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인생 2막, 이제 내 길을 갈 때가 왔다
김재우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김 형, 거기에서 뭘 하시오? 얼른 나와서 나를 좀 도와주시오.

이제 우리도 쉰이 넘었으니 힘을 합쳐 봅시다.

노후준비를 위해서라도 함께 사업을 키워 보자고요"

(102 쪽)

 

저자가 삼성을 떠나 캐나다 UBC에서 객원교수로 있을 때, 벽산 그룹의 김 부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벽산 그룹 김인득 회장의 삼남인 김희근 부회장과 저자는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삼성물산의 중동 지사장으로 재직할 때, 김 부회장은 벽산건설(당시는 한국건업)의 중동 지사장이었다.

 

제의를 받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 떠났다. 입사한 곳은 벽산건설이었다.  1년의 근무 후 제조회사인 (주)벽산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옮긴 뒤 6개월 지난 1998년 7월 1일, 벽산그룹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벽산은 창사 이래 최대 시련을 맞게 된 것이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의 비상사태로 많은 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경영의 수장으로서 전권을 위임받은 저자의 특별한 노력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벽산은 1년 만에 기업 회생에 성공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벽산이 워크아웃 전보다 더욱 튼실한 기업으로 재탄생하자 임직원들의 자신감도 한층 높아졌다. 비장한 각오로 CEO를 맡고서 이룩해 낸 일이라 당시 54살인 그에게 그 감회는 남달랐다.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만큼 

확실한 희망은 없다.

희망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다.

자신의 목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선승구전先勝求戰이 가능하다.

즉 이미 승리를 확보한 후에

승리를 확인하러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보다 확실한 보증수표는 없다.

(108 쪽)

 
 

저자 김재우는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삼성물산 재직시 중동에서 1억 불 수주에 성공한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37살에 최연소 임원, 45살에 삼성항공 부사장 등 29년간 삼성맨으로 활동하다 52살에 타의로 삼성을 떠나게 되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워크아웃 중인 벽산그룹을 1년 만에 회생시키면서 '경영 혁신의 귀재'로 기업경영 현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열심을 버리고 재미로 일한다

 

자신이 원하는 길은 비록 그 길이 가시밭 길일지라도 재미가 있다. 재미는 바로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20세기에는 근면과 성실이 성공을 위한 최고의 미덕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은 유연한 창의력이 요구되는 때이다. 어느 경영자가 직원들로부터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열심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마치 기계처럼 생산의 도구로 전락하여 마침내 20세기 자본주의 발전모델인 '포디즘Fordism'으로 자리잡으며 '열심'은 바로 절정에 이르렀다. 포디즘이라는 대량생산 방식은 더욱 높은 강도의 노동을 요구하면서 생산성 향상이란 이름으로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일자리 없는 성장'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즉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노동력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제 높은 생산성은 누가 얼마나 '잘 노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재미가 없으면 생산성을 높일 수 없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도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재미와 창의성은 심리적으로 동의어라고 주장하면서 '창의적인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재미있게 노는 듯 일을 하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에서 아니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김 교수는 21세기는 '나는 놈'위에서 '노는 놈'의 시대라고 강조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인다

 

벽산의 턴어라운드는 '기본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IMF 경제위기는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던 특별한 상황이었기에 벤치마킹 할 대상도 없었고, 이 분야의 전문가도 찾을 수 없었다. 스스로 살 길을 찾아 개척할 수 밖에 없었다. 불철주야 '어떻게?'라는 생각만 했다. 이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한 결과 당시의 벽산은 기본에서 벗어나 있음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몇 가지 방안을 실천에 옮겼다.

 

1. 나는 벽산의 30여 개 제품의 핵심은 내화단열임을 깨닫고, 이 부분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2. 브랜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벽산의 브랜드 가치를 핵심 역량으로 삼았다.

 

3.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시켰다.

 

4. IT 인프라를 구축했다.

 

5. 임금체계를 혁신했다. 회사의 '저임금 고인건비'를 '고임금 저인건비' 체계로 변경했다.

