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 20세기 한국사의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이름들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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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스물여섯 명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참기 힘든 일을 잘 견뎌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20세기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마련되길 바란다. - ‘들어가며’ 중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은은하게 빛난 자들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경쟁주의에 매몰되고 황금만능주의로 혼탁했던 20세기 한국을 맑게 정화시켰다. 공의公義로운 이상과 진취적인 사상을 품고 출세와 성공, 부와 명예보다 자유와 해방을 선택했다.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방면에서 활동하며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감정이 피어오르게 했다. 많은 이가 그들에게 의존했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다.


책은 ‘스스로 빛난 찬란한 별들’, ‘약자들의 편에 선 친구들’, ‘시련을 견뎌낸 존재들’ 등 총 3부에 걸쳐서 스물여섯 명의 삶을 소개한다. 이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라기보다 은은하게 자신을 드러낸 밤하늘의 별빛이다. 그래서 위인전이라기보다 오히려 다정하고 친근한 이웃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조선 최고의 무용수


최승희는 자신이 지닌 재능과 대중이 자신에게 투영하는 기대를 슬기롭게 배분하고 조절할 줄 아는 현명한 예술가였다. 또한 춤을 향한 욕망만은 양보 없이 견실하게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 외골수이기도 했다.


그녀는 대중의 ‘판타지 스타’이기도 했지만, 공교롭게도 한국 현대사의 길목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부침을 겪은 ‘곡진曲盡한 인물’이기도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최승희의 이미지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또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낙차 큰 삶의 궤적을 보여준 위태로운 예술가의 삶은, 그녀야말로 진정 ‘근대의 여성’ 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최승희의 삶과 춤은 우리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곡진한 판타지’였다고 말하는 편이 지금으로선 가장 타당해 보인다.


청춘들을 몸살 앓게 만든 시인


기형도가 생을 달리하자 대학 시절 친구들과 신문사 동료들이 힘을 합쳐 그를 기리는 유고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완전히 외울 정도가 될 때까지 머릿속에 시를 익혀뒀다가 완성되고 난 뒤에야 노트에 단정한 글씨로 적거나 타자기로 쳐놓았던 덕분에 유작 시를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살아생전 곧 발표할 시집의 작품 배치와 순서까지 설계도로 그려뒀다. 정리벽이 있었던 그의 유품이 수습되자 시집은 수월하게 발표될 수 있었다. 그가 죽은 뒤 발표된 유고시집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청년 시인의 대명사 ‘윤동주’가 재림했다거나 196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소설가 ‘김승옥’이 쓴 시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요절한 젊은 시인의 짧은 생애와 불안한 마음이 기록된 시집 한 권이 1990년대 독자들로 하여금 ‘청춘의 몸살’을 앓게 했다.


항상 신인이고 싶은 45년 차 음악가


김창완은 자신과 산울림을 ‘천재’ 혹은 ‘레전드’로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도 내켜 하지 않는다. 자신을 ‘신인新人’처럼 대하는 방송국과 팬이 가장 좋다고 여러 자리에서 말했다. 새롭지 않은 음악이 가장 부끄럽고 남과 비슷하다는 소리가 가장 싫다고 했다.


그는 젊은 후배 가수들이나 심지어 아이유 등 인기 아이돌과의 협업도 즐거워한다. 어린이 드라마 <5학년 3반>의 주제가 <청개구리>를 공연 하이라이트에 꼭 배치하고, 인생의 페이소스가 짙게 묻어나는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주제곡도 만들어 불렀던 우리 곁의 아티스트 였다.


한국 야구계의 영원한 불꽃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로서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다섯 경기에 등판해 4승 1패를 기록했다. 삼성은 ‘원투 펀치’ 김일융과 김시진이 번갈아 나오면 되었지만, 롯데는 최동원 하나뿐이었다.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에 이어 6차전에선 5회부터 구원 등판해 구원승, 그리고 마지막 7차전에서 완투승. 한국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서 한 투수가 다섯 번 출전한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혼자서 4승을 책임지고 우승까지 이뤄낸 것이다. 전무후무한 괴물 투수였다.


