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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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이라 했던가! 自古로 빛나는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는 법은 없다고 했으니(물론 헛되이 전해진 이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03년도에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두편의 소설로 문학동네신인상, 한계례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말하자면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흘러내리다 흐지부지리 사라지는 그런 유성이 아니라 그 공전주기가 족히 수백년은 되고 또 그 꼬리는 한정없이 길이 온갖 운석들과 작은 소행성들과 우주쓰레기들과 별별 가스 등등을 거느린 커다란 혜성말이다. 색안경끼고 긴머리 휘날리며, 쌍칼을 휘두르며 불현듯 한 무사가 무림에 새로이 출사하게 되었으니 그 쌍칼 맛을 조금이라도 본 강호제현들께옵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일단이단삼단간에 소설은 재미있다. 그 내용을 조금 냉소적이고 무례하게 요약하여 정리하자면 한심두심한 인생들의 딸딸이 같은 이야기라 하겠다. 인생의 패배자들과 삶의 낙오자들을 위로하는 쓸쓸한 연가라 할 만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다 허사(虛事)요 또 모두 허사(虛辭)다. 자기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남들이 어떻게 봐 주느냐도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언필칭 민주주의사회는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한다고 하니 남들이 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주장하고 손가락질 하는데 자기 혼자 괜찮다고 한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은 진실로 득의한 사람이 아니면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 중 하나일 것이다. 하루 한사발 물과 한그릇 밥으로 누추한 거리에 근근히 사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였으나 안회선생께옵서는 그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니 이런분들을 일러 득의한 사람이라 하겠다. 조성훈과 나와 조르바가 과연 득의의 그 높은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본 책을 읽으면서 장정일이나 하루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88의 베이스볼...어쩌고 하는 소제목은 하루끼의 "1973년의 핀볼"을 연상시키고, 조르바도 하루끼가 "우천염천"인가 "먼북소리"인가 어디선가 조르바형 인간, 비조르바형인간 운운하던 부분을 생각나게 한다.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파트너를 거느린 여성동무와의 연애담도 물론 빠질 수 없겠다. 하루끼나 장정일 등은 파격적인 연애담을 무슨 청춘의 자랑이나 훈장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지, 엽기적이고 파격적인 연애의 추억이 청춘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진정 고뇌하며 보냈다는 무슨 증명서쯤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삼미...에서 위 연애담이 꼭 필요한 지 의문이다. 별 시답잖은 위 연애담이 없었다면 소설이 더 산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랬거나 말거나 어쨋거나간에 재미있게 읽었고, 명불허전이고,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다.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80년대 유행했던 대중가요 가사에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찐득하게 붙어있어 어째 조금 쓸쓸하다. 그 옛날에는 번성했으나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옛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며 시라도 한 수 읊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물론 나는 말탈 줄도 모르고 작시의 재주도 없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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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6 - 문벌정치가 나라를 흔들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6
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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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있어 읽을 만한 관련서적을 탐문하던 중 이이화선생의 <한국사이야기>를 아마도 신문지면을 통해서 소개받은 것 같다. 안그래도 반만년 (흔히들 오천년이라고 하지않고 반만년이라고들 말한다. 무슨 장수만세도 아니고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길이 보다는 내용이 충실해야 할 것이고 지나간 역사보다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역사를 관통하는 통사를 한번 꼼꼼하게 통독하고픈 가당찮은 욕심이 없지 않았으나, 이미 출간되어 있는 한국사 통사라 할 만한 책들은 대학교재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읽는데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만 굴뚝이고 정작 한국통사 통독의 거사를 착수해내지 못해 전전긍긍 꿍꿍거리며 에라 니미 아무책이나 붙잡고 읽어볼까하는 생각도 하고 하던 차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 한권 한권이 500페이지는 족히 되고 전체 분량도 수십권에 달하는 <한국사>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 한 번 시작해 볼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고 하던 차에, 여차저차 일차이차 하던 차에 본 <한국사 이야기>를 접하고는 올커니!!! 딱이군!! 무릎을 치며 쾌지나칭칭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뭐 진짜로 쾌재를 부르며 기뻐 날뛰며 깨춤을 춘 것은 아니고 자알 되었다 정도 되겠다. 그때가 2001~2002년도 어디쯤 될 것이다.

한국사이야기 16편은 정조임금 붕어후에서부터 강화도령 철종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유구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민족의 반만년 역사중 어느때인들 슬프고 안타까운 시기가 없었겠나만은 이 시기만큼 가슴아픈 시절도 없을 것이다. 왕조시대의 일이라 아주 오랜 옛날같지만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200년 안쪽의 일들이고, 이른바 조선왕조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불리우는 영정조 시절의 성과와 노력이 일시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마는 암흑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조 역사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면 누구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에서 천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 한심한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자신의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마땅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지만 어째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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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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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소설은 두어 해 전에 <마의 산>을 읽고는 처음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소설의 줄거리도 감감하고 남아있는 특별한 느낌이나 감상도 없다. 골골거리는 환자들이 모인 무슨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프리메이슨이 나오고 어쩌고 했던 기억만 조금 난다.

