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이수경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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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1세기 대표 CEO 스티브 잡스, 그는 난폭한 폭군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스티브 잡스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지 말라!

 

  2004년, 어느날 췌장암 판정을 받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를 살게 될 것이라고 판정을 받은 스티브 잡스. 하마터면 리마커블한 희대의 경영자이자 디지털의 신화인 그를 만날 수 없었을 뻔 했다. 물론 아이팟도 아이폰도 만나지 못했을 뻔 했다. 다행히 내시경 검사에서 치료할 수 있는 희귀한 암으로 재판정되어 그는 수술을 받고 살아난다. 2005년 어느 날, 졸업을 맞이한 스탠포드 대학의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로 그들을 축하했다.

 

“여러분, 인생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상식이라는 덫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남의 의견이라는 잡음에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가 지워 없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마음과 직감은 여러분이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나중 문제입니다.”

 

  졸업식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립박수를 얻은 그의 연설은 지금까지 최고로 감동적인 연설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나도 이 연설문을 들었을 때 그가 단지 ‘열정적이고 순수한 CEO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천만에 말씀! 그는 다만 연설을 잘했을 뿐이다(그의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본다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프리젠테이션의 마법사’로 유명하고, 그의 프리젠테이션만을 주제로 책이 수없이 쏟아질 정도이다). 그의 연설은 재능의 일부분일뿐, 그는 가슴이 따뜻하지도, 자상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로마의 황제 네로를 찜쪄먹는 무자비한 폭군이다.

 

  오늘날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세계적인 CEO는 ‘스티브 잡스’다. 그의 회사인 애플이 만들어 낸 ‘아이팟i-Pod’과 ‘아이폰i-Phone’은 21세기 디자인 제품모델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순한 듯 세련된 모델, 편한 인터페이스, 하나도 나무랄 것이 없는 최후의 A/S까지 완벽한 제품에 세상은 지금 열광하고 있고, 애플을 지휘하는 스티브 잡스에 빠져 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은 이런 세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신인가 악마인가, 위기에서 빛나는 잡스의 마력!’이라는 부제도 흥미를 자극하지만, 1995년에 애플컴퓨터사에서 직접 일했던 경험을 가진 일본인 저자가 이 책을 썼다는 점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우선 애플에서 봉급을 받으며 일했다는 것은 내부 속사정과 루머의 진실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테고, 내부인임에도 불구 외국인, 게다가 일본인인 저자는 절저히 제 3자적 입장이 되어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주저없이 책장을 펼쳤다. 필력 또한 소설가의 그것만큼 훌륭했다. 재미? 겁나게 재미있었다. 원제목은 スティーブ・ジョブズ神の交渉力―この「やり口」には逆らえない!

 

 



 

 

  저자는 우선 스티브 잡스의 성격에 주목했다. 신만이 알 것 같은 그의 ‘특별한 성격’은 애플사의 놀라운 업적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능력과 협상력에 주목했다. 이 두 가지 요소 또한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주요한 무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성격, 프리젠테이션 능력, 리마커블한 협상력을 합해서 그를 평가한다면? 그는 여전히 ‘무자비한 폭군’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폭군 스티브 잡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저자는 그의 인생에서 ‘용기’를 배우라고 말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비춰진 스티브 잡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위기의 밑바닥에서 영광의 정점으로 뛰어올랐다가 또다시 전락하고, 다시 부활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숨어 있다. 세계금융위기를 겪는 오늘날처럼 아득히 추락만 하는 것만 같은 혼돈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고 있지 말고, 잡스의 ‘뜨거운 열정과 용기’를 배워 생각한 바 대로 한 걸음 내딛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스티브 잡스는 천재다. 타고난 천재일까?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 의하면 그는 빌 게이츠와 함께  ‘10,000 시간 이상의 노력과 연습을 통해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된 이른바 ’아웃라이어outlier'다(운 좋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함께 읽었다. 아웃라이어의 전형적인 모델로 빌 게이츠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소개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것이 한결 재미있었다.).

