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술을 마시다 친구가 나와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니 예매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 백화점 지하에서 오설록에서 나온 ' 레드파파야 블랙티'를 사고 옆가게에서 권해 준 올해 나온 매화차도 마시고, 귤차도 마시다가 10층에 있는 시네마로 올라갔다.

 

 오늘 우리가 본 영화는 -언터처블 1%의 우정-.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아노 감독과 푸랑수아 클로제, 오마 사이 주연.

 상위 1%의 백인 귀족남과 하위 1%의 무일푼 무식남의 천생연분의 만남과 아무도 예기치 못한 소통과 우정을 영화는 보여준다.

 

 필립은 목위의 기능만 가능한 전신마비이고  남자도우미를 뽑는 면접에 껄렁한 흑인 드리스가 나타난다. 면접을 보러온 사람들은 왜 이 일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돈이 필요해서' '사랑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봉사가 좋아서'라는 상투적인 답변들을 하고, 그 장면을 보던 나는 '저런 그럴듯한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데' 속으로 중얼거리고. 그때 드리스가  들어와 자기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 거절사인이나 빨리 하라는 말을 뱉는다. 거절을 세 번 받아야 생활보조금을 탈 수 있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솔직하게 내뱉는 드리스에게 필립은 묘한 호감을 가지며, 2주안에 제발로 나갈 것이라는 말로 드리스를 자극하여 오기가 발동한 드리스는 수습기간을 시작한다. 이후, 순전히 오기로 2주를 채울 생각이었던 드리스의 간병도우미로선 절대 부적절한 반응들이 속출하고 필립은 그런 저런 일들에 무관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조언을 해주며 여러 에피소드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간다.

 

 어느날 , 24시간 호출폰을 지니고 있는 드리스에게 한밤중, 필립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달려간 필립의 상태는 숨을 못쉬며 괴로워한다. 그때 드리스는 필립을 들처안고 나가 휠체어에 필립을 실고 강변을 산책시킨다. 그리고 매일 클래식이나 고전문학, 오페라등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즐기는 필립에게 담배도 몇 모금씩 입에 대주고, 팝송에 맞춰 춤도추고..한마디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생동감으로 주변을 아연실책시키기도 때론 웃음짓게도 하며 뜻밖에도 아주 훌륭한 도우미로 필립과의 생활을 잘 해나가게 된다.

 

 그런데 필립의 변호사가 드리스에 대해 여러가지 조사를 했으니 그를 가까이 두지 말라는 말을 하며 특히 그는 연민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필립이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마음에 들어한다. 드리스와 같이 있으면 나도 마치 보통사람같은 기분이다."  그의 말에 공감이 갔고.

 

우리는 누군가 우리와 다른 상태의 사람을 대할때 은연중에라도, 그 다름에 대한 선입감으로 분리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병시에도 기술적인 문제는 누구나 처음엔 서툴고 실수도 많치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곧 익숙히 잘 해낼 수 있는 업무이다. 그러나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은 의외로 힘든 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신체의 장애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애, 삶의 특수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부분 그러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관객들은 드리스와 필립의 좌충우돌한 나날을 보며 웃음도 짓고 그러면서도 왠지 마음 한켠으로는 싸한 기분도 들고.

 

 흑인 빈민가 출신의 드리스에게 사고를 친 동생이 찾아오고 그 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드리스가 떠나고, 필립은 다시 새로운 도우미를 채용하지만 이미 드리스를 대신 할 도우미는 없어 이후 그의 날들은 더욱 신경질적이고 피폐해진다

.

 집사인 이본 부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드리스는 필립을 차에 태우고 바닷가로 나간다.

 그리고 자기 대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준다며 자리를 비키고..그 자리에 나타난 사람과 함께 웃음 짓는 필립의 얼굴을 끝으로 영화는 별안간, 불이 나간것처럼 끝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하고 혹자는 '버킷리스트'와 함께 이야기도 한다.

 '버킷리스트'도 백인부자와 가난한 흑인과의 시한부인생들의 마지막 행복한 탈출을 그렸고, '언터처블'도 백인 백만장자와 가난한 흑인 백수청년간의 우정을 그렸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들 가는 시한부인생이 아닌가.