노동자들의 예수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청년 전태일은 열일곱 살 때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서 재단 보조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일당이 50원 정도였는데, 하루 열네 시간 넘도록 일을 하면서 한 달에 딱 두 번 쉬었다.


이후 재단사가 된 그는 2만 3천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지만 함께 일하던 여공들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네 명이 함께 생활하는 단칸방 하숙비도 월급에서 쪼개 내야 했고, 작업 때 필요한 장갑과 골무 등도 사비로 충당해야만 했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재봉질을 하다가 졸음을 못 이겨 손가락이 바늘에 찔려 피 흘리는 일이 허다했던 것이다. 실수로 비싼 옷감의 손질을 망치면 변상까지 해야만 했다. 이런 여공들에게 전태일은 늘 붕어방과 풀빵을 사다주었던 이타적인 인간이었다.


이런 열악한 노동 환경을 해결하고자 전태일은 대통령과 서울시장 등에게 노동자 실태를 알려주며 이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를 계속 보냈다. 하지만 묵묵무답이었다. 그래서 그는 온건한 방식으론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투재 방식으로 전환했다.


마침내 1970년 11월 13일에 전태일은 분신을 시도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했으며 반공주의를 제일 중요한 가치로 삼았던 소시민이었기에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도 아니며 애초에 과격한 폭력주의자 역시 아니었다.


오랫동안 숱하게 외친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 문제에 대해 어느 곳에서도 답을 주지 않았기에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충격요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이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보자는 답장을 했더라면 그는 결코 분신이라는 과격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최고의 문화재 수집가


훈민정음 본문에 해당하는 세종이 직접 지은 ‘예의例義’는 언해본으로너마 전해졌지만, 집현전 학자들이 집필했다는 ‘해례解例’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1940년 해례본이 경북 안동의 한 고가古家에서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당장 소장자를 찾아 나섰다. 전형필이 해례본을 원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조선 최고의 갑부가 찾는다니 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형필의 배포와 품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해례본을 손에 넣을 때, 거간 노릇을 한 사람이 애초에 부른 값 1천 원(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은 수고비로 따로 떼어주고 원주인에게 그의 열 배에 해당하는 1만 원을 값으로 치렀다.


이렇게 값을 치뤘던 이유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였기 때문이다. 이는 가치 있는 물건은 반드시 자신이 매긴 값을 주고 산다는 전형필의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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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레벨 - 상위 1% 투자자로 진화하기 위한 필수 스텝
스티븐 클래펌 지음, 안진환 옮김, 이현열 감수 / 알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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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창적 아이디어의 탐색에서부터 주식 매수의 결정 그리고 매수한 주식을 추적 관찰하는 방법과 매도 시점을 결정하기까지, 투자의 생애 주기 전반에 대한 나의 연구 조사 프로세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 '들어가기에 앞서' 중에서




지난 30여 년간 최상급 애널리스트로 활약해온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구체화시켜 투자할 산업과 회사를 ‘선별’하고, 그 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 대차대조표, 경영진, 해자 등을 ‘평가’하여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선별 작업


선별 작업은 이례적 평가를 식별하고 과대평가되거나 저평가된 주식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특히, 주류에서 벗어난 가치 평가 매개변수를 사용할 때 그렇다. 저자는 종종 선별 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걸러내고, 잠재적으로 흥미로운 일련의 주식을 발굴한다.


이는 투자기회를 매력도魅力度 순서대로 계층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별 작업을 여러 차례 수행하면 다수의 상대적 측정값에 따라 가격의 높고 낮음과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매력적인 기회가 절로 나타난다.


즉 우리들이 종종 한창 뜨는 테마나 미시경제적 이유로 관심을 가졌던 주식이 수차례의 선별 작업을 통해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돋보이게 드러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더욱 많은 선별 과정을 거쳐서 발견된 회사에 더 높은 투자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사실상 주식시장의 초보와 고수는 ‘투자 종목’을 얼마나 정확하게 선별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상승장세인 불마켓의 흐름에 올라탄 채 제대로 된 가치 평가 없이 맹목적으로 투자해선 예기치 않은 순간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반대로 하락장인 베어마켓에서 저평가된 종목을 골라내지 못한다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으며 잘못하면 바둑판의 악수에 버금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에 저자는주식투자의 시작이자 끝인 ‘종목 선정’의 모든 것에 대해 알려준다. 즉 ‘일상생활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구체화시켜 투자할 산업과 회사를 ‘선별’하고, 그 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 대차대조표, 경영진, 해자 등을 ‘평가’하여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이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일상에서의 투자 아이디어


