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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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틱한 일곱 개의 단편. 단, 한꺼번에 읽지 말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못됐다. 뉴스나 신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교통사고와 자연재해을 접하면 ‘저런 쯔쯧쯧~’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유독 살인사건, 다시 말해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는 ‘오~ 무슨 일이고?’ 하며 관심을 둔다. ‘왜 죽었을까?’에 흥미를 느낀다는 말이다. 남의 일같지 않아서 일까? 살인자적 측면일까, 피해자일까 알 수 없다. 이런 관심도 부족해서 사람들은 추리소설을 읽는다. 살인사건은 왜 일어났고, 범인은 누굴까?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잡았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 한다. 

  물론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가족의 억울한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잡는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고, 가장 우선적인 해결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겠지만, 독자가 모두 형사가 되고 싶을 리 만무한데 왜 그렇게 있지도 않은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까지 살인사건에 집착해야겠냐는 말이다. 그런 이유는 이런 사건은 좀처럼 만나 보기 힘들고, 또한 죽은 사람을 놓고 벌이는 범인과 형사의 머리싸움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풀어야 할 해답’ 중에 가장 ‘스릴’이 있는 싸움이기 때문은 아닐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끔찍한 스릴’을 즐긴다니 그게 못됐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든 이야기를 즐기니 더 못됐다. 

  요즘 내가 못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늦은 밤 조용히 홀로 앉아 잠을 잊고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 읽고 나면 항상 ‘피해자의 억울함’과 ‘범인의 잔인함’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실마리가 잡히고 서서히 풀려가는 매력에 사로잡혀 책을 놓질 못한다.원인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쁜 사람이다, 이 사람. 지난 토요일 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을 읽으며 밤을 새웠다. 원제목 犯人のいない殺人の夜 이다. 

 



 

  살인사건은 일어났다. 하지만 범인이 없다? 말 그대로라면 자연사나 자살이 아닌가? 하지만 자연사도, 자살도 아니다. 과연 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를 범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일곱 편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일본에는 199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의 작품다운 트릭과 의외성이 숨어있는 단편 미스터리물이다. 지금껏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장편소설이고 ‘놀라운 지능의 범인’과 ‘ 더 놀라운 지능의 해결사(형사, 물리학 박사)’의 승부였다면,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다반사’의 사건과 ‘평범한 인물’들이 가해자라는 점이 특별했다. 그의 장편에서 느꼈던 길고 긴 숨과 최고 꼭지까지 고조되는 긴장감은 없지만, ‘평범한 사건 속에 숨은 의외성’은 장편의 그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에서 말이 되지 않는 사건에 대해 글을 쓴다면 ’개연성도 없고, 현실성없는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이 현실이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들이 들어 있다. 길고 짧은 한 편 한 편의 스토리마다 임펙트가 강했다. 

  <작은 고의故意에 관한 이야기>는 말그대로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을 말한 단편이다. 이는 ‘과실치사’ 즉 고의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주의의무위반이나 발생한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을 문제삼는 과실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고의성故意性을 지닌 우발적 살인을 이야기했다. 사춘기 시절에 겪는 연인의 버려짐, 즉 실연失戀의 가능성에 일어난 사건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적 사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둠 속 두 사람> 역시 청춘시절 겪는 사랑으로 빚어진 사건을 담았다. 사랑과 욕정을 누가 함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욕망 앞에서 있는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춤추는 아이>는 소년의 안타까운 사랑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3미터 거리 만큼 떨어진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 짝사랑이 그것이다. 답을 알 수 없기에 한없이 순수하고, 뜨거울 수 있는 이 사랑은, 알려지는 순간 불쾌한 집착으로 보여지거나 혹은 오해를 사는 아픔을 낳는다. 내가 던졌던 짝사랑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래서 그들도 인생이 변했을까?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끝없는 밤>은 형사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했다. 용의자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범인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 형사들은 자신이 찍은 용의자가 범인인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기뻐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했을지를 알아야 하기에 범인의 입장에서 다시 추적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끝내 죄는 미워하고 인간은 미하지 말아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각을 잃어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항상 오감을 깃세워야 하는 그들의 직업에 경의를 표하게 했다. 

