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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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1955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멕시코인, 어머니는 미국인으로, 멕시코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와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 상실, 승리, 죽음 등의 주제를 글로 썼다.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16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악마의 고속도로(THE DEVIL’S HIGHWAY)>로 퓰리처상 논픽션 분야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소설은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되었는데,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TOP 100, 뉴욕타임스 북 리뷰 선정도서, 뉴욕도서관 올해의 추천도서, NPR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으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할리우드 TV 영상화를 앞두고 있다.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데 라 크루스 집안의 맏이 격인 빅 엔젤은 시간엄수로 유명한 멕시코 사람으로, 같은 직장에 다니는 미국인들조차도 그를 가리켜 '독일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과거 한국인들에겐 약속 시간에 늦다고 불명예스러운 '코리안 타임'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적이 있었는데, '멕시칸 타임'은 이보다 훨씬 더 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빅 엔젤은 결코 늦는 법이 없었다. 그는 가족들이 '멕시칸 타임'이라고 말하며 느릿하게 구는 꼴을 두고 수없이 싸워왔다. 예컨대 6시에 저녁을 먹자고 정해봤자, 식사는 9시까지 시작도 못했다. 느지막이 모인 식구들은 오히려 자기네들이 일찍 온 것처럼 굴면서 멕시코 사람이면 늦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빅 엔젤이 왜 지각일까? 사연은 이렇다. 시한부 암 선고를 받은 그는 마지막 생일파티를 위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모두 소환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생일파티 일주일 전에 100세의 모친이 갑자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장거리를 두 차례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고려해 장례식을 뒤로 미뤄 연속해서 생일파티를 함께 치루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 탓에 평소 시간을 칼 같이 지키던 빅 엔젤이 늦잠을 자고 말았으며, 도로는 체증이다.

 

 

 

이 소설은 이틀 동안 벌어지는 일이 전부다. 재혼한 모친에게서 태어난 동생은 소외감을 느끼고, 두 번이나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한 동생, 미군에 속아 불법체류자가 된 아들, 남편은 모르겠고 애는 셋인 딸, 데드메탈에 빠져 삐죽삐죽 머리를 하고 다니는 손자, 입만 열면 욕을 하는 동생의 아내 등등이 등장한다. 

 

빅 엔젤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기절하는 바람에 종양을 발견했다. 간단한 수술로 포도처럼 퍼진 그 조그마한 종양을 야금야금 잘라냈다. 긴 탐침探針을 요도에 찔러 넣기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그마한 포도송이 같은 종양 더미들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라진 줄 알았던 종양이 이제는 배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엑스레이와 MRI를 찍었고, 팔에는 바늘을 꽂아 독성 물질을 주입했다. 독에 이어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온갖 약을 줄줄이 복용했고 방사선 치료도 했다. 그런데 그 보답이 뭔가. 바로 폐에 얼룩까지 보이다니. 그 다음엔 뼈가 시들어버렸다. 몸은 이미 지쳤고,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한 달 예상합니다"

 

파티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 페를라와 딸 라 미나는 빅 엔젤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옷을 벗겼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다. 멋지게 보이도록 하려고 두 여인이 나섰다. 아내는 비누로 거품을 낸 부드러운 스펀지로 그의 다리 사이를 씻는다. 혹시 딸이 부끄러운 부분을 볼까봐 이 장면을 보지 말라고 요구하고, 이에 딸은 겨드랑이 닦느라 그럴 겨를이 없다고 답한다. 이 대목에서 빅 엔젤은 과거 어린 딸을 씻기던 때가 떠올랐다.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이틀 동안에 벌어지는 한 집안의 가정사는 희노애락을 보여준다. 빅 엔젤과 리틀 엔젤은 이복형제이며, 리틀 엔젤은 소위 '반쪽 미국 놈 멕시칸'이다. 미국식 드라마가 흔히 그렇듯, 커플간의 질척한 성적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죽음을 곧 앞둔 빅 엔젤의 리더십과 긍정적인 사고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시간의 전후로 봐선 장례식과 생일파티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이 생일파티의 별책부록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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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동산 시그널 - 영리하고 민첩하게 규제의 틈새를 노려라
배용환 외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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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은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습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도 변하고 시장을 좌우하는 정책도 변하며 결과적으로 시장을 구성하는 환경도 변합니다.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울리는 '긴박한 시그널'을 정확히 포착해 가장 확률이 높은 맞춤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부동산 투자 틈새 전략

