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을 용기 - 인생의 전환점에 가져야 할 한 가지
김경록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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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을 맞으면 꽃이나 잎을 자랑하며 살 수 없습니다. 나를 설명해주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꽃 같았던 자식은 제 갈 길을 찾아갑니다. 따르던 사람들은 곁을 떠나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길마저 달라지며 급기야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인생의 후반전에 필요한 삶의 자세 

 

책의 저자 김경록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최고책임자, 미래에셋캐피탈 대표이사,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대개 은퇴연구소는 마케팅 지원을 목적으로 하지만,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마케팅에 국한하지 않고, 고객과 잠재고객을 위한 은퇴 관련 정보, 콘텐츠와 잡지, 교육, 연구보고서를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로 인구구조와 고령사회, 노후 자산관리, 노후 일자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등 각종 언론매체에 은퇴와 관련한 주제로 칼럼, 인터뷰, 자문 등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현재는 <중앙일보>와 <서울경제>에 칼럼을 쓰고 있다. [KBS 아침마당 목요 특강]에 "인생후반 5대 리스크를 경계하라"라는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인구구조가 투자지도를 바꾼다>, <폭발하는 글로벌 중산층, 투자의 지도를 바꾼다> 등이 있다. 

 

전략경제학자이자 은퇴 연구 전문가로 지난 7년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저자는 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들을 위해 삶의 근간을 이루는 5가지 요소를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전한다. 즉  고령화, 저성장, 저출산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의 성공적인 인생 후반전을 이끌 리노베이션을 소개한다.

 

한국의 중장년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책임감, 직위, 자존심은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일수록 성공적인 인생 후반을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 그는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40~50대 인생 전환기에 튼튼한 몸통과 가지를 갖추라고 조언하면서 '성찰, 관계, 자산, 업(일), 건강' 등 다섯 가지 영역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성찰省察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있고,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진입해서는 자연스레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언행언행에 대해서 반성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이런 피드백을 제공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5년, 10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옆길로 크게 어긋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살다보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는 만큼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서 회한 또한 늘어난다. 옆길로 폭주하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회한과 화해하고 새로운 탄생으로 변화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신의 삶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이런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대체로 가장들은 인생 전반기를 가족을 위해 보낸다. 이후 중후반기에 접어들면 지나친 의무감을 내려 놓고 자신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와는 달리 건강 장수시대가 도래함으로 인해 이젠 자신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본격적인 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의 준비 정도에 따라 여전히 가족들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 후반기일지라도 자신을 위해 살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수가 가져다준 축복을 즐기려면 이젠 생각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장수의 축복을 무조건 즐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엔 좋은 길도 안 좋은 길도 있기 마련이므로 자유와 방종, 무애無碍와 방탕放蕩은 구분해야 한다. 마땅히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또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심신 心身이 건강해야 행복할 것이다. 재정적인 면은 기본이며 비재무적인 자산도 있어야 한다. 사회 공헌도 중요하다. 이런 요소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나이 듦이 아름다워진다.

 

 

관계關係 

 

인생의 전환점을 유연하게 넘기 위해선 관계망關係網이 중요하다. 관계는 부모에서 시작해서 친구로 확장된 후, 결혼을 통해 배우자의 관계망에 접속되고, 사회생활을 통한 인간관계에 의해 관계망은 폭발적으로 넓어진다. 하지만 일에서 은퇴하면서 사회적 관계망은 급속도로 감소하기 때문에 질적으로도 점점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연착륙을 통한 좋은 관계망 유지라는 과제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선 부부 관계를 견고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통상 부부란 삶의 전환기에 함께 그 변화를 이겨내는 동반자이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이끌어주는 그런 인간관계인 것이다. 부부 관계가 삐꺽대는 사람은 이 시기에 별거, 졸혼, 황혼이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도움되는 가장 소중한 자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마치 참나무의 그늘 같아서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80세에 <참나무>라는 시를 통해 인생을 참나무의 사계에 비유했다. 요약하면 '인생을 이렇게 살라'는 그런 내용이다. 만들어진 그늘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나이들수록 관계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관계망을 보살피고 확장하면 노후에 좋은 쉼터를 얻을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별거, 미혼, 이혼 등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왜 그럴까? 이는 교화敎化적 기능의 대화를 나눌 상대방이 없기 때문 아닐까 싶다. 흔히 '짝 잃은 외기러기가 수명이 짧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부부 중 한 명이 "나 오늘 정말 피곤해"라고 말할 때 "에구, 이를 어째!"라고만 반응해줘도 정서적 스트레스는 상당히 해소된다. "나 먼저 잔다", "그래 자" 혹은 "갔다 올게", "갔다 와" 하는 대화만으로 생존할 힘을 얻게 된다. 이에 반해 귀가했을 때 아내나 남편이 "오늘 성과 좀 냈어요? 어제보다 영업 실적이 올랐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뒷골이 뻐근해지지 않겠는가. 

 

교화적 기능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옆에 많이 있다면 든든하다. 옛말에 '가는정이 있어야 오는정이 있다'고 했듯이, 나 자신부터 주변 사람들과 이와같은 교화적 기능을 담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가마니처럼 무뚝뚝하게 있지만 말고 이것저것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욱 빨리 가까워지게 만든다.

 

장자'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을 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게 오히려 쓸모가 있다'는 의미이다. 얼핏보면 마치 말장난 같은 궤변처럼 들리지 몰라도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가 없듯이, 그의 말은 지혜를 담고 있다. 그렇다. 쓸모없어 보이는 대화가 오히려 더 쓸모가 있을 수 있다. 곁에 있는 배우자와 이런 교화적 기능의 대화를 나눔으로써 곧 행복의 문으로 들어서는 셈이다.  

 

 

자산資産

 

늙은 호랑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빠지고 난 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결국엔 죽고 만다. 말하자면 아사餓死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늙어서 일할 힘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 왜 그럴까? 바로 '돈' 때문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개미 처럼 모아서 노후에는 마치 배짱이 처럼 번 돈을 쓰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가 있다. 이처럼 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자산 관리의 핵심이다. 우리 모두의 삶에 '생노병사'가 있듯이, '저축-축적-인출-상속'이라는 기나긴 과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자산 관리 기본 원칙

 

승부처는 마지막 15분

노후대비 주식투자

본질가치를 지켜라

내가 남느냐, 돈이 남느냐

축구 감독처럼 생각한다


축구 감독은 공격, 수비, 미드필드를 각각 담당할 선수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금융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배분에서 꼭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자산 비중을 낮추고 금융자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예금성 자산만으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투자자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해외 자산 비중이 전체 자산의 절반은 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제상황이 앞으로 장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 자산가치가 오르지 않아 가계 자산의 증식이 어려울 수 있다. 인도, 베트남, 중국처럼 성장하는 국가와 바이오,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숱한 혁신기업이 있는 세계 시장으로 가야 한다. 해외로 자산 배분을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당장 1~2년은 수익이 특별히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속담처럼 10년 이상 세월이 지나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투자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있다. 대체로 우리들은 지능, 통찰력, 투자 기법 등을 먼저 고려하는데, 사실은 이보다 원칙태도가 먼저이다. 축구 감독이 높은 승률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 방식에 몇 가지 원칙을 견지하듯이, 우리들은 자산 관리를 할 때 운용 자산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장기 프레임을 가져야 한다

나이들수록 소득 프레임을 가져야 한다

개인의 자산 배분은 생애설계 프레임을 가져야 한다 

 

 

업業(일)