본인의 기억력이 한심한 수준을 넘어 걱정스러운 단계로 접입가경 접어 들었다는 것은 본인 당자로서는 비록 안타깝고 서글프나 어쨌든 거의 명명백백한 것처럼 보인다. <토니오 크뢰거>를 두세장 쯤 읽다가....우리의 주인공 토니오가 학교수업을 마치고 그의 연모하는 동성친구인 한스 짐머와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대목 쯤을 읽다가..... 문득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슬그머니 드는 것이었는데, 책을 내려놓고 가만 곰곰 궁리를 거듭하던 차에 이문열세계명작산책에서 본 듯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서가에서 '성장과 눈뜸'이라는 부제가 붙은 3권을 꺼내어 펼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떡하니 <토니오 크뢰거>가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본인이 이문열명작산책 10권을 3~4년전에 모두 읽은 것은 확실하니 그 안에 있는 토니오 킈뢰거도 읽었음이 분명한데 읽은 책의 제목도 되새기지 못하는 본인의 기억력으로 책은 또 읽으면 무엇하나 하는 슬픈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본인이 중학교 다닐 때 수집한 영화포스터에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 포스터도 있었는데(영화잡지 스크린에서 주로 오려내었음) 그때는 이 영화의 원작이 따로 있는지 또 토마스만이란 작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다. 포스터에는 동그란 안경을 낀 조금은 소심해 보이는 분위기의 중년남성과 금발에 세라복 혹은 해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얼굴이 가름한 미소년(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다.)이 등장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중년의 남성은 변태 아센바흐이고 소년은 타치오 되겠다. 아센바흐의 타치오에 대한 사랑을 달리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지경까지 와 있고 동서와 고금을 두루 살펴보건데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 뭐 실제상황이라고 해도 미소년 남색 취양이 별 스러울 것도 없겠다. 아센바흐는 헛것을 쫓다가 헛되게 죽었지만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것은 빛나는 두 눈과 감수성을 지닌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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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답사기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 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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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달만에 쓰는 마이리뷰다. 3월 1일자로 본인이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직장에 인사가 있어 한동안 송별회다 환송회다 연일음주소일하고 또 업무파악이다 인수인계다 몇 일 지나고 그러는 동안에 애석하게도 독서에 시간을 도통 할애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던 차, 어느날 문득 입안이 까끌까끌하여 거울을 들여다 보니 아니!! 입안 가득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라.....보나마나 물으나마나 당근 뽕 되겠다. 옛성현들은 체질도 별났더라. 자고로 성인들은 스스로 즐겨 가시밭길로 내달리기도 했느니, 한심한 필부필부들은 단표누항의 괴로움을 견디어내지 못하건만 공문십철의 우두머리 안회선생으로 말씀드리자면, 한 대광주리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버티며 더럽고 누추한 거리에서 근근히 붙어먹는 즐거움을 결코 버리지 못했으니, 아 드높아라 옛성현의 빛나는 성취여....

보통 한달에 5~6권의 책을 읽는 편인데, 삼월들어 읽은 책이라고는 중국문화답사기 한 권이 전부라. 몇자 독후의 소감을 끄적여 보자면......거리거리 골목골목에 온갖 색갈의 색종이 은종이 금종이가 마치 크리스마스 눈발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 가운데 화려현란한 가장행렬 관악대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눈부시게 높고 푸른 하늘에는 에드벌륜 아하 미국과 호주가 그들의 장엄한 200년 역사를 기념하고 자축하며 추억하고 있을 때 중국의 소주는 뒷방 늙은탱이 마냥 조용하게 군시렁 군시렁거리며 자신의 2500주년의 생일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뭐 그런 요지의 글을 읽는 순간 몇가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락가락 하더라

작자의 중국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은근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겠고 또 일부 독자들이 지적했듯이 중화사상의 일단을 감지할 수도 있겠다. 소중화를 자부하는 유구한 반만년 역사의 우리도 가끔은 미국의 200년 일천한 역사를 들먹이며 깔보며 힘없고 돈없는 우리처지를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었다. 만고풍상을 겪은 노옹이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닐진대 (너무 오래살면 노망이 들 수도 있다) 유장한 역사가 반드시 자랑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개혁하고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반만년이 아니라 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 한들 무슨 의미와 보람이 있겠는가. 이런 말이다.......한때 북컬랙터의 소망을 품어보았던 당자 본인으로서는 한 장서가의 꿈이 수대를 걸치면서 펼쳐지는 천일각 스토리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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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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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감독의 영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본인이 그의 영화를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일렁일렁 오다가다 주워 듣고 보기에 그렇다고 하더라. 그의 작품들은 과도한 폭력성과 변태적인 분위기, 여성비하적인 시각으로 항상 논란을 일으켜왔다는 이야기인데, 대개 그렇듯이 코쟁이들이 이런점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대하고 또 관심도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고 보면 김감독의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소식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던 것이다(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종상은 절대 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목하 김훈의 소설을 열심 통독중인 본인이 그의 소설들(칼의 노래, 화장, 현의노래)을 읽으면서 일부분에 있어서 다소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김감독의 수상소식이 전해져서 본인이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일부 관객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에 비슷한 점이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뿐더러 보리밭에서건 뽕밭에서건 아무 관계 상관도 없는 것 같기도하고 하다는 그런 생각들이 뜬금없이 왔다갔다해서 몇자 끄적여 보는 바이오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리 여성동무들을 다소 비하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또 생명을 약간은 가볍게 다루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죽음을 너무 무심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혐의를 품어보기도 했던 것인뎁.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여성이나 생명,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작가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 이입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도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간에 대한 편애없이 정녕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만 인간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본인 멋대로 분석도 해보고 하고 했던 것인데 어쨋건 그런 생각들이 오락가락 들락날락 했다는 이야기

야로의 행위는 과연 무슨 개똥철학을 품고 있는 지 요령부득이고 - 우륵의 소리에 대한 대척점으로 야로의 쇠를 너무 부각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 비화가 꼭 뱀에 물려 죽어야만 했는지, 순장궁녀가 잡혀 죽는데 그를 보호한 우륵과 니문이 무사한 점도 의문이고, 이런저런 점에서 내가 소설을 소화해내지 못한점이 많아 통석의 념을 금할 길 없다. 일언이폐지하자면 칼의 노래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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