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자본주의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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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들려면 일단 제도권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 비록 이자 지급 등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는 못했지만, 기득권이 일단 굳게 닫힌 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자는 아니더라도 사용자에게 부가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우회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일단 평화의 메시지로 포장된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김창익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25년 동안 <서울경제>를 비롯한 경제 전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실물경제와 화폐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거대한 부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거시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원칙보다 정치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트코인이 달러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 중이다.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빅테크 제국의 침략(1장), 월가와의 전쟁(2장), 규제와의 전쟁(3장), 권력과의 전쟁(4장), 중국과의 전쟁(5장), 빅테크 이후의 세계(6장) 등을 통해 월가가 설계한 경제 체제는 우리들이 선택한 시스템이 아니라서 이를 대체할 대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들이 지금 정글을 탐험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수십 미터 떨어진 덤불에서 바스락거림이 있을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까? 호랑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 과연 영리한 판단일까? 특히 생존과 관련된 판단을 할 경우엔 최대한 보수적으로 하는 게 유리하다. 그렇다. 우리들이 살고 잇는 경제하는 세계는 바로 정글이기 때문이다. 

빅테크 제국의 침략(스테이블 코인) 

세계경제를 장악한 빅테크 기업들의 다음 목표는 '금융'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의 기업은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빅테크 기업들은 이용자의 높은 충성도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기들 생태계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구축하려 한다. 즉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개념의 기축통화인 셈이다. 

메타~ 리브라(스테이블코인)
애플~ 애플페이, 애플카드 
아마존~ 아마존코인 
테슬라~ 비트코인(도지코인)으로 결제 
구글~ 구글페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제 앱은 돈의 흐름을 넘어서, 행동 데이터와 연결된 AI 기반의 개인화 금융시스템으로 진화 중이다. 이는 빅테크가 금융 소비자의 뇌와 지갑을 동시에 장악하려는 시도이므로 단순한 테크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 사용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심지어 화폐까지 장악하려는 거대한 플랫폼 제국이다. 금융은 그 제국의 마지막 퍼즐이다. 비록 리브라가 실패했을지라도 이는 일시적인 좌절일 뿐이다. 지금 그들은 AI를 무기로 새로운 형태의 통화 권력을 구축하는 중이다.

빅테크와 월가와의 전쟁

트럼프는 월가의 논리로 만들어진 자유시장 경제 프레임을 유지하되 그 내용물은 이전과 전혀 다른 것으로 채우겠다는 대안이 바로 '빅테크 자본주의'이다. 즉 월가는 반反세계화란 족쇄를 채워 보호무역주의라는 우리 안에 가두고, 성장 일로를 걷고 있는 매그니피센트 7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자본주의 이후의 자본주의(자본주의 2.0) 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월가는 빅테크가 가려는 길목을 선점하고 규제란 장벽으로 그들을 가로막는 낡고 비효율적인 구체제의 상징이다. 빅테크는 혁신의 마지막 단계에서 궁극적으로 금융이란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선점 후 독점이란 빅테크의 성공 루트를 그대로 가다 보면, 지불과 신용 창출이란 금융의 역할을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빅테크의 인공지능 기술이 향하는 종착역은 군수산업이다. 이는 냉전시대를 거쳐 닉슨 쇼크 이후 월가가 지배해온 미국의 패권 산업이다. 빅테크와 월가는 자본주의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숙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종의 패권 전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다.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빅테크가 언제 금융의 핵심 기능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 기능은 지불에서 신용 창출로의 확장이다. 신용 창출이란 '대출을 통한 화폐 발행'을 의미한다. 미국 국방부 예산의 무개 중심이 F-35에서 드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서 F-35란 월가가 투자한 군산복합체의 무기를, 드론은 빅테크 AI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의미한다. 

규제와의 전쟁(EU의 빅테크 규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은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플랫폼 빅5'를 중심으로 데이터, 에너지, 결제, 소프트웨어를 모두 통합한 복합 인프라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이같은 흐름에서 기술, 자본, 통화 주권 모두를 점점 잃어가고 잇는 중이다. 유럽의 빅테크 부재는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문화, 자본 흐름, 정책 방향 등 총체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유럽은 미국 빅테크의 정보 독점과 시장 지배가 자국의 민주주의, 주권,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하면서, 규제를 더 이상 ‘제약’이 아닌 ‘방패’이자 ‘창’으로 삼게 됐다. 기술 그 자체는 미국이 만들지만, 기술이 작동할 ‘질서’는 유럽이 정한다는 이 새로운 질서는, 단순한 법적 프레임이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의 규칙을 새롭게 쓰는 방식이다. 규제는 이제 통행세이자 주권 선언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럽은 ‘기준을 만드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원칙 아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법과 윤리를 무기로 내세운 새로운 권력 행사를 시작한 것이다.

권력과의 전쟁(트럼프와 손잡은 빅테크)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 초부터 '반월가, 반엘리트, 반중국'을 기치로 내세워 반세계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런 기조는 월가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트럼프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도 월가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여전히 금융권의 신뢰를 얻고 있었으며, 트럼프는 월가의 주류 네트워크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바이든의 반대편엔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일런 머스크, 피터 틸 등 '반세계화 빅테크 진영'이 도널드 트럼프의 손을 잡았다. 이들은 기존의 월가-정부-관료-노조로 이어지는 체계가 미국을 비효율과 불균형, 규제 과잉의 늪에 빠뜨렸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반세계화 진영은 트럼프 재선 캠프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그 상징이 바로 '정부효율부DOGE' 프로젝트였다.     

