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오버 Game Over - 자원 고갈의 시대, 성공 투자를 위하여
스티븐 리브 지음, 김명철 옮김, 조한조 감수 / 세계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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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풍지박산 되면서 지구촌에 경제 한파가 몰려 왔다.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고, 베어 스턴스는 파산 직전에서 극적으로 구제되었고, 모기지론의 주역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은 사실상 국영화되었으며, AIG 역시 파산으로 내몰렸다가 구제금융이 투입되면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얼마 전만해도 한치 앞을 모를 정도로 주식시장은 휘청거렸다.

 

미국 경제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으로 업종 전환을 하고, 부실 기업들이 퇴출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 부양과 녹색산업 육성을 위해 클린에너지 산업에 대대적인 지원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후 현 정부의 녹색 성장산업 육성책과 맞물리며, 바닥을 모를 정도로 하락하던 KOSPI 지수가 800대에서 불과 8개월만에 1500대로 상승하면서 주식시장이 안정화를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도 다우지수가 9000대까지 상승해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초대형 사건들이 연일 불거져 나오자 세계 주식시장의 커플링 효과로 국내 주식시장도 끝난 것같은 반응이었지만, 대체에너지라는 테마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체에너지가 시장의 만병통치약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투자 방향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저자 스티븐 립은 립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회장이며, 30만명이나 구독하는 시사지 [컴플리트 인베스터]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그는 피크오일과 피크에너지 상태가 조만간 투자자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는 앞서 벌어진 초대형 사건들은 모두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시작일 뿐이라는 공포성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코드 그린 : 뜨겁고 평평하게 붐비는 세계]라는 그의 저서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을 종전으로 몰고 갔던 "맨해튼 프로젝트" 때처럼 대규모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사용키 위해 전폭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티븐 립은 이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즉,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려면 자원이 필요함에도 프리드먼은 개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원이 있다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 여기서 스티븐 립이 주장하는 자원 고갈의 악순환 문제를 살펴 보자.

 

1950년대에 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피크오일"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게 되면 석유 생산량은 정점에 다다르게 되며, 이후에도 많은 양의 석유를 얻겠지만 매년 꾸준히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기존의 석유매장지에서 더욱 많이 손쉽게 얻을 수 있거나, 또는 새로운 매장지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현재 과학 기술이 가장 많이 발달한 미국도 1970년 대 이후로는 석유 생산량이 계속 감소되어 왔다. 채굴비용이 많이 들어 원가 오른다면 덩달아 판매가격이 상승하는 코스트-푸쉬현상은 필연적이다. 

 

문명의 발달에 필수적인 모든 종류의 금속과 광물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자원 생산국들은 자국에 남아 있는 자원의 양이 부족해질 때까지 이를 계속 판매하며 호시절을 보낼 것이다. 또한, 자원이 부족해지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비싼 가격으로 판매할 것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 가격은 급상승할 것이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짜로 이용하기에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경시하고 있다. 그러나, 물이 없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석유를 채굴하는 데 소요되는 물도 엄청난 양이다. 물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인프라를 구축 보강해야 한다. 이럴 경우 막대한 양의 금속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친디아(차이나 + 인도)의 급격한 성장은 막대한 양의 자원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소중한 자원을 계속 고갈시킨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히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디아의 자동차 대수는 1000명당 25대이며, 미국의 경우는 1000명당 800대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보급율은 미국의 1/3수준, 컴퓨터보급율은 1/9 수준이므로 중국과 인도의 일인당 소비가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이들 나라의 중산층은 냉장고, 에어콘, 텔레비전, 자동차 등 점점 더 많은 물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풍족한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2005년 중국의 1인당 가계 소비 지출이 595 달러, 미국이 26,445 달러, 전세계 평균이 3,470 달러이다. 중국은 현재보다 5 - 6배 더 많이 소비를 해야 세계평균에 도달한다는 의미이다. 친디아의 제조업 분야에서의 자원수요가 이미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이 책은 4부에 걸쳐 18 개장으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자원 고갈, 2부에선 대체에너지, 3부에선 인플레이션, 4부에선 혼란 속의 투자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보존 자원을 고려해 볼때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시급함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에너지의 대표격인 풍력발전의 경우에도 터빈을 제조하기 위해 자원을 소비해야 하는 악순환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얼마전 보도에 의하면, 50여기의 풍차를 설치한 풍차마을, 에히메현 이카타 마을의 주민들이 두통과 이명, 그리고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새가 풍차에 부딪혀 사고가 잦고 풍량에 따라 발전량도 들쑥날쑥한 것이 풍력발전의 골칫거리라 한다.

