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은

 

 

 

 

 

     역사의 빛깔

     사랑스럽게 물결치는 슬픔의 빛깔

     저 나무 갈피의 빛깔. (P.4 )

 

 

 

 

 

 

      어둠 속에 몸이 울릴 때*

 

 

 

 

 

      밝은 몸은 보지 않지요

      그사이 꽤 여윈 것도 개의치 않구요

      어떻게 생겼는진 알까 몰라요

      존재 자체만 생각한다구요

      살아있는 말이던가요. (P.165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의 변형

 

 

 

 

 

         성장

 

 

 

 

        채 다 울지 못하고

        크는 나무를

        본다.  (P.201 )

 

 

 

         -오정진 <노란, 깊은>-에서

 

 

 

 

 

 

 

           가렴주구

 

 

 

 

            폐지 줍는 노인에게 삥 뜯기

            컴퓨터만 있어도 TV 수신료 받아내기*

 

 

            그래도 1번?

 

 

            여기는 좀비세상.  (P.8 )

 

 

             *KBS는 2013년 12월 17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 수신료 부과

             대상을 TV수상기에서 TV수신카드가 장착된 컴퓨터,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PC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정책건의서를 함께

             냈다.

 

 

 

 

 

               인권의 어떤 존재양식*

 

 

 

 

 

                모로 길을 비키는 우리를 올려다볼 때

                말갛게 인권이 움튼다

 

 

                온식구가 베란다의 상추꽃을 들여다볼 때

                쑥쑥 인권이 자란다

 

 

                배달받고서 바로 문 닫지 못할 때

                수줍게 인권이 돌아본다

 

 

                장바구니를 걸고서는 행상 앞을 빙 돌아갈 때

                저 만치서 인권이 걷는다

 

 

                자동세차 후 걸레질하는 분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남아서 인권이 서성인다

 

 

                중국집에서 "고추잡채 맛있겠다"던 할머니를 떠올릴 때

                꼬옥 인권이 품는다

 

 

                꼬꼬가 야옹이들과 왁자 놀 때

                꺄르르, 인권이 구른다.  (P.23 )

 

 

                  *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인권영화' [어떤 시선]에 분노한 어느 날들.

 

 

 

 

 

 

 

                       책 이야기

 

 

 

 

                   당신도 기억하는 항구도시의 스피노자와

                   그의 존재에의 긍정과 사랑을 좇는 [공통체]*

                   [율리시즈]**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느낌,

                   조지 오웰이 말하는 '보통 사람들의 품위'.  (P.167 )

 

 

                    * 안토니오 네그라마이클 하트, [공통체: 자본과 국가 너머의 세상],

                      사월의책, 2004.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오정진, <쓰지않은 일기 : 100 days>- 에서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5-11-04 03:13   좋아요 0 | URL
어느덧 노랑이 저물면서 차분하게 쉬는 겨울이 코앞이로군요.
포근한 볕을 품는 하루 누리셔요

appletreeje 2015-11-04 10:58   좋아요 1 | URL
숲노래님께서도
포근한 볕을 품는 하루 누리세요^^

2015-11-04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5-11-04 08:14   좋아요 0 | URL
요즘 딱인 시집이네요

appletreeje 2015-11-04 11:04   좋아요 2 | URL
그런가요? ㅎㅎ
하늘바람님, 오늘도 예쁜 아기들과 좋은 하루 되세요~

2015-11-04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5-11-04 11:0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 무지 좋네요
저는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기분이 더 업입니다

appletreeje 2015-11-04 11:26   좋아요 1 | URL
중요한 미팅 꼭! 만족하실 만한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빕니다~~

하늘바람 2015-11-04 11:08   좋아요 0 | URL
신선한 하루 되셔요ㅈ님

appletreeje 2015-11-04 11:26   좋아요 1 | URL
네~하늘바람님께서도 신선한 하루 되셔요 ㅅ님 ㅋㅋ

하늘바람 2015-11-04 11:28   좋아요 0 | URL
넘 감사해요 님

appletreeje 2015-11-04 11:38   좋아요 1 | URL
저도 감사해요 ^^

2015-11-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장 완전하게 다시 만든 앨리스 가장 완전하게 다시 만든
루이스 캐럴 지음, 정회성 옮김, 존 테니얼 그림 / 사파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직 즐거움만 주려고 만들어진 동화˝인 이 책은, 축약본에선 볼 수 없는 영어 동음이어의 언어유희와 기발한 상상력, 멋지고 아름다운 삽화로 굉장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150년 전에도 그랬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신선하고, 재미있고, 기발하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31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11-09 16:41   좋아요 0 | URL
앗. 팔랑팔랑~ 귀가 팔랑거리고 있어요 ㅎㅎ
앨리스 추천받은 책이 있긴 한데 완역본이며, 애플 트리제님의 글 때문에 이 책도
막 구입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ㅎㅎ

appletreeje 2015-11-09 21:31   좋아요 1 | URL
판형과 활자체가 큰 것 외엔, 무삭제 완역본이 주는 언어유희의 즐거움과
멋지고 아름다운 삽화로 너무나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
단점이라곤, 이 완역본을 읽은 후 다른 축약본들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ㅎㅎ
 

