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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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일상적인 일이지만, 한때 통근은 파격적인 행위였다.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통근의 짧은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사람들은 통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 통근을 금욕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열망할 만한 행위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초창기의 통근은 위험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최초의 통근자들은 첫날부터 자기들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서문' 중에서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교통수단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일터와 쉼터를 분리한다는 의미에서 통근, 즉 원거리 출퇴근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는 일과 쾌적한 집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때 통근길 여행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최초의 철도 열풍과 함께 장거리 통근이 생겨났을 때 통근은 바로 이동의 자유를 상징했다. 이러한 도전을 수용할 수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생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초창기의 통근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후 운송혁명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극소수였던 통근자가 이젠 다수가 되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통근의 탕생, 성장, 승리)에서는 과거의 통근을 살펴본다. 즉 통근이 전 세계 5억 명 이상의 일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탐사한다. 2부(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법)에서는 통근자가 매일 마주치는 어려움들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 등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3부(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시간)에서는 통근의 미래를 살펴본다.

 

이처럼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는 이 책의 저자 이언 케이틀리홍콩에서 성장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담배와 문명>, <음주 - 알코올의 문화사> 등이 있다. 그는 이제 디지털화로 인해 통근조차 불필요하게 됨에 따라 사람이 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일이 사람을 찾아오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통근 덕분에 이중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즉 집에서는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반항하는 자식인 동시에, 일터에서는 효율성의 화신으로 특유의 초연함과 침착함과 합리성으로 존경받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통근이라는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차라리 1세대 통근자들과 같은 개척자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통근은 그때까지 존재 고유의 특성이나 다름없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기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세계를 개조할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 16쪽에서

 

 

 

 

 

 

 

 

 

 

"사무실과 사생활은 별개"

 

과거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이 농장이나 대장간에서 일할 때는 일터와 쉼터가 동일했기에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한결같았고, 항상 같은 사람들을 상대했기에 굳이 둘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자 사람들의 옷차림과 행동이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같이 일터와 거주지를 분리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위생' 때문이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시대의 런던에서는 하나의 하수도에 양쪽으로 수많은 공장과 빈민가가 이어져 있었다. 때문에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방 하나에 다섯 가족이 모여 살기도 했으며, 성인의 체격은 왜소한데다 기대 수명은 겨우 35년에 불과했다.

 

"주민이 380명에 달하지만 변소는 단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좁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어서 인접 주택으로 악취가 스며드는데, 이것은 십중팔구 질병의 매우 비옥한 원천으로 입증될 것이다" - 제임스 필립스 케이, 맨체스터 팔러먼트 스트리트에 관한 보고서 

 

제임스 필립스 케이의 <맨체스터의 면화 제조업에 고용된 노동계급의 도덕적, 신체적 상태>라는 책에서 묘사된 도시의 더러움과 질병이 자기 집 문 앞까지 들이닥친다는 내용을 읽은 중산층 독자들은 가급적 빨리 도시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건강하고 부유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은 1830년대 '철도 문화'로 인해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세기의 선남선녀들이 도시에 거주할 경우 자신들의 조상들이 누렷던 것보다 더 많은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동시에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에 땅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았기에 전보다 훨씬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과거 같으면 1년에 한번 찾아오는 마을 축제 때나 낯선 이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매일 가능했다.    

 

 

 

 

 

 

 

 

 

또한 그들은 자기 배우자감이 인접한 곳에 농토를 갖고 있는지 따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관습도 변했다.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여자에게 직접 청혼하게 됐다. 자신은 그녀의 지참금인 토지가 아니라 그녀 자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는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점차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표준처럼 됐다. -53쪽-

이리하여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통근의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하면 위생, 절주節酒, 낭만과 아버지다움(빅토리아 시대의 통근자는 대부분 남자였음)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도시와 시골 간을 왕래하는 하루 두 번의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1856년 당시 영국의 잡지 <빌더>는 통근의 의미를 이렇게 적고 있다.