바이든에게 ‘과두寡頭’는 머스크와 실리콘밸리였고, 머스크에게 ‘과두’는 월가와 워싱턴이었다. 이 대립은 단순히 개인 간의 불화나 정당 간 경쟁이 아니라, 세계화 이후의 국가 정체성과 기술 권력의 지위를 두고 벌어지는 구조적 전쟁이었다. 

바이든은 기술 재벌의 정치 개입을 민주주의의 파괴로 규정했다. 머스크는 기존 세계화 엘리트를 미국 경제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두 세계관은 양립 불가능했고, 이념과 이해관계, 권력구조를 둘러싼 거대한 균열 속에서 미국 정치는 새로운 시대의 대립 구도로 재편되고 있었다.

중국과의 전쟁(중국의 AI 기술 굴기)

2025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인공지능을 중심에 둔 대전환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AI를 '문명사적 도약의 계기'이자 '제2의 문화대혁명'으로 규정하며 이를 국가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선언했다. 이에 인해전술을 앞세워 AI 중심 산업 국가로의 구조 재편에 착수했다. 말하자면 계란을 한바구니에 모두 담고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감내하겠다는 투자 전략인 셈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다. 기술 패권의 중심으로 부상한 인공지능을 놓고서 세계 각국이 경쟁을 펼치는 지금, 구조적으로 민주주의는 AI 패권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력 분산과 사회적 가치라는 민주주의 고유의 체계가 AI 개발과 확산에 어떤 제약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첫째,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이 느리다 
둘째, 민주주의는 윤리와 공공성을 우선시한다
셋째, 데이터 접근성과 수집에서 민주주의는 불리하다
넷째, 분권 체제는 중앙집중 추진력을 약화시킨다
다섯째, 민주주의 기업문화가 장애물로 작용한다 

기술 사상가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속도, 집중력, 예측 가능성이라는 AI 시대의 주요 가치들과 충돌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권위주의는 AI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강화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이 기술을 어떻게든 길들이고 제한하려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의 제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AI는 점차 민주주의의 외곽부터 잠식해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피터 틸이 “기술은 설득이 아닌 실행으로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한 것이나, 일론 머스크가 전통적인 정부를 ‘비효율적 유물’이라 평하며 기술 기반의 직접 민주주의 시스템을 상상하는 것도 결코 공상이나 과장이 아니다. 그들은 기술이 체제를 대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있던 것이다.

빅테크 이후의 세계

"악마의 적은 천사가 아니라 또 다른 악마다"

스테이블코인의 세계화는 결국 브레턴우즈 체제의 디지털 확장판이며, 주체만 달라졌을 뿐 권력구조는 그대로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생체 권력, 즉 권력은 더 이상 폭력적 통치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관리와 규칙 설정을 통해 행사된다는 개념과도 맞닿는다. 

빅테크는 플랫폼을 통해 금융, 소비, 노동, 인간관계까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하고 연결하거나 단절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되고, 이는 과거 어느 국가나 은행도 갖지 못했던 초월적 통제력이다. 

권력은 언제나 소수에게 집중되어 왔으며, 달라지는 것은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의 형태일 뿐이다. 과거에는 국가였고, 그다음은 월가였으며, 이제는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조정자가 되고 있다. 악마의 적은 천사가 아니라 또 다른 악마다. 탈중앙脫中央이 불러온 기술적 혁신은 그 본래의 이상과는 다르게, 다시 새로운 중앙집권의 얼굴을 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부의 패권을 둘러싼 작용과 반작용
 

빅테크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조용히 화폐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과거 중앙은행과 정부만이 누리던 주조 이익은 이제 플랫폼 기업이 일부 가져가려는 것이다. 이용자는 그저 편리한 결제 수단을 사용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이면에선 특정 기업이 발행한 토큰이 사실상 새로운 종류의 화폐처럼 기능하며 독자권 경제권을 넓혀간다. 월가는 스테이블코인을 떠받치는 안전자산을 장악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월가는 자신들이 익숙한 게임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의 심장을 붙집으려 한다. 

#경제경영 #빅테크자본주의 #김창익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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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1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론 머스크, 피터 틸등은 빅테크가 기존의 ‘금융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팔란티어의 두 인물인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는 모두 法과 哲學을 전공한 자들로서 미국의 다양성이 남북전쟁이라는 잘못된 단추로부터 출발한다는 사고를 가진 위험한 사람들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은 파시스트라고 알고 있는데 빅테크의 파시스트를 경험하는 원년이 바로 26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이런 점에서 언급해주신 일론 머스크, 피터틸과 알렉스 카프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ㅠ

언젠가는 알렉스 카프나 피터 틸에 대한 글을 저도 쓰게 될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들을 ‘위험한 인물들‘로 바라보며 그들의 발언을 늘 주시하는 편입니다 ㅠ

공감이 가는 글이라 주절거리게 되는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거짓과 왜곡 없는 고종황제 실록
박영규 지음 / 옥당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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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고종 시대의 이미지는 대부분 식민지 권력이 만들어낸 틀에서 비롯되었다. 고종을 무능하고 나라를 망친 군주로 보는 통념은 일본이 침탈을 정덩화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한 '정당화 서사'였고, 그 왜곡은 해방 이후까지 거의 검증 없이 반복되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박영규는 밀리언셀러 역사 전문 작가로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후 27년 동안 고려왕조실록에서 일제강점실록까지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펴냈다. 역서사 외에 역사문화, 에세이, 동사양철학사 등 폭넓은 관심 분야만큼 집필 분야도 다양하다.