 

6. 필요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7. 유통 혁신으로 직원들의 생각하는 시간을 늘려 주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처럼 바꿔 놓았습니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 보지 않은 길> 중에서

 

여성 복서 김주희 선수의 일화이다. 김 선수는 챔피언 타이틀 4차 방어를 준비하던 중 엄지발톱이 빠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를 무시하고 훈련에만 매진했더니 상처가 악화되어 골수염으로 발전했고, 이로 인해 엄지발가락의 뼈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복서에게 몸의 균형을 잡고 체중을 분산시켜주는 발가락이 없다면 이는 치명적이다.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고 타이틀을 반납한 그녀는 절치부심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기회가 왔다. 그녀는 발가락에 테이프를 칭칭 감은 채 링에 올라 끝내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려놓을 때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우리 모두 쉽게 포기하고 내려오지는 말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자.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을 한다면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소설가 박경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미들의 주식사냥 2
김건 지음 / 에듀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에 등장하는 정계, 재계 인사들의 담합과 흥정, 주가조작, 부당 내부거래, 뇌물과 정치자금의 수수 등은 대부분 체험적 사실을 토대로 한 내용이다.

 



 

연일 새벽 늦게 귀가하는 대안증권 박상민 차장의 아내는 박차장에게 지금 하는 일을 당장 중지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권유한다. 그러나, 돈의 탐욕에 빠져버린 그는 아내의 충고가 귀에 거슬리기만 했다. 불과 1시간 전 룸살롱의 새끼 마담과 끈적끈적한 정사를 벌인 참이라 그는 주지육림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질 못한다.

 

"맡겨 둔 돈 몽땅 줄테니 당장 나가!" (19 쪽)

 

5년 여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지금의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지난 세월이 물거품이 될까봐 그는 점점 불안해졌다. 수습사원의 티를 벗고 일선 영업 부서에 배치되자 그는 고객 투자 연수회에 여러 차례 강사로 참석했다. 참석자는 주로 여성으로 그에게 많은 궁금증을 질문했다. 이런 장면은 소설이 다소 오버했지만, 그의 강의를 한번 들어보자.

 

"바닥을 치며 돌아선 것을 확인한 뒤에 매수하고,

천장을 치고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과감히 처분하라는 뜻입니다" (27 쪽)

 

"뇌동 매매에 휩쓸리지 않는 것만이 손해를 보지 않는 비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29 쪽)

 

이렇게 그는 주식투자의 정석을 경험하면서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의 윤리관이 돈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히고 주식 작전에 가담한 것이었다.

 

거침없이 잘 나가던 박순자 일당의 작전은 순조롭지 않았다. 어음 할인의 고리이자의 부담과 함께 그녀의 거래업체들의 부도설 등이 돌면서 자금 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사들였던 주식을 헐값에 매각하고 있었다. 로열건설, 고려토건 등의 어음이 명동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루머 때문에 죽을 맛이야. 어떤 적대 세력이 내 발목을 잡으려는 거이 분명해" (36 쪽)

 

오후 6시 박순자의 연락을 받고 그녀의 사무실에 모두 모였다. 로열건설의 허동환 부사장, 김혁 전무, 이정일 부장 등이었다. 작전세력 중 엄차장과 박상민 차장이 튀면서 작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허부사장은 그동안 처남을 앞세워 시세차익을 차곡차곡 쌓았던 것이다. 그는 주식을 전혀 모르는 체 행세하며 얍삽하게 실속을 챙겼던 것이다. 자금부 김준태 대리가 비자금을 횡령했고, 엄차장과 박상민은 최회장의 작전을 틈타 시세 차익을 먹고 달아났다. 이들의 도피 소식을 듣고 허 부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로열빌딩 16층 회장실엔 적막감이 돌았다. 넓은 방엔 최회장 뿐이었다. 지금부터 어떻게 박순자를 요리해야 할지 그리고 그간 정신없이 발행한 약속어음을 무사히 회수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하여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주식투기로 기대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어음을 왕창 유통시켜 놓고 잠수해 버릴 작정이라더군" (65 쪽)

 

명동 사채시장과 증권가에 새로운 기류가 떠돌았다. 유언비어가 일반투자자들을 두려움으로 몰고 갔다. 박순자의 융통어음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루머였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생겼다. 제5공화국 출범을 위한 3월 총선거 준비를 위해 정치자금을 조성하려고 융통어음을 뿌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박순자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어음을 잡으려고 깡쟁이들이 줄을 섰던 것이다.