전설적인 투자자는 피델리티마젤란펀드를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로서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었다. 주식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가도 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이라는 정말 대단한 책을 쓰기도 했던 피터 린치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을 소개하려 한다. 피터 린치는 스페인계 백화점 엘코르테잉글레스에서 쇼핑하던 중 이탈리아 제조사 피콰드로에서 출시한 매력적인 노트북 가방을 발견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다.


그는 피콰드로에 관심을 갖고 샘소나이트의 경쟁 업체, 그리고 잠재적 인수 합병 대상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추후 검색해보니 이미 상장된 기업으로 조만간 런던의 리젠트 스트리트에 매장을 출점할 예정이었다. 런던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조만간 주가를 올리는 데 열을 올릴 것으로 판단, 이 종목엔 투자하지 않았다. 해당 주식은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개인적 관찰은 자신에게 훌륭한 보상을 안겨준다. 오늘날은 피터 린치의 전성기에 비하면 훨씬 더 복잡하면서 정교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은 모든 투자 아이디어가 좋은 것으로 판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나 조사는 최소 일주일 이상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해 테스트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업계에 대한 이해


투자 대상 종목을 연구 조사할 때 경쟁사, 고객, 공급 업체, 수요 및 공급 추세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업계에 대해 평가해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퀄리티’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과 그의 동료 찰스 멍거는 집착적으로 이를 중요시한다. 업계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관점을 구축하는 첫 번째 단계다.


사업체의 퀄리티란 바로 워런 버핏이 거론한 ‘경제적 해자’를 평가하는 것인데, 투자 대상 회사가 평균 이상의 수익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해자의 강점을 계산하는 간단한 방법은 회사의 각 사업 부문에 대해 시장점유율별로 해당 부문의 경쟁사를 나열해보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이는 바로 실제적 진입 장벽인 셈이며 높은 자본이익률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해자를 넓히고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영진


경영진은 회사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영역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해당 주식에 투자한 전과 후에 정기적으로 관찰하는 게 필수적이다. 경영진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창업자가 이끄는 회사도 종종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된다.


대차대조표


두세 개의 대차대조표를 동시에 살펴보면 이전 연도 대비 현재의 변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과거 5년 이상의 기간은 사업체의 성장성을 살피면서 성장 달성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대차대조표의 분석은 해당 업체가 현 매출을 올리는 데 요구된 자산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는 목적이다.


고정자산이나 재고在庫, 부채 등이 얼마나 필요하고 여타 자산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아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여타 자산은 투자자에게 숨은 가치가 될 수도 있고, 영업권의 형태로 나타낼 수도 있다.


부채는 모두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층당금, 이연 수익, 연금 부채 등에 관해서 주석까지도 모두 읽어야 한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꼼꼼한 조사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사실상 재무제표의 분석은 해당 기업의 주식 가치를 평가하는 분석 기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에 확실한 자세를 견지하는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나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대차대조표를 한 줄 한 줄 검토해야만 한다.


가치 평가


가치 평가엔 다양한 매개변수가 수반된다. 모든 변수가 모든 회사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척도를 찾는 것이다. 주식별로 척도에 맞춰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애널리스트들은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 평가 비율이 있으며, 이는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가치 평가 도구를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면 P/E일 것이다. 이는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다. 투자 대상 기업을 평가하는 가장 간단하고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때 EV/EBITDA를 함께 사용한다면서 이를 권하는데, 이는 기업가치를 이자와 세금 공제 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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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소심 유령 탐정단 1 - 도서관 유령 소동 엉뚱소심 유령 탐정단 1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오로르 다망 그림, 이은선 옮김 / 한빛에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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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기론 사람들은 유령을 무서워한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유령이 어디 있어!”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런데, 사람과 바람을 무서워하는 유령이 있다. 엉뚱하고도 소심한 꼬마 유령 카즈는 오래된 학교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카즈는 벽을 통과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아니 무서웠다.


