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5/8 어버이날

아흔 셋인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지 않으셨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도 당신은 혼자서 산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닭백숙을 준비했습니다. 신촌 권사님들께서 오셔서 돼지불고기도 손님께 대접합니다. 상추도 준비했습니다.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닭은 반마리씩 대접에 담아드립니다. 더 드시고 싶은 분에게는 더 드립니다.

어제는 중부경찰서 서장님과 월미 여경 봉사대가 선물을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설거지도 도와주셨습니다.

쌀이 아슬아슬한데도 불구하고 영희 할머니께서 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하십니다. 쌀 한 포와 라면 한 상자를 드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하자 할머니가 작은 카트를 끌고 오셨습니다. 하자 할머니는 호적상으로는 아들 딸이 있습니다만 당신 자녀들이 아닙니다. 혼자서 외롭게 삽니다. 기초생활 수급자도 될 수 없습니다. 쌀을 한 포 드렸습니다. 옥자씨가 딸과 함께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옥자씨는 마흔여덟 입니다. 남편은 아픕니다. 그래서 옥자씨가 폐지를 주워서 겨우 생계를 꾸려갑니다. 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쌀을 한 포드렸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국수집 앞에 쌀이 다섯 포나 쌓였습니다. 결혼기념 일주년인데 무얼 할까 하다가 부부가 쌀과 달걀을 사 들고 민들레국수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마 쌀을 나눠드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혼일주년 기념일을 맞은 부부는 아마 다른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필리핀 민들레 스콜라쉽(장학금) 민들레 꿈을 위한 통장에 고마운 분들의 후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필리핀 빠야따스에 민들레 꿈을 꽃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민들레소식 5/8 어버이날-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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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가득찬 아이처럼


오래 살게 되어도
늙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태어나게 된 '위대한 신비' 앞에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처럼
계속 살아가십시오.


- 헬렌 니어링의《인생의 황혼에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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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친구와 '은교'를 보았다.

 

 은교는 시인 이적요의 뜰에서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은교요." 답했던 열 일곱살 은교는 "그냥 이런 의자에 앉아 보고 싶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며 門이 아닌, 숲으로 난 벽 쪽의 사다리를 타고 돌아갔다.

 

 시인 이적요의 곁에는 '심장'이라는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젊은 서지우가 늘 있다. 시인의 생활을 수발하며 거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에게도 창작의 진전이 없던 날, 은교가 아르바이트로 이적요의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일하게 된다.

 

 시인은 아버지가 딸을 대하듯, 은교의 아르바이트에 함께 하며 둘은 문학과 시에 대해 공유하게 된다.

 어느날, 은교가 말한다. "아~저요 할아버지 시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어요. '동백꽃 무덤에 작은 새 한 마리 날아왔네.' 순간 이 영화의 모든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교와 시인의 친밀도가 나날이 깊어질수록 서지우의 질투는 심해지고, 어느날, 시인의 원고를 보다가 서지우는 깜짝 놀란다. '은교'라는 제목의 원고는 서지우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그는 시인의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베스트셀러작가에게 부족한 작품성까지 갖춘 소설가로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윽고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그 자리에 이적요가 나타나고, 축사를 빌어 말한다. 그는, "나는 늙었습니다. 내 詩에서처럼 늙음은 이제껏 입어본 적이 없는 나무로 만든 옷을  입게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젊음이 여러분의 공으로 주어진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닙니다. 은교는 더할나위 없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말한다.'

 

은교'라는 소설로 인해 은교도 그 소설을 읽게 되고, 뭔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자신을 극진히 묘사한 서지우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이적요시인의 나날은 은교에 대한,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창작이 제자에겐 '노인의 더러운 스캔들일 뿐이라고 그래서 내가 대신 발표를 했다. '심장'도 선생님이 써준 것이 아니냐."라는 조소를 받고 은교에게는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부끄러운 그런 절망적인 상태가  된다.

 

 시간이 가고 어느날, 눈 내리는 시인의 생일날, 은교가 창문을 닦던 시인의 눈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또 뻔뻔스럽게도 그 자리에 서지우도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한다며 나타나고 그날 밤.

 

 그리고 서지우가 자동차사고로 죽고, 대학생이 된 은교가 도서관에서 '은교'를 읽다가, 문득 깨닫는다. '은교'의 작가가 누구인지. 그리고 시인 이적요의 집을 다시 찾은 은교가 말한다. 술에 취해 잠든 시인의 등뒤에서. "누구든지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게 있잖아요. 들었다고 소설을 쓸 수는 없다는 걸 이젠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은교'의 주인이시잖아요. 고마워요. 저는 제가 그렇게 예쁜 아이라는 걸 몰랐어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떠난다.

 그녀의 말을 등뒤에서 잠자듯이 듣던 시인의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잘가라, 은교야."로 영화는 끝난다.

 

 원작과는 다소 다르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더 나았던 것 같았다.  원작의 에센스만을 뽑아 아름다운 영상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훨씬 좋았다. 누구나 소감은 다를 것이다. 친구는 참 슬펐다고 그러나 아름다웠다고 얘기하고, 나는 예술가의 창작물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포착과 경의일거라고, 그러나 서지우같이 자신의 작품은 하나도 없이 시인의 대필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껍데기가 알맹이를 도둑질하고, 나는 젊었으니까, 늙은 노친네를 대신하여 스캔들을 방지하고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발표를 했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인 대책없는 그 단지 위대한 시인보다 물리적으로 외피적으로 젊음이 유일한 무기인 서지우를 보며 안타까웠을 뿐이다.

 

 상영관의 앤딩신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1999년.'아름다운 시절'의 동숭시네마틱에서의 앤딩後처럼.

 

 롯데시네마의 앨리베이터를 타고 10층을 내려와 우리는 아직 해가 훤한 5시임에도 어딘가 호젓하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가 술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산기슭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에는 커다란 웨딩홀 같은 4층짜리 '고기 굽는 날'이라는 도무지 지금 우리의 감정과는 너무나 생소한 건물만 있었을 뿐, 결국 소박한 산 옆의 포장마차로 들어갔는데 이곳은 더욱 무차별의 컨셉으로 모든 열악한 기대를 한치도 저버리지 않더군. 그래서 다시 거창한 곳의 한적한 야외 테라스로 가서 꽁보리밥과 냉면과 참이슬을 시켜 놓고 해질녘, 산의 아름다운 정경과 바람을 맞으며, 오히려 포차보다 더욱 가격대비 저렴하고 융숭한 접대로 비로서 해피함을 마감했다.

 

 그런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대충대충  열망의껍데기로 잠시 반짝이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시선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친구는 예매를 하면서도 잠시 우려했다고 한다. 혹시 덧칠을 많이한 유화같은 영화가 아닐까 하고. 그런데 다 보고나니 깨끗한 수채화같은 그런 영화라 너무 좋았다고.

 

 그리고 나도 참  좋았던, 지극히 적요하고 행복한 삶의 한순간이었다.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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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척박한 땅에
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일수록
나무그늘 아래서 쉴 틈이 없다.
정작 나무그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그가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나무를 심을 때
쓸모없는 짓을 한다고
그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다.


- 이외수의《하악하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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