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 머니 GET MONEY
이경애 지음 / 밀리언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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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쳐서 읽기를 결심했는가? 그렇다면 이미 당신은 부자가 되기 위한 문턱을 넘어서는 중이다. 이 책은 진정한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팁을 제공할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고,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삶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이경애는 1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며 수백 명의 CEO를 인터뷰하고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돈을 모으고 사업을 성장시켜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기서 터득한 교훈과 노하우로 프랜차이즈 학원 163개를 관리할 정도로 본인 또한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가 전하는 부자학 강의를 책으로 만나보자.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형제도 부모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일해야 한다.”(16쪽)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도 내 가족 모두를 돌볼 수는 없다. 그렇다. 옛말에도 '아무리 형제들이 많아도 자기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돈을 버는 이유는 내 자신의 삶을 위해서인 것이다.


부자들은 돈을 사랑하면서도 마치 화수분처럼 돈이 항상 늘어나질 않음을 안다. 그들은 자신이 돈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는 2가지 신호를 알고 있다. 하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돈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돈이 생각만큼 불어나지 않는 것은 생명력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따라서 부자들은 자산이 강인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사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노력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누구든 잠도 잊은 채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을 한다면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가 아니기에 일만 하다가는 부자가 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고장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의 절대량으로 승부하는 것은 애초에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다.


부자들의 빚, 그 빚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즉 미래를 내다본 신사업을 구상했을 때 자기 자본만으론 부족한 경우 그들은 은행에 기댄다. 은행도 돈을 잘 불릴 수 있는 사람에겐 쉽게 금고를 연다. 이를 재무학에선 '레버리지 효과'라고 말한다. 즉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더 부자가 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은 이런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이다.


"재정적인 독립은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최고의 선善이며 가장 귀한 것이다"(60쪽)


재정적 독립이란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이며, 이를 바탕으로 궁극의 목표인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 경제적인 자유를 얻으면 쉬고 싶을 때 마음껏 쉴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 반면에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된다.


성공은 버티는 자의 것이다. '존버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사람은 계속 버티는 사람들이다. 즉 시도하는 일의 애매한 시간들을 견뎌낸다. 큰 부를 쟁취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게 아니다. 시시때대로 발생하는 온갖 걸림돌과 장애물을 치우고 넘으면서 담담하게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자신을 덮치는 불안감에 흔들리지 않고 쓰디 쓴 시간을 버텨낸다. 버텨낸 결과로 마침내 달콤한 열매를 딴다.


'본캐'보다는 '부캐'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식품 사업을 하는 사람이 여유았는 돈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이 사람의 본캐는 식품 사업가이며, 부캐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자인 셈이다.


굳이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가 있을까? 본캐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업인 반면, 부캐란 자신의 사업외에 특기를 살려 부수적으로 돈을 버는 투자 행위이므로 여건이 맞지 않으면 멈추기도 하고 무리하게 확장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자본과 시간의 80%를 본업에 쏟고, 나머지 20%를 투자나 신사업 구상에 비중을 두라는 소위 '8:2 법칙'이란 게 있다. 큰 부자들은 매일 규칙적이고 꾸준히 자기 일을 한다. 매월 고정적으로 수입을 벌어들이는 루트이자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본업을 절대 놓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파이프라인이라고 해서 부동산, 주식, 코인 등 돈이 들어올 루트를 여러 개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고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119쪽)


"부자가 되려면 내 주종목을 소중히 해야 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시드머니(종잣돈)와 마찬가지다"(155쪽)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일의 성패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운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주위에 재수로 큰 돈을 번 사람이 있다면 우린 대체로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하지만 큰 부자는 이를 알기에 늘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운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려 애쓴다.


부자들의 공간을 본 적이 있는가? 현관에 신발 한두 켤레, 거실에 소파와 테이블, 바닥에 카펫 정도 뿐이다. 주위는 깨끗하게 정리정돈되어 있고, 심지어 주방 가스레인지엔 음식 자국조차 하나 없다.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분위기이다.