 

거품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 회복으로 인해 자원 가격이 상승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까? 하이퍼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금을 비롯한 천연자원으로 돈이 몰릴 확률이 높을 것이다. 경제 위기의 조짐이 사라지자 중국은 벌써 지구촌의 자원을 빨아 들이는 거대한 진공청소기로 돌변했고, 원유가격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규모 지원책과 더불어 대체에너지같은 그린 산업이 경제 위기의 새로운 구원 투수가 될 것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현 정부는 그린 사업에 몰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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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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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악의 빈민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테일러 홈스, 이 공영 주택단지는 시카고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시카고의 38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 중에서 단 7 퍼센트에 불과한 면적에 28 棟의 칙칙한 고층 건물들이 약 3 킬로미터에 걸쳐 빼곡히 늘어서 있다. 마치 도시에서 격리라도 된 듯한 "빈곤의 섬" 인 이곳엔 경찰도 구급차도 호출해 봐야 오질 않는다. 주민들은 절대 부족인 생활 인프라下에서 그저 생존을 위해 매일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다.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는 인도 이민자로서 현재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빈곤층의 경제 생활 및 사회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사회학 분야는 오랫동안 통계학적 기법을 이용하는 입장과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삶을 연구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는 시카고 대학원 재학시절 통계 과학적인 사회학에 대해 크게 불만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교실에 처박혀 수학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했다. 그는 사회학 분야에서 걸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윌슨 교수의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인 도시 빈민 문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의 일은 기초 조사 질문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시카고 대학 도서관에서 흑인 청년을 둔 빈민 가정이 밀접한 구역을 찾기 위해 조사 기록을 뒤진 결과, 레이크 파크의 공영 주택단지가 유망해 보였다. 레이크 파크의 주택단지에 들어 서자 우충충한 노란색 벽돌 벽엔 적막한 창문이 줄지어 있고, 군데 군데 화재의 흔적을 드러낸 창문에는 검은 얼룩이 뻗쳐 있었다. 사전 답사차 나온 멕시코人 갱단의 정찰병쯤으로 여긴 대 여섯명이 매우 위압적이었지만, 그는 여기에서 블랙 킹스 갱단의 小두목격인 제이티를 만난다. 제이티는 체육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취직했어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퇴직하고 슬램가로 귀환한 인물이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제이티의 사려 깊음에 감짝 놀란다. 한편, 제이티는 수디르가 자신의 傳記를 쓰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가운데 둘의 만남이 지속된다.

 

갱단은 마약거래, 강탈, 도박, 매춘, 장물 매매, 그 밖의 수 많은 검은 사업으로 돈을 번다. 한마디로 無法的 자본주의를 가동하는 셈이다. 제이티는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로버트 테일러 홈스로 이주하게 된다. 이곳은 레이크 파크에 비하면 주거 규모가 열 배쯤 크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제이티는 블랙 킹스 갱단의 윗사람들 명령에 따라 두 分派를 합병하고 단독 보스가 된다. 레이크에서의 수입이 연간 3만 달러였지만 로버트 테일러에선 7만 여 달러의 수입이다.

 

제이티의 어머니 메이 부인과 가까워 지면서 조사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비록 갱단이 장악하고 있는 주거지이지만, 그들 모두는 共同體 생활을 영위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반면, 그는 정성이 담긴 음식을 대접 받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학술연구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한다. 그가 공부한 民族誌學 연구서에도 현장 답사를 할때 맺게되는 관계와 관련, 그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선 전혀 지침이 없었다.

 

코마로프 교수는 지역 사회의 2/3가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이므로 이들이 어떻게 살림을 꾸리는지 살펴 보란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민 대표 베일리 부인을 인터뷰한다. 그녀는 평균키에 뚱뚱한 몸집이며, 무릎 관절염 때문에 느린 편이었다. 지역 자문위원회 주민대표는 월 몇 백달러의 급여를 받는 선출직이다. 그녀는 건물 보수 관리를 위해 시카고 주택공사에 압력을 가하거나, 주민 활동을 위한 기금을 얻어 내는 일이 공식 직무들이다.

