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나뭇잎, 이로도리 - 칠순 할머니들이 나뭇잎 팔아 연 매출 30억!
요코이시 토모지 지음, 강지운 옮김 / 황소걸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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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힘든 겨울을 지나 간신히 봄볕이 느껴지는 시절에 이르렀습니다. 올해야말로 좋은 해가 될 거라고 모두 바랐습니다만, 지금 요코이시 님의 심경변화에 우리는 앞선 대한파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중략) 요코이시 님이 없으면 가미카츠는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중략) 지금 한 번만 생각을 돌려 우리에게 살아갈 기쁨과 용기를 주세요" (124쪽)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카츠 마을의 이로도리 생산회 일동이 이 책의 저자 요코이시 토모리에게 전달한 탄원서 내용의 일부이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가미카츠 농협에 영농지도원으로 채용된 후 18년이 지난 1997년 2월 요코이시가 농협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이를 만류하려는 이로도리 생산회 회장 시모사카 미키에가 소속 회원 177명 전원의 집을 밤새 일일이 돌며 서명을 받았다.

 

희망이 사라진 마을

 

1979년 봄, 농업대를 졸업하고 가미카츠 농협에 취직한 요코이시 토모리는 산골마을 한 집 한 집 인사를 나누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가미카츠 마을은 이농현상 때문에 경제가 매우 침체되었고, 60 - 70 대 할아버지 몇 명은 아침부터 음주에다 주정을 부리는 작태까지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모이면 술 마시고 남을 탓하는 일로 소일했다. 요코이시는 인사를 다니며 마을의 개혁을 호소하지만, 그들은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내쫓으려고 했다.

 

가미카츠는 밀감농사가 주업이었다. 1981년 2월 이상 한파가 닥쳐 밀감이 고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전체 재배 면적의 82%에 달했다. 밀감의 매출이 전년의 반 수준인 2천만 엔으로 떨어지더니 이후 계속 격감했다. 밀감은 전멸했지만 유자 등 초귤류에 초점을 맞추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또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여 판매하거나 농한기엔 고구마 말랭이 가공 등으로 농가 수입을 키워나갔다.

 

나뭇잎을 팔다

 

"전화위복" 이란 말처럼, 가미카츠 마을은 역사적인 대재해를 오히려 기회로 이용했다. 그들은 생산 작물의 재편성을 시도했다. 고구마, 실파, 표고버섯 등 새로운 작물 재배를 보급하던 요코이시는 우연히 식당에서 단풍잎이 요리에 활용된 것을 보았다.

섬광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나뭇잎을 팔자!"

 

비록 소량이지만 타 지역의 농협에서 요리 장식용 꽃 상품이 출시된 것을 확인하고 그는 마을의 4 가구의 협력을 얻어 "이로도리" 란 상표를 걸고 1987년 2월부터 나뭇잎을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준비가 부족한 탓에 "이로도리"는 팔리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요리사가 이로도리 상품팩을 보고서 잎과 꽃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이런 상품을 사용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장을 알아야 한다.

 

장식용 나뭇잎, 츠마모노의 주요 수요처가 요정이기에 요코이시는 요정에 손님 자격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월급이 적은 그로선 큰 부담이었지만 이것이 가미카츠 마을을 위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요정을 드나들며 배운 츠마모노의 포인트는 계절감, 좋은 상태, 잎의 크기, 빠른 출하 등임을 파악했다.

 

1986년 4 가구의 협력으로 시작한 이로도리 사업은 1988년 4월에 44 가구로 늘었다. 이후 석 달 만에 91 가구로 급증하면서 판로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요코이시는 이로도리 팜플렛을 만들어 전국의 유명 온천지나 여관 등을 돌았다. 이런 와중에 실수도 있었다. 오사카 나이트클럽에 복숭아꽃을 납품했는데 클레임이 발생했다. 벌레가 나온 것이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과한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상품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백문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1989년 12월 요코이시는 버스를 대절하여 농가 사람들을 오사카에 있는 일류 요정으로 데려갔다. 이후에도 요정 시찰은 1년에 한두 번씩 이어졌다. 백 마디의 가르침보다 현장에서의 한 번의 경험이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비싼 요리에 벌레 먹은 나뭇잎이 없어야함을 실감하는 등 시찰 횟수가 늘면서 마을의 할머니들은 점점 세련되어 갔다.

