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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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는 한 예술 형식을 다른 예술 형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명화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브라크는 우리가 그림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야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기란 요원한 노릇이다. 우리는 뭐든 설명하고, 의견을 내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구제 불능 언어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림 앞에 서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잘거린다. 프루스트는 미술관을 둘러보며 그림 속의 인물들이 실제로 누구와 닮았는가 촌평하기를 좋아했다. 아마 그것이 직접적인 심미적 대립을 능숙하게 피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격이나 설득으로 우리를 침묵 속에 빠뜨리는 그림은 드물다. 그런 그림이 있다 해도 침묵은 잠시뿐, 우리는 바로 그 침묵을 설명하고 이해하기를 원한다. - '서문' 중에서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그림 안내서

 

책의 저자 줄리언 반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다. 1946년생인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고, 1969년부터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이후 유수의 문학잡지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옵서버> <뉴 스테이트먼츠>지의 TV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1980)로 서머싯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해,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잉글랜드, 잉글랜드>, <용감한 친구들>, <사랑,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대의 소음> 등 12권의 장편소설과 <레몬 테이블>, <크로스 채널>, <맥박> 등 3권의 소설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등의 에세이를 펴냈다. 또한, 1980년대에는 댄 캐바나라는 필명으로 4권의 범죄소설을 쓰기도 했다.

1986년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영국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 등을 받았으며,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하며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받았다.

 

1989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리코의 그림 한 점을 두고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저자는 2013년까지 25년간 <현대 화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가디언〉 등 다양한 예술, 문학 잡지에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 책은 그의 기고 중 주목할 만한 글을 선별해 엮었다. 주로 화가의 새로운 작품 전시회에 맞춰 발표된 이 일련의 글에서 그는 예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으로 발전했는지 되짚어간다. 이제, 그의 그림 안내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리코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는 낙마落馬 사고로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지만 12년 동안의 작품을 통해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최고 명성을 쌓았다. 특히, 재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 운동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말馬 그림을 포함하여 일상적인 사건에서 극적인 요소를 한껏 끌어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그림은 역사의 닻줄을 풀어 던지고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 그림은 난파 장면도 아니다. 우리는 그 운명의 뗏목에서 일어난 잔인한 고통을 그저 상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받는 그들이 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의 비밀은 에너지의 패턴에 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들여다보자. 점처럼 작은 구조선으로 손을 뻗는 저들의 근육질 등을 통해 솟아오르는 격렬한 용오름을 보라. 그 모든 안간힘을 보라.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부분의 인간적인 감정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듯이, 우리는 이 그림의 모든 게 집중된 저 용오름의 몸부림에도 아무런 형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희망뿐 아니라, 모든 짐스러운 갈망, 그리고 야심과 증오와 사랑(특히 사랑). 이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만한 대상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 우리는 얼마나 절망하여 신호를 보내고, 하늘은 얼마나 컴컴하며, 파도는 얼마나 높은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길을 잃고, 파도에 쓸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고, 우리를 구조하러 오지 않을지도 모를 무엇을 소리쳐 부른다. 재난은 예술이 되었다.


 

쿠르베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는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출신으로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농촌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들은 '사실주의 미술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미술가동맹의 회장이었던 그는 정치 활동에도 열심이었으나, 파리 코뮌이 무너진 후 체포되었고 그 결과 파산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낭만주의에 맞지 않는 기질을 지녔다면,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참된 낭만주의자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지녔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다. 1855년, 〈화실〉〈오르낭의 매장〉이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지 못하자 쿠르베는 직접 전시회를 기획해서 데뷔했다.

이에 대해 시인 보들레르('악의 꽃')는 "무장 폭동의 난폭함 그 자체"였다고 기록했다. 그때부터 쿠르베의 인생과 프랑스 미술의 미래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내 자유를 얻고 있다. 나는 예술의 독립을 지키고 있다" 그는 그렇게 썼는데, 뒤의 말은 마치 그저 앞의 말을 공들여 다시 표현한 것 같다.  

