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론 할머니 - 작은 책 2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 비룡소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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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고 아름다운 책 하나가, 내게로 날아왔다. 작은 책속에 작은 그림과 작은 할머니와 작은 동물들이 사랑하며 아끼며 산 이야기가 눈처럼 소복히 쌓여있다. 고운 님들의 눈길과 손길을 거쳐 살포시 다가온 이 책은, 아마 나와 늘 함께... 내내 정답게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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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1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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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0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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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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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0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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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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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가족
고은 글, 이억배 그림 / 바우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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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詩, <5대 가족>과 이억배 님의 놀랍도록 따스한 그림이 어우러진, `풀밭`에서 살고 내일은 또 다른 `풀밭`을 찾아가야 하는.. 5대 가족이 `새끼양의 탄생`을 별빛처럼 만나던 이야기. 그지없이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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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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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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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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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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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8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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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1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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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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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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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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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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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 뜨자마자  내 눈(眼)이 되어준 안경을, 이제야 벗고 잘 준비를 한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몸속에 있던 어떤 울음이/ 더듬이 길게 빼고 연신 어디 먼 별 쪽으로/

제 소리를 송신하고 있었던 게다/ 내 몸이 울음의 집이었던 게다/ 한 심재휘 시인의 '울음의 집'

을 읽다가 ,

 

그리고/ 머리는 떼어 그냥 머리맡에 놓은 채/ 달아오른 프라이팬 옆에 놓여 있어도 꿈꾸지 않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저 달걀 같은 잠을 자보고 싶다.. 처럼

나도 오늘밤은 '달걀 같은 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 설익게 술을 마시고/ 서투르게 노래방에 들렸다가 돌아와/ 깊게 잠든...

밤이 올것인가.

유빙流氷, '흐르는 방'과 "심재휘 시인을 생각하면 소슬한 '적산가옥' 한 채가 떠오른다는"

이홍섭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또 '달걀 같은 잠'을 기다린다.

오늘도 '그림자와 이별하다' 처럼,  전나무 숲속의 자작나무 한 그루, 같이 하루를 살았다.

내일은 아니, 다시 오늘은 또다시.. 효과 빠른 종합 감기약 같은 하루를 살 것이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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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없이

-북쪽마을에서의 일 년

 

 

 

 

밤새 오한으로 몇 개의 뼈가 차고 서럽더니

새벽쯤 되어서야 몸이 따뜻해진다

그때쯤 얼핏 꿈에 들었겠지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많았구나

만화경 속처럼 피었다 지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날 불러 서둘러 돌아보니

머리맡 알람이 운다

빌린 잠을 잔 듯 어릉대는

어수선한 꿈 얘기는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아직 창밖은 희미하여 옛날 같은데

잠자리에 누운 채 눈을 떠보면

식지 않은 몸만 내 것인양

물위로 오롯이 떠오르고 있다

꿈속의 그 많던 사람들 물 밑 아득히

가라앉으며 멀어지고 있다

어느 먼 바람에 잔물결이 잠시 일었다 자고

끝도 없이 넓은 어둠의 수면 한가운데 모로 누워

내 검은 손 하나 오래 쳐다보는 새벽

 

 

 

 

 

북쪽마을의 봄나무

-북쪽마을에서의 일년

 

 

 

 

간혹 북쪽마을에까지 다다른 나무들이 있다

어느덧 그곳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이 있다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며칠 어지간히 따가운 봄볕에도

쉬 꽃을 내놓지 않는 나무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길의 끝을 묻지도 않는 나무

 

 

한 차례 더 몰아칠 눈 폭풍의 봄들을

이들은 얼마나 지나왔던 것일까

서둘러 피운 꽃들을 잃고 돌아서서

몇번이나 울었던 것일까

북쪽마을에는 오월이 와도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묽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연둣빛 그늘에 슬픔의 뿌리를 묻고

두리번거리며 가슴속의 꽃을 매만지기만 하는 나무 

 

 

 

 

 

얼음 평원

-북쪽마을에서의 일년

 

 

 

 

따뜻한 공중을 그는 왜 떠났을까

거미 한 마리가 자작나무 숲 속 물웅덩이의

얇고 투명한 살얼음 위를 걸어

건너편 기슭으로 가고 있다

 

