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은 배반하지 않는다 - 영업이 탄탄한 회사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임진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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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대다. 누구도 저성장 시대를 피해갈 수는 없다. 저성장 시대는 무한경쟁이라는 화두를 만들어냈다. 저성장 시대와 무한경쟁 체제에서의 생존은 곧 시장에서 이기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영업이야말로 현시대의 필수인 동시에 기업 내 모든 부서, 모든 직급이 알고 행해야 하는 길이다. 기업은 체계적, 과학적으로 영업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고민과 투자를 늘려야 하고, 영업인은 어떻게 하면 영업을 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고 실행해야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기는 영업을 위해 필요한 역량들 

 

저자 임진환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우연히 접한 <IBM Way>라는 책에 끌려 영업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25년 동안 IBM, 삼성전자, HP, 한화그룹의 영업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대형 계약 수주, 체계적인 고객 관리, 창조적인 영업 전략 등에서 발군의 영업 능력을 수행해왔고, 특히 30대에 IBM의 임원으로 발탁되면서 영업직원

 

 

 

 

 

 

 

 

 

 

하지만 무조건이라는 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도正道를 어기면서까지 목표를 달성하려 들면 안 된다. 이겨도 옳은 방법으로 이겨야 한다. 비록 승리할지라도 야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면 고객과의 신뢰가 깨지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법적인 문제까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도를 걷지 않으면 아무리 실적이 훌륭하고 큰 계약을 따낼지라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영업의 가장 핵심인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평판과 나아가 기업의 존폐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옳은 방법으로 이겨야 한다. 향후에 발생될 불씨를 안고서 편법으로 성취해선 안 된다. 이는 결단코 소탐대실이다.

 

 

야생野生의 본능을 키워라

 

아프리카 세랭게티 초원을 누비는 사자는 그 많은 초식동물들 중 어떤 녀석을 쫓아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무턱대고 사냥감의 뒤를 쫓다가는 헛수고를 할 수가 있음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 목표물을 선정한 후 한참을 노려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능력치 이상으로 전력투구해 사냥감을 포획한다.

 

마찬가지다. 돈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영업의 맥을 짚는 능력은 야생 포식자의 본능과 같다. 영업직원이라면 이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많은 기회 중에 어느 것을 붙잡아야 할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일단 영업기회를 정하면 그대로 매진해 결과를 얻어내는 추진력과 실행력을 계발해야 한다.

 

저자는 고객의 복잡한 문제나 새로운 대규모 영업기회를 만나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성공하면 큰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물론 영업을 처음 시작한 시점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실패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힘들었지만 여러 차례의 성공을 거두고 고객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부터 밀려오는 기대감에 가슴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락부장보다는 책임지는 분단장이 되어라

 

저자는 그동안 많은 영업직원들을 보아왔다. 입사할 때 어떤 사원은 앞으로 영업을 잘하겠다고 발언하고, 또 사교적이라 야유회나 체육대회 때엔 앞장 서서 응원하며, 회식자리에선 노래를 잘 부르고 이어서 노래방에선 좌중의 분위기를 잘 휘어잡는다. 이런 모습에 반해 대부분 이 사원을 영업 쪽으로 키우면 잘할 것 같다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바로는 사원 시절에 이처럼 행동하는 직원은 영업이 아닌 다른 업무를 하면서 오락부장이 되어야 한다. 신입 시절에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자기를 좋아하거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밝고 사교적으로 행동한다. 즉, 동호회의 오락부장격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업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것이 아니다. 처음 본 고객 또는 협력회사와 신뢰관계를 시작해야 하고, 가깝지 않은 고객과 가까워져야 한다. 또 사교적인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교성을 활용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전략적이어야 하고 신뢰도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밝고 사교적인 면이 여기에 추가되면 된다.

 

 

회사도 영업직원을 도와야 한다

 

사실 영업직원들을 위한 동기부여와 사기진작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도 스스로 직접 계발하고 배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는 동기부여와 사기를 북돋운다. 따라서 일선 영업팀 내의 즐거움과 팀워크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팀은 이긴다.


영업직원은 업무시간 내내 생존을 위한 전투의 피로감에 지친다. 이런 피로감을 가진 조직이 활성화되려면 조직 내에 반드시 즐거움이란 묘약妙藥이 있어야 한다. 얼마 동안 열심히 일하면 휴가를 내고 쉬는 것이 당연하듯, 매일 벌어지는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영업직원에게는 전투 중간중간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이를 책임지는 것이 팀 내 일선 영업관리자의 덕목이어야 한다. 팀 내의 즐거움은 팀워크를 만들고 사기와 동기부여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이기는 문화를 만든다. 영업팀 내의 즐거움이 동기부여가 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다.

 

 

영업경로는 효율성에 기초해야 한다

 

"아니, 축산업체 사장한테 대형 컴퓨터를 팔게 해? 말도 안 돼! 컴퓨터는 IT전문가가 운영하는 IT업체가 맡아야지"


"아니야. 고객과 소통하는 모든 채널이 판매경로가 될 수 있어. 축산업자면 어떻고 농사꾼이면 어때? 고객과 연결할 수 있다면 모두 내 협력업체지!"

 
고객에게로 향하는 모든 영업경로를 장악하는 것은 영업직원의 중요한 역량이고 영업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다. 영업경로는 크게 직접영업과 간접영업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영업은 영업직원이 직접 영업기회를 발굴해 종결까지, 간접영업은 대리점이나 기타 간접경로를 통해 영업기회를 발굴하고 종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영업과 간접영업의 구분은 효율성에 기초를 둔다. 매출과 수익에 여유가 있는 경우엔 고비용 경로인 영업직원을 통해 직접 고객을 관리하고, 매출과 수익에 여유가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더 많은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대리점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경쟁 상황을 늘 파악하라

전투에는 반드시 적이 있다. 영업에서의 적은 경쟁사다. 적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경쟁사에 대한 정보를 상시 파악하지 못한다면,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은 시작도 할 수 없다. 경쟁대상이 없다면 시장에서 이기기도 쉽고 가격을 이용한 수익 확보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경쟁상황이 없기란 불가능하다. 잠시 경쟁이 없는 시기가 있더라도 곧 신규 참여자가 발생하므로 결국엔 경쟁이 벌어진다. 이것이 이기는 습관과 문화가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다.