'런던 주민에게는 이것이 도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낫다. 하루 일을 마치고 시골이나 교외로 가면 도시의 소음과 군중과 불결한 공기를 피할 수 있다. 또한 카지노와 무도장을 비롯해 내가 차마 거명조차 못할 온갖 복마전이 있는 인근 지역으로부터 가족을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남자에게는 적지 않은 이득이라 하겠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1대 통근자 대부분은 중산층이거나 부유했다. 미국의 객차는 영국의 객차보다 헐씬 길었다. 끝에서 끝까지 통로가 이어지고, 양편에 2인용 벤치가 배열된 형식이었다. 미국의 통근자들은 이동 중 대화를 즐기거나 온갖 종류의 놀이에 몰두했다. 퇴근길의 통근자들이 네 명씩 모여 앉아 휘스트라는 카드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흔했다. 그런가 하면 철도와 도로 근처에 학교와 클럽이 생기고, 주택들도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이처럼 철도는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철도 운행 노선의 확정은 당시 영국의 국토뿐만 아니라 계급체계에도 흠집을 내고 말았다. 철도 열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상처는 깊게 파였다. 그들은 당연히 항의를 했다. 지역의 환경을 망치고 하인들의 태도를 삐뚤어지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통근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명암明暗이었다.

 

책은 통근의 탄생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고, 도시의 형성과 성장을 촉진했으며, 이와 함께 생활 문화가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변화를 초래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철도는 우리 인류사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최대의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1부(통근의 탄생, 성장, 승리)에 이어 2부(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법)와 3부(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를 읽노라면 매일 5억 명의 지구촌 직장인이 겪게 되는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다.

 

 

 

 

미래의 통근은 어떤 모습일까?

 

결국 책은 통근의 미래 모습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미래의 직업은 '디지탈화'로 인해 상당히 많은 직업이 소멸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향후 통근 문화가 종말을 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에 대해 저자는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 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결코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일갈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 유지되는 한 통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통근길을 재촉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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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 로드맵 - 사상가 50인이 안내하는 지知의 최전선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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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을 형성하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때, 현대사상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현대사상가들 역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와 같은 문제를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가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철저하게 생각했던 것뿐이다" - '머리말' 중에서

 

 

현대사상가 50인을 살펴보다

 

저자 오카모토 유이치로규슈 대학 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다마가와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양 근대 철학이 전공이지만 관심 분야가 워낙 폭넓어서 영역을 넘나들며 연구를 하고 있다. 특기는 어려워 보이는 철학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현대사상의 재미를 두루 맛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책을 썼다.

 

한때 일본에서도 현대사상이 붐을 이루며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프랑스계 포스트 구조주의가 꽃을 피우고, 몹시 난해한 표현이 애용되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내 붐은 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대사상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릇 학문이란 이해할 수 있어야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지식, 나아가 쓸모있는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현대사상 관련 도서와는 격을 달리 한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의 현대사상, 미국의 정의론, 사회학, 미디어론과 논리학, 실용주의 등 다채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애매한 표현을 피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명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해당 사조의 정수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탓이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50인의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지제크나 아감벤, 바디우처럼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주디스 버틀러, 에마뉘엘 토드, 노르베르트 볼츠, 로버트 브랜덤처럼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한 떠오르는 '스타'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즉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부터 미국의 정의론, 미디어 이론과 사회학, 윤리학까지 확장되는 사상을 맛보다 보면 우리들은 그 다채로운 흐름 속에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상의 원조들

 

현대사상의 개척자는 누구일까? 이는 꽤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표적인 세 사람의 사상가를 거론할 수 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선 현대사상의 원류로 흔히 마르크스,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를 꼽았다. 이들은 '회의懷疑의 세 거장'으로 불리며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들의 책을 읽지 않으면 현대사상의 대화에 낄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 경제학적 분석, <자본론>

니체~ 허무주의, '신은 죽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고 제각각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이 현대사상의 개척자가 된 것일까?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사회, 사고방식 등에 근본적인 의심을 품고 이를 철저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다른 대안을 제시햇다. 말하자면, 모두 '반反시대적인 사상가'였다.

 

   

저자는 여기에 네 명의 비판적인 사상가를 더한다. 즉 소쉬르, 베버,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이 바로 그 사람이다. 소쉬르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인간 이해의 중심으로 생각함으로써 근대의 발상을 뛰어넘었다. 베버하이데거는 둘 다 근대라는 시대의 귀결을 '철의 우리'와 '게슈텔(닦달하기)'라고 각각 표현함으로써 현대사상의 개척자가 되었다.

