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
피터 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에코의서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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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벳이란 '어떤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발전시키고 시험하기 위해

부담없이 해봄직한 시도'를 의미합니다" (4 쪽)

 

크리스 록은 적은 관객을 상대로 작은 실험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코미디물을 발전시켜 나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그가 해외 순회 공연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실패로 끝난 수많은 건의 '작은 실험 little bets'를 통해 검증하고 익힌 지식의 산물이다. 그는 개략적으로 구상한 소재들을 약 50명 정도의 관객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시험 공연을 미리 해본다. 한 회 분량의 완전한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해 수백 개의 예비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이 중에서 소수만 엄선해서 실제 공연 무대에 올린다.

 



 크리스 록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칼렌슨은 두 가지 유형의 혁신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가 바로 그 유형이다. 크리스 록처럼 작은 실험을 통해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실험적 혁신가'라고 불렀다. 모차르트 같은 '개념적 혁신가'는 과감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위대한 혁신을 이룩한다. 특히, 칼렌슨은 현실적으로 널리 존재하는 유형이 실험적 혁신가이며 들은 실험적이고 반복적이며 시행착오를 거치는 접근법을 이용하여 끈질지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특징을 보이기에 더욱 흥미를 가진다고 한다.

 

"만일 1만가지의 방법을 시도했는데 모두 효과가 없다고 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방식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나는 한 발짝 전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 토마스 에디슨 (24 쪽)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9천 번 이상의 실험을 시도하면서,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위대한 발명가의 이야기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베토벤은 무수한 실험을 거쳐 기존의 모차르트 식 작곡법에서 탈피할 때까지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청중을 대상으로 새로운 양식과 형식을 시도하는 창작의 과정을 거쳤다. 현존하는 베토벤의 악보 중 일부는 교정 부호, 수정 사항, X표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다수의 작은 실험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감지하여 탁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창조적인 가능성에서 출발하여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인 검증을 거치고, 불확실성을 극복하여 올바른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큰 실험보다 오히려 작은 실험을 통해 이전의 미지 상태를 깨닫게 된다. 천재는 매우 드물게 탄생하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위해 작은 실험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작은 실험에 접근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실험 실천,실패를 통해 빨리 배운다. 베토벤이 새로운 음악 양식과 형식을 발견했던 것 처럼 실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구상한다.

 

놀이 유쾌하고 즉흥적이며 익살 넘치는 분위기

 

몰입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발전시킨다.

 

정의 이룩한 통찰력을 활용하여 해결하기 전 문제의 내용과 요구를 규정한다.

 

순응 작은 성공을 활용하여 완성에 이르는 진로를 결정한다.

 

반복 크리스 록이 코미디 공연을 완성시킬 때처럼 가설을 이용해 반복하면서 개선하고 검증한다.

 

 

고정 사고관 vs 성장 사고관

 

고정 사고관을 선호하는 사람은 인간마다 고유한 재능을 타고나며 지능이나 능력은 바위에 각인된 것처럼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안달이다. 반면 성장 사고관을 선호하는 이들은 지능이나 능력은 노력하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패나 좌절을 성공의 기회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하려는 열망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시리학 교수 캐럴 드웩 박사는 어째서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데 더욱 적극적인지에 대하여 연구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성장 사고관의 대표 주자로 마이클 조던을 자주 거론한다. 조던이 농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리 대단한 자질이 보이지 않았지만 엄청난 노력을 통해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한편 드웩 박사가 고정 사고관의 사례로 꼽는 사람은 존 매켄로이다. 테니스 코트의 악동으로 유명한 그는 시합에서 일단 뒤지기 시작하면 선심에서 관중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비난한다. 그는 경기에 집중하여 게임 상황을 호전시키기보다 분노에 휩쓸려 오히려 발끈하기 일쑤였다.

 

"고정 사고관은 어려움이나 노고,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식되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모두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장 사고관은 앞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모두 기회로 간주한다"

 - 캐럴 드웩(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심리학 교수)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성장 사고관은 매우 인상적이다. 80대의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디즈니 콘서트홀을 건축한 사람으로 1989년 건축가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성공적인 건축물을 완성하고 주위에서 수많은 찬사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적어도 시작 단계에서는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그는 이를 '건전한 불안감'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접근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기회로 인식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려하기보다 앞으로 얻게 될 통찰력에 더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실패 견본 만들기

 

견본 만들기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유용한 전략이다.  소설가 앤 라모트는 그녀의 저서 <글쓰기 수업>에서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말로 형편없는 초고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동료들과 함께 종이나 골판지를 오리고 구기고 접어서 새로운 건축 디자인을 시작한다.