 

영업직원은 마켓 센싱을 통해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시 파악해야 한다. 경쟁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사업의 판도가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 있다. 이를 알려면 시장에 나가야 한다. 콩나물값은 재래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확인해야 정확하다. 요즘은 인터넷과 모바일의 등장으로 콩나물값이 조작되기도 한다. 소위 미끼상품을 이용해 더 비싸고 수익성 있는 상품을 팔려고 고객을 끌어모으지만 이는 오래 못간다. 시장에는 복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업직원이라면 경쟁상황을 파악하고 반드시 시장에 나가 고객 접점시간을 늘려야 한다.

 

 

영업, 고객의 신뢰로부터 시작된다

 

"저한테 잘해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거의 20년이 넘도록 제가 하는 모든 영업을 도와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글쎄? 음, 당신은 믿을 만했으니까"


이는 저자가 2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고객과의 대화이다. 지금은 영업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 이제 저자는 학교에 있고 이 고객은 기업을 떠난 지가 5년이 넘었다. 현재는 가까운 선후배 관계로 자주 만난다. 영업은 고객으로부터 시작된다. 고객과의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다. 

 

우리 말로는 '인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중국어로는 '관시'와 어울릴 수 있으나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인맥'이나 '관시'와 일맥상통하나 신뢰관계가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고객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인사이트가 준비되어야 한다. 이는 영업영역 체계화, 과학적인 관계 시스템 및 프로세스 정립, 관계 정립 및 유지 관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처음 2분의 인사이트가 중요하다

뛰어난 영업직원은 스스로를 어떻게 차별화할까? 뭔가 고민하거나 도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고민해줄 '누군가'를 갈구한다. 그 '누군가'는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해주고 질문하고 경청하며, 현재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또한 그 '누군가'는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 겁내지 않으며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단호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신뢰하고 또 좋아한다. 이 '누군가'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이 '누군가'는 영업의 대가이고 '무엇인가'는 다른 영업과 차별화된 그들의 인사이트다.

 

영업직원이 아무리 인사이트영업을 하려고 해도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자신이 가진 인사이트를 보여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고객은 영업직원에게 오랜 시간을 할애해주지 않으므로, 처음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선간인 2분 안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은 연역법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

 

 

평판,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질 수 있다

 

대형 고객사를 상대하는 영업직원이 오랫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평판을 잘 쌓았다고 하자. 누가 봐도 영업직원에 대한 고객사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 영업직원이 다른 부서로 간 뒤 새로운 영업직원이 평판을 해친다면 이를 다시 복구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만약 평판이 좋은 기업이 정도(윤리)에 어긋난 행동이나 조치를 취했다면 이 기업은 평판을 회복하기까지 꽤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평판을 유지하는 것은 평판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쩌면 다시 찾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평판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평판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잠간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훅 날아가버린다. 불미스런 행동으로 연예계를 떠난 스타들이 아직도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들을 종종 보는 것처럼 말이다. 영업인의 평판은 부서를 옮겨도, 회사를 옮겨도 따라다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영업직원의 비전, 미래 노트를 준비하라

 

저자는 새로운 사업을 맡으면 항상 두 권의 노트를 준비한다. 현재를 생존해나가는 노트와 미래를 준비하는 노트다. 현재를 돌파해나가는 노트에는 지금 사업을 잘하기 위한 과제와 기한을 정리하고 이를 관리해나간다. 매출은 어떻게 해야 하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누구를 만나야 하고, 어느 고객과 소통을 해야 하고,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하고, 현재 문제는 무엇이고 언제까지 해결해야 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정리된 노트다. 이것을 잘 관리해나가면 내 사업의 현재를 지킬 수 있다. 이 노트는 올해를 무사히 보내게 해준다.

 
두 번째 노트는 미래를 준비하는 노트다. 현재 사업은 2~3년 후면 언제나 위기가 닥치게 마련이다.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해 고민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지금 정리해본다. 정리된 과제는 이 미래 노트에 적어둔다. 자신이 지금 맡은 사업을 1년만 할 것이 아니므로 미래 노트는 항상 비치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미래 노트는 지금 급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미래 노트는 2년 후 현재 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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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 - 2500년 지혜에 담긴 경제의 의미를 돌아보다
조준현 지음 / 다시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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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사전에는 경세제민 또는 경국제민 등의 줄인 말일고 나온다. 간단히 해석하면 '경세'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경세제민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중략) 이처럼 동양의 경세제민 사상에는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요즘으로 표현하면 국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라는 윤리적인 측면이 담겨 있다. - '본문 15~16쪽' 중에서

 

 

동양 고전에 담긴 경제의 의미를 살펴본다

 

저자 조준현은 중심이 잘 잡힌 독립형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청소년기부터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기에, 경제를 어렵게만 느끼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들을 꾸준히 써 오고 있으며, 또한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 소장을 맡아 경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예전에 <국제신문>에 연재했던 원고를 토대로 다시 집필한 것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저자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매주 정기적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 경국제민經國濟民에서 비롯되었다. 경세제민은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달리 말하면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과 국가의 의무라는 말이다. 갈수록 빈부貧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경세제민 사상은 많은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동양의 고전, 특히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책을 통해 동양에서 경제가 가진 의미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사마천은 애덤 스미스보다 거의 2000년 전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쓴 <사기>에는 경제 현상과 원리에 대해 <국부론> 못지않은,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통찰이 보인다.