 

갱단과의 협력, 서비스를 받기 위한 공무원 매수, 마약에서 흘러 나온 돈의 재분배 등, 주민 대표가 권력을 휘두르는 걸 보자 그는 낙담이 들기도 한다. 또한, 사탕장수, 포주, 매춘부, 재단사, 무당, 신호대기중 자동차 앞유리 닦는 사람 등 부정한 수단으로 돈버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자 베일리 부인이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일정 몫을 벌고 있음도 알게 된다. 그녀는 이곳의 2인자인 셈이다.

 

남자들도 부정한 수익을 벌고 있다. 값싸게 집수리 해주는 목수, 무소속 전도사, 무등록 트럭 운전사, 자동차 도둑, 랩가수와 음악인, 요리사, 청소부 등도 생활 보호 지원 프로그램의 수혜를 위해 불법 경제 활동을 영위하고 있었다.

 

한편, 여성들의 생존법 목록에 의하면, 섹스를 화폐 대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식료 잡화점 주인에겐 식료품을, 시카고 주택공사로 부터는 집세 연기를,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겐 혜택 지원을 받기 위해 성상납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곳에서 퇴출되지 않으려고 젊은 부인은 베일리 부인에게 남편을 보내 접대토록 했다는 고백도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슬램가 주민들, 갱 단원들과 어울리며 체험한 삶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는 기성 사회학의 방법론에 충격을 던진다. 빈민가의 2인자인 주민 대표 베일리 부인이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릴 희생자로 만들진 마. 우린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거니까. 모든 게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물론 블랙 킹스 갱단은 시카고 경찰 이상으로 이곳의 치안을 유지하고 주민들을 통제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 한 것일 뿐임을 알고 나니 서글퍼 진다. 이상적인 공동체의 건설은 진정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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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가슴으로 소통하라 - 변화와 소통, 포용으로 초일류를 이끈 이철우의 굼튼튼 경영
이철우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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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유통분야에서 한우물을 판 저자는 업계에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유통전문가로 정평이 난 인물로서 현재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며, 한국백화점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주요 이력을 살짝 살펴 보자.

대학원 졸업후 상공회의소 산하 한국마케팅개발센터(현, 한국마케팅연구원)의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가, 1973년 봄 삼성그룹 회장실 '마케팅팀' 계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1976년 7월 롯데의 쇼핑센터사업부에 스카우트된 이래 줄곳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장, 롯데리아 대표이사, 롯데마트 대표이사 등을 거친 전형적인 롯데 유통맨이다.

 

롯데마트 대표로 부임하여 3.6.5 프로세스를 도입한다. 3개월에 걸쳐 실태를 조사하고, 6개월 동안 직원들을 새롭게 변화 시킨다면 5년 안에 반드시 롯데마트는 업계 1위와 견줄 수 있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 기법이다. 그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6개월이란 시간을 투자했다. 공감대 형성을 위한 해병대 입소 훈련은 그의 솔선수범 정신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가 실천하는 리더십을 살펴보자.

 

첫째, '현장'에서 모든 것을 찾는다.

둘째,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비전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셋째, '솔선수범'한다.

네째, '능동적으로 행동' 하고자 한다.

다섯째, '뚜렷한 목표와 책임의식'을 갖고자 한다.

 

그는 98년 롯데리아 대표로 취임하여 대박을 터뜨린다. 신구, 양미라, 김국진, 남희석 등을 등장시킨 코믹 CF, " 니들이 게 맛을 알아! " 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는 IMF 위기로 국내 경제가 매우 어려웠고, 맥도날드 같은 해외 유명업체들이 국내에 진출했을 때였다. 소위 태극기 마케팅을 구사했다. 롯데리아가 토종 햄버거업체임을 강조하면서 불고기버거, 김치버거,게살버그, 라이스버그 등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업계 1위자리를 지켰다. 롯데리아의 사업 성격이 식품 제조이면서 식자재 공급임을 파악하고 대리점 점주들과의 미팅도 부지런히 하면서 윈 - 윈 전략을 펼쳤기에 오히려 신규 점포도 증가했다.

