불거진 옥시 사건이 좋은 예다. 돈벌이를 위해선 살인도 서슴없이 하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다고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위세를 행사해서도 안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의 돈은 결국 서민들의 지갑에서 나온 거잖아요. 감사해야 할 일이지 오만하거나 교만 떨 일이 아니에요. 뿐더러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많이 가진 사람이 불법이나 편법까지 쓴다면 공정하지 못해요. 호랑이에게 독수리 날개까지 달아준다면 살아남을 동물이 없어요. 결국은 먹이사슬 자체가 파괴되고 마는 거죠"

 

 

성실이 결국 '통通'이다

 

알루코 그룹의 사시社是는 '신의, 성실, 기술개발'이다. 한때 그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장하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한국에 비해 최소 20년의 앞선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의 첨단 열처리 공장들을 견학할 목적이었다. 또한 선진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조만간 일거리가 없어지는 불행이 닥쳐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개발을 병행해야 한다는 철학을 세우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은행대출을 튼 영세업체에서 해외출장을 가고 R&D를 한다니까 다들 비웃었을 겁니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회사를 나온 이유가 바로 연구개발 때문이었잖아요. 지금 좀 잘 돌아간다고 현실에 안주하다보면 얼마 못 가 도태하게 돼 있습니다" 

 

 

대기업은 상전이 아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청기업들은 대기업에 목을 매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도봉은 대기업이 영원한 상전이 아니라고 믿고 처음부터 관계 설정을 달리 했다. 즉 발품을 팔고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한 후 양질의 싼 제품을 만들어 '우리 물건 한번 써 보시오'라며 샘플을 내놓았던 것이다. 상생하려면 좋은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R&D 주권'은 누구나 갖고 있어요. 그걸 제대로 활용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70퍼센트가 스스로 R&D 주권을 포기했어요. 대기업이 시키는 대로 만들어 납품하는 수준입니다. 대기업이 개발해놓은 걸 편하게 받아먹으려고만 해요. 그렇게 무임승차하려니 '빽'이 필요하고 상전 모시듯 절절 맬 수밖에 없죠. 그래서는 기업이 절대로 오래 못 갑니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다

 

대전에 있는 동양강철 본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 직원들이 극도로 그에게 경계심을 보였다고 한다. 즉 '구멍가게만 한 회사에서 온 저런 사람이 무슨 수로 이 부실 덩어리를 떠안고 갈 수 있을까. 적당히 생색내며 뒤로 빼먹다가 물러나겠지' 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그사이 부서와 직원들 간 신뢰도 금이 간 상태였습니다. 신뢰부터 회복시켜놔야 했습니다.

 


"오늘부터 아무리 어려워도 어음은 발행하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어음을 남발해서 할인하고 한몫 크게 챙겨서 튈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잘 지켜보세요. 어음 발행하는 날 대표직을 사퇴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인수합병이 성공하고 말고는 사람한테 달린 것이다. 인수합병이 실패하는 건 인수한 측이 점령군처럼 굴기 때문이다. 군림하려고 들어서는 절대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이후 그는 기술 후진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중국 광저우에 노조원 40명을 견학보냈다. 다녀온 뒤, 그들은 모두 기술 후진국이라는 편견을 떨쳐버렸고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노조는 반발없이 그를 잘 따라주었다.

 

 

돈을 나의 노예로 만들다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면 절대 행복하지가 않다. 그리고 돈에 집착하고 매달린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다. 벌어보면 안다. 아무리 벌어도 돈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그런데 땀을 흘리면 심신이 모두 개운하다. 특히 생각이 맑아진다. 땀은 그 자체로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맛이 있다.  

노동착취나 '열정페이' 같은 건 사라져야지요. 예전에는 현장에 부당한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많이 개선됐어요. 그런데도 땀의 가치를 얕보는 풍토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땀 안 흘리고 한몫 잡아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경멸하는 풍토가 돼야 옳지요.

 

 

현장에 있으면 비로소 보인다

 

소년 같은 풍모를 지닌 박도봉은 작업현장에 서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일반 직원들과 함께 있을 때 별반 표가 나지 않지만 현장에서 공정과정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함에 있어서 특유의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그는 마치 곷을 본 나비처럼 현장에서 더 빛나는 경영자 스타일이다.  