 

책의 대표 저자 서울휘는 상가 경매를 주력으로 한 10년차 상가 투자 전문가. 부동산 강의 플랫폼인 부동산클라우드의 수장이다. 매일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가장 최신의 투자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으며, 매월 정규 강의와 에버노트 강의, 전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특강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상가 투자는 결코 위험하지 않으며, 제대로 공부해서 뛰어들면 달콤한 월세와 안정된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고 늘 강조한다. 그의 저서로는 <서울휘의 월급 받는 알짜상가에 투자하라>가 있다.

 

 

 

 

서울이 늙고 있다

 

서울의 주택은 점점 더 늙어가고, 동시에 신축 아파트 공급은 규제로 더 줄어들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19년보다 2020년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신축 아파트는 그 희소성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신축 아파트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분양을 통해 얻는 것이다.

 

이미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갈아타기를 통해 신축 아파트를 매수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각종 규제 때문에 가격 상승이 주춤할 것이므로 오히려 갈아타기에는 절호의 타이밍이라 판단된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 관심이 많다면 재개발이나 재건축 입주권을 노려볼 만하다.

 

 

고高분양가

 

2020년의 가장 큰 변수는 단언컨대 분양가상한제다. 분양 시기를 미룬다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서울의 분양 예정 단지들은 2020년에 앞다퉈 분양을 쏟아낼 수 있다. 분양 시기가 서로 겹친다면 40점대 중반 가점까지 기대를 걸어볼 만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분양한다면 60점대가 아니고서야 당첨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정리하자면, 서울에서 50~60점대 청약통장을 가진 1순위 청약자는 분양이 열릴 때마다 실제 청약자수 파악에 머리를 싸매야 한다. 1순위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반면 당첨이 꿈만 같은 저가점자는 구축 아파트와 입주권 매매로 방향을 돌려 내 집 마련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사이클을 보면 서울이 보인다

 

서울 부동산 시장을 무조건 낙관하기엔 이르다. 일본과의 무역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준다면 부동산 시장에서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더 이상의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2020년 서울 부동산 시장은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반면 매수심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부동산 경매라는 투자의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는 셈이다.

 

여러 정황상 지난 몇 년 동안의 폭등은 다시 누리기 어렵다. 상당히 올라간 지금의 가격대도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한껏 위축된 유동성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오르긴 오르되, 단 '한 방'의 수익을 기대하지는 말자는 것, 그것이 이번 테마에서 강조하고 싶은 핵심이다.

 

 

공실空室포비아

2019년은 특히 상가 투자가 어렵게 느껴졌던 해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공실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곳곳에서 "상가 투자는 이제 끝났다"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층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1층에도 제법 공실이 보인다.

 

2019년, 경매 시장에 등장한 신도시 상가들은 분양가의 50% 가격으로 새 주인을 만났고, 더러는 아직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손실을 확정 짓는 뼈아픈 순간이겠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반값 경매'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경매를 통해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분양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매수한 사람들은 현실적인 임대료 산정과 함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다가올 2020년 상가 투자의 핵심은 무엇일까? '괜찮은 물건'을 '싸게 매수하는 것', 즉 부동산 투자의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다. GTX, KTX등 새로 역사가 생긴다고 무조건 호재라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역세권'이라는 호재도 마찬가지다. 5~7년이 지나도 임차인 구경이 힘든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지식산업센터에 주목하라

 

첫째, 대출이 잘 나온다

둘째, 취득세와 재산세 등의 감면 그리고 부가세 환급이 가능하다

셋째, 단연 수익률이 좋다

넷째, 가격이 일정하다

다섯째, 가격대가 다양하며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

 

지식산업센터는 실제로 주택, 오피스텔, 상가에 비해 수익률이 좋다. 일반매매의 경우 대출을 제외한 보통 4~7% 정도의 수익률이 나오며, 대출을 포함하면 실제 투자금 대비 10~20% 수익률까지 달성할 수 있다. 만약 경매로 시세 대비 더 싸게 낙찰받고 대출을 많이 받는다면, 투자금 대비 최대 20~50%까지도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림 4-29는 2014년에 분양한 용인 소재 지식산업센터의 2019년 10월 기준 수익률이다.