부자들 집에 없는 것이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다. 쓸모를 다한 물건을 바로바로 치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건을 살 때 신중하게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므로 쌓이는 물건이 없다. 더구나 선물받은 물품도 필요 없다 여겨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바로 나눠준다.


"안 쓰는 물건들은 생명이 다한 거라고 봐야 한다. 죽은 물건을 집에 둘 필요 있을까?"(204쪽)


"신은 지저분한 공간을 싫어한다. 큰 부자일수록 몸을 청결히 하고 주변 환경을 깔끔하게 유지해야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205쪽)


일본 교세라 그룹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이 무척 감명 깊어 이를 소개해 본다. 인생과 일의 결과를 '사고법', '열의', '능력'이라는 3요소의 곱으로 나타낸다. 능력과 열의는 그 배점이 0~100점인 반면, 사고법은 좋고 나쁨에 따라 그 배점이 마이너스 100점에서부터 플러스 100점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다는 점이다.


인생과 일의 결과 = 사고법 x열의(열정) x 능력


능력과 열의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사고법 자체가 마이너스라면 그 결과는 좋게 나올 수가 없다. 이는 바로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자세를 견지한 가즈오 회장은 도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맡아 8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으며, 상장 폐지된 이 회사를 마침내 도쿄 증시에 재상장까지 완수했다.


부富는 신기루 같은 존재


많은 사람들이 부를 찾아 뛰어가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부는 이루기가 힘든 반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결국 부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좌우한다. 비록 부를 잃었을지라도 내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삶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건강하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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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 세금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가?
오무라 오지로 지음, 김지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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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배고픈 애벌레 (양장)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84
에릭 칼 지음, 김세실 옮김 / 시공주니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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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2-08-2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서평등록이 또 안 되지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성현규(유튜버 감성대디) 지음 / 트러스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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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동네 독립운동가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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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건 맞지만 놓쳐버리는 사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위해 순국한 분들을 꼭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이들을 소개한다. 조선 총독을 노린 65세 노인 강우규의 폭탄, 일본 경찰 1천 명과 대적한 조선의 총잡이 김상옥 등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긴다. 2부에서는 독립운동에 모든 걸 건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헤이그에서 독립을 외치다가 순국한 이준, 을사늑약에 개탄하며 자결로 사죄한 민영환의 이름이 눈에 띈다. 3부에선 독립운동을 이끈 이들이 주를 이룬다. 손병희, 서재필, 김구, 안창호 등 익히 아는 이름이 모여 있다.


4부는 독립운동에 제약 따위는 없다고 외친 이들을 소개한다. 반봉건․반침략의 혁명을 주도한 전봉준, 한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친 외국인 베델,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의 이야기가 이색적이다. 마지막으로 5부는 잊지 말아야 할 친일파의 이야기다. 김성수, 김동인, 안익태, 민영휘의 동상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 힘들어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인물임을 상기시키엔 충분해 보인다.


강우규, 조선 총독 제거에 나서다


서울역 앞에 동상 하나가 서 있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그저 무심코 이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상의 주변엔 노숙자들이 어슬렁거리고, 그들의 왠지 모를 위압감과 풍겨대는 악취로 인해 행인들은 빨리 지나가고픈 마음일 것이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독립운동가 강우규이다. 소설가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에도 그의 실명이 등장한다. 그는 삼일만세운동 이후 최초로 실행한 의거 활동의 장본인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대충 스쳐갈 그런 분이 결코 아니다.


1855년 7월 14일, 그는 평안남도 덕천군에서 빈농貧農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가 죽어서 시집간 누이의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 먹고 자랐다. 당시 시대상에 따른 고달픈 누이의 시집살이를 예상해 볼 때 아마도 눈칫밥 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성장한 그는 형의 권유로 한의술을 익혀 덕천읍에 한약방을 개업, 명의로 소문나며 큰 돈을 벌었다. 성인이 된 그는 1885년 함경남도 흥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잡화상을 열었는데, 정직과 신의로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멀리서도 고객들이 찾아왔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주권을 넘기고 말았다. 나라를 잃어버린 그는 1911년 봄 두만강을 건너 수년 간 간도와 연해주를 돌며 독립운동을 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 마침내 지린성 요하현을 점찍고 독립운동기지로 삼아 1915년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모든 재산을 가지고 이곳으로 이주했다. 바로 신흥동(신흥촌)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도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선택한 신흥동은 벽지에 불과했으나 얼마 뒤 철도가 연결되면서 북만주 지역을 쉽게 다닐 수 있는 교통 요지이자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는데,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며 1년 만에 1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로 성장했다.


