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말고 스몰토크 - 소소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소통법
데브라 파인 지음, 김태승.김수민 옮김 / 일월일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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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한 스몰토크 기술들은 대화에 서툰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법 대화를 잘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스몰토크의 엄청난 파급 효과를 알게 되는 순간, 아마 당신은 스몰토크의 가능성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친구와 동료들이 새록새록 생길 것이고, 전에는 끔찍하게 두려워하던 사교 모임을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즐기게 될 것이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스몰토크 기술

 

책의 저자 데브라 파인은 사교성이 부족하고 서툰 말솜씨 때문에 말실수를 부르는 그저 그런 엔지니어였다. 이 책에 제시된 스몰토크 기술로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하지만 지금은 트레이너로 변신하여 수많은 기업들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조 연설자, 기업 동기부여 강사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는 크고 작은 회의에서 활용되는 전문적인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둔 한 회사의 창립자이자 오너이기도 하다. 최근 The Today Show, CNN, The Early Show, NPR Morning 등의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스몰토크는 수다와는 다르다. 사람들을 만나서 무조건 떠들라는 게 아니다. 세상에 수다스러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말만 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는 수다맨은 오히려 피하고 싶은 유형에 속한다. 스몰토크는 기획된 수다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를 즐겁게 띄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기술이다. 

 

 

 

 

스몰토크의 의미

 

진지하고 깊은 대화에 비해 스몰토크는 잡담, 심지어 쓸데없는 말로 취급되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저자는 스몰토크 없이는 진지한 대화도 없다고 강조한다. 스몰토크는 더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며,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더 친밀한 대화로 이끌어낸다.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누군가와 비즈니스 관계를 넓힐 때, 계약을 체결할 때, 연애를 시작할 때, 친구를 사귈 때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원칙

대화를 잘하려면 지켜야 할 원칙이 2가지 있다. 첫째, 위험을 감수하라. 낯선 이에게 말을 걸지 말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자리지 마라. 거절이 두려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말을 걸었다가 거절당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 세사엔 얼마든지 많다.

 

둘째, 대화의 부담을 기꺼이 짊어져라. 대화를 할 때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부감담을 갖게 마련이다. 재미있는 화제를 생각해내는 것,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중단된 대화를 다시 이어가는 것들이 다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들을 당신이 맡아준다면, 그리하여 당신이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잇다면, 상대도 기꺼이 당신과 친구가 되려고 할 것이며 함께 사업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친밀감을 형성하는 스몰토크

비즈니스 관계에서 스몰토크는 필수적이다. 딱딱한 비즈니스 관계를 친밀한 인간관계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늘 스몰토크로 시작해서 스몰토크로 끝내라. 스몰토크는 간접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면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돈을 쓰는 방식과도 연관된다. 사람들이 돈을 쓰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2가지다.

 

첫째, 문제를 해결하거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둘째, 즐겁고 긍정적인 느낌을 얻기 위해서다

 

스몰토크는 결코 작지 않다. 유능한 경영자들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스몰토크로 분위기를 먼저 띄운다. 일상적인 대화로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면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회의 내내 보다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곤란한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팀의 결집력과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제 당신은 어떤 행사에서든 인싸가 될 수 있다. 대화 기술은 자신감을 높여주고 모르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준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기분 좋은 사람 곁으로 모여들기 마련이므로 친구가 많아지고, 리더십도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무엇보다 예전과는 달리 당신은 이제 대화 자체를 즐기게 될 것이다.

 

편견을 버려라 우린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깨뜨리지 못하는 편견에 갇혀 있다. 우리들이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힘든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침묵은 금이다', '소개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라',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말을 걸지 말아라' 등의 가르침이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 낡은 교훈은 새롭게 대체되어야 옳다.

