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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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 홍차와 장미의 나날 / 모리 마리 산문집




'모리 마리'란 작가에 대해 잘 몰랐기에 제목만 접했을 땐 홍차 사랑이 대단한 일본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산문집일거고 생각했다. 책을 펼쳐들고 그녀의 생을 요약한 글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모리 마리'란 작가도 참 영화같은 일생을 살다가셨구나 싶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됴쿄대학 의학부를 최연소 졸업하고 군의 지원을 받아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슈퍼 엘리트를 아버지로 두었고 남부러울 것 없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살았기에 먹고 사는것에 큰 관심이 없었을 뿐더라 그녀의 아버지 덕분에 당대 내로라하는 분들과의 교류까지 어렵지 않았으니 당시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유한 삶을 살았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딸바보로 소문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았으니 유아적 정신상태에 머물며 몸만 큰 어른아이란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의 그런 태생적 환경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그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의 시련은 두번의 이혼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했던 것인데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여러 방면의 교류가 있었으니 현실감각이 떨어져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결여되어있다는 것을 빼면 문학적 소양은 충분히 갖출 수 있었던 기반이었기에 글쓰는 것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먹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글쓰는 것만큼이나 요리 또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는 이야기에 이 산문집은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싶었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은 모리 마리라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의 유년 시절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부유한 삶을 살았던만큼 시대를 생각하면 고급집에서의 식사와 백화점 구경, 자신의 집 소개등에서 고민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가씨의 이미지가 떠오를만큼 안락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 속에서도 그녀의 음식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며 먹는 것 못지 않게 요리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요리책인가?' 싶을 정도로 어떤 요리는 어떻게 먹는 것이 맛있으며 재료의 최대 맛을 살리기 위해 담백하게 만드는 법등을 볼 수 있었다.

첫번째 결혼에서 두 아이를 떼내고 이혼할만큼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여겼던 '모리 마리'는 어찌보면 안락하게 살았던만큼 고생문이 훤한 일엔 냉정할만큼의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생활적 여유가 없어 글쓰기를 시작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적인 고단함보다는 행복했던 어린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행복했던 어린시절로 도피하고 싶었던 심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유아기적 글쓰기가 많이 보여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날 하루의 일기처럼 비춰지기도한다. 딱히 문체가 독특하다거나 재미있다거나하지 않지만 할머니한테 들었던 옛날 이야기만큼 여러 유명한 사람들의 등장과 그럼에도 아이처럼 근심걱정 없는 투덜거림이 묘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음식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소설속에서 많이 비춰지곤하는데 재료와 성질과 어떻게 만들면 맛있다라는 간략한 글이 아닌 요리를 하는 과정이 담긴 글들을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곤했는데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그런류의 글에서 아마 시초이지 않았을까란 즐거운 궁금증을 느끼게 되는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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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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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 F 지음




사랑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인데 뭔가 조금 더 심오함이 담긴 에세이인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를 만났다.
에세이하면 일상에서 나도 수없이 느꼈던 것을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문체를 통해 공감하는 글이 많은데 읽자마자 맞아!하고 공감하게 되는 글들이 대부분이라면 이 책은 읽고나서 한번 더 읽고 이해하게 되는 그런류의 글들이 많았다.

이 나이쯤 되면 말랑말랑한 사랑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는데 평소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폭풍 감정에 돌입해 늘 전투자세를 취했던 연애시절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결혼 후의 삶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비록 밤새도록 가슴 두근거렸던 느낌은 가질 수 없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연애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맞아 저 땐 저랬지' 라며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곤하는데 딱히 현실에서 연애감정을 느낄 순 없지만 연애 에세이를 보며 그 시절 두근거림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충만함을 느낄 수 있기에 한번쯤은 아련한 사랑의 기억 내지는 왠지 모를 삶에 대한 활력, 또는 고단한 그때보다 현재가 주는 안락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곤한다.