 

 

 

서해안은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

 

서해안은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평택항, 당진항, 군산항, 목포항이 그 거점이 될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국토종합계획에 반영했다. 요컨대 서해안을 '신산업벨트'로 지정해서 관리하는 식이다. 삼성전자가 평택으로, LG전자가 파주로 이전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행보다.

 

모든 연결고리가 촘촘하게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서해안의 토지 가격은 상승할 일밖에 없다.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지만 자금사정에 맞춰 우직하게 투자하면 된다. 서해안의 토지 가격은 정직하다. 서울을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저렴해진다. 따라서 경제적 여력에 따라 위쪽으로는 경기도 서북부부터 아래로는 전라남도까지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세금을 모르고 투자해선 곤란하다

 

다가올 2020년을 맞아 투자자는 주택을 취득하고, 보유하고, 양도하는 데 발생할 각종 세금 문제에 더욱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치밀한 절세 전략도 필요하다. 투자자에게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는 매우 가혹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복잡한 세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무 전문가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안목에 따라 현명한 '세테크' 전략을 짜야 한다.

 

 

2020년 부동산 투자 시그널

 

대한민국 최고의 부동산 고수 6인이 2020년 부동산 투자 전략을 제시한다. 즉 상가투자는 서울휘(배용환), 재개발과 재건축 투자는 망고쌤(최윤성), 청약과 분양권 투자는 월용이(박지민), 경매 투자는 새벽하늘(김태훈), 토지 투자는 시루(양안성), 절세 전략은 별부자(김인화) 등 6인의 전문가가 우리들에게 2020년 투자 시그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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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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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얼굴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가 우유의 바다라고 묘사했던 곳에서 헤엄치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입에서는 벌써 도와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절망으로 넘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 눈이 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가볍게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이 마흔 여섯에 이르기까지 우익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용접공 시절 독학으로 문학수업을 했던 사라마구는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계급투쟁적 시각의 작품을 선보이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에 소설 <죄악의 땅>으로 데뷔했다.

 

그 후 19년간 한 편의 작품도 생산하지 못 한 채 공산당 활동에 전념하며, 기술자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자유기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인 1968년에 시집 <가능한 시>를 내놓은 이후의 일이었다. 문학의 전성기를 연 것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이었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으로 일약 포르투갈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순식간에 유럽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문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눈이 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주행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이 원인불명의 실명失明은 이 남자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다. 마치 급성 전염병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명의 도시, 익명의 등장인물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알베르토 까뮈의 소설 <페스트> 에서처럼, 불가항력의 재난은 인간성의 다양한 국면을 드러낸다. 같은 이름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눈 먼 남성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낯선 사람은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을까? 아니다. 이 사람은 눈 먼 남성을 집 근처에 내려다 놓고는 그의 차를 훔쳐서 달아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선하지 않은 사마리아인도 실명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태를 보는 셈이다. 과연 우리들 중에 자신은 남의 물건을 그렇게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 먼 남성은 아내가 귀가하길 기다린다.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갑자기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그의 아내는 이 남성을 병원으로 데려간다. 병원 안은 복잡하다. 마침내 눈 먼 남성의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환자의 말에 안과 의사는 환자의 눈을 살펴본다. 언뜻 봐도 남자의 눈은 건강해 보인다. 홍채는 밝게 빛나고 공막은 하얗고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휘둥그레진 눈, 얼굴의 주름, 치켜올린 눈썹을 보아하니 괴로운 모습이 역력하다.

 

이후 안과 의사는 귀가해서 자신이 겪은 이상한 환자의 얘기를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이 먼 남자는 마치 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진하고 균일한 백색을 본다"고 단언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라 그는 탁자에 흩어진 책을 모아 책꽂이로 가져 갔다. 아뿔사, 어찌 된 영문일까? 안과 의사도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전체로 실명 전염병이 퍼져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국가는 공권력을 가동한다. 눈 먼 사람들을 수용소에 모아 놓고 무장한 군인들이 이들을 감시하도록 한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태를 우려해서다. 심지어 통제에 필요한 총기 사용권까지 부여한다. 한편, 수용소 내부에선 눈 먼 자들의 약탈과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발생한다. 보이지 않음에도 인간들의 소유욕구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 수용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 여성은 바로 안과 의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남편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진해서 안 보이는 척하면서 수용소에 입소했던 것이다. 수용소 내의 모든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 여성만은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이 세상이 모두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도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 듯하다. 분명하게 죄를 지은 사람인데도 어떤 이들은 이 범죄인이 결백하다면서 '조국 수호'를 외치고 집단 시위까지 펼친다. 정말로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안과 의사 아내처럼 안 보이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점은 안 보려는 행동에 있는 것이다.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307쪽)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ㅡ <훈계의 책>에서

