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영업맨 꼴등 영업맨 뭐가 다를까 3
기쿠하라 도모아키 지음, 정지영 옮김, 정원옥 감수 / 스타리치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일등 영업맨과 꼴등 영업맨의 차이는 무엇일까? 타고난 인간적인 매력일까?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혹은 풍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점들도 극히 일부분 포함되지만 전부 정답은 아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딱 잘라 말하자면, 바로 습관의 차이다. - '머리말' 중에서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책의 저자 기쿠하라 도모아키는 영업서포트컨설팅(주) 대표이사이자 (주)영업인재교육협회 이사이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도요타홈에 입사하며 영업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영업 방법을 찾지 못하고 7년이라는 재직 기간 동안 해고당할 위기를 겪으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는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방문에서 영업 레터로 바꾼 것을 계기로 4년 연속 우수 영업 사원 자리를 차지했으며, 약 600여 명의 영업 사원 중에서 MVP를 획득했다.


2006년에 독립하여 영업서포트컨설팅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현재 경영자와 영업 사원을 대상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경기관총의 일제 사격으로 그들은 우리의 퍼즐을 엉망으로 흩어놓았다. 우리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추게 될 때, 완성된 퍼즐은 예전과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퍼즐 속 그림엔 분명 빠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둘만 남아 있을 테지만, 우리는 빠진 사람의 빈자리마저 모두 채울 것이다. 엘렌은 그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눈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며, 우리 두 사람의 기쁨 속에서 그녀의 불꽃이 타오를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혈관을 타고 그녀의 눈물이 흐를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 '2015년 11월 16일의 기록' 중에서

 

 

테러로 아내를 잃은 저널리스트의 공개서한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로 아내를 잃은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이리스는 사흘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IS에게 공개서한을 띄웠다. 이를 접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와 위로,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의 글을 "용감하고 감흥을 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이고 지성적이며 감각적"이라고 평했다.

 
이 책은 절망뿐인 상황, 상실의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저자는 분노와 증오의 원천에 저항할 때 그것에 휩쓸리거나 잠식당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답게 맞서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만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은 흉포와 야만,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이 시대에 숭고한 빛이 되어 우리 앞의 어두운 길을 환하게 비춘다.

 

앙투안 레이리스는 <프랑스 앵포>, <프랑스 블뢰>에서 문화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2015년 11월 13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파리 테러 당시 바타클랑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간 아내 엘렌 뮈얄 레이리스를 잃었다. 태어난 지 겨우 17개월 된 아들 멜빌과 단둘이 남겨진 그는 상실감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펜을 들었다.

 

칼보다 강한 펜이라는 무기를 들고서 아내를 살해한 테러범들에게 "당신들은 나의

 

 

 

 

 

 

 

2015년 11월 13일 저녁, 프랑스 파리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진 굉음과 총성은 빛의 도시 파리를 피로 물든 암흑의 도시로 바꿔놓았다. 이날 IS가 일으킨 파리 테러로 무고한 시민 131명이 숨졌고,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 후 수개월간 세계는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Pray for Paris)'라는 문구로 파리와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2015년 11월 13일, 밤 10시 37분

 

"당신은 안전한 거죠?", 독서 중이던 저자는 휴대폰 메시지를 보자 무슨 일이라도 발생했는가 싶어 잠든 아기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걸어서 거실로 나가 TV 리모컨을 켰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의 영상이 잡힌다. 외출 중인 아내에게 택시를 타고 빨리 귀가하라고 연락해야겠다고 맘 먹는 순간, 화면 하단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던 글씨들이 갑자기 멈춘다.

 

"바타클랑에서 테러"

 

아내 엘렌은 현재 콘서트를 보려고 이 현장에 있다. 갑자기 온몸에 전기가 관통하는 듯한 찌릿함을 느낀다. 빨리 뛰쳐나고 싶지만 간난쟁이 멜빌이 곁에 있기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역시 아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전화 걸기를 백 번, 천 번, 만 번.