 

책에는 사마천을 비롯해 공자, 맹자, 순자, 노자, 묵자, 한비자, 관중 등 춘추전국 시대의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한다. 물론 그들이 밝힌 경제 이야기는 경제학이라기보다 경제관에 더 가깝다. 그 당시는 학문으로 체계를 세울 만큼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에서 보듯 동양의 사상가들이 남긴 글에는 경제와 관련된 지혜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넓은 의미의 경제가 동양 사회에서 가졌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치국治國의 의미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입바른 소리로 떠드는 게 아마도 '민생民生'일 것이다. 이렇게 주구장창 떠벌리는데도 왜 경제는 회복은커녕 지하실로만 내려가는지 한심하고 갑갑하다. 과연 이들은 경제를 논하고 입법안을 제시할 전문성이나 자격을 가졌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저 국정감사장에서 고압적인 자세로 듣기 거북한 고성을 남발하거나 선심성 예산을 수립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의정활동을 펼친다고 생쇼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의 어원은 '경세제민'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세상을 경영하는 일과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함께 나란히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구분짓자면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세상을 다스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달리 말하면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사기史記>는 역사책인가?

 

동양의 사상은 대부분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에서 유래한다. 유가, 도가, 법가, 묵가, 명가, 음양가, 종횡가. 농가, 잡가, 병가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저서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없어졌거나 직계 제자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적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뒤죽박죽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제자백가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에서 얻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의 미움을 사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당하면서까지 사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그래서 그는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사마천의 <사기>를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부론>은 핀 공장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밖에서 더 사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집에서 만들지 말라"며 분업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미 2천년 전에 이와 동일한 얘기가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농사꾼은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물자를 공급하며, 기술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들은 이 상품들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활동들은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각자가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뿐이다"

 

 

화식貨殖의 도리

 

한때 경제적 약자들의 울화통을 자극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 '땅콩회항' 사건이다. 부자라고 이렇게 막 해도 되는지 온 국민이 분노를 터트렸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식열전'에 보면 범여는 19년에 걸쳐 세 번이나 천금을 모았는데, 그 중 두 번은 모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인은 나눔과 베품의 도리를 다 하는데 반면 소인이 부유해지면 꼴 사나운 위세를 떨치려고 한다.  

 

라면 때문에 승무원의 뺨을 때리고, 백화점 주차장에서 임시직 주차관리 청년들을 무릎 꿇리는 일도 모두 소인들이 부유해지자 그 권능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저지르는 짓들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말한다. "군자가 부유해지면 즐겨 그 덕을 행하고, 소인이 부유해지면 그 힘을 휘두르려 한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임금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떳덧이 살 수 있는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떳떳한 항심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은 백성이 풍요롭지 못하면 그 마음이 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항산이란 꾸준한 생산이고 항심은 꾸준한 마음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항산이란 단순히 사용할 재물이나 자산이 풍부하다는 뜻이 아니라 꾸준히 생산할 거리, 즉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생업을 의미한다. 이는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임시직이나 계약직보다 정규직을 원하는 이유와 같다.

 

<논어>의 〈계씨季氏〉 편을 보면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든 가족을 거느린 사람이든 적음을 걱정하기보다 고르게 분배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사람들이 빈곤한 것을 걱정하기보다 그들에게 안정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고르게 분배하면 가난이 없고, 모두 화합하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나라가 안정되면 위태로움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즉 재화가 부족한 일보다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는 것이 더 걱정이라는 뜻이다.

 

 

촛불 민심의 의미

 

나라 안이 온통 어지럽다. 처음에는 준엄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촛불시위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도록 밀어 붙임으로써 시위의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이젠 하야로 목표를 수정한 모습이다. 이에 보수단체에서도 시위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도 이에 맞춰 셈법을 달리한다. 사실 정치판에서 의리를 논한다는 것은 사기꾼에게 앞으로 사기를 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국정 농단의 사건은 잘못된 인사의 결과물임에 틀림없지만 국론이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큰 산은 아무리 작은 흙이든 돌이든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큰 산이 되었고, 바다는 깨끗하든 더럽든 어떤 강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바다가 되었다" - <관자> 중에서

 

현명한 지도자는 자신의 귀에 거슬리는 쓴소리를 사양하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해야 한다. 거슬린다고 이를 모두 거절한다면 결국엔 주위에 아첨꾼만 득실댈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 이유다. 묵가를 창시한 묵자와 관련된 이야기 중 '묵자비염墨子悲染'이란 말이 있다. 묵자가 길을 가다가 실에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탄식했다는 뜻이다.

 

묵자가 말하기를,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되는구나. 이렇게 물감에 따라 실의 색깔도 변해 매번 다른 색깔을 만드니 물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것은 바로 신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교훈

 

<사기>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는 이목지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나라 효공 때 상앙은 여러 법을 만들었지만 과연 백성들이 이를 믿어줄지 걱정되어 쉽게 공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꾀를 내어 남문에 큰 나무를 세워놓고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금 10냥을 준다고 방을 붙였지만 헛소리로 여기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후 금 50냥의 포상금을 내걸었더니 한 사람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옮겼다. 이에 상앙은 약속대로 그에게 포상금을 지급했다. 나중에 이 소문이 나라 안에 돌자 진나라 백성들은 상앙의 말이라면 믿게 되었다. 마침내 상앙이 법령을 발표하자 백성들은 이를 믿고 법을 잘 지켰다.

