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동서 미스터리 북스 87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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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재주꾼 리플리」란다. 「태양은 가득히」에 비하자면 좀 웃기고 어쩌면 한심스러운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젊은이의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이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 강렬한 제목에 힘입은 바 적지않다 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푸른 바다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보트위, 구릿빛으로 그을린 상체를 드러낸 알랭들롱. 제목과 배경이 찰떡 궁합으로 맞아 떨어졌고, 거기다가 알랭들랭씨의 강렬한 눈빛을 한번 받게 된다면 이 영화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가 재미있었는 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은 참 멋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큰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제목이다. 「이방인」에서도 눈부신 태양이 문제였지 않나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아마도 마지막에 디키의 시체가 떠오르면서 리플리의 범행이 탄로나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은데, 책에서는 리플리의 완전범죄로(일단은)로 끝을 내고 있다. 권선징악이니 어쩌니 하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리플리의 살인과 사기행각이 성공을 거두는 듯하다가 결국은 들통이 나서 파멸하는 것이 소설적으로 볼 때 보다 드라마틱하고 재미도 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언하자면,「태양은 가득히」가 바로 「금지된 장난」의 르네 끌레망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본 책 표지에 등장하는 알랭들롱씨의 얼굴은 그 주름으로 보건데 아마도 40대쯤은 되어 보인다. 어차피 알랭씨를 표지모델로 쓸 바에는 영화속 20대의 알랭들롱씨를 채용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만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면 출판사에 계시는 분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지 싶은 생각도 조금 들고, 말하자면 40대의 다소 늙은 알랭들롱씨를 표지모델로 쓸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속사정이 따로 있을 것만 같다. 무슨 저작권 문제 같은 거 말이다. 참고로 실제 영화속의 들롱씨의 사진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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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Mr. Know 세계문학 26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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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어의 빙빙 돌려 말하기와 복잡한 완곡 어법은 한국어를 능가할 정도였다. -135쪽

문맥상 우리 국어가 빙빙 돌려말하기와 복잡한 완곡어법에 있어서 지구상에서는 거의 최고봉 수준이라는 말인 것 같다. 정말 그러한지 약간 의문이고, 젤라즈니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하기야 얼마전 신문을 보니 외국인이 습득하기 최고난이도(고난이도가 아니고 최고난이도다)의 언어에 한국어가 아람어 등과 함께 포함되어 있기는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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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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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표지의 사진이 눈길을 잡아끈다.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는 곧고 넓은 황토길, 소들이 어슬렁 거리고 다니는 저곳은 어디일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 불어오면 흙먼지 뿌옇게 일어날 것만 같은......그 길위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On the Road.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모름지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못하는 법이다. 함성호의 시. 사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역마살낀 자의 운명은 객사라.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위에서 우왕자왕 방황하고 있으니 누구도 객사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내외국인 14인과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내용은 소략하고 깊이는 없다. 이제는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듯 이 책에서 특별히 얻을 것은 없다. 14편의 인터뷰가 표지 사진 한 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헛도는 대화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공허하고 무력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것이 터기의 옛 노래라는 것은 무라카미씨의 여행에세이 <먼북소리>를 읽고 알았다. 여행이 가지는 매력(혹자는 마력이라고 하고, 마약이라고도 한다)을 설명하기는 실로 난감하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실 삶 자체가 긴 여행이라면 우리는 지금 여행중이므로 따로 떠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여행을 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또 꿈꾼다.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땅을 파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온 천지를 떠돌아 다니던 수렵시대의 생활은 버렸지만 그 습성의 일부는 여전히 우리 유전인자에 남아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 이 비슷한 소리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여행에는 종류도 많다.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결혼하면 신혼여행, 이별여행, 심지어 자살여행까지, 휴가철에 잠시잠깐 쉬었다 오려고 떠다는 짧은 여행(쉬려고 갔다가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오기 일쑤)에서부터 배낭하나 달랑 매고 수년동안 온 세상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세계 여행에 이르기까지, 멋진 유적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여행에서부터 인생의 비밀이나 삶의 진리 혹은 신을 찾아(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구도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이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인데, 대부분은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여행을 더 꿈꾸기 마련이다. 


길고 오랜 여행에의 꿈이 참기 힘든 냄새를 뿡뿡 풍기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력 또한 대략 단단한 것으로 본인같은 한심한 인사에게 이르면 대충 꿈만 꾸고 잠만 자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어느듯 마흔살을 넘기고 쉰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슬플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직장문제, 주머니 사정, 자녀에 대한 문제, 양가부모의 반대......갔다 와서는 뭘 먹고 살지.......이런 것이 현실의 힘이고 위력인데, 난관이 첩첩산중인 것 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방에 해결할 수도 있다.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임에도 무엇이든 버리기는 싫고 또 어렵다.