 

  어린 잡스는 운 좋게도 휴렛팩커드의 엔지니어들이 운집해 있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자랐고, 고등학생 시절, 실습을 위해 ‘전화부에 그 회사 이름이 있어서’란 이유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휴렛팩커드의 창업자인 빌 휴렛Bill Hewlett에게 직접 전화해(수신자부담으로) 부품을 공짜로 사용해 보고 싶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다음날 ‘항공편’으로 부품이 도착해 실험 교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고등학생인 잡스의 용기도 놀랍지만, 항공편으로 부품을 보내주고 게다가 휴렛팩커드 제조라인에서 조립 아르바이트를 할 것을 권유한 빌 휴렛의 안목도 놀랍다. 이 일화에도 스티브 잡스의 '엉뚱한 용기'가 엿보인다. 소설같은 이야기는 때로 오히려 현실에 더 많이 존재하는 법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유유상종이 아니던가? 이를 계기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빠져 아웃라이어가 된다.

 

 



 

 

  하지만 단순히 ‘컴퓨터에 빠진 천재(아웃라이어)’로 그를 판단하기엔 부족하다. 여기에 한 단어를 더 붙이자. 그는 전형적인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다. 컴퓨터에 빠진 오타쿠이고, 타이포크래픽(문자디자인)에 빠진 오타쿠이고, 디자인에 빠진 오타쿠다. 그리고 ’나‘에 집착하는 오타쿠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던 인텔의 앤드류 그로브는 혹시 ’스티브 잡스‘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잡스가 제품의 디자인을 정하면 컴퓨터의 부품들은 그 디자인에 맞춰져서 구겨 넣어져야만 하고, 제품 출시일을 결정하면 직원들은 그 데드라인에 맞춰서 일정을 짜야 한다. 못하면 아웃OUT! 쫓겨나거나 눈물이 빠질 만큼 혼이 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직원마다 인터뷰를 해 혼을 낼 정도라니 두 말 하면 입아프다. 디자인을 망친다며 A/S조차 해주지 않고, 새제품으로 교환해 줄 정도니까. 제 멋대로 판단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사와는 인터뷰도 하지 않아 ‘폭군 매스컴’이라는 욕을 먹는가 하면, 오늘의 애플을 있게 한 일등공신들을 자신과 뜻이 안맞다는 이유로 무 자르듯 잘라낸다. 그는 후회도 하지 않는다.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거칠어진다. 그런 그 옆에 왜 그토록 훌륭한 기술자들이 붙어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탁월한 설득력에 있다. 그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보이게 하는 설득력을 지녔다. 엔지니어들에게 그와 함께라면 정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매력에 빠지게 했다. 기술자 아니 오타쿠들에게 ‘창조’란 잠이나 밥보다도 더 소중한 무엇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와 함께 제품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최고’로 인정받는 셈이니 거절하기 힘들다. 두 번 째 이유 또한 그의 설득력 때문이다. 그가 찍으면 누구나 찍힌다. 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세계적인 기업의 CEO의 행동이라 볼 수 없는 유치한 행동을 해서라도 내 곁에 둘 사람은 옆에 둬야 하는 성격에 모두 항복하고 만다. 나중에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가차없이 버린다. 토사구팽.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천하없는 괴짜다. 수고한 직원들에게 자신의 스톡옵션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결별하는가 하면, 함께 공동제작한 <토이 스토리>가 성공을 이루자 계약기간도 되지 않아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을 요구했다. 한편 공공연하게 ‘악마’라고 칭하며 욕하던 ‘빌 게이츠’와 계약을 하자고 먼저 요청했고, 제가 원하는 기술자를 얻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누워 OK할 때까지 버텼다. 편한 말로 보통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다. 이게 뭐가 CEO야?

 

  하지만 스티브 잡스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찾을 수 없는 ‘비전’이 있고, ‘안목’이 있다.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인 매켄토시를 내 놓고 “들어올릴 수 없는 컴퓨터는 더 이상 컴퓨터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무실크기 만한 IBM 컴퓨터의 종말을 예고했고, 아이팟을 꺼내놓고 “아이튠즈는 음원을 불법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파일을 전송할 뿐”이라며 소송에서 승리해 레코드사를 누르고 MP3시장을 잠식시켰다.

 