 

이처럼 이목지신은 나랏일에는 말 한 마디에도 천금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반값 등록금부터 노인연금이며 보편 급식까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나라에서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믿음도 없고 희망도 없다. 이런 사태가 계속 벌어지면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와 정부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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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만화, 가능성을 사유하다
닉 수재니스 지음, 배충효 옮김, 송요한 감수 / 책세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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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철학자가 쓰고 그린 이 만화 형식의 철학 논문의 백미는 예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극찬한 고도의 추상성이 아니라 에드윈 애벗의 소설 <플랫랜드>에 등장하는 플랫랜드인들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표현했다는 데 있다. 소설 속 플랫랜드인들은 즉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인식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수재니스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시각적 요소, 특히 그림을 언어의 지적 영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만화라는 형태로 완성된다. - <뉴욕 타임스>

 

 

입체적 사고를 추구하라

 

이 만화는 놀랍게도 세계적인 명문 교육기관인 하버드대학교에서 출간한 책이다. 하버드에서 최초로 발간한 이유는 그간 만화를 경시했다는 자기 고백이자 그렇다고 만화를 가볍게 보지 말라는 그런 의미를 담음과 동시에 저자의 놀라운 창조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책이 전하려는 메세지는 현대인들 역시 과거의 플랫랜드에 살았던 주민들과 다름 없다는 풍자이다.

 

저자 닉 수재니스는 교육학자이자 만화가, 예술비평가이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최초로 만화 형식으로 제출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볍게만 여기는 만화의 그림이 뛰어난 문장 못지 않게 사고와 표현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아마도 당시 논문 심사위원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책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제한된 프레임을 만들어 좁은 그 곳에 가두는 존재가 되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은 글을 깨우치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사물을 지각하고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이처럼 그림은 인간의 가장 오랜된 의사소통의 툴이었다. 동굴벽화나 암각화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데 글의 출현으로 시각적인 볼거리와 예술적 표현으로 밀려난 그림은 글 위주의 소통에 삽화 형식으로 참여할 뿐이다. 만화 역시 그림으로 소통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결코 가볍지 않음에 놀라고 말 것이다. 책은 2차원 평면세계를 표현하는 소설 <플랫랜드>를 인용하고 있다.

 

 

소설 <플랫랜드>에는 미치광이 정사각형이 나온다. 모든 것이 납작한 2차원의 세계인 플랫랜드를 떠나 여러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점, 선, 3차원, 이후의 고차원까지 경험하고서 플랫랜드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다른 차원의 존재 사실을 알리는 데 시간을 바친다. 책이 출간된 당시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로, 사람들은 판에 박힌 듯 단조로운 세상살이를 하고 있었다.

 

1884년, 영국의 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에드윈 애벗(1838-1926년)이 지은 이 책(사진은 6차 개정판의 책표지)은 수학 소설인 동시에 최초의 SF 소설이다. 신선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이 책은 2차원 세계의 기하개념을 다룬 독특한 작품인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 당시의 계급제도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풍자문학이기도 하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미국판 서문에서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아는 한, 공간의 여러 차원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장 잘 소개한 작품", "단순히 기하학의 지식을 재치있고 재미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우주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깊이 있는 사색을 담고 있는, 한편의 학위논문 같은 소설"이라고 말이다. 한국어 번역판은 <플랫랜드>(윤태일 역, 늘봄 출판사)와 <이상한 나라의 사각형>(신경희 역, 경문사)의 두 종류가 나와 있다.

 

 

 

 

단조로움Flatness

 

천 근의 무게를 짊어진 듯, 숨 막힐 듯 경직된 채, 단조로움으로 가득판 풍경이다. 단조로움은 하이퍼 리얼한 외관 안에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이는 시야의 단조로움이다. 이곳에 사는 거주민들은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말한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따른다. 그들은 현 상태를 초월하게 할 '비판적 차원'이 결여된 채,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이곳에서는 다양해 보이는 선택지조차 미리 정해진다. '가능성의 신비'는 잊힌 채 제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낼 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감옥 같은 틀이 너무 많아서 이들은 이 틀을 보지도 못하고 그 틀을 존속시키는 데 자신이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걸음마를 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스템의 기준대로 분류되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트랙 위에 놓여 지정된 경로를 따라 앞으로 이동해 지시를 받는다.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주입받는다. 이 모든 과정은 적절한 결과를 내기 위해 철저하게 기획된 것이다. 모든 일은 상자에서 일어난다. 네모난 상자 안에서.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 경험도 상자 안에 넣어진다. 이것들은 각각 개별 단위로 분류되어 깨끗하게 포장되고, 효율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말하는 자는 듣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수많은 틀은 내재화된다. 외부에서 주입된 내용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은 정기적으로 시스템이 시행하는 검사를 받는다. 갖가지 다양한 도구를 동원해 인간을 계량화하고 데이터로 전환해 더 많은 상자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동떨어진 힘에 의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모두가 좁디좁은 틀에 끼워 맞춰져 누구나 대체 가능한 인간으로 규격화된다.

 

한때 인간이라는 창조물은 자신의 신체 비율로 우주를 가늠하려 했고, 소우주인 자신의 신체를 통해 더 웅장한 천체들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 제한된 틀을 만들어, 좁디좁은 비눗방울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따라, 단일한 차원에 줄 세워진 '생각과 행동'. 정확하게 같은 발걸음으로 열을 맞춰 줄지어 걷다가 똑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한때 넓은 안목으로 춤추듯 줄달음치며 수많은 가능성으로 확기 넘치던 시야의 문은 완전히 닫혀버렸고, 범위는 협소해졌다. 역동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는 감소되고 그 활기를 잃었다. 대신 단조로움만 덩그러니 남았다. 닫히고 협소하고 감소되고 활기를 잃고 단조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넓은 안목으로 춤추듯 줄달음질치며 수많은 가능성으로 활기 넘치던 시야를 되찾을 수 있을까?