엄마는 카즈의 손을 잡고 하나, 둘, 셋을 세고 벽을 통과했지만 순간 카즈는 엄마의 손을 놓았다. 대신 문 쪽으로 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몸을 얇게 줄이고 또 줄인 후 밑으로 슉 내려가 문 아래 틈으로 빠져나갔다. 카즈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복도를 헤엄쳐 가족들이 기다리는 옆 교실로 건너갔다. 엄마와 아빠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유령의 필수 기본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바깥세상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어.”


평화롭기만 하던 카즈 가족에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커다란 노란색 트럭 여러 대가 학교에 들어서더니, 쇳덩이를 하늘 위로 들어 올려 카즈 가족들의 은신처 꼭대기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천장과 벽이 부숴지면서 카즈의 가족, 반려견 코즈모까지 모두가 바깥세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강한 바람에 떠내려가던 카즈는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유령이 출몰한다고 소문이 난 도서관이다. 이곳에서 유령이 보인다는 한 소녀를 만난다.




“너······, 진짜 내가 보여?”

“응, 보여.”

“내 말소리도 들리고?”

“그럼 당연하지.”

“으아악!”


카즈는 비명을 질렀다. 빛을 내지 않는 유령을 보는 솔리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유령 소리를 듣는 솔리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진데, 이 아이는 둘 다 할 줄 안다. 혹시 마법 소녀인가?


꼬마 유령 카즈가 보인다는 인간 소년는 바로 ‘클레어’이다. 자주 마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카즈는 자신의 가족을 찾을 방안을 모색하다가 클레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바로 도서관 유령 사건을 해결하는 유령 탐정단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훌륭한 탐정은 증거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 베켓 아저씨가 도서관 유령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때까지 우리 같이 이 사건을 파헤쳐 보자.”


이렇게 카즈와 클레어는 잃어버린 카즈의 가족을 찾으면서 도서관 유령 사건을 파헤쳐 보지만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꼬마 카즈는 도서관 유령의 실체를 파헤치고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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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트렌드 2023
표상록 외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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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달러를 넘보던 비트코인 가격이 반토막 넘게 하락하면서 거래량마저 급감했다. 암호화폐 시장에 빙하기가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1년에 걸쳐서 80% 이상 추락하는 주기적인 현상인 ‘크립토 윈터’라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비트코인의 채굴 효율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4년 주기로 가격이 급락과 급등을 반복한다. 이러한 반감기마다 비트코인은 공급이 줄면서 전 고점 대비 적게는 6배 뛰어오른다. 2012년, 2016년, 2021년에도 어김없이 벌어졌던 일들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었다. 디지털 가상 자산의 최고 전문가이자 실무자인 5인의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2023년 암호화폐 트렌드에 대한 중요한 이슈들을 다룬다. 말하자면 국내 최초의 암호화폐 트렌드書이자 최고의 전망서인 셈이다.


평화의 상징인 된 비트코인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속에서 비트코인은 빛났다.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기부금을 받는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트위터에 올리자 기부에 동참하는 전 세계인들이 암호화폐 기부 주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기부하였다. 전쟁일지라도 인터넷망만 연결되면 안전하게 어디에서든 암호화폐로 대금 지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고, 암호화폐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마침내 비트코인이 투기성 자산이라는 오명을 벗게 되었다. 비록 종전에 비해 가격은 많이 하락한 상태이지만 지금은 현물 ETF 승인을 기다리면서 다음 반감기를 기다리는 실정이다.