  또한 스티브 잡스에게는 ‘열정’이 있고, ‘흡인력’이 있다. 그가 만드는 제품은 모두를 위한 포드의 중저가 T-model 자동차가 아니다.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랑하는 소수를 위해 제품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면 제품의 표준이 되고, 미래의 시작이 된다. 소비자로 하여금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게 그의 성격이다. 못됐지만, 소비자에게는 고마운 성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3분에 1,000억 원짜리의 가치를 가진다. 2,200만 대의 아이팟이 팔리는 동안 그는 세 차례의 프리젠테이션을 했기 때문이다.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이 있고 검은 폴라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스티브 잡스가 걸어나오면 이미 청중들의 눈과 귀는 그에게 사로잡힌다.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프리젠테이션의 마법사’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다른 책에서 만나지 못했거나, 대충 얼버무리는 스티브 잡스의 놀랍고 때론 엉뚱한 사례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남에게 입방정 대상이 되기 싫어하는 스티브 잡스가 알게 된다면 아마 고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의 특별한 성격이 어떻게 작용된 것인지 설명해주고 있다(잡스의 성격이 너무나 특별해서 자신도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부분도 있지만). 하지만 어수선해 보이는 이런 사례 속에서 스티브 잡스의 매력을 집어내고, 그 부분을 집중 설명해 이해를 높여주었다.

 

  저자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생은 딱 ‘세가지’다. 첫 번째는 ‘응애’하고 태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죽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자기(내) 뜻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세 번째는 자기(내) 뜻대로 할 수 있다. 그것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 뜻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함부로 주장하다가 쫓겨날지도 몰라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도전할 줄도 아는 샐러리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처럼.

 

  스티브 잡스는 그 무엇에 미친 듯 보이지만 결코 미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경악을 할 만큼 수척해 있다. 아직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듯 보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줄타기를 하는 그에게 하루는 하늘이 허락해 준 마지막 휴가일지도 모른다. “Stay Hungry, Stay Foolish(끊임없이 갈망하라. 늘 바보가 되어서 끊임없이 배워라).”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의 끝에 두 번이나 말하며 강조한 이유를 이 책을 덮으면서 알 것 같았다.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바로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당장 죽어도 후회없는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삶을 위해 하루 하루 악착같이 살아가는 것 뿐이다. 난 오늘 스티브 잡스에게서 '나답게 내 뜻대로 하루를 사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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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마음가짐 마쓰시타 고노스케 경영의 지혜
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양원곤 옮김 / 청림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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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숨을 걸 정도의 기개가 없다면 함부로 경영하지 말아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살아오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를 배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책을 통해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1998년 9월, 월간지 <라이프Life> 가 선정한 <천년 동안 세상을 바꾼 100가지 사건> 중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의 성경인쇄'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는데, 이처럼 활자에 의해 생산된 '책'은 인류가 생긴 이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로서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마츠시타 고노스케를 다시 만났다. 지난 주 읽은 <사원의 마음가짐>에 이어 이번에는 <경영의 마음가짐>이다. 세 권의 시리즈 중 두번 째인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경영인으로서 살아온 길도 훌륭하지만, 자신이 걸어왔던 순간 순간을 기록해 후세에게 들려주고, 함께 대화하려 했다는그의 자세는 더욱 훌륭하다. 나아가 경영인으로서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회사를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 인류에게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좋은 책들을 많이 남겨 많은 경영자에게 잔소리꾼이 되기를 자청했다. 이 책은 자신의 평생에서 인생 후반부를 살아오면서 가졌던 직업, 경영인으로서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살다 간 사람이 ‘경영의 길’을 이야기하려면 한 질의 전접이 라도 부족하겠다. 그래서 일까? 200 페이지 남짓의 책 한 권에 담긴 그의 말들은 임팩트하고, 하나도 놓칠 것이 없었다. 모두가 소중한 충고, 머리에 담고 가슴 속 깊숙이 새겨둬야 할 교훈들 뿐이었다. 그는 경영을 일러 ‘살아 움직이는 종합 예술’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정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고, 기업 환경, 제품 생산, 판매 방법, 인재 육성, 재무 내용 등 경영의 요소 하나하나에 올바름 경영 이념이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종합 예술의 연출자’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목표란 '주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서슴없이 M&A를 하고, 인적감원을 밥먹듯이 벌인다. 이런 근시안적 목표설정은 경영인들에게 도덕적 헤이(모럴 헤저드)를 불렀다. 도덕적 헤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발 세계금융위기가 아닐까? 금융기업의 가장 윤리적인 기업정신은 ’투자자의 자금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일진대 근시안적 성장에의 집착과 탐욕이 세계를 불황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기업의 목표란 다름 아닌 사업을 더욱 탄탄하게 성장시키고, 훌륭한 사원을 육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 훌륭한 사원들이 육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 즉, 소비자들이 좀 더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인류에의 공헌을 말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업은 ‘한번 해 볼까’ 정도로는 결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승부다”고 단언한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목숨을 걸 정도의 기개’가 없이는 사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그의 기업목표가 지금의 파나소닉을 있게 했구나’ 싶어 섬득하기까지 했다. 전설이 된 노老 회장의 충고는 경영이념에만 그치질 않았다. 