 

 

포스트 구조주의

 

구조주의의 유행은 1968년 5월 혁명과 함께 종식되었다. 혁명의 에너지를 내뿜던 청년들에게는 구조주의가 체제 옹호의 이데올로기로 보였던 것이다. "인간이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타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 의문은 구조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답답한 시대 상황을 구조주의에 투영하여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시대의 사상은 포스트 구조주의로 넘어갔다.

 

 

 


'저자의 죽음' 이후 무엇이 올까? 이를 바르트는 '텍스트'라 부르고 '작품'과 구별했다. 텍스트란 라틴어 '지어낸 것'에서 유래한 말인데, 바르트는 그 의미를 확장하여 '다양한 인용을 엮어서 지어낸 것'이라 이해했다. 저자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인용하여 지어낸 텍스트, 그것이 바르트가 문학을 보는 관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개개의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요청에 호응하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이 된다. 인간은 국가에 강제로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배 세력 밑으로 들어간다.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주체sujet가 실제로는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sujet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대에서는 도처에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미리 시뮬라시옹 장치로 연습하고, 그 후에 실제 운전을 한다. 혹은 현대의 전쟁에서는 원격지에서 화면을 보면서 스위치를 누르고 미사일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시뮬라시옹 자체가 현실화된 예다. 시뮬라시옹과 현실리 구별되지 않는 상황을 보드리야르는 '과도 현실'이라고 불렀다. 이때, 현실 자체가 시뮬라시옹화 된다. 우리는 그야말로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근대인은 부정적인 자유는 획득했지만 긍정적인 자유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따라서 고독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고독과 무력감에 가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즉, 강력한 지도자에게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무력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자유로부터 파시즘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호네트에 따르면 경제적인 '분배'를 둘러싼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수가 적거나, 분배 방식이 나쁜 것은 그 사람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고전적인 분배를 둘러싼 경제적 투쟁도 '인정'이란 개념 아래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인정'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실천적으로 활용된다.

슬로터다이크<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표명한 것은 근대에서 시작된 '휴머니즘'이 이제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이다. 인간주의 관점에서 유전공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 개조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껏 인문주의의 기초가 된 '책'의 종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진전에 따라 의사소통의 양상이 볂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과 '책의 죽음'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휴머니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기든스도 근대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리란 것을 부정한 건 아니다. 그들은 그 변화가 '근대 너머post-modernity'에 도달한다는 이론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근대의 변화를 어떻게 파악한 것일까? 이 변화를 벡은 '위험 사회risk society'라는 말로 표현하고 기든스는 '세계화'의 진전에 주목했다."

이러한 '문화 자본', '학력 자본', '사회관계 자본'은 개인이 속한 계급이나 계층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행동 양식을 낳는다. 이를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명명했다. 이 용어는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태도'나 '습관' 등을 의미한다. 그는 이 단어를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잇는 일정한 태도나 성향이라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를 생각할 때,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은 통상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버마스를 포함하여 '사회는 인간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확고한 전제였다. 그런데 루만은 그것을 부정하고 사회를 성립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며, 그 '행위'도 아니라고 선언한다. 핵심이 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개념이다. 사회는 인간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으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유동하는 상태인 근대 이후의 시대에 인간은 쓰이다 버려지고 끝내 쓰레기가 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이런 현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또 현대의 소비생활은 유동 상태의 근대에 부합하여 상품을 영속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서 쓰고 바로 버리는 '쓰레기의 문화'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은 쓰레기장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도 쓰이다 버려질 것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는 존재로 가정된다.  샌델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인간상을 '무연고적 자아'로 규정했다. 즉, 자유주의에서 개개인은 선택 주체로서의 인간이며 스스로 져야 하는 외부로부터의 의무를 일절 배제한다. 샌델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근저에는 이러한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도려낸, 말하자면 탈색된 듯한 인간이 있다.

 

 


과거에는 현대사상이라고 하면 다들 '포스트모던'을 떠올렸다. 바디우지제크는 이에 반기를 들고 포스트모던이 현대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철학의 종말'을 부르짖는 포스트모던에 맞서 바디우는 '철학의 귀환'을 선언했다. 또 지제크는 현대의 포스트모던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렌트의 기본적 관점은 '나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라는 점이다. 나치는 이상하고 잔학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극히 보통의 인간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1958년 <인간의 조건>을 세상에 내놓는다.