책은 총 3부(쇄국의 시대, 개방의 시대, 몰락의 시대)에 걸쳐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쇄국의 시대는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재위 10년(1873)까지를, 개방의 시대는 고종 재위 11년(1874)부터 재위 24년(1887)까지를, 몰락의 시대는 고종 재위 25년(1888)부터 재위 44년(1910)까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쇄국의 시대


우리들이 학창시절 수업을 통해 배워 알고 있던 바와 같이 당시 조선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조선 문호를 꽁꽁 걸어 닫고 쇄국 정치를 펼침에 따라 근대화가 늦어졌고, 반면에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을 통해 막부가 물러나고 천황 체제의 신정부를 출범시켜 근대화의 고삐를 당길 수 있었던 그런 시기였다.


1863~1865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 중 가장 눈에 돋보이는 장면은 뒷방신세였던 조대비의 정계 복귀과 흥선군 이하응의 등장이다. 권력을 되찾고자 절치부심하던 조대비에게 호기好機가 찾아왔다. 후사도 없이 철종이 죽자(1863) 그간 몇 차례의 역모 사건으로 인해 왕손의 씨가 말라버린 상태에서 흥선군 이하응의 아들 이재황(아명兒名, 명복)을 양자로 삼아 후임 왕으로 지명하고 수렴청정에 들었다. 


풍양 조씨 가문 출신인 신정왕후 조씨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빈이 되어 입궁했지만 효명이 세자 신분으로 죽는 바람에 중궁에 오르지 못하고 뒷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때는 바로 그 유명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시기다.


조대비가 어린 명복을 용상에 앉히려는 목적은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 자신이 뒤에서 수렴청정을 함으로써 풍양 조씨 천하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또 조대비 입장에선 그간의 기득권이었던 인동 김씨 가문과의 대결에서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줄 유능한 공격수가 필요했는데, 당시 이하응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조대비의 친정엔 김씨 세력에 대항할 마땅한 인물(조카)도 보이지 않았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이하응은 아들 명복이 왕위에 오르자 자신이 살던 집(雲峴宮)과 궁궐인 창덕궁 내부에 있던 금위영 사이에 문을 만들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조대비의 합의하에 이뤄진 조치였다. 1864년 9월, 조대비는 직접 고종을 대동하고 운현궁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이후 고종과 대원군은 이 문을 통해 왕래하면서 만날 수 있었으며, 이는 흥선대원군이 정치 전면에 나섰음을 의미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안동 김씨 세력은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을 것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안동 김씨 가문의 김흥근이 대원군에게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또 이를 괘씸하게 여긴 대원군이 당시 북문 밖 삼계동에 김흥근이 소유하던 별장을 빌려 아들 고종과 함께 놀이를 다님으로써 이 별장이 자연스레 운현궁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황현(당시 10살 아이였음)이 들은 소문에 불과할 뿐 실록 어디에도 고종이 삼계동 별장에 갔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아마도 이 별장은 대원군 소유의 석파정을 일컫는 것으로 보이는데, 김흥근이 석파정을 소유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개방의 시대


경복궁 중건으로 인해 백성들은 노동력과 각종 세금으로 고통을 받자 원성이 날로 커져만 갔다. 조선의 위기감이 날로 높아져 가자 고종 10년(1873) 동부승지 최익현이 조정의 폐단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조정의 대신, 육조 판서, 삼사, 성균관 유생들을 사그리 비판함으로써 조정을 이끌던 흥선대원군을 겨냥했다. 이에 고종은 최익현의 상소문을 극찬했다. 같은 해 11월 고종의 지지에 힘을 받은 최익현은 재차 상소를 올려 대원군에게 실정의 책임을 물어 야인으로 물러나도록 하고 고종의 친정을 주장했다. 고종도 이를 거부할 수 없었기에 대원군은 결국 탄핵되어 정치 일선에서 떠나게 된다.


고종 5년(1868) 상소문의 핵심


1. 토목공사를 중지하는 것

2. 백성들의 가혹한 세금인 원납전願納錢을 중지하는 것

3. 당백전當百錢을 혁파하는 것

4. 백성들이 한성에 들어올 때 받는 문세門稅를 폐지하는 것


고종 10년(1873) 상소문의 핵심


1. 청전(청나라 돈)을 혁파하는 것

2. 정사를 임금이 직접 챙기라는 것

3. 종친은 나라의 정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


1875년 8월, 일본은 군함을 파견해 강화도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려 했다. 이에 강화도의 조선 병력이 포를 쏘며 저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영종도를 침략해 포격을 가함으로써 조선 병영과 민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은 일본이 무력을 사용해 조선을 개항開港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조선 정벌론'을 내세우며 호사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일본은 그동안 걸림돌이었던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사라졌으니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같은 해 5월 불법적으로 부산에 운요호가 입항해 조선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맘대로 조선 영해를 오가며 측량을 감행했다. 심지어 운요호는 동해안으로 북상하여 함경도 영흥만까지 가기도 했다. 이렇게 동해와 남해를 항해하며 조선의 대응을 간보다가 결국 8월에 서해를 거슬러 올라가 강화도 인근 난지도에 정박했다. 이후 운요호의 일본군들은 물 보급 명목으로 보트를 타고 강화도 초지진에 상륙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병사들이 무장한 구식 화포와 화승총으로는 유럽의 신식 화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의 포격을 맞아 진이 초토화되고 아울러 많은 조선 병사들이 죽거나 다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영종진의 병사들(400명)은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리 되니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무력 시위에 겁을 먹고 결국 개항 요구에 응하게  되었다. 바로 강화도 조약 체결(1876)이다.