 

먼저 말을 걸어라

나를 소개하라

침묵은 금이 아니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대화의 짐을 기꺼이 짊어져라

 

만일 다른 사람이 먼저 대화를 시작해주기를 기다리는 편이라면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왜냐하면, 먼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들은 대화를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화 도중에도 자기 몫의 짐을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

 

스몰토크의 3대 기본원칙 

원칙은 간단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미소를 지으면 당신도 따라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당신이 먼저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저 웃는 얼굴로 몇 마디만 건네면 된다. 다만 그때는 반드시 눈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이 간단한 행동만으로 이미 친밀한 관계가 시작된다. 

 

원칙1~ 이름을 기억하라

원칙2~ 이름을 변형하지 마라

원칙3~ 내 이름을 알려줘라

 

대화 시작의 4단계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한 국영 TV 뉴스쇼에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한 실험자는 파티장에서 별자리 이야기만으로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험을 무릅쓰고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사실 대화거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체중 감량 스토리도 상대방으로부터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먼저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대화에 성공할 수 있다. 일단 시도해 보라. 그러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상대방의 긍정적 반응도 또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다음 4단계만 잘 기억하면 당신은 스몰토크의 달인이 될 수 있다.

 

1단계: 눈을 맞추어라. 

2단계: 미소를 지어라.

3단계: 접근하기 쉬운 사람을 찾아라.

4단계: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어라.

 

열심히 듣는 티를 내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려면 무엇보다 눈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두리번거리지 말고 대화에 집중하라. 가끔 고개를 끄덕여 듣고 있다는 시각적 신호를 주면 말하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격려가 된다. 실제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눈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3명 이상의 그룹에서는 눈을 놓치기 쉽다. 보디랭귀지도 경청의 시각적 신호이다.

 

 

좋은 화제

 

대화를 시작할 때는 듣기 편하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 이야기가 좋다. 쉽고, 밝고, 긍정적이고, 가벼운 이야기 말이다. 우정은 믿음과 친밀감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싹튼다. 대화를 하는 것은 양파를 까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와 친해진 만큼만 한 겹씩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3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둘째, 새로운 주제를 제공함으로써 남들도 자신의 여행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서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한다.

 

대화를 시작하거나 이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칭찬하는 것이다. 칭찬할 거리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 매력은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감탄할 만한 부분을 찾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에는 급격한 친밀감이 형성되며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말의 힘은 확신에서 나온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공격적인 대화 기술이 꼭 필요할 때가 있는데, 말의 힘은 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인 단어보다는 확신에 찬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말을 참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말 속에는 변명과 망설임의 느낌이 있다. 특정한 표현과 문장, 질문들의 사소한 오류 때문에 대화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조심하자.

 

우리가 내뱉은 말 그대로의 사람이다. 그리고 단어는 우리의 영혼을 보여주는 창이다. 우리가 선택한 단어들이 우리 내면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론 우리는 절대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해도 우리가 선택한 단어들은 전혀 다른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 자신의 언어습관을 확인해보라.

 

대화 살인자들을 조심하라

대화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예방하려면 더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을 광범위하게 조사, 말로 상대방을 죽이는 대화 살인자들을 8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우리들은 모두 일상적인 대화에서 대화 범죄자 수배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추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래 유형을 참고하여, 대화 범죄자를 퇴치해야 한다.  

 

FBI 요원~ 상대에게 끝없는 질문 공세

뻥돌이~ 사란들의 대화를 끊어버리는 선수

허풍쟁이~ 남의 얘기에 끼어들어 남의 말을 잘라 먹는다

대화 독점자~ 대담하고 공격적인 말로 대화를 장악한다

꼭껴씨~ 모든 대화에 끼어든다

단답형~ 일반적인 대화 규칙을 거부

다알아씨~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상대를 깎아내린다

조언자~ 문제에 일일이 참견하며 끝없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화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것이다. 즉 상대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 대화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당신의 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아하고 능숙하게 처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기술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나 로켓을 발사하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니 걱정 마라.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도 단지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스몰토크 기술을 향상시켜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필요한 기술은 배우면서 대화의 기술은 배우지 않는다. 대화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화의 기술이 훈련된 기술이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와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명함을 교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스몰토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인상을 더욱 오래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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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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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다. 몸은 피부를 경계로 안과 밖으로 나뉜다. 안쪽에는 뼈와 근육, 피, 장기,세포 등이 있고, 바깥쪽은 '나'라는 형상으로서의 물질인 몸이 있다. 몸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몸으로 살아가며 가끔은 영혼의 일탈이나 해방을 꿈꾼다. 하지만 영혼은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 '추천의 글' 중에서 