현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바디우는 오늘날 '윤리'란 말이 가장 각광받고 잇는 데에 주목한다. 우리 주변에 생명 윤리, 윤리 위원회, 기업 윤리 등 윤리가 넘쳐난다. 이에 대해 그는 '윤리'가 사람들을 관리 및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폭로했다. 그것은 서구적 질서를 선택하게 하고, 자본주의경제와 의회 민주주의를 옹호하게 하여 결국 보수주의, 보신주의로 이끈다.

'호모 사케르'란 원래는 '성스러운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대 로마법에 따르면 '법에서 배제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호모 사케르'가 되면 누구나 그를 살해해도 좋다. 말하자면 버림받은 인간이다. 아감벤은 카를 슈미트의 말을 빌려서 이를 '예외 상태에 있는 삶'이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을 말할 때,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문화적 성gender'을 구별해서 생각한다. 상식적인 발상에서 '사회적 성은 생물학적인 성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생물학적인 성' 또한 사회적으로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누스바움은 버틀러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성은 사회적인 관계에 따라 전면적으로 구축되지 않으며 젠더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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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11월 13일 참극에 대한 고찰
알랭 바디우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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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먼저 어떤 심경으로 이 잔혹한 참극에 대해 말해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 또한 언론과 당국이 위험하게 난타하고 있듯, 정동情動과 민감한 반응의 기능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11월 13일 참극을 살펴보다

 

알랭 바디우는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이며 정치 활동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았고, 1958년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며 통합사회당(PSU)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알튀세르와 교류했으나 68혁명 이후 마오주의 노선을 택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한다.

 

1970년대에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지만 마오주의의 쇠락과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직후, 서구 좌파들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안을 사유하기 위하여 철학의 자리로 복귀한다. 그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재구축한 저작인 <존재와 사건>(1988년)을 통해 철학적 가능성의 재생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지평을 마련했다.

 

그는 참혹한 파리 테러 직후에 마련된 특별 강연에서 정동情動의 압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유의 운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파리 테러라는 증상의 구조적 고찰을 진행하면서 폭주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초국적 자본이 빚은 인류 최악의 과두정, 자본에 의해 무無로 산정된 '유목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이같은 비극이 잉태한 파시즘의 주체를 넘어설 사유의 기반을 마련한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곳곳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바타클랑 공연장과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 등 파리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을 골라 연쇄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이 테러로 말미암아 무고한 시민 130명이 희생됐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열흘밖에 안된 때에 행한 특별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복수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지 말라

 

불특정이든 특정인든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런 유형의 범죄, 즉 테러에 대해서 복수의 유혹은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일례로 항상 법치국가임을 자처하고, 사형을 거부하는 우리 서구에서 경찰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에서 어떤 소송도 없이 살인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고 있지만 이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비극悲劇은 연극의 한 형식이다. 이런 의미의 비극은 인생을 정중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이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대결해 결국엔 재앙을 맞게 되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비극'은 이런 드라마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재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불행이 비극의 한 예다. 후자에서 말하는 비극엔 슬픔과 무기력함이 존재한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상연된 연극 장르로서의 비극은 슬픔이나 불행이라는 주제를 담은 특정한 연극이라기보다는 '연극' 그 자체다. 3월 말,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춘분에 맞춰 아테네의 명망 있는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창작한 연극이 이 축제기간에 상연되도록 디오니시아를 주관하는 관리(아르콘)에게 경쟁적으로 제출한다.

 

그리스 비극이란 장르를 만든 아이스킬로스는 처음부터 극작가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다른 철학가나 역사가들이 모두 그렇듯 그도 군인이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엘레우시스에서 태어났다. 엘레우시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비밀스러운 의례가 1년에 두 번씩 거행되던 도시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연극에 대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활동한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라는 조그만 도시가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델로스 동맹으로 하나가 돼 '슈퍼 파워' 페르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세계의 맹주로 등장한 시기다. 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쟁에 참전해 다리우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인들과 싸웠는데 이 전쟁에서 동생 퀴네게리우스가 전사했다. 그는 10년 후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침공한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 해전에도 참전했다.