 

그가 걷던 허공에도 물웅덩이가 있고

때로는 살얼음이 얼겠지 하지만 저 거미

오늘은 지상의 얼음 평원을 건너가고 있다

 

 

물의 일기를 쓰듯

가다 서고 가다가 돌아보고

깨어질 것 같지 않은 후회의 평원을 걸어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는 긴 두려움의 문장

 

 

저녁이 온다

더욱 밝아지는 자작나무 숲 어딘가의

이제 막 불이 들어올 집을 나와

그는 왜 아직도 얼음 평원 위를 걷고 있나

 

 

흐르느라 바쁜 물 같은 목숨들은

얼고 나서야 투명하게 제 속을 드러내지

훗날 얼음 한 조각이 녹듯

외로운 영혼이 가족들 곁을 맴돌지라도

지금은 물웅덩이를 다 건너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

드디어 끈끈한 저의 영토에 들기 전까지

거미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살얼음이리라

 

 

 

 

 

징검돌 위에서

 

 

 

 

맑은 날인데

개울물이 뜻밖에 빠르고

징검돌들은 얼굴을 가린 채 젖어 있다

상류 쪽 먼 산기슭에는 언젠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왔겠다

종내에는 비도 그치고 세월은 흘렀겠다

 

 

한데 어찌하여 그날의 빗소리는 이곳까지 흘러왔나

눈 감은 징검돌 사이에서 왜 소리 죽여 울고 있나

 

 

지나간 어느 먼 날에

처음 발 앞에 돌을 놓으며

개울을 건너가려던 한 사람 있었겠다

마음을 점점이 떨어트리고

기어이 개울을 건너간 사람이 있었겠다

 

 

서로 손을 잡을 수도 없고 거둘 수도 없는

징검돌 사이의 쓸쓸한 간격을 따라갈 때

어느덧 익숙한 보폭 아래로

사무치도록 투명한 물이 흘러갈 때

지울 수 없는 물의 무늬들만 흘러가지 못할 때

 

 

이런 날은 내 가슴속에도

물을 건너가던 사람 하나

자꾸 그리워지겠다

 

 

 

 

 

옛사랑

 

 

 

 

도마 위의 양파 반 토막이

그날의 칼날보다 무서운 빈 집을

봄날 내내 견디고 있다

그토록 맵자고 맹세하던 마음의 즙이

겹겹이 쌓인 껍질의 날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마르고 있다

 

 

 

 

 

중국인 맹인 안마사

 

 

 

 

상해의 변두리 시장 뒷골목에

그의 가게가 있다

 

 

하나뿐인 안마용 침상에는 가을비가

아픈 소리로 누워 있다

 

 

주렴 안쪽의 어둑한 나무 의자에 곧게 앉아

한 가닥 한 가닥

비의 상처들을 헤아리고 있는 맹인 안마사

 

 

곧 가을비도 그치는 저녁이 된다

 

 

간혹 처음 만나는 뒷골목에도

지독하도록 낯 익은 풍경이 있으니

 

 

손으로 더듬어도 잘 만져지지 않는 것들아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늘어지는 것들아

 

 

숨을 쉬면 결리는 나의 늑골 어디쯤에

그의 가게가 있다

 

 

 

 

 

 

                                     -심재휘 詩集, <중국인 맹인 안마사>-에서

 

 

 

 

 

 

 

 

 

 

 

 

 

'문예중앙시선' 32권. 낭만적이고 쓸쓸한 목소리로 기억에 얽힌 시 세계를 노래해온 심재휘 시인이 7년 만에 새 시집을 묶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현대시 동인상 수상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과 <그늘>을 펴내며 '유년 시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애착과 그리움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아온 심재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특유의 소슬한 기풍이 돋보이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새 시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장면들은 낯선 이국의 풍경들이다. 이번 시집의 절반은 시인이 캐나다에서 체류할 때 쓴 '북쪽마을' 연작시로 이루어져 있다. '참 알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머나먼 하늘 아래'에서 시인은 '집 없는 자의 눈처럼 좁고 깊은' 우물에 비친 풍경을 써 내려간다.