 

 

 

 

 

       칼국수 빚는 저녁

 

 

 

 

 

      너에게 가는 두근거리는 악보다

 

 

      홍두깨 대신 소주병으로 꽁꽁 뭉친 구름을 밀어보자

      아니 저것은 눈덩이고

      하룻밤의 약속이었던 것

 

 

      끈끈히 달라붙는 저녁을 떼어내면서

      수년 전 어느 외진 마을의 흐느낌을 밀가루 반죽에 밀어

      넣는다

      눈이 날리다 그쳤다 한다

 

 

      한 여자의 무거운 밤이 날아가 언 강에 떨어진다

      그걸 받아 결심한 강이 쩌렁쩌렁 울린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로 눈앞의 생이 초설처럼 웃

      는 곳

      말랑거리는 구름의 속삭임과 오래 뒤척여 납작해진 밤의

      표정이 뒤섞여

      노래의 흰 뿌리들이 풀려 나온다

      잘게 썰어 반듯해진 마음의 다발들

 

 

      후루룩거리며 남자가 먹는 건

      한 여자의 븕은 벼랑으로 빚은 나직한 평화

 

 

      너에게 닿아 끓고 있는 밤이 오래도록 저물지 않는다  (P.90 )

 

 

 

 

 

 

         농성장

 

 

 

 

 

      시청 앞이 발생한다 어둠이 있어 눈 밝은 문장이 지나가

      고 툭툭 끊어지는 쉼표는 고독의 방식을 고수한다 저곳은

      너무 환하여 어두운 바깥이다 나는 시청 앞을 외투처럼 입

      고 겨울 밖으로 재치기와 함께 튀어 나간다 재채기는 바닥에

      깔아놓은 바닥을 완성한다 잘 찢어지는 어제의 햇볕이거나

      엉덩이 밑에서 새로 태어나는 차가운 행성이다 붉은 띠를

      두른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태양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꽃

      잎으로 떨어진다 길 가는 사람은 길 안에 있지 않아서 어

      제 저녁 잃어버린 핸드폰 같다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거

      나 혼자 걸어가는 가로등이다 너무 선명하여 잘 보이지 않

      는 색깔이거나 너무 커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앉아 있

      다 밤의 외연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동쪽 가시나무 끝에

      서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이어서 오늘도 땅속을 기어가던 목

      소리들은 붉고 뜨거운 끈으로 광장을 묶고 있다 비로소 얼

      굴이 태어났나 비로소 오늘이 만들어져 오늘이 되었나 시

      청 앞이 발생한다  (P.109 )

 

 

 

 

 

 

           북극 거미

 

 

 

 

 

        사과가 붉은 것은 햇볕의 농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손은

        순록의 뿔이 된다 다 안다는 듯 아이가 물방울처럼 웃는다

 

 

        전화번호를 지우고 주소를 지우고 마지막 저녁의 표정도

        지운다

        새롭게 얼굴을 내민 아침의 각도가 거미줄에 걸려 있다

        거미줄에서 부서지던 햇살들이 폭설로 흩날리던 밤에 나는

        공중의 혈맥을 더듬던 금빛 거미를 찾는다

 

 

        어제 살았던 아침을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씻어내다가 어

        느덧 나는 국경의 눈보라가 된다 열두 시간 전에 이국의

        골목에서 듣던 노래였다

 

 

        사라진 손으로 귀에 도착하지 않은 북극의 물소리를 만지

        는 밤

 

 

        툰드라의 측백나무로 서서 여자의 몸에서 자라는 달을

        본다

 

 

        나는 들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의 중심에서 밤을 포획하

        는 금빛거미를 찾는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손을 잡고 눈

        먼 남자가 천천히 걸어온다 검은 남자의 수 세기를 지나 베

        링해의 어두운 해안에 닿는 저녁

 

 

        내 안의 거미가 긴 다리를 뻗어 얼음 같은 그믐달을 잘게

        씹어 먹는다  (P.24 )

 

 

 

 

 

 

             - 홍일표 詩集, <밀서>-에서

 

     

 

   

 

 

 

 

 

 

                                                     

 

문예중앙시선 40권. 홍일표 시집. 시인은 이전 시집 <매혹의 지도>에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그 대상에서 촉발된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시 속에 부려놓으며,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지는 '매혹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3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 <밀서>에서도, 세상의 존재들에 대해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시간과 대상, 존재와 자아를 빨아들이는 저 '검은' 공간,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외롭고 쓸쓸한 고투를 펼쳐나간다.