 

한편, 그의 태극기 사랑은 유별나다. 롯데리아 재직시엔 매장내에 사용하는 컵과 포장재에 태극기 도안을 넣었고, 매장 고객에게 미니 태극기를 주기도 했다. 또한 롯데마트 재직시는 모든 점포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토록할 정도였다. 이는 그의 국가관에 기인한 것인데, 롯데백화점 직원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역사시험을 치르는 것이 의무사항이며 시험 결과는 승진 인사시 필수적으로 반영하고 있단다.

 

귤화위지(橘化爲枳)란 고사가 있다. 중국 회수 남쪽지방의 귤을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된다는 것인데, 환경에 따라 사물이나 인간의 성질이 변함을 빗댄 말이다. 롯데백화점이 늦어도 2012년 세계 10대 백화점 반열에 오를 것이며, 따라서 10년 안에 해외 점포수가 국내를 추월할 것이라며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 전개를 위해 언어실력, 문화실력, 그리고 열정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CEO들은 노력을 하되 더욱 현명하게 노력하는 사람, 똑같이 물을 긷더라도 꼭 필요한 곳에다 물을 길어 나를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면서 배움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배움의 의미는 넓고 깊다. 배운다는 것은 겸손하라는 것이며 소통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 옷차림의 기본이 첫 째로 중요하고, 다음으로 자신만의 특성을 표출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포장하는 실력임을 배우게 되었다.

 

" 매장(賣場)안에만 머무르지 마라. 매장안에 몸과 마음을 매장(埋藏)하지 마라." (115쪽)

"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진정으로 건강한 서비스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143쪽)

 

잠바 차림의 매장 암행, 롯데리아 출시 상품의 시식 등 신격호 회장과의 일화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시 현금 확보에 주력하라고 지시한 신동빈 부회장과의 일화도 중간 중간 재미를 더해 주었다. 또한, 2008년 미쓰코시 백화점을 경영 통합하면서 일본 백화점업계 1 위로 등극한 이세탄 백화점의 "오카이바", 고객중심 경영 이야기는 이세탄의 성공스토리, [세상에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책을 한번 더 읽게 만들었다.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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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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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NHK의 유명 프로그램 [프로페셔널 - 프로의 방식]에 출연한 기무라 아키노리씨의 무농약 사과 재배 성공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올해 나이 60세, 일본의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현의 농부이다. 농약을 전혀 사용치 않은 "기적의 사과" 때문에 그는 일본에서 유명 스타 못지 않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왜냐하면, 무농약으로 사과를 재배한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사과는 개량종이다. 본디 사과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 산맥의 산기슰 일대에서 자라는 야생종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그 크기가 작아 크랩애플(꽃사과) 로 불리며 신맛과 떫은 맛이 강해 요리나 술재료로 사용되어 왔단다. 멘델의 유전 법칙이 알려진 후 품종 개량이 가속화되었고, 북아메리카 신대륙에서 개량된 종은 구대륙의 것보다 훨씬 크고 단맛이 강한 과일이다.

 

"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뚯인데, 기무라의 삶이 바로 무농약 사과 재배에 미쳐 있었다. 22 세에 결혼한 그는 아내 미치코가 농약을 살포하면 며칠씩 앓아 눕는 과민성 체질이어서 농약 살포를 줄일 방법을 찾고자 마을 서점을 돌다가 책표지에 "아무 것도 안하는, 농약도 비료도 전혀 안 쓰는 농업" 이라고 적힌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저서 "자연농법"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이 책이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농작물이 자연의 산물이라기 보다 일종의 석유화학 제품이 되었다. 지금껏 사과 재배를 위해 봄부터 수확 전까지 10여 차례의 농약을 살포해 왔다. 책의 내용엔 귤 재배에 관한 상세한 기술뿐이었지만, 그는 후쿠오카의 자연농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독학을 시작했다. 사과에 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그는 독학을 토대로 과수원의 농약 살포 횟수를 변경했다. 전엔 13회 정도 뿌렸지만, 과수원 4곳 중 처음엔 1곳만 무농약, 다음 해엔 2곳을 무농약, 그 다음 해엔 4곳 모두를 무농약으로 재배해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사과 수확이 전혀 없었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자 반점낙엽병이 번져 사과 나뭇잎이 누르게 변하면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대개의 식물들은 잎의 엽록체가 광합성을 함으로써 꽃과 열매가 맺힌다. 따라서, 꽃이 피지 않으니 당연히 사과가 열릴리가 없다.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잠을 자다가도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갈 태세였다. 안해 본 시도가 없었다. 밀가루로 풀을 쑤어 뿌리기도 하고, 술을 묽게 타서 뿌리기도 하고, 고추 냉이를 뿌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달걀 흰자를 뿌리기도 했다. 완전 코메디 시츄에이션이다. 이러는 가운데 사과 나무는 점점 상태가 나빠졌고 과수원은 벌레들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5년 째 접어 들었다. 사과밭은 계속 악화되고, 주위에선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친구들도 그만 두라는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자 외면하고, 심지어 본가에서도 담을 쌓고 지냈다. 이때 붙여진 별명이 파산자를 뜻하는 "가마도케시"였고, 사람들은 그의 과수원을 "放置園"이라 불렀다.