   <하얀 흉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지 않게 ‘호러물 같은 공포심’을 불렀다. 자식을 잃고 ‘싸이코’가 되어버린 여성을 보면서 가늠할 수 없는 모성애의 깊이와 넓이를 만나게 된다. 또한 상심의 원인을 찾아 복수하는 원초적인 인간성을 목격한다. 섬뜩한 소설이었다. <굿바이, 코치>는 무서운 살인사건 이야기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 남에게 불행을 부르는 인간과 자신의 영원한 사랑은 자신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인간이 빚어낸 살인이었다.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사건의 정황을 비출 때 ‘일본인답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처럼 잔인하도록 섬세한 사건을 만나면 ‘과연~’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작품의 백미였다. 쇼프로에서 ‘조용필’은 맨 나중에 나와 대미를 장식하듯 이 작품 한 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반전에 반전, 마지막 대반전은 어의를 잃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코멘트는 불가하다. 느낌도 말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야 한다. 서점을 찾아 서서라도 이 작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이 ‘완전무결한 사건’을 만들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가장 크게 단죄해야 할 ‘살인’을 해놓고,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의 악심惡心은 과연 그들만의 소유물일까? 그리고 불완전하기에 그 자리에서 ‘범인’을 벌할 수 없는 형사는 어떤 심정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대할까? 이것이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찾는 ‘행간의 의미’다. 만약 우리가 제목처럼 ‘범인없는 살인 이야기’를 읽는다면, 아마도 그 책을 읽고 ‘범인 없는 추리소설이 말이 되는가?’ , ‘추리소설가는 직무태만을 한 것 아닌가?’ 외치며 재미없는 책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뭍혀가는 수많은 사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사건들은 ‘말이 되는 사건인가?’ 소설같지 않은 사건들이 현실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범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범인이 잡히지 않는 한 스토리는 진행중이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으면 범인의 지능과 형사의 사건해결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작가’의 필력에 얼만큼의 찬사를 던질지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얼른 잊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무려 일곱 건의 살인사건이 아니던가? 게다가 주위에서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어서 작가의 필력을 운운하기에 앞서 피해자와 살인자의 면면에 사로잡혀 미망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늦은 새벽에 한 권을 모두 읽고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았다면 말을 말아라. 과거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성을 발견할 수 있는 책, 하지만 편한 밤을 보내려거든 하루에 한 편씩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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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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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09년 가을, 지구를 지키기 위해로 돌아온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날아라 힘차게 나-는 우주소년~아-톰~...” 초등학생 시절의 한동안, 내 손엔 엄마가 일곱 살 때 생일선물로 사 주신 아톰인형이 들려 있었다. 조그마한 손이지만 힘을 줘 꽉 쥐면 ‘삐~이~익“소리가 나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약간은 말랑해서 사람 피부같은(어림도 없겠지만) 플라스틱 재질의 아톰은 오른손을 쭉 펴고 왼손은 허리에 붙인 채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 오를 것 같은 표정을 한 모습이었다. 물에 젖을 염려도 없고, 녹도 슬지 않아 목욕을 할 때면 꼭 필요한 절친한 친구, 그래서 가물에 콩나듯 동네 목욕탕이라도 갈라치면 손바닥이 할머니 손처럼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몸통이 허옇게 불어터질 때까지 몇 시간동안 아톰과 함께 한 편의 모험영화를 찍었더랬다. 2학년을 마무리 할 때 즈음 악당괴수, 옆 집 리트리버와 한 판 붙다가 물려서 얼굴이 일그러진 이후엔 다락방 장난감 바구니에 모셔져 영구폐기 되긴 했지만, 초합금(악당괴수가 물어도 상관없는) 로버트 태권V를 입양할 때까지는 내 소중한 히어로였다.