프랜차이즈 업체여, ‘노렌’의 의미를 아는가?

  옛날 일본의 점포엔 꼭 있었던 노렌. 즉 포렴布簾이라는 것인데 상점 출입구에 가게 이름을 써넣어 드리웠던 천을 말한다. 이 노렌은 ‘가게의 신용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며, 손님의 믿음이기도 한다. 그래서 가게의 생명처럼 여겨 손상되지 않도록 소중하게 생각한다. 가게 문을 열 때 제일 먼저 노렌을 펴고, 가게 문을 닫을 때는 가장 늦게 걷어낸다. 그들은 ‘노렌 나누기(분점차리기, 프랜차이즈)’ 또한 함부로 하지 않았다. 노렌의 신용을 손상시키지 않을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노렌을 나누어줬다. 그리고 남발하지 않았다.

어디 그 뿐인가? 노렌의 전통만큼이나 손님을 소중히 여겨 그들을 위해 꾸준히 변화한다. 그래야 손님으로부터 계속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가맹점을 남발하는 프랜차이즈 업체, 브랜드 네임밸류만 믿고 찾아온 손님에게 옳지 않은 식재료로 장사를 하는 업체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었다. “짓는 데 몇 년이 걸린 건물도 부수는 데는 3일이면 충분하다.”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납품 회사와의 공존공영이 구매의 대원칙이다!

  세계 최대 물류할인 매장이었던 ‘까르푸’와 ‘월마트’를 국내기업인 ‘E-mart'가 물리쳤을까? 아니면 애국심이 발동한 소비자들의 행동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외국계 기업들이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호응을 얻은 이유는 ’현금결제‘였다. 최소 3개월에서 최대 3년까지 어음을 끊었던 국내의 유통관행에 ’현금결제‘를 납품회사에게는 엄청난 헤게모니였다. 하지만 곧 그것이 ’치명적인 무기’가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국계 할인업체들은 납품업체들에게 현금결제를 하는 대신 엄청난 가격할인을 요구했다. ‘그렇게 할인된 금액으로는 본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항변을 하면, 두말 없이 업체를 바꿨다. 이러다 보니 우수 납품업체들은 하나 둘 씩 매장을 철수하게 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발업체들만 남게 되었다. 그후 소비자가 등을 돌리게 된 건 당연한 후순이었다. 처음 외국업체의 도약으로 당황했던 국내 할인유통업체들은 이 때를 틈타 꾸준한 유통과 물류 전반에 걸쳐 혁신을 이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외국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더 이상의 경쟁자가 없는 지금, 국내 할인유통업체들이 또 다시 납품업체들에게 ‘엄청난 할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뉴스를 만난다. 자신들이 무엇때문에 성공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납품업체에게 가격할인을 요구하기 전에 더 나은 물류혁신을 추구하라고 한다. 그리고 납품회사의 현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할인정책을 추진하라고 말한다. 물론 정황과 사정을 설명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추진해야 한다. 납품업체는 본사의 자매사다. 즉 가족이다. 자매사를 죽이면 머지 않아 본사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가격 경쟁력 확보’만을 마케팅으로 생각하는 일부 할인업체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경영의 신답게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기업마다 명확한 경영 이념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업을 하는가?’ 하는 고민인데, 경영이념은 ‘무엇이 정당한가’라는 인생관, 사회관, 세계관을 바탕으로 확립되어야 하고, 이런 도덕적 토대가 올바른 경영 이념이 세워진다고 보았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자 하는 생각’으로 경영 이념을 수립하면 국내외, 나아가 미래에도 통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경영자의 길은 어렵고 외롭다. 우선 기업을 잘 이끌어야 하고, 직원들을 기쁘게 해야 하고, 나아가 질좋은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기쁘게 해야 한다. 모두를 기쁘게 한 후 생기는 이익이 바로 경영자의 몫이란다. 모두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의 책임은 모두 경영자의 몫이란다. 어찌 어렵고 외롭지 않겠는가? 한편 경영자는 아무나 해서도 안되고, 하무나 할 수도 없는 일이란 것을 느꼈다. 또한 최소한 소비자에게 기쁨을 제공하는 경영인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경영자들에게는 지침이 되는 필독서이고, 독자들에게는 경영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훌륭한 안내서일 것이다. 이런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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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앤드 밸리 - 절망의 골짜기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라
스펜서 존슨 지음, 김유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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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존슨, 그가 오늘 치즈를 버리고 산에 올랐다!