 

장모가 집에 도착했다. 이제 그는 행동에 나서야만 했다. 남동생과 함께 차를 몰아 사고 현장 인근의 병원으로 내달렸다. 아내의 이름은 부상자 명단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인근 병원을 계속 뒤진다. 밤은 계속 깊어만 간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지만 그는 그 일을 계속했다. 아침 7시, 30분 후에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야 한다.

 

 

2015년 11월 16일, 오전 9시 30분


멜빌은 어린이집에 있다. 오늘, 파리 15구의 한 담배 가게 겸 카페에서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에 사람들은 꿈이 산산조각 나버린 자들의 우중충한 낯빛을 하고 있다. 대화거리를 찾고 있는 카페 손님 모두의 눈이 쏠린 BFM TV 화면에서는 같은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돌아간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사람들은 모두 금요일에 관해서만 떠들어댄다.

 


"진한 커피 한 잔!"


아침에 저자는 법의학 연구소로 엘렌을 보러 가야 한다. 옆자리에서는 마흔다섯에서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서 지쳐버린 눈길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카페에서 남들의 대화를 듣지 않을 수 없다. 평소 같았으면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삶의 한 조각 속에 은근슬쩍 껴들어가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했을 테지만. 그런데 오늘은 내 삶이 조각나버렸다.


바싹 마른 엘렌의 몸에서 시체의 냉기만이 뿜어져 나올지라도, 그녀와의 입맞춤에서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은 피비린내가 느껴질지라도, 그녀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에서 진혼곡의 얼음장같이 섬뜩한 아름다움만 흘러나올지라도,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추어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야 한다.


물론 죄를 지은 자, 자신의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눈앞에 빤히 두고 있다는 건 말하자면 반쯤 열린 출구, 자신의 고통을 용케 피해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범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범인의 존재는 이상적인 분노 배출구가 되어줄 것이고, 증오 또한 정당화될 것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자들에 대해 생각하면 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을 증오하면 되며,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소 짓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의 죽음에 기뻐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2015년 11월 16일, 오전 10시

 

"준비되시면 말씀해주실래요?"


엘렌이 있다. 저자는 그녀를 향해 다가가다가 몸을 돌려 분명 방 안에 우리 두 사람뿐임을 확인한다. 이 순간은 우리의 것이다. 유리벽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온 체중을 실어 그 벽에 바짝 붙는다. 우리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엘렌은 달이었다. 우윳빛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칼, 약간 겁에 질린 듯한 올빼미 눈, 온 세상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미소. 그는 결혼하던 날 그녀가 지었던 그 미소를 다시 본다.


엘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그는 운다. 그러면서 한 시간, 아니 최소한 하루, 어쩌면 한평생 당신 곁에 머물러 있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를 떠나야 한다. 월요일이 저물어야 하니까. 오늘, 11월 16일에 태양은 이제 우리의 새로운 "옛날 옛적에... ..." 위로 떠오른다. 두 사람이 충성을 맹세했던 아름다운 달님의 도움 없이 홀로 커가는 아비와 아들의 이야기. "선생님, 이제 그만 나가셔야 합니다."

 

 

2015년 11월 20일, 오전 10시 10분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혀 잘 지내지 못하며, 그래서 평소처럼 날씨나 전날 본 TV 프로그램, 사무실에 떠도는 뒷담화 같은 주제로 넘어가지 못한다. 요즘엔 그에게 "잘 지내... ...?"라고 물을 때 예전보다 훨씬 느린 말투에, 특히 '잘'이라는 음절을 말할 때면 약간 질질 끄는 듯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런 다음엔 어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사탕을 꺼내기 위해서 병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그에게 깊숙이 들어오려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그에게는 슬픔이 분홍색 사탕인 셈이다.

 

"너한테 일어난 일은 정말로 유감이야. 용기를 내...... ."

그는 아직 이 말을 하는 상대에게 해줄 피상적인 응답을 찾지 못했다. "다음에 보자"는 약속처럼 들리고, "몸 잘 챙겨"는 초대의 말 같은 반면, "용기를 내"는 최종 판결처럼 들린다. 그 말은 짧은 대화를 통해서나마 그에게서 덜어내 주려는 슬픔을 고스란히 다시 안겨준다. 