 

이 소설의 맨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말을 지금의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지면서 서평을 마차려 한다.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니기에 소설 뒷편의 '작품 해설'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이에게 발표된 지 십년 이상 지난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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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이달의 영업이익이 얼마입니까? - 왠지 잘 풀리는 회사에는 이유가 있다
김상기 지음 / 치읓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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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영자라면 '충분한 수익(이익)이 창출되고 있는가? 재정(돈)의 흐름은 원활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의 회사에는 어떤 경영위험(재무 위험 등)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당신의 회사는 충분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가?

 

책의 저자 김상기 주식회사 디딤돌 대표, 기업 경영컨설턴트, 경영전략 코칭 전문가, 경영관리 상담가, 전문엔젤투자자, 작가, 성공전략 기버(Giver). 경영 현장에서 기업 대표 및 실무자들과 함께 20년 넘게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한 대한민국 비즈니스의 산증인이다. 매출 실현의 방법, 원가의 구조, 이익 실현의 가능성,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매년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실무자들 및 경영자들과 함께 매월 회계 결산을 하고 경영 전반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기업은 이익 없이는 존재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조직이다. 이익을 남기려면 반드시 기업 구성원들 간에 '숫자'로 소통을 해야 한다. 25년 동안 기업 회계와 경영관리 실무를 담당해온 저자는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접하면서 경영활동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매출 실현의 방법, 원가의 구조, 이익 실현의 가능성,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매년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경영에 필요한 실무적인 경영관리 코칭에 나선다. 기업의 현금 흐름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를 설정하고, 보고 체계를 갖추고, 인력 관리를 하는 등 전반적인 경영의 노하우를 함께 설명한다 자, 이제 책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사람의 몸은 어딘가에 곪아 있거나 그 부패 상태가 심하면 역겨운 냄새와 함께 생명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찬가지다. 회사는 소통으로 하루하루가 연결되는데, 이와같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조직은 반드시 어딘가에 곪고 썩는 부분이 발생, 회사의 존립을 크게 위협하는 위기상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소통을 바로 '숫자'로 할 것을 권한다.

 

회사 관계자들이면서도 회사의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얼마이며, 비용은 얼마나 지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지어 회사가 적자인지 흑자인지에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돈 잘 버는 사장의 숫자 경영법>의 저자 고야마 노보루 사장은 이렇게 경종을 울린다.

 

"일반 직원은 회사의 손익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회사의 손익이 자신의 급여나 상여에 직결되고 있다는 의식이 희박하다"    

 

회사의 목표 매출액을 달성하려면 사장과 직원들 모두가 회사가 목표로 책정한 숫자에 대한 학습을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대체로 임직원들은 연초 신년사에서 발표된 목표 매출액의 숫자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아마도 수개월이 경과하고 나면 이 목표 숫자는 과거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건강한 회사라면 마땅히 매출액(=영업), 매출총이익(=마진), 영업이익(=매출총이익-판매비 및 일반관리비), 당기순이익의 목표치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 이는 모두 다 '숫자'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런 숫자를 꾸준히 학습해야 회사에서 목표로 하는 바가 구성원들 사이에서 제대로 공유되고 추구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회사는 무엇을 개선해야 하고, 향후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바로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즉 자체 결산 또는 경리아웃소싱을 통해 매월 경영실적보고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월차 회계결산보고만으로도 회사 내에서의 상호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소통을 통해 의사결정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및 일반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흔히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살펴보자. 이들도 당연히 소통을 중시하면서 영업보고를 매일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반복적인 영업실적만 파악,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외면한다. 연초에 수립한 목표 매출 실적을 달성하려고 보여주기식 밀어내기, 손해를 감수한 판매 등등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대표님, 이달 영업이익이 얼마입니까?"