그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여겼고 '명예'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말년에 이탈리아 시실리아 섬의 남부 도시 젤라에서 거주하다 일생을 마쳤다. 
그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 군인들이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를 때도 현장에 있었다. 그의 <페르시아인들>은 인류 최초의 비극 작품으로 살라미스 전투에 대한 유일한 목격담으로, 실제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비극은 기원전 472년 연중행사인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아테네 시민들은 8년 전 자신들이 참전한 살라미스 전투를 상기하며 이 비극을 관람했으며 18년 전 마라톤 들판에서 치른 전쟁도 기억했다. 이들은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전쟁 참전용사들이었다. 몇몇은 자신들이 전쟁을 치를 때 착용한 갑옷이나 방패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 위대한 그리스 비극은 정의의 논리와 복수의 논리를 대립시켰다. 정의의 보편성은 가족, 지방, 국가, 정체성의 복수와 대립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가 그것이다. 비극에서 정체성의 충동은 살인자의 추적을 순수하고 단순한 복수의 추격전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해가 안 돼', '결코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뜻한다. 어떤 것도 사유 불가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에 맞서기를 바란다면, 사유의 임무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이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이성적인 범죄임에도 '이해가 안 돼'라는 식으로 사유하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결국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이성적, 범죄적, 병리적 행위가 있지만 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대상이며, 그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은 없다. 사유 불가능의 표명은 항상 사유의 패배이며, 사유의 패배는 항상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였다.

 

 

새로운 제국적 행태

 

책의 제목은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의 비극 <페드르>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를 패러디해 "우리의 병은 이민, 이슬람, 황폐해진 중동, 약탈에 굴복한 아프리카…보다 오래전에 시작됐다"고 말한다. 즉 우리 병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 생긴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던 저자는 공산주의 실패, 반대로 이야기하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문제의 연원을 찾는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가 지배하는 현대 세계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약화, 심지어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몇몇 경우 국가를 잘게 해체하거나 심지어 전멸시키는 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새로운 제국적 행태를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리비아 파병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가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국가를 완벽하게 파괴했고, 모두가 반대하는 혹은 반대하는 듯한 하나의 무정부 지역을 만들었지만, 결국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온갖 짓을 자행했습니다. - 37쪽에서

 

 

인구에 미친 영향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다. 다수의 빈곤층 중 압도적인 다수는 바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이다.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구적 생활양식을 수호하려는 중산층, 자본에 의해 마치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20억 이상의 인구, 글로벌 자본주의가 양산한 이런 구도 속에서 복수와 파괴의 욕망으로 구성된 '허무주의적 주체성'이 생겨났다. 이와같은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승자는 자본이다. 자본이 승리했으므로 자본은 노동시간의 감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마르틴 오브리(전 노동부장관)가 제안한 빈약한 35시간도 용인하지 않는다. 자본은 이 틀 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담하게 무無로 선포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세계에 무無로 산정된 대규모 집단이 있는 것이다.

 

 

현대적 파시즘

 

이런 주체성의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되고 촉발된 대중적 주체성을 일반적으로 '파시즘'으로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1930년대가 이에 해당)가 존재하고,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화로 인해 분명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행위(맹목적 대량 학살)는 테러가 아니다. 테러는 점령군 나치와 페탱주의 공범자들에게 항거한 레지스탕스가 조직했고, 더 나아가 명예로운 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이 차르를 죽이기 위해 꾸몄던 것이다. 실제로 11월 13일의 학살은 액면 그대로 보면 조직적, 군사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유혈극, 그러나 비열한 유혈극이다. 이는 젊은 파시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산정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를 넘어서는 주체성 창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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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해부도감 - 인간과 자연이 빚어낸 결실의 공간, 농장의 모든 지식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담다 해부도감 시리즈
줄리아 로스먼 글.그림,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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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작업하는 동안 자급하는 삶에 대해 많은 걸 배웠으며 남편 매트가 성장한 삶의 뿌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성장 배경이 된 삶의 가치 와 전통을 미약하나마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다. 매트는 우리가 다시 그곳 농장으로 돌아간다면 농부들이 써레질에 사용하는 스프링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이웃집에서 기르는 닭이 어떤 품종인지도 알아맞힐 수 있다며 끈질기게 졸라댄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머리말' 중에서