 

 

우리들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깊이 생각할까?

 

책의 저자 토머스 린치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버밍엄 대학에서 법학과 법철학을 공부했다. 1989년, 히틀러 정권 초기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경찰 출신 탐정 베른하르트 귄터가 활약하는 소설 <3월의 제비꽃>으로 데뷔한다. 이 작품은 이후 이어지는 <창백한 범죄자>,  <A German Requiem>과 함께 '베를린 누아르 3부작'이라 불리며, 나치 치하에서 냉혹하고 비정상인 것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하드보일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3월의 제비꽃>으로 필립 커는 프랑스 미스터리 비평가 상과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을 받았고, 영국 대거 상 처녀작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영국 BBC 라디오 3에서 방송된 ‘몸에 관한 이야기(A Body of Essays)’를 모아 엮은 것이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피부, 눈, 코, 폐, 심장, 갑상샘 같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에 얽힌 이야기를 한 편씩 들려준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 관련 지식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가들은 몸 속 기관이라는 지극히 생물학적 주제를 아름다운 문학적 형태로 바꿔놓는다.

 

즉 열다섯 명의 작가들은 소설, 시, 오페라, 스탠드업 코미디 등 활동 분야뿐만 아니라 출신지나 앓고 있는 질병, 작가 외의 직업 등 제각각 다양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몸과 몸속 기관들에 대해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이 각자의 몸에 새긴 고유의 무늬를 읽어낸다.

 

 

 

피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할 때가 많다. 우리가 슬프고 화나고 절망스럽고 외로울 때면 피부는 부글부글 끓고 아프고 허물어진다. 대개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 모를 수도 있다.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일, 가족, 집, 정신)이 피부를 스멀거리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흉터가 남더라도 피부는 상처를 낫게 한다. 하지만 복숭아 같은 뺨은 더는 남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많은 생을 살아갈수록 피부는 복숭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오래 살아갈수록 이 세상과 당신을 가르는 이 탄력적인 장벽은 당신이 싸우고, 결국 이겨낸 전투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상흔들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은 감을 수 있어도 는 통제하기 어렵다. 소리를 차단하는 귀마개에서부터 300파운드나 하는 잡음 소거 이어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귀를 막을 방법을 찾는다. 심지어 귀는 들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도 들을 소리를 찾는다. 손으로 귀를 막으면 맥박이 뛰는 소리, 머릿속에서 피가 흘러가는 소리처럼 아주 친숙하지만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우리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귀는 장소다. 집이, 미로가, 궁전이 방과 복도와 통로로 가득 차 있는 장소인 것처럼 귀도 독같다. 귀의 일부는 머리 바깥에 있고 일부는 머리 안쪽에 읶으니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장소다. 귀는 물과 비와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허락해준다. 한편 귀는 아주 취약하기도 하다. 갑자기 귀 바로 옆에서 모깃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귀걸이와 장신구로 귀를 치장한다. 귀는 우리 눈에 보이며,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꾸밀 수 있다. 하지만 귀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지 못한다.