세잔

폴 세잔(1839~1906)은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인상주의와 플랑드르 미술에 영향을 받았다.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알려진 작품인 '사과와 오렌지'는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렸다. 말년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처럼 몽환적으로 채색된 누드화 습작을 주로 그렸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머리를 문처럼 그려. 누군가의 머리가 흥미로우면 난 그것을 아주 크게 그리지" 한편, 그의 그림에는 '개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야" 세잔은 투덜거리곤 했다. "몸을 그려야지. 젠장, 몸을 잘 그리기만 하면, 영혼은-몸에 그런 게 깃들어 있다면-사방에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단체브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세잔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실물과 닮았다는 점보다는 인물이 거기 실제로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밀도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평했다.  

브라크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1882~1963)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큐비즘)를 창시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에 최초로 그림 속에 알파벳과 숫자를 그려 넣었고,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에는 오려낸 종이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처음 시도했다. 비록 카리스마 넘치는 피카소의 그늘에 가리긴 했지만, 입체파 초기의 혁명적인 실험 정신은 그에게서 나왔다.

피카소가 자신의 인간 동료들을 대한 방식에 관한 글을 읽으면 "인간 동료들"이라는 말이 과연 적합한 용어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피카소는 맹렬한 귀재에 신적 존재로서 고집과 허영심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올림포스산에 거주하면서 인간사에 불쑥불쑥 개입하던, 극히 이기적이고 농간에 능한 장난기 많은 신과 같았다.

상대가 친구나 연인이면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더 크기만 할 뿐이었다. 프랑수아즈 질로가 말했듯이 "그의 가장 비열한 장난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따로 예비되어 있었다" 브라크는 질로처럼 피카소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호치킨

하워드 호치킨(1932~)은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캔버스에 풍부한 색채와, 구도와 공간의 환영적 기법, 대담한 붓 터치 구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문인의 화가다. 그는 이야기하고, 묘사하고, 상상하고, 설명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왔다. 1992년 2월 델리, 호치킨(이하 H.H)이 그린 영국 문화원 벽화의 개막식날 저자는 그 현장에 있었다. 저자의 평을 살펴보자.   

나는 H.H.의 작품을 30년 동안 봐왔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전시회에서 다시 모이는 모습을 보면 여러 나라의 지인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만 같다. 되풀이되는 삶의 기쁨 중 하나다. 몇 년 뒤 낯익은 그림 앞에 다시 설 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 그렇고말고!' 또는 '좋군!' 또는 '맞아!' 또 어떤 때는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군!' 이 진부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그의 작품과 맺어온 지속적인 우정, 그의 작품을 흡수하고 또 그 작품에 몰두하는 행위는 조리 있는 논평으로 표현되는 일이 거의 없다. (…) 이 그림들은 내 눈과 가슴과 머리에 말을 건다. 

 

 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시각으로 펼쳐지는 그림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은 반스를 가리켜 "소설 형식의 혁신가"라고 했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에세이들도 형식 면에서 그런 특징을 갖추고 있다. 재미와 함께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지식. 여기에는 전통적인 비평적 이해에 따른 부분도 있고 사적인 것도 있다. 저자가 펼치는 미술 이야기를 살펴보면 누구든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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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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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니나 게오르게는 1973년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1992년부터 독일의 유명 매체 <함부르커 아벤트블라트>, <디 벨트>, <디 차이트> 등에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경찰 기자로 일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논픽션을 쓸 때는 앤 웨스트ANNE WEST, 스릴러는 니나 크레이머NINA KRAMER, 형사 추리 소설은 장 바뇰JEAN BAGNOL이라는 각기 다른 필명을 사용한다.

 

201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종이약국>이 150만 부 이상 판매되고 전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2012년과 2013년에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델리아DELIA 상과 글라우저GLAUSER 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들며 26권의 책을 썼다. 2019년 유럽작가연합회EWC 회장을 맡아 작가들의 국제적 권리 신장을 위해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원해. 영원히, 아니 그 이상으로.