 

 

 

다양한 관점

 

확 트인 공간으로 나가 수많은 가능성을 깨닫는 데 필요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기 위해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살펴보자. 우리의 두 눈 사이엔 공간이 있다. 이는 각각의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직 하나의 '올바른'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쪽 눈을 번갈아 감고서 실험해보라.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즉 두 관점의 통합이 입체적 시각을 창조한다.

 

약 2천년 전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과 지구가 멀리 떨어져 있고 태양 광선이 지구 표면을 평행하게 비추고 잇다는사실을 알았다. 알렉산드리아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시에네의 기록에 따르면 하지의 정오가 되면 태양의 빛이 깊은 우물의 바닥까지  닿고 기둥엔 그림자가 조금도 지지 않았지만, 같은 시각 알렉산드리아에선 여전히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의 표면이 오직 곡선 형태일 경우에만 두 지역의 그림자가 다를 수 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탐구는 계속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둥의 높이와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사이의 변위각을 알아냈다. 그런 다음, 걸음으로 두 도시의 거리를 측정하고 거리와 변위각을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이처럼 '입체화'란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3차원 입체공간의 사각형은 2차원에선 직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사고의 폭도 사유 수단에 따라 규정된다. 인간은 오랫동안 언어를 사유의 주된 도구로 사용했고 이미지는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언어와 이미지를 동등한 위치에 놓은 다음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각적 사고'를 실험한다. 문자와 이미지의 결합, 즉 만화를 철학의 도구로 삼은 셈이다.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라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게 바로 다양한 사고를 위한 방법이다. 책의 저자는 이를 추구하기 위해 만화를 활용했다. 문자와 이미지를 동등하게 대접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자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철학 등의 지식 총체를 의미한다.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으로 저자가 만화를 활용했다는 자체가 평면적 사고를 깨드린 시도였으며 이를 논문 대상으로 심사했던 하버드대학도 정말 대단한 교육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조성을 배양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단조로움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이곳을 벗어나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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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생을 바꾸는가 - 타고난 운명에서 원하는 삶으로
조한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확신한다.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흔히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며 운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운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역易이요,변화다. 정적靜的이지 않고 동적動的이다. 다만 우리는 그 운명 개조의 방편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방편方便이 필요하다. '인생을 바꾸는 일곱 가지 방편'을 정리해보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인생을 바꾸는 일곱 가지 방편

 

저자 조한규는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세계일보> 사장을 지냈던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투신하여 <스포츠월드> 총괄본부장, MBN 해설위원, 방송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경희대학교 겸임교수와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강사로 '기업홍보론' 등을 강의했다.

 
현재 <매일경제> 프리미엄 정치뉴

 

 

 

 

 

 

 

 

사주팔자는 단지 참고서일 뿐이다. 인간은 대자연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살아간다. 해, 달, 별로부터 빛을 통해 생명에너지를 공급받고, 코와 폐로 들이마시는 공기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받고, 발을 디디는 땅으로부터 역시 생명에너지를 받는다. 이처럼 우주와 지구의 자기장으로부터 기를 받고 자연에서 나는 물과 음식물을 섭취해 생명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인간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생활 속에서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우주와 대자연의 초월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 인간은 그 힘을 어떻게 수용, 적용,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사색을 했다. 또한 과거 선인들이 남긴 경전과 서적을 공부하며 해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서 때문에 왕위에 오르다

 

"충녕대군이 천성이 총민히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세워 글을 읽고, 또 정치에 대한 큰 흐름을 알아, 매양 국가에 큰일이 생겼을 때에는 의견을 냈는데, 그것이 모두 범상한 소견이었으며, 또 그 아들 중에 장차 크게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가 있으니, 내 지금부터 충녕을 세자로 삼고자 하노라" 

 

위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태종의 말이다. 세종이 조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말해준다. 셋째 아들인 세종은 원래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음에도 세자로 책봉되었다. <실록>에 기록됐듯이 '독서'의 힘이 크다. 세종은 뛰어난 머리를 지녔음에도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서거정<필원잡기>에 따르면 충녕은 <좌전>과 <초사>를 100번 이상 읽었고, 소동파의 서간문집인 <구소수간>은 1,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와같은 백독백습百讀百習이 창조성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대학자가 된 비결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주역사전>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이는 절대로 인력으로 통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독서와 글쓰기로 입신의 경지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즉 독서와 글쓰기가 뇌의 시냅스를 활성화하고, 대자연의 기운과 소통해 성리학의 한게를 극복하고 실학實學을 정립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당시의 여러 여건으로 볼 때 18년간의 유배를 견딘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산의 유배생활지인 강진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있었는데, 외증조부 윤두서의 손자인 윤단이 세웠다. 지금도 다산초당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백련사 이외에는 인가도 드물다.

 

다산은 윤단의 아들 윤규로의 도움을 받아 1,000여 권의 서적을 구입해 도서와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산속에서 그것도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18년을 버티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산이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은 것은 자신과 후손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산책명상은 영감의 원천이다

 

산책명상은 걷기명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걸으면서 발의 동작과 느낌을 관찰해 알아차림으로써 집중력과 깨어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행법이다. 이를 위파사나에서는 경행經行, 간화선에서는 행선行禪이라고 일컫는다. 산책은 휴식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이기에 명상과 잘 어울린다.

 

이는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이끌면서 유명해졌다. 스님의 산책명상은 위파사나의 현재적 변형이다. 그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찰에서 시행하는 템플스테이 과정에도 산책명상이 포함되어 있다.  