입과 항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창자는 아름다움을 부패로, 군침 도는 식욕을 구역질로 바꾸어버린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몸과 맺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유산이 될 부패와 부식을 매일같이 경험한다. 몸은 신비롭다. 우리야말로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여기, 창자이다. 음식을 전혀 다른 형태로 바꿀 능력을 가진 우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갑상샘은 목 아래쪽에 있는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분비샘이다. 누구의 것이든 갑상샘은 모두 녹이 슨 것 같은 붉은색으로 자연은 개인의취향에는 관심이 없다. 이를 가장 먼저 기록한 사람은 히포크라테스나 플라톤 등의 그리스인인데, 두 사람 모두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를 언급했다. 두 사람은 이것이 호흡기 통로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17세기에 인기를 끈 가설은 '갑상샘은 여성의 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관'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은 살짝 부풀어 오른 갑상샘이 백조처럼 긴 목을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고 여겼다. 다빈치, 카라바조, 티티안 같은 르네상스 시기의 거장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마리아를 그렸다. 메시아를 무릎에 안고 있는 마리아, 어린 예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마리아, 구름 속에 승천하는 마리아 등등. 그림에 등자하는 마리아의 목 아랫 부분은 한결같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을 위해 모델로 일하는 여인들의 목이 부푼 것은 갑상샘 탓이라는 걸 알았을까? 박학다식했던 다빈치는 알고 있었을까? 마리아를 그리려고 자신들이 선택한 토스카나 혹은 움브리아 출신 소녀들이 갑상샘종을 앓고 있다는 것을 화가들이 알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는 가장 복잡하고도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아침에 깨어 활동을 하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거의 흥미가 없다. 하지만 매일같이 쓰고 읽고 생각하는 동안 목의 가장 아랫부분에서는 모든 일이 골디락스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애쓰는 작은 용광로가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용광로가 말이다.

 

 

패랭이꽃을 든 성모(라파엘로,1507년)

 

몸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책은 피부, 귀, 눈, 갑상샘, 대장, 뇌 등으로 이어지면서 열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인체의 기관 중 한 곳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미처 몰랐던 지식을 배우면서 우리들은 자신의 몸과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설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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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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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간단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별이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별은 진화한다. 누군가 20년 전 모습을 근거로 당신을 함부로 규정하려 든다면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일제 강점기의 모습으로 규정하려는 것과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별과 우주도 마찬가지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현대 천문학을 이야기하다

 

이 책의 저자 윤성철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는 천문학자'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에서 항성 진화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별의 진화와 죽음, 초신성의 기원, 초기 우주의 별 등을 탐구하고 있다.

대학 밖에서도 대중과 만나면서 천문학을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주 진화와 인간 탄생의 연결고리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세밀하게 밝혀내며, 우리 삶의 의미를 우주적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한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5: 윤성철의 별의 마지막 모습, 초신성>(공저), <빛 THE LIGHT: 렉처 사이언스 KAOS>(공저) 등을 썼고,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등 각종 매체에서 우주와 인간을 주제로 강의한 바 있다. 

 

 

 

 

케플러가 발견한 우주의 질서

 

케플러의 제3법칙으로 알려진 소위 '조화의 법칙'타원궤도에 숨겨진 신성한 하모니의 발견이었다. 이 법칙은 후에 뉴턴이 중력에 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땅에서 작용하는 중력이 신성한 하늘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이다.

 

지구의 기울기를 아는가? 실제 행성과 작은 행성의 궤도는 기하학적 미美에 비해 지저분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결코 질서 정연하지 않다. 행성마다 타원궤도의 찌그러진 정도가 다 다르다. 각 공전궤도의 평면도 서로 정렬되어 있지 않다. 각 행성의 자전축 역시 제멋대로여서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는 공전축에 비해 23.4도 기울어져 있다. 천왕성은 97.8도, 금성은 177.4도 기울어져 있다.  