지금 생에서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 헨리 스키너는 종군 기자였다. 그는 종횡무진 전쟁터를 누비던 시절에 만난 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샘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도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 즉 코마coma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코마'란 그리스어로 '깊은 잠'을 의미한다. 따라서 눈치 빠른 독자는 벌서 이 소설이 향후 전개될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충격적인 사고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고를 당한 주인공 헨리가 깊은 잠 속에 빠져서 꾸는 꿈, 그리고 상실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살아남은 이들 간의 과거와 현재가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한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불시의 사고였는지 헨리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의 아들 샘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를 만나지만 그저 병상에 누워 있는 채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아빠의 옛 연인이었지만 끝내 자신의 사랑을 거부당했다고 믿는 에디와 다른 병동에서 아빠처럼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는 또래의 여자아이 매디를 만난다.

 

깊은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헨리를 곁에 둔 채, 아들 샘과 아빠의 연인 에디는 아빠에 관한, 옛 연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놓는다. 에디는 아름다웠지만 가슴 아팠던 아빠 헨리와의 기억을 샘에게 털어놓는다. 타인의 영혼을 들여다볼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샘은 아빠와 자신이 첫눈에 반한 발레리나 매디의 깊고 어두운 꿈속을 유영하며 어느덧 경계가 희미해진 두 세계에서 상처의 이면을, 상실의 바깥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작품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주인공 헨리의 존재를 통해 상처받은 기억투성이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깊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마음속으로만 품고 결코 말하지 못했던 언어들, 수많은 아픈 기억의 조각들이 마치 깊숙히 감춰 놓은 일기장을 펼칠 때처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헨리가 숨겨두었던 사랑과 헌신의 마지막 조각들이 퍼즐을 완성한다.

 

"그런 일이 있단다, 샘. 그런 일이 있어. 사랑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야. 오로지 자기 자신하고 싸우고 늘 패배한단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일 수도 있어. 네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너를 더 자주 생각할 수 있어. 또는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너를 더 좋아하든지. 사랑은 미련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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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 '셀프헬프 유튜버' 오마르의 아주 다양한 문제들
오마르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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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내 시행착오들의 기록이다. 나는 어디 높은 의자 같은 데 앉아서 깨끗한 차림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와 다름없이 늘 문제들과 싸우고 또 화해하며 30년 넘게 삶의 진흙탕 위를 뒹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이번 생이 처음이다. 그리고 2회차라고 해도 지금보다 딱히 더 현명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수학엔 정석이 있지만 인생은 그게 없으니까. - '프롤로그' 중에서

 

 

오마르의 삶을 살펴보다

 

책의 저자 오마르는 토크 유튜버로 활동하고 라디오에 출연하고 종종 강연을 다니고 집에서는 글을 쓰고 있다. 동아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한 전직 무명 랩퍼 출신으로 예명이 오마르다. 자신의 이름을 홍보할 요량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듯 보이는데, 그의 본명은 양해민이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와 사촌 누나들이 불러준 별명은 '양똘'이었지만 본인은 정작 똘똘하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이미 그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입니다>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어서, 이 책도 전작의 연장선 느낌이 든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장(나를 '불편'하게 하는 속 '편한' 사람들)에서는 대인관계를, 제2장(연애도 '체력'이 필요해)에서는 연애 상담을, 마지막 제3장(안 만만해지기 연습)에서는 사회생활에서의 처세술을 각각 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수학의 정석을 3년 내내 베개로 썼던 사람이 쓴 삶의 참고서다. 참고서니까 그냥 참고만 하기를"

 

 

 

꼰대에 대하여

 

저자는 꼰대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말이 잘 안 통하고 권위적이면서 뭐든 가르치려 들길 좋아하는 피곤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당연히 이들도 다른 누군가를 꼰대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꼰대화'되는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어떤 사람이 꼰대가 될까? 제대로 살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즉 나이 들면서 시기에 걸맞는 자기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다. 이것이 부실하면 '내 소싯적엔....'를 거론하면서 어린 사람들 앞에서 유독 말이 많아진다. 뭔가 가르치려 들고 조언하길 좋아한다. 상대방의 감정은 무시한 채로.