                            
인생 후반부의 일은 돈뿐 아니라 건강, 관계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일은 나이 들어서도 삶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늙어서 가야 하는 길은 소위 '길 없는 길'이 되기 쉽다. 말하자면, 대기업체 사장을 하다가 은퇴했을지라도 아파트나 빌딩의 경비가 되어야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해진 길이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해서 결코 무리하거나 과욕을 부려선 곤란하다. 젊어서 큰 손해를 보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겠지만 늙어서 하는 실패는 '노후 빈곤'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금융 사기나 은퇴 창업 같은 일은 피하면서 자신의 전문성과 기술을 살릴 수 있는 게 옳은 길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퇴직하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남이 고용하지 않으니 스스로 고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투자해서 가게부터 차린다. 자영업은 50대 이상 비중이 5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높고, 기술보다는 소자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실패율이 높아서 3년 이내 폐업하는 확률이 최소 47퍼센트에 이른다. 실패할 경우 부채까지 떠안게 되므로 노후가 더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자영업의 개념을 소자본 창업보다는 기술 창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분야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면 된다. 향후 베이비부머들이 지속적으로 정년을 맞이하면서 자영업 시장은 아파트촌 상가의 넘치는 부동산사무소처럼 레드 오션이 되고, 단순히 소자본에 의존한 창업은 심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기술을 익혀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장수 사회라는 걸 염두에 두고 10년 후쯤 전문가가 되면 된다.

 

 

건강健康

퇴직한 사람의 몸도 미세한 균열이 축적된 강철 같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수많은 상처를 품고 있다. 몸속의 장기들이 여기저기 약해져 있다. 퇴직하고 나면 갈 길이 멀고 마음이 초조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거기에다 페르소나를 벗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어느 날 강철 같은 몸이 거짓말처럼 부러져버린다. 남성들은 50대 중반부터 60대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피로조직의 비극'이라 말한다.


퇴직하고 나면 몸에 이상이 없는 것 같아도 푹 쉬면서 몸의 고장 난 곳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리노베이션(renovation)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퇴직하고도 50년을 더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할 때 50년을 달리는 것과 몸이 약해졌을 때 50년 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를 위해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첫째, 철저한 건강검진으로 병의 싹을 살펴보자

둘째, 몸에 축적된 피로를 풀자(휴식, 요가, 태극권 등)

셋째, 자존감을 높여라(자기 사랑, 가족의 인정)

 

 

 알프레드 테니슨 <참나무>

 

 

노목老木에도 꽃은 핀다

 

불교의 화엄華嚴'온 세상에 꽃이 활짝 핀 세계'를 의미한다. 노목이라고 꽃이 피지 않을소냐. 제 하기 나름이다. 꽃을 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우리들은 다섯 요소, 즉 성찰, 관계, 자산, 업(일), 건강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다. 손자도 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했다. 나를 먼저 알고 삶의 전장터에 나선다면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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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학 교과서 뛰어넘기 1 - 과학적 상상력과 문제해결력을 높여주는 해냄 통합교과 시리즈
신영준 외 지음 / 해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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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구분되는 인간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의 시작과 끝에는 인간이 있으며, 결국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지성과 감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덕목을 길러야 할까요?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통찰, 자연과학적 원리 이해, 공학적 능력, 예술적이고 직관적인 능력,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등일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통합과학의 핵심을 살펴본다

 

청소년들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신설된 '통합과학' 교과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으로 구분되어 있던 과학 과목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통합적 시각을 길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통합과학의 핵심은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개념이나 원리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인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신영준 교수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호성(화학), 박창용(지구과학), 오현선(생명과학), 이세연(물리학) 교사가 통합과학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과학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통합과학 교과서 뛰어넘기> 2권을 출간했는데, 1권에서는 총 5장에 걸쳐서 주로 자연 현상을 '물질과 규칙성', '시스템과 상호 작용'의 측면에서 다루었다.

 

 

 

 

멘델레예프가 발견한 원소의 규칙성

 

원자 번호 101번 Md는 '멘델레븀'이라고 읽는다. 이는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를 기리기 위해서 이름을 붙였다. 1869년 그는 원소의 성질과 원자량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원소들을 원자량뿐만 아니라 물리적, 화학적 성질도 함께 고려하여 배열함으로써 원소의 성질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한 주기율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원소의 성질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 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각 카드마다 원소의 특징을 기록한 뒤 바닥에 펼친 후 여러 가지 조합으로 배열을 바꾸면서 일정한 규칙을 찾아냈다. 당시 알려진 63종의 원소를 분류하여 가로축과 세로축에 배열한 표가 바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이다. 


멘델레예프가 자신만의 주기율표를 완성하게 된 계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화학과 교수였던 그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밤새 카드 게임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졸린 상태로 강의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원소의 규칙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카드 게임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는 종이로 만든 카드에 원소의 성질과 원자량을 적은 다음, 학생들에게 규칙성을 찾아서 배열해 보라고 하고, 배열이 끝난 학생은 기숙사로 돌아가도 좋다고 제안했다. 카드 게임에 자신이 있는 학생들은 몇 번이고 주어진 원소 카드 배열을 시도했다. 자신도 역시 답을 모르고 제안한 것이라 학생들과 함께 수많은 시도를 했는데도 정확한 배열 방법을 찾지 못해 애만 태우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멘델레예프는 꿈속에서 자신이 고민했던 원소의 규칙성이 반영된 주기율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잠에서 깬 그는 꿈속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주기율표의 기본 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만큼 그는 오랫동안 원소의 규칙성을 고민하고 연구했던 과학자였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원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기율표를 참고한다. 주기율표를 보면서 어떤 원소들이 유사한 성질을 가졌는지,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때 어떤 원소들을 활용할지 등을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물질을 다루는 연구를 수행할 때, 주기율표에서 원소들의 규칙성을 이해하는 것은 미지의 물질을 접했을 때의 두려움을 친숙함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백질은 어떤 단위체로 이루어졌을까?

도시화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미래에는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2003년부터 식용 곤충에 대한 전문가 회의 및 연구가 이루어졌고,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곤충을 유망한 미래 식량으로 선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징그럽다고 여기는 곤충이 미래 식량으로 선정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곤충은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기 쉽고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프로틴(protein)은 그리스어 'proreios'에서 유래된 것으로, '첫 번째로 중요하다(primary)'라는 뜻이다. 이와같은 유래만 봐도 우리들은 단백질이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내에서 생명 현상을 조절하는 필수 성분이며 생명체를 구성하는 주요 물질임을 알 수 있다. 생명체 내에서 화학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효소, 생명 활동을 조절하는 호르몬, 병원체를 물리치는 항체도 모두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단백질은 성장기의 청소년뿐만 아니라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성인에게도 꼭 필요한 물질이고, 머리카락과 손톱, 근육 등도 모두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몸의 머리카락은 케라틴 단백질로, 피부는 콜라젠 단백질로, 근육은 마이오신과 액틴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적혈구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은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단백질이다. 인간의 몸뿐 아니라 공작의 깃털, 양의 뿔, 거미줄 등과 같이 여러 생물의 몸을 구성하기도 한다. 

 

근육, 효소, 호르몬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몇 종류일까? 놀라지 마시라. 무려 10만 개나 된다. 이렇게 종류가 많지만 모든단백질은 공통적으로 아미노산이라고 하는 단위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미노산의 종류는 20가지이다. 이들 아미노산이 다양하게 배열되어 결합함으로써 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작은 자동차에 탄 사람이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뉴턴의 제3법칙에 의하면 큰 트럭과 작은 승용차가 충돌하면 두 자동차는 같은 크기의 충격량을 받는다. 두 자동차가 충돌하는 시간도 같으므로 작용하는 평균 힘의 크기 역시 같다. 그렇다면 탑승자가 받는 충격량도 같을까?