일본과의 통상 교섭이 진행되자, 최익현은 일본과의 교섭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고종은 최익현을 흑산도에 유배시키고 교섭을 강행했다. 총 12조로 구성된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이로써 조선은 쇄국정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일본의 속셈은 식민주의적 침략의 첫발이었다. 정식 명칭은 '병자수호조약'이다.


조약의 주요 내용


(1조) 조선의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5조) 부산항 외에 2개의 항구(원산, 인천)를 개항한다.

(7조) 일본의 해안 측량 허용

(10조) 영사 재판권 인정


몰락의 시대


몰락의 원인은 조선 내부에서 발생한 부정부패였다. 1888년 함경도 영흥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났다. 그 원인은 함경남도 병마사 이용익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함경도의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인 이용익은 임오군란 때 왕비 민씨와 고종 사이에 연락책을 수행한 공로로 벼슬을 얻은 인물이었다. 


이 무렵 그는 영흥에서 사금을 채굴, 고종에겐 신임을 얻었지만 백성들에겐 가혹한 수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민란을 수습코자 고종은 이용익을 파직했다. 이후 함경도 감사에게 사건의 진상을 철처하게 조사해 백성의 울분을 달래라고 명령했음에도 감사 이돈하는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영의정이 사직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 중 이런 글이 있었다.


"민란에 대한 조사를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탐학貪虐한 관리를 통렬히 징계하여 민심에 흔쾌히 사죄하기를 하였습니까?"


이에 고종은 민란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보고하도록 조치하고, 함경도 감사와 영흥부사에게 사건 처리를 제대로 수행못한 것에 대한 죄를 물어 각각 유배령을 내렸다. 또 파직시켰던 이용익도 전라도 나주로 유배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이용익은 석방된 후, 1891년 1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로 복직했다.


1888년부터 1896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민란과 소요 사태가 잇달아 발발했다. 영흥민란 이후 1889년 1월 함경도 길주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했고, 충청도 보은과 전라도 삼례역(1892)에서 동학농민들이 집회를 열고 척왜척양斥倭斥洋을 외쳤으며, 급기야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대항하는 동학농민봉기가 발발했다. 


동학교도 전봉준 등 60여 명이 2회에 걸쳐 조병갑의 학정을 시정 요구(1893년 11월)했음에도 가문의 권세를 믿고 오히려 농민 대표들을 잡아 하옥시키고 고문까지 했기 때문이다. 전봉준이 이끈는 농민군은 1894 4월 부안을 점령하고, 관군마저 대파하는 등 정읍, 흥덕, 고창 지역을 장악하더니 영광, 함평, ㅁ무안 일대를 거쳐 전주성까지 점령했다. 이에 조선은 청나라에 병력 파견을 요청했다.


1894년 6월, 일본 군사들이 대궐을 난입해 궁궐 시위 군사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청나라 이홍장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후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에 파병 사실을 통고했다. 이미 청군 파병를 감지한 일본은 조선에 파병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청나라와 일본 간에 전쟁이 발발한 징후를 보이더니 경복궁을 장악한 일본군은 해군을 동원,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기습 격침시키고 아산에 상륙한 청나라군을 격파함으로서 개전 5일만에 조선땅에서의 전투는 일본의 완전 승리로 종결되고 말았다. 


이후 일본은 청나라 요동 지역을 공략해 뤼순과 다렌을 점령하고 이어서 산둥반도의 북양함대 기지를 공략하자 위협을 느낀 청나라는 강화회담을 요청했다. 서구 열강들이 이 전쟁에 간섭하자 일본도 결국 종전을 결정하고 강화조약에 나섰다. 그 결과 4월 17일 시모노세키조약이 성립되었다.


조선은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 개혁을 실시했다. 소위 갑오개혁 또는 갑오경장이라 불리는 혁신 조치였다. 1차 개혁은 청나라에 대한 사대정책을 반대하고 서양과 일본 문물을 수용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2차 개혁은 개혁 기구였던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일본에 망명했던 박영효와 서광범을 내무대신과 법무대신으로 임명함으로써 김홍집과 박영효의 연립내각이 들어선 셈이었다.


김홍집의 3차 개혁은 '을미개혁'이라고도 불리는데, 초기엔 박정양 중심의 친미, 친러파가 득세했다. 미우라 일본 공사가 새로 부임, 일본군을 동원해 왕후 민씨가 살해되는 을미사변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김홍집 내각의 친일적 성향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이 개혁의 핵심은 태양력 사용, 단발령 실시, 독립 연호 사용 등이었다. 하지만 고종이 김홍집 내각을 믿지 못해 아관파천(1896)이 단행됨으로써 김홍집 내각은 붕괴되고 말았다. 성난 백성들에 의해 김홍집은 살해되었고, 유길준, 조희연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명성황후 민자영에 대한 평가는 아주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 한쪽에선 약소국의 왕비로서 외세를 적절하게 잘 이용한 매우 뛰어난 인물로 묘사하고, 반면에 다른 쪽은 민씨 외척 정권의 우두머리로서 조선 몰락의 주범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 한쪽에선 매우 검소하고 조용하며 고종을 영리하게 내조한 왕비로 평가한 반면 다른 쪽은 무속에 빠져 국가 재정을 함부로 낭비한 인물로 비난하기도 한다. 어쨌든 간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제거해야만 조선 정벌이 완수된다고 여겼을 만큼 가장 무서운 政敵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러일전쟁(1904)에서 일본이 승리함로써 조선은 이제 비빌 언덕이 사라진 셈이다. 서구 열강들은 두 나라의 전쟁을 디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며 러시아의 승리를 점쳤지만 말이다.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선제공격을 감행했고, 러시아 정부는 무척 당황했다. 이때 일본은 뤼순항을 봉쇄하여 러시아 함댕의 진출을 막는 작전을 진행했다.