 

"그들은 더 나은 생각에 이르기 위해 저렴한 견본을 제작한다" (95 쪽)

 

개략적인 시발점에서 최종 버전까지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모형으로 구현되는 수준에 이르지도 못한다. 프랭크 게리와 그의 동료들은 이해 당사자들에게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들을 모형으로 제작하며, 건물의 형태와 모형은 장기간에 걸쳐 잘라내고 새로이 붙이는 과정을 통해 점점 세밀해진다.

 



 

픽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견본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따라 새로운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픽사는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수천 개의 스토리보드를 구상했다. 사실상 이는 모든 아이디어를 최종 작품에 반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이다. 가로 10cm, 세로 25cm 크기의 흰색 종이 보드 위에 피쇼ㅏ의 스토리 아티스트들이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그 결과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4만 3536장이나 되었다.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여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영화감독과의 스토리 미팅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스토리보드별로 피드백을 제공하고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브레인스토밍했다.

 

제대로 질문하기

 

창조적 통찰력을 달성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 중 하나가 이론을 버리고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와 아이디어, 필요와 욕구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이것들은 언제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너머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를 수 있다. 그러자면 더 깊이 파고들고 더 넓게 살펴보고 집중해야만 한다.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의 창업자이자 미소금융의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2006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 그는 자신의 자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에서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기차역과 버스 정류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극심한 기근이 인도를 휩쓸자 굶주림에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먹거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1974년 당시 그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2년이 흐른 어느 날, 치타공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 조브라에서 그는 하루 10시간씩 맨발로 밟아서 탈곡하는 여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는 '벌레의 시각'이라는 관점으로 빈곤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다.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하루에 고작 2센트밖에 벌지 못한다는 이 마을의 여인 수피아 베굼의 이야기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또한, 재료비를 사채업자로부터 빌려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업에 종사하는 42명의 재료비를 모두 합쳐도 27달러가 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대부업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27달러를 빌려주었다. 1977년에 그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여 극빈층 자영업자들에게 소액 대출을 시행했다. 96퍼센트가 여성들이었다. 극빈자들도 신용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랫동안 인도 금융업계가 견지했던 뿌리 깊은 회의론도 극복하게 되었다. 65억 달러 이상을 극빈자들에게 대부하였고, 상환율이 98퍼센트 이상을 기록했던 것이다.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무하마드 유누스 지음


 






 


 

 

다시금 크리스 록의 접근 방식을 들여다 보자. 그는 청중을 열심히 관찰하여 고개를 끄덕이거나 보디 랭귀지가 변하거나 집중에 의한 순간적인 침묵 등 좋은 아이디어를 의미하는 단서들을 포착한다. 또한 그는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 광범위한 농담을 즉흥적으로 구상한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전혀 호을을 얻지 못한다. 청중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룻밤 공연에서 5~10줄 정도가 반응이 좋다면 이를 중심으로 연기를 구성한다. 수천 개의 예비 아이디어를 시도해야만 하며, 이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위대한 창조는 작은 실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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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지낸 것들 - 나만 위해 아등바등 사느라 무거워진 인생에게
니시다 후미오 지음, 박은희 옮김, 변종모 사진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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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일본어판 제목은 <타희력他喜力>이다. 타인을 기쁘게 해주는 힘이란 의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가'에 대하여,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일곱 가지의 실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잔잔한 깨우침을 주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인생에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비극과 마주했을 때 등 우리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뭔가 목말라 하는 것이 있다. 이 목마름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가족, 사랑, 우정, 헌신, 공감 등과 같은 가치는 우리가 이를 잃거나 또는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불가의 가르침 중에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이 있다. 남을 이롭게 하면 나 자신도 이롭다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자신의 재물을 나눔으로써 이를 통해 행복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작은 라면집을 경영하고 있는 50살의 미치히로씨가 이런 부류의 사람이다. 그는 늘 똑같은 앞치마에 낡은 두건을 동여매고, 허드렛일로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라면을 삶아낸다.