  세상이 깊은 골짜기에 빠졌다. 십 년 전에는 우리만 빠졌는데, 이번엔 세계가 몽땅 빠져버렸다. 불황, 실업, 소비위축, 자살...아홉시 뉴스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넘쳐나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 표정은 굳어 있다. 힘을 내보려 애를 쓰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누구에게 원망해야 할이지 조차 모르겠다. 두려움이라는 짙은 안개가 세상을 드리우고 있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 우리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갑작스런 ‘부재不在의 고통’에 빠져 있을 때 격려해 준 책이 있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 책이었는데, 주인공 쥐 허를 통해 치즈(내가 가지고 있던 소주한 것들)'를 상실하게 된다면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리는데, 이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들과 지혜들을 제시해 줘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 그가 올 해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인을 위해 또 다시 책을 냈다. 2009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신작이다. <피크 앤 밸리 Peaks and valleys>- 절망의 골짜기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라 이다. 

 

"직장생활이든 인생이든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스펜서 존슨은 지금의 위기를 ‘골짜기’로 바라보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라...우리의 심장 박동 그래프가 닮았고, 기분의 변화표를 닮았고, 주식 도표가 그렇다. 스펜서 존슨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무한하게 많은 산에 오르는 것으로 보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는 지금 골짜기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산은 피크(정상)과 밸리(골짜기)갖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우리 인생의 전성기와 침체기와 같다. 나의 하루 기분이 수없이 변했듯이 우리 인생의 기복도 변화가 심하다. 산이라는 인생에서 골짜기란 바닥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장소다. 더 이하는 없다. 이제 올라가는 길 뿐이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 오르막과 내리막만 있다면...너무 괴롭지 않을까? 오르막에서 영원히 있을 수는 없을까?

  오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을 빼고는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웃고, 즐거웠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이다. 괴로운 때가 있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슬플 때가 있어 기쁠 때를 아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기복을 갖고 있다. 마치 산의 모양처럼. 그렇다면 산의 정상은 가장 뾰족하지 않던가? 그럼 기쁨의 순간은 잠시라는 것인가? 그 순간을 위해 살아야 할까?

  이 책은 그 답을 던지고 있다. 인생의 절정과 나락은 산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성공에 도취되어 저지르는 실수는 내일을 불행을 초래하고, 오늘 시련에 슬기롭게 대처하면 내일의 행복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했을 때, 기쁠 때, 행복할 때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쁜 시기에 빠질 위험을 줄인다. 정상에서 오만하지 않고, 안일하지 않으면 그 정상을 오래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침체기에 빠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골짜기는 산의 부분인 것처럼 지금의 위기는 내 역사에 있어서 짧은 순간이다. 언젠가는 벗어난다. 하지만 마냥 두려워 한다면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현실과 친해져라. 현실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보지 말아라.” 현실을 파악하고 침체기에 빠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른 봉우리(현실에 맞는 미래)를 바라보고 첫 발을 내딛어 길을 나서는 것만이 골짜기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할 말들이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했지도 모르는 진리같은 말이었다. 

  이 주전 주말, 그녀와 함께 청계산을 올랐다. 봄기운을 만끽하기는 등산만한 것이 없을 거라며 전날 밤 즉흥적으로 결정해서 오른 터라 사전지식도 준비도 없이 결정한 일이었다. 처음 올라간 청계산淸溪山은 ‘천계단千階段’ 이었다. 흙을 밟고, 바위를 밟은 기억은 없고, 계단만 천여 백개를 오른 것 같았다. 혼자 올랐다면 그만 포기하고 내려오고 싶었던 마음이 수십 번은 들었다. 둔턱마다 서서,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기를 얼마나 했던가? 마침내 망경대에 도착했을 때 땀을 식혀주는 듯 부는 봄바람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골짜기 아래 평지에서든, 그 중간이든 사람들은 산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산이 정상이 있는 뾰족한 삼각의 모양인 것을 안다. 하지만 오르지 않는다면 그 정상에 설 수 없다.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정상에 오르기도 힘들다. 정상을 오르려거든 처음부터 장비를 챙기고, 일기예보를 듣고, 식량을 준비해서 올라야 한다. 내게 주어진 현실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 산에 오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물론 끝까지 오를 체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나는 청계산을 오른 다음날부터 일주일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다).