이 책은 밤잠 설레게하는 사랑과 애증에 관한 담담한 연애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하기가 껄끄럽거나 다소 민망스러운 느낌에 맘편히 할 수 없었던 성에 대한 이야기도 객관적으로 담겨 있다. 재미있는건 성에 대한 이야기는 참 객관적으로 다가오는데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연애 감정은 참 주관적이다 싶을 정도로 공감가지 않는 이야기들을 만나곤 했는데 10년이란 세월의 격차가 있어서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80년대와 90년대의 차이를 넘어서더라도 '우타다 히카루'와 '시이나 링고'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발견하곤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감정도 들었으니 왠지 모르게 심오해졌다가 쿨해졌다가 조금은 건조하고 메마른 사랑이란 느낌과 그럼에도 순수하다는 느낌이 믹스되어 묘한 느낌이 들었던 에세이다. 사랑에 대한 본질은 다르지 않지만 나 때와는 다른 사랑의 표현과 방식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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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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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앞서 영화 예고편을 먼저 접했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사실 예고편을 보면서 낯설지 않은 이야기 거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오직 1%만이 지구상의 부를 움직인다는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보고 그들이 가진 재력이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딱히 피부로 와닿지 않으니 구미가 당겨지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싱가포르의 부호들은 어떤 모습과 에피소드로 독자에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싱글맘인 엄마와 미국으로 이민와 성장한 레이철은 29세로 대학교 교수다. 딱히 인종에 대한 선입견은 없지만 그녀가 만났던 동양권 남자들의 보수적인 면에 질려 어느 순간부터 동양인 남자들과의 교제를 꺼렸던 레이철에게 같은 대학 교수 친구가 새로 부임한 '닉'을 그녀에게 소개시켜주고 만난 날 닉은 레이철의 선입견을 깬 동양인 남성이 된다. 그렇게 2년여의 연애 기간동안 반동거 생활을 하다시피하지만 닉은 레이철에게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린다. 그러던 어느 날 닉은 친구의 결혼식 들러리에 가야한다며 여름방학을 자신과 함께 싱가포르로 가자고 한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가족에게 레이철을 소개하고 싶다는 닉, 둘이 한번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29살이란 레이철의 나이와 2년여의 연애를 통해 어쩌면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녀의 엄마도 닉이 청혼을 하려고 가족에게 소개시켜주는거라며 부추긴다. 어쨌든 레이철은 청혼이건 아니건 닉의 부탁으로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고 비행기를 타자마자 한번도 타보지 못한 최고급 좌석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랜 여정 끝에 도착한 싱가포르, 결혼을 앞둔 닉의 친구 콜린과 그의 약혼녀가 공항으로 마중나와 즐거운 시간을 즐긴 후 호텔 스위트룸에 묵게 된 레이철은 친구의 들러리로 바쁜 닉을 뒤로하고 그녀의 대학 동기였던 페이린을 만나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평범한 자신의 가정과 달리 싱가포르 부모님이 부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레이철은 사심없는 페이린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페이린네 집에 초대받았다가 닉이 들러리를 서기로했던 친구 콜린이 어마어마하게 부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까지도 레이철은 닉의 존재를 전혀 모르며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닉의 할머니댁에 초대를 받고서야 닉의 집안이 미치게 돈이 많은 부자 집안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레이철.

한편 영 집안의 외동아들 닉이 여자친구를 데려온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닉의 어머니는 레이철 집안에 대해 조사하고 그녀가 너무나 평범해서 거들떠 볼 필요도 없는 집안의 딸이란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닉이 레이철에게 청혼하려고 한다고 입방아를 찧고 닉의 어머니 엘리너는 이 사실이 제발 꿈이기만을 바라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국적이나 외모만 바뀌었지 사는 이야기나 그들이 추구하는 물욕의 세계는 인종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부자라는 개념이 얼만큼 있으면 부자인지 그닥 알고 싶지도 않지만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모습들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세계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들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일일이 헤아릴수조차 없는 그들의 삶이 솔직히 부럽게 비춰지진 않았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어느 디자이너가 만든 얼마짜리 물건인지, 어느곳에서 채취되고 가공된 몇캐럿의 보석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고 자신보다 부의 상위층에 있다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아첨하는 인간사의 모습이 그저 보고 있는것만으로도 나는 체력소모가 되는지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는데 그 속에서 가장 빛을 발했던 것은 돈이 많음에도 겸손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닉이 있어 그나마 위로를 받게 됐던 것 같다. 궁전같은 집과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값비싼 부동산들, 기분 내키는대로 물건을 사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재산, 자신이 가진것들을 과소평가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아스트리드의 남편 마이클이 그녀 집안 식사에 갈때마다 느끼는 긴장감, 불편함, 답답함, 지루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의 뼛속깊은 곳까지 꽉 차 있는 자만감과 가져도 가져도 줄어들지 않는 욕심은 어마어마하게 재산이 많다고해도 결코 부러워할 수 없는 부분으로 비췄으니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것에서 완벽할 수 없는 인간사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함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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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은 있는가
이헌모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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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형출판 /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 이현모 지음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일본, 책 제목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나라가 일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어 일본 정치인들의 행보는 우리나라 정치적 관심과는 다르지만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강건너 불구경할 수만은 없기에 매체를 통해 보게 되는 일본 정치 소식에는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것 같다.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로 '아베 신조'일 것이다.