 

 

어린 시절 남편이 살았던 농장을 해부하다

 

책의 저자 줄리아 로스먼과학과 역사, 도시와 자연 등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감각적이고 따뜻한 작품세계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미국 주요언론과 출판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기 아티스트이다. 뉴욕 태생으로 지금까지도 고층빌딩으로 가득찬 브루클린에 살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주위의 항상 볼 수 있는 자연과 일상적인 존재를 향해 있다.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그것들이 지닌 매력과 활기를 생생하게 담는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자연해부도감>, <음식해부도감>, <아티스트의 스케치북>, <헬로 뉴욕> 등이 있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 블로그 '북 바이 잇츠 커버'를 운영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책과 일러스트를 소개하고 있다. 비록 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녀의 자연을 탐험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총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뼛속까지 뉴요커인 그녀가 어느 성탄절 날 남편 매트가 자랐던 시골 농장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자연의 보물을 얻고 살아가는

 

 

 

 

 

 

 

 

 

 

  

 

염소 우리

 

얼마 전에 끝난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염소의 저주'에서 풀려난 시카고 컵스가 무려 10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45년 시카고 컵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월드시리즈 4차전을 홈구장인 리글리필드에서 치를 때 홈 팬인 빌리 사이아니스라는 사람이 애완 염소를 데리고 구장에 입장했다가 구장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관람객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염소 냄새 때문이었다. 이에 염소 입장권까지 매입해서 입장했던 팬은 저주를 퍼부었다. 결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장장 10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던 유명한 저주가 바로 그것이다.  

 

염소에게는 비바람과 눈을 피할 곳이 필요하다. 아늑한 우리가 있으면 혹독한 추위에도 녀석들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를 대비해 통풍이 잘 되고 그늘이 있어야 한다. 건초는 훌륭한 깔짚의 역할을 한다. 위쪽의 깔짚은 며칠마다 교환해주어야 하며, 봄가을에는 아래쪽의 오래된 깔짚을 말끔히 걷어내고 건초를 새로 깔아준다. 염소는 기어오르기 선수인 데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울타리를 단단히 쳐둘 필요가 있다. 경험이 많은 염소지기의 말을 빌리면, 물을 가둬 놓을 수 없는 울타리로는 염소도 가둬놓을 수 없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래된 케이블 릴이나 트랙터 타이어는 염소들에게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된다.

 

염소 우리는 대개 본실과 별실로 구분된다. 별실은 분만실로 이용되거나 아픈 염소를 격리시키는 장소로 활용된다. 먹이는 호기심이 많은 염소가 올라가지 못하는 곳에 보관해야 안전하다. 여물통과 물통은 벽면의 다른 쪽에 자리를 잡는 겨우가 많다. 염소가 먹이를 엎지르거나 못 쓰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개폐장치를 갖추어둔다.

 

 1945년, 저지 당하는 애완 염소

 

 

 

명아줏과

 

논밭의 각종 작물을 살펴보면 비트와 시금치 등의 명아줏과, 아티초크, 상추 등의 국화과, 브로콜리, 방울다다기양배추, 양배추, 콜리플라워, 래디시, 루타바가 등의 십자화과, 오이, 호박 등의 박과, 콩, 완두 등의 콩과, 양파, 리크, 아스파라거스 등의 백합과, 옥수수 등의 볏과, 가지, 고추/피망, 감자, 토마토 등의 가짓과, 당근 등의 미나리과, 바질, 고수, 박하, 로즈마리 등의 허브, 보리, 조, 기장, 메밀, 귀리, 밀, 호밀 등의 곡류, 사과 등의 과일 등이 있다.

 

힘쎈 뽀빠이로 상징되는 시금치에는 사보이, 세미 사보이, 플랫리프 등의 다양한 품종이 있는데, 사보이는 주름이 많고 잎이 말려 있으며 짙은 초록색을 띄고, 세미 사보이는 사보이보다 잎이 덜 말려 있어서 씻기가 쉽다. 플랫리프는 잎이 매끄럽고 반듯한 시금치로 수프, 이유식, 통조림, 냉동용으로 이용되며 맛은 사보이보다 약간 부드럽다. 시금치의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다.