 

 

2015년 11월 22일, 오전 9시

 

우편물들을 거실 탁자 위에 흩어놓는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색상의 봉투 하나가 눈길을 끈다. 빛바랜 흰색 봉투. 지나간 시대에서 온 편지. 게다가 상단에 주소와 이름까지 인쇄된 편지지. 편지를 보낸 남자의 이름은 필리프. 나는 아코디언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을 떠올려보며 그의 말 속으로 빠져든다. 자신이 썼던 편지글에 대한 답장이다. 아름다운 글. 빛바랜 봉투 속에 몸을 웅크리니 온몸이 따뜻해진다. 편지지 아래쪽엔, 마치 서명처럼, 이렇게 적혀 있다.

 

"변을 당한 건 당신인데, 그런 당신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군요!"


우리는 늘 가장 참혹한 것에서 살아남은 자를 영웅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운명이 칼을 뽑았고, 그래서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운명은 누구에게도 의견 따위는 묻지 않았다. 운명은 그저 엘렌을 데려갔고, 그는 그녀 없이 혼자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이 편지를 쓴 필리프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가 작성한 편지는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고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 편지에 적힌 말들이 물론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말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의 전부인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2015년 11월 24일, 밤 10시

 

그는 편지를 쓴 다음 날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바로 그날 저녁부터였을 수도 있다. 멜빌이 어린이집에 있을 때마다 그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들을 컴퓨터에 쏟아냈다.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놓는 위층 이웃처럼. 그는 그 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을 닫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컴퓨터 자판으로 그것들을 두드렸다. 그 말들이 서로 싸우기를 멈추고, 마침내 잠들기 바라면서.


말들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그는 그것들을 마치 몸 안의 이물질처럼 바라보았고,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읽고,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다시 읽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말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 말들을 바라보면서 가끔 큰 소리로 그것들을 불러보려 한다.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그에게 속하지 않는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당신들이 얻은 그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천국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과 나, 우리는 이제 둘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군대보다도 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과학 천재들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 한국의 천재들 시리즈
이종호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조선 시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 5명만 꼽으라면 상당히 고민에 빠질 것이다. 만약 10명만 꼽으라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선현들이 과학과 동떨어져 살았다고 생각하므로 선현들 중에 정말로 과학자가 있었느냐고 오히려 반문할 수도 있다. 한국인 중에서 선두 과학자, 즉 과학 분야의 천재를 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머리말' 중에서

 

 

8인의 위대한 한국 과학자들

 

한국의 과학자들의 면모를 알려주는 자료가 있는데 바로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로 2016년 현재까지 모두 31명의 과학 천재들이 헌정되어 있다.

 
최무선(崔茂宣), 이천(李 ), 장영실(蔣英實), 세종대왕(世宗), 이순지(李純之), 허준(許浚), 최석정(崔錫鼎), 홍대용(洪大容), 서호수(徐浩修), 정약전(丁若銓), 김정호(金正浩), 김점동(金點童), 이원철(李源喆), 윤일선(尹日善), 우장춘(禹長春), 조백현(趙伯顯), 이태규(李泰圭), 안동혁(安東赫), 김동일(金東一), 석주명(石宙明), 장기려(張起呂), 현신규(玄信圭), 최형섭(崔亨燮), 김순경(金舜敬), 김재근(金在瑾), 한만춘(韓萬春), 이임학(李林學), 조순탁(趙淳卓), 허문회(許文會), 이호왕(李鎬汪), 이휘소(李輝昭)

 

이곳에 헌정될 수 있는 기본 자격은 우선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우리나라 과학기술 선현 또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과학기술인으로 한정된다. 또한, 탁월한 과학기술 업적으로 국가 발전 및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사람들로 모든 과학기술인들의 귀감이 되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을 선정할 때 고려되는 업적 기준도 구체적이다. 우선 과학기술 분야로 한정하되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이룩한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거나 국제적으로 공인되어야 한다. 더불어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기본 자격과 업적 기준을 통과하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들이 상당한 과학적 업적을 쌓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천재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 자체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으로 수많은 과학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이론을 만들거나 입증하여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란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던 조선시대의 인물임에도 과학자들로 분류하여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한 것은 이들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남다른 것을 추구했다는 뜻이다.