한국의 현주소


아직도 암호화폐를 제도권 금융에로 완전히 편입시키지 않는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다소 제도화가 늦은 편이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즉 한국은 결제수단으로서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상위 개념인 화폐로선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이보다 낮은 ‘통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 같이 금지를 통한 억제 정책을 펼 것인지, 혹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미래와 성장성을 바라보고, 시장을 활성화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바뀔 것이다. 현재라도 시장 조성과 규제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여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화폐의 논쟁


비트코인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까? 중·장기적으로, CBDC(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화폐’로 작동할 것이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한 알트코인은 ‘디지털 자산’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자산 시장 규모는 1,600조 원(2022년 5월 말 기준)으로 해당 시장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세금이 무궁무진하며, 디지털 자산 개념 확장에 따른 사회, 경제적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산업에서 생산 가치를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며, 생태계는 더욱 확장되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블록체인과 웹 3.0


웹3.0은 단순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활용해 부를 분배하고 자산을 증식하는 시대가 아니다. 블록체인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로 디지털 콘텐츠와 자산을 만들어 낼 것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예를 들어 탈중앙화 자율조직인 DAO는 기업의 기존 조직구성 방식과 거버넌스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고, NFT는 예술의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이더리움 2.0


이더리움 2.0이 대중화된다면 이더리움의 한계로 여겨졌던 탈중앙화, 확장성, 보안성 등이 극복되며 지배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이더리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솔라나, 아발란체 등 다른 레이어로 옮겨간 프로젝트들이 다시금 이더리움으로 복귀할 수 있으며, 이더리움 2.0 내에서도 수많은 확장성 솔루션이 추가되면서 더욱 기술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현재의 이더리움만으로도 디파이, P2E 게임, 예술 NFT 등 전례 없던 디지털 시장이 형성되었다. 향후 거래 처리 속도가 향상되고, 탈중앙화와 투명성이 더욱 강화된다면 사회 각 영역으로 서로 다른 결합이 나타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속출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더리움 업그레이드는 여러 애플리케이션이 구동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만들어준다. 전 세계에 뿌려져 있는 노드들을 연결해주는 ‘월드 컴퓨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더리움의 보완 플랫폼 솔라나


대표적인 결제 서비스인 비자Visa가 초당 2.4만 건을 처리하는 것을 감안하면, 초당 5만 건의 처리 속도를 목표로 하는 솔라나는 비자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을 모두 포함하여 타 시장까지 잠식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 참고로 솔라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트랜잭션 정보를 보여준다.


솔라나는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매 시즌 개발자들의 모임인 해커톤을 진행하여 프로젝트 경쟁을 붙여서 우승팀들을 발표한다. 좋은 프로젝트를 고르기 위해 해커톤 우승 개발팀을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투자 방법이다.


디파이


디파이의 투자 환경은 복잡하다. 개인투자자가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중요한 건 투자 원칙이다. 높은 수익률에 현혹되지 않고, 플랫폼의 토큰 이코노미를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또한 매매와 관련한 원칙을 스스로 세워 보아야 한다. 예치했다고 투자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더욱 중요하다. 셀시우스의 위기와 관련한 정보들은 트위터를 통해서 빠르게 알려졌다.


투자한 플랫폼 및 프로젝트와 관련한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장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장의 구조가 더욱 건전하게 바뀌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메타커머스


메타커머스는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모든 브랜드와 서비스의 본거지가 될 수 있다. 가상 및 물리적 제품 모두에 대한 가상 매장과 같은 새로운 쇼핑 방법이 늘어날 것이다. 소비자들은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3D 버전의 상품을 보고 몰입형 가상 쇼핑 경험을 통해 자신의 아바타로 옷을 입어볼 수 있어 온라인 주문으로 인한 반품 및 낭비시간을 줄이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패션산업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오염원으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어 디지털 패션은 친환경적인 패션이다. 메타버스 등의 디지털 쇼룸에서 가상 현실 피팅을 통해 고객들이 주문했을 경우 의상 제작을 할 수 있다. 패스트 패션과 같이 미리 생산되고 낭비되는 재고들을 처분할 필요가 없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알트코인 투자의 참고사항