 
항산화제가 풍부하고 철분도 많다. 
추위에 강해 월동이 가능하다. 
생장속도가 빨라 40∼45일 만에 수확이 가능하다.

 

 

 

지하저장고

 

지하 저장고는 야채, 과일, 다양한 저장식품을 장기 보관하는 데 이용된다. 비트, 순무, 양파, 감자, 당근, 겨울호박, 사과 등은 적절한 조건만 갖추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작물을 짚이나 젖은 모래 속에 층층이 쌓을 수도 있고 신문지로 둘러쌀 수도 있으며 그물망에 넣어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놓을 수도 있다. 지하 저장고는 대개 시원한 지하실이나 언덕의 비탈진 곳에 땅을 파고 만든다.

 

햇빛을 피하려면 저장고는 언덕의 북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서늘한 온도(섭씨 0∼5도)와 높은 습도가 유지되어야 식품이 여름에 상하거나 겨울에 얼어붙는 걸 막을 수 있다. 환기구는 따뜻한 공기가 배출되게 해주고 흙바닥은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시금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줌으로써 우리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도시인들을 위한 시골 생활 안내서

 

상세한 그림과 함께 시골 생활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유익한 백서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이만한 교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물론 시골 농장의 규모가 땅이 넓은 미국이라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 근본은 크게 차이가 없다. 미처 사진으로 볼 수 없었던 시골 농장의 모습이 정겨운 그림과 함께 우리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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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래가는가 -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
문성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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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직장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워크, 네트워크, 팔로워십 등을 꼽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결국 핵심은 하나예요. 보스에게 잘해서 성과를 내라는 겁니다. 보스에게 충성해서 결국에는 보스 자리로 올라가라는 거예요. 너무 노골적이어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보스와의 관계 맺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회사 생활의 8할은 보스에게 달렸다

 

저자 문성후는 상위 1% 스펙과 다양한 전문직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직장 생활에서 통하는 전략은 스펙 쌓기가 아니라 회사와 상사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보스 전략'임을 강조하며, 회사 안 위아래 세대 차이를 허무는 소통의 아이콘으로 나섰다. 금융감독원의 사원으로 시작해 두산그룹, 포스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 직장 생활 14년 만에 이사대우에 오르며 고속 승진했다. 이후 7년 동안 세아그룹 등 굵직한 기업들을 돌며 임원 커리어를 쌓

 

 

직장인에게 보스는 성과를 결정하는 '밥줄'이자 성장을 도와주는 '탯줄', 수명을 연장하는 '동아줄'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3줄'인 보스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손자병법>처럼 정리된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갈수록 상사와 후배들과의 격차는 벌어지는데 어느 누구도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이에 책의 저자는 지난 22년간의 직장 경험을 토대로 회사 내에서 고성과자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부하직원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상사들을 위한 깨알 팁도 덤으로 책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다.

 

 

 

진짜 보스는 누구?

 

'보스'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직속 상사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보스와 직속 상사가 항상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모셔야 할 진짜 보스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막 떠올린 사람이 진짜 보스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만 따져보면 된다.

 

첫째, 나의 성과를 공유하는 사람인가?

둘째, 나를 직간접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인가?

셋째, 나에게 힘이 되고 나를 키워주는 사람인가?


꿈을 이루는 꿈터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이 투덜이 스머프로 살고 있다. 겉보기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냉소주의와 패배주의가 물씬 풍기는 경우를 왕왕 접하게 된다.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비하하면서 월급이 고작 300만원'밖에' 안 된다고 속상해하고,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일과 월수입에 대해 무척 저평가한다.

 

직장을 생계 수단으로만 보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 불만이 쌓일 밖에요. 그런데 회사를 돈을 버는 '일터'가 아니라 꿈을 이루는 '꿈터'라고 생각하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회사가 원하는 일이고, 스스로 잘하는 일이 회사의 실적으로 이어지고, 스스로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 된다. 이렇게 직장과 궁합이 잘 맞을수록 성과도 무한대로 늘어나는 법이다.