 

새벽부터 과수원에 나가 벌레를 잡고, 식초를 나무에 뿌려 주었다. 과수농사가 어렵자 생활고 해결때문에 애지중지하던 트랙터와 트럭도 매각했다. 쌀농사를 하던 논도 빚때문에 남에게 넘긴 상태였다. 그러자, 그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로부터 "이젠, 그만 포기해"란 외침을 자주 듣는다. 생활이 더욱 힘들자 이젠 사과밭에서 기른 채소를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쌀을 산다. 일곱 식구가 먹으니 쌀도 금방 없어진다. 그래서, 죽을 쑤어 먹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를 먹인다고 그의 아내는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다.

 

농사일를 못하는 겨울엔 도쿄로 돈벌러 갔다. 공원에서 노숙하면서 항구의 하역부, 공사장 잡부 등으로 돈을 벌었다. 장인도 산에서 캔 나무 줄기에서 채취한 애벌레를 낚시 가게에 팔아 돈을 벌었다. 그는 마치 조각배에 가족 일곱 명을 태우고 망망대해에 있는 심정이었다. 한 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저녁에 이와키산에 올랐다. 달빛 아래 한그루의 나무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처음엔 사과 나무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도토리 나무였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아도 잘 자란 나무를 보고 그는 자연의 순리를 크게 깨달았다. 문제는 나무가 아닌 토양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과수원에서 일부러 잡초도 제거 않고 곤충과 벌레도 그대로 두었다. 오히려 토양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콩을 심었다.

 

그는 무농약 재배에 대한 신념이 있었지만 생활비 때문에 야간에 돈벌이에 나섰다. 8개월 근무한 파친코에서 해고되자, 그는 번화가 카바레에서 일을 했다. 처음엔 화장실 청소로 시작했지만 이내 신임을 얻어 웨이터가 되었다. 어느날 지역 야쿠자로부터 폭행을 당해 그만 두기까지 3년간 그곳에서 근무했다. 이날의 폭행으로 그는 앞니를 잃었다. 지금도 그는 빠진 채로 지낸다. 옛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란다.

 

폭행 사고후 그는 과수원에 전념했다. 사과밭에 콩을 뿌린지 3년, 농약을 멈춘지 8년이 되는 해에 마침내 사과 나무에 일곱 송이의 사과꽃이 피었다. 이 중 두 개의 사과가 열렸다. 1991년 가을, 태풍이 아오모리현을 휩쓸었다. 과수원 농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뿌리채 뽑힌 사과 나무가 날라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사과 나무는 80퍼센트 이상이 멀쩡했다. 자연농법의 쾌거였던 것이다.

 

그의 사과 판매는 일반 유통 경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직접 주문을 받아 배송하는 진정한 의미의 산지 직송이다. 엽서나 팩스로 주문을 받아 주문자에게 직접 택배로 보낸다. 너무나 유명해 져서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 수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그의 주문 팩스는 끊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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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희망, 미래 - 아시아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의 성공신화
스티브 김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남들은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고 추켜 세우지만 정작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스티브 김], 그의 한국 이름은 김윤종이다. 경영을 전공한 적도 그렇다고 배운 적도 없었지만 좌충우돌 식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경험으로 깨닫고, 그리고 항상 남에게 배우려고 노력했단다.