 

 

청춘이면 꼭 꿈이 있어야 하나?

 

우리의 청춘 시절을 되돌려보면, 우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넌 꿈이 뭐니?" 질문자에게 어울릴만한 답이 전달되지 않으면 '김연아는 어떻고', '손흥민은 어떻고' 등등 그들과 비교 우위 심사대에 올려진다. 사실 꿈이 뭐 그리 대수냐?  내 경험을 굳이 들자면, 내 꿈은 외국 영화를 볼 때마다 바뀌었던 것 같다. 주인공 등 배우들이 멋져 보이면 그 사람들을 동경하는 꿈을 가졌던 것이다. 이런 꿈의 유효기간은 비교적 짧았고 수시로 변했다.

 

저자는 책에서 '꿈 중독'을 거론한다. 즉 우리 사회가 심할 정도로 이 꿈을 대단한 것으로 평가함을 지적한다. 젊은 청춘 모두가 김연아가 되고 손흥민이 되어야 하느냐고 문제 의식을 제기한다. 자꾸 '위대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되라'고 강요한다.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 그려놓은 그림은 온통 '사'짜 직업 아니면 과학자, 정치가 등등이다. 이 대열에 합류해야만 선생님이 칭찬해주는 그런 풍토야말로 바로 '주입식 교육'의 병폐일 것이다.       
 

어쩌면 꿈이 없다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적어도 분위기에 휩쓸려 엉겁결에 엉뚱한 길을 가게 되거나 꿈이 있는 척 연기하면서 '내가 아닌 나'로 살 일은 적을 테니까. 좋든 싫든 굶어 죽기 싫으면 뭐든 직업이 생길 테고 그러면 또 적당히 살아진다. 미지근하고 어중간해도 괜찮다. 그냥 그런 인생도 있는 거지. 아니 사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잖나. 좀 대충 살아도 된다. 그런다고 그 인생이 크게 망하거나 망가지는 거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30쪽)

 

 

결혼식 참석과 축의금의 기준은 뭘까?

 

사회초년병 시절에 제일 많이 접하는 현상이 주변 친구들의 결혼식 초대장이다. 당연히 축하해줘야 할 일임엔 분명하지만 사생활은 엄청 침해를 받는 셈이다. 쉬고 싶은 금쪽 같은 주말 시간에 대부분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 결혼식에 참석하면 눈치껏 내야 하는 축의금도 정말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은 필요한 법이다. 평소에 별 연락 없던 동창이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면 이 친구가 진정 나를 초대할 의사인지, 아니면 그냥 자리 채우고 축의금이나 달라는 의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세상만사는 '기브 앤 테이크'다. 내 결혼식에 참석해 줄 인사라고 판단되면 나중의 내 일을 생각해서라도 참석을 결정하는 게 좋다.

 

그리고 축의금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지만. 지인이나 보통 친구 사이라면 5만 원,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한다면 그냥 송금만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또 연인이나 일행과 함께 참석한다면 식권 가격을 감안해서 7~8만 원, 결혼식 전 미리 식사 초대를 받고 그 자리에서 청접장을 받은 사이라면 10만 원 등의 기준이다.    


처음에 잘해준다고 계속 잘해 줄까?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푹 빠져버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평소 자신의 본모습보다 과하게 여자에게 잘해준다. 따라서 여자들은 남자로부터 어떤 호의를 받을 때 이 남자의 호의가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급조된 일시적 연기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 이는 행동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치킨 먹을 때 통통한 다리 두 개를 다 양보하는 호의에 대해선 날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비싼 대게 집에서조차 자신은 한 입도 먹지 않고 내내 가위질만 하면서 게살 발라주는 남자라면 이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분명한 오버이므로. 과연 1년 후에도 이런 과잉 친절과 호의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따라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단순한 이런 호의적 행동보다는 어떤 충분한 매력 요소가 있는지에 달려 있어야 한다. 그냥 자신에게 잘해주는 행동 빼고는 굳이 이 남자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교제는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교제는 정情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중에 싫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오랏줄에 묶인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과한 호의가 그 사람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말이다.