 

지구의 자전축의 기울기가 천왕성처럼 97.8도였다면 생명의 진화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인류도 출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주에는 수많은 우연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사건의 연속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지구의 자전축이 결정된 것도 인간의 출현도 모두 복잡다단한 우주 역사의 일부로 발생한 일이다. 이런 역사를 모른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과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우주의 나이를 구하다

 

허블의 기념비적 논문에서 관측으로 추정된 허블상수 값은 100만 파섹 떨어진 은하 기준 초당 558km였으며, 오늘날 측정한 최신 값은 약 70km다. 파섹이란 시차가 1초에 해당하는 거리를 듯하는 천문학적 단위로, 1파섹은 3.26광년이다.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에 따라 우주 팽창에 따른 후퇴속도는 거리와 선형적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10만 파섹 떨어진 곳의 은하는 초당 7km, 1000만 파섹 떨어진 곳의 은하는 초당 700km의 값을 가진다. 

 

그런데, 이 측정값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외부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 자체의 한계를 들 수 잇다. 또한 당시 망원경의 성능상 가까운 은하들만을 대상으로 관측했다는 점도 허불의 한계였다. 아무튼 허블의 발견은 과거로 갈수록 우주의 크기는 작아져야 하므로 우주는 한 점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한 점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팽창한 시간은 단순히 어떤 은하까지의 거리를 그 은하의 후퇴속도로 나눈 값이 될 것이다. 

 

이렇게 추정된 우주의 나이를 천문학자들은 '허블시간'이라고 부른다. 허블의 관측 결과인100만 파색 기준 초당 558km로 추정한 허블시간은 18억 년 정도다. 당시 지질학에서 추정한 지구의 나이가 대략 36억 년이었기에 우주는 지구보다 더 젊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 때문에 지구의 나이보다도 짧게 추정된 허블시간은 당시 우주 팽창 이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우주의 시작에 관한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과연 우주에 시작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주는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단 말인가? 우주의 시작은 신의 창조를 연상시킨다. 때문에 동적인 우주에 관한 이론을 제시했던 프리드만의 업적은 자국 소련에서 배척당한다. 신의 창조 신화를 연상시키는 프리드만의 이론이 당시 소련 공산주의자들이 믿었던 변증법적 유물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주 역사를 체현하는 인간

 

현대 과학은 평범한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서 진리를 발견한다. 우리 몸의 DNA를 구성하는 원소들 중 수소는 빅뱅을 통해 우주에 존재했다. 즉 인간의 몸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고 잇다. 그 외의 원소들은 모두 별 안에서 합성되어 우주 공간에 퍼쟈나갔고 그 물질이 다시 새로운 별을 탄생시켰다.

우리의 핏속을 흐르는 철鐵, DNA를 구성하는 원소들은 모두 과거 언젠가에 별 속에서 생성되었다. 별들의 먼지로 구성된 우리 몸은 별의 탄생, 별의 진화, 별의 죽음과 초신성 폭발의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도 만들어졌고 인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지구에 마련되었다. 우리 모두 아주 먼 과거에는 별 속에 있었다.

 

생명의 진화

 

진화할 수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라는 현상을 태초부터 미리 정해진 '원형'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고정된 질서는 생명에게 죽음을 뜻할 뿐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과연 생명은 어느 정도의 극한 환경에서까지 적응이 가능할까? 과학기술 문명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산소가 없거나 온도가 100도인 환경에서 영구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그만큼 연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생명은 연약하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초기 지구의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그 변화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는 생명이 출현했고 번성했다. 지난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지구 대기의 평균 온도는 1도 가까이 상승했다. 어느 순간 다시 빙하기가 도래하거나,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지구 대기가 먼지들로 둘러싸이는 등의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도 생명은 꾸준히 생존해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생명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

 

 

 

인간의 역사도 우주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인간의 특정 모습을 영원한 본질로 규정하고 그 틀에 맞지 않는 모습이 발견되면 죄, 타락, 혹은 합목적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해하던 과거의 구습은 수많은 억압과 비극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별 먼지인 인간의 많은 측면은 역사의 여러 특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미래 역시 미리 정해진 질서에 구속받지 않고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역사도 우주 역사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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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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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근육질로 남아 있는 아버지의 팔은 지금은 주름이 졌고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그렇지만 내가 있는 그대로 보려 할 때도 아버지의 팔은 여전히 예전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하얗다. 하지만 그 머리털이 내 눈에서 내 마음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억센 팔, 곱슬곱슬한 밤색 머리털. 이것들이 내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기본적인 진실이고, 세월의 배신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한다. 기억은 사실보다 강한 법이다. - '유전병' 중에서