1919년 삼일운동의 소식이 신흥동에도 들려왔다. 하지만 독립을 원하는 만세 시위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죽었다는 안타까움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일제를 혼내줄 방법을 찾다가 미국제 폭탄과 수류탄을 구매 확보했다.


9월 2일 오후 5시 사이토 총독이 남대문역에 대기하던 환영 인파와 인사를 나누고 마차에 오르는 순간, 강우규는 폭탄을 사이토에게로 던졌다. 그러나 마차에서 4m 떨어진 지점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마차 주변에 있던 서른일곱 명이 죽거나 다쳤지만, 사이토 총독은 무사했다.


강우규는 의거가 실패해서 분했지만, 재차 시도하기 위해 현장에서 급히 피신했다. 한편 일본 경찰은 폭탄을 던진 사람이 노인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범인을 찾다가 사건 발생 16일이 지난 9월 17일에 탐문수사 끝에 결국 강우규를 체포했다. 재판정에서도 얼마나 당당했으면 일제는 그를 '강선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20년 11월 29일, 강우규 선생은 66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죽음으로 사죄한 민영환


민영환의 노력에도 붕구하고 대한제국은 크게 변화되지 못했다. 고종의 무능력과 친일파의 득세와 함께 대외적으로 미국과 영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했던 것이다. 마침낸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이를 무효화하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만 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고종에게 상소문의 참뜻이 전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목숨으로 뜻을 전달하기로 결심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2일이 되던 날인 1905년 11월 30일 그는 2천만 동포와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칼로 자결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날카로운 풍자로 일제를 비난한 이상재 선생


나라를 잃은 1910년, 이상재 선생도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식민지 현실을 탈피하는 데 앞장을 섰다. 전국 10여 개의 YMCA를 통합, 1913년에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를 조직하고 미래의 꿈인 청년들의 의식 변화와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서울기독교청년회 강당에서 연설할 때는 “때 아닌 개나리꽃이 이리도 많이 피었을까?”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개나리꽃의 의미를 알아채고 큰소리로 박장대소했다. 당시 강연장에는 이상재를 감시하고자 일본 경찰이 많이 있었는데, 이상재는 그들을 ‘개(犬) 같은 나리’라고 비꼬며 풍자했던 것이다.


일제의 침략에 맞선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전파한 박은식 선생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한다”, “국혼國魂은 살아 있다. 나라가 망했어도 국혼만 불멸이면 부활할 수 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하더라도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그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정신만 살아 있으면 형체도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등 주옥 같은 명문장을 남긴 박은식 선생(1859~1925년)은 <황성신문>의 주필로 활동했으며, 상해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와같은 그의 행적 덕분에 우리 민족은 역사를 기록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한 결과 결국엔 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글로 수많은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 몬 소설가 김동인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김동인(1900~1951년)은 일제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38년 <매일신보>에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는 글로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내선일체란 '내'인 일본과 '선'인 조선은 한 몸이라는 식민지의 정당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는 일제가 내놓은 민족말살정책이자 일제강점기의 표어였다. 무지렁뱅이라면 몰라도 식자층인 그가 일제의 앞잡이로 활동한 것은 아이로니한 현실이다.


1939년 ‘북지황군 위문작가단’으로 한 달 동안 중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방문해 위문했다. 김동인이 억지로 참여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북지황군 위문작가단’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참여할 친일 문인 작가를 직접 섭외까지 했다. 중국에 가는 비용도 출판사와 문인들이 부담하도록 한 결과, 김동인은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자발적인 친일 행동이므로 분명한 '친일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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