  저자는 고통과 기쁨, 슬픔과 성공, 추락과 상승은 반복되므로 지금 골짜기라고 해서 허둥지둥 거리지 말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내리듯 인상의 싸이클에 몸을 맡기고, 침체기인 지금 현실을 직시해 기회를 찾고, 다가올 전성기를 준비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십 년전 IMF때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 다시 기운을 얻었다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아마 그들에게 산이 그렇게 격려했을 것 같았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목적은 남이 구한 답을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 책은 내게 두려워 말고, 긴장을 풀고 좀 쉬기를 권하는 것 같았다. 한결 편해진 기분, 묘했다. 산을 좋아한다면 산 중턱에서, 정상에서 읽는다면 그 뜻을 더 깊이 새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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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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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범인이 밝혀진 추리소설. 이것이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에게, 그럼 재미없어서 어떻게 읽어?”라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범인을 알면 추리소설은 끝장난다는 내 편견, “스릴러는 영화로도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무너뜨린 소설이 있다. 스릴러 영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있더란 말이다. 하긴 출간하는 작품마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이니 두 말 하면 입아프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소설, 악의惡意를 읽었다.

 

  어느 날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처음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결혼한 지 막 한 달이 된 아내와 피해자의 가장 친한 친구. 목격자이자 용의자가 된 두 사람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다 목격자중 한사람, 동화작가인 친구를 유력한 용의지로 지목, 추궁 끝에 자백을 받는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라면 정통추리소설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짐작할 수 있는 뻔한 내용, 뻔한 결말이다. 하지만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노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죽였을까? 어떻게 죽였을까? 형사와 범죄자의 불꽃튀는 머리싸움을 지켜보기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다.

 

 

  최근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곧 영화로도 개봉되는 ‘용의자 X의 헌신’이다. 물리학과 교수와 천재 수학자의 치열한 머리싸움을 지켜보다 그 매력에 빠져 저자의 전작을 만난 소설이 악의였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은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범인이 빨리 드러난 점, 불륜코드가 섞여 있는 점, 범상치 않은 지능을 가진 두 사람의 공방전, 사건의 내용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반전 등 아직 제대로 파악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풍의 사건전개방식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메이드 인 재팬‘의 냄새가 확연하다는 것. 노총각의 때늦은 사랑, 학교에 만연한 왕따문제, 노숙자문제등 현재 일본에 만연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은 일본에서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사회문제양상들이 소설속에 제대로 녹아 들어 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읽었을 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라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건들이 심상치 않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특히 작가라는 직업 세계에 주목했다. 범인의 자백과 사건경위서 그리고 형사의 일지까지 스토리의 진행방식 역시 서로 번갈아가며 글로써 나타낸 점도 독특하다. 이 점이 사건을 전모를 흐리게 한 시발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우리의 현실에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범인이 자백을 했다면 ‘옳다쿠나’하고 종결지어야 할진대, 소설 속의 형사는 그 점을 물고 늘어진다. 가가형사의 이 집요함은 “현상에는 항상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 박사를 생각나게 했다.  ‘충동에 의한 우발적 살인’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주도된 살인’임을 입증하게 된다. 같은 살인자이지만 한 순간의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우발성을 내세워 일말의 동정을 얻을 수 있었던 가해자는 형사의 논리적이고 집요한 수사 끝에 ‘희대의 살인자’의 전모를 밝혀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속에서 ‘살인사건’이라는 현상은 종결은 언젠가는 이뤄지겠지만, 사건의 진실은 과연 얼만큼 밝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살인을 당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자백에 의해 선과 악의 줄타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죄질에 의한 형량을 떠나 ‘진실’을 밝히는 것이 형사의 도리라면, 살인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함으로서 억울한 망자亡者의 한을 풀어주는 가가형사같은 진짜배기 형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실에서도 과연 그렇게 집요하게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일까? 생각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살인자의 심리 즉, 인간의 잔혹한 면에 주목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 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통쾌하기 보다는 씁쓸한 여운이 항상 느껴진다. 한편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스트라이터와 비슷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절대로 혼자서 쓰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이럴 것 같다. 자신의 러프한 초고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누군가 초고의 허점들을 일일이 짚어낸다. 그다음 피드백으로 수정을 거듭해가며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러프한 초고는 현상에 보이는 사건의 모습이고, 허점은 바로 형사의 시선이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스토리는 물흐르듯 진행되고, 스토리는 점점 탄탄해져갈 수 있도록 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고는 작가가 '지킬 과 하이드'가 아니고서는 전혀 상반된 양극의 심리를 이렇게 치밀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가 혼자서 글을 써내려 갔다면 무서우리만치 놀라운 소설가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추리소설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늪에 허리만큼 빠져버린 기분이 든다.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의 나는 지금,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구성된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를 보고 있다. 그가 쓴 작품들이라면 모두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2009년 4월의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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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웨이>를 리뷰해주세요.
리더스 웨이 - 세계는 지금 새로운 리더를 요구한다
달라이 라마, 라우렌드 판 덴 마위젠베르흐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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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세상을 이롭게 할 '비즈니스 리더십'을 말하다