 

호흡을 하면서 산책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숲속에서 산책명상을 하면 더없이 좋지만, 대도시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가능하다. 출퇴근길에서, 쇼핑을 하면서, 얼마든지 산책명상을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안을 단전으로 챙기면서 산책명상을 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셰익스피어괴테는 식사 후 반드시 산책을 했다. 베토벤, 모차르트도 산책이 영감의 원천임을 강조했다. 장 자크 루소는 "생각의 발로는 '발'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오후 세 시에 산책을 했다. 그 산물이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상비판>. <판단력비판>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들이다. 칸트는 어려서부터 허약 체질이었지만 규칙적인 산책과 건강관리로 80세까지 살았다. 다산 정약용도 매일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800미터를 산책했다. 500여 권의 저술도 산책명상의 산물이었다. 신문사 논설위원들에게만 전해지는 글쓰기 비결이 있다. '사설이 안 되면 방 안에서 걸어라!' 옥상도 올라가고 주차장에서도 걸으면 사설이나 칼럼이 쉽게 써진다.

 

한편, 구글을 비롯해 애플, 야후, 맥킨지, IBM 등 이 시대 최고의 기업들은 사내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시행하거나 명상실을 운영한다. 명상이 행복감뿐 아니라 창의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조지 교수는 "명상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고, 리더로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유익하다"로 말했다.

 

 

소식小食, 장수長壽의 비결

 

1875년부터 1997년까지 122년을 살아 기네스북에 최장수 인물로 등재된 프랑스 여성 잔 루이즈 칼망. 그녀는 85세에 펜싱을 시작했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 그녀의 장수 비결은 음식에 있다. 그녀는 모든 음식에 올리브유를 발라 먹었고, 레드와인을 즐겨 마셨으며, 마늘과 채소를 자주 먹었다. TV를 켜면 '맛집', '먹방', '요리대결' 등의 프로그램이 대세일 정도로 음식에 치중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에 경종을 울린다.

 

부처님의 열반도 사실 음식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544년에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든 부처는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중, 빠바 마을의 대장장이가 공양한 음식물을 먹었다. 그런데 이 음식엔 상한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결국 부처님은 식중독에 결렸고 열반에 들게 되었다.    

'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식사철학은 <주역>을 토대로 삼는다. 인생을 바꾸는 식사법은 자연과 어울리는 검소한 식사를 기본으로 한다. 사람 중심의 식사와는 거리가 멀다. 맛 중심의 식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최근 우리 인간들이 갈수록 폭력화되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유는 자연과의 어울림을 배제한 식사에 있다. 자연에서 나오는 싱싱한 채소와 전통의 발효식품으로 식단을 꾸렸던 예전과 달리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즉석요리 등 가공된 음식을 즐겨 먹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보다 훨씬 많이 먹고 있다. 자연과 거리가 먼 음식을 먹고, 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 우리 몸은 부대끼게 된다.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가 몸속에서 숙변과 독소를 양산한다. 그 숙변과 독소는 간을 지치게 만들고 위와 장을 힘들게 한다. 이에 따라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 뇌신경회로가 헝클어지고 전체 배선도가 뒤엉키게 된다. 그 결과 인생은 뒷걸음을 친다. 살인과 성추행 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몸을 맑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차로 흥하고 차로 망하다

 

3세기 중국의 동진東晉은 차茶를 통해 나라의 재건을 모색했다. 동진은 <삼국지>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마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당시 동진의 지식인들은 서진西晉의 멸망 원인을 지배게급의 사치와 퇴폐에 있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를 치유할 목적으로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차茶였다.

 

"찻잎을 오래 마시면 생각이 깊어지고 졸음을 쫓고 몸이 가벼워지며 눈이 맑아진다"

- 화타, 후한 말의 전설적 명의名醫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은 일본의 다도가 한국 상류사회에서 친일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으로 일본 다도를 정립한 센노리큐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다도의 3대 유파인 오모테센케, 우라센케, 무샤노코지센케가 서울, 부산 등에서 자주 다회를 개최하고 있고, 우라센케, 오모테센케의 한국 지부는 서울과 부산에 있다. 특히, 우라센케 서울 지부는 신라호텔에서 한국 상류사회 부인들을 대상으로 다회를 열고 있다.

 

일본의 다도가 버젓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차로 인해 두 번 다시 이 땅이 수난을 겪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가 역사적 대전환을 견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부는 함께해야 한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토론이 없기 때문에 발전이 더디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수행 그 자체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납자衲子들이 하안거와 동안거에서 함께 정진하는 것을 감자 씻기에 비유한다. 감자를 씻을 때 하나씩 껍질을 벗겨가며 씻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든다. 그러나 감자를 모두 큰 그릇에 넣고 함께 비비면 껍질도 쉽게 벗겨지고 힘도 덜 든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가 생긴 이유도 비슷하다. 직하학궁稷下學宮 이래로 동양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교육기관이 생겨났다. 직하란 '직문의 아래'라는 뜻이다. 직문은 중국 제나라의 수도 린츠의 13개 성문 중 하나였다. 남문으로 추정으로 이 성문 밖에 직하학궁이 있었다. 제나라 위왕은 이곳에 많은 학자들을 유치, 안전을 보장하고 사회적 신분을 제공해 강의, 토론, 집필에 주력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공식 교육기관이 생겼다.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이 그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며, 민간에는 서당이 있었다.

 

 

수신修身, 몸과 마음에 불을 켠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바꿔주는 한 방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실천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가 있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은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실천하는 삶은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인先人들은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신은 몸가짐과 정신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밥상에선 몸을 바로 세우고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난 후 뒤따라 식사에 임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명신보감>에 잘 소개되어 있다. 