 

 


이 책의 기본은 현재까지 수많은 과학자가 명멸하였지만 그중에서도 남다른 재주를 가진 천재들의 일생을 찾아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보다도 다른 능력을 갖춘 과학자들을 의미하는데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는 사람 중에서 20세기를 살았던 사람 중에서 과학의 각 분야로 구분하여 선정했다.

 

이원철(李源喆, 1896~1963) - 천문학
우장춘(禹長春, 1898~1959) - 농학
이태규(李泰圭, 1902~1992) - 화학
리승기(李升基, 1905~1996) - 화학
이임학(李林學, 1922~2005) - 수학
조순탁(趙淳卓, 1925~1996) - 이론물리학
이호왕(李鎬汪, 1928~) - 의학
이휘소(李輝昭, 1935~1977) - 이론물리학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이미 여러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았지만 후보자로 거론되거나 충분한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이 있다. 바로 우장춘禹長春, 이태규李泰圭, 이호왕李鎬汪, 이휘소李輝昭 박사가 그들인데 이들 중에서 이호왕 박사는 아직도 생존해 있다.

 
반면에 리승기李升基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에서 연구한 후 북한에서 서구의 노벨상에 버금가는 공산권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을 수상함으로써 노벨상 반열에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잊혀진 인물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지 않다. 나일론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합성섬유인 비닐론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학자로 우뚝 솟았지만 한국에서는 거론되지 않는 비운의 학자이다. 그러나 마땅히 이곳에 포함되어야 과학자임에 틀림없다. 

 

 

이휘소 박사(1935~1977년)

 

한국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는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부서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의 예견은 소립자 물리학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공헌을 했다. 사실 이 연구 업적을 토대로 나중에 7명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 아쉽다. 왜냐하면 40세 초반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운의 아이콘인 셈이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자동차 사고로 위장되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는 한국 내의 핵폭탄 제조와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 간의 정치 역학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는 의문이 지금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던 과학자였지만 사망한 사람에겐 수여하지 않는다는 노벨상의 규정으로 인해 한국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연구에 몰드하느라 팬티가 썩은 줄도 몰랐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리승기 박사(1905~1996년)

 

전라남도 담양 출신인 그는 세계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에 이어 합성섬유로는 두 번째로 비닐론을 실용화했다. 서울에서 4년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닌 후 일본의 마츠야마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현, 교토대학) 공업화학과에 입학했다. 1931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지도 교수가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의 연구원으로 추천했다. 이곳에서 일본 특허를 취득하는 등의 성과를 올린 후 교토제국대학 부설 일본 화학섬유연구소가 설립되자 읿본 섬유의 권위자인 사쿠라다 이치로 교수의 연구 강사로 임용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합성섬유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에는 이태규 화학박사가 화학과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937년 교토제국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이를 감안할 때 리승기와 이태규는 여러 해 동안 교토제국대학에서 친교를 맺었다. 당시 일본은 세계적인 비단과 면직물 수출국이었는데, 미국의 듀퐁사가 1935년 나일론의 합성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의 나일론은 폴리아미드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인데 반해 일본의 비날론은 폴리비닐알코올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이다. 폴리아미드 계열의 화합물은 원유를 원료로 합성하므로 석유가 나지 않는 일본에서 산업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비닐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39년 10월, 교토제국대학 연구팀인 리승기는 두 명의 일본인과 함께 '합성 1호' 또는 '폴리비닐 알코올계의 합성섬유'를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본격적인 합성섬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후일 북한에서 대량 생산되는 비날론의 전신이 된다. 그의 연구가 공업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긴 했지만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앗다. 우선 합성섬유 1호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쉽게 수축되었고, 이를 개선하려고 열처리를 하는 경우 착색이 되는 문제점이 잇엇다. 그는 제조 공정 중에 포르말린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넣는 방법을 고안, 1942년 무렵 거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패망하는 일본에 군수용품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1944년 말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오사카 군 형무소에 투옥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그는 1945년 11월 대학에서 함께 연구하던 동료 및 학생들과 함께 귀국, 경성대학 교수에 취임해 자신의 전공을 강의했다. 공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하고 말았다. 당시로는 북한의 연구 여건이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에서 비날론 공장 준공과 함께 그는 '노력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1962년 공산주의권에서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레닌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1960년 이후 1990년까지 과학계 대표로서 최고인민회의 대위원도 역임했으며, 탈북 망명자의 증언에 따르면 1967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고 알려졌다. 1996년 2월,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스위치
니시지마 도모히로 지음, 권혜미 옮김 / 밀라그로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를테면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친구가 상담을 할때 '마음속에 있는 진심을 전해라'는 조언보다 '여자가 좋아하는 3가지 말을 해라'고 조언하는 편이 훨씬 실천적이다. 이 책은 내가 만든 '11가지 사고 공식'을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궁극의 사고 책이다. 우리가 품고 있는 '주제;를 '11가지 사고 공식'에 적용시키는 것일 뿐, 기술도 훈련도 필요 없는 사고의 기술이다. - '시작하며' 중에서

