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책장에 체 게바라 평전이 보이고

청년 전태일이 보이고

봉두난발 전봉준이 보인다

죽은 그들이 그렇게 모여 있다

혁명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다

남이 만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다


(P.15)





그저, 안녕




죽고 사는 일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구나

네가 벗어놓은 신발 속에

따뜻한 어둠이 가득 찼다


너의 맨발은 너무나 선명해

신들이 벗겨놓은

비명 같았다

함께 멱감던 시냇물도 말라버리고

너를 데려간 깊은 소도

울음을 멈춘 지 오래


오래전 내 기억을 다녀간 것은

너의 맨발

짫은 여행을 마친

햇살 한줌


(P.58)





지렁이




사는 것은 방향이지

노력이 아닐지 몰라

온몸을 유언으로 남겼다


잠든다는 것은 평화

당신이 가져간 평화만큼

지상에 그늘이 졌다


검은 개미들이

당신이 향했던 곳으로

당신을 나르고 있다


(P.112)




/  윤관 시집, <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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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어 - 양희은 에세이
양희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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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천천히 시간 될 때마다 읽어도, 구절마다 마음에 와닿고 힘이 되는,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바람같은 산문집. ˝바람처럼 스치면서 지나자. 한 번 불어가는 바람이 되어 머물지도, 되돌아가지도 말자.˝ ˝결국 남는 건 마음을 나눈 기억이다. 마음과 마음이 닿았던 순간의 기억이 우리를 일으키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살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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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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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갑자기 죽었는데, 곧장 사라지지도 않고 희미하고 투명한 모습으로 남아 ˝나 리젠(regeneration)됐어요.˝말하며 궁극적 삶의 대상에게 건네는 마지막 ‘사랑의 인사‘.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해지려고 애쓰는 이들을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 보는 것.‘ 저는 이제 어디로 가죠? ˝좋은 곳. 좋은 곳으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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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낙낙 시인의일요일시집 16
조성국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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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얼척없이 난망하고 슬픔에 절인 간장게장 같을 때, 호박꽃 등불 같은 詩 한 편 한 편 읽노라면 ‘언행일치‘의 삶에 기대어 어쨌거나 견디어지고 한줄금 해낙낙 쪽을 향할 수 있는 정제(精製)된, 아름다운 모태어 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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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
이옥토 지음 / 아침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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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름다운 책이었다.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 언어로 기록한 삶의 부력과, 비가시적인 마음의 핏줄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삶에서 모호함을 제한한다면 무엇도 말할 수 없으므로, 살아감으로써 끝없이 확인하고자‘하는 푸른 심해 같은 책. ˝사진을 찍는 일은 대상을 넘어 대상과의 시간에까지 유대를 가지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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