또 저자는 이런 점도 지적한다. 재무제표는 회사의 중요한 최상위 재무보고서지만, 경영 및 세무회계 분야의 비전공자 출신인 회사의 대표들은 세무사 또는 회계법인 등에 장부의 기장대행을 의뢰하면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리포트 정도로 여긴다. 이런 대표는 '회사 재무제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이런 대표들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경영의 성과는 말이 아닌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남이 대충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업은 '자금관리'로 귀결된다.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아마존도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망하지 않았다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향해 가는 거대한 글로벌 공룡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금 상황을 항상 체크하라는 시사점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지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빨리 결정해야 할 것이다비즈니스는 숫자로 결과를 말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감성적인 게 결코 아니다. 자선사업이 아닌 냉정한 동물과 같은 존재다. 지구상에서 숫자가 소멸되지 않는 한 모든 가격은 항상 '숫자'로 표시될 것이다. 숫자는 돈의 흐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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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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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라는 내게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라는 내게 내가 가진 걸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조차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땅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눈에 훤히 보이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는 조선의 땅이며, 독도 역시 조선에게는 애틋한 자식일 터였다. 자식에게 바라는 바 없지만 무한정 사랑을 쏟아 붓는 게 어미의 도리이듯, 나 역시 나의 애틋함으로 독도를 우리의 섬이라고 끝까지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 '본문' 중에서

 

 

독도를 지킨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

 

책의 저자 전민식은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자랐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진했고, 20년 넘게 한길만 고집한 끝에 마흔일곱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13월>, <불의 기억>, <알 수도 있는 사람>, <9일의 묘>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파주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독도는 누구 땅?",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유아원생조차도 "우리 땅"이라고 즉답을 한다. 이토록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도, 동해 먼 바다에 자리잡은 이 작은 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땅이건만 일제 치하의 식민지로 전락해 치욕의 역사를 보낸 것도 억울한 데, 왜 지금도 마치 자기의 땅을 우리 대한민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양 일본은 억지를 펴고 있는 걸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다. 조선 왕조가 미처 관리를 다하지 못함에 따라 평범한 조선인의 신분으로서 이웃 일본의 어부들이 불법으로 조업하는 행위를 준엄하게 꾸짖고자 몸소 일본으로 가서 공식적으로 이를 따진 열혈 남아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용복, 우리의 역사책에도 거의 다루지 않을 정도로 몇 줄만의 남겨진 기록을 근거로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를 소설로 탄생시켰다. 

 

이토록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그의 여생이 해피 엔딩이어야 당연함에도 그는 일본에서 조선으로 무사히 귀국해선 조정으로부터 오히려 벌을 받았다. 즉 조선의 독도 지배권을 확인시킨 문서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는 있으나, 일본과 담판을 짓고 돌아와 국법을 어긴 죄로 귀양을 간 후, 그가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 일본에 건너가 에도 막부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한 일로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번졌던 '안용복 1차, 2차 도해渡海사건'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는데, 실존 인물 안용복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 시나리오와 함께 소설로도 탄생되었다. 소설은 안용복이라는 한 인물의 고뇌와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땅에서 오히려 도둑 취급 당하다

 

때는 1693년 4월, 경제적인 문제로 부산 초량에서 울릉도(독도)로 흘러들어온 안용복 일행은 수백 마리의 강치 무리가 해변으로 몰려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어서 화승총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사실 지금 울릉도와 독도는 나라에서 도해금지령을 발령했기에 발각되면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하므로 우선 몸을 숨기는 게 급선무였다. 멀리 시야에 들어온 배는 일본의 군선인 세키부네였다.

 

몽돌 해안가는 강치의 울음과 고통 소리가 회오리쳤다. 강치의 피 냄새는 어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강치들의 울음소리가 빠져나간 허공을 일본 어부들의 웃음소리가 채웠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쪽바리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자비한 인간 백정이나 다름 없었다. 생선을 절여 운반하는 포작선까지 보였다.

