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위로 - 누구도,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이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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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변(多辯)의 서술이나 위로가 아닌 ,말줄임표의, 사람을 향한 셰프의 `맛있는 위로`. 맞잡은 두 손의 온기 같이 조용하고 따뜻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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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습니까 - 영화감독 김종관의 60가지 순간들
김종관 지음 / 우듬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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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멀리 밤바다로 떠밀려 왔고 다시 저 멀리 내가 떠나온 마을의 불빛들이 보인다.` 우체부의 마지막 임무같이,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의 앤솔로지.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 다시 펼쳐볼 `便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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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

 



       외출했던 옷 그대로 식탁에 앉아 자괴한다
       모든 남의 것이라는 게 이렇게 마땅치 않구나
       나이 오십도 남의 것 같고
       마이스터 에카르트 영성 청강도 남의 학교의 남의 것
       아침 9시 강의에 맞춰 용을 써 채비해 나갔건만
       왜 굳이 계단을 한 층 더 올라 딴 강의실에 가 넋을 놓고 앉아 있었을까
       놀라 뛰쳐나가 아래층으로 내달렸지만
       중세영성신학의 문은 굳게 닫히고
       들어갈 용기 안 나 집으로 허무히 돌아왔다

       우우, 난 치매야
       중세영성신학이 뭣이 어떻다고?
       밝다고? 어둡다고?
       다시 찾아 촛불 돋우고 싶었던
       젊은 날 내 '영혼의 어둔 밤'
       어두웠으나 밝았던 내 중세의 깊고 푸른 옥탑
       결국 지나간 남의 것 아니런가?
       전화벨이 틀어지게도 울어 신경질적으로 받으니
       작고 낮고 조심스러운 동창생 목소리
       나 지금 우울하거든, 끊자고 말하려는데, 얼라리
       오늘 아침 일을 줄줄이 사설을 붙여 대환란이라도 당한 듯 쏟아내는 거였다
       전화통 저쪽이 쥐죽은 듯해 말을 좀 쉬자 동창생년이 읊는다
       너 일주일 안에 안 죽으면 다음주에 그 강의 들으러 다시 갈 수 있어

       죽는다는 말에 풀이 확 죽었는지
       다음주가 있다는 말에 영혼의 어둔 밤 눈꺼풀이 확 들렸는지
       그만 내 목소리 수굿해지며
       그렇구나, 맞다. 그 사실을 깜빡 잊어먹고 있었네
       밝은 알전구 같은 대답을 하는 거였다

       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 다음주가 있다고
       뭐든지 이렇게 바르게 생각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끊어버리려던 동창생년의 전화 한 통화가
       오늘 놓친 중세영성신학보다 못하지 않게
       내 귓구멍을 뜻밖에 제대로 움직여줬다

 

                                            -이진명 詩集, <세워진 사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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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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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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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말고는 아무도

 

 

 

          올해 막바지 팔에 금이 갔다

 

          빙판에 미끄러졌나 보지

          결국 그 선배 멱살을 잡았구나

          친구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 던지고

          가만히 등 뒤로 와서 너는 자해한 거 아니냐며 킬킬거린다

 

          얼마나 멋진 밤인가

          어둡고 캄캄하고

 

          우리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가득 차서

          구체관절인형을 가지고 놀듯 서로를 만지작거린다

 

 

 

 

 

           꽃다발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

           해놓은 길이었다

 

 

 

 

                                             -김이듬 詩集,<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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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 詩人, 진은영은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썼지만 나는, 곧 저마다의 하루치 삶을 살고 돌아 올 식구들에게 저녁밥을 무엇을 줄까, 고민중이다. 푸른 파를 송송 넣은 뽀얀 사골국을 줄까, 아니면 파란 애호박에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줄까 .

 문득 -우리는 매일매일-의 시인의 말을 꺼내 본다.

 

 

 


 


대학 시절, 성수동에서 이대 입구까지

다시 이대 입구에서 성수동까지

매일 전철을 타고 가며 그녀를 상상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 만약 당신이 앉아 있다면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

 

 


 어젯밤엔 S와 Y랑 '바위 소리'에 갔다.  비닐을 친 야외천막에서 난로에 손을 쪼이기도 하고

촛불들이 출렁이는 어두운 실내에 들어가, 여전히 블랙러시안과 호가든을 마시며 많은 말은 없어도 그냥, 함께 있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내다 S에게서 최승자의 시집을 한 권씩 받았다.

 '쓸쓸해서 머나먼'과 '물위에 씌어진'.

 

 누구에게나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 가 있었던 날들을 생각한다.

 오늘같이 무력한 날은 언 땅을 비틀거리며 걷다 온 기분이기도 하고, 아니면 허공 속에서 잠 없는 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최승자를 문득 생각하는 그런 날이다.

 

 

 

 

 * 이 詩集의 詩들 전부가 정신과 병동에서 씌어진 것들이다. 라고 쓴 시인의 말을 읽으며 '물위에 씌어진'의 詩 한 편을 읽으며  빨리 식탁을 차려야 할 것이다. 나의 저녁은.

 

 

        most famous blue raincoat*

 

 

          산뜻하게 너는 떠나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나는 옷을 갈아 입는다

          너 떠난 지 이미 오래지만

          나는 늘 현재형으로

          '너는 떠나고'라고 쓴다

          푸른 우산을 갖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없는 너를 찾아 나가기 전에

          most famous blue raincoat를 듣는다

          그 노래에서는 언제나

          존재의 서글픈 아름다움이 흘러 나온다

          산뜻하게 너는 떠나고

          나는 블루 레인코트를 걸치고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듣는다

          most famous blue raincoat의 추억을

 

         *most famous blue raincoat: 레너드 코엔이 부른 한 유행가 제목

 

 

                                                                -최승자 詩集, <물위에 씌어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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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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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2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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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2 1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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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1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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