 

그는 최근에 여동생이 한 사람 생겼다. 암투병을 성공적을 이겨낸 가수 다카유키의 부탁으로 치토세 대학병원 암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 이토 토키요의 오빠가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카유키로부터 전화를 받고 가게 영업이 끝나자마자 그는 토키오를 찾아갔다. 병실의 분위기로는 병문안을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이 없음을 직감하게 했다. 두 달 시한을 받은 토키오에게 오빠가되기로 약속했다. 이후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꼭 병문안을 갔다. 토키오는 그를 잘 따랐고, 이젠 그의 아내에게도 언니라고 불렀다.

 

토키요는 새어머니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가출을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를 매우 미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작은 사무실의 경리로 취직해서 월급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밥값이 아까워 점심시간에 찬밥에 물을 말아 장아찌로 먹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다가 밤이면 퇴근해 단칸방에서 잠자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유일한 꿈은 돈을 모아 따뜻한 남쪽나라 섬에서 사는 것이었다.

 

미치히로가 병문안을 다닌지 한 달쯤 지났을 때, 토키요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도 암 환자들을 위한 콘서트에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노래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것이다. 또한, 화사한 드레스도 입어보고 싶었다. 이 소망을 들은 미치히로는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래, 알았어. 이 오빠만 믿어" (27 쪽)

 

9월 7일에 'For 토키요' 콘서트를 열기로 하고 가수 다카유키를 비롯한 출연자를 모두 초대했다. 놀랍게도 토키요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생의 불꽃이었던 것이다. 8월 7일 새벽, 병원에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토키요는 혼수상태를 오갔다. 담당의사가 장례 준비를 하라는 언질을 주었다. 토키요 아버지에게 전화했지만 그런 딸이 없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미치히로도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버림 받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그는 사고뭉치였다. 툭하면 아이들과 주먹다짐에다 외박을 밥먹듯 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뒤 그는 잡부일을 전전하다 고기잡이 배에 올랐다. 파도가 유난히 거친 어느 날, 갑자기 덮쳐온 파도를 얻어맞고 그는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대로 죽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선장이 던져준 밧줄을 잡고 그는 필사적으로 갑판위로 올랐다.

 

"구석에 버려진 녹슨 나사 하나도 언젠간 다 쓸모가 있는 법이야.

인생, 생각보다 그렇게 모질지 않다네" (40 쪽)

 

하얀 드레스와 티아라가 준비되었다. 사진사도 오고, 콘서트 공연에 참석하기로 했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토키요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 하얀 드레스에 반짝이는 티아라 때문에 얼굴에 광채가 났다. 손에는 누군가 길에서 꺾어온 코스모스와 클로버로 만든 꽃다발도 들려 있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모두 기념촬영을 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내 동생이 되어줘. 그땐 네 결혼식에서 이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너를 한껏 축하해줄게.

고맙다, 내 동생. 내 하나뿐인 동생..." (44 쪽)

 

8월 8일 새벽, 단 2개월 간의 여동생 토키요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토키요의 나이 43세. 토키요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장례식은 지인들만 모인 조촐한 자리가 되었다. 영정 사진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티아라를 쓴 토키요의 모습으로 결정했다. 토키요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남태평양의 어느 섬 사진과 함께 이 영정 사진은 미치히로의 집에 장식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빛과 소금이 되어줌으로써 더욱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지금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먼저 자신의 손을 남에게 내밀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길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타희력이며, 자리이타 정신인 것이다. 

 

이 책은 모두 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 '꿈 케이크'를 무료로 만들어주는 '카쇼 시미즈' 제과점, 쿠키 마사토의 후회없는 삶의 조건, 교통사고를 통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장애인 스포츠 스타 코유야 카즈유키, 장애인들에게 일하는 기쁨을 제공하는 세탁 공장 건성사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데 이를 우리가 잊고 지낸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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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파괴의 경영 트렌드 28
김상훈.비즈트렌드연구회 지음 / 원앤원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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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 기원전 6세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성공하는 경영자가 되려면 시장의 흐름을 읽고 경쟁자보다 먼저 미래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일시적인 유행과 의미있는 트렌드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경영자 입장에서 이를 잘 파악해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이 아는 것은 남도 이미 알고 있거나, 유의미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경영에 적극 반영했더니 일시적 유행에 그치고 마는 경우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간 절대적인 진리로 믿어왔던 모든 경영 기법을 돌이켜보게 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서울대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와 비즈트렌드연구회 회원들은 경영학 교과서나 기존 경영 트렌드를 통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트렌드가 아닌 상식 파괴의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나아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트렌드를 파고들면서 경영자들의 선입견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으로 인해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는 이 시대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당장 활용 가능한 비즈니스 트렌드를 살펴 보자.