 

 

'11가지 사고 공식'을 배운다

 

책의 저자 니시지마 도모히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마치카도 크리에이티브 편집장이다. 그는 TV 드라마 주인공인 가면라이더가 되는 것이 어릴 적의 꿈이었다. 대학 졸업 후 광고업계로 뛰어들어 거기서 우연히 가면라이더의 다음 꿈을 만났다. 즉 광고 일을 하던 중

 

 

 

우리들은 대체로 사고력사고력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좋은 아이디어도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저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2003년에 광고 회사에 신입 상원으로 입사한 후, 4년 만에 독립해 창업했고 이후 9년 총 13년 간을 광고 크리에에티브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러는 동안 그는 도전과 실패의 반복을 통해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11가지 사고 공식'이다.

 

 

상식~> 비상식의 기술

반의어 붙이기 기술

부속품 붙이기 기술

한정의 기술

순소서 바꾸기 기술

역지사지의 기술

뚜렷한 동기 기술

세계기록 기술

키워드 접목 기술

유명 문구 이용 기술

4대 욕구 채우기 기술

 

 

 

역지사지의 기술 -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주제'에 접근해라

우리에게 아버지란 어떠한 존재인가?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 같은 존재."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나 이외의 다른 가족에게 아버지는 어떠한 존재일까?



어머니에게는- '첫사랑'

            누나에게는- '갖고 싶은 걸 다 사주는 사람'

애완견에게는-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

 

이처럼 아버지라는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방식은 전부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이용한 것이 '11가지 사고 공식' 중 6번째 공식인 '역지사지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 후에 다양한 시점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방법은 이러하다.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다→ '주제'에 접목시킨다.

 

처음에는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직장 동료로 빙의하는 편이 좋다. 이 사람에게 ‘주제’를 건네면 어떻게 말할지, 어떻게 생각할지 예상해 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주제가 '은퇴하는 부장을 위한 송별회 아이디어'일 경우 타인에게 빙의되지 않고 생각하면 아래와 같은 대답이 나온다.

 


다 같이 술을 마신다
추억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서 메시지를 보낸다
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전부 숙연해지는 아이디어뿐이다. 송별회는 '헤어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지사지의 기술’을 사용해서 부장에게 빙의한 후에 사고하면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은퇴 후에도 부장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선물하는 송별회'

 

퇴직한 부장이 '회사 사람들과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성대한 송별회를 열 정도로 인망이 두터운 부장이라면 분명히 '여러분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장과의 관계 시즌2'라는 형식으로 '퇴직 후에도 부장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네는 송별회를 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장에게 있어서도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훨씬 기쁘고 '서프라이즈'가 있는 송별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역지사지의 기술'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빙의하고 사고하면서 '놀라움'이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사고가 익숙해지면 빙의하는 대상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연예인, 외국인, 가공의 인물, 우주인, 물건 등 조금씩 자신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보다 '놀라움'이 있는 아이디어가 태어난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동창
좋아하는 연예인
할리우드 여배우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주인공
유명인사
우주인
휴대전화