1905년 5월,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고 이어서 1906년 경의선 철도를 완전 개통했다. 이는 조선의 경제 발전을 위한 구상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원활한 수탈과 대륙 침략을 위한 전쟁 물자의 용이한 보급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부산물이었던 셈이다.


마침내 치욕의 을사늑약이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되었다. 유명무실한 대한제국의 국권國權이 본격적으로 강탈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국 땅에 불법적으로 군대를 상륙, 대한제국의 행정력을 장악하고,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해 재정과 외교 실권을 박탈햇다. 이어서 군사 목적을 내세워 독도를 강탈, '다케시마'라는 명칭으로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당시 대한제국은 독도를 '석도'라는 이름으로 울릉도에 예속시킨 상태였다(1900년, 황제 칙령).



울분이 넘쳐 난다


책은 고종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누락되고 편향된 고종 시대를 다시 보기 위한 최소한의 복원 작업의 일환이다. 저자는 고종을 제대로 봐야 비로소 한국 근현대사가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서문에서 책의 집필 동기를 밝혔다. 조선 말에서 대한제국의 출범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역사 #한국사 #조선역사 #대한제국 #고종황제실록 #박영규 #옥당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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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곧 비즈니스다 - 성공을 창조하는 공간의 비밀
이현주(줄리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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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에 걸친 학업과 실무 경험, 그리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디자인이 비즈니스 성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각적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함께 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비즈니스에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



저자 이현주(줄리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컬리지 오브 더 아츠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환경 디자인 과정을 수료한 후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지형과 기후, 사람의 삶이 공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경험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나이키 등 유수 기업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해 왔다.


책은 비즈니스 공간 디자이너로의 성장(파트1), 공간의 무엇이 우리의 감정을 흔드는가?(파트2), 브랜드 정체성과 고객 경험을 반영한 공간 전략(파트3),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업무 공간 전략(파트4) 등 4개 파트 36개 챕터로 구성되어 공간이 어떻게 성공을 창조하는지 그 비밀을 풀어낸다.


공간 디자이너로의 성장


디자인은 사람들의 경험을 설계하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며,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다. 저자의 디자인 여정은 '추억'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갔던 레스토랑은 약간 어둡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꽃을 연상시키는 컬러풀한 스테인드글라스의 따뜻한 색감이 빛과 어우러져 공간 전체를 포근함과 더불어 특별한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더해 주었기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국제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16살 때 미국 뉴저지에서 생활할 적엔 자연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했다. 중산층 주택가에 위치한 목재 구조의 하얀 단독 주택에서 지내며 호스트 가족과 함께 넓은 뒤뜰에서 놀거나, 뒤뜰이 보이는 식탁에서 그림을 그리며 여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 잠자리에 들 즈음 방 창문을 통해 달빛이 들어오는 풍경은 신비로웠다. 서울에서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남부의 조지아에서의 삶은 한국에서 살던 방식과 크게 달랐다. 호스트 가족의 생활 방식을 통해 공간이 어떻게 가족 간의 상화작용에 중요한 영행을 미치는지를 경험했다. 저녁 식사 시간엔 가족 모두가 라운드 테이블에 모여 로스트 치킨과 사이드 디쉬를 나누고, 하루 동안의 일상에 대해 얘기하는 풍경이 따뜻했다.


대학 진학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중 어디를 택할지 고민하다가 학교 네임 밸류보다는 도시의 분위기와 그곳에서의 경험을 더 중요시해서 최종 샌프란시스코 CCA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 도시와 자연환경이 서로 상호작용 하는 방식을 통해 디자인적 영감을 얻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학업을 마친 후, 동부의 디자인 접근 방식이 궁금해 뉴욕의 복잡한 도시 환경과 역사적 건축물들을 통해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파슨스에서 환경디자인을 공부했다. 뉴욕의 디자인은 역사와 현대가 교차하는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미에서 더 깊은 학문적 탐구를 이어갔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건축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지형과 기후가 건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선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건축 디자인 과정에 참여했었다. 또 글로벌 프로젝트와 외국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이 사람, 브랜드, 문화 등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성찰했다.


공간과 우리의 감정


왜 어떤 공간에선 우리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다른 공간에선 창의적 영감을 받는가? 무엇이 그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이는 단순히 공간의 미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공간은 우리들의 모든 감각을 끌여들여 감정적으로 소통한다.


색상은 사람의 감정과 반응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도구다. 따라서 색상은 비즈니스 공간에서 고객의 경험과 직원의 생산성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색상에는 각각 고유의 감정적 코드가 있다. 파란색은 흔히 신뢰와 차분함을, 녹색은 부드러운 촉감과 자연의 온기를, 빨간색은 뜨거운 열기와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노란색은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보라색은 우아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통해 평온함을 준다.


(사진, 서도호 작품 '집 속의 집')


좋은 색상 전략은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사용자에게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고,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색상은 고객이 브랜드에 대한 첫인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직원들에게는 일터에 대한 긍정적인 애착을 부여한다.


브랜드 정체성과 고객 경험을 반영


브랜드 공간은 부랜드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잘 설계된 공간은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 스토리를 시각적, 정서적, 경험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고, 그 기억이 장기간 동안 지속되도록 만든다.