 

브랜드의 죽음

 

브랜드라는 단어는 고대 노르웨이 목동들이 소의 소유권을 구별하려고 자신만의 표시로 인두를 활용했다는 'Brandr'에서 유래했다. 현대적 의미의 브랜드는 그 기원을 10세기 무렵의 유럽에서 찾을 수 있는데, 상공인의 조직인 길드에서 위조품을 방지하려고 표식하여 자신들의 대외적인 독점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처럼 브랜드는 당초 제품을 식별하는 단순한 기호에 불과했지만 이젠 제품의 가치와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하이테크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지스 맥케나가 2000년 갑자기 '브랜드의 죽음'을 선언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한 시절에 브랜드는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이끄는 첨병이었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소비자는 기업의 홍보성 광고를 그냥 수용했다. 이 시절엔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기에 그의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모두 의아해했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목소리는 재조명되고 있다.

 

블로그가 넘쳐나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구축된 현대의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비교하면서 구매를 결정하고 있다. 더구나 사용후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도 이를 리얼 타임으로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한 사람만이 아니라 수만 명에게 동시에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제 소비자들은 수동적으로 광고를 맹신하지 않는다.

 

설혹 브랜딩의 노력으로 'A 브랜드 = 무엇'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소비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KT는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도입 초기에 '쇼(Show)'를 알리는데 주력하여 소비자들에게 이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쇼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실속없는 성적표를 손에 들자 KT는 새로운 브랜드 '올레(olleh)'를 선택했다.

 

우리가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애플이 우리들의 귓가에 '우리는 혁신적이야'라고 속삭였기 때문이 아니라 애플의 로고가 붙은 제품들 스스로가 혁신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브랜딩의 진정성은 이처럼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콘셉트를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집스럽게 추구하는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망선고를 받은 브랜딩을 살리는 길은 브랜드의 본질인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에 브랜딩의 진정성을 담는 것이다.

 

시장세분화, 꼭 해야 할까

 

"마케팅 전략의 출발점은 시장세분화다" (101 쪽)

 

시장세분화는 이른바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 시장세분화, 표적시장선정, 포지셔닝)이라 불리는 마케팅 전략수립 프로세스의 첫 단계이자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다.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던 이 개념이 최근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시장세분화의 논리적 근거는 '모든 사람이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소비자의 취향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기업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비슷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를 같은 그룹으로 묶는 마케팅 믹스(상품, 가격, 유통, 촉진전략)을 차별적으로 제시했다.

 

시장세분화 기법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세분화의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마케터들이 늘어났다. 기업이 시장을 세분화하는 이유는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틈새시장을 찾기 위해 시장을 계속 쪼개면 이윤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겨났다. 이는 시장에 속한 고객들의 니즈가 자주 변했기 때문이다.

 

"시장세분화를 거듭하다 보면 시장은 점점 더 작아지고 마침내 포화상태가 되며,

초세분화된 작은 틈새시장에서는 이윤을 남길 기회도 감소한다" 

- 필립 코틀러의 <수평형 마케팅> 중에서(103 쪽)

 

이에 시장세분화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으므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성장 가능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아예 시장의 경계선을 재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되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는 모든 고객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본원적 상품'의 개발이다. 이는 시장을 잘게 쪼개서 각개전투에 나서는 대신 하나의 강력한 제품과 서비스로 모든 고객층에 어필하는 방법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본원적 상품을 기본으로 하는 '옵션', 즉 '내 맘대로 골라 즐기려는' 다양한 선택사양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런 전략에 보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꼭 최초일 필요도, 1등일 필요도 없다

 

국내외 기업의 성공 역사를 삺보면 '최초', '원조' 상품을 선보이는 기업이 '최고'가 되는 사례가 많다. 코카콜라, 페덱스, 크리넥스, 비타 500 등이 바로 그 예다. 시장을 개척한 기업들이 높은 점유율을 보이며 '선도 진입자 우위'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선도 진입자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회사 암펙스가 최초로 개발한 비디오 카세트 리코더(VCR) 시장에서는 소니와 JVC가 승자였다. 복사기는 3M이 원조지만 후발주자 제록스에게 1등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와같이 최초의 제품을 선보인 기업만이 성공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후발주자는 '무임 승차자 효과'를 누릴 분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에서의 불확실성 또한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찌감치 후발주자로서 '재빠른 2등 전략'을 펼치는 기업도 있다. 이 전략으로 성공을 누리려면 1등만큼 빨리 움직이는 '타이밍'에 강해야 한다.