 

"김회장님, 미국에서의 성공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연회에서 누군가 질문을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 아마, 미국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얼마전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던 상장법인 하이닉스의 전문경영인 공개모집에 응모했다가 불합리한 한국식 연고주의 때문에 인터뷰 한번 못해보고 보기좋게 낙방했던 탓에 이런 답변을 한 듯하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창업한 회사 파이버먹스가 첫 수주한 실적이 미항공우주국(NASA)였는데, 자신은 NASA와 전혀 연고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학연, 지연 풍토와 접대문화가 기업을 경영하는데 큰 부담으로 작용함을 꼬집고 있었다.

 

지난 2007년, 渡美한지 30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한 김윤종씨는 서울 장교동에서 1949년 11월에 태어나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후 엔지니어가 되어 미국의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포부로 1976년 이민길에 올랐다. 수중엔 단돈 2천달러 뿐이었다. 1977년에 결혼한 아내를 위해 청소원, 창고지기 등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정보통신학 석사학위를 거머 쥐었다. 주경야독인 셈이다.

 

그는 미국 회사에 취직하여 잘 다니다가 회사의 모습에 실망을 한다. 회사의 주업무는 군 방위 통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고, 워낙 큰 조직이라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엔 너무도 정체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겨우 1년 반만에 이직을 결심한다. 지역 신문 구직광고를 보고 직원 30명의 통신 시스템 개발회사 페일로로 자리를 옮겨 광섬유 통신 시스템 개발에 진력을 다한다. 비록 규모가 작은 회사였지만 첫 직장의 연봉에 비해 두 배나 되는 5 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회사내에서 능력을 인정 받는다.

 

두번째 직장, 페일로의 월급쟁이 사장 딕 배스는 전형적인 마케팅 전문가로 기술에 대해선 감각이 부족했다. 그래서, 스티브 김은 친분이 있던 다른 회사 출신 엔지니어 3명과 의기투합하여 10 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창업을 시도한다. 차고가 회사의 사무실이었다. 밥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일만 했다. 밤낮으로 일한 1 년만에 시제품이 탄생했지만 창업자금 10 만불은 이미 동이 났다. 당시엔 벤처 캐피탈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딕 배스를 찾아 이를 상의했다. 딕이 회사의 15% 지분을 보장받고 영업과 마케팅 담당으로 참여하면서 30만 불의 투자자를 데려 온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가 파이버먹스였고 첫 수주가 바로 NASA의 10 만불짜리 홈런이었다. 그의 회사는 6 년간 놀랄만한 고속 성장을 했다. 아라크 전쟁사태로 나스닥 상장이 연기되자 그는 최초 투자자들에게 25배의 이익을 남기는 회사매각을 결정한다.

 

파이버먹스의 창업에서 성공한 경험을 살려 그는 1993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 자이렌을 설립하여 3년만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미국 국내외에 60여 개의 지사망을 거느리며 연간 매출 3억 5천만 달러를 달성한 후 1999년 프랑스의 세계적 통신회사 알카텔사와 인수합병을 맺고 20억 달러에 매각함으로써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 가난했기에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기업 경영은 전쟁과 마찬가지입니다. 분기별로 실적이 나오고 미진할 경우 곧바로 주가에 반영되지요. 두 개 회사를 경영한 15년, 60분기 동안 단 한 번도 목표를 못 맞춰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베스트 세일즈맨"이라 부른다. CEO도 현장에서 발로 뛰어야 고객의 불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서, 1주일에 2 - 3개 지사를 방문했고 방문때마다 하루에 주요 거래처나 바이어 3 곳과 미팅을 약속했다고 한다. 부지런함은 역시 성공인의 덕목 중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나이 만 60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미국에서 "스티브 김 재단" 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시작하다가 2007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 투자회사 SYK글로벌과 사회복지법인 "꿈,희망,미래 재단" 을 설립했다.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에 연간 20억원을 쓰고 있다.

 

" 돈이 없어 공부를 중단해야 할 처지에 있는 학생 한 명을 도우면 사람 하나만 살리는 게 아니라 그 가족을 살리는 거니까요."

 

모교인 서강대 MBA 과정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향후 강의와 저술, 각종 강연에 주력할 계획이란다. 그의 성공스토리가 움추린 우리들의 어깨를 펴게 해준다. 그의 강연이 끝나자 힘찬 박수소리가 한동안 강연회장을 떠나질 않았다.

 

"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면 반드시 보상이 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며, 미력하나마 '행복전도사' 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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