  그런 기억이 남았던 터라 얼마 전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 제목에 눈이 번쩍했다(현재의 나이는 때로 추억에 지배당한다). 아톰이 부활했나? 이제와 무엇이 슬프다는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련한 추억에 밀려 냉큼 집어 들었다. 아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실망. 그를 만든 아버지,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가 주인공이었다. 이 책은 1946년에 태어나 1989년 위암으로 투병중 사망할 때까지 약 43년간 그의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어린이, 자연, 환경, 과학기술, 아톰, 그리고 지구에 대해 고민한 기록들을 한데 모아 유족들이 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수많은 만화작품들을 통해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이며, 그가 창작하는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에피소드와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일개 만화가가 만화책이 아닌 아닌 수필집으로(그것도 유작으로) 책을 내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책장을 덮은 후에는 만화대국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만화가가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 인 이유를 알 듯 했다. 그는 만화가 이면서, 환경운동가였고, 과학자였으며, 사상가였다. 원제목은 ガラスの地球を救え―二十一世紀の君たちへ ;유리같은 지구를 구하라 - 21세기의 제군들에게.. . 꽤나 장중한 원제목이다.

“지구의 죽음. 그것은 우리의 자손들과 그것은 우리의 자손들과 이웃의 아이들, 오늘은 활기차게 웃고 울고 장난을 치며 어른들을 성가시게 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없이 소중한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자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도 참혹한 일인 것입니다.

지구는 이제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인류는 어디서부터 항로를 이탈한 것일까요?“ (14 쪽)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성장에만 관심을 두던 1980년대에 그는 과학발전에 놀라기에 앞서 자연과 지구 그 속에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염려했다. 과학이란 본래 인류의 행복을 위해 생긴 것, 하지만 점점 지구를 파괴하는 원흉이 되고 있는 현실을 두려워했다. 나의 영웅이기도 했던 10만 마력의 힘을 지닌 정의의 사자 ‘우주소년 아톰(일본의 만화 제목은 철완 아톰이고, 미국에서는 애스트로 보이Astro Boy로 불렸다)’ 역시 과학지상주의를 칭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분별한 지구환경 파괴에 맞서 지구의 멸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어릴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아톰은 늘 인간들에게 내내 ‘과학이 낳은 생명체’로만 여겨졌다. 아톰이란 작품이 인간과 소통할 수 없듯, 지금 인류는 지구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책에서 여러 부분을 통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한 정보화 시대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 마치 홍수가 범람하듯 쏟아지는 정보들에 우려를 표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역시 인류의 미래인 어린이를 먼저 생각했다. 오늘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폭력과 비행, 부모 자식 간의 단절, 생명 경시 풍조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지금껏 흡수하고 축적한 정보들이 그렇게 만든 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란 ‘생명의 존엄을 전하는 메시지’이고 이러한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지금같은 고도 정보화 사회에 우리 어른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임을 강조했다. 

  SF 즉, 공상과학을 토대로 만화를 무수히 제작했고, ‘밀림의 왕 레오’와 같이 동물과 자연을 주제로 한 만화도 만들었던 그인 만큼 ‘미래’에 대한 고민에 대한 그의 수준은 철학자를 버금갔다. 이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컨텐츠 제공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고민이다. 어쩌면 당연한 그의 생각에 새삼 놀라고 배우게 되는 것은 오늘날 ‘흥행몰이와 인기, 시청률’에 급급하며 만들어지는 컨텐츠들 속에서 그와 같은 고민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소년 아톰>은 이제껏 수많은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고, 컴퓨터게임과 영화, 만화책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특히 올해, 그러니까 2009년 가을에 개봉을 예정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데츠카 오사무의 생각은 아직 왕성한 생명력을 지녔고, 오히려 ‘기후온난화’로 지구종말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요즘에 더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컨텐츠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lashfilm.com/2007/10/05/first-look-astroboy/

http://splashpage.mtv.com/2009/01/05/new-astro-boy-character-concept-art-hit-the-net/ 