 

  시장에서 손님과 장사꾼은 흥정을 하고 있다. 좀 더 깎자는 손님과 그럼 하나도 안남는다고 버티는 장사꾼. 결국은 약간의 덤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며 흥정을 맺는다.“이러면 밑지고 파는 거에요, 정말이에요, 손님.” 돌아서면서 손님들은 “하여튼 장사꾼은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그 거짓말쟁이 장사꾼을 다시 찾아간다. 정말 밑지고 판 것을 안 건지, 다른 장사꾼보다는 덜 거짓말을 한 지는 모른다. 어쩌면 한 웅큼의 덤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욕먹으면서도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장사꾼은 고개를 깊이 숙인다. 

  우리나라의 상업은 사농공상 중 맨 꼴지였다. 흥정 붙고, 속인다는 이유였다. 장사꾼이 종교를 믿는 것도 우습다고 여겼다. 한편으론 종교를 믿고 사죄 받아야 매주 새로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냐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에서 말하는 ‘부가가치’는 때로 ‘부당한 이익’으로 불린다. 아무렴 어떠랴. 소비자가 그렇다는데... 거짓말쟁이로 욕을 먹을지언정 내가 그렇지 않으면 된다.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자주 와서 많이만 팔아주면 좋겠다. 이것이 장사꾼, 비즈니스맨들의 딜레마요, 비애다.

  불교와 비즈니스라... 처음엔 어딘가 모르게 물과 기름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의미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산중에 들어가 참인간을 위한 수행을 하는 종교인께서 비즈니스를 말한다니 과연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다. 반면 철저하게 제 3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비즈니스를 관찰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사람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종교인 불교는 근본적인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깊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비즈니스맨들이 행복하고자 돈을 버는데 노력을 다한다면, 수행자들은 삶의 깨달음을 얻어 행복하고자 수행을 한다. 흥미로운 두 관계가 대조를 이룰 것인지 조화를 이룰 것인지 사뭇 궁금해졌다. <리더스 웨이>를 펼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원제목은 The Leader's Way: Business, Buddhism and Happiness in an Interconnected World 이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며, 티베트 망명정부의 영적 지도자이고 ‘살아있는 부처’라 칭송받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 와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레우렌스 판 덴 마위젠베르흐가 비즈니스 리더의 면면에 대해 의견을 내어놓고, 서로를 보충해 결론을 맺어가는 방식으로 서술한 특별한 형식의 책이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노력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애쓴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고, 지금은 티베트 정부의 독립을 위해 세계를 돌며 노력하시는, 다시 말해 큰일을 하며 바쁘게 활동하시는 종교지도자가 비즈니스를 논하신 이유가 뭘까 하는 게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좀 더 근본적인 곳을 건드려야 더욱 쉽게 널리 퍼질 수 있다는 마케팅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대단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사회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리더와 지도자들을 먼저 변화시켜야겠다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헤아림으로 비춰졌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아닐까? 지극히 올바르신 판단이다.

 