브랜드 DNA는 공간 디자인의 시작점이다. 브랜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디자인은 그저 장식에 그칠 뿐,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브랜드가 어떻게 고객과 소통하며,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지를 공간을 통해 보여주려면 결국 디자인은 브랜드의 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브랜드 DNA를 이해하려면 먼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브랜드는 누구인가?, 고객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브랜드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고객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DNA를 기반으로 한 공간 디자인은 고객과의 '정서적 연결'을 강화한다. 이는 고객이 브랜드와의 경험을 통해 감동을 느끼도록 만든다. 공간 디자인이 브랜드 DNA와 일치하지 않을 때, 고객은 혼란을 느낀다. 즉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불일치할 경우 고객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이는 철학이며, 가치이고, 고객과의 관계를 맺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고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그 답은 공간에 있다. 그렇다. 브랜드가 가장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공간'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공간은 이미 브랜드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7가지 핵심 전략


색채와 조명 활용하기~ 브랜드의 분위기를 형성

텍스처와 재질 선택하기~ 브랜드의 감촉을 경험

동선과 공간의 흐름 조율~ 브랜드와의 상호작용을 디자인

공간의 형태, 구조, 배치 최적화~ 브랜드의 세계관을 형성

공간의 스케일과 비율 조정~ 브랜드 존재감을 극대화

향과 소리 설계하기~ 브랜드의 기억을 형성

시간적 요소 반영하기~ 브랜드 경험을 지속 축적


브랜드의 정체성을 반영한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멋진 외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는가"란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색상, 텍스처, 동선, 조명, 공간 속 작은 디테일 등 공간의 모든 요소는 고객의 오감을 자극, 브랜드와의 연결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업무 공간 전략


내가 지금 일하는 책상이 단순히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영감이 떠오르고, 동료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무대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 현대의 업무 공간은 효율성을 넘어 창의성과 인간적인 연결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유연성'이 있다. 업무는 더 이상 고정된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성향 업무의 특성, 팀의 목표에 따라 공간은 자유롭게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한 공간은 집중, 협업, 휴식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환경을 만든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더 큰 자율성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책의 파트4에선 업무 공간 혁신 사례와 전략을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인 사무실에서 어떤 혁신적 공간으로 변화했는지를 다룬다. 또 다야안 근무 스타일을 지원하는 맞춤형 공간이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오피스 공간에서의 호스피탈리티 디자인의 중요성을 살펴볼 수 있다.


나이키는 사무실에 라이브러리 스타일의 집중 공간을 만들어 몰입을 유도하도록 디자인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들을 위해 자리 옆 스크럼 존을 마련해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 곧바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크럼 존이란 팀 내부의 민첩한 의견 교환을 위해 이동식 화이트보드와 스툴들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이다.


업무 공간의 변화가 정말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공간 혁신을 통해 직원 만족도, 생산성, 협업 지수, 브랜드 인지도 같은 지표들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보고하고 있다. 감성에서 성과로, 정서에서 전략으로 이어지는 '공간과 성과의 연결 고리'를 살펴본다.


실사례로 유한킴법리는 본사에 '스마트 워크' 사무실을 도입, 공간 혁신을 이뤘다. 직원 수의 80%에 해당하는 좌석과 라운지를 마련하고 자율좌석제를 시행하여, 임원까지 모든 직원이 정해진 자리 없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좋은 디자인이란


공간의 주인이자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만큼 모든 사람에게 모두 좋은 디자인이란 있을 수가 없다. 공간은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공간은 디자이너의 기준이 아닌 사용자들의 삶의 기준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경제경영 #마케팅 #디자인 #공간창조 #디자인이곧비즈니스다 #이현주 #줄리아 #프란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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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이리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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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지를 분석하고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부동산 투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들을 살펴본다면, 실수를 줄이고 더욱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투자자로서 우리의 행동은 심리적인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 '서문' 중에서



저자 아이리는 젊은 나이(28살)에 결혼, 월 150만 원 월급쟁이로 시작했지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밤낮없이 부동산 공부에 매달린 결과 아파트 투자로 80억 대 자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잠실 파크리오를 포함 강남 아파트 3채를 무대출로 보유하고 있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평범한 월급쟁이, 부동산에 눈 뜨다(1장), 큰돈 되는 아파트는 따로 있다(2장), 시장은 왜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가?(3장)에 걸쳐 32가지 이야기를 통해 어떤 아파트에 투자 해야 할지, 좋은 입지의 아파트는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등을 알려 준다.


월급으론 원하는 아파트를 살 수 없다 


150만 원으로 시작한 월급은 계속 올라 200만 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물가가 계속 올라 버는 만큼 나가는 돈도 늘어났다. 하루는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에다 대출을 좀 받으면 1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경제 관념이 미성숙했던 그때는 매월 월급에서 원리금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1년 만에 이 아파트는 7천만 원 넘게 올랐다.


물가 상승보다 실물자산의 가격은 더 크게 뛴 것을 목격했다. 그렇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효과가 생길 때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손해다. 최근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베네수엘라나 이란의 화폐 가치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계란 한 판을 사기에도 벅차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동일한 1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계란(실물자산) 갯수는 점점 적어진다. 월급 역시 마찬지다. 실질 구매력의 하락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특히, 시장 상황에 따라서 부동산 규제는 한순간에 완화되기도 또 강화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또 규제책을 내놓았다. 이같은 변화는 향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언제나 기회는 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노 젖는 기술을 키울 수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큰돈 되는 아파트

아파트 투자를 위해선 제일 먼저 최소한의 보유 돈이 있어야 하며, 또 부족한 예산을 채워줄 수 있는 대출가능액도 중요하다. 그런데, 보통 아파트의 시세는 입지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로 형성되므로 제한된 예산 범위 내에서 성공적인 투자를 하려면 해당 아파트의 입지를 가장 중요시해 분석해야 한다.