 

"고려토건과 로열건설은 정한두 대통령과 자민당 김정근 사무총장이 밀어주는 회사거든..." (67 쪽)

 

10여개 아파트 현장에서 입금되는 분양대금이 매일 10억원대였기에 여유자금 400억원과 차입금 600억원 모두 1천억원을 투자해 보험, 증권, 상호신용금고, 유통, 가구, 피혁제품 제조회사 등 8개 회사를 인수하여 로열건설그룹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여름에 접어들자 로열건설은 자금사정이 빠듯해졌다.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송금되던 달러도 줄고, 아파트 분양금도 주춤거리며 돈줄이 막혀 버렸다. 이 틈을 파고 들었던 사람이 바로 박순자 여사였던 것이다.

 

자민당 사무총장 김정근은 여비서와 호텔에서 한바탕 정사를 즐겼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박순자 부부의 사기 행각이 안기부와 보안사 등 수사기관에 포착되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온 터라 신경이 몹씨 쓰였다. 명동 사채시장과 금융기관에서 고려토건 부도설이 계속 나돌다가 어느 날 고려토건의 거액 융통어음이 미결제되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박순자 부부가 검찰에 연행되고, 고려토건이 발행한 어음은 부도나기 시작했다.

 

한편, 로열그룹의 최회장은 자민당 정보경 의원을 찾았다. 박순자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의원은 최회장에게 사기공범이라며 협박하듯 나무랐다. 최회장은 정의원의 미꾸라지 같은 행동에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만약 박순자가 사기를 쳤다면 그녀를 탈법적으로 악용한 사람들도 사기죄로 처벌 받아야 해" (88 쪽)

 

청와대 탁영수 사정수석 비서관을 만나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백태웅 검사는 권력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박순자 부부의 사기가 아니라 로열그룹 최종길 회장이 그들과 동업관계라는 심정을 가졌지만 결국 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박순자 김철규 부부와 김정근 총장에게 면죄부를 안겨 주는 수사가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126 쪽)

 

이후 청와대 측의 특별 지시에 따라, 부도 처리되었던 로열건설 어음 450억원의 결제가 구제금융에 의해 모두 처리되었다. 후담에 의하면, 기업 도산의 위기를 넘기고 승승장구하던 최종길 회장은 정권 교체와 함께 몰락해서 지금은 고향 친구의 사슴 농장에 가끔 들러 장기와 바둑을 즐기면서 노후를 보낸다고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새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미들의 주식사냥 1
김건 지음 / 에듀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새하얀 눈송이가 듬성듬성 휘날리고 있었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잃어 연 사흘째 주가가 폭락하자 로열건설의 주식관리부 엄창수 차장은 죽을 맛이었다. 회사의 최종길 회장이 연일 바가지를 긁어대기 때문이었다. 비서실 미스 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의 호출이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는 회장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회장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개자식! 네가 주식투자 전문가야?" (20 쪽)

 

고졸 학력의 엄 차장은 현재의 역할을 이용해 20억 원쯤 번다면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려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주식관리 업무를 맡다보니 회장의 눈에 들어 비슷한 또래의 동료보다 늘 앞서 나갔다. 로열건설의 본사빌딩은 19층인데, 옆에서는 63빌딩의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자본금 1억원의 회사가 4년 뒤 공개하면서 80억원이었던 자본금이 지금은 5천억원으로 계열사 10여개를 거느리고 있다.