 
그렇지 않다. 두 자동차가 받은 충격량의 크기가 같으므로 두 자동차의 운동량의 변화량도 같지만, 질량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속도 변화, 즉 가속도가 다르다. 큰 트럭은 질량이 크기 때문에 가속도가 작고 작은 승용차는 질량이 작기 때문에 가속도가 더 크다.


두 자동차의 가속도는 각 자동차에 탑승한 탑승자의 가속도이기도 하다. 즉, 작은 자동차에 탄 탑승자가 더 큰 가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자동차의 탑승자는 비슷한 몸무게(질량)를 가지고 있으므로 질량과 가속도의 곱인 '힘'은 작은 자동차에 탑승한 탑승자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또는 작은 자동차에 탑승한 탑승자의 운동량의 변화량이 더 크다.) 그래서 작은 자동차에 탑승한 탑승자가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이다.

 

만약 일정한 속도로 날아오는 물 풍선을 손으로 잡아 멈춘다면 운동량의 변화는 이미 정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멈추는 시간에 따라 필요한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손을 쭉 뻗어 풍선을 잡으면서 즉각 멈추게 한다면 큰 평균 힘이 필요하다. 반면에 손을 뒤로 빼면서 풍선이 날아오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물 풍선을 받으면 풍선이 서서히 멈출 테니 평균 힘이 작아도 된다. 아래와 같다.

 

최근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자동차를 디자인할 때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하는 '보행자 보호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행자 보호 규제의 핵심은 차량과 보행자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행자가 차량의 보닛 위로 쓰러지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충돌하면 보행자는 차량 진행 방향의 도로에 넘어져서 가해 차량의 추가 충격을 받는 2차 사고로 연결되므로 사망 확률이 높아진다. 

 

 

 

 

 

지진을 설명하는 방식, 규모와 진도

지진이 발생하면 언론에서는 "규모 얼마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얼마의 지진이 발생했다" 라고 보도한다. 여기서 지진 규모와 진도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진 규모는 지진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수치화한 것으로 1935년 지진학자 찰스 리히터가 제안한 방식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리히터 규모라고도 한다. 리히터 규모가 1.0 증가하면 지진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10의 1.5승乘, 약 30배 증가한다. 이는 지진 규모 1.0의 차이가 나는 지진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30배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규모 7.0의 지진은 규모 6.0의 지진보다 30배 강하고, 규모 5.0의 지진보다 900배 강하다.


그러나 큰 지진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이와 같이 특정 지역의 지반이 흔들리는 정도를 진도震度라고 합니다. 진도는 지진을 자주 겪는 나라(미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필리핀, 타이완, 러시아, 중국 등)에서 각자 사정에 맞게 기준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지진의 진도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2000년까지는 일본 기상청에서 사용하는 진도 계급을 사용하였으나, 2001년부터는 미국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을 사용하고 있다. 아래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의 일부 내용이다. 진도는 지진 규모와 구분하기 위해 로마자를 사용한다. 수치로 말할 때 지진 규모는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반드시 표기하며, 진도는 정수로만 표기하여 구분한다.

 

 

 

물질대사의 핵심, 생체 촉매

닭가슴살을 먹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곧바로 체내로 흡수되어 근육이 만들어질까? 아니다. 우리들이 먹은 닭가슴살은 위, 소장 같은 소화 기관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닭가슴살의 단백질이 크기가 작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야 세포 안으로 들어와 근육 형성에 필요한 단백질로 합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에서는 단백질이 분해되거나 합성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를 물질대사라고 한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물질대사를 통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얻는다. 물질대사는 화학 반응이지만 생명체 밖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는 다르다.

 
닭가슴살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생명체 밖에서 화학 반응을 통해 분해되려면 염산에 담가 섭씨 2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하루 동안 두어야 하지만, 생명체 안에서는 물질대사를 통해 이보다 낮은 섭씨 35~ 37도 온도에서 1~2시간 만에 분해된다.

 

 

"2권 공부를 이어서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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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코드
맹성렬 지음 / 지식여행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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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왓다. 지금까지 학계나 대중의 주요 관심사는 그것이 순전히 플라톤이 꾸며낸 얘기냐 아니면 뭔가 다른 근거가 있느냐, 만일 근거가 있다면 그런 대륙이 실재했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대철학자 플라톤이 이를 언급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과연 아틀란티스 문명은 존재했는가?

 

책의 저자 맹성렬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신소재공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든 주의와 주장을 의심하는 냉철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류 문명사에서 해명되지 않은 난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영국 유학 시절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고대 문명이 공학적으로 상상 이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역사학·지리학·고고학·신화학 분야에서 방대한 국내외 문헌을 연구하여 고대 문명에 관한 저서를 쓰고 있다.

2006년 특허기술상 세종대왕상을 수상했고 2009년 저서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 저작으로 선정됐다. 2010년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발행하는 ETRI JOURNAL이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미국과학진흥협회 전문가 회원 및 미국화학회 회원이다. 저서로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아담의 문명을 찾아서>, <과학은 없다>, <UFO 신드롬>, <초 고대문명>(상·하),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 <피라미드 코드>등이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카페 '맹교수의 올댓미스터리'를 통해 풀리지 않은 인류 문명의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보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강력한 고대 문명국가로 그려진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중남미 또는 남미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 근거로 남미 안데스 일대에 거석巨石 유적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석재 가공 기술지도상 일직선으로 놓인 주요 고대 유적지들, 그리고 페루 삭사이와망에서 발견된 계단이 거꾸로 되어 있는 모양의 암석 등을 들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틀란티스를 입에 담는 것은 학계에서 금기시되었지만 고대 이집트와 남미가 교류했다고 추정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며 고대사에서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아틀란티스에 대한 진실은 역사적 관점으로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신화인가, 역사인가?

 

우주의 지적 설계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티마이오스>에서 이 이론을 설명하는 장치의 하나로 초반 도입부에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대화록에서 크리티아스는 "비록 이상하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출처가 고대 그리스 7대 현인 중 으뜸이었던 철학가 솔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솔론이 전하는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출처는 이집트이다.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를 이끌던 솔론이 개혁에 실패하고 반대파에 몰려 이집트로 망명했다. 그는 저명한 이집트 신관으로부터 그리스인들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의미를 묻자 인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수차례에 걸쳐 물과 불에 의해 문명들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아틀란티스 문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아틀란티스라는 섬에는 위대하고 멋진 제국이 있어  그 섬 전체와 이집트와 이탈리아 중부의 국가 티레니아 등 헤라클레스 기둥들 안쪽의 아프리카와 유럽 땅들을 지배했다. 나중에 격력한 지진과 홍수로 호전적인 정복자들이 하룻밤 사이에 땅속에 묻혔고, 아틀란티스도 마찬가지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사라져버렸다"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기둥들'은 일반적으로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길목에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인들 삶의 무대였던 지중해의 바깥을 향하는 출구였다. 이 해석에 의거하면, 대서양 쪽에 거대한 대륙 아틀란티스가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언제? <티마이오스>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대략 기원전 9600년경이 된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은 1873년 신화로만 존재했던 '트로이'를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로 재점화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해저 발굴 작업이 요구되었기에 본격적인 진척이 되지 못했다. 이후 이 유적의 발굴에 대한 작업은 2000년대에 들어 고해상도 촬영과 해저 발굴 기술이 개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예를 들면 지브롤터 해협의 대서양 쪽 인근 스페인 연안에서 플라톤이 기술한 것과 유사한 유적이 발견되었고, 지브롤터 해협 바깥쪽 해저에서도 가라앉은 지형이 발견되었다. 또 영국에서 약 1만 년 전 가라앉은 비교적 넓은 지형이 발견되기도 했고, 인도양 연안의 해저에서도 9천5백년 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되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역시 해저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채록採錄했다는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온 두 가지 정보

 

1만 2천년 이전에 지구 여러 곳에 문명이 있었다

지브롤터 해협 너머 서쪽 먼 곳에 대륙들과 대양들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양 건너편을 알고 있었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늘날처럼 담배를 향정신적 용도로 흡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저명한 병리학자 스베틀라나 발라바노바는 독일 뮌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약 1000년부터 기원후 약 400년 사이의 이집트 미라들의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뼈에 포함된 성분을 분석했는데 여기에서 대마 성분과 함께 니코틴의 함유를 발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카인 성분도 미라에서 검출되었다.