이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시편들을 두고 해설을 쓴 이홍섭 시인은 "이국 풍경 속에서만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인이 현재 몸담고 있는 현실과 불화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 평하며 "그를 생각하면 소슬한 적산가옥 한 채가 떠오른다."라고 덧붙였다.

점령지에서 적국 사람들이 살던 집을 뜻하는 적산가옥은 숙명적으로 이중국적을 껴안은 건축물이다. 오랜만에 새 시집으로 찾아온 심재휘의 언어는 적산가옥과도 같은 이국적이고 투명한 슬픔의 정서로 빛난다.

 

 

 

가끔씩 내 귓속으로 돌아와
둥지를 트는 새 한 마리가 있다
귀를 빌려준 적이 없는데
제 것인 양 깃들어 울고 간다

열흘쯤을 살다가 떠난 자리에는
울음의 재들이 수북하기도 해
사나운 후회들 가져가라고 나는
먼 숲에 귀를 대고
한나절 재를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열흘 후는
울음 떠난 둥지에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아
넓고 넓은 귓속에서 몇 나절을 나는
해변에 밀려 나온 나뭇가지처럼
마르거나 젖으며 살기도 한다

새소리는
새가 떠나고 나서야 더 잘 들리고
새가 멀리 떠나고 나서야 나도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지저귀던 저 새는」

 

 

 

 

 

시인의 말 

 

 

 

세월이 많이 지났다

 

모든 것이 다 한곳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슬픈 눈을 지닌 개를 데리고 걸어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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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0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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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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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5-03 06:41   좋아요 0 | URL
요즈막은 자작나무에 새 잎이 돋고
앙증맞게 고운 자작꽃도 필 무렵이에요.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웬만하면 무리를 이루는데
이 가운데 자작나무는
혼자서 조용히 자라는 모습을 곧잘 보곤 해요.

참 그렇군요.

appletreeje 2014-05-03 10:09   좋아요 0 | URL
아..자작나무 새 잎도, 앙증맞게 고운 자작꽃도
보고 싶네요~
자작나무 책상에서 책도 읽고,
자작나무 침대에서 잠도 자고 싶구요..*^^*

2014-05-03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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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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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익는 마을
임의진 지음, 홍성담 그림 / 섬앤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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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 떠돌이별 임의진의 이 책을, 개정판으로 다시 읽는다. 오갈데 없는 마음에 두툼한 이불을 뒤집어쓰듯, 앵두가 그렁그렁 여물고 있는 장독대 너머의 키 작은 풀꽃들을 보듯, 여전히 마중물 같고 휘파람소리 같은 정답고 쓸쓸한 글들을 읽으며...마음속 `꽃등`하나 밝힌다. 보헤미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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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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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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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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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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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 인사차 잠깐 들르니 선배님이 충청도에서 온 나를 보자 생각났다는 듯 얼마 전 주말여행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신다. 선배는 정해진 목적지 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때 되면 시골 식당에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올라올 계획이었단다. 충청도 땅에 들어서 점심때가 되어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국도변 식당엘 들어갔다. 벽에는 열두어 가지의 메뉴가 붙어 있었다. 제일 쉽게 맨 앞에 붙어 있는 것으로 정했다.

 "버섯전골 주세요."

 "그거 안되는 디유."

 주문 받으러 온 주인 아저씨가 겸연쩍어했다.

 "그래요? 그러면 그다음 거 좋겠네. 두부전골로 하죠. 2인분 주세요."

 "그것도 안되는 디유."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나게 마련.

 "아니, 안 되는 건 뭐 하러 써 붙여 놨어요?"

 주인장 하는 말,

 "그냥유."

 '그냥'이란다.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거의 포기 상태로 인내심을 발휘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되는 게 뭐 있어요?"

 그런데 주인장, 또 한 번 일격을 가한다.

 "뭐가 잡숫구 싶으신 디유?"

 속 터진다. 여태까지 말했잖아요!

 "하여튼 충청도 사람들 알아줘야 해"

 이 한마디로 선배가 나를 놀린다. 그런데 사실은 선배도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이다. 그려, 그게 충청도여. 우리는 너무나 공감이 되어 한참을 웃었다.