썸을 탈 때는 콩깍지를 조심해야

 

왜 썸을 탈 때는 그 사람의 인성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까? 그건 그 사람과 나, 둘의 관계에만 너무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최근에 호감을 느낀 이성들이라면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담백할 수 있을까? 그렇다. 마음은 진심이겠지만 그 행동에는 잘 보이기고자 한 가식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를 호의로 받아들인다면 바로 콩깍지에 씌인 것이다. 

 

썸을 타는 동안 남녀 두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확실히 과잉되어 있다. 썸을 타는 지금,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와는 사실 별 개연성이 없다는 말이다.(121쪽)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

 

첫째, 미친놈은 아무도 안 거드린다

둘째, 반응하지 않는다

셋째, 웃어주지 말자

 

 

남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아닌 것들

 

첫째, 때리지 마라. 남자도 맞으면 아프다

둘째, 섣불리 스킨십하지 말자. 남자라고 다 좋아하는 거 아니다

 

 

유튜브나 해볼까?

 

"나도 그냥 유튜브나 한번 해볼까?"

 

요즘 1인 방송이 대세인 건 맞다. 내 주위에도 주식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시청자수가 늘지 않는다. 마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걸리는 것처럼, 초기에 급속하게 숫자가 늘다가 어느 시기 후부터는 정체기를 걷다가 나중엔 오히려 시청자수가 감소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실제로 유튜브 방송을 포기한 지인들도 있다.

 

저자의 주변만 봐도 유튜브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유튜브 할 거라고 하고선 10명 중에 8명이 안 한다. 그 8명은 이런 거부터 물어본다.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얼만큼 해야 구독자 너만큼 모을 수 있어?" 등등. 이처럼 간을 먼저 보는 스타일은 공부를 정말 못하는 애들의 특징과도 비슷하다. 계획만 세우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튼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유튜브 방송은 없다.

 

 

오늘, 행복한가?

 

행복을 특별한 무언가로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행복할 가능성은 적다. 오늘 친구와 게임 한판 재미있게 하는 것, 퇴근하고서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는 것, 가족들과 베란다에서 삽겹살 구워 먹는 것 등의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연봉이 두세 배로 올라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힘들고 괴롭더라도 하루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 지금, 오늘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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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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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은 <심연>, <수련>, <승화>아 함께 네 권으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개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감지하고,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수련'을 거친사람은 '정적'을 통해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고요한 울림을 들을 수 잇을 것이다. 이 책이 여러분의 삶의 여정 가운데 스스로 개성을 발견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고요한 울림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들을 네 권의 시리즈로 기획했다. <심연>과 <수련>을 잇는 이 책 <정적>은 세 번째 책이다. 성서에 나오는 질문들을 다룬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 호모 사피엔스 등장의 원인을 '이타심'에서 찾은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출간했다.

 

'위대한 인간' 시리즈의 세 번째 단계인 이 책은 '경청'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여기서의 말하는 '경청'의 핵심은 남의 소리가 아닌 나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즉 외부의 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경청'하는 삶을 강조한다. 책은 평정, 부동, 포부, 개벽이라는 4부에 걸쳐서 완벽, 인과, 무위, 대오, 절제 등 총 28개의 소주제어와 함께 짧은 문장을 통해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적은 고요한 마음의 상태로, 이를 유지하려면 '정중동靜中動'이 요구된다.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고요할지라도 내면에서는 쉼 없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적을 품은 사람은 외부음의 유혹을 거부하고, 내면의 미세한 소리를 듣기 위해 의도적으로 침묵을 유지한다. 이런 과정이 거듭됨으로써 자기 자신을 나답게 만드는 개성이 만들어진다.