또한, 이로도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강습회, 연구회 등도 자주 개최했다. 유명 요정의 주인과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을 초청해 할머니들에게 츠마모노의 사용법을 강습하고, 여성 문제 평론가를 초빙해 문화 강연을 통해 여성의 자부심을 길러 주었다.

 

나뭇잎이 변화를 불러오다

 

이로도리가 전국 각지에서 팔리고 새로운 수요처가 증가하면서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밤에 잔업을 처리하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등 마을엔 이미 변화의 큰 물결이 일고 있었다.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뒤다랐다. 1990년 2월, 가미카츠 농협이 농업인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아사히 농업상"을 수상했다. 이후 가미카츠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은 신뢰도가 높아졌다. 가미카츠의 모든 농가는 자신감과 의욕이 충만했다. 더 이상 마을에서 술에 취한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요코이시는 결혼 후 생활비 한 번 제대로 아내에게 준 적이 없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던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아버지의 퇴직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란 말이 있듯이, 현재의 적은 월급으론 세 아이의 교육비, 양육비 등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는 사직을 결심한 것이다.

 

요코이시의 고민을 알게된 마을에서는 그를 마을 사무소에 "생산과장 보좌"라는 보직을 부여했다. 그래서, 1997년 4월 그는 농협에서 마을 사무소로 전직했다. 이듬해 농협의 매출이 급락하자 가미카츠 마을도 위기를 느꼈다. 그동안 사비를 들여가며 외부의 담당자들과 인맥을 유지하던 사람이 빠지고 나니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난 것이었다. 궁리 끝에 그는 제 3 섹터 방식으로 주식회사 이로도리를 설립하고 가미카츠 마을이 70%의 지분을 가졌다.

 

1999년 4월 정식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이로도리에 요코이시는 이사로 재직하면서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으로 2000 년부터 다시 매출이 오름세를 탔다. 신문, TV 등 각종 언론 매체에서 앞다투어 이를 소개하면서 마을을 찾는 국내외 시찰자들도 급증했다. 2006년엔 마을 인구의 약 2배인 3957 명이 찾아왔다. 이로도리는 전국 츠마모노 시장 점유율 80%를 유지하고 있다. 계약 농가 190호, 평균연령 70세의 이로도리 농가 할머니들의 수입도 넉넉해졌다.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겨 화장실을 최신식 비데로 교체하거나, 자식과 손자에게 용돈도 주고, 저축도 한다. 나이 72 세에 태어나서 처음 호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할머니도 있다. 이젠 가미카츠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외지로 떠난 사람들도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실천 정신,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경영, 할머니를 극진하게 섬기고, 교육을 통해 능력을 강화시키며,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의 기를 불어넣는 등 요코이시의 리더십을 통해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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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누구나 다 배우는 비즈니스 이메일 영어
김광훈 지음 / 미래BIZ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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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장 생활은 초반부터 영어로 먹고 살아야 했다.

몸 담고 있던 직장이 국내 굴지의 회사였기에 해외 비즈니스가 많았던 탓이다. 지금처럼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지만 당시엔 "텔렉스" 라는 통신 수단을 이용했기에 매일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메세지를 확인하고 답신보내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그런데, 나의 직장 상사는 초년병인 나에게 텔렉스 영어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을 해야함에도 아무런 지침도 없이 막무가내로 일을 맡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이라 상업 영어라는 특별한 교과목을 이수하였고 이후 대학에 진학해서도 비즈니스 영어를 나름 충실히 공부했기에 크게 업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론보다는 실제" 라는 경험을 미리 가르쳐 주었다면 업무에서의 크고 작은 실수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여년간 직장에서 이메일 업무를 담당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여 폭 넓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이메일의 시작, 커뮤니케이션 요령, 방문 관리와 정보 관리, 연락과 소개, 고객 서비스 그리고 IT 및 정보 기밀 등의 여섯 장에 걸쳐 총 121 가지의 주제어 속에 풍부한 예문을 실고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에 다른 풍부한 예문을 실었다.