 

처음부터 '영원한 2등 전략'을 구사하며 오히려 1등 기업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때로는 유용한 전술이 된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처음에 2등 전략을 고수했다. 당초 연출을 맡은 김태호PD는 공공연하게 이를 말했다. '2등만 하자'는 방침으로 유재석을 제외하고는 비주류MC를 섭외하면서 출연료 등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모두가 '최초'와 '1등'을 외칠 때,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의 기업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1등 하면 결국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2등 정도로 따라가면서 오래 가고 싶다" (162~163 쪽) 

 

신발장사 '자포스', 경영학의 상식을 파괴하다

 

지난해 9월 아마존이 온라인 신발 쇼핑업체 자포스를 인수했을 때 사람들은 그 인수가에 놀랐다. 자포스의 인수가는 12억달러(1조2700억원)로 아마존이 역대 인수한 기업 중 최고가였다. 자포스가 아무리 잘나가는 온라인 쇼핑업체였지만 이만한 기업가치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은 '아마존이 인수한 것은 자포스의 독특한 기업문화'라는 해답을 내놨다.

 

 * 자포스의 10가지 핵심가치
 1.고객 감동 서비스를 실천하자
 2.변화를 수용하고 주도하자
 3.재미와 약간의 괴팍함을 추구하자
 4.모험심과 창의성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갖자
 5.배움과 성장을 추구하자
 6.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솔직하고 열린 관계를 만들자
 7.확고한 팀워크와 가족애를 갖자
 8.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만들자
 9.열정적이고 단호하게 행동하자
10.늘 겸손.겸허하자


자포스의 기업문화와 경영방식은 그야말로 상식 파괴적이다. 우선 전체 직원 1500명의 27%인 400명이 콜센터 직원이다. 기업 대부분이 상품 기획과 판매를 중심에 두는 반면에 자포스는 고객 응대를 핵심에 두는 것부터 남다르다. 콜센터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하지만 자포스는 콜센터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콜센터 직원의 응답내용을 들으면 더 경악할지도 모른다. 어떤 직원은 7시간 넘게 한 고객만 붙잡고 통화하는가 하면 다른 직원은 경쟁사 제품을 안내해준다. 한 술 더 떠 피자집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고객에게 전화번호를 검색해 찾아주기도 한다. 고객응대 매뉴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만족을 위해서라면 회사 규칙을 어기는 것쯤은 눈감아 준다.

과연 이런 회사가 장사를 제대로 할까 싶지만 자포스 고객 재구매율은 75%에 이르고 아마존에 인수되기 직전 자포스 매출은 10억달러(11조원)를 기록했다. ‘신발을 온라인에서 파는 사업은 안 될 것’이라는 시장 예측과 불황으로 콜센터 직원을 감축하는 흐름과 반대로 콜센터 역할을 더 강조한 자포스는 가장 대표적인 상식파괴 경영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상식 파괴의 경영 트렌드를 통해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과 시장에 대한 통찰을 주기 위해 집필되었다. 책 내용인 28개의 경영 트렌드 중 일부는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역 트렌드의 출현은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일 것이다. 시간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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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 차(茶) 명상과 치유
정광주 지음, 임재율 사진 / 학지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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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란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신비주의자 또는 구도자들이 행하는 종교적인 의식 내지는 수행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명상을 종교적인 행위로 규정짓는 것은 편협된 생각입니다. 명상은 신비주의자나 구도자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의식의 표면으로부터

자신의 깊은 곳까지 정화하며 자기치유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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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대학시절 칼 융에 매료되어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정광주 박사가 대학원에서의 수학시 경험했던 명상과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차를 통해 명상의 정도가 더욱 풍부해졌다는 자신의 실제적인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의 지친 심신에 놀라운 에너지를 불러 넣어준 차명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차茶명상의 의미와 실체

 