 
이 책은 일반적인 ‘인터뷰 풍의 기사 모음’이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가로서 ‘진심’이 담긴 고민과 조언들이 들어 있었다. ‘데츠카의 만화는 휴머니즘Humanism 이다’ 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실감하게 했다. 스토리텔링과 컨텐츠가 세상을 주름잡는 지식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야기’는 재미에 앞서 생각이 앞서고, 그 생각은 ‘진심이 담긴 인간성’을 지녀야 함을 새삼 일깨워줬다. 일본에서 만화(그들은 ‘망가’라고 부르겠지만)는 이제 예술의 한 장르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만화의 중심에 데츠카 오사무가 있고, 그는 이미 없지만, 그의 생각을 닮은 작품, 아톰은 아직 이 세상을 살고 있다. 휴머니즘의 대표작 ‘아톰’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의 통찰력은 앞으로 한동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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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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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 만들어진 연극을 방불케 하는 황당 코믹스릴러 소설

 

  “난 지금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옷장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뭍어났지만, 난 못들은 척 큰소리로 웃으며서 말했다.“뭐야~ 만화영화 ‘몬스터’ 이야기도 아니고...나이가 몇 갠데...하하하” 그리고 그날 밤 난 베개속에 잠겨 한참동안 옷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캄캄했던 방안이 흐릿하게 형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동공이 커질 때까지...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도 벽장이 무서워서, 천정이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잤던 사실을...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공포감은 어린이의 몫 만은 아니다.

 

  한 남자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낯선 세 사람과 함께. 잠에 깬 듯 일어나 보니 엘리베이터 안이고, 엘리베이터가 급하강하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을 했단다. 휴대폰은 사라지고, 시계도 잃어버렸다. 낯선 세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무서워서 울 것이야 없겠지만(아파트의 엘리베이터라 언젠가는 구조될 테니까), 기절했던 사내 오가와에게는 당장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 임신 9개월의 아내가 진통을 느낀다는 전화를 막 받은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빨리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또 나를 위해서라도...소설 <악몽의 엘리베이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제목은 悪夢のエレベーター―Nightmare after a Secret.

 

 



 

 

  엘리베이터를 장소로 추리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인 ‘밀실살인’을 소재한 이 소설은 전혀 추리소설 같지 않다. 연극무대에서 몇 명의 배우가 두 시간 여를 활약할 수 있는 희곡적인 요소가 오히려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장감과 코믹함을 겸비하고 있다. 수상한 작품, 빙고! 작가는 코믹 스릴러 극단 '니콜슨즈'를 이끄는 배우, 각본가, 연출가로 알려진 기노시타 한타이고, 이미 연극과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는 작품이란다. 2009년 가을엔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과연 읽고 보니 그러고도 남을 만한 비주얼 강한 스토리였다.

 

  난 10층 이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는 편이다.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 건강에 좋다는 말로 이유를 대충 얼버무리지만,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질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일이 좀처럼 없고, 실내등도 그리 밝지 않은 비상계단을 오르는 기분도 썩 좋진 않지만, 엘리베이터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폐쇄공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학 때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외에 부착된 공사용 엘리베이터에서 인부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을 목격한 바 있고,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서는 바람에 혼자서 30분 여를 공중에 떠 있었던 적이 있어 꺼릴 뿐(한참을 적고 보니 보통 경험은 아닌 듯 느껴지긴 하지만)이다. 일종의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다시 말해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 내내 발이 저렸다. 상황 자체가 꺼름직하니 읽기도 꺼름직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주인공은 내가 아닌 그들이 아니던가. 철저하게 제 삼자로 그들을 지켜보려 노력했다. 그래도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아내의 진통을 알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오가와는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동승하고 있는 낯선 인물들은 모두 기분나쁘지만(오가와의 말대로 밖에서라면 스쳐지나가기도 싫을 만큼) 묘한 매력의 사람들이어서 오가와에 대한 안타까움은 급반감되었다.