관련 어휘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메일 에티켓은 물론 비즈니스 에티켓도 풍부히 수록했다.

필수적인 문법, 어법을 추가했다.

 

옛 말에도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 란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기 때문에 생긴 말이며, 시작하기만 하면 성취도 쉽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더구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올바르게 배운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 책은 우리가 범하기 쉬운 문법적인 오류나 외국이라는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잘못된 표현법 등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가정교사같은 존재이다.

 

이메일의 인사법에서부터 메세지의 전달까지 국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직면하는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이메일 영어를 제대로 습득하여 깔끔하고 세련된 일처리를 하는 사람으로 호평받는 인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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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이청 지음 / 북마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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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여러 가지 생각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심난했다. 그해 사월 초파일 출가 스님들의 수행 도량인 문경 봉암사를 답사하는 행사가 있어서 행사 차량에 몸을 실었다. 경북 문경군 가은면 희양산 자락, 풍광 좋은 장소에 떡하니 자리 잡은 봉암사의 경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경내를 한바퀴 돌고 전망 좋은 장소에서 사찰 주변의 경관을 내다보니 탁 트인 것이 막히고 얽혀 있던 내 마음자리를 뻥 뚫어 주는 듯했다. 봉암사의 조실 스님이 바로 서암 큰 스님이다.

 

1914년 경북 풍기읍 금계동에서 아버지 송동식의 5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송홍근은 19세에 불문에 들어 2003년 3월 29일 봉암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시봉 제자들이 서암 스님으로부터 열반 게송 한마디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묻자 귀찮아서 한 말이 "그 노인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였다.

 

서암 스님이 조계종을 탈퇴하고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위치한 12 평짜리 오두막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렀다. 이 오두막은 저자가 마련한 처소였다. 이 책은 당시 저자가 스님과 나눈 대화를 근거로 그의 삶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첫째 날 - 꿈

둘째 날 - 유학

셋째 날 - 중도파

넷째 날 - 닭 벼슬

다섯째 날 - 양산박

여섯째 날 - 종정

일곱째 날 -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나?

 

성철 스님이 1993년 10월 4일 열반에 들자 제 8 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직에 추대된 서암 스님은 분란에 휩쌓인 종단을 바로 세우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종단과 문중을 두고서 끊임없이 벌이는 불자들의 세력다툼에 염증을 느끼고 이듬해 4월 자유로운 불자의 길을 위해 과감하게 종단을 떠나고 만다. 스님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자유인이다.

조계종 경북 종무원장, 총무원장, 종정 등의 직무가 주어졌을 때 맡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지만, 아니다 싶을 때면 언제라도 미련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난 인물이었다. 1994년 4월, 종단마저 벗어나 스스로를 "석가종 석가문중" 이라고 칭했다.

 

신라 九山禪門 중의 하나라는 전통의 사찰 봉암사는 희양산 골짜기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 지리산 공비들의 퇴각로였기에 공비는 물론 경찰이 교대로 들락거리는 곳이어서 수행장소로는 부적격한 곳이었다. 1954년 불교정화가 진행되자 힘깨나 쓰는 "깡패스님" 들이 모여들어 "양산박" 이라 불릴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힘만 세지 염불도 모르는 노지심같은 엉터리 중들이 모여 있기에 일반 신도들은 찾아 오질 않았다. 신도가 없으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자 이들은 절 재산 중에서 탱화, 문화재 같은 돈 될 만한 것은 죄다 팔기 시작했다. 봉암사의 이런 문제를 파악한 서암 스님은 험난한 일을 자청하여 봉암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불교는 우리 마음의 정체를 밝히려는 가르침이라고 서암 스님은 강조한다.