차명상이란 '차생활의 유익한 측면과 다양한 명상 기법 등을 접목하여 심신의 안녕, 치유 그리고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즉 차를 준비하고 우리고 음미하고 명상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챙김' 명상을, 특정한 주제나 대상에 주위를 집중할 때에는 집중명상을 활용할 수 있다. 명상의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작용을 통찰하게 되어, 자기이해를 통해 자연히 자기치유를 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하게 마시는 차를 통해 우리는 정신적 긴장을 내려놓고 현재 이 순간에 머무르게 된다. 명상을 통해 매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 하다보면, 우리는 놓아 버릴 때 비로소 기쁨이 일어나고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에 있게 됨을 경험하게 된다.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에서든 우리는 차명상을 할 수 있다. 거실이나 식탁의 한 자리에서, 직장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또는 뭔가를 기다리는 시간 등에서 잠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차명상을 할 때 주위를 집중하기 위해 '호흡 관찰'이 필수적이다. 마음이란 호흡에 중심을 두고 바라보지 않으면 곧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허리를 펴고 편안하게 앉는다.

호흡이 들고 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 숨을 깊이 마시고 내쉬어 본다.

호흡이 관찰되는 지점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호흡을 계속 바라본다.

 

다양한 차와 명상

 



 

"특별한 다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다관과 찻잔,

그리고 잠시 쉬어 가는 마음이 필요할 뿐" (73 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성품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듯 차를 제대로 느낀다는 것은 차에 대하여 치우침없이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찻잎, 맛, 색, 향, 젖은 찻잎 등 차가 풍기는 분위기를 보면서 차에 집중하여 차가 보여주는 세상을 섬세하게 느껴 보자.

 

차명상은 바쁜 일상 속에서 무디어진 우리 몸을 일깨운다. 차를 음료로만 국한하지 말고 여러 차가 가지고 있는 품성을 섬세하게 느껴본다. 몸에서 일어나는 오감을 느끼고, 이 오감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바라보자. 명상에 제격인 곡우전차穀雨前茶, 꽃차, 찻잎 안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품어내는 효소의 맛을 내는 보이차,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는 다르질링, 가장 아름다운 홍빛을 띠는 스리랑카 홍차 우바, 영국을 사로잡은 기문홍차 등 다양한 차를 음미하며 우리의 심신과 삶을 통찰해보자.

 

다양한 차를 갖고 있다면 '티 샤워'를 해보자. 차로 목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티 샤워는 반드시 식사 이후에 하며 늦은 저녁시간은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차를 마시는 순서는 나중으로 갈수록 부드러운 차가 좋다. 녹차, 홍차, 보이차, 허브차 등 갖고 있는 여러 차를 부드러운 순서로 적절하게 배치하면 된다. 특별히 차에 예민한 사람은 보이차나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 등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명상을 통한 내면으로의 여행

 



 

"차 한 잔 마시고

눈 지그시 감고 앉아

마음을 바라본다" (114 쪽)

 

명상은 마음이 가는 대로 그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을 바라보면 한 마음이 다른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 작용을 관찰할 수 있다. 마음의 흐름을 바라보면 마음자리를 돌이킬 수 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바라보자. 마음은 새로운 세계이다. 그 세계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엎드려 겸허하게 탐구한다. 때로는 마음 저 아래 새겨진 듯한 아주 오래된 상처도 만나게 되나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다. 그래서 명상은 끝없는 자기치유의 과정인가보다.

 

"홀로 마시는 차,

그러나 혼자가 아닙니다.

나무, 새

그리고 스치는 바람이

좋은 벗이 되어

내면으로의 여행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14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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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우주인의 사랑 메시지
김대선.카르멘텔스 지음 / 수선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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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紅山文明'은 중국 만주 지역에 존재했던 신석기시대의 문화이다. 시기는 기원전 4,700년~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추정되며, 배달국시대의 대표문화로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위치한 홍산홍山 인근 유역에서 발굴된 유적 때문에 '홍산문명'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문화에서는 옥문화가 발달하여 여러 유적지에서 정교한 무늬의 옥기玉器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또한, 많은 여신상과 여신묘가 출토되었는데 당시는 모권사회였음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중국 중원의 문명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특히, 유적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요하를 중심으로 신석기 문화를 주도한 세력이 한반도 선주민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홍산문명의 유물들이 한반도에서는 많이 발견된 사실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1980년대 이후 '현재의 중국영토 안의 모든 민족과 역사는 중국민족이고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바탕으로, 중원 문화와는 이질적인 홍산문명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삼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들은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중국 황제족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그들이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건국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동이족의 최초 국가인 환국을 시작으로 동이족의 고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다루고, 중국의 황하문명과 동북공정, 중국의 역할에 이어 북한과 일본 관계, 마지막으로 동이족의 미래와 역할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이족의 사라진 역사를 되찾고, 머지않은 미래에 동이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된다.

