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미친 김 군
김동성 지음 / 보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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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이 만발한 표지의 양장본 겉장을 넘기면 사철 제본으로 너무나 깨끗하고 정갈한, 조선 후기 규장각 서리이자 화가였던 김덕형 그의 冊 <백화보>의 서문을 썼던 박제가가 그를 칭송하며 부르던 ‘김 군‘의 전 생애에 걸친 꽃사랑 이야기가 ‘꽃에 미친 김 군‘이란 제목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다. ‘자연을 스승 삼고 꽃을 벗 삼으니 꽃에 관해서는 그를 넘을 자가 없을 만큼 그 세계가 넓고도 깊다.‘ 이래저래 시끄럽고 부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귀와 눈을 닫고, 설날 연휴의 시작을 이 아름다운 冊과 어젯밤 도착해 開花하기 시작한 쉐라 백합의 향기와 맑은 술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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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설자은 시리즈 2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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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에서 연이은, 네 차례의 방화와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왕의 흰매가 된 설자은이 집사부 대사가 되어 그 불꽃들의 뒤를 쫓아 사건 해결을 하며, 백성을 죽이고 금성을 불태우고 국고를 도둑질한 자들의 목숨을 거두고 아꼈던 내 편도 베게 되며 공公의 영역에 들어선다. 정중동(靜中動)의 나직하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2권. ˝결속을 위해 나눠 갖기 적합했을 터이다. 적은 죽여서 입막음하고, 같은 편은 재물을 나눠 입막음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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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퍼





흰 국화 한 송이 들고

사진 속 너를 본다

너와 나의

거리距離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곳으로 가는 동안만이

우리들의 길 또는 생애다



정해진 길 없는 길

건너고 건너도

결코 다가설 수 없는 사랑도

전쟁과 장사일 뿐*

원래 없는 것이니 모래 더미의 싸움일 뿐



안녕 

부디 잘가요



가장 흔한 말이

왜 가장 슬픈 말인지

흰 국화 한 송이 들고

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는 이 자리



*크리스티앙 보뱅. [지극히 낮으신](1984BOOKS,2023)   (P.16)






무화과 먹는 밤




비밀 연애가 이렇게 생겼을까

무화과!

애벌레처럼 부드럽고 깊은 속살



절망 기쁨 달콤한 죄

소곤소곤 씹히는

겉은 얇지만 속삭임 같은

알알이 박혀있는

정신병동회복실 창가에 놓인 과일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은밀한 동굴

과일 속에 핀

농밀한 문장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그 끝은 몰라도 돼

둘만 아는 보라빛

무화과를 먹는 밤     


(P.36)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어요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어요

하수구에서 올라온 흙탕물을 밟고

우산도 없이 서 있는사람들을 보세요

물 좀 주세요

감정의 부유물이 많이 섞인 소다수 말고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싶어요



홍수 속에 시집 서점으로 들어가요

대형마트에 시를 납품한 후

기득상권 속에 겨우 끼어든 시인의 얼굴들이

키를 맞대고 서 있어요

동네 장마당에서도 좀 팔려야 한다며

위로와 교훈으로 내숭 떠는 시집도 있네요

장사꾼의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후

겁장이 시인들이 언어를 물총처럼 쏘네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어떤 것은 과장된 가치와 역할을 말하고

어떤 것은 난장에 나온 민예품처럼 낡아

"이거 무슨 물건이죠?"

"그걸 모르시다니... 꼰대?"

"아니 네가 꼰대?"

블랙리스트보다 블랙홀이 더 두려워요



날카로운 칼로 시를 파내시나요

시는 충동이자 충돌

사람이 사랑이 완벽할 수 없듯이

이슬보다 땀이 더 뜨거우면 안 돼요

백지가 더 빛나요

사랑시집은 퇴폐와 멸망이 담긴 상처 박물관

자 쏠테면 쏴라! 홀딱 벗고 기어가는 별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어요

제발 마실 물 좀 주세요      (P.44)





산티아고 순례길*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나뿐인가


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




*스페인 갈라시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 '말하는 돌의 정원'에 있는 한국어 석비.

2023년 3월 17일에 조성되었다.   (P.71)







시인의 말



끝내 저항하고 질문하는

찌그러진 존재로서의 시인의 젊음을

나는 사랑한다.

잘 익은 고통, 잘 익은 사랑과 상처보다

가시 돋친 야수의 격렬하고 쓰디쓴 호흡을

나는 사랑한다.

사람에게서 나오지만 자연의 비명 소리

이것이 시일까.

흐르는 물을 손으로 움켜쥘 수 없듯이

처음이 곧 마지막인

생명은 뜨거움과 아픔만이 증거이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됐어!



그 끝은 몰라도 돼.



2025년 새바람 속에서

문정희






1947년생 시인, 문정희 시인의 뜨거운 시집을 읽으며 벅차고 기쁜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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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딱 좋은 날 - 정끝별의 1월 시의적절 13
정끝별 지음 / 난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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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수조의 물을 환수하며 커피를 내리며 詩人의 1월 1일부터 31일까지의, 이누이트족의 <물개 여인과 사냥꾼> 속 오룩이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여기에서 저기-너머에 깃든 시간의, 생명의, 언어의 기원으로서의 웅혼한 여성성‘의 모어(母語)들을. 힘 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이 冊 덕분에 비로소 새해를 실감하고 1월의 開花를 시작하게 되어 감사하다. ‘퉁퉁 부은 서로의 다리에서 한 다리씩의 어둠을 뽑아/ 무청 같은 날개를 달아주며‘. ‘숨이 차는 동안 나는 세상의 허파 속에 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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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2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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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단순하게 웃어보자 싶어 펼친 冊이, 1권보다 매콤하게 깊어진 ‘실버 센류‘ 스웩에 입꼬리가 피식 올라가다가 마음이 따끔따끔. ‘심쿵했다고/ 말하면 심장 질환/ 의심 받는다‘ ‘내가 레전드라고?/ 이제 꽤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신지요?/ 거울 들여다보니/ 다름 아닌 나‘ ‘재활 치료 중/ 꼴찌는 면하려고/ 죽도록 노력‘ ‘아 늙었네/ 하지만 괜찮아/ 다 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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