 

 

죽음과 화해하는 법

 

책의 저자 데이비드 기펄스는 기자, 작가, 교수. 미국 오하이오의 애크런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애크런 비컨 저널Akron Beacon Journal〉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였으며 MTV 만화시리즈 〈비비스 앤 버트헤드Beavis and Butt-Head〉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글은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에스콰이어〉 등 다양한 매체에 실렸다. 현재 애크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

 

은퇴한 토목 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엉뚱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자신의 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 저자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함께 관을 만드는 3년 여의 시간 동안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고,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두 번의 암 치료를 견뎌낸 아버지에게마저 암이 재발하고 만다.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날들을 보내며 저자는 죽음과 늙어감,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이별의 순간,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은 자신의 관뿐만이 아니다. 1095일 동안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앞으로 아버지 없이 혼자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 배운다. 죽음과 상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매순간 깨닫는다.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는 묵묵히 '관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들의 관계를 재정립해나간다.

 

 

 

"우리는 매일 살지만,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떠난 후에도 곁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이 느낌은 소중한 이를 떠올릴 때마다 각별한 마음으로 되살아난다. <영혼의 집 짓기>는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 오은(시인)

 

솔직히 관 짜기는 저자에겐 현실적인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섣부른 구상에 더 가까워 보였다.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중에 자존심 때문에 발을 빼지 못하는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흐지부지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기에 그런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실 저자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였다. 분명한 상징성과 우주적 무게감을 지닌 관이기는커녕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새집이 되었든, 보이스카우트에서 개최하는 모형 자동차 경주 대회용 차가 되었든, 혹은 책꽂이가 되었든 간에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다 관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 목요일 밤, 심근경색이 어머니를 덮쳤을 때, 이는 마치 어머니가 죽음이 자기에게 잘 맞는지 확인하려고 옷을 입득이 한번 몸에 걸쳐본 자기 확인의 도 다른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어너미는 회복하는가 싶더니 다시 악화되었고, 조하졌다 나바졋다를 반복, 3주 동안 병마와 전쟁을 벌였다. 어느 시점에 약간 기분이 나아진 모습으로 형 랠프에게 이렇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내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거 기억하지? 그런데 아니야.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어머니는, 우리 중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점점 더 의식이 더디게 깜박거려서 말을 할 때면 실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앵무새처럼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점은 아마 사실이겠지만, 저자는 그걸 믿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사랑해요"였고, 그때 어머니가 눈을 뜨고 눈빛을 반짝이며 "사랑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해 여름부터 조금씩 달리기를 해왔다. 이걸 시작하는 대부분의 중년들처럼 그 또한 얼마간 그 어떤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달렸다. 이번 경우, 그가 달아나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암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암이었고, 지금은 존과 아버지의 암이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한 가지 사실만은 피할 수 없었다. 저자는 영원히 살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몸을 더 잘 관리해야 하며, 그 같은 인식 아래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건강했다.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친구의 죽음, 그리고 자기 젊음의 죽음이 자기 자신에게 뭔가를 가르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그걸 기대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인 듯싶다. 슬픔은 부서진 잔해殘骸의 혼돈 상태다. 오직 삶만이 패턴을 되찾을 수 있고,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시절에만 가능하다.

 

그 오랜 상실의 계절로부터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하루하루가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기를, 상실의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도 마구 흘러간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했던 것 같다. 그는 결코 상실감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패턴의 일부가 될 뿐이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을 알아가는 일에, 그리고 그 실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빛 속에서 고민에 빠지는 일에 갈수록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 실수들에는 정보가 가득했다.