 

  정장 차림의 몽키스패너를 든 빈집털이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니트족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사내, 그리고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자살을 하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은둔형 외톨이 아가씨등 낯선 이들의 정체는 재미를 더했다. 설정은 알프레드 히치콕인데, 최근에 만나는 최근에 만나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 속의 주인공들 같았으니 주인공의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안쓰럽다가 재미있고, 불쌍했다가도 웃겼다.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누가 본다면 딱 미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심리도 변덕스럽게 움직였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출산진통을 겪을 아내를 두고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상황의 청년 오가와 준에게 무한한 연민에 동일시되는가 싶더니 낯선 이들의 면면에 빠져서는 그들과 어울린다. 함께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마치 운명처럼 여기는 듯 자신들의 처지는 잊고 오가와를 조롱하는 그들에게 동조하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희극적 대사들은 불안함 속에서 느끼는 헛웃음까지 짓게 했다. 거듭되는 반전에 기함을 하고, 막판에 펼쳐지는 역전극의 반전이란... 직접 읽으란 소리 밖에는 차마 설명을 다할 수가 없겠다.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나가에 아키라는 주인공 오가와의 상황, 그리고 나머지 주인공들이 겪는 마지막 상황을 장이 좋지 않은 자신의 배탈에 비유했다. 배탈난 사람에게 주위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식은땀나게 하는 ‘악몽’이듯, 등장인물 모두가 겪는 엘리베이터는 제목처럼 <악몽의 엘리베이터>였다. 잘된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재미있고, 웃기는 작품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총평하기도 곤란한 묘한 작품, 등장인물의 소개 자체가 어쩌면 스포일러로 욕먹을 수 있는 묘한 작품이다. 이런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가 가장 난감하다. 더 난감한 건 여전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서다. 연극같은 소설, 영화같은 소설이다.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소설을 읽은 후 앞으로 엘리베이터를 편하게 탈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탈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날 테니까. 난 이제 10층 이상도 걸어가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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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의 달인
나카다니 아키히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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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워~ 스트레스는 남이 아닌 내가 만든 속병이라니까?

 

  원하는 바 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열’을 받는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겠냐마는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한 대로,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할 것이 서서히 꼬여가기 시작하면 ‘화이바에 스팀’이 들어오고,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꼬여버리면 ‘뚜껑’이 열린다. 급기야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다혈질이고, 거친 말로 하면 ‘개같은 성격’이다. 여간해서는 ‘뚜껑이 열리는 경우’를 볼 수 없지만, 요즘같은 불황에 좋은 뉴스는 하나도 없는 신문같은 하루를 지내다 보면면 오히려 뚜껑이 열리지 않으면 이상하다. 이처럼 ‘열받고, 뚜껑열리는 상황’은 이른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다. 그렇다. 난 요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플리커flickr 

 

 

  그제인가? 스트레스를 잠시 잊는다고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대낮에 술을 마시거나 홀로 영화를 볼 수는 없잖은가?). 목적없이 서가를 어슬렁대다가 눈에 든 책을 만났다. 제목 한번 당당하다, <문제해결의 달인>. ‘대체 누가 이런 제목으로 쓴거야?’ 저자를 살피다 깜짝 놀랐다. 나카타니 아키히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몇 번을 읽었던 <20대,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의 저자가 아니던가? 회가 동했다. 반가운 마음에 몇 장을 넘기고는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역시 나카타니 아키히로 다운 책이었다.