 

임시 숙소로 정한 우데기집에 돌아와 모두 잠을 깨웠다.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일본 어부의 행위는 분명 불법이지만 자신들의 처지가 이를 관아에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철수가 현명하다고 판단, 말리던 오징어와 짐을 챙겼다. 그런데, 훈도시만 몸에 걸친 채 쇠갈고리와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일본 어부들이 우데기집을 덮쳤다.

 

"이놈들 독도에서 도망 쳐봐야 울릉도지.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인적이 드물어 풍성해진 수산물이 안용복 일행의 경제적 애로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입도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울릉도(독도)까지 먼 바닷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관리들에게 체포된 것도 아니고 안용복 일행들은 철천지 원수 같은 일본 어부들에게 체포되었던 것이다. 

 

나라는 안용복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도 건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라는 내게 내가 가진 걸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눈에 훤히 보이는 작은 섬이지만 독도는 조선의 땅이며, 독도 역시 조선에게는 애틋한 자식일 터였다. 독도를 우리의 섬이라고 끝까지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조선이 그에게 어떤 미래의 약속도 해주지 않겠지만 이 섬은 자신의 피와 같다는 걸 일본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백과사전에 따르면 안용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693(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다.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냈다. 이를 가지고 돌아오던 중 쓰시마(대마도) 도주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그 내용이 죽도가 일본땅이므로 고기잡는 것을 금지시켜 달라고 위조되어 조선에 들어왔다.

 

이에 조선에선 울릉도는 조선의 땅임이 명백함을 밝히고 1694년 일본의 무례함을 힐책하는 예조의 서계를 전달했다. 이후 안용복은 1696년(숙종 22) 박어둔과 다시 울릉도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송도(:독도)까지 추격하여 정박시킨 후 조선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한 다음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고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번주에게 범경을 항의,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이듬해 일본 막부는 쓰시마 도주를 통하여 공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일본의 출어금지를 통보해 왔다. 안용복은 나라의 허락없이 외국을 출입하여 국제문제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지사 신여철 등이 '나라에서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능히 하였으니 죄과와 공과가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귀양에 처해졌다.

 



애초에 조선은 안용복에게 중요한 세상은 아니었다. 양반도, 선비도 아닌 평범한 양인이나 천민들에겐 적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안용복 일행에게 중요한 건 바다였고,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조선이라는 나라가 중요하게 다가왔던 건, 초량 왜관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그의 조선이 밉기도 했지만 애틋하기도 했다.

 

"너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는 조선의 흙이고 숨이며 물이니까. 본래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니까. 참고 숨죽이고 살아온 건, 오늘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281쪽)

 

그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재차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얻어내기로 결심했다. 안용복 일행은 배를 타고 독도를 거쳐 울릉도로 들어갔다. 거의 다섯 달 동안 울릉도와 독도의 감세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쇼군의 서계를 받아 돌아왔다. 서계를 꺼내 살펴보았다. 서계 모퉁이가 피에 젖었을 뿐 글자는 살아 있었다. 비록 공은 세웠지만 관직을 사칭하면서 나라의 법을 어기고 울릉도와 독도에 입도했던 일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천박하고 평범한 사람도 나라의 땅과 바다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도해금지령을 어긴 죄와 관직을 사칭한 죄를 물어, 어떤 형벌을 주더라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이는 조선을 떠날 때부터 무사히 살아서 귀국한다면 그리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었다.

 

"네게 조선이 무엇이더냐?"

 

그는 지금 근정전 앞으로 끌어나온 죄인이었다. 가슴 속에 쌓인 말들이 많았지만 임금의 말을 듣는 순간, 울릉도 탐사 차 그곳으로 들어갔던 광경이 떠올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해는 중천에 떠서 오롯이 솟은 울릉도를 쓰다듬고 있었다. 햇살은 멀리 보이는 독도도 그러안고 있었다.

 

"……제게 조선은 태양입니더. 우리 땅이 어느 곳에 있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시기와 질투도 없이 공편함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빛을 나누어주는 태양입니더"(364쪽)

 

이제 안용복의 미래는 임금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될 참이었다. 임금은 안용복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일본인의 기를 꺾고 몸소 울릉도와 독도에 일본인의 왕래를 막고자 한 것은 큰 공임을 들어서 극형을 감하고, 그를 "멀리 유배토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 안용복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핏덩이가 한순간에 풀어져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안용복을 추모한 조선의 대학자 이익<성호사설>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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