각설하고,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무슨 타잔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 저 멀리에서, 아니면 가슴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둥둥둥 심장소리인지, 둥둥둥 북소리인지 여하튼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궁뎅이는 들썩거린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다. 결론은 항상 버킹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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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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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일요일엔가 집구석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이리저리 뒹구부르며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무슨 달인인지 영웅인지에 등극하기 위한 최종 라운드의 고난이도 주관식 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된 것이었다. 청나라 사람 조설근이 지은 장편소설로 흔히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 4대 기서로 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나는 외쳤다. (사실 자신이 없어서 목청껏 외치지는 못했고 그냥 옆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루몽!!큰소리로 외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답은 홍루몽!!이었다. 그래도 두글자는 맞았다.


이건 잠시 삼천포로 빠지는 여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지 퀴즈프로가 유행이다. 생각해보건데,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반드시 정확한 답은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제시한 답이 맞든지 틀리든지 양단 순식간에 속시원하게 결판이 나고, 또 누구라도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밖에 없으며 - 자기 무식을 탓해야지, 구질지리하게 누굴 탓하겠는가 - 프로를 시청하는 인사에게는 은연중에 자신의 유식을 자랑할 기회를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프로를 보면서 우리의 교양이 그럭저럭 자라고 있다는 위안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 퀴즈프로라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고 또 매력이 있다고 할 만한 것이다.


본인은 최근에야 홍루몽은 중국소설이고 옥루몽은 우리나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았는데, 눈을 살포시 감고 입속으로 가만히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옥련몽’이니 하는 몽몽하고 꿈같은 단어들을 중얼거려보면 이 소설들은 기어코 변태들의 변태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야리꿀꿀한 초절정사정 야설이어야만 할 것 같고, 같은데,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성진이 팔선녀를 이처육첩으로 삼아 거느리고 희희낙락하며 살다가 문득 인생의 허망을 깨닫게 되어 불문에나 혹은 도가에나 귀의하게 된다는 그런 허황한 - 구름타고 바람잡는, 이슬먹고 실똥싸는 - 소설인 것도 같고, 같기만 한데, 혹자는 고딩 국어시간에 그 소설들의 정체에 대하여 이미 배웠다고도 하지만 본인의 어두운 이목에는 금시에 초견 초문인 것만 같으니 글하는 자로 실로 그 부끄러움이 태산을 가리고도 남음이 조금 있다 할 것이다.


우선 본인이 옥루몽을 고전 야설로 오해하게 된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니 이렇다(그린비에서는 애정보다는 판타지 - 몽환소설 -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여하튼...) 고딩 국어시간에 배우기로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구운몽이니 하는 이른바 몽자소설들을 흔히 애정소설로도 분류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말하자면 염정소설이라고도 했던 것이니 - 무슨 염장지르는 소리같다. 사실 애정소설은 염장을 쑤시고 지르기도 한다 - 오해의 한 사유이기도 한데,


수호전을 보면 호랑이를 맨손을 때려잡은 무송의 형 무대는(고우영의 수호지에 의하면 그 행색이 쥐새끼 마냥 앞니만 커다랗고 눈은 쪽 찢어진 단추구멍으로 볼품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는 한심한 인사로 등장하는데...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외모와 행색이 왜소하고 보잘것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 마누라는 천하절색으로 얻었으니 바로 반금련이라 하고 결국 사단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무대의 이웃에는 온갖 방중비술을 꿰고 외고 차고 있는 천하제일 제비 서문경이 살고 있었으니 사단이 발생할 것은 말하자면 명약관화 삼척동자도 알만하다 할 것이다. 수호전 중 반금련과 서문경의 그 음탕하고 야리꼬리한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이 부분만 따로 떨어져 나와 <금병매>를 이루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고딩시절 고우영 선생의 수호지를 보면서 그 에로 심심한 장면장면에 심히 민망스러웠던 기억이 금일 새롭다. 이 금병매가 후대 몽자소설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내 오해의 한 부분이 또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옥루몽을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야리꾸리 야설은 아닌 것이 우리의 주인공 양춘곡와 항주 기녀 강남홍이 서로를 사모하는 마음이 절절하여 드디어 달빛 교교한 어느 밤에 양인은 호상간에 그렇고 그렇게 짝짜꿍하며 애정행각을 펼쳐 보이게 되는데... (내 가만 생각해 보건덴, 이 부분에서 글을 읽는 이의 오금을 어느 정도 쥐어짜줘야만 흥미와 관심이 유발도발중에 증폭폭발될 것이고 그리하여 요강을 끌어안고 다음회를 고대원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시를 주고 받으며 형이상학적인 수작을 부리다가 그냥 운우지정을 나누었다는 것이다...형이상학적으로...니미...구름과 비가 어쨌다는 말인지...얼어죽을....<챠탈레 마님의 사랑>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고전 판타지 소설 어쩌고 저쩌고 해도 요즘 젊은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이다. 먼저 작가의 남녀의 역할이나 위상에 대한 생각이 요즘의 생각들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공감하기 난감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사성어들, 한시들,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 시인묵객들의 이름들이 생소하고 또 이런 것들에 대한 대한 역주가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는 것이니 중국 고전에 대한 소양이 없다면 소설의 완전한 이해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인즉 독서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쪽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러므로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고사성어들과 한시들을 가까이 접함으로써 한문학이나 중국학에 대한 이해와 교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모두 읽는 이의 몫이다.