 살아있는 지금 이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있음의 의미를 만나고 기쁨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내게는 오늘 이 영화를 보았던 시간이 마치 삶의 정지화면 같이, 깊숙하고도 몽롱한  마음의 시선으로 들여다보았던 그런 느낌이다. 특히 필립을 연기한 푸랑수아 클루제(근데 자꾸만 더스틴 호프만의 얼굴과 겹치는군)와 드리스를 연기한 오마 사이의 연기가 너무나 생생하고 충실해 아직도 그들의 웃는 행복한 얼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율리와의 행복한 데이트였다. 오늘 밤 꿈엔 필립과 드리스와 함께 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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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의 의미

                                                                                        이시영

 

 

 

        1964년 토오꾜오 올림픽을 앞두고 지은 지 삼 년밖에 안 된 집을 부

       득이 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지붕을 들어내자

       꼬리에 못이 박혀 꼼짝도 할 수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동료 도마뱀이 그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날

                            라다 주었기 때문이다.*

 

 

                             *박성호 칼럼, 다산 茶山포럼, 2007년 1월 11일.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를 위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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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오늘날은 길의 시대다. 사통팔달로 새 길이 뚫리건만, 아직도 길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교통방송이라는 것이 생길 만큼 길은 우리 삶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방송에서 다루는 소식은 '어디어디가 잘 뚫린다'가 아니라 '어디어디가 많이 막힌다'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운수업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월급쟁이도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도인(道人)이다. 하루중에 많은 시간을 '길위에 서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본래 길이란 우리에게 낯선 것이었다. 인생살이를 길 가는 행인에 자주 비유해왔고 또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노래가사도 있지만, 실은 '길을 가는 사람'은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농경민족이던 조상들에게 일반적인 삶의 패턴은 고향 땅에서 나서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방물장사나 보부상들은 깃들일 곳이 없어 피치 못해 움직이는 사람들. 즉 처지가 곤란한 사함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눈길이 밴 표현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것이지, 결코 길 떠나는 삶을 좋게 본 것은 아니었다.

 보기 드물게 길 걷는 사람과 그 길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이번 걸음만 끝나면 어디에 정착하리라"는 소망이 나타나 있다. 이렇게 우리네 길 떠난 사람은 언제나 고향(정착)에 대한 그리움을 한(恨)처럼 품고 살았다. 더욱이 일제시대와 6.25동란을 겪으면서 고향의 상실은 더더욱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표현되었다. <고향무정> <강촌에 살리라> 등등의 노래제목들이 다 그런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더욱이 신작로이며 철도와 같이 새로 난 길은 다 남(일본인)의 손에 의해 뚫렸기에, 길이란 바깥의 가치를 안에 강요하는 위협의 통로로 여겨졌다. 그러니 길은 더더욱 불안과 두려움의 촉수일 수밖에 없었고, 길가에는 매양 우리네 눈물자국이 아롱져 있었던 것이다. 정든 곳(사람)과의 이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불안한 첫걸음이 동네 어귀의 길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제 길은 더이상 목메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정착하는 농경민족이 아니라 유랑하는 유목민족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한 두해 어느 아파트에 정착해 살다가도 문득 캥거루 모양이 그려진 이삿짐 트럭에 여행가방 싸듯 짐을 꾸려 떠난다. 보내는 이들은 다시 못 만날까 염려하지 않으며, 떠나는 이들도 결코 눈물짓지 않는다. 핸드폰, 이메일과 같은 다양한 만남의 길이 곁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누구도 이곳을 뿌리내릴 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둥둥 떠다니는 존재가, 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방물장사가 된것이다.

 '길위에 서 있는 존재'인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길이란 자연히 삶의 의미를 헤아리게 만드는 계기이기에. 동양에서는 길(道)을 철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삼아왔던 것이리라. 이를테면 노자의 "길을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길이 아니다"([도덕경])라는 말이 그러하고, 공자의 "사람이 길을 넓히는 것이지, 어찌 길이 사람을 넓힐 수 있으랴"([논어])라는 말이 그러하다.

 길이란 이렇게 걸어가는 통로이면서 또 사람의 인생길이라는 뜻도 가진다. 길을 넓히면 광장이 될 것이고, 길을 좁히면 외줄이 될 것이다. 외줄타기야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광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탁 트인 저 하늘과 바다에도 길이 따로 있어서 비행기나 배가 제 마음대로 다니지 않듯, 광장도 제 마음대로 달리다가는 남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인생길을 넓은 광장 내달리듯 가는 사람도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또 우리는 많이 보아왔던 터다. 그러다가는 머지않아 사고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이처럼 사람의 인생길은 아무 데나 함부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길이야말로 그 어는 길보다 좁고 험한 길이다. 그런 점에서 조상들이 삶을 외줄타기에 비유한 것은 아주 건강한 처방으로 여겨진다. 아니 "새하얀 작둣날 위에 설 수는 있어도, 중용의 길에 서기는 어렵다"([중용])고 하였으니, 사람다운 삶의 길의 길을 외줄은 커녕 칼날보다 더 좁은 길로 여겼던 셈이다. 이럴진대 어찌 삶의 길을 술 취한 사람의 걸음처럼 방만하게 휘청거리며 걸어갈 수 있겠는가.