 

 

 시골로 내려와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서울  생활에 길든 내가 이곳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법에서부터 표현하는 방법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오해도 많았다. 이렇게 말해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원한 건 그게 아니란다. 나는 일껏 생각해 준다고 한 말에 상대방이 화를 내며 덤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서운하단다.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척 하면 척으로 받아치게 되는 데에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동네 어른 몇 분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려고 읍내 식당엘 갔다.

 "뭐 드시겠어요?"

 "아무거나 먹지 뭐."

 "그래도....뭐 좋아하세요?"

 "그냥 알아서 시켜."

 어른들은 굳이 내 마음대로 결정하라 하신다.

 "알았어요. 갈비탕 어때요? 괜찮아요?"

 "그러지 뭐. "

 "여기 갈비탕 넷 주세요."

 여기서 끝나면 충청도 아니다. 주문 받고 종업원 막 돌아서려는데 한마디 하신다.

 "이 집 그거 별룬디."

 으악?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니고, 속내를 가늠하기 힘든 이런 표현법을 다른 지방 사람들은 '줏대 없고 음흉하다' 비아양거리기도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줏대가 너무나 확실하다. 아무리 바깥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속에다 꽉 잡고 있는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

 "뭐 먹고 싶냐?"

 재차 물어보는 것도 듣는 사람은 속 터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마음대로가 아닌 당신 뜻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데까지는 해 주겠다'는 작은 성의 표시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제 이런 대화에 당황하지 않는다. 아니 이 단수 높은 충청도식 대화를 즐긴다. 나도 제법 이들에게 물들었나 보다.  (P.71~75 )  / 내 고향은 충청도예유

 

 

 

 특히 포토샵은 서울에서도 배우려고 시도했다가 보름 만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서울 학원엘 가보니 수강생이 주로 20대 젊은 사람들이었고 학원 프로그램도 그 사람들에게 맞추어져 있어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쌀쌀맞은 강사는 예정된 속도로 빠르게 진행하면서 조금 뒤쳐지는 학생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분위기가 편안하기 그지없다. 수강생들은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다. 나는 그래도 직장생활하면서 문서 작성이나 인터넷은 하던 수준이었으니 열등반에 배치된 보통 학생이라 할까?

 "지발 이거는 누르지 마세유. 이거 누르면 파레트 다 없어져유. 그럼 이거 찾다가 한 시간 걸리는 기유. 알았쥬? 까딱하면 그렇게 되니께 조심해유."

 강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쪽에서 한 할머니가 손을 든다.

 "아니 내 건 이게 왜 없어졌대. 선생님?"

 "이거 누르지 말라구 그랬잖유."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고 나이 먹은 학생들은 그런 실수 안 하려고 바짝 긴장한다.

 "이거 누르면 없어진다고 했슈, 안 했슈? 했쥬? 없어지면 리셋하면 된다고 했슈, 안 했슈? 했쥬? 이렇게 입이 아프게 말해 줬는데 왜 며칠만 지나면 또 없어졌다고 난리유. 지발 까먹지 마유."

 "네!"

 대답은 우렁차도, 다음 날이면 또 까먹고 선생님을 불러 대는 어르신들. 그때마다 강사 선생님은 쫓아가서 바로잡아 준다.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 예산 사람인 젊은 강사는 완전히 시골 어르신들에게 눈높이가 맞추어져 있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나는 여유로운 이 공부가 참 좋고 나날이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 가는 기쁨에 행복해하고 있다. 군청에서 배운 포토샵 실력을 발휘해 '풀각시 뜨락'(http://blog.never.com.hyoshin4858)이라는 나의 블로그를 멋지게 장식하고 전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나에겐 크나큰 즐거움이다.  (P.77~79 ) /  컴퓨터와 보너스

 

 

 

 

                                                   - <풀각시 박효신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어제부터 비가 내리는 날 마음도 그렇고 요즘은 뭔가를 하고 있어도 정신이 없고

         뭔가를 읽어도 잘 집중을 하지 못하는 그런 날 속, 아침에 병원엘 갔다 오니 잠시후

         반가운 선배께서 보내 주신 책선물이 왔다. 서둘러 열어 보니 <상뻬의 어린 시절>

         <풀각시 박효신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앵두 익는 마을>, <중국인 맹인 안마사>와

         <풀씨를 심는다는 것>, <호야네 말>.  정다운 말씀이 한가득인 편지.