"사물의 지루한 정면을 부수어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그곳에는 비록 "벼락과 질풍노도가 있으며, 광기와 혼돈이" 가득할지라도, 시인은 그가 고안해내는 특유의 시적 발화로써 저 깊고 낯선 공간, 광막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저 광막한 미지의 영역으로의 여행은 "존재와 시간을 달리 보려는, 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희망이며, 존재의 이유를 죽음의 내부에서 찾아 나선 한 시인이, 이 세계와 자연을 주시하면서 고안해낸 고유한 실존의 색깔"이기도 한 것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5-10-31 05:23   좋아요 0 | URL
우리가 눈을 감아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줄 안다면
마음으로 서로 읽고 헤아리면서
즐거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느껴요

appletreeje 2015-11-01 22:32   좋아요 1 | URL
예~ 마음으로 서로 생각하며 아끼고 헤아린다면
언제나 즐거운 마음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요~^^

새아의서재 2015-10-31 06:51   좋아요 0 | URL
시...너무너무 좋네요.

appletreeje 2015-11-01 22: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달걀부인님~~^^

2015-10-31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방어가 몰려오는 저녁

 

 

 

 

 

      별들이 앉았다 간 네 이마가 새벽 강처럼 빛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는 아마, 몇 개의 국경을 넘어서

      몇 개의 뻘을 건너서 온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우주 밖 어느 별을 거쳐서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허공에 찍힌 별들의 얼룩 때문에

      누군가 조금 두근거렸고 누군가 조금 슬퍼져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는 것

      우리가 오래전에 만난 나무들처럼 마주 보고 서 있을 때

      그때 마침 밤이 왔고 그때 마침 술이 익었다는 것

 

 

      나는 네 나라로 떠나간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가 알고 싶지만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술이 익은 항아리 속으로 네가 들어가고 나서, 나는

      아주 잠깐 소리 내어 울었던 듯하다

      새벽 강처럼 빛나는 저녁의 이마 위에 누군가 걸어 놓고

      떠난

      모자, 만년필,그 리고 저 많은 빛줄기들 그 아래

 

 

      꽃이 핀다, 술이 익는다, 방어가 몰려온다  (P.48 )

 

 

 

 

 

          -송종규 詩集,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에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3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1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큰소리로  울어라

 

 

 

 

 

       사과는 중력에게 할 말을 잊었다

       네가 놀라

       벌린 입술

 

 

 

       아이들은 찜통 속의 흰 빨래처럼

       시끄럽게 구는 법을 잊었다

 

 

       뒤로 걷는 노인들이

       산책로에 접착면을 흘리고 지나갔다

 

 

       기다란 빛이 쩍 달라붙었다

       표백된 아이들

       알고 싶은 것보다

       궁금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았는데

 

 

       아이들이 쩍 달라붙었다

       야외가 준비한 조심성은 쓸모가 없어졌다

 

 

       너는 쩍 벌어졌다

       사과는 중력에게 할 말을 다하고

       빛을 먹으면 기쁨도 뚱뚱해지는 것 같지 않아?

       대낮의 복판으로 떨어졌다

 

 

       숨죽여 웃어라

       크게 울어라

       적도에는 아직도

       울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P.88 )

 

 

 

         -유계영 詩集, <온갖 것들의 낮>-에서

 

 

 

 

 

 

          기척

 

 

 

 

 

        가을 숲에서 툭,

        두리번거리던 알밤이 떨어진다

        청설모 그림자가 먼저 다가선다

        내 시선에도 그림자가 생긴다

        서로 닮아가는 무게이니

        고요의 눈썹을 달고 있다

        참나무잎이 낙하하여

        풀숲에 떨어진다는 것이

        내 안에 눕늗다

        숨소리가 마중나간다

        그 짝짓기에는 높낮이도 없이

        서로의

        손가락이 가지런히 닿아서 젖는다  (P.83 )

 

 

 

            - 송재학 詩集, <검은색>-에서

 

 

 

 

 

 

               끓는 사과

 

 

 

 

 

             이 가을 가장 뜨거운 것은 사과 씨앗이다

 

 

             어제의 사과에서 몸을 받아 오늘의 사과를 만들어낸 둥근

             목숨 스스로 곡진하여

 

 

             그 열기 어찌할 수 없어 껍질째 빨갛게 끓는다

 

 

             밀양 얼음골 십만여 평 사과바다가 씨앗 하나로 창창히

             깊어지고

 

 

             씨앗 하나로 뜨거워져 넘친다.  (P.17 )

 

 

 

               -정일근 詩集, <소금 성자>-에서

 

 

 

 

 

 

 

                사과나무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다. 몸속에 사과가 쌓인다. 사과가

               나를 가득 차지하면 비로소 사과는 숨진다. 사과가 숨질 때

               나는 사과나무를 본다. 사과나무는 아름답다.