 

  저자는 하루에 100 권을 읽는 다독가多讀家이자, 일주일에 한 권, 일년에 70 권의 책을 쓰는 다작가多作家다. 지금껏 집필한 책만 800권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의 일생 동안 몇 권이나 쓸 지가 궁금할 정도다. 하지만 그리 놀랄 건 없다. 나카타니 아키히로의 책은 정말 편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행간도 넓은 것이 한 페이지에 스무 줄 남짓. 어려운 말도 없고, 고민할 내용도 없다. 그래서 300 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두 시간이면 읽힌다. 무엇보다 편하게 읽히는 반면 건질 것이 많은알찬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정해진 듯하다. ‘2말3초(20-30대)의 남녀 직장인들’이다. 그의 책을 읽노라면 3-4 년정도 나이많은 선배가 후배들에게 커피 한 잔 하면서 편하게 조언을 해주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 책 또한 그랬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스트레스 에서 탈출하는 법과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해결 방법, 이렇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지만 읽다가 보니 앞뒤 내용이 서로 많은 차이가 난다 싶어서 원제목을 살펴보니 전후반부가 <왜 저 사람은 스트레스에 강할까?>라는 책과 <왜 저 람은 문제해결에 능숙할까?> 두 권이 합해진 책이었다. 일본에서는 두 권을 사야 할 것이 한 권에 볼 수 있는 셈이다.

 

  우선 전반부는 ‘스트레스’를 파헤쳤다. 스트레스는 왜 생겨나고, 어떤 경우에 생기는지,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지 말해준다. 스트레스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해결책을 말하면서도 ‘의학용어’는 한 단어도 없으니 신기하다. 말하는 족족 내가 경험하고 있는 ‘스트레스’들이었고, 쉽게 해결 가능할 것 같은 방법들이 소개되었다. 저자는 “스트레스란 OO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생각 자체를 “OO하고 싶다”고 바꾸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 경우를 들어 그렇게 생각해 보니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피식, 헛웃음이 났다. 말 되더라.

 

 



이미지 출처: 플리커Flickr 

 

 

  후반부에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문제의 벽에 부딪혀 싸웠기 때문이라며,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뛰어난 ‘문제해결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직원과 고객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례로 삼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서 읽기에 쉽고, 활용도도 높다. ‘오호~ 그렇게 하면 될 수도 있겠다’하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재미있고, 유익하다는데 조금 가벼우면 어떠랴. 한 권의 책 속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해결책’을 몇 가지 찾을 수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이미지출처: 플리커Flickr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 스스로 스트레스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이 심각한 문제로 나를 덮친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내 뜻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진리가 있음에도 내 뜻 대로 안된다고 열받았고, 나중에 현실에 부딪혔을 때 해결해도 되는 문제를 지레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면서 미리 괴로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려니 생각하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풀어도 되는 것들을 굳이 지금 당장 들먹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뭐, 어쨌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라면 스트레스가 아니던가? 애써 부정해도 상황의 기분에 따라 과도하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기라”고 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닥치는 문제에 대해 제삼자가 되어 한 발 물러나 훈수두는 기분으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줬다. 지금 스트레스가 많다면 서점에 들러 한 10분 정도 서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혹시 아나?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의 해답이 이 책 속에 들어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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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에 투자하라 - 리더를 완성하는 표현과 소통의 비밀!
송숙희 지음 / 웅진웰북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글쓰기를 위한 생각의 도구, WHAT 플랫폼에 주목하라!

 

  저자 송숙희의 글은 우선 ‘글맛이 뛰어나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그녀가 소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읽고 싶고, 맛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고객을 유혹하는 마케팅 글쓰기>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도 있는 바 저자의 ‘독자를 유혹하는 기술’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각종 언론매체에 컬럼을 기고하고, 책을 소개하는 컬럼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의 글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나 역시 3-4년 전, 온라인 포털에서 읽은 책소개 칼럼에서 저자의 글맛에 빠져 그녀가 소개한 책은 가급적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저자의 책도 빠짐없이 읽고 있으니 ‘올드팬’인 셈이다.

 

  처음 잡지사의 에디터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고, 지금은 CEO의 브랜드 구축을 돕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만큼 저자는 ‘펜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오로지 펜의 힘으로 브랜드를 설명하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의 목소리, 말빨을 궁금하게 하기도 한다. 이 책 <당신의 글에 투자하라>은 그런 취지에서 나온 책이다. 리더 즉 CEO와 사장으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글쓰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설명하고, 직접 글쓰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 책이다. 이 말은 곧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는 ‘모든 비즈니스맨’이라고 봐야겠다.