            다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요즘은 읽어야 할 책들이 거의 다 무겁고 생각을

         많이 하며 읽을 책들이라 책을 읽고 있어도 뭔가 마음이 어둡고 힘이 들었는데, 지난번

         모임때 이런 나의 마음를 눈치채시고 편안하고 즐거운 '환기'를 하라고 골라 보내주신

         마음 같으셔서 한층 더 감사하고 기뻤다.

           <상뻬의 어린 시절>은 그러지 않아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들어 오면 대출하려 기다

          린 책이었는데 직접 비닐을 뜯고 책장을 열어 보니, 설레고 멋진 그림들과 마르크 르

         카르팡티에와의 인터뷰, [이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의 빼곡하고 긴 글들이

         읽어 보기도 전에 마음이 짜르르...하다.

            오래 전부터 알아 왔던 임의진 목사님의 <앵두 익는 마을>,을 2001년 초판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새 개정판으로 예쁜 새 옷을 입고 다시 와 반가웠고, 심재휘 시인의

         <중국인 맹인 안마사>와 김형오 시인의 <풀씨를 심는 다는 것>, 이시영 시인의 <호야

          네 말>은 기다렸던 시집들, 그리고

          < 풀각시 박효신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처음 만나는 책인데 20대 후반에 계획한 꿈으로 준비를 하고 2007년에 예산으로

          내려와 시골살이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즐겁게 꾸려나가는 풀각시 박효신 님의 글을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쭉 읽다가 '바비를 사랑하는 시골 할머니'에 와서는

          바비킴(사실 '바비'라 해서 첨에는 '바비인형'으로 알았다.) 과 콘서트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박~ 거기엔 왠 화사하고 예쁜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었다는.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 나가다, 방금 전에 읽게 된 저 '내 고향은 충청도예유'에서

          빵! 터져버렸다. 아참..요즘의 우울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던 마음이 스르르 나도 모르게

          식당 주인장 표현대로 "그냥유."다.  어려운 시간들이지만 누구나 "그냥유."의 마음이

          되기를 빌어 보며, 오늘은 저녁 약속 때문에 여기까지만 읽는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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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교

 

 

 

 

                       개성엔 낙타교, 그러니까 고려 적 아랍 상인들이 장사하

                    러 와서 말을 매놓았다는 다리가 있었다고 늘 자랑하곤 하

                    시던 박완서 선생님, 어릴 적 어머니 앞에서 떡국에 쓰일

                    새알을 곱게 못 빚으면 강화로 시집보내겠다고 "강횃년'

                    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며 웃으실 땐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

                    가 흐르고 양 볼엔 간혹 홍조를 피우시곤 하였다.  (P.12 )

 

 

 

 

 

                          금빛

 

 

 

 

                           2014년 1월 중순, 강원도 깊은 산 소나무 군락지에 금빛

                        새 한마리가 날아와 커다란 알을 낳고 사라졌습니다. 소나

                        무 숲이 그 알을 받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서로 키를 높이

                        는 바람에 일대는 한동안 지상에서 붕 떠올라 금빛으로 환

                        하게 눈부셨습니다.  (P.13 )

 

 

 

 

 

                      BYC

 

 

 

 

                        깔끔하게 단장한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지나다보니 BYC,

                        옛날의 백양메리아스 야트막한 벽돌색 건물이 보인다

                        한때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이 일했던 곳

                        매서운 기숙사 사감의 눈빛과 밤마다 졸리운 잔업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은 폐병을 얻어 쫓겨났지

                        얼어붙은 한 겨울의 새벽길을 걸어 걸어

                        조용히 내 하숙방 문을 두드리던 여동생 얼굴이 생각난다  (P.15 )

 

 

 

 

 

                          상(床)밥집에서

 

 

 

 

                        과대평가된 시인들이 있는가 하면 과소평가된 시인들이

                           더 많다

                              그중의 한분과 '정겨운 상밥집'에서 상밥을 먹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나직나직하고 조용

                           했다

                              나도 나직나직 조용해지면서 오랜만에 나 자신으로 돌아

                           온 듯 했다  (P.40 )

 

 

 

 

 

                         찬(讚) 김정남 선생

 

 

 

 

 

                            양재역 12번 출구 앞에서 우연히 김정남 선생을 만났다.