 

서당에서 수신을 익힌 저자는 중학생 시절 학교생활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지도 못했다. 걸음걸이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고 자세를 바르게 하려다 보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탁구장에 가는 것을 보면 "아,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사실 과거엔 남녀칠세부동석南女七歲不同席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처럼 수신은 뜻을 이루는 기틀을 만드는 작업이다.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수신은 무엇보다 실수를 최소화해준다. 수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할 수 없다. 수신이 이뤄져야 뜻이 이뤄지고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일은 바로 불을 켜는 일이라 하겠다. 목표를 달성하혀면 먼저 수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메디치가家 명문가로 태어나다

 

과거 못 살던 시절, 소위 보릿고개 때엔 길거리나 동네 골목에 걸인들이 정말 많았다. 길을 걷다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한 푼만 적선합쇼"라고 말을 해왔다. 여기서 적선積善이란 선을 쌓는 것으로, 예로부터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양생활권에서는 이것이 기본적인 생활철학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불선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주느니라" - <명심보감>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강조하는데, 이는 자신이 선행을 하면서도 이 행동 자체를 선행이라고 의식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즉 선행이란 의도적이거나 의식적이어서는 안 되며,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연말 정산 때 기부금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절세의 수단으로 원치도 않는 유니세프 기부금을 납부하는 가식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 유럽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를 꼽는다. 이 가문은 무려 7대에 걸쳐 350년 동안(1397~1737년) 피렌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3명의 교황과 프랑스 앙리 4세 왕비도 배출했다.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적선 때문이었다. 이 가문은 예술과 학문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일으킨 주역이었다. 

 

메디치가의 주요 신조

 

유능함을 드러내지 말고 뒤로 물러설 것

온화하게 몸을 낮추며 조용히 처신할 것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서 옳을 일을 할 것 

 

메디치가는 원래 농사지었으나 피렌체로 가서 상업에 종사하면서부터 부를 축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수많은 예술가, 시인과 학자들을 식객으로 거느렸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를 집안의 양자로 받아들여 최고의 예술가로 길러냈고, 갈릴레오를 후원해 천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마키아벨리<군주론>을 쓴 것도 메디치가를 위해서였다. 오페라를 처음 탄생시킨 것도 메디치가이며, 이러한 예술과 학문에 대한 후원, 즉 적선이 보잘것없던 메디치가를 명문가로 만들었다.

 

 

내 인생은 내가 바꾼다

 

타고난 운명 때문에 스스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신세 한탄을 하지 말자. 시선과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개천에서 용이된 개룡족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가진 것 별로 없이 오직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으로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타고난 팔자는 없다. 저자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이다. 독서, 명상, 소식, 차와 음악, 공부, 목표, 적선 등 일곱 가지의 좋은 습관으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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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 <현문우답> 백성호의 이스라엘 마음순례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 글.사진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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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생애를 따라간다. 신자와 비신자를 가려 따지지 않는다. 대신 인간을 따진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따진다.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건네는 예수 이야기다. 신을 품은 인간, 인간을 품은 신, 예수에 대한 이야기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예수에게 가는 길

 

책의 저자 백성호는 <중앙일보>의 종교담당기자이다. 2007년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현문우답'을 통해 종교의 벽을 관통하며 독자들과 소통해오고 있다. 제1회 한국기독언론대상(2008년)에서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기 - 예수의 숨결을 찾아서'로 대상을 수상했다. 제19회 불교언론문화상(2011년)에서 '현문우답'으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현문우답>, <이제, 마음이 보이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생각의 씨앗을 심다>, <만약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등이 있다.

 

저자는 겨울휴가 때 이스라앨을 갔다. 세 번째 순례였다. 단체 일정에 쫓기지 않고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 동안 마음껏 머물고 싶었기에 자동차를 빌려 혼자 운전하며 다녔다. 예수살렘에서 나사렛으로, 다시 갈릴리로, 광야와 사해를 거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올리브 산과 십자가의 길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묵상에 잠겼다. 예수를 만나고 싶었기에.

 

그는 2천년 전 예수가 몸을 적셨던 갈릴리 호수에 몸을 담그고, 악마를 물리치며 기도했을 광야에서 눈을 감아 보았다. 또 그는 유년의 예수가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았을 나사렛 골목에서 뛰어도 보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다가 쓰러졌던 그 장소에서 주저앉아도 보았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걸었고 또 성경 속을 걸었다. 이는 자신의 눈을 부수고, 이끼를 걷어내고, 성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살아있는 예수'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그 길에서 만난 예수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이다. 성경 본문의 인용은 가톨릭 성경을 따랐다. 이는 요즈음 보편적으로 쓰는 쉬운 말로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

 

 

 

 

겟세마니 바위

 

예루살렘 동편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올리브 산이다. 이 산엔 옛날부터 올리브 밭과 공동묘지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했다. 오래된 묘비와 석관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곳에 조그만 동산이 잇었다. '올리브유를 짜는 곳'이란 뜻을 지닌 겟세마니(겟세마네)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 예수는 이곳으로 와 땀을 흘리며 기도한 장소이다.

 

이스라엘은 사막 기후다. 낮엔 뜨겁고 밤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예수가 제자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낮보다 10도 이상 떨어지는 차가운 밤이었을 것이다. 당시 예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틀이 지나면 파스카(유월절)인데,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예수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이곳 겟세마니로 왔다. 올리브 산 언덕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빤히 보이는 거리였다. 예수는 도망 대신 기도를 택했다.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그 뜻과 하나로 되려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겟세마니 동산의 올리브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우리도 그렇게 흔들린다. 수시로 기로에 선다. 살다 보면 각박한 일상의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는 몸소 보여줬다. 도망가지 말라고. 마주하라고.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기도하라고. 묵상 속에서, 명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답을 찾으라고. 지금도 예수는 그렇게 역설한다. 

예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 고통이, 이 슬픔 이, 이 불행이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건 우리가 수시로 올리는 기도와 닮았다. 그런데 예수의 기도는 달랐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갔다. 그는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때 에고가 부서져 내린다. 남들이 멈추는 곳, 모두가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 곳에서 예수는 한발 더 앞으로 내디뎠다. 곤두박질칠 줄 뻔히 알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예수의 기도는 각별했다. 그렇게 '나'를 파괴해버린 예수는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신의 뜻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이 겟세마니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예수는 기도하며 땀을 피처럼 흘렸다고 한다.