 



 

간판 한 개조차 임직원의 소신대로 매달 수 없어 모든 일이 회장의 결정에 따라야 하기에 최종길 회장은 임직원으로부터 증오와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고용주이며 상어처럼 약삭빠르고 탐욕스러운 자본가이기도 하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단기간에 돈을 버는 것이 그의 목표이며 취미는 오로지 '무능하다',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등의 폭언을 일삼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녁에 술을 사면서 엄 차장에게 주가조작이나 작전 등에 대해여 배우던 사람이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현재 자민당 원내총무인 양찬식이 안기부 기획실장으로 재직할 때 키 크고 잘생긴 청년을 최회장에게 소개했다. 그가 바로 김혁이다. 그는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경리과장으로 입사하여 7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최회장의 가지급금 60억원을 임직원 대여금으로 정리하더니 이후 로열건설 소유 부동산을 로열상사에 이중계약 방식으로 매각하여 이를 상계처리한 공로를 세웠다. 지금은 재무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믿을 놈은 너 밖에 없구나" (47 쪽)

 

최회장의 가족사를 살펴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부동산 투기 또는 돈놀이에 전념해서 자식들의 학교 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은 가정부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큰 집과 외갓집 식구들도 모두 돈 버는 일에 혈안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사채꾼이었고 외할머닝와 외숙모는 달러이자 놀이에 빠져 있었다. 외삼촌 역시 고교 졸업 후 외할아버지의 사채 사무실에 나가 수업을 받고 있었다. 저녁에 귀가하면 모두 돈을 새거나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빴다. 대궐 같은 3층 저택은 사람의 체취가 아니라 오직 돈 냄새 뿐이었다.

 

"내 손주 녀석들, 부자가 되면 이 세상도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느니라" (59 쪽)

 

회장이 전보다 자신을 덜 신임하는 것 같아 불안하던 김전무는 엄차장과 함께 '작전세력 운용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회장은 여전히 그에게 질책만 했다. 그것도 엄차장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회장의 날카로운 말은 김전무의 가슴에 칼집을 내고 있었다.

 

"차명 계좌를 만들어 놓고 현찰로 바꿔야 정상 아냐? 돈에 꼬리표를 붙이다니? 네가 경리쟁이야, 뭐야?" (112 쪽)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최회장은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예행연습을 가졌다. 동원된 임원은 8명, 차명계좌를 활용하여 액면가 500원에 미달하던 종목을 매집하여 루머를 퍼뜨려서 주가가 오를 때 처분하여 회장에게 8억원이 넘는 차익을 안겨 주었다. 최회장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 로봇을 가졌다는 사실이 들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안증권 본사 4층 조사부, 최회장에게 스카우트되어 중앙증권에서 자리를 옮긴 박상민 차장은 아름다운 남산의 풍광을 즐기며 어제 저녁 룸살롱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이미 알고 지내던 작전세력들과 결탁하는 자리에서 그는 그들로부터 사례비까지 받아 챙겼다. 이번 작전에 로열그룹 전체가 동원된다는 정보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최회장이 핫라인 전화로 박차장에게 작전 명령을 하달한 것은 어제 오후였다. 그래서, 그는 이미 회장 몰래 엄차장과 동업관계를 만들며 서울상대파, 공인회계사파, 세무사파 등의 작전 세력들과 큰 손들을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작전을 개시했지만 박차장과 엄차장으로 인해 결국 최회장은 작전 실패로 끝났다.

 

"개자식들, 모두 배신자야!" (133 쪽)

 

불교신자인 최회장의 어머니를 잘 알고 지낸다는 박순자 여사가 로열그룹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금리 11%로 로열건설에 자금을 빌려주고 대여금의 2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담보로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박순자의 사무실은 최고급 호텔 룸을 연상시켰다. 어음 1,150매를 007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백%현금으로 드릴 형편이 아닙니다. 다른 상장업체의 어음을

절반 정도 섞어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171 쪽)

 

그 해 봄과 여름 3개월 동안 건설주 폭등 때 박순자와 최종길 회장은 엄청난 재미를 보았다. 박순자가 증권가의 큰 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 하반기였다. 1981년 3월부터 건설주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건설주의 대량 매수가 2~3일 간격으로 나왔다. 이 중심에는 큰 손 박순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드디어 로열건설의 주식이 활발한 거래를 보였다. 박순자의 작전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한가를 기록했다. 팔자가 없는 상황에서 사자 주문이 계속 쌓이는 가라 오퍼 전략이 적중하고 있었다. 주가가 7월 초를 고비로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사들인 물량이 총 1억 2천만주, 주당 평균 매입단가가 1천원이라면 무려 1,200억원이 투입되는 해석이 된다.