 

 

               때론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먹은 사과들이 내

               게서 탈주하는 것이다. 어제를 살해한 오늘의 태양처럼 빛나

               고 향기 나는 사과들. 사과는 사과나무를 불태운다. 사과나

               무는 아름답다.  (P.17 )

 

 

 

                  -이수명 詩集,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에서

 

 

 

 

 

 

 

                   사과꽃

 

 

 

 

 

 

               비 맞는 꽃잎들 바라보면

               맨몸으로 비를 견디며 알 품고 있는

               어미 새 같다

 

 

               안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닌 것으로

               그저 살아서 거두어야 할 안팎이라는 듯

               아득하게 빗물에 머리를 묻고

               부리를 쉬는

               흰 새

 

 

               저 몸이 다 아파서 죽고 나야

               무덤처럼 둥근 열매가

               허공에 집을 얻는다.  (P.11 )

 

 

 

 

 

                          -류근 詩集, <어떻게든 이별>-에서

 

 

 

 

 

 

 

                     너무 일찍 온 저녁

 

 

 

 

 

                 누군가 이 시간에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

                 아무도 세속의 옷을 갈아입지 못한 시간

                 태양은 한 알의 사과가 된다

 

 

                 사과와 사과

                 뉘우치지 못해 어떤 이는 깊게 울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검은 물을 길어 창문을 넘

                 어오기 전

                 누군가는 태양을 과도로 깍았다

                 태양 한 조각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방안에 같이 사는 거미에게

                 태양 한 조각 거미줄에 걸어주며

                 점점 컴컴해지는 내장을 태양 조각으로 밝히고

                 있다

 

 

                  내장의 구멍은 후세로 난 길

                  안이 밝아지고 바깥이 어두워질 때

                  태양을 대신할 천체의 둥근 공들은

                  태양을 한 점씩 먹고 거미줄에 걸려 환하다

 

 

                  그 저녁, 너무 빨리 와서

                  나를 집어먹은 짐승은 나다.

                  태양의 마지막 조각을 구멍 뚫린 하늘에 올렸네

                  젖은 내장도 어둠 속에 걸어두었네

 

 

                  그렇게 한 저녁은 모래뻘 바지락처럼 오고

                  바지락 껍데기를 뭉개고 가는

                  트럭의 둥근 바퀴밑 어둠 속

 

 

                  쓰게 쓰게 그렇게

                  조개들은 먼 무덤을 부르다가 잠든다  (P.62 )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P.11 )

 

 

 

 

 

                               -허수경 詩集,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

 

 

 

 

 

 

 

 

 

 

 

 

 

 

 

 

 

 

 

 

 

 

 

 

 

 

  

 

 

 

 

 

 

 

 

 

 

 

 

 

 

 

 

 

 

 

 

 

 

 

 

 

 

 

 

 

 

 

 

 

 

 

 

그대가 올 한 해, 땀 흘려 길러 보내 주신 사과의 즙으로 어제도 오늘도  2:1 비율의 '사과소주'를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11월 된서리 내리기 전, 7만 여개의 사과를 따셔야 한다는 그대를 위해   "건배!"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5-10-29 23:03   좋아요 1 | URL
큰 소리로 울어라!!
마음이 시큰하여져 정말 큰 소리로 울고픈 밤입니다^^

appletreeje 2015-10-29 23:10   좋아요 2 | URL
정말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큰 소리로 우는 일조차
힘들어진 세상 같습니다.
언제 큰 소리로 맘껏 울고픈 밤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2015-10-2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9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5-10-30 07:06   좋아요 0 | URL
멋진 사과술 즐겁게 담그셔요.
사과술을 담그며 노래를 부르면
그 맛은 한결 깊어지겠네요 ^^

appletreeje 2015-10-30 08:22   좋아요 1 | URL
예~즐겁게 만들었습니다~^^

한수철 2015-10-30 09:45   좋아요 1 | URL
저도 `기척`을 좋게 읽었습니다.

가끔 등산을 할 때마다 도토리를 입으로 까먹고 있는 청설모와 다람쥐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럼 저는 지나가지 않고 계속 올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이야기 같은데, 청설모는 제가 쳐다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다람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혹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다람쥐보다는 청설모가 맞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려나 메일을 확인하다가, 나무늘보 님의 필명이 보여 모처럼 방문을 했습니다. ^^;

격조했습니다!

appletreeje 2015-10-30 10:14   좋아요 1 | URL
예~ 격조했습니다! ㅋㅋ
예전에 한수철님께서 산에 가시어, 청설모에 관해
쓰신 글들이 생각납니다~^^
`순구`도 보고 싶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불금` 되세요~~~^-^

2015-10-30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