저는 실용주의자예요. 현장 체질의 실무형 경영자이고요. 현장에 있어야 힘이 나고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현장에서 직원들하고 부대끼면서 연구하고 개발도 했습니다. 현장에 나와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사무실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문제들이 현장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나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입니다. 우리 회사 임원들 30퍼센트가 대학졸업장이 없는 현장 출신입니다. 실력만 있으면 대학졸업장이 무슨 문젭니까.

 

 

3콩 안 하기 운동

 

베트남 은 한국과 생활 문화가 많이 다르다. 베트남 사원들은 늘 콩사오(괜찮아), 콩비엣(몰라), 콩번데(문제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일이 잘못 되어도 콩사오, 책임지라고 하면 콩비엣, 공사기간이 늦어져고 콩번데 등, 완성된 제품이 정밀하고 깔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량품 투성이었다. 베트남 현지 공장 가동 초창기엔 여러 가지 문제로 심각할 정도였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사회주의 유습이 남아 있어서 직원들이 경제관념이 부족했어요. 조직 문화의 차이 때문에 한국 간부들과 섞이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죠. 이걸 극복하려고 저와 임직원들이 작업복 입고 현장에서 밤새워 일했습니다. 그걸 며칠간 지켜본 베트남 직원들이 다가와 ‘이렇게 일하면 죽는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 그만 가서 쉬어라’ 하면서 등을 떠밀어 내보내더군요. 그제야 회사가 자신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본래 모두가 이렇게 일하는 거로구나 하고 이해했어요. 그 뒤로는 기술도 빨리 배우고 애사심이 생겼지요.

 

 

어른들이 틀렸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전체가 아닌 부분만 배울 수밖에 없어요. 거대조직이니까 변화와 혁신도 어렵고요.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기술과 영업, 연구개발, 마케팅까지 두루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거기서 신바람 나게 일하다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산업화 세대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햇다. 한국전쟁으로 이 땅이 폐허가 되자, 산에 나무를 심고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웠다. 그 공장에 불을 밝히고 철야작업을 하며 수출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그 주역들의 희생 덕분에 이 나라의 경제는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엔 취업 걱정을 그리 심하게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만 하면 몇 군데 중에서 골라서 갔다. 

윗세대가 차려놓은 밥상을 받아먹는데 익숙했지 다음 세대의 밥상을 차려주지 않았다. 지금 세대의 잘못도 아주 크다. 지금 그 대가를 우리 아들, 조카 세대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드래서 박도봉은 "지금이라도 우리 세대가 21세기에 걸맞은 창의적인 성장엔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청년이란 무엇인가?

 

창업이 그냥 돈 버는 일이 아니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꿈을 펼치는 일이죠. 보통 사람 기준으로 100억 이상의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돈이면 집도 사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아담한 건물도 사서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요. 그 이상의 돈은 사회자본이고 공공재라고 봐야지요.

 

'100세 시대'에 대부분 고작 60세면 정년퇴임한다. 향후 10~20년은 거뜬히 더 일할 수 있는데도 일에서 손을 놓아버린다. 이리되면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 그냥 늙어저리는 거다. 이렇게 30년 이상 버티다 죽으면 얼마나 인생이 아까운가 말이다. 그래서 인생 2막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65살이 넘었다고 공짜 지하철 좋아하지 말고 내 돈으로 떳떳하게 승차할 줄도 알아야 다음 세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65세에서 75세 무렵입니다. 일하려고 노력하면 늙지 않지요. 활동 공간이 넓어지면 안 늙어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 겁니다" - 김형석 교수

 

 

노력이 혈통을 만든다

 

"혈통이 혈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노력이 혈통을 만든다"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인류의 역사는 혈통이 혈통을 만들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젠 땀의 혈통시대가 열렷다. 바로 근대의 시작이며, 근대는 열심히 일하고 부를 축적한 이들의 시대였다. 그러한 근대정신이 오늘날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낳았고 귀족이 아닌 시민세력을 키워냈다. 시골 흙수저 출신의 창업 스토리는 땀방울로 세워올린 오벨리스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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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아침 지정학이나 정치학, 역사학적 맥락을 배제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면 그 뉴스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건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을 배치해놓은 다음에라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우리는 점점 더 역사적 사건과 거리를 두지 못하고 있다. - '서문' 중에서

 

 

지정학이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

 

오늘날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현재를 있게 한 굵직한 역사적 이정표들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사건들을 연속성의 맥락에서 재배치하고, 어떻게 협력과 대립이 차레로 일어났는지 또는 동시에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가두는 어두운 덫이 아니다. 밝게 비춰야 한다.