"이 우주 만물은 무엇 하나 소멸되는 것이 없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200쪽)

인간의 근본은 불생불멸 무시무종인데, 이런 이치를 모르는 중생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참선을 하여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 그 이전의 내가 어디 있었는지도 훤히 알게 되는 이치 또한 여기 있습니다" (200쪽) 

 

서암 스님을 가까운 거리에서 알고 지낸 저자의 회고를 통해 "서암 불교" 를 조금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다. 서암불교의 핵심은 우주에 비밀이란 없고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마지막 말이 평범하면서도 뜻도 없는 그런 말을 남겼지만 내 마음에 오래 동안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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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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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팔과 다리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짧다는 말입니다"  의사가 또 말문을 연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중략) 아기에게 눈이 없습니다" (18쪽)

1988년 3월 10일, 한 아기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 헨리 휴스이다.

 

아기의 부모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두 눈의 안구가 없다. 팔다리가 짧고 심하게 굽어있다. 아들을 얻게 된 오늘이 기쁨으로 충만해야 함에도 오히려 매우 고통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헨리는 선천적으로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현재 그는 루이빌 대학의 마칭밴드의 연주자이다. 한편, 2007년 1월 "오프라 윈프리 쇼" 에 출연한 후 그가 연주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많은 사람들의 접속 조회속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부모는 그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장애아란 비극적인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함은 물론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눈물겨운 분투와 헌신적인 사랑은 금메달감이다. 그는 자신의 탄생을 가족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레몬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세상에 온 것으로 비유하면서 "아마도 우리 가족은 오렌지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오렌지가 더 달고 덜 시니까. 하지만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본들 레몬을 오렌지로 바꿀 수는 없다. 우리 부모님은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든 포기하지 말고 맞서 부딪쳐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라고 말한다. (19쪽)

 

그는 어렸을 때, 여섯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소아과나 안과를 자주 들락거렸다. 엉덩이와 다리 수술엔 실패하고, 곧바로 눈 수술에 들어갔다. 이 때가 막 두 살을 넘겼을 때였는데, 첫번째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네 살 무렵, 두번째 수술을 받고선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열 살 때엔 척추가 S자 모양으로 심하게 굽었기 때문에 이를 수술받았고 이것이 마지막 수술인 셈이다. 이렇게 그의 신체적 장애를 개선키 위해 그의 부모의 사전에는 '포기'란 단어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아기였던 시절, 엄마가 외출하여 아버지가 그를 돌보게 되었다.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만 같았는데, 뭐가 못마땅한지 아기는 목이 터져라 울기만 했다. 흔들의자에서 흔들어 주어도, 노래를 불러 주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그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연주하자 아기는 울음을 뚝 그쳤다. 이후 피아노 놀이는 아버지의 맘에 쏙 들었고 이를 계속했다. 그는 두 살이 되기 전에 멜로디에 화음을 넣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후 힌다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루이빌 대학에 입학해서는 터널 박사가 그에게 트럼펫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대학 전공은 음악이 아니라 스페인어였다.

 

"세상에는 자신을 채워주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찾고 싶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가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찾게 된다. 아마 찾아내는 순간, 자신이 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임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110쪽)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의 아버지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물심양면으로 그의 눈과 다리가 되어 주었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대학교 마칭밴드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열리는 모든 야구 경기를 무료로 관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맡아서 밴드 연습에 참여했다. 연습이 끝나면 그들 부자는 거의 탈진상태가 된다. 켄터키 대학을 상대로 첫 시합을 벌이는 풋볼 경기장에서 마칭밴드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그들 부자는 지나간 그 모든 시간에 감동을 느꼈다. 그의 연주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에선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친다. 때가 되었다. 내 심장이 룸바춤을 추듯 격렬하게 고동친다. 이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넘치는 축복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를 느낀다. 트럼펫을 들어올려 내 입술에 갖다댄다. 나는 가능성이다."