  불교는 인간적 가치관을 강조한다. 전일론(全一論)적 시각, 즉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이룬다는 사상은 불교가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부와 노동, 소비와 행복을 대하는 불교의 철학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성취하느냐 와는 달리 ‘만족할 때’ 비로서 생겨난다. 이는 물질적이고, 욕망의 충족을 이야기하는 서구의 그것과는 좀 다른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본능은 끊임없는 욕심이기에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는 끝없는 순환고리이고, 행복은 혼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 상호적인 것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올바른 비즈니스의 방향에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특히 달라이 라마는 비즈니스를 주관하는 ‘리더’에 주목했다. 이 책은 독자와 지도자들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때 그 파장과 영향력이 얼마나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독자 스스로 비즈니스 리더가 되고 지도자가 되어 불교의 뜻이 담긴 마인드로 우선 자신을 수양하고, 조직을 이끌고, 나아가 세상의 주된 이슈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여 비즈니스와 사회가 좀 더 올바르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한 나라의 지도자가 친분있는 경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불명예를 얻고 있는가 하면 투자자의 자금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직업적 윤리관을 가져야 할 금융업계의 수장들이 방만한 경영을 해 기업을 무너뜨리고,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히는가 하면, 대량감원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은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챙기는 악덕 기업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들이 일으킨 부도덕과 범죄도 밉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훌륭한 비즈니스 리더라고 믿음을 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더 미워진다. “결국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체념은 세상엔 믿고 본받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도덕적 헤이(모럴 헤저드 Moral Hazard)는 이래서 생긴다. 그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더 가중한 벌을 받아야 함은 그 이유에서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믿게 만든 죄 때문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에 우선 한다면 그 순간부터 리더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침착하고, 평온하며 마음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흔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진정한 리더란 변화는 피할 수 없으며 보편적인 책임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제와 도덕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을 그르치거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제라도 변하고자 한다면 고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는 사람의 지금까지 그가 행한 모든 일의 축적물로 본다. 가르카業의 이치란 선한 이을 행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악한 일을 행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선을 행하면 악행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변화는 곧 개선을 뜻한다. ‘점점 더 나아지는 것’, 이것은 경영의 핵심인 혁신innovation과 닮았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내용은 [리더의 여섯 가지 수행]과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일곱가지 마음수련법]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용어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에 해당하는 육바라밀(보살이 수행하는 여섯가지 바라밀법)을 나눔, 도덕적 원칙 지키기, 인내, 열정 다하기, 집중, 참지혜 깨닫기로 풀어 리더들이 먼저 스스로를 정화시키기를 권하고 있다. 이를 돕기 위해 제안된 걷기, 숨쉬기, 앉아 있기, 집중하기, 분석하기, 마음으로 그리기, 만트라 외기등의 일곱가지 마음수련법은 자정自靜을 위한 방법론으로 삼을 만 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다. 이들을 아우르면 모두 여덟 가지로 압축된다.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괴롭고,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들뜬다(심하면 고민이 된다). 실패를 경험하면 우울해지고, 상공을 경험하면 행복해진다(행복을 잃을까 고민된다). 또 가난해지면 낙심하고, 부를 얻으면 기뻐한다(얻은 부를 잃을까 고민된다). 마지막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나고, 명성을 얻으면 즐겁다(즐거움이 곧 사라질까 고민된다). 리더 역시 늘 고민 속에 살아간다. 이 책에서 달라이 라마는 그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해 주었다.

 

  오늘날을 일러 ‘승자독식사회Winner takes all - society’라고 한다. 승자는 마땅히 박수와 찬사를 받아야 하지만, 사회는 승자를 등에 업어 그 명성을 함께 누리려 쏠리게 되고, 경쟁과 암투가 치열해져 그에 따른 비리와 부정, 그리고 승리감을 오래도록 누리려고 하는 욕심은 어울려 결국 ‘명예롭지 못한 승자’들로 전락하고 있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소비자를 보다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 리더의 존재 가치는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 제일 앞에 선 리더는 반대로 가장 뒤에서 행복감을 누려야 한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해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비즈니스 리더이고, 지도자가 아닐까? 그 때가 그들이 행복할 때가 아닐까?

 

  달라이 라마가 보여주는 바람직한 ‘리더의 길’을 읽는 동안 세상의 리더들을 반추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내 떠오른 인물은 ‘마츠시타 고노스케’ 였다. ‘난 학력도 짧고, 몸도 약한 모자른 사람이다. 하지만 이 부족한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을 사랑해주는 소비자들을 위해 목숨바쳐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세상의 많은 제품 중 내 제품을 사랑하는 소비자는 나의 왕이다. 그 분들이 있어 내 회사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를 위해 물건을 만드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는 비슷한 내용으로 자신의 자서전에 쓴 바 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장사꾼’으로 살아온 그는 소비자의 사랑을 알고, 소비자에 대한 사랑의 보답을 안 사람이었다. 그것을 행복으로 안 경영인이었다.

 

  존경하기 보다는 존경받기에 익숙한 경영인이나 지도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지금 현존하는 비즈니스 리더나 지도자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 책은 그들을 위한 책이다. 저보다 세상을 먼저 이롭게 하겠다고 마음먹기가 사람이기에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달라이 라마의 목소리는 자기계발서들 그 누구의 것보다 “진중하고 무거운 말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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