 

고려토건 손정민 회장은 언제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 병적으로 반응했다. 박순자의 함정에 빠져 사채를 이용하면서 너무나 많은 어음을 발행했기 때문에 늘 불안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어음 물량을 요구했다. 빌리는 돈의 규모 대비 어음 발행의 규모가 많을 때엔 7배나 되었다.

 

로열그룹의 최회장 역시 박순자를 경계했다. 그는 경영 여건이 어렵고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정치권과 박순자에게 더욱 신경을 썼다. 박순자의 얼굴이 머리에 떠오르자 그의 목덜미가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로열그룹의 사채상환일이 도래했으니 연장하려면 어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녀의 오만함은 돈다발에서 탄생되고 있었다.

 

소설의 배경은 '장영자 사건'이지만 사채시장과 주식시장, 정경유착, 기업사주의 비리, 금융비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소재로 다루어진다. 한마디로 지하경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2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비밀 50 - 과학자들이 밝혀낸
김형자 지음 / 푸른지식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약은 가슴에 난 상처에 특효약이다. 이 약은 부작용이 전혀 없으며 혈액순환까지 바로잡아준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약이다. 처방은 이것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식후 30분이든 식전 30분이든 서로 껴안아라"

- 매튜 헨리의 詩 중에서 (70 쪽)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자신이 행복하면 가족이 행복하고, 나아가 국가 전체가 행복해진다. 행복하다는 말은 참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살이에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우리 인간이 행복할 때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추적했다. 여기에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인용되고 있다.

 

우리의 몸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변한다. 즐거움, 행복, 평온함 같은 바람직한 감정을 느낄 때 몸은 인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반대로 두려움, 분노, 죄책감, 무력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인체를 병들게 하는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역할을 하고, 노드아드레날린은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이제 행복한 삶에 숨어있는 과학의 비밀을 밝혀내는 여행을 떠나보자.

 

체취가 끌리는 사람이 연인이다

 

땀 냄새, 입 냄새, 머리카락 냄새, 발 냄새 등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냄새를 뿜어낸다. 상대방이 풍기는 냄새를 우리는 후각을 통해 감지한다. 이것이 이성에게 끌리고 호감을 갖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시각이나 청각에 의한 정보보다 더 빨리 우리의 마음을 유혹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같은 여성의 체취를 맡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남성의 땀 냄새를 맡으면 성호르몬 분비의 시작점인 뇌의 시상하부가 활성화된다.

 

개는 냄새로 주인을 구별한다. 이는 사람마다 다 다른 체취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면역형질이 다르다. 면역형질의 같고 다름이 냄새 호감도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어떤 체취에 끌리는 이유는 상대가 나와 다른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때문이다. 인간의 6번 염색체에는 '주조직 적합성 유전자 복합체', 즉 MHC가 있다. 이는 인간의 면역체계를 관장하고 있다. 개개인의 체취를 결정하는 유전자 조합이기도 하다. MHC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근친상간을 막아주는 것이다.

 

6월 초여름, 밤나무 곁을 걷다 보면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밤나무 꽃의 냄새는 남자 정액 냄새와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예부터 남자의 품이 그리운 과부나 여성들이 이 냄새를 좋아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실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에겐 별로 상쾌한 느낌을 주지 않지만 여성들은 밤꽃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로 느낀다고 한다.