                         평생을 별다른 직업 없이 살아온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

                         네를 한바퀴 돌며 골목을 깨끗히 쓸었다고 하는데, 세상엔

                         이렇게 그림자처럼 조용한 분들이 있으시다. 칠팔십년대

                         인권 탄압이 있는 곳엔 그가 늘 뒤에 있었으며 변호사를 대

                         신해 쓴 '변론'만도 아마 수천 페이지가 넘을 것이다. '박

                         종철 사건'도 보이지 않는 그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

                         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분을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  (P.41 )

 

 

 

 

 

 

                          절

 

 

 

 

                               서초중앙하이츠빌라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경비아저씨는

                               저녁이면 강아지와 함께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

                            를 한다

                               세상엔 이렇게 겸손한 분도 있다  (P.43 )

 

 

 

 

 

 

                          호야네 말

 

 

 

                                이렇게 비 내리는 밤이면 호롱불 켜진 호야네 말집이 생

                             각난다. 다가가 반지르르한 등을 쓰다듬으면 그 선량한 눈

                             을 내리깔고 이따금씩 고개를 주억거리던 검은 말과 "얘들

                             아, 우리 호야네 말 좀 그만 만져라!" 하며 흙벽으로 난 방문

                             을 열고 막써레기 담뱃대를 댓돌 위에 탁탁 털던 턱수염이

                             좋던 호야네 아버지도 생각난다. 날이 밝으면 호야네 말은

                                그 아버지와 함께 장작짐을 가득 싣고 시내로 가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바지런한 발굽 소리를 따각따각 찍으며.  (P.46 )

 

 

 

 

 

 

                            민병산 선생

 

 

 

 

 

                                  남루를 걸치고 다니다 음식점 입구에서 내쫓기던 철학자

                               가 있었다. 관철동의 민병산 선생. 그는 청주 대부호의 아들

                               로 태어났으나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겸손한 가난뱅이

                               로 살다 어느 새벽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숨졌다. 거리

                               의 후배들이 와서 그의 모자와 책들을 정리하고 글씨들을

                               챙겼다. 나도 그중의 한점을 갖고 있는데 서체가 그를 닮아

                               남루하면서도 깨끗했다.  (P.60 )

 

 

 

 

 

 

                                손님

 

 

 

 

                                   은희경 님이 리트윗해 올린, 지리산 반달가슴곰 25번 녀

                                석이 법계사 공양간 창문에 다리를 척 걸치고 제집처럼 익

                                숙하게 쌀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엊저녁 설거지해

                                엎어놓은 스님의 단출한 부엌살림 그릇들과 낮은 타일 벽

                                에 걸린 빨간 고무장갑도 모두 말없이 정결하다. 그리고 새

                                벽 예불을 드리다가 가만히 돌아앉아 이 장면을 찰칵 카메

                                라에 담았을 스님의 안 보이는 미소까지 환해서 참 보기에

                                좋으시다.  (P.85 )

 

 

 

 

 

                                춘천

 

 

 

 

                                    소설가 오정희 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 역사에 들

                                 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

                                 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측백나무 울타리 가에서 서울행 열차의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배웅한다고 합니다.

                                    아, 나도 그런 춘천에 가 한번 살아봤으면!  (P.112 )

 

 

 

 

 

                             자매처럼

 

 

 

 

                                  일요 미사가 끝난 용산 성당 원효로 쪽, 영하의 추위 속에

                               온몸을 털목도리로 감싼 자그마한 체수의 할머니 두분이

                               자매처럼 손을 잡고 가파른 빙판길을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는데, 그들의 꼭 잡은 두손이 얼마나 정겹고 따스해 보였

                               던지 성모께서도 고개를 길게 빼어 한참을 내려다보시었다.  (P.128 )

 

 

 

 

 

 

                              잠들기 전에

 

 

 

                                     눈이 올 것만 같은 겨울 저녁,

                                     반달가슴곰이 졸린 눈을 비비며 아주 순한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P.129 )