평정平靜~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시간
부동不動~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포부抱負~ 내가 나에게 바라는 간절한 부탁
개벽開闢~ 나를 깨우는 고요한 울림

요즘 '조국 이슈'를 보노라면 내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음을 느낀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정답이 없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저자는 총 28개의 소주제어를 제시하여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방법들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는 셈이다.

 

 

 

평정 平靜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표출되는 내 마음은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큰 물결을 이룬다. 이런 소용돌이를 잠재우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책은 완벽, 간격, 명심, 의도, 사소, 스타일, 인과 등 7가지 소주제어를 통해 우리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도와준다. 즉 가능의 한계를 시험하는 '완벽', 심장에 생각을 새기는 '명심' 등의 참뜻을 살피면서 이를 통해 우리들은 배우게 된다.

 

머리로만 배운 것이 가슴에 새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착각에 빠진다. 학습을 통해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머리에 새겨지는 것이지 실제로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이 바로 가슴에 새겨지는 '명심銘心'이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과거라는 현상 유지의 단계에서 자신이 열망하는 미래의 단계로 진입한다. 배움은 과거의 자신에게 안주하려는 이기심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자기혁신의 분투다.(38쪽)

 

학습은 '배움의 습관'이다. 정신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육체적인 노동을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서 완성된다. 이는 한자어 '습習'이란 말에 그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파자破字를 해보면 '일백 번의 날개짓'이 된다. 즉 어린 새는 어미 새의 비행 모습은 오래토록 목격한 후 비로소 자신의 날개를 퍼덕이며 직접 비행에 들어간다. 비록 처음엔 서툴지라도 계속 시도하고 연습함으로써 자신만의 비행술을 습득한다. 그리고 비로소 새롭게 태어난다. 이처럼 실제의 행동을 거치지 않은 배움은 거짓이다.   

 

 

 

부동不動

 

우리들이 천하장사 결정전이 진행되고 있는 씨름판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들 눈엔 거구의 두 장사가 서로 샅바를 맞잡은 채 튼실한 두 다리로 서서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걸까? 결코 아니다. 현재 두 장사는 자신의 몸으로 전해오는 상대 선수의 기氣의 흐름을 느끼면서 이에 상응하는 맞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책은 준비, 디자인, 고유, 중심, 내성, 무위, 안정장치 등 7개 소주제어를 통해 우리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자신만의 고유색깔을 수놓는 '디자인',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근인 '중심', 그리고 나 자신을 보호해주는 요새 같은 '내성' 등을 통해 우리들은 부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내게 한 그루를 베는 데 여섯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먼저 네 시간 동안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겠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바로 준비자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수많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이런 준비를 해오고 있다. 즉 동료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훈련을 기꺼이 수행해냄으로써 미래의 더 나은 자신을 만들고자 준비한다.

 

유대인들은 오래전부터 하루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주일 중 하루는 의도적으로 구분했다. 겉으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이런 행위를 '거룩'이라 부르는데, 음악 경연 대회에 출전한 피아니스트가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첫 음을 치기 전에 의자에 앉아 조용히 정성을 모으는 순간과 같다.

 

 

'디자인(de-sign)'은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하나는 전치사 '데(de)'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 동사 '시그나레(signare)'에서 파생한 '사인(sign)'이다. 디자인은 내가 이미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나만이 갖고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할 때, 그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108쪽)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수 없는 미묘한 것을 포착하려는 통찰이며,

그 통찰을 표현하려는 이다. 