 

 



 

 

  저자의 롤모델role-model은 워런 버핏이다. 워런 버핏의 연례보고서는 살아있는 경제 교과서로 평가될 만큼 잘 쓴 보고서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의 특별한 보고서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나는 누이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며 쓴다.” 그의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제의 특징은 뉴욕발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지금은 투자할 때, 나는 미국 주식을 계속 사들이겠다.”는 말로 시장을 진정시킨 사례로 알 수 있다. 저자는 글쓰기란 워런 버핏처럼 ‘첫눈에 무슨 내용인지 알게, 한눈에 읽히게’ 쓰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어떤 글도 만만하게 쓸 수 있다, WHAT 활용술]이었다. 한 권의 책에서 ‘이 부분’만 소화해도 충분히 배울 만큼 배웠다고 말할 만큼 내게는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저자는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과목의 하나인 에세이 쓰기는 ‘주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사례를 들어 논리적인 표현을 하는가’를 살피기 위한 시험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고도의 사고력을 필요로 하므로, 글을 잘 쓰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증거여서 글 실력을 보고 사람을 가려 뽑으면 거의 틀림이 없다. 글쓰기란 현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그 주된 목적은 소통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175 쪽)

 

저자가 어떻게 생각해야 글로 쓸 수 밖에 없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글쓰기를 위한 생각의 도구로 창안한 것이 WHAT 플랫폼이었다. 생각을 위한 일종의 체크리스트, 글쓰기를 하는 사람 특히 블로거blogger라면 꼭 알아 두어야 할 귀중한 생각의 도구가 아닐 수 없다.

 

 

W      Why 왜 쓰는가? (왜 이 글을 쓰는가)

H       Hook 독자를 유혹하는 포인트는? (읽지 않고 못 배기게 하는 흥행의 기술)

A       Audience 누가 읽는가? (읽는 이가 누구인가)

T       Trigger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가? (당신이 요구하는 기대 반응은 무엇인가)

 

  독백글이 아니라면 글쓰기는 누군가 독자를 대상으로 그에게 읽히기를 위해 쓰는 글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뱉어낸 글을 끝까지 독자가 읽을 수 있어야,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글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한다면, 훌륭한 글이 된다. 다시 말해 훌륭한 글이란 곧 독자를 유혹해 사로잡는 글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글 쓰에 앞서 가장 먼저 생각이 정리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흔히 겪게 되는 ‘난관’이 바로 이 점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텐데, 체계가 잡히지 않아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또는 글쓰기는 시작했더라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논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내가 뜻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말 그대로 ‘삼천포로 빠지는 꼴’을 겪기도 했다. 그런 내게 저자의 WHAT 활용술은 훌륭한 처방전이 됐다. 그리고 글을 쓰기에 앞서 충분히 생각하며 뜸을 들이는 시간이 절대로 낭비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저자 송숙희의 책은 쉬이 읽히고, 이해하기 쉬우며, 읽고 난 후 ‘배웠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용서인 만큼 ‘당장 실천에 옮기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끔 하는 글의 힘 또한 저자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팬’인 만큼 저자의 책을 꽤나 많이 읽었는데, 점점 ‘남의 목소리(인용문)’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저자가 인용한 ‘남의 목소리’는 독자에게는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고, 또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의 소개도 될 수 있다. 나 역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제목을 따로 메모해 두어 읽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사들의 말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점이 글을 매끄럽게 읽는데 장애가 된다. 또한 ‘자신의 논지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해 그를 보강하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게 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에서도 말했던 ‘당신이 긁어 모은 그것(짜깁기 글)은 각각은 아무리 근사해도 모아 쓰면 눈뜨고 못 봐 주는 누더기’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자신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  ‘팬’으로서 인용문들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쓰기라는 지극히 어려운 주제에 대해 ‘쉬이 읽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강점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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