 

 

 

 

 

 

 

                                                           -이시영 詩集, <호야네 말>-에서

 

 

 

 

 

 

 

 

 

 

 

 

 

결빙의 현실에 온기를 더하는 시의 불꽃

맑고 투명한 서정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강인한 시정신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를 관통해온 이시영 시인의 신작 시집 <호야네 말>이 출간되었다. “현실에 맞서 시대의 진실을 세심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밀도 높은 서정이 다양한 형식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뛰어난 시정신의 소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박재삼문학상’과 ‘만해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열세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감성의 어법으로 단형시, 산문시, 인용시 등 변함없이 다채로운 형식을 선보이며 삶에 대한 애정과 웅숭깊은 자기성찰이 깃든 ‘오래된 노래’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나직 들려준다. “짧은 서정시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에 ‘스스로 그러함’을 드러내는 영원한 순간들의 미학”(오철수, 발문)이 현란한 수식 없이 간결하고 명료한 일상적 언어에 녹아든 단정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동양파라곤아파트 동쪽 정원 측백나무 옆/고양이 세마리가 나와 자울자울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그중 두 놈은 흰 배에 검은색 등이고/나머지 한 놈은 완전 호랑이 색깔이다/그런데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평화롭게」 전문)

삶의 순간, 찰나에서 길어올린 영원의 미학

이시영의 시는 짧지만 긴 여백 속에 큰 울림이 있다. 냉정하다 싶을 만큼 차분한 감성과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사물의 현상과 실체를 에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히 꿰뚫어보는 시선이 더없이 예리하면서도 한편 따뜻하다. “설치류의 작은 이빨이 단단히 박혀 있”는 “밤톨 하나”(「석양 무렵」), “비 온 뒤 하늘에서 씻겨온 세모래 위에/가지런히 찍힌 어린 새의 발자국”(「첫」), “언 땅속에서” 전신을 다해 “찬란한 봄을 머금고 있”는 “개나리 한 뿌리”(「조춘(早春)」)에서도 생의 경건함과 자연의 이법을 포착해내는 시인은 “모든 탄생하는 것들의 고요”(「신생」) 속에서 생명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통찰하며 사소한 자연 현상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바라보는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준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내리는 남극의 싸우스조지아 섬, 턱끈펭귄 암컷이 둥지에 품고 있던 알을 부리로 톡톡 깨자 기다렸다는 듯이 껍질을 뚫고 나오다가 옆으로 쓰러지는 새끼 턱끈펭귄. 고개를 젖혀 비린 눈을 뜨자마자 어미를 향해 한껏 벌린 입이 저 아래까지 빨갛다.(「입」 전문)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팍팍한 시대를 올곧은 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은 “모든 결빙(結氷)의 시절”(「십이월」)인 현실을 직시하며 그 속에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암울한 시대의 어둠을 밝히며 진실한 삶을 오롯이 지켜온 시인은 편을 가르거나 누구를 따돌리지 않고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그런 ‘나라’ 없는 나라”(「‘나라’ 없는 나라」)를 꿈꾼다. 저마다 “시린 가슴을 안고”(「대지의 잠」)서 하찮고 여린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젖은 어깨”와 “더운 발자국”(「2호선」)에 따뜻한 위로와 온기를 불어넣으며 시인은 언젠가는 “살아봤으면”(「춘천」) 좋을 세상이 오리라 기대하며 “세상이 그렇게 빨리 망하진 않을 것”(「조춘(早春)」)이라는 희망의 불꽃을 지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남대문 광역버스 정류장/발가락이 삐져나온 운동화를 신은 노숙자 하나가/가로수에 기대어 떨고 있었다/안 보이는 손 하나가 다가와 그에게/따뜻한 천원짜리 한장을 쥐여주었다(「겨울 아침」 전문)

그런가 하면 시인은 “결빙의 현실을 데우기 위해 과거라는 샘에서 온기를 훔쳐”(박형준, 추천사)와 “영원한 대지의 자식들”(「옛날엔」)이 부르는 ‘오래된 노래’를 조곤조곤 들려주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동구 앞 정자나무들 아래 모여/전깃불 화안한 읍내를 바라보곤 하였”(「소년들」)던 유년 시절, “동구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오래된 팽나무”(「정자나무」)와 “그날밤 우리들 허리며 가슴을 적시며 흐르던” 섬진강의 “그 따스한 밤 강물”(「밤 강물」)과 “겨울이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여름이면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쉼 없이 솟구치던 그 샘”(「찬샘」) 등 가슴속에 간직해둔 사연들을 회상하며 시인은 기억의 지층을 더듬어 내려가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늑한 추억의 풍경 속으로 잠긴다.