추신 : 양춘곡과 강남홍의 나이가 16세, 14세로 고딩 1학년에 중딩 1학년이니 우리의 어사또 이몽룡이나 열녀 성춘향과 비슷한 연배인 것 같다. 서른 넘어 장가간 본인 생각에 너무 이른 것도 같고 달리 생각해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몸이 따르니 한창 나이에 연애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강남홍이 관청에 메인 기생임에도 소주자사 황여옥의 접대요구를 거절하니 마땅히 직무유기에 해당하여 죄를 물어야 할 것이고, 내 보기에 소주자사 황여옥이 비록 호색하고 방탕하다고는 하나 기생에게 접대를 요구하는 방법이나 태도가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그리 부당한 것이 아님에도 강남홍이 절개와 지조 운운하는 것은 가소롭다는 생각이다. 춘향의 경우도 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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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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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그 내용에 대하여는 주절주절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일단은 재미있다. 재미있다는데 이단삼단사단은 어쩌고 저쩌구 구구단을 외울 필요는 없겠다. 머지 않아 곧 영화로도 나오지 싶다. 사만타 스위팅에는 누가 어울릴까. 좌충우돌 가정부 역할로는 르네 젤위거가 어울릴 것도 같은 데, 국제기업전문 엘리트 변호사라는 직책을 덮어 씌우기에는 어째 조금 난감한 것 같기도 하다. 나다니엘엔 누가 어울릴까? 가이역은 빤질빤질한 사람이 어울리겠지. (사실 가이는 사만타에게 얻어터질 정도로 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이로서는 나름으로 사만타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조금 안된 마음도 들었다. 가이의 말대로 사만타의 가정부 생활은 일종의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가이의 말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당했다.)

우리는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을 소설로서 읽지 않고 사실로, 현실로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논란은 항상 여기에서 싹트는 법이니, 선동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이 영화나 소설을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논란(뭐 그리 큰 논란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심하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다)을 보면서 왜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나 뭐 그런 것들은 학자들에게나 맡겨두고 영화는 그냥 영화로 재미있게 보면 된다. 댄브라운은 저명한 성서학자가 아니다. 그냥 소설가이고 미스터리 작가일뿐이다. 


영국의 유명 로펌 엘리트 변호사의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스캐줄이 6분 단위로 짜여져 숨쉬고 고르기 어렵고, 몇 년동안 휴가 한 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근지사이고, 하얗게 뜬 얼굴로 며칠밤을 지새우는 것도 여사며 다반사고, 자신의 생일을 두 대의 전화기와 함께 해야 하는 일도 감내해야 하고, 모든 주말을 기꺼이 반납해야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자리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은 그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세계 유수의 휴양지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우리같은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산해진미로 만찬을 즐기며, 수시로 또는 때때로 이런저런 모모한 유명인사들과 사교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엄청난 돈을 벌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받는 그런 자리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후에는 어떻게 될까 책을 덮고 가만 생각해 본다. 길어야 수년, 짧으면 몇 개월만에 그들의 밀월관계는 끝날 것이다. 사만타같은 여성이 시골에서 정원사의 아내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원봉사 변호사(영화 패밀리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2의 삶을 살 때, 마누라 테아 레오니가 했던 그런 역할)같은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국 사만타는 런던으로, 나다니엘을 콘웰로 각자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적한 시골에서 소박한 직업이지만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며,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고, 단추도 달고, 푸른 하늘도 눈에 담아보고 서늘한 바람도 얼굴로 맞아보며 멋진 남자와 사랑도 하며 사는 삶도 한 삶이겠고, 유명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로 눈코가 어디갔다 붙었는지 모르게 바삐 돌아가며 수천만 파운드를 주무르고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고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하고 선망을 한 몸에 받으며 사는 삶도 한 삶일 것인데, 역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또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겠다. 국제기업전문변호사가 어느날 문득 가정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가정부가 어느날 자고 일어나 불현듯 국제기업전문변호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수준있는 하이틴 로맨스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최근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은 기억이 감감하다. 영화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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