알트코인은 뉴스에 민감하다. 대기업이 코인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나 국가기관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뉴스가 나오면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기술들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코인 판에 믿을만한 기관의 등장은 그 자체 만으로도 코인의 신뢰도를 확실히 올려 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를 미리 알아내어 저가에 매수해 둔다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들여 뉴스를 찾아낼 수도 있지만 따로 정리해둔 사이트도 있으니 이를 활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코인마켓컬coinmarketcal.com 사이트는 앞으로 있을 코인호재 일정 및 코인호재에 대한 유저의 반응을 살필 수 있으며, 쟁글Xangle 사이트는 코인 별 공시자료와 질 좋은 분석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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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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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다. 한漢 왕조의 멸망 후 무주공산인 된 천하는 혼란 속에 빠져들고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서로 황제 자리를 탐하며 경쟁에 돌입하는데, 이때 조조 또한 막강한 상대에 맞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왕국을 창업한다. 백척간두 끝에 매달린 상황에서도 선택과 결단을 내린 영웅 조조는 뛰어난 심리 전략을 구사했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와 관련된 사건 중 흥미진진한 장면을 추려 이 속에 담긴 영웅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지 않은 인간 속성은 지금과도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책 속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본다.


베푼 만큼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후한 말기의 혼란기를 틈타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다. 당시 조정 대신의 우두머리는 사도司徒 왕윤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 잔치에 대신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사실상 동탁을 제거하고 한 왕조를 굳건히 세우려는 거사를 마련할 목적이었다.


이날 예상 밖의 인물이 현장에 등장했다. 바로 조조였다. 조조는 동탁 정권에서 급부상하는 스타였기에 이 자리에 참석한 대신들은 숨 죽이며 조조의 행동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런 모임을 동탁에게 밀고하는 순간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조는 밀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조조는 자신이 동탁의 목을 성문에 걸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누가 봐도 허풍을 떠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왕윤은 조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에 왕윤은 한 왕실을 구할 좋은 방안이 있냐고 묻자, 조조는 왕윤에게 보검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왕윤의 신임을 얻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다.


때로는 맹세보다 요구가 신뢰를 얻는다. 맹세는 의구심을 부르지만 요구는 자신을 증명해보이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절대적 상징을 요구하면 확신한 각오나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왕윤의 보검은 한 자가 넘는 길이로 칠보로 장식되어 있는 명검이었다. 다음날, 조조는 승승부로 출근해 동탁에게 문안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다른 날에 비해 늦었기에 동탁이 늦은 이유를 물었다. 조조의 머리 속이 급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모임을 참석한 사실이 들통나면 목숨을 온전히 보전 할 수가 없을 노릇이다. 이에 조조는 말이 허약해서 빨리 달리지 못한 탓이라고 둘러댔다.


이 말을 들은 동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여포에게 준마 한 필을 선물하라고 명했다. 여포가 술에 취한 동탁의 곁을 떠나자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그러나 조조는 머리만 돌리면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탁은 이후 등을 보이며 자리에 누웠다. 또다시 조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내 망설임없이 검을 뽑았지만,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본 동탁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고함을 쳤다. 그때 여포가 말을 끌고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었다. 정말 조조의 두뇌회전력 하나만은 대단했다.


“승상께 바치려고 보검 한 자루를 가져왔습니다!”


제 발 저리는 도둑은 금방 잡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러기에 양심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리적 압박이 몸의 세포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통날 것이 두려운 조조는 여포가 데리고 온 준마를 타고 잽싸게 줄행랑을 치게 된다.


선견지명과 자기합리화


결국 동탁은 전국에 조조 체포령을 발동한다. 한편, 조조는 고향 ‘초군’을 향해 쉼 없이 말을 달렸지만 도중에 관군에 체포되고 만다. 막대한 상금이 걸린 현상 수배이기에 병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를 검거하고 있었다.


고을 현령은 조조를 알고 있었다. 수하를 시켜 몰래 감옥에서 빼낸 후 왜 그런 일을 도모했는지 알고 싶었다. 순간 살아날 길이 생겼음을 감지한 조조는 ‘봉황의 큰 뜻’을 거론하며 현령의 동정심을 살폈다. 이 속임수는 주효했다. 현령은 조조의 의로운 행동에 존경을 표하며 자신도 관직을 버리고 조조를 따르겠다며 자신을 밝혔다. 그는 진궁이었다.


변복을 하고 조조의 고향을 향해 나아가던 두 사람은 삼엄한 관군의 추적을 피해 여백사(조조의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움)의 집으로 잠입했다. 여백사는 이미 조조의 아버지가 피신했음을 알려주며 술상 준비를 하겠다며 마을로 나가 술을 사러 나갔다. 마치 아들과 같은 조조에게 환대하려는 여백사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여백사의 집안은 조조에게 멸문지화를 당한다.