 

전립선은 방광 바로 아래에서 요로를 둘러사고 있는 장기다. 태어날 때는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작지만 사춘기부터 조금씩 커져 성인이 되면 무게가 20kg에 달할 정도로 커진다. 밤톨 모양이라 대한해부학과학회에서는 이를 '밤톨샘'이라고 부른다. 전립선액에는 정자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와 효소가 들어 있는데, 이 성분 때문에 밤꽃 냄새가 난다. 특히, 스펠민이라는 효소가 독특한 밤꽃 냄새를 만든다.

 

남성의 정액은 시기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 건강할 때는 마치 향수 냄새를 방불케 하는 좋은 향이 나지만, 몹시 피곤하거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는 냄새가 고약하다. 그렇다면 정액에서 발산되는 냄새만 여성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일까? 아니다. 냄새만이 아니라 정액 속의 테스토스테른, 에스트로겐 등의 물질이 성관계를 하는 동안 여성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산부인과 배석년 교수와 박래옥 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정액 속의 시자르라는 성분이 난소암을 예방하고 여성의 면역력을 높여주며 피부를 윤택하게 만든다고 한다.

 

폴임 박사의 <책속의 책>에 따르면, 성관계를 맺을 때는 남녀 모두 신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동공이 확장되고, 눈에선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흥분이 고조되면 혈액이 피부 표면으로 분포되고, 입술은 촉촉해지면서 부풀어 오른다. 피부는 뜨거워지고 붉어지는데, 이런 현상은 여성에게 더 두드러진다. 실제 여성의 75%는 등과 가슴, 목 언저리에 피부 발진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난 뒤 오르가즘 직후에 사라진다.

 

바소프레신은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나 성행위 중에 많이 분비된다. 남성의 경우 평소에 비해 다섯 배 이상 많아진다. 바스프레신의 분비가 늘어나면 남성은 파트너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유대감을 느끼고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상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 이는 수컷 포유동물들에게 부성 본능을 일깨워주고자 부여한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들은 가정적으로 변하고 철이 드는 법이다.

 

향수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면 우울증을 의심하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예후다 쉔펠드 박사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냄새를 잘 맡지 못해 향수를 지나치게 사용한다고 한다. 우울증을 겪을 때는 후각신경이 무뎌져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래서, 우울증을 겪는 여성은 기분 전환을 위해 정상인보다 더 많은 향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우울증을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연구 팀은 아로마 테라피를 권장한다. 아로마는 식물의 꽃, 잎, 열매에서 추출한 천연향으로 오랫동안 민간요법에서 활용해왔다. 아로마는 성분과 효능에 따라 크게 진정香과 각성香으로 분류한다. 진정향을 내는 알데히드, 각성향을 내는 리나릴 아세테이트가 바로 그런 성분이다. 라벤더, 캐모마일 등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진정향의 대표적 식물이다. 로즈마리, 레몬 등은 각성향을 내는 대표적 식물이다. 진정향은 우리의 몸을 이완 상태로 만들어주며, 각성향은 집중력과 능률을 향상시켜준다.

 

지겹게 비가 내리면 기분이 가라앉고 괜스리 우울해진다. 19세기 산업혁명 시절, 영국의 대도시엔 구루병 환자가 만연했다. 이는 매연이 햇빛을 가려 체내에 비타민D가 생성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었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우울증 등 정서장애가 늘고, 근육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햇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눈을 통해 빛이 들어오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경영학 교수 로렌스 윌리엄스와 예일 대학 심리학 교수 존 바그는 임상실험을 통해 따뜻한 온도가 심리적인 따듯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뜻한 물체를 만지고 나면 타인을 대하는 마음도 너그러워져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손이 차가운 사람은 가슴이 따뜻하고, 손이 뜨거운 사람은 마음이 차다'는 속설은 틀린 말이다. 정성 들인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해보자. 한 잔이 전하는 온기가 상대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돈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할까? 이에 대해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사회학자 글렌 파이어보 교수와 로라 타흐 교수는 '주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있어야 사람들은 행복해진다'고 답한다. 또한, 돈과 행복의 관계를 조사한 두 교수는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라고 결론내렸다.