일머슴처럼 손 크고 덩치 큰 울 어매 곡성댁, 마당에 어둑발 내리면 쌀자루 보릿자루 옆구리에 숨겨 몰래 사립을 나섰네. 그때마다 쪽찐머리 고운 해주 오씨 우리 큰어머니 안방 문 쪽거울에 대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네. “니 에미 또 쌀 퍼서 나간다.” 저녁이 다 가도록 밥 짓는 연기 오르지 않는 동무 집이 많던 시절.(「밤마실」 전문)

이시영 시인은 삶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게 가슴을 울릴 만큼 ‘인간적’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어릴 적 어머니 앞에서 떡국에 쓰일 새알을 곱게 못 빚으면 강화로 시집보내겠다고 해 ‘강홰년’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며 웃으실 땐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흐르고 양 볼엔 간혹 홍조를 피우시곤 하였다”는 박완서(「낙타교」), “이대로 이대로는 절대 보낼 수 없”던 “문구 형님” 이문구(「이대로는」), “남루를 걸치고 다니다 음식점 입구에서 내쫓기던 철학자” 민병산(「민병산 선생」),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면/풍로를 아예 길바닥에 내놓고 입김 호호 불어가며 밥 지어주던” 아내와 “독립문 밖 외로운 아파트”에 살았던 박정만(「독립문 밖」), “선량한 키에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을 것 같은 서늘한 눈매”를 지녔던 박목월(「애월(涯月) 지나며」) 등 그리운 얼굴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호명한다.

소설가 오정희 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 역사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됩니다.”/그리고 측백나무 울타리 가에서 서울행 열차의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배웅한다고 합니다./아, 나도 그런 춘천에 가 한번 살아봤으면!(「춘천」 전문)

시력 45년, 한평생 시의 외길만을 걸어온 시인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문학적 열정을 가다듬으며 여느 젊은 시인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으로 시단의 중진으로서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엔 이렇게 겸손한 분”(「절」)과 “그림자처럼 조용한 분들이 있”으나 “역사는 이런 분을 잘 기억해주지 않는”(「찬(讚) 김정남 선생」)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시인은 “나직나직 조용해지면서 오랜만에 나 자신으로 돌아”(「상(床)밥집에서」)와 지나온 삶을 반추해본다.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아직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평범한 시인”(시인의 말)으로서 온화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선한 눈빛과 순정한 마음이 새잎에 돋는 이슬방울처럼 “금빛으로 환하게 눈부”(「금빛」)시다.

양들이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 귀가하고 있습니다/곧, 저녁입니다(「곧」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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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28 18:10   좋아요 0 | URL
박효신 님 책이 새로 나왔군요.
꾸준히 그 시골에서
예쁘게 살아가시는구나 싶네요.
날마다 새롭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라면
이렇게 때때로
예쁜 책을 빚어서
우리들한테 베풀어 주실 테지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이렇게 철마다 다른 빛을 노래할 적에
그분 삶도
우리 삶도
곱게 빛나리라 느껴요.

appletreeje 2014-04-28 18:22   좋아요 0 | URL
예~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후로 계속 썼던 글을
더한 책이라 합니다.^^
책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겉멋이나 감상적인 그런 글이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하고 실현한 시골살이 삶의 이야기들이 참으로 생생하니
읽는 사람들까지 새롭게 웃고 힘을 다시 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네요~

"나름 오랫동안 준비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시골 생활이 내 생각과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자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나를 감동시켰어요. 100만큼 행복할거야 생각했는데 실제로 살아 보니 200이
훨씬 넘게 행복하니까요."
여는 글,의 마지막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진하게 와 닿았습니다~*^^*

2014-04-28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9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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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8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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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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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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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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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5: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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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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