(사진, 입지별 시세 비교)

흔히 시세가 비슷하면 입지 또한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세에 입지 가격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의 내외적 요인에 변화가 생기므로 시세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나의 투자 경험을 되돌아보면 IMF 시기엔 대치동 은마와 압구정동 현대의 시세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위 사진에 보듯이 지금은 큰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똑똑한 투자를 하려면 비록 투자용 아파트라 할지라도 매수시엔 실거주를 반드시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거주할 계획이 없다고 생각하면 놓쳐버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 주민센터, 편의점, 할인마트, 음식점 등 아파트 주변의 생활 인프라 여부를 그냥 흘려버릴 수 있어서다. 내가 거주하기에 편리하고 장점이 많다는 것은 임차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실거주자 시각으로 입지를 분석해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배우는 교훈

인간은 이성적이란 말을 믿나요?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냉철하게 분석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즉흥적, 충동적, 주관적인 사고 방식으로 인해 종종 불완전하고 편향된 결정을 내리고 만다. 이는 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거나 자신의 욕심 등 때문에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 대체로 우리의 행동은 심리적인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기 중심성~ 입지 선호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자신감~ 내가 투자하면 성공한다는 자신감
과신편향~ 투자 자체를 멀리하거나, 투자 리스크를 과소평가
군중심리~ 확신도 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한다 

우리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 주관적 판단을 앞세운다. 대충 떠오르는 직감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려 한다. 이를 뇌과학자들은 '휴리스틱'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인류의 선조들이 생존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쌓여진 본능인 셈인데 오류가 많아도 물론 장점도 있다. 

부동산 투자에 정답은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동산은 정책의 방향에 따라 시세의 변동이 결정된다. 규제가 있을 때마다 투자관이 흔들린다면 섯부른 매매로 오히려 나중에 더 큰 상실감에 빠질 수도 있다. 바로 '기회비용 손실'이다. 투자 유행에 휩쓸지 않고 나만의 기본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 

#재테크 #부동산투자 #기본으로돌아가라 #아이리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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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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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여명>은 그의 방대한 사유 여정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종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선악의 저편>을 니체 철학의 결정적인 텍스트로 떠올리지만, 사실 니체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철학적 '대전환'은 바로 <여명>에서 시작되었다. - '작품 해설(니체가 도덕을 해부하는 네 단계)'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9세기 후반 유럽 철학의 전환을 이끈 사상가이며, 전통 도덕과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인간 존재의 역동성과 해석의 힘을 강조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젊은 시절 고전문헌학자로서의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바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초기 연구를 이어갔다. 


총 세 개 파트로 구성한 책은 도덕적 편견, 도덕 감정의 역사, 종교적 삶 등의 주제로 니체가 펼친 철학적 사유 중 초반의 핵심 사상을 엮었다. 이는 우리들에게 널리 읽혔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지나 본격적으로 장기간 유럽을 지배해 온 도덕에 관한 비판적 사유를 정교화시켰던 작품이다.


(사진, 책의 목차)


그는 도덕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즉, 우리들이 이미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도덕道德'이란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아마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냥 수용했을 듯한 그런 내용들이다.   


도덕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왜 이것을 선善하다고 느끼는가? 

도덕 감정은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가? 


니체의 <여명> 원본은 다섯 권이라고 알려진다. 지금 읽고 있는 <여명1>은 원본의 1~3권을 한 권에 모아 엮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니체의 철학적 사유 흐름을 정확하게 따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인 듯하다. 먼저 도덕적 편견(파트1)에선 당연시하는 도덕적 감각은 사실상 편견의 역사를 추종하는 것이라는 사유이다. 


이어서 도덕 감정의 역사(파트2)에선 '도덕 감정'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삶(파트3)에선 도덕의 뿌리를 더욱 깊게 파고들어 종교의 심리학으로 확장되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니체 철학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보자.


도덕적 편견 


니체는 이 책에서 우리의 판단 기원을 물고 널어진다. 우리들이 별로 의심하지 않는 대상인 '도덕道德'에 관해서 지금껏 우리들이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는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란 전제前提 자체에 대해 의심을 표하며 오히려 묻는다. 즉 정말로 '좋은 것'인가?, 단지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그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도덕을 문제 삼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태도 자체를 비판하는 셈이다. 우리는 도덕을 자연의 일부처럼 "주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건다. 도덕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란 것이다. 


도덕을 자연적인 것,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수용하는 태도를 깨뜨리고 도덕이란 '만들어진 것'으로 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가 사용한 방식은 계보학이다. 이는 일종의 족보 내지는 혈통을 추적하는 것으로 "어떤 가치나 관념이 어떤 과정과 사건을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언제 이런 도덕 개념이 등장했는가? 

어떤 필요에서 생겨났는가? 

후대 사람들은 도덕 개념의 출생 비밀을 어떻게 잊어버렸는가? 


(사진)


계보학은 "더러운 역사"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즉 도덕, 진리, 양심, 죄책감, 형벌 등의 단어를 뒤따라가면 항상 피, 폭력, 강제, 오해, 우연, 욕망 등이 엉켜 있다. 그렇다. 니체는 이런 역사의 더러운 모습을 숨기는 대신에 우리들 정면에 드러낸다. 이런 과정을 밟는다.