 

담배의 원산지는 남미南美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서남태평양제도 및 태평양의 섬들에서도 유사한 종이 서식하고는 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이 신대륙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니코틴이 함유된 식물을 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코카인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남미 이외의 다른 곳의 유사종은 코카인 함량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구대륙에 존재했던 코카인 함유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란 것인데, 이런 식물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코카인을 어디서 구했을까? 누군가 남미와 이집트 간의 마약 교역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시 고대 이집트는 자체 항해 능력이 저조했기에 해상 교역은 페니키아인들에게 의존했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600년경에 있었던 페니키아인들의 특별한 해양 항해를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 고대 이집트 파라오 네커의 명령에 따라 이들의 선단이 홍해에서 출발, 아프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돌아 지중해로 오는 대항해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총 3년에 걸친 2만5천 킬로미터의 항해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페니키아인들이라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달할 수 있다는 추론을 도출하게 한다.

 

한편, 아즈텍이나 마야 유적(유물) 중에 아프리카풍으로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멀지 않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해류를 타면 카리브 해로 직행한다. 페니키아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이 항로에 대한 정보를 콜럼버스가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 신대륙으로 향하는 항해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주징도 있다. 다만 페니키아인들이 신대륙에 갔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에 주류학자들은 갔다고 해도 아주 간헐적이었을 것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고대 항로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진행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보면 좋겠다.

 

미라에서 발견된 코카인으로 인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대륙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정신성 마약류를 취급한 사람은 종교의식을 주관하던 고위급 신관들이었으므로 나름 구대륙 바깥에 대한 정보가 분명히 잇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스 파트라스 대학 지질학과의 스타브로스 P. 파파마리노풀로스 교수는 기원전 6세기 이전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이 교역을 통해 남미에만 존재하는 귀중품들을 받아들였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이야기에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명 미스터리

 

신대륙 발견 초기부터 아틀란티스가 대서양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는 이론 대신에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가 침수된 곳이 아틀란티스라는 주장도 잇었다. 이 개념을 널리 일반화시킨 사람이 프랑스의 대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1627년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소설에서 고대의 아틀란티스가 아메리카 대륙이며, 이곳 원주민들은 번창했던 문명이 종말을 맞은 후 퇴보된 모습으로 오늘날 존재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20009년 6월, 프랑스 고고학자 제 알렉산더가 이끄는 탐사팀이 구글 어스를 이용해 카리브 해의 해수면 아래 20미터에서 건축된 유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직교로 교차된 도로들과 다양한 건축물들을 포함한 거대한 도시였다. 해수면 상승 속도를 고려할 때 기원전 6000년까지 그 시기가 거슬러 올라가서 건설되었음을 추정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 거대하고 구조가 매우 조직적이라고 한다. 특히 건축물 중 일부는 피라미드 형태를 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졋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언급하던 때가 기원전 5세기경인데, 당시 중남미에는 테오티우칸, 올멕, 고전기의 마야 문명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남미에는 선잉카 문명이 있었다. 이들 문명 또는 이후의 파생된 문명들에 대한 연구가 거듭될수록 어쩌면 1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아틀린티스 문명에 대한 단서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메조아메리카나 남미 고대 문명들을 통툴어 거석 건축이 행해진 곳은 이상하게도 안데스 중앙 산지에 국한되어 있다. 거대 절석切石을 사용한 토목건축 수준은 구대륙 고대 문명보다 한 수위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구대륙의 경우 절석들의 이동 경로가 대체로 평탄하거나 고대 이집트의 경우 처럼 수운水運이 가능했다. 하지만 안데스의 경우 해발 4,000미터나 되는 산악 지역이어서 가파른 경로로의 운반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운반했을까?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교외 산 위에는 삭사이와망이라는 성채 유적이 존재한다. 여기엔 크고 작은 수만 개의 절석이 정교하게 쌓여 있다. 1534년, 잉카제국을 붕괴시킨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비서였던 페드로 산초 데 라 호츠는 이 석벽石壁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거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이 성벽들이다. 사용된 바위들이 너무 커서 이걸 본 그 누구도 그것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정말 산이나 절벽 한 모퉁이를 떼어낸 것처럼 크다. 높이가 약 7미터에 폭이 3.5미터에서 6미터 정도나 되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최소한 수레 셋은 동원해야 할 정도다. 이 바위들은 일정한 형태로 되어 있지 않지만 서로 잘 맞추어져 있다" 

 

안데스에서는 고경도高硬度 석재 가공기계나 첨단 장비가 사용되었음에 틀림없다.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쿠스코 코리카차에 있는 '달의 신전'에 존재한다. 거기엔 안산암 석재를 관통하는 구멍이 있는데, 그 형상이 몇 개의 나선형으로 패여 있는 드릴 자국처럼 보인다. 단단한 안산암에 이처럼 구멍을 낼 수 있는 현대식 장비인 파워 드릴은 탄소 공구강에 다이아몬드 코어 비트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사용한다. 안데스 산지의 거석 가공은 정말로 잉카인의 작업일까?

 

삭사이와망에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거대 암반 덩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피에르 칸사다 또는 친카나 그란테라 불리는 것이다. 인근에 계단이 거꾸로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반 덩어리가 존재한다. 처음부터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사람이 제대로 딛고 다닐 수없으므로 애초의 모양이 뒤집힌 것이라고 판단된다. 왜 이렇게 뒤집힌 걸까?

 

 

 

 

이곳엔 크고 작은 지진이 잇엇지만 이 정도의 대변란을 일으킬 정도의 지진은 잉카 시대엔 없엇다. 지질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1만 2천년 전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이 정도의 대재앙이 안데스를 휩쓸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때 아메리카 대륙에서 거대 포유류들이 멸종되었다. 지금껏 인간에 의한 대학살로 보았으나 이젠 다른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남미 안데스 지역의 알티플라노 고원이 남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대지진 및 대규모 화산 폭발과 함께 쓰나미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기원전 11000년경까지 이 고원엔 타우카라는 원시 호수가 있었는데, 이후 호수물이 대거 이동할 정도로 급격한 지각 변동이 발생했다. 삭사이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70년대에 네델란드 출신의 페루 수학자 숄텐 드엡네스안데스의 고대도시들인 티와나쿠, 쿠스코, 올란타이팀보, 카하마르카가 일직선상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유적지들을 잇는 선은 정확히 진북으로부터 서족으로 45도 각도를 이루었는데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에서 이 선은 마주보며 동과 서로 늘어선 안데스 산맥들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런 정렬은 무려 1,500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바라코차의 길>이라는 책에 소개했다. 바라코차는 먼 옛날 티와나쿠에서 출발하여 북상하면서 주민들을 교화했다는 문화영웅신이다. 이렇게 도시 설계를 하는 것은 고도의 문명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구대륙과 신대륙의 초고도문명은 교류가 있었을까?