 

 

혼인잔치 교회

 

예수는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을까? 예수는 이곳에서 첫 번째 기이한 행적을 보였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왔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참석했다. 미루어 보건대 친척쯤 되는 사람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성서에는 결혼식 당사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당시 잔치가 열리고 있는데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유대 사회에서 하객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예수 앞에는 유대인들이 식사에 앞서 손을 씻는 데 사용하는 물독이 여섯 개 놓여 있었다. 예수는 일꾼들에게 물독을 채운 후 이를 잔치를 주관하는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라고 말했다. 과방장은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맛보았다.   

 

그럼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만 신비일까. 내 안에서 길어 올린 두레박의 물이 온갖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신비다. 예수가 보여준 첫 이적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마음을 어떻게 쓸지를 보여준다. 카나에서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객들은 아쉬워하고 혼주는 난감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때 예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 그것을 만들었다. 저자는 거기서 '예수의 마음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

 

"네 안에 신의 속성이 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너는 온갖 마음을 창조할 수 있다. 마치 물을 포도주로 바꾸듯이 말이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마음을 창조해서 써라"

 

 

팔복 교회

 

예수의 영성도 마찬가지다. 안으로 들이마신 다음에는 바깥으로 내쉬어야 한다. 일상을 향해, 현실을 향해, 사회를 향해 내쉬어야 한다.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다시 가난한 마음을 찾고,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는 거다. 가난한 마음을 찾는 게 '들숨'이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게 '날숨'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의 영성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수도修道'라고 부른다. 그 와중에 '에고의 눈'이 '예수의 눈'을 점점 닮아간다.

 

'산상설교''평지설교'로 나누는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의 메시지는 둘로 갈라진 게 아니다. 이는 편을 가르는 데 익숙한 '에고의 눈' 때문이다. '예수의 눈'에서는 그렇게 쪼개질 수가 없다. 들숨과 날숨은 두 가지 숨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숨일 뿐이다. 그럼에도 진보와 보수를 고집하는 이들은 스스로 '반쪽'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예수는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였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 묵시록 22장 13절)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는 뜻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면서 동시에 오른쪽'이고,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며, 좌파 와 우파를 모두 품는다는 뜻이다. 바로 '거대한 중도中道'다. 그게 예수의 정체성이다. 다름 아닌 신의 속성이다. 예수의 칼집에는 좌파의 칼도 있고 우파의 칼도 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칼을 꺼낼 뿐이다. 이것이 '예수의 지혜'다. 그래서 전능全能이다. 어느 한쪽의 칼만 쓰는 건 전능이 아니다.

 

팔복 교회 주위로 풍요로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예수는 이런 풍경 속에서 산상설교를 했다.

 

 

예수는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라고 했다.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는 말이다. 우리의 창고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 그건 바로 '집착attatchment'이다 . 접착제처럼 끈적이면서 내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착이다. 집착할 때 마음의 창고가 가득 찬다. 집착을 비울 때면 창고도 빈다.

 

그 이치를 꿰뚫은 예수가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불교에서는 이를 "마음을 내려놓으라"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불교는 불국토(佛國土, 부처님 나라)의 문턱을 넘는다. 그 문턱을 넘어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가 서로 닮았다. '마음의 창고를 비워라'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는 왜 생겨날까. 그것은 잣대 때문이다. 잣대의 왼쪽은 선, 오른쪽은 악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원수가 된다. 예수의 말처럼 그 원수를 사랑하면 어찌 될까. 선악을 가르던 잣대가 무너진다. 그 잣대가 무너지면 어찌 될까. 우리는 돌아간다. '선악과善惡果 이전'으로 돌아간다.

 

중국의 혜능 대사는 늦은 나이에 출가해 정식 승려가 되기도 전에 행자(수련생) 신분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스승인 홍인 대사는 그가 다른 수행자로부터 시기를 받을까 무척 걱정되었다.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깨달음의 징표인 가사와 발우를 주며 멀리 도망가라고 했다. 혜능은 밤에 남쪽으로 달아났다.

 

뒤늦게 이를 안 수행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행자 따위가 스승의 법맥을 잇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뒤를 쫓아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 했다. 다들 지쳐 중간에서 돌아가고 말았지만 유독 장수 출신인 혜명은 대유령이라는 큰 고개까지 혜능을 쫓아왔다. 이에 혜능은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놓았다. 그런데, 혜명은 이를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자 이렇게 말했다.

 

"불법佛法을 구하기 위함이지 가사를 빼앗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게 불법을 보여주시오"

 

이에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때 어던 것이 당신의 본래면목(본성)인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불가의 혜능이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라고 한 이유도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선과 악 이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게 '완전함'이다. 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말했다.

 

 

갈릴리(갈릴래아) 호수

 

갈릴래아 호수의 선착장,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끼룩거리며 날아다녔다. 당시의 예수는 말했다.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거기서 그물을 내려라" 예수가 말한 '깊은 곳'은 갈릴래아 호수의 어딘가가 아니었다. 저 푸른 파도의 어디쯤이 아니었다. 그곳은 신의 속성이 잠들어 있는 우리 내면의 심연이다. 그 깊은 마음의 골짜기다. 우리가 다시 돌아갈 고향이다.

 

거기서 그물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데 심연이 어디 인가? 그걸 알아야 갈 게 아닌가" 답은 어렵지 않다. 나의 고집이 무너지는 곳. 거기가 바로 심연이다. 고집에 가려서, 에고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내 안의 깊은 곳이다. 거기서 치유의 비가 내린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던 제자들에게 예수는 사람을 낚으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내가 낚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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