(302쪽)

 

책장을 덮는 순간 TV에서 시청한 적이 있는 가수 이상우의 자폐아 아들의 교육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영화 [말아톤]의 모자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간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장애아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시설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개개인의 재능을 토대로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한번 더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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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숨긴 비밀 - 미궁에 빠진 보물을 둘러싼 45편의 기록
송옌 지음, 이현아 옮김 / 애플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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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풍가면 꼭 했던 이벤트가 "보물찾기" 였다. 보물이 숨겨져 있을 만한 바위 밑이나 풀 속으로 한걸음씩 옮기면서 두 눈은 뭔가를 찾겠다는 열정으로 반들거렸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보물이라는 것이 연필, 공책, 크레파스 등의 상품으로 바꿔주는 일종의 교환권이었다. 한편, 교환권을 숨긴 선생님조차 이를 찾지 못해 보물이 영영 묻히고 말았던 경우도 있었다.

 

몇년 전 서해 신안 앞바다 해저에 묻혀 있는 보물선을 인양하면 그 가치가 엄청나다며 관련 부처의 허가를 얻어 이 사업을 시행한다는 회사의 주가가 큰 폭 상승했다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많은 소액투자자들의 대박꿈을 쪽박으로 만들어 버린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물의 이면엔 늘 실패가 숨어 있는 것이다.

 

"보물찾기"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자본이 요구된다. 수집된 자료와 증인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현장 답사를 거쳐 가능성이 높을 경우 본격적으로 보물탐험대가 투입된다. 그러나, 성공의 확률은 매우 낮다. 이렇게 실패률이 높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애초에 보물을 숨긴 이들이 도난과 도굴을 우려하여 사전에 예방 조치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보물이 영원히 비밀에 묻히도록 의도했던 것이다. 징키스칸의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대 왕릉엔 왕의 시신과 함께 많은 보물의 매장은 물론 사후 세계에서의 편안함을 위해 생전의 시종들이 산 채로 순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도난과 도굴을 방지를 위해 왕릉 조성에 관련된 설계자, 공사 인부 및 감독관 등을 모조리 학살했을 정도로 보물의 이면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 존스 박사도 고고학 문헌에 등장하는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벌인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보물찾기에 성공하는 해피 엔딩으로 영화가 종료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오히려 실패의 확률과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경우가 더 높은 것이다. "보물찾기"는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행위이다. "투탕카멘의 저주"로 널리 알려진 이집트 파라오의 왕릉 발굴을 주도했던 영국의 카나본 경도 발굴한 지 20주도 채 지나지 않아 죽었다.

 

이 책은 45 가지의 이야기를 5 개의 주제별로 구분하여 해당 보물의 사라진 배경과 이를 찾으려는 탐험가들의 모험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왕실의 왕관의 다이아몬드를 누가 훔쳤는지, 나폴레옹과 히틀러 같은 전쟁 영웅이 남긴 보물 스토리, 잉카 제국 최후의 도시를 찾아서, 해적 라부스의 보물 지도,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스페인 보물선 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주기에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가인양 흥분되기도 한다.

 

황실 귀족의 보물

전쟁이 남긴 보물 스토리

사라진 고성에 얽힌 비밀

욕망의 무법자, 해적의 보물

침몰선에 가라앉은 진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멕시코의 고대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의 일화는 인간의 탐욕을 잘 대변하고 있다. 위험 천만한 보물찾기에 많은 시간과 자본을 들여 정성을 기울이지만 실패한 과거의 역사가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구촌 어딘가에서 대박의 부푼 꿈을 안고 보물을 찾겠다고 도전에 나선 탐험가들이 많다. 인간의 모험심이 아무리 숭고하다 할지라도 이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것일 뿐이라는 경종을 울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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