 

인류의 문명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미국의 신석기 문화 전문가인 메리 세테가스트는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된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현대적 감각을 볼 때 문화 또는 문명은 그 정도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적극 지지하는 데렉 커닝햄은 천문학적 연구 결과를 <40만 년의 석기시대 과학:긴 여행>이란 책을 통해 소개했다.

 

고도의 천문학적 지식이 이미 3만 년 전부터 알려져 있어 고대 유적들에 기하학적으로 암호화된 문자로 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정확히 동일한 암호 문자들이 삭사이와망에서도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구대륙의 구석기시대 유적과 삭사이와망 사이에 연관성을 감안할 때, 당시 전 세계는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상당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아틀라티스 이야기는 옳다고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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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돈의 역사 1
홍춘욱 지음 / 로크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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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를 바꾼 중요 사건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세상일이 명쾌하게 다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영웅의 행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사의 이면도 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 '서문' 중에서

 

 

돈의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다

 

저자 홍춘욱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명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사) 등을 거쳤다. 현재 EAR Research 대표이자 숭실대학교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2016년 조선일보와 에프앤가이드가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로 선정했으며, 수년 간 부동산 및 금융 분야, 국제 경제 전망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 각종 미디어의 1순위 인터뷰어로 손꼽혀왔다.

지은 책으로는 <돈 좀 굴려봅시다(2012)>와 <환율의 미래(2016)> 외 10여권에 이르며, <순환장세의 주도주를 잡아라(2018)>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1999년부터 개인 홈페이지 <홍춘욱의 시장을 보는 눈>을 운영하면서 네티즌과 지식을 공유해왔으며,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홍춘욱의 경제강의노트>를 통해 어려운 경제 및 금융시장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은 프랑스보다 군사력이 열세였던 영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앙은행을 비롯한 금융 시스템의 도입이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18세기부터 서양이 동양보다 잘 살게 된 이유, 일본의 버블 자산이 일어난 배경, 대한민국의 광복후 토지개혁과 이후 외환위기까지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돈의 역사는 과거에 시작되어 그 순간 끝난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산업혁명 전후의 서양 세계 발전 정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사를 다룬다. 명나라 가정제 시절 왜구가 창궐했던 이유,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이 명나라에 미친 영향 등을 샇펴본다. 3부에서는 산업혁명의 발생과 확산 과정을 다룬다. 

 

이어서 4부에서는 11929년 대공황을 다루는데, 특히 금본위제에 대한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5부에선 1971년 닉슨 쇼크 후 금본위제가 붕괴된 후 세계경제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6부에서는 왜 엔화의 강세가 나타났고, 어떻게 역사적인 자산 버블로 연결되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7부에서는 한국 경제에 있었던 다양한 이벤트를 살펴본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19세기 초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에게 가장 위협적인 대항마는 섬나라 영국이었다. 영국은 프랑스를 견제코자 일곱 차례나 프랑스동맹이라는 군사 동맹을 주도했고, 프랑스의 뒷마당격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반란(1808~1814년, 반도전쟁)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또 1812년 살라망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패퇴시킨 당사자도 바로 웰링턴 공작이 이끌던 영국군이었다.

 

급기야 1813년 10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동맹군에게 완패함으로써 나폴레옹의 군사지배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한 직접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 사실상 반도전쟁에서 가장 돋보인 존재감은 바로 영국 해군이었다. 영국에서 포르투갈까지 해상 보급선을 유지하고, 필수 군수물자 공급에서 프랑스군보다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국은 극강의 해군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이는 18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를 완벽하게 제압한 이후 해상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104문의 대포를 장착한 전함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로선 최첨단 전투선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숲은 18세기 이전에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기 않았기에 배를 만드는 목재는 스웨덴과 북미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여기에다 대포 제작과 수많은 병사들의 인건비 등 당연히 선박 구축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 막대한 비용을 영국은 어떻게 충당할 수 있었을까?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은 영국의 국채금리를 급격히 인하시켰기에 저금리로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 왕들이 빈번하게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것은 국가 재정이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찰스 2세의 아버지인 찰스 1세가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이 이끈 의회군에 패배해 처형당한 사건, 즉 청교도 혁명도 전함 건조를 위해 특별 세금인 건함세建艦稅를 부과해 귀족과 금융업자의 반발을 샀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영국 의회는 네델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을 새로운 국왕(윌리엄3세)으로 앉히고 신설되는 세금은 사전에 의회의 동의 구할 것과 국민의 재산을 함부로 강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음으로써 더 이상의 원리금 연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네델란드 금융이 도입된 영국의 금융시장은 1702년 영국의 국채금리를 단번에 6%로 떨어뜨렸다. 특히 1755년엔 2.74%를 기록함으로써 다른 어떤 나라도 꿈꿀 수 없었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는 영국의 육군과 해군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함대의 건조는 물론이고, 사전에 화약을 이용한 실전 훈련을 꾸준히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금리 하락의 혜택이 영국 정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재산을 형성한 영국 국민들은 채권, 특히 만기가 없는 영구 채권(콘솔 공채)에 투자해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설계가 가능했다. 나아가 '신뢰가능한' 자본시장이 형성되자, 전 세계의 부자들은 투자를 목적으로 너도나도 영국 런던으로 몰려왔던 것이다.  

 

왜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출범하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네덜란드가 중세 유럽 사회의 핵심인 '장원제도莊園制度)'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장원제도란 영주가 자신의 봉토에 속한 농노農奴들을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영주는 자신에게 몸을 의탁한 농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 즉 신변 보호와 농사지을 토지의 이용권을 보장했다. 영주가 권세를 잃거나 전쟁에서 목숨을 잃으면, 그의 장원은 다른 기사나 영주에게 넘어가게 되지만 일단 형식적으로는 ‘거래 관계’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네델란드 대부분의 주에는 장원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다. 네델란드 육지는 대부분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땅이다. 개간한 사람이 주인인 것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자연스레 네델란드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태도가 생겼다. 그리고 기나긴 독립전쟁(1568~1648년)이 네델란드의 혁신에 한몫 거들었다. 네델란드 정부는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민간 자본 육성에 동인도회사를 활용했던 것이다. 이들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해외에 요새까지 구축하는 등 군사력까지 행사했다.

 

중세 말 대규모 상행위를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대상大商들은 정부에 자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소위 '정경유착'의 형태가 발생해 사업과 정치는 긴밀하게 결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밟은 예가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로마 교황청의 외환거래를 전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에는 금화, 은화, 금속 주화 등 다양한 주화가 공존했기에 장거리 무역이나 납세 업무 시 환전 절차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메디치 가문이 교황청의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준 것이다.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때 예금을 맡긴 사람들은 항상 '예금을 제때 찾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예금보험제도'가 없었기에, 사람들이 일거에 예금을 찾으면 은행은 '지급불능'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우리들은 흔히 '뱅크런' (Bank Run)이라고 부른다. 우리들도 이미 이를 목격한 바 있다. 2010~2012년 저축은행 구조조정 당시,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려고 끝없이 장사長蛇진을 친 행렬을 목격했었다. 