 

 

저자가 만든 관은 어디에?

 

어머니와 친구의 죽음을 거치면서 저자는 얼마간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편인데, 반면에 아버지는 낙천적으로 살면서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저자가 공들여 만든 관은 아마도 현재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혹 책장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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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시옷들 - 사랑, 삶 그리고 시 날마다 인문학 1
조이스 박 지음 / 포르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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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말과 글의 밀림이 일상을 지배할 때, 나는 시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시옷들을 꺼낸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고전과 현대의 명시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사랑으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로 빚어진 책은 사랑과 존재와 삶의 이유가 어디에 잇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이므로, 내가 그러했듯 그대들도 말과 글의 밀림 속에서 사람을, 사랑을, 나아가 삶을 캐며 서서히 그 길을 걸으시길 바란다. - '들어가며' 중에서

 

 

시 속에서 찾은 통찰

 

책의 저자 조이스박서강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석사까지 전공한 후, 영국 UNIVERSITY OF MANCHESTERCELSE(교육대학원)에서 TESOL을 전공,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TESOL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대학에서 교양영어를, 다른 교육기관에서 영어 교수법과 영문학을 가르치고, 기업체에서 다양성 강연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문학과 종교밖에 없다고 믿으며 삶을 허위허위 노 저어 가고 있다. 책벌레로 살다 보니 세상을 거대한 텍스트로 읽어내려 하고 삶을 개인이 쓰는 서사라고 착각하는 치명적인 결점을 기꺼운 마음으로 지니고 산다.

지은 책으로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과 <하루 10분 명문낭독 영어 스피킹 100>을 비롯한 십여 권의 영어학습서와 영어 동화 시리즈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와 <로버랜덤>을 비롯해 십여 권이 있다. 책은 총 3부에 걸쳐 30편의 명시를 소개하면서 관련 시의 해석과 함께 해당 시에서 건져올린 통찰을 이야기한다.

 

 

 

 

책은 미국 시인 사라 티즈데일(1884~1933년)의 시 '혼자'로 시작한다. 저자는 이 시의 해석에 있어서 단순히 '혼자 있다'와 '외롭다'는 것은 다름을 이야기한다. 이 시의 화자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으므로 절대 혼자가 아님에도 외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면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 안식을 택한 자일뿐이라고 말한다.

 

난 혼자예요, 지친 회색 세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것처럼 내 주변엔 눈보라만 몰아치고

내 머리 위에 끝도 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어요.

 

화자話者가 느끼는 외로움은 '사랑하는 이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게 아니다. 다른 종류의 외로움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가지만 인간은 언제나 홀로인 것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그런 감정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를 "지친 회색 세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음은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제닝스(1926~2001년)의 시 '뒤늦게 오나니'를 살펴본다. 빛나는 별이 하늘에 한가득 보이던 시절, 사람들은 사랑도 운도 별을 보며 점쳤다. 하늘을 가르는 수많은 별을 보며 어쩌면 그것이 운명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많은 별들 속에 수많은 별똥별.

 

서양에는 X자로 하늘을 긋는 두 개의 별똥별을 연인이 보면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통상 비극적인 사랑"Star-crossed love"라고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두 연인을 '별들이 어긋난 연인'이라고 일컫는다.

 

내게 쏟아지는 별들의 광채는

몇 해 전에 빛나던 빛. 지금 저 위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내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한 빛

그렇게 시간의 간극은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나를 애태워

 

우리는 별이 수백만 년 전에 시작된 빛이라는 것을 안다. 수백 광년을 달려와 별빛이 우리 눈에 닿는 그 시점엔 그 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시인은 별빛이 우리의 눈에 와 닿는 거리를 마음의 거리로 가늠한다. 누군가가 사랑으로 보낸 마음 하나가 타인에게 닿지 못하는 아득함, 상대방에게 보낸 마음이 닿지도 않거나 변할 수도 있음을 안다. 