아베 신조의 정치 내력은 삼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정치인에게 쉽게 볼 수 있듯 아베 신조 또한 정치세습을 받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친할아버지와 친아버지와 같은 길이 아닌 아베 신조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의 집안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인데 그저 세습정치인으로만 알고 있다가 아베 삼대에 관한 책을 보며 흥미로운 사실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베 신조가 처음 정계에 발을 들여놨을 때는 애송이로 보는 견해가 많았고 실패도 있었지만 한번의 시련을 겪고 동일본대지진이란 뜻밖의 재난 앞에 무너진 민주당을 발판 삼아 재기해 운이 좋은 사나이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전까지 파벌정치로 일관되어 오던 것을 고이치로가 변혁을 꾀하여 도입한 소선거구제도의 특혜를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파벌정치로 일관되었던 일본 정치계는 파벌이 아님에서 서러움이 많았던 고이즈미가 우리나라와 같은 소선거구제도를 도입하며 파벌정치가 쇠퇴한데 밑거름이 되었고 민주당 정권이 실패하며 여론이 아베로 향했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익의 아이콘으로 비춰져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아베인지라 그 기저에 깔린 심중이 무엇인지에 대해 출간되는 책들 또한 많이 볼 수 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어쩔 수 없이 연관되는 것이 많기에 더욱 예민한 자세로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듯하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정치적 쇼로 더욱 우익의 아이콘임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긴하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집안 내력과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와 달리 의원내각제의 비교, 의원내각제를 통해 총리가 갖는 절대적 권한등을 살펴볼 수 있고 북한의 도발을 자신의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한다는 점 등은 얕은 꼼수로 비춰지기도했다. 사실 이러한 변수들에 힘입어 개헌을 더욱 가속화하는 그의 행보가 더욱 불안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나 매체에서만 보게되는 불안한 요소보다 이 책은 그의 정치 인생 속에 숨어있는 꼼수를 까발리는듯한 느낌이 강해 다른 책들보다 덜 어렵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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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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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홀식스 / 네메시스의 사자 / 나카야마 시치리


와타세 경부 시리즈 첫번째 이야기 '테미스의 검'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 '네메시스의 사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네메시스는 '복수의 여신'으로 와타세 경부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는 갱생의 여지가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사형은 커녕 무기징역이나 형량에 비해 낮은 판결을 받은 가해자들의 가족들이 어느날부터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인것과 같은 방식으로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저명한 교육평론가와 평범한 어머니를 두었던 '가루베 요이치'는 퇴근시간으로 붐비기 시작한 전철역에서 여대생과 12살인 소녀를 칼로 무차별 공격하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의 동기는 그저 타인보다 월등함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으로 현장에서 바로 검거된 가루베는 무고한 죽음을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이란 자각이 없는 인격체로 사형을 받아 마땅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사의 견해로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그렇게 십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가루베의 어머니가 가루베가 피해자들에게 했던 방법과 비슷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진다. 얼마 후 스토커처럼 여자친구를 쫓아다니던 '니노미야 게이고'는 파이프로 여자친구와 그녀의 할머니까지 잔인하게 살해하였지만 역시 사형 대신 18년이란 형량을 받게 되고 가루베의 아버지가 살해된 얼마 후 니노미야가 여자친구를 살해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니노미야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을 죽인것과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당하는 피해자의 가족들, 그들 곁엔 네메시스라는 글자가 남겨지게 되고 사건을 맡은 와타세 경부는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유족들의 짓인지, 아니면 누군지 알 수 없는 제3의 인물이 피고인들이 저질렀던 죄의 복수를 대행하고 있는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

피고인들의 가족들이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후안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반성의 기미는 커녕 자신의 변명만 늘어놓는 범죄자들을 사형시키지 않고 감옥이란 공간에 국민들의 세금으로 건강식과 복지를 누리는 것에 대해 반발을 보이는 여론과 그럼에도 범죄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날선 대립에서 범죄를 저지를 죄인보다 그 가족과 피해자의 가족들의 파탄난 인생, 사형을 내려야 마땅한 범죄에도 '원죄'가 존재여부 때문에 사형을 내릴 수 없는 판사의 고민등 여러 관점에서 적절하게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동안 피해자의 관점에서 감정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졌던 소설방식에 비해 피해자의 가족, 범죄자의 가족, 원죄와 사형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사법체계와 깊이있는 고찰없이 다가가는 언론, 그에 응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생각을 이끌어내고 있어 단순히 범죄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평소 잔혹한 연쇄살인범이나 강간범들의 인권을 주장하며 사진공개나 사형제도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했지만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그 가족이 받아야할 수위높은 사람들의 질타로 인한 가족의 붕괴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과연 사람을 몇명씩 죽이고 연약한 여자들을 잔인하게 강간하고 살해한 살인마들이 사회에 나오면 갱생하여 살 수 있는가이다.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에게 사형이 가장 합당한 처벌이 아닐까하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줄 만큼 경악할 범죄를 저지르고서 그렇게 쉽게 죽이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전에는 몰랐지만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점점 더 모호해지는 것 중에 하나가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일텐데 나는 한결같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이었고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심란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딱히 어느쪽이라고 속시원히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에 접어들어 사적복수가 금지되고 대신 재핀과 사형제도가 자리 잡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재판 제도는 유족의 한을 조금도 풀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기는커녕 괴물 같은 살인자를 극진히 감싸고 죽을 때까지 돌봐 주는 복지 제도였던 겁니다.

가족이 살해돼도 나라는 피고인의 인권과 삶만 지켜 주고 살해된 이와 유족에게는 한 줌의 자비도 내려 주지 않았다. 법정은 복수의 장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유족에게만 일방적으로 인내심을 강요했다.

"개인이 대상이 아닙니다. '네메시스'는 지금 사법제도 자체에 복수하려는 겁니다."

법의 여신 테미스에게 도전하는 네메시의 사자. 저는 이번 사건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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