 

동이족東夷族이란 동쪽 오랑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며 일부 재야 학자는 이 명칭의 사용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동이족이란 명칭은 한민족의 고대 언어가 한자로 통일되면서 사용된 명칭이다. '동東'은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에 동쪽에서 환한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말한다. '이夷'는 큰 활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큰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동쪽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문명이 서쪽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에게 들어오는 모습이다. 

 

환국시대는 준비하는 시기라 나라를 직접 세워서 통치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는 신석기시대이다. 환국시대에 이 문명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그 지역은 동북아시아이다. 동이족 중 일부는 후에 천산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일부는 중동 지역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중동으로 이동한 부류에서 수메르를 세웠지만 이들이 환국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조상이 동이족인 것만은 분명하다.

 

"환웅 선인께서 만주 홍산 지역의 넓은 평원이 배달국에 적합한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신시神市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신시는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도시를 의미합니다. 즉,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고, 인간이 노력하여 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도시이지요. 이 신시 배달국에서 본격적인 선계의 문물이 지상에 전수되었습니다" (43~44 쪽)

 

환웅 선인이 태백산 신단수로 오셨다고 전해진다.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라 홍산문명이 이룩된 요하강 주변이라고 보면 된다. 태백산이 바로 홍산이다. 신단수神檀樹는 한자로 풀이하면 신성한 나무를 의미한다. 이는 차원이 열리는 문 즉 스타게이트를 말한다. 신단수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 넓게 퍼질 수 있는 구릉 지대였다. 구릉 옆을 흐르는 강물을 따라 많은 기운이 흘러내려 가면서 이곳 주변에 문명을 건설하기가 용이했던 것이다.

 


 다산을 기원하는 모자상.


 

환웅 선인은 지구인의 모습으로 왔다. 천부인 3개의 인을 받아 가지고 왔는데, 이는 일종의 계약서이다. 방울, 검, 거울의 의미를 각각 살펴보자. 방울은 음악이며 파장을 의미한다. 동이족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파장을 이용한 악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검은 금속문명을 전수한다는 의미로서 물질을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거울은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것으로 자신을 계속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 

 

환웅시대에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요하강 주변에서 산동 지역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황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동이족의 터전이 되고, 남쪽은 한족의 터전이 되었다. 이후 산동까지 동이족이 확장하자 한족은 내륙 쪽에서 더 이상 황하 하류로 확장하지 못했다. 이 지역이 계속적으로 환웅시대에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동이족은 홍산 일대를 시작으로 점차 동쪽으로 이동했다. 지금의 요동 지역에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시작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엔 수많은 피라미드가 널려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2001년 7월 만주의 고대 한국 피라미드의 일부를 뉴스로 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고고학자들이 내몽골에서 5천 년 전의 피라미드를 발견했으며 이 피라미드는 3층의 돌로 만든 건물이고 밑바닥은 30m 이상, 폭은 15m 이상 된다고 한다. 여기서 동이족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황하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배달문명의 유물이었다. 중국의 유명 고고학자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는 5천~6천 년 전의 홍산문화에 속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은 이들 피라미드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으며 발굴도 중단하고 학술적 조사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고조선과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자신들의 조상이 동이족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 참고 사진 (만주 피라미드들의 일부-독일인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가 찍은 것)

 

일본의 권력층은 한반도에서 진출한 사람들이었다. 초기에는 백제와 가야 세력들이 주도권 쟁탈을 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제계가 패권을 잡았다. 백제가 당나라에 패망하자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래서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이 대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일본도 동이족의 뿌리에서 나왔다. 당연히 그들은 한반도와 만주를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본래의 동이족 문화는 인디언 문화의 본류로 자연과 함께 하고 식물과 공존하며 동물과 한 가족으로 살았던 문화이다.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잠시 잊고 지냈던 본래의 문화를 다시 정착시켜야 한다. 동이족의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문화禪文化를 통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문화를 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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