 

엘리자베스 비숍(1911~1979년)은 미국의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이다. 1956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그녀는 20세기 가장 순수한 재능을 지닌 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병약한 탓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바사르대학교를 다녔고 재학 중 시인 마리앤 무어를 만나 평생 우정을 이어갔다.

 

 

한 가지 기술

잃어버리는 기술을 터득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많은 것들이 잃어버리겠다는 의도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 하여 재앙은 아니죠.

매일 뭔가를 잃어버려 봐요. 열쇠를 잃어버리거나

시간을 허비해도 그 낭패감을 그냥 받아들여요.

잃어버리는 기술을 터득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더 많이, 더 빨리 잃어버리길 연습하는 거예요

장소, 이름, 여행하려 했던 곳.

이것들을 잃어버린다고 재앙이 닥치지는 않아요.

(중략)​

심지어는 당신을 잃는 것도(그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내가 사랑하는 몸짓)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요.

잃어버리는 기술은 터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재앙처럼 보일 수 있을지는(써 두세요!) 몰라도요.

 

삶에는 여러 가지 기술이 있다. 친구를 사귀는 법, 좋은 부모가 되는 법,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법, 공부를 잘하는 법 등등. 공연하게 따르면 좋은 법칙들은 모두 무언가를 얻거나 성공하는 방향에 있다. 우리는 '실패하는 법'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잃어버리는 법'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려다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고, 무언가를 얻으려다 안 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이스틀린 커밍스(1894~1962년)는 미국의 시인이자 화가, 희곡작가이다. 그는 약 2,900편의 시와 4편의 희곡과 다수의 에세이를 남겼다. 20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기존의 특에 박힌 형식에서 벗어난 현대시 양식을 개척했고, 대문자와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은 시로 유명하다.

커밍스는 대문자 쓰기를 거부한 시인이다. 심지어 'i'조차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 그는 I(나)를 세상에 들이밀 때 생기는 자아의 거대함을 참지 못하는 시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 '감정이 먼저'에는 대문자가 쓰였다! 하나는 Spring(봄)이고 다른 하나는 Don't cry(울지 말아요)Don't이다. 아래 사진을 참조하라. 계절이 우리 삶에 미치는 큰 영향을 문자로 형상화한 셈이다.

 

 

 

 

찰스 부코스키(1920~1994년)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우편배달부,피클 공장 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자신의 시에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하류 계층의 삶을 담았다. 그리고 그는 비주류 문학잡지에만 자신의 시를 기고했다. 반사회적 성향 때문에 FBI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햇으며, 그의 삶은 <술고래>(1987년)로 영화화되었다. 

 

내 심장 속에는

나오고 싶어 하는 파랑새가 한 마리 있어

하지만 난 그러기엔 강한 남자라

그렇게 말하지,

거기 있어, 아무도 너를 못 보게 할 거야.


부코스키의 시는 굉장히 마초적이다. 그의 시엔 자신이 사랑항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후 그 여성의 민낯을 하나하나 누설하는 글이 즐비하다. 또한 그는 믿을 수 없을 없는 나쁜 남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중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이다. 아마도 그의 진짜 표현은 '개'가 아닌 '개새끼'였을 것이다. '천박함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지극히 우악스러운 부코스키의 시를 읽다가, <파랑새>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대놓고 얘기하는 시를 만나면 그에 대한 연민이 일어난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내보일 수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그것은 '패퇴감'이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는 있으나 어쩔 도리가 없을 때, 입안이 까슬해지며 느껴지는 감정 말이다. 서양에서는 왜곡된 남성성(masculinity)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또한 이 왜곡된 남성성을 치명적인 남성성 'toxic masculinity'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자답다'는 문화적 가치가 강요되면 될수록 그들 역시 '남성성'이란 독에 빠져 괴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왜곡된 남성성의 문제는 때로 그들이 자신의 연약함(vulnerability)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집약되어 드러난다.

 

 

 영화 <술고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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