당연하게 사용하는 가치 하나를 고른다(이타심, 양심, 죄, 책임 등) 

그 가치가 등장한 역사적 자리와 사회 구조를 살핀다(귀족과 노예의 충돌)

도덕 개념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오늘날 그 개념을 얼마나 '무구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니체의 계보학은 도덕을 없애려는 파괴 작업이 아니라 도덕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도덕이 특정 시대와 급, 종교의 필요에 맞게 형성된 것이라면 다른 시대, 다른 인간 유형을 위한 새로운 가치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도덕 감정은 인간 본연의 목소리나 신성한 계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훈련된 결과물이며, '도덕적 편견'이란 이런 훈련의 산물을 '본능' 또는 '양심'이라고 착각하고 그 기원과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그 자체를 말한다. 그래서 그는 도덕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둔갑하게 된 수천 년의 철학적, 종교적 전통을 먼저 해체한다. 


플라톤의 전통은 도덕을 '선의 이데아'와 연결하며 영혼의 질서로 규정했다. 기독교 전통은 '선의 이데아'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재해석했다. 도덕적 선악은 신의 법, 계율, 양심과 직결되고 인간은 '내 안의 신의 목소리'를 더 신뢰하도록 훈련받았다. 근대로 넘어와 칸트적 전통은 종교를 이성理性으로 대체해 구조를 유지했다. 칸트에게 도덕은 절대적이고 무조건 복종해야 할 '이성의 명령(정언명령)'이었고 이로써 인간의 의무와 복종은 최고의 가치로 격상되었다.


반면 니체는 '이타적 행동은 선하다', '동정심은 착한 마음이다' 같은 감정적 확신들은 집단의 생존 전략, 종교적 규율, 국가의 형벌 체계가 반복되면서 굳어진 역사적 훈련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니체는 해체 작업을 통해 도덕적 개념의 숨겨진 기원을 폭로한다. 우리들은 수천 년간의 전통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도록 이끄는 철학적 해방의 출발점을 맞이한 셈이다.


도덕 감정의 역사 


니체의 핵심 명제는 우리가 본능처럼 느끼는 도덕은 사실 자연이 아니라 역사이며, 진리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덕 감정들이 수천 년에 걸친 관습과 규율의 반복 속에서 굳어진 것임을 드러내며, 도덕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이해를 뒤흔든다.


 "도덕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보통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보고 선하다고 느끼거나, 잘못을 저지른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하는 감정 자체를 자연 발생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니체에게 감정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문화적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이를 밝혀낸다. 도덕 감정이 심리적 작용으로 굳어지기까의 과정을 설명한다. 


우선, 한 집단이 생존을 위해 특정 행동(협력, 복종, 희생)을 필요로 한다. 

이 행동을 강제하거나 장려하기 위해 규범과 제재가 만들어진다. 

이 규범이 장기간 반복되고 내면화되면서 좋고 나쁘다는 감정이 발생한다.

행동의 본 목적은 사라지고, 협력 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감정만 남는다. 


도덕 감정의 변질 과정 


첫째, 선명한 단계

둘째, 희미한 단계

셋째, 자연화 단계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고대 사회에서 복종은 군주의 힘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희생은 종교적 권위를 확립하는 장치였다. 원래의 목적이 희미해지고 옛날부터 그랬다는 관습만 남는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규범에 따른다. 자연화 단계에 이르면, 도덕 감정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본능)처럼 경험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도덕 자체를 본능이나 진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도덕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니체의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도덕은 습관이다'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근본적인 질문이 부활한다. '이 도덕은 나에게 어떤 인간을 요구하는가?', '이 도덕은 나의 힘을 자라게 하는가, 약화시키는가?', '나는 다른 도덕을 만들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종교적 삶 


그 감정들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 양심, 희생 등의 감정은 종교적 삶의 구조 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는 사실이다. 니체에게 종교는 단순히 신을 믿는 교리 체계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 욕망, 두려움, 고통, 위안 등을 조직하는 거대한 감정 기계인 셈이다. 


오랜 세월 동안 종교는 죄책감을 느끼는 방식, 자기희생을 고귀하게 보는 시선, 복종을 덕으로 여기는 습관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반복적으로 새겨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란 속담처럼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행위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만 것이다. 나아가 니체는 오늘날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이 실은 종교가 만들어낸 감정 구조의 세속적 잔재라고 진단한다.



희생~ 나를 버려야 한다, 내 욕망을 죽여야 한다

죄책~ 근본적으로 나는 잘못된 존재로 인식

속죄~ 죄를 씻고자 고통, 보상, 봉사를 해야 한다

구원~ 언젠가 최종적으로 정당화될 거라는 약속의 감정 


니체가 도덕의 뿌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유는 '도덕을 만들어진 양식'으로 인식시킴으로써 다른 도덕의 가능성을 열고자 함이다. 종교적 삶에 관한 계보학은 니체가 이루 전개할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기초 공사이며, 기존의 도덕에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을 준비하는 필수적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여명(새벽빛)을 열다


니체가 말하려는 여명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바뀌는 전환의 순간을 상징한다. 그렇다. 니체는 반도덕주의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의 목적은 도덕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도덕은 '자연스러운 것, 영원한 것, 신에 의해 보장된 것'처럼 여길 게 아니라 이는 하나의 역사적 결과물이므로 우리들에게 '사유의 시간'으로 나아가길 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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