 해발 일 미터 위로 난 평평한 이 길은, 세상에서 제일 깊은 저 마리아나 해구로부터는 일만일천 미터 위의 고지(高地)에 난 길이며, 에베레스트 산으로부터는 팔천팔백 미터 아래의 심연(深淵)에 난 길이다. 터질 듯한 가벼움과 찌부라질 듯한 무거움이 엉킨 해발 일 미터에서 걷는 걸음이여!  억누르는 기압과 떠올리는 부력을 이기며 걷는 이 역설의 걸음걸음이여! 그렇다면 우리는 가끔 함부로 걸어가는 이 '일상'의 길이 결코 '평상'하지 않은, 무섭도록 '비상'한 길임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그런 각성에서야 사람의 인생길이란 것이 정녕 새하얀 작둣날보다 더 좁은 길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리라. (p.92~95)           

                                

 

     -배병삼,<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에서.

 

 

/ 제3부 고전의 주변 

 

  .새 세기, 글쓰기(P.254~263)

 

 .고전 읽기(P.26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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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와 함께 청송을 다녀왔습니다

.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렸습니다

.

교도소 안은 바깥보다 아무래도 2-3도 정도는 낮은 것 같습니다. 봄이 오려면 멀었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어느새 해가 길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월 3일(토)에는 일찍 국수집으로 나갔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국수집 앞에 4킬로짜리 콩나물 2상자가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메모가 적혀있습니다. "안심하시고 드셔도 됩니다. 혹 도움이 될까 해서요."

 

고마운 분들이 국수집 문 앞에 맛있는 음식을 놓고 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또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있는 정육점과 수퍼에 맡겨두고 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

그리고 온갖 좋은 것들을 우리 손님들께 대접하라고 보내주십니다. 참 좋습니다

.

어제는 화수시장 근처에 있는 농협 앞에서 호떡을 굽는 할머니께서 직접 간장게장을 담으셨다면서 간장게장을 조금 가져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점심 때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순의 할머니께서는 고향인 덕적도에 가서 직접 굴을 따셨다면서 한 봉지를 선물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명옥 씨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폐지를 주워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집에 쌀이 떨어질 즈음에는 참이슬 한 병을 치마폭에 감춰서 오셔서 수줍게 내밉니다. 딸이 떨어졌다는 표시입니다.

 

토요일인 어제는 손님이 끊임없이 오셨습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근처 경로식당에서는 회원증이 있어야 출입을 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근처의 중구와 남구 그리고 멀리 서울에서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민들레국수집으로 몰려오십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회원증이 있는 어르신도 드실 곳이 없어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십니다. 어제는 설거지하느라 자원 봉사자들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요즘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는 하루 평균 샤워를 하시는 분들이 80-100명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빨래를 하시는 분들이 50-60명 정도 됩니다. 그래서 세수비누와 수건 그리고 남자 팬티와 양말이 참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드럼 세탁기용 세제도 많이 들어갑니다. 독후감 발표하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인문학 강의'에는 처음으로 46분이나 참석해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과 공부방에도 아이들 방학이 끝나면 아기 손님들이 몰려올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동네 고마운 분들이 살짝 쌀을 내려놓고 가시기도 하고 달걀을 내려놓고 가시기도 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두꺼운 옷을 벗어놓고 어쩔 줄을 모르십니다. 덥다고 옷을 벗어버렸다가는 꽃샘추위에 큰 일 나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면서도 두꺼운 옷을 귀하게 여깁니다.

민들레 가게도 이제는 봄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금만 나눠주십시오

.

필리핀 아이들을 위한 옷을 현재 아홉 상자나 꾸려놓았습니다. 열두 상자쯤 모이면 마닐라에 계신 수녀님께 화물로 보낼 예정입니다. 아이들 여름 옷이면 좋습니다. 그리고 4월 하순에 베로니카와 함께 빠야따스 아이들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아이들 150-200명 정도의 학비를 마련해서 전해줄 예정입니다.

 

2012년 4월 1일(일) 오후에 "민들레국수집 9주년 기념 미사"가 국수집에서 있습니다. 축하해 주십시오.

 

                                       -민들레 국수집,민들레소식. 3/4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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