 

프랑스를 '영원한 도전자'라고 세계사는 평한다. 그도 그럴 것이 16세기에는 스페인이 패권 국가의 자리를 움켜쥐었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암스테르담 은행과 동인도회사라는 신무기를 내세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으며, 18~19세기에는 영국이 무적 해군을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반면 프랑스는 항상 2인자에 머물렀다.

 

금리가 높은 나라는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를 '투자'의 영역에 적용하자면, 금리가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터키나 브라질 등의 신흥국이 발행한 국채, 혹은 우리나라 내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금리가 높은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호시절에는 고금리 채권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이 채권의 인기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이나 2008년처럼, 경기가 악화될 때는 첫 번째 자금회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대항해시대로 열린 '글로벌 경제'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은 비단 유럽 사회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권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당시의 중국은 명나라 시기로 주화 제작을 은銀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만력제(재위 1572~1620년) 초기의 명재상 장거정이 단행한 일조편법一條鞭法이 이런 현상을 초래했다. 이 개혁의 핵심은 각종 세금을 토지세 하나로 단순화하고 세금은 모두 은銀으로 받는 것이었다.

 

명나라는 가정제(재위 1521~1566년) 때부터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조세 개혁은 시급한 과제였다. 이 시기에 역사상 최악의 왜구 침탈을 경험했는데, 이를 '가정대왜구'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 해적의 명칭이 '왜구'이지만 구성원 대부분은 일본인이 아닌 중국 상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수백 척의 선박과 십만 명 이상의 선원을 휘하에 두었던 해적왕 왕직 역시 중국 출신이었다. 이처럼 '가정대왜구'는 일본인의 침략이 아니라 중국인들 내부의 갈등 표출이었던 것이다.

 

가정제는 밀무역 통제를 위해 해금海禁 조치를 시행하면서 수백 척의 무역선을 파괴하고 밀수상들을 처형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는 남중국해에 서양세력 (포르투갈)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약탈행위를 일삼고, 전국시대 일본의 지방 영주들이 교역을 요구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할 목적으로 전면적 통제가 발생했다. 

 

이와같은 통제는 결국 중국 무역상들이 생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해적으로 나서게 만듦으로써 중국 동남해안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던 셈이다. 가정제 사망 후 융경제(재위 1567~1572년)의 복선성 장저우 항 개방,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조차 승인 등을 허용했지만 이미 명나라 재정은 견디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장거정의 개혁은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멕시코에서 출발한 스페인의 대규모 선대가 필리핀을 거쳐 중국에 도달, 도자기나 비단을 구입한 대금으로 은화를 지불함으로써 중국의 일조편법으로 인한 '은銀 부족' 현상이 해소되었으니 당시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대부분의 은이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여기엔 깊은 속사정이 있다. 중국이 다른 지역보다 은의 가치를 높이 쳐주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16세기 금은 교환비율대체로 1대 12였는데, 중국은 유독 1대 6이었다. 중국으로 은을 가져가기만 해도 남는 장사였다.

 

  

 

일조편법의 시행과 '귀금속 공급 확대' 덕분에 명나라의 재정은 매우 윤택했다. 적어도 명나라 때가지는 동양의 중국이 서유럽보다 더 부강했거나 또는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계의 거두 이언 모리스 교수도 로마제국 멸망 이후 동양이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아래 도표를 보면, 18세기 말에 비로소 서양의 우위로 전환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명나라가 왜 갑자기 멸망하게 되었을까? 강력한 만주족 기마병 때문에 망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당시 명의 군사력은 만주족을 능가했기에 오히려 이자성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농민 반란이 명 패망의 주된 이유다. 왜 농민 반란이 일어났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이 핍박해지면 대규모 봉기가 발생한다. 현 문재인 정권의 민생 도탄도 더 이어진다면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티모시 브룩 교수'기후 변화'가 명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1613년부터 중국 북부 전역에서 홍수가 지속되었고, 1615년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추워졌다. 이를 기후학계에선 '소빙하기'라 칭한다. 1616년 후반기에 기근이 발생, 중국 북부에서 양즈강 유역으로 번졌고, 이어서 광둥성을 덮쳤다. 이후 2년 동안 가뭄과 메뚜기 떼의 약탈이 극성이었다. 물론 당시 명나라 황제가 기상 이변에 대응할 정도로 재정이 탄탄했다면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7년 이후 우리나라는 왜?  

 

외환위기 이후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과거 학습에 기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좋은 현상인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어두운 미래의 자화상이다. 즉 대마불사라던 경제 상식이 엎어지고 대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면서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상을 목격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소비와 투자를 줄인 결과,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우리 자신의 소비는 다른 사람에겐 '매출'이라는 점이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는 현상은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뜻하므로, 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따라서 작금의 고용 부진 사태의 원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주체의 적극성이 약화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기에 확실한 처방을 제시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기준 우리 정부의 GDP 대비 재정수지는 1%대 중반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GDP 대비 정부 부채도 12.2%에 불과하다. 이렇듯 건전한 재정을 활용해서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간접자본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돈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현재와 같은 내수경기의 부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국민 개개인의 실질 소득 감소와 일자리 불안 및 감소로 인해 삶이 핍박해짐과 함께 덩달아 세수기반이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정부의 재정지출은 현명함을 요구하는데, 무분별한 선심성 지출을 가급적 억제하고 실질 효과가 유발되는 부문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의 세수 증강책과 복지 포퓰리즘의 확대는 나라의 미래를 어두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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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술, 한국의 맛 -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겁다
이현주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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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식품점에서 사온 술이 제주祭酒로 올라갑니다. 소주도 내리지 못합니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아버지 대에서 술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맛이 좋았다는 것은 들어 기억하고 있지만 술 빚는 솜씨도 좋았다는 것은 술일을 시작하고서야 엄마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라도 배워 둘걸.' 못내 아쉬워하신 엄마. 이 일을 업 삼지 않았다면 그 술 두세 가지쯤 없어진 것이 뭐 대수이며,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살았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보다 더 아까운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한 대를 더 물리지 못하고 사라진 술과 음식이 비단 우리 집에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 '술독을 열며' 중에서

 

 

한국의 술에 대하여

 

책의 저자 이현주세종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조리외식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발효식품·양조학을 전공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통주 강연과 시음·전시 행사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2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 국가대표 부문 1위를 한 전통주 전문가이자 귀에 쏙 박히는 열정 강의로 명성이난 강사이기도 하다. SNS상에서 전통주 읽어주는 여자라는 닉네임으로 한국 술의 멋과 맛을 알리고 있다.

국가 주요 행사의 건배주와 다수의 호텔, 레스토랑, 외식업체에 전통주를 추천하는 자문 활동을 해왔다. 홍콩에서 열리는 〈한국 10월 문화제FESTIVE KOREA〉,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민속축제 〈포크로리시모FOLKLORISSIMO〉, 파리에서 열린 〈한국 OECD 가입 20주년 기념식〉 등 국내외에서 여러 전통주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 역사 속에는 우리 술의 근간이 흔들릴뻔한 시기가 있었다. 먼 옛날 조선시대에 시행되었던 금주령, 1909년 일본에 의한 주세법의 제정, 1960년대 식량부족을 극복하고자 시행된 양곡관리법과 밀주 단속의 시기. 한국 술의 뿌리를 위협하는 여러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우리의 술들이 있고, 그 계보를 잇기 위해 굳건히 전통주 시장을 지키는 양조장들과 새로이 술독에 뛰어드는 젊은 양조인들이 있다.