선견지명이란 이미 벌어진 상황을 꿰뚫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날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다. 비나 눈처럼 과학적 경로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의 심리, 사회의 변화로 짐작하고 예측할 뿐이다.


여백사 집안의 가족들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돼지를 잡고자 칼을 갈고 있었다. 반면 조조의 불안한 심리는 이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했다. 여백사의 외출을 밀고로 판단했기에 칼 가는 소리와 돼지를 묶어 죽이자는 소리는 더욱 심증을 굳게 만들었다. 오직 선수를 쳐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초지종을 확인하지도 않고 여백사 가족을 모두 도륙하고 말았다.


현장을 확인한 후 진궁은 조조의 의심이 빚은 참극임을 후회하게 된다. 조조는 황급히 여장을 챙겨 말에 오른다. 말을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백사와 마주쳤다. 그의 손엔 과일과 떡, 나귀 안장엔 술병이 달려 있었다. 쫓기는 신세라 오래 지체할 수 없어서 떠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던 조조는 오던 길을 되돌려 죄책감이라곤 일도 없이 삼촌 같은 여백사의 목마저 베었다.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


“내가 세상 사람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은 나를 저버리지 못하게 할 것이오!”


이런 조조의 행동에 진궁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조조의 의롭지 않은 행동을 비난했다. 사실상 범행에 가담했던 진궁도 죄가 없다고 할 순 없다. 비난하는 것은 ‘인지부조화’를 제거하려는 행동이다. 인지부조화란 신념과 실제에 벌어진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생기는 현상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누구나 반사적으로 이를 제거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조조의 인물 됨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다소 가공된 <삼국지연의>의 한 장면에 따른 것이다. 정사正史를 연구하는 이들은 당시 여백사의 집을 찾았을 때 여백사는 출타 중이라 집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은 조조의 삶 자체였다. 동탁이 선물한 말을 타고 동탁을 배신한 일과 훗날 관우가 자신이 선물한 적토마를 타고 유비를 찾아 떠나버린 일이 그랬다. 또 죄 없는 여백사 가족을 몰살한 것과 장개의 손에 자신의 가족 전부를 잃은 것도 그렇다. 나중에는 헌제의 손에서 천하를 빼앗았으나 다시 사마氏(사마의)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빼앗긴 것도 마찬가지였다.


첫인상의 효과와 학습된 무기력


헌제는 왜 조조를 낙양으로 불렀을까? 조조의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탁을 암살하려던 ‘의로운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웅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그러기에 한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첫인상을 계속 간직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첫인상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리지 않는 한 효과는 지속된다.


남을 판단할 때 ‘초두효과(첫인상효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유비는 착하고 예의 바르게 바른길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군자형 인물은 난세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모두 유비를 영웅으로 꼽으면서도 사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뒤집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초두효과는 지속된다.


코끼리는 어릴 적부터 발목에 묶인 쇠사슬 때문에 아무리 도밍치려 해도 이 사슬을 끊지 못해 오히려 발목만 아픈 경험을 수차례 함으로써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유비가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부지불식간에 얻은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바꿀 수 없고 통제도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좌절을 겪다 보면 ‘학습된 무기력’을 얻게 된다.


기대는 열정을 타오르게 한다


우리는 현실이 아닌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의 삶이 비참하더라도 내일은 좋아진다는 믿음이 있다면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존버정신’도 먹혀드는 셈이다. 반대로 오늘은 행복하지만 내일이 비참해진다면 살아갈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유비가 암담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헌제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투명도착각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명도착각’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알 수 있으리란 착각이다. 앞서 조조가 자신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려던 여백사의 가족을 몰살한 것도 그러했다. 그렇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도 나와 동일한 생각과 느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론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투명도착각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 긴장한다. 그로인해 엉뚱한 실수를 저질러 불필요한 의심을 산다. 그렇게 의심을 받으면 본인은 상대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고 더더욱 확신하는 것이 투명도착각이 일으키는 악순환이다. 도둑이 제 발을 저려 결국 잡히는 것이 바로 이런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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