 

삶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 중심의 소명에 부응하는 의무다. 그리고 자신에게 감동적인 것을 선별해 헌신하는 의연함이다. 나는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경청한 적이 있는가? 그것을 내 것이라는 이유로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나의 심장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132쪽)

 

 

 

포부抱負

 

자기 자신에게 간절하게 건네는 부탁이 바로 '포부'이다. 책은 나의 세계가 불완전함을 깨닫는 '대오',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자발', 영혼을 다스리는 능력인 '재능', 해야 할 일을 아는 '의무',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무언의 신호인 '위험', 과거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교육',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복할 줄 아는 용기인 '경쟁' 등 7개의 소주제어로 포부를 살펴본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훈련이다. 배울수록 생겨나는 확신이 생긴다. 바로 '무지無知에 대한 고백'이다. 일찌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가르침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앎知'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개벽開闢

 

자기 자신을 깨우는 고요한 정신적 울림이 개벽이다. 책은 눈물, 정복, 부사, 절제, 중간, 우직, 회복 등 7개의 소주제어를 통해 우리들이 울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먼저 눈물의 의미를 살펴보자. 부모로서 어린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면 여지없이 순진한 아이들은 이내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울음을 터뜨린 후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수 있는 법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조국 가족 사태'이다. 현행 법을 어기고, 사실을 은폐 내지 조작을 하고, 거짓말을 쉽게 하면서도 이들은 절대로 울지 않는다. 이는 위선의 탈을 쓰고 끝까지 버팀으로써 자신들의 결백을 우기겠다는 행동이므로 소위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지 않겠다는 잘못된 결의인 것이다. 남이 이런 일을 벌였을 때는 온갖 방법으로 그 당사자를 비난하던 사람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치사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현상을 이 사회는 '내로남불'이라고 말한다.     

 

"매일 밤 저는 죽습니다. 매일 아침 저는 다시 태어납니다"

- 마하트마 간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책에 소개되는 28개의 화두는 '다이몬'이다. 다이몬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악마이면서 동시에 천사'로 번역된다. 다이몬은 스스로 완벽한 자가 되도록 수련시키는 도우미인 셈이다. 즉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악마이자 이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는 천사인 것이다. 현재보다 한 단계 더 레벨업된 자신을 만들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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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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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버릇이 하나 있다. 여행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다. 시, 소설, 그림, 조각, 음악 등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단지 눈에 보이는 그 공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다. 마치 카페 센트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프로이트, 폴가, 츠바이크, 로스가 한자리에 모여 열을 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 '시작하며' 중에서

 

 

인문학 여행을 떠나다

 

책의 저자 문갑식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산책자로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이 깃든 명소를 여행하고 거기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손칼리지 방문교수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입사,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피렌체와 베키오 다리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피렌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 의미가 '오래된vecchio 다리'인 이 다리는 1345년에 지어져 7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모습 그대로 도시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이 다리에는 몇 가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 다리가 연인의 명소가 될 수 있었던 일, 바로 피렌체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평생 연모했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장소가 이 다리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단테는 자신의 연인을 <신곡>이라는 불멸의 작품 속에 담아 영원한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다리를 찾는 연인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자물쇠를 걸어 다리에 매달거나 아르노강에 던진다고 한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연인들이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버림으로써 헤어짐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행동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이별을 막는 영원한 안전장치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베키오 다리

 

 

오스트리아 빈,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

 

화려한 왕족과 귀족을 대신해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주인공이 된 것은 수많은 천재와 예술가였다.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표현주의의 시조 오스카어 코코슈카, 그리고 끔찍한 대학살을 저지른 전범이자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 등이 세기말의 빈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세기말 불꽃처럼 등장한 이들의 주요 무대는 어디였을까? 바로 살롱과 카페다. 빈이라는 도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커피라는 단어와 무척 밀접하게 느껴진다. 빈의 카페를 누비고 다녔던 수필가 알프레트 폴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페란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동시에 옆자리에 벗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처럼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살롱과 카페는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설파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p.53-54,