 

책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주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양조장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전통주들을 소개하며 술에 담긴 가치를 전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 관장, 전통주 소믈리에인 저자는 그간 보고 듣고 마시고 느낀 증류주, 약주, 탁주 등 다양한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에 가득 담았다.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명인은 자신의 집에서 술을 빚어오던 방식에, 안동 지역의 집집마다 내려오던 비법들을 찾아내고 체계화하여 1987년 안동소주 기능보유자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에 지정이 되었고 2000년도에는 전통식품명인 제 20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에는 생일상과 함께 안동소주를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앤드류 왕자가 다시 20년 만에 하회마을을 찾았는데 방한 전 여왕으로부터 하회마을에서 받았던 생일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조 명인의 안동소주 원료는 단순하다. 쌀 한 가지와 직접 빚은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토속적인 향기와 구수함을 동시에 갖고 잇다. 명인의 안동소주는 옛 조상들이 써왔던 소줏고리와 같은 상압증류 방식으로 증류한다. 게다가 직접 띄운 개성 강한 밀 누룩을 사용하고 장기간 발효시킨 술덧을 쓰기에 그 특색이 더해서 여타 안동소주의 다른 맛의 특징들이 있다.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와는 어떤 음식이 잘 어울릴까? 원래 술과 음식은 한 밥상 위에서 자란 동무이기에 그 지역의 음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안동 지역은 자반고등어 산지로 유명하다.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적당히 제거한 뒤에 석쇠에 얹어 노릇하게 구워낸 간고등어는 안동소주에 딱 어울리는 안줏거리이다. 짭짜름한 소금기가 소주의 단맛을 잡아끌어내 45도나 되는 술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찜닭의 원조도 안동이다. 적당히 달고 간이 배어 부들거리는 닭고기 살점과 곁들여진 감자며 당면 한 젓가락도 이 유서 깊은 술의 안주로 그만이다.

 

 

 

문배주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작고한 김정일 위원이 '문배주는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로 빚어야 제맛'이라고 했다던가? 지금 평양에서는 이 술을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과 물맛이 많이 닮았다는 경기도 김포의 석회암 암반수로 문배주를 빚는다.

 

문배주양조원에서 만난 이승용 전수자의 모습은 참 분주해 보였다. "수수도 심어야죠. 술도 돌봐야죠. 바쁘네요" 하며 환하게 웃는다. 양조장 한편에는 좁쌀 누룩을 띄우는 제국기製麴機가 돌아가고, 발효 탱크마다 술 익는 향이 달큰하다. 증류한 술을 담아 숙성시키는 커다란 숙성조 속에서 문배주가 시간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문배주는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운 술이다. 대한민국 구가무형문화재라는 위상에 걸맞게 술병도 다양하고 세련되게 갖춰져서 선물하기에도 좋다. 하얀 백자에 은행잎 문양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문배술 명작'은 술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에 호텔과 항공사의 기내 판매용으로 인기가 좋고 용 모양이 양각된 백색의 긴 도자기 '문배술 용상'은 700ml 너근한 용량을 담고도 가격이 저렴해서 좋은 사람들끼리 나눠 마신 뒤 빈 병은 꽃 한 송이 꽂아 두고 보기에도 제격이다.

 

 

 

계룡백일주

봄부터 시작해서 여름을 나고, 가을의 서리가 내려야 술 빚을 준비가 된다. 3월의 진달래, 5월의 솔잎, 7월의 잇꽃, 9월의 오미자, 무서리 내린 늦가을의 황국까지 다 갈무리해서 계룡산의 사계절을 다 넣어 만드는 술이 계룡백일주이다. 본시 궁중의 술로 조선 16대 왕 인조가 반정의 일등공신인 연평부원군 이귀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술 만드는 비법을 연안 이씨 가문에 내려주었다고 이성우 명인은 말한다. 

 

계룡백일주 빚는 과정은 누룩을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물을 갈아가며 깨끗이 씻은 통밀을 물에 불려 절반이 타개지도록 빻아야 한다. 여기에 쌀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은 뒤에 약간의 물을 더해서 반죽을 하는데 너무 질어서도 안 되고 수분이 아주 부족해도 안 된다. 손으로 한 주먹 쥐어서 해변의 모래처럼 엉켜지는 반죽을 누룩 틀에 넣고 단단히 밟아서 누룩을 만든다. 한국의 전통 누룩은 그 형태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누룩 안의 미생물의 종류는 더 다양하다.

 

계룡백일주는 이양주二釀酒 기법으로 만든다. 이양주란 밑술 한 번, 덧술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술을 빚는 방법을 말한다. 처음 빚는 밑술은 알코올을 만드는 미생물인 효모酵母를 증식시켜 알코올 발효를 잘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이고, 덧술은 밑술에 술의 주재료가 되는 쌀이나 좁쌀, 수수 등의 곡물과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분이 들어 있는 원료를 익혀 밑술에 넣어 본격적으로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이다.

 

밑술로는 찹쌀가루로 죽을 쓴다. 쌀가루가 멍울지지 않도록 잘 풀어서 죽을 쑤어 차게 식으면 누룩을 섞어 준다. 시간이 지나면 술이 말 그대로 부글부글거리면서 탄산이 용암처럼 터지며 끓어오르는데, 그 기운이 조금씩 잦아들어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이 조분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미리 준비한 찹쌀 고두밥을 밑술과 함께 잘 섞이도록 섞어 준다. 이때, 진달래, 황색 국화, 솔잎, 오미자를 넣어주는데 국화와 진달래, 솔잎이 각각 다섯 홉씩 들어가고 오미자가 세 홉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덧을 낮은 온도에서 100일 동안 발효를 하고 잘 익혀 거르면 계룡백일주가 된다.    

 

함께 전통주 갤러리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동료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 약주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정말 놀라워. 만약 일본 사람들이 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무척 놀라게 될 거야." 막걸리와 한국의 전통주를 이야기할 때면 눈이 별처럼 반짝이던 이 일본인 동료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대개의 것들이 그런 듯하다. 가까운 것에 대한 소중함과 소소한 가치를 알기가 사서삼경 떼기보다 어렵다.

 

 

 

면천두견주

면천두견주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양곡정책으로 인해 쉬쉬하며 밀주로 조금씩 빚어지던 두견주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86-2호로 지정된 것은 1986년의 일이다. 집안 전승으로 이어지던 비법으로 두견주의 명맥을 잇던 인간문화재 박승규 씨가 타계하면서 면천두견주는 다시 마을의 술이 되었다. 두견주를 이을 사라밍 없게 되자 2007년 여덟 가구의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면천두견주 보존회'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에 의해 자격을 인증받은 것이다. 

면천두견주는 물을 적게 잡아 빚는 술이다. 단맛에 귀했던 시절에 이 끈적한 단맛은 가히 부와 호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을 살짝 받쳐주는 새콤함이 있어 그 맛이 지루하지 않다. 잘 빚은 술에서는 꽃 향과 과실 향이 나는데, 이 향이 꼭 진달래의 꽃 향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봄을 연상하기에는 충분하다.

 

여러 박람회장에서 만날 때면 떡 한 조각을 기어이 저자의 입에 넣어 주며 두견주 한 잔을 권하던 그분들이, 하얀색 가운과 모자, 장화를 신고 서늘한 발효실로 저자를 안내하는 이 어머니들이 맞는가 싶어진다. 발효조마다 날짜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고, 현대적 양조 장비가 그득하다. 전통은 지켜가되 꾸준히 연구하고 현대적 기술을 접목하여 지금 사람의 입맛에 맞도록 하며, 청결히 빚어야 한다는 것이 면천두견주를 빚는 마을 어머니들의 지론이다.