 

 

부하들이 공감하는 상사들의 공통점

 

소심하고 쫀쫀하다

변덕이 심하다

포커페이스를 싫어한다

디테일에 강하다

다른 면을 본다

성격이 급하다

눈치가 빠르다

체력이 좋다

흠이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도 있다

주관이 뚜렷하지만, 자신을 낮출 줄도 안다

 

 

어떻게 배드 보스를 대처할까?

 

직장인들을 상담하다 보면 꼭 빠지지 않는 스트레스 주범이 있다. 바로 '배드 보스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피해를 준다. 그 팀장 역시 온갖 공은 자기가 다 차지하고 모든 책임은 팀원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나쁜 상사였다. 얼마 전에도 P 대리가 한 달 내내 공들여 만든 기획안에 자기 이름만 올려서 보고를 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 일단 '극복'이라는 옵션은 치워야 한다. '정신적으로 이겨내자' 혹은 '맞서자'는 전략은 현실성이 없다. 남을 이용해먹는 데 능한 배드 보스들은 공통적으로 '실무 능력'은 부족하지만 '착취 능력'은 탁월하다. 자리 보존과 성공에 대한 탐욕이 키워낸 능력이지요. 그 능력을 '극복'이라는 방법으로 당해낼 수는 없다.

배드 보스라는 이유 때문에 호기롭게 죽자고 덤빌 경우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분노와 정의감으로 한번 해보자고 섣불리 덤비면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대신에 훗날을 기약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 조만간 자기자신을 키워줄 사람에게 둥지를 틀 날이 올 것이다.

 

배드 보스에겐 착취 매뉴얼이 있다. 회사에서 저성과자가 된다는 건 그만큼의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말 악질적인 배드 보스를 만났을 때, 헤어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때 써야 하는 마지막 방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호감과 신뢰, 동의어가 아니다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데다 끼도 많은 K 대리는 그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한마디로 '밤의 황제'라 불린 사나이였다. 그런 그를 P 팀장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술자리에서 끝까지 옆에 두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P 팀장이,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부서로 K 대리를 보내버렸다. K 대리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다.

 

"맨날 '너밖에 없다'고 하더니

사지로 보낼 때도 '너밖에 없다'고 하는 이 인간, 절대 용서 못 합니다!"

 

퀭한 눈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그는 한눈에 봐도 중증 환자였다. 직속 상사를 너무 믿었던 게 죄라면 죄일까요.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제가 꼭 묻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좋아했을까요, 믿었을까요?" 대부분 "둘 다"라고 답한다. 연인 관계라면 두 사람의 뜨거운 호감은 곧 신뢰로 이어진다. 하지만 성과가 중심ㅁ이 되는 인간관계에선 호감과 신뢰가 동의어가 아닌 케이스가 많다.

 

 

보스에게 빙의하라

 

보스의 셈법대로 일하는 사람들은 출발부터 다르다. 자기 논리가 아니라 보스의 논리,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보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중심에 놓고 보고서를 설계합니다. 보스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실행하길 원할까, 마치 빙의하듯 보스의 생각과 기준과 취향 등을 고려해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감이 안 오면 윗사람에게 물어서 답을 찾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얼기설기 스케치라도 그려서 윗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받습니다. 그 결과, 보스가 원하는 방향과 납기일 등을 정확히 파악해서 보스 마음에 쏙 드는 설계도를 만들어냅니다. 이게 바로 보스의 셈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보고서 작성법이다.

 

 

귀하의 꿈은 무엇인가요?

 

입사 면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들이 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꼭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은 뭐죠?" 말은 달라도 같은 질문이다. 꿈이 뭐냐는 것이다. 입사 후에도 잊을 만하면 꿈 질문이 튀어나온다. 윗분들이 후배들에게 즐겨 묻는다요. "자네는 꿈이 뭔가?"라고. 윗분은 꿈이 뭐냐고 왜 묻는 걸까? 확인하고 싶은 거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인지 아닌지, 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 먹고살려고 회사에 나오는 건지 아니면 면접 때 했던 말처럼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출근하는 건지, 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은 거다.

어느 날 한 후배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회사 사장이 될 겁니다" 그다음부턴 그 후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일을 열심히 해도 사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령 사장이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실력이 부족해 일부러 해외 출장을 자주 보냈다. 저도 모르게 그 친구의 꿈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자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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