빈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는 누구일까? 이 도시를 빛낸 이는 화려한 색채감을 자랑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다. 1862년 빈 인근의 움가르텐에서 귀금속 세공사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유럽과 미국을 덮친 장기 '대불황'으로 가세가 기운 탓에 일자리를 찾던 중 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본 친척의 도움으로 빈 응용미술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여기서 거의 모든 미술 분야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는 '빈의 카사노바'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 편력이 대단했다. 그의 작품엔 대부분 여성이 등장한다. 유대인 금융업자의 딸인 아들러, '빈의 꽃'으로 불린 알마 말러, 작품 '다나에'의 모델이 된 미치 짐머만, 정신적 사랑을 나눈 에밀리 플뢰게 등이 대표적이다. 클림트의 대표작은 벨베데레 궁전에 가면 감상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 '키스'도 이곳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잇다.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 경 시작된다. 기원전 179년 켈트족이 현재의 오버외스터라이히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곳엔 암염, 즉 소금 광산이 지천에 널렸기 때문이다. 켈트족이 처음 왕국을 세운 곳이 바로 잘츠부르크다. 독일어로 '잘츠'는 바로 '소금'이다. 고대의 소금은 '돈'으로 직결되는 인간의 필수 식재료였기에 켈트족이 세운 고대 왕국(노리쿰)은 넓은 영토를 지닌 강력한 왕국이었다. 14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지가 되었고, 16세기엔 전성기를 맞았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이었다. 모차르트는 고작 3살 때부터 건반을 다루고 연주할 줄 아는 음악 천재엿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며, 뮌헨, 런던 등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고, 걸출한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1787년 어느 날, 그의 집에 한 소년이 찾아왔다.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었다. 서른한 살의 모차르트는 갓 열일곱 살이 된 소년에게 반해 이렇게 말했다. "이 젊은이를 주목하십시오. 곧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둘의 관계는 베토벤의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고작 한 달 만에 끝나고 만다. 베토벤이 다시 빈을 찾은 것은 모차르트가 죽은 지 1년 뒤인 1793년의 일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관한 극적인 일화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모차르트의 전기 작가 오토 얀의 일방적 주장 외에 둘의 만남을 증명할 증거나 증언이 없기도 하거니와, 당시 모차르트는 오페라 '돈 조반니' 작곡에 열중하느라 무명 소년을 만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거짓이라 할지라도 무척 매력적인 이야기여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보카치오와 데카메론

 

그리스어로 '데카'는 열(10), '메론'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데카메론>은 열흘 동안의 이야기인데, 7명의 숙녀와 3명의 신사가 하루에 10개씩 총 100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유럽은 천 년 가까이 암흑기인 중세 시대를 겪게 된다.당시 세상의 모든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기 때문에 '암흑기'라 불린다. 이후 르네상스 국면으로 인간이 점차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데카메론>의 탄생 배경은 흑사병(페스트)이다. 쥐벼룩이 옮기는 전염병인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다. 당시 유럽인구의 33%~25% 정도가 이 유행병으로 죽었던 것이다. 치료법이 없었기에 막연히 사람들은 신의 징벌로 여겼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파멸처럼, 유럽에 밀어닥친 페스트는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이 종말의 순간은 보카치오는 <데카메론> 서두에 기술하고 있다.

 

마흔의 나이에 <데카메론>(1353년)을 완성한 보카치오는 집필 활동을 이어간다. 1359년에는 밀라노에서 아홉 살 연상인 페트라르카와 만나 친교를 맺게 되는데, 이들의 인연으로 인류는 큰 선물을 얻게 된다. 말년에 신앙에 몰두한 나머지 비종교적인 작품을 모두 불태우려고 했던 보카치오에게 페트라르카는 세속 학문과 기독교 신앙은 별개이기에 굳이 작품을 태울 필요가 없다고 만류한 것이다. 이들의 친교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데, 1374년 페트라르카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보카치오가 그 뒤를 따른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하마트면 불에 모두 타버릴 뻔했다. 정말 아찔한 장면이었다.

베네치아와 카사노바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한 베네치아'물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다. 수많은 섬이 수백 개의 다리로 이어진 항구 도시다. 한때 조만간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떠돌았지만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베네치아에는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카사노바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햇던 그는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하고 있을 무렵, 예순 중반이 된 노년의 카사노바가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모차르트에게 자신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문란한 주인공 돈 조반니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카사노바보다는 돈 조반니가 훨씬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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