 

 

 

한산소곡주

 

한산소곡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앉은뱅이 술로 통한다. 이래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는 이 서천의 주막거리를 지나야 한다. '시장기도 채울 겸, 딱 한 잔만.' 그러나 종내는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시를 읊고 달을 보며 일어나지 않을 핑계를 하나둘씩 보태다가 그만 과거 시험을 놓치고만 선비가 열에 하나쯤은 있었을 법도 하다. 

 

오래 전부터 이 서천마을의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됫병에 담긴 소곡주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천마을에서는 집의 대소사를 잊지 않고 술을 빚어가며 한산소곡주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전국에서 이 술의 명성을 알고 알음알음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식 팔아 자식들 교육과 생계에보태기도 했다. 현재는 서천군청의 주도로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 술을 빚고 있다. 가히 '술 익는 마을'이다.  

오래전, 술 공부하던 선생님들과 당시에는 서천에서 유일하던 우희열 명인의 한산소곡주 양조장을 방문하던 날, 아이 키만큼이나 커다란 항아리 속에서 익어 가는 한산소곡주를 보여주셨는데 아직도 한산소곡주를 마실 때면 그날의 감동이 떠오른다. 바가지로 술지게미를 헤쳐내면 바닷가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놀던 어린 날의 기억처럼 노오랗게 익은 술이 쏘오옥 하며 고여서 올라오는데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이야!" 하며 탄성을 질렀다. 독에서 갓 떠낸 이 술을 한잔 맛보라며 권하시는데 '아……, 세상에! 이런 달콤한 꿀술이 또 있을까?' 입에 쩍 달라붙는 술맛에 웃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역시 술은 술독에서 떠 마셔야 제맛이다. 

 

 

 

맑은바당

 

제주의 양조장, 술도가 제주바당에서 생산하는약주인 맑은바당의 술맛을 처음 보던 날에는 그동안 맛보았던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쌀 약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원료 처리와 발효조건, 사용하는 누룩이나 물 사용량을 살펴봐도 비슷하게 술을 빚는 다른 곳의 술보다 무게도 덜하고 산미도 있어 따듯한 제주 날씨 탓이려니 생각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 입맛도 취향도 변한다. 지금은 산뜻한 산미가 나는 술이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 당시에는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만든 약주의 대부분이 묵직하고 중후한 맛을 가진 술들이 많아,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국 약주가 단맛 위주라 지루하며 균형미가 부족하다 토로하곤 했다.

 

술에 있어 산미酸味는 악센트와도 같아서 지나치면 산만하고 부족하면 심심하다. 제주바당의 임효진 대표의 걱정과 달리 가볍고 새콤한 맛을 가진 이 술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먼저 이름이 나서 '봄바람처럼 산들산들한 술'로 인기를 얻었다. 술의 산미는 일종의 이상 신호와도 같아 산미와 산패酸敗의 경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풍정사계 춘'

2015년, 저자가 경험한 전통주 시장의 수면 아래는 분주했다. 특급 호텔 레스토랑과 여러 외식업체에서 전통주를 알리고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젊은 청년들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동아리가 여럿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미디어 매체의 관심 역시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국가 주요 행사의 만찬 석상에 전통주를 올리기 위한 노력들이 활발한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취재와 자료를 요청하는 미디어 매체, 외식업체들의 자문 요청, 부처와 기관 담당자들의 질의가 하루에 몇 건씩 이어졌는데, 같은 술이라도 여러 변수와 상황을 고려해 응대해야하니, 메뉴 구성과 추천 사유, 한 줄 평 작성이 새벽까지의 일과가 되어 마치 시 구절 하나를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 한 축에 풍정사계도 있었다.

 

풍정楓井은 '단풍마을 우물'이란 뜻이다. 과거엔 단풍나무의 우리말인 '싣나무'가 있는 우물 마을이기에 '싣우물 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태어나서 이 동네를 오래 떠나본 적이 없는 화양 양조장 이한상 대표가 자신이 빚은 술에 마을 이름 '풍정'을 붙이고, 춘하추동 사계절을 담아냈다. 봄 산의 진달래, 여름날 정자나무, 단풍 물든 가을 저녁, 겨울 굴뚝 하얀 연기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술 빚는 할머니 곁에서 한 줌씩 고두밥을 집어먹던 소년이 이젠 할머니가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할 술을 빚는다. 그냥 술이 아니라 궁중이나 세도가에서 만들어 귀하게 썼다던 향온香醞곡을 만들어 빚는다. 향온곡은 거피去皮한 녹두를 물에 불렸다가 갈아 즙을 걸러내어 반쯤 타갠 밀에 물 대신 섞어 반죽한 뒤 누룩 틀에 단단히 밟아 따뜻한 곳에서 띄워 만든다. 게다가 녹두는 비싸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증류식 소주 풍정사계 동冬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약주풍정사계 춘春은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된 뒤 '트럼프 술'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품절 사태를 불러왔다. 

 

풍정사계 춘은 백설기로 밑술을 한다. 이것에다 향온곡을 섞어 밑술을 만들고 밑술이 완성되면 닷;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작은 옹기를 써서 발효하기에 생산하는 양이 많지 않다. 굳이 손 많이 가는 백설기로 술을 만드는 이유는 백설기로 밑술을 하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미인주

 

사미인주는 장성의 유기농 쌀을 사용하는데,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친환경 쌀 재배단지에서 계약 재배를 통해 사미인주에 사용할 쌀을 조달한다. 인공감미료는 스자 않는 대신 올리고당과 사과농축액, 꿀로 술에 단맛을 더했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은 기존의 대규모 막걸리 양조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발효실의 온도를 13도에 맞추어 두고 낮은 온도에서 25일간 발효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알코올을 만드는 1차의 과정과 숙성을 겸한 2차 발효를 통해 술에 원숙미와 청량함을 동시에 부여한다는 점 이외에도 사미인주는 사용하는 효모도 특별하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 10여 년간 한국의 전통 누룩을 연구하여 찾아낸 토종 효모 사미인주에 사용한다. 바나나향이 독특한 이 효모를 통해 사미인주에 감성을 더하고 좋은 원료와 현대의 양조과학을 더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들여 사미인주의 원숙한 맛을 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막걸리는 다 같은 맛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그간의 인식도 많이 바뀐 듯하다. 갓 걸러 신선한 상태로 마시는 술 막걸리는 병 속에서 무궁한 변화를 보이니 오늘 마신 이 막걸리 맛이 내일 같으리라는 법이 없다. 지금 마시는 이 술 한 잔이 전 우주에서 유일한 맛을 가진 술이니 그 운명과의 조우에 집중한다면 술맛은 더 귀해진다.

 

얼추 천여 종이 넘는 막걸리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니 그 맛을 그저 보는 데도 평생은 걸릴 듯한데, 막걸리 하나하나가 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니 그 재미만을 풀어보아도 본전은 나올 듯하다. 먹고 취하는 것만이 술꾼의 자세는 아니다. 막걸리의 이 무한한 변신의 세계에 합류를 하게 되면 저렴한 막걸리라 마구 대하고 그저 취해 주사를 부를 여유는 없을 듯하다.

 

 

 

전통주 제조 과정을 이해하고 사랑하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주폭酒暴에 대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암담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주폭은 술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람의 문제이다. 술 빚는 일의 고된 수고와 설렘을 안다면 함부로 술과 자신을 천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올바른 식습관과 사회인으로서의 예절을 위해 밥상 교육이 필요하듯 술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이 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더불어 여러 거창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맛있는 한국의 전통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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