 

저자 파스칼 보니파스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로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이며, 현재 파리8대학 유럽학연구소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 <전략 연감>과 계간 <국제전략학술지>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그는 국제적인 지정학 전문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프랑스 국내는 물론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논평하고 있다. 국제관계, 핵 문제, 군축 문제, 강대국 간 파워게임, 프랑스 외교정책, 국제관계 속 스포츠 등을 주제로 40여 권의 책을 펴냈다. 프랑스 국제협력최고위원회의 위원(1999~2003), 유엔 군축자문위원회 위원(2001~2005)을 지

 

 

 

 

 

 

 

 

 과거에 발생한 지정학적 사건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또한 현실 속에서 진행형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정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은 15세기 말 대항해시대 이후 줄곧 세계를 지배해왔다. 세계의 유럽화를 통해 최초로 세계화를 진행한 것도 유럽이었지만 유럽에서 발발한 두 번의 세계대전은 유럽 중심의 국제관계를 미국과 소련 중심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국력이 쇠락해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극단의 양극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후 서로 상이한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이 지구촌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초강대국이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전쟁만큼은 피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냉전''데탕트'가 등장했다.
 
냉전 시대에 베를린 장벽 건설과 핵무기의 등장은 마치 뇌관처럼 위험스럽기 그지 없었다.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결국 냉전의 긴 시기를 관통하며 자연스럽게 긴장의 완화를 뜻하는 '데탕트' 시기로 이어져, 유럽은 가장 긴 시간 동안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반면, 공산주의 체제를 보존하기 위해 동서분열 구도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개혁을 하고자 했던 소련은 결국 붕괴하고 만다. 이로써 양극화 체제는 자취를 감추었고, 서방세계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극화 체제가 등장한다. 저자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세계전쟁에 의하지 않고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뒤바뀌게 되었지만 여전히 국가 간 긴장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20세기와 21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국제 사건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정학을 크게 냉전과 데탕트, 다극화 세계의 출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건들을 연속성의 맥락에서 재배치하고, 어떻게 협력과 대립이 차례로 일어났는지 또는 동시에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유럽의 몰락, 미국과 소련의 등장, 소련의 붕괴 등 1945년 이후의 국제관계 변화를 거시적으로 다룬 이 책은 국가의 권력과 공간의 이동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지정학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평소 국제뉴스를 접할 때 현상만 바라보고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찾게 된다.

 

7월 13일, 한국 국방부는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했다.

7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84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7월 15일,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뉴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보면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터키에서 발생한 별개의 소식들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가 이 뉴스에 주목했고, 단발의 사건` 또는 사고로 인식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여러 갈래로 또 다른 문제 및 생각해 볼 거리들을 낳는, 이슈로 여겨지고 있다.

 

걍북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는 일은 성주군, 경상북도, 좀 더 넓혀 봤을 때 대한민국만의 일일까?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세를 움직이게 만드는 어떤 힘이 숨어 있다. 이처럼 그 힘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바로 지정학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이어 프랑스에서 다시 테러가 발생한 이유에 대한 분석도 지정학에 근거를 둔다. 테러범들이 미국보다 침투하기 쉬운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도,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 등 이슬람 지역을 식민지화 했던 프랑스에 대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벌인 사건이며, 향후에도 계속 프랑스를 노린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경제 이슈도 지정학을 바탕으로 분석된다. 성주 사드 배치, 프랑스 니스 테러, 터키 쿠데타 이후 쏟아져 나온 소식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만들어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 국제유가 부담 요인 증가, 증권가 방위산업 관련주의 관심 증가 등 세계 경제 속 다양한 움직임을 야기한다는 분석과 전망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국제질서, 지정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화된 세계에서는 아무리 국력이 강하다 해도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의제와 규칙을 정하고 따르도록 강요할 수 없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미국의 실패는 세계질서에서 독주체제가 불가능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국제 질서는 현재 불확실성이라는 위기에 처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연일 쏟아지는 국제 정보의 해석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관계전략연구소의 소장이자 파리 8대학 교수인 파스칼 보니파스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지정학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정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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