 

한편,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 연구 팀은 돈의 많고 적음을 더나 돈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이 돈을 셀 때 감정이 고조되고 면역체계가 활발하게 활동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돈이 지폐든 동전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감정을 변화시켰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돈을 모으기만 하는 사람을 구두쇠라고 한다. 반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돈을 기꺼이 베푸는 사람을 자선사업가 또는 기부가라고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엘리자베스 던 교수는 소득에 관계없이 타인을 위해 선물을 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등,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2010년 <포브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세계 56위로 나타났다. 당시 경제 위기에 빠진 그리스(50위), 내전 상태인 코소보(54위), 최빈국으로 꼽히는 니카라과(52위)보다도 더 못한 순위였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와 국민의 행복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행복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일리노이 대학 에드 디너 교수의 말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돈으로 편안함을 얻을지언정 평안함을 얻지 못한다.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고, 사회관계의 질이 낮다.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물질중심주의적 가치관은 최빈국인 짐바브웨보다 심하다. 한국 사회가 이 상태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더 잘살게 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격을 파하라 - 대한민국 No.1 크리에이터의 파격적인 창의창조론
송창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며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방송가의 저명인사 송창의 PD는 올해로 방송 PD 35년차에 접어들었다. 1977년 MBC에 입사하여 조연출 수습을 거쳐 <뽀뽀뽀>로 정식 PD에 데뷔했다. 이후 그는 간판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파격적인 연출력을 발휘하며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가 되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특종 TV 연예>, 일일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성인 시트콤 <세 친구>등을 연출하며 우리나라 대표 예능PD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MBC를 퇴사하여 잠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다가 현재는 CJ E&M 방송부문 대표 채널 tvN의 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창의는 습관이다

 

35년 동안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시청률이 항상 고공행진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상황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노력을 감행했다. 그의 노력은 마치 습관과도 같았다. 그는 지금도 '창의'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여기에 매달린다.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창의'인 것이다.

 

2006년 6월 tvN으로 자리를 옮길 때만해도 케이블 채널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공중파와 달리 자체 제작물이 거의 없기에 변두리 방송이었다. tvN이 개국하고 몇몇 프로그램을 런칭했는데, 평균 시청률이 0.3~0.4%였다. 공중파는 시청률이 10%정도면 망했다고 하는데 케이블은 시청률 1%만 나와도 격려금을 지급받을 정도였다.

 

마이너리티 인식이 팽배한 케이블에 그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케이블이 공중파처럼 해서는 승부가 되지 않을뿐더러 굳이 공중파를 다라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공중파에 비해 심의기준이 다소 자유로운 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결정하고 그는 세 가지의 모토를 정했다.

 

럭셔리(Luxury)

 

케이블이라고 해서 없어 보이게 하지 말고 적은 제작비라도 때깔 있는 걸 만들자.

 

어그레시브(Aggressive)

 

마이너리티 의식에 사로잡혀 움츠러들지 말고 공중파 뒤통수치는 공격적인 걸 해보자.

 

섹시(Sexy)

 

눈길이 가고 끌리는 것. 지금 말로 하면 앳지 있는 걸 하자.

 



 

시행착오를 거치고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tvN의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19금禁을 걷어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프로그램의 선정적 이미지를 제거해야만 했다. 케이블 채널이 공중파에 비해 대중적 인기도가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출연진 섭외도 경쟁력이 약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프로그램 중 <택시>와 <막돼먹은 영애 씨>는 실험정신과 창의적 마인드의 궁합이 잘 맞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격을 파하다

 

MBC의 <일밤>은 코미디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웃음의 코드를 만들어냈다. 고정관념을 뒤엎고 기존의 공식을 파괴할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법이다. 1990년 3월, 개편 이후 첫 방송이 나갔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그 다음 날 바로 여기저기서 그 반응이 피드백 된다. 사실은 그 전에 프로그램을 녹화할 때부터 그 느낌으로 안다. 방청객이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자지러지는 것이었다. 또한, 같이 일하는 방송국 스태프들이 함께 웃으니 그야말로 '게임 끝'이었다.