 

 

 

11가지 사고 공식, 우리들의 인생을 바꿔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11가지 사고 공식'은 자신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보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비록 사소한 공식일지라도 우리의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1가지 사고 공식'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묘로 떠나는 힐링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1
이향우 글.그림, 황은열 사진 / 인문산책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묘는 조선시대에 조상신께 제례를 올리고 나라의 안위를 부탁했던 조선왕조의 국가 사당입니다. 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조상에 대한 효는 곧 국가의 사상적 이념을 대표햇던 근간이 되었습니다. 종묘는 바로 이 효를 실천하고 백성에서 본을 보였던 국가 사당입니다. 제가 처음 종묘를 보았을 때의 낌은 한 마디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엄함이 오래 전 보았던 종묘의 강렬한 인상이었습니다. 자, 여러분을 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종묘로 초대합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종묘宗廟

 

저자 이향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으며, 세 번의 개인전과 수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23년 동안 교직에 재직했고, 2000년부터 시민 NGO 단체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소속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면서 문화재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한국의 전통 궁궐문화에 대한 강의와 원고를 집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

 

 

 

 

 

 

 

 

 

조선왕조의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그 제례적 신성성과 함께 종묘 건축이 갖는 단아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광해군 원년(1608년)에 이전의 규모로 중건되었고, 그 후 다시 몇 번의 증축 및 보수補修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묘는 처음 지어졌던 구조에서 점점 더 길어졌고, 사당으로서의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특별한 위계를 지니게 되었다. 

조선의 왕이 가장 중요하게 떠받든 것은 바로 종묘사직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정이 모든 것을 버리고 황급히 피난길에 올랐으나, 그 황망 중에도 종묘와 사직의 신주만은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이는 종묘사직이 보존되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종묘사직은 국가의 존립 그 자체였다.

 

 

 

 

국상國喪

 

종묘 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왕의 죽음으로부터 접근해야 한다. 왕의 죽음을 국상國喪이라고 말한다. 조선에선 유교식으로 상장례喪葬禮가 엄격하게 치러졌다. 이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되어 있다. 상례는 3년의 복상 기간 중 행하는 모든 의례를, 장례는 시신을 땅에 묻어 무덤을 조성하는 일체의 의례를 일컫는다.

 

유교의 사생관死生觀에서 사람의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혼魂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제례를 통해 효孝를 표현했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삼년상을 지나 종묘에 부묘되기까지를 흉례凶禮로 보고, 그 이후 제사의식은 조상을 다시 만난다는 의미의 길례吉禮로 여겼다.

 

 

 

예를 소중하게 여기다

<국조오례의>에 규정하기를 조선시대 예제禮制의 대상에는 오례(五禮 -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가 있었고, 제사 의례인 길례吉禮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뉜다. 종묘대제는 사직대제와 함께 대사大祀에 속하여 임금이 친히 받들었던 가장 격식이 높은 의례였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왕실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로, 종묘대제宗廟大祭 또는 대향大享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왕실의 후손으로서 왕이 친히 제향을 봉행하여 조상에 대한 효를 행하고 국가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조선왕조의 가장 큰 국가 의례로 임금을 비롯한 왕세자, 제관祭官, 문무백관, 악공, 일무원 등 7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이 있는 공신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종묘에서 제향을 올리는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이 유교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의례 형식으로 보여준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를 진행하는 동안 제사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기악과 노래 그리고 춤이 펼쳐지는데, 이를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고 한다. 종묘제례악은 세종 때 완성되었으며, 그 후 약간의 추가가 이루어졌을 뿐 큰 변화가 없다. 거의 500년 전의 기악과 노래와 춤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렇듯 오래된 제례와 음악이 함께 전해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로,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선정되었다.

 

공자가 일찌기 예의 완성은 악樂이라고 말했듯이, 종묘제례는 종묘제례악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 그리고 일무원들이 추는 무용 등 이 세 가지가 종묘제례악을 구성하고 있다. 엄숙한 제례 절차에 따라 연주되는 경건하고 장엄한 곳이므로 그 음악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세종대에 정비, 세조 때 다시 다듬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