 

'콩트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표방하자, 콩트를 할 때는 참으로 할 게 없더니 이젠 할 게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대로 몇 가지 코너를 정리했다. 이 때 탄생된 것이 <배워봅시다>, <정다운 이웃>, <일요진단>, <몰래카메라> 등이었다. <배워봅시다>는 핸섬한 신사 주병진과 푸짐하고 강한 캐릭터의 노사연이 마술, 태권도, 발레, 수영 등을 전문가에게서 배우면서 발생하는 해프닝이 바로 웃음의 키였다. <일요진단>에서는 주병진과 이경규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두고 전문가 행세를 하다가 밑천이 딸려 쟁점이 삼천포로 빠지는 콘셉이었다. 디테일한 대본없이 연기자의 순발력에 의존한 <몰래카메라>는 리얼리티 예능의 시초였다.

 

<몰카>는 당시 PD인생을 걸고 시도한 모험이었다. 이의 원조는 외국의 '캔디드 카메라(candid camera)'인데, 카메라의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면서 보여주는 솔직한 행동을 포착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처음 이를 도입한 방송사는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TBC)였다. 길거리에 돈을 떨어뜨려놓고 이를 발견한 행인들의 반응을 보는 것인데, 방송이 나간 뒤 여론과 언론에 뭇매를 맞고 국내에서는 이런 형식의 방송이 그간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무수히 많은 관계로 이어져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

그것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결국 나를 완성하는 것은 관계다.(118 쪽)

 

미디어는 메세지다

 

그가 30년 넘게 PD로 일하면서 얻은 몇 가지 방송철학 중 하나가 '미디어는 메세지다'이다. 원래 이 말은 마셜 맥루한이라는 캐나다 학자가 제안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기술의 총체로 상징되는 미디어에 의해 인간의 사고 영역과 능력이 확장되고 이를 통해 변화가 발생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1980년대 초반 <뽀뽀뽀>를 연출하던 때였다. 그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인형극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루는 조그만 강당에 참석자를 모아놓고 노인 한 분이 인형에 줄을 매달고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들고 단상에 나타났다. 한줄기 조명이 인형을 비추고 애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 노인이 줄을 이용해 인형을 움직였다. 인형이 아니라 완전 사람이었다. 누가 야단을 치면 금방 눈물 흘리며 슬퍼할 것만 같았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던 그 때 카메라가 인형을 클로즈업했다. 그러나, 모니터에 비친 인형은 그냥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멀리서 본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았는데, 모니터를 통해 본 모습은 나무토막이었다. 바로 이 순간 그는 대학 강의 시간에 의미도 모른 채 지겹게 들었던 그 명제 '미디어는 메세지다'라는 의미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송창의 식 '미디어는 메세지다'는 엉뚱한 곳에서 실현되었다. 사자머리에 롱드레스는 미스코리아를 선출하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미디어에 맞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특종 TV 연예>에 캐스팅한 이승연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시청자로부터 호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승연씨, 오늘부터 미스코리아는 잊으세요.

당신은 오늘부터 20대 대학생으로 보여야 합니다" (173 쪽)

 



 

tvN으로 자리를 옮긴 뒤로 프로그램들을 쇄신하면서 그가 후배 PD들에게 주문하는 사항도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택시>를 연출하는 후배 PD에게도 택시라는 미디어를 십분 활용하여 거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메세지를 만들어내라는 주문이었다. 또한, 백지연의 <끝장토론>도 패널이 흥분하여 떨리는 손이나 MC가 메모하는 메모지를 카메라 앵글에 담는 등 'TV적'으로 만들라고 했다. 영상이 중심인 매체에서 토론하므로 이 특성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애는 어느 한 시기에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오늘 쌓은 것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에 축적한 어느 한 가지가 그 다음 날에 또 영향을 미친다. 삶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기에 30여 년 전에 깨우친 아주 작은 것 하나가 오늘의 송창의 자신에게 큰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