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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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의 고통, 외로움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

  술 몇 순배에 거나해진 취기를 빌어 ‘마이 라이프’를 이야기할 때면 이십대의 여대생이나, 사십대의 아저씨나 같은 말로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하라고? 오늘 하루로 끝나겠어? 소설로 쓰면 한 질이다, 한질.” 명동거리 cafe가무佳舞 3층에서 옛날 크림 가득한 비엔나 커피에 따끈한 팬케익을 먹으면서 사람구경을 해보라. 가득한 웃음과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 걱정 근심이라곤 눈씻고 볼래야 볼 수가 없다. ‘모두 행복한가 보다. 나만 인생이 우울한 게냐?’ 불쑥 빈정이 상해질 법 하다. 하지만 내려가 길을 막고 그들의 인생을 물어보라. 표정은 이내 바뀌고 모두가 ‘한 질 가득 소설 속 비련의 주인공’은 저들이라고 손들테다. 난 어떻냐고? 나야 물론 한 질 갖고는 어림없다 할테고...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다. 슬프면 슬픈대로 위안받고(난 그렇도록 슬픈 인생은 아니거든),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대로 위안을 받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죽거나 다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가슴 쓸어안아 난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성공하고 잘나서 결국은 행복해지면 ‘그래, 너라도 그렇다니 다행이다’ 위로한다. 허가받은 거짓말쟁이(소설가)가 꾸민 이야기이거늘 울거나, 웃거나, 심각해지는 날 보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종국엔 아직은 내 심장이 따뜻한가보다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소설을 읽으면 ‘내 삶만 팍팍한 건 아니다’싶은 결론을 얻는다. 그리고 ‘아직 인생은 더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더냐’ 자문하게 된다. 소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도  그 기대에 부응했다. 파란만장한 리처드도 사는데, 나라고 인상구기며 살 이유는 절대 없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 소설의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에 사는 중년의 사내 리처드 노박이다. 열 살 때부터 동생이 구슬치기를 할 때 장사를 하며 은행에 개인구좌를 트고 집집마다 돌며 장사를 했던 이 사내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히 외롭게 사는 혼자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이혼을 한 후 아내와 아들 벤은 따로 살고 있다. LA의 높은 언덕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저택에 사는 그였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갇혀 살거나, 사육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하루 종일 자신을 서빙해주는 가정부 실비아, 삼시 세끼의 영양을 책임지는 영양사에 정기적으로 운동을 관리하는 트레이너를 두고 있는 이 사나이는 매일 아침 컴퓨터 모니터에서 주식시황과 계좌내역만 체크하면 그다음은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나이다(일 안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부자라는 말도 되겠지만).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저택에서 갑작스런 통증을 느끼며 그것 즉 죽음을 예감한다. 급한 마음에 옛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냉랭하기 그지없고, 아들조차 여행을 떠난다고 관심두지 않는다. 곧 죽는다 해도 울어줄 이가 없다. 쓸쓸함, 리처드는 외로움이 닥친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병명을 알 수 없다. 이내 통증도 사라졌다. 퇴원하는 길에 영양식 외엔 먹지 않던 그는 도너츠를 먹게 되고, 도너츠 가게 사장과 친구가 된다. 마트 과일코너에서 ‘불만스런 인생’에 울고 있던 여인과도 친구를 먹고, 뒷집에 사는 영화배우와도 안면을 튼다. 죽었다 살아난 그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순하기 그지없던 그의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들 벤의 정체는 청천벽력같은 충격이었고, 말리부에서 사귄 친구 닉은 세계적인 문학가란다. 요가선생과의 사랑에서도 숨겨진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했던 아들 벤의 진정한 속마음도 알아가게 된다. 리처드는 인간속의 인간, 다시 말해 속시끄러운 인간세계人間世界속 인간人間이 된 것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리처드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버킷 리스트> 속의 ‘잭 니콜슨’을 생각나게 한다(잭 보다는 열 살 정도는 어려야 하겠지만). 공황장애와 인간세상의 참맛을 노년에 되찾는 코드도 비슷하지만, 어눌한 행동하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어리둥절하는 모습 면면은 잭을 닮았다. 비록 늦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물량공세다. 그가 가진 거라곤 돈 밖에 없으니까. 돈을 위해 살다가 가정을 잃고, 아내를 잃고, 자식 벤을 잃었던 그가 그 돈으로 다시 사람을 얻는 아이러니는 지극히 물질만능주의의 대명사인 아메리칸 드림답다.

  하지만 소설 속 스토리를 부자의 돈지랄이라고 치부하며 빈정대기엔 리처드는 너무 나약하고 위태롭다. 미래의 내 모습 같고, 비슷한 또래 같아서 그가 가진 생각과 슬픔 그리고 회한이 남 이야기같지 않았다. 모두 잃었던 그가 느끼고 깨달으면서 하나씩 찾아가는 모습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 삶에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는 듯 했다. 인간이 시계를 만들어서는 12칸짜리 시침 두 바퀴에 하루를 정해 놓고, 그 속에 갇혀 살고 있듯이, 내가 만든 내 삶 속에 지쳐가는 내 모습도 자의든 타의든 고개만 돌려 인간을 향하면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던 성공은 성공이 아니었고, 내가 그리던 행복도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 뿐만 아니다. 내 옆집 사람도, 내 뒷집 영화배우도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평범한 듯 보이는 하지만 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들이 둘이 모이니 답이 보였고, 그들이 이야기하며 세상을 바라보니 작지만 행복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간의 막연한 불안은 외로움이고, 그 외로움은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모르고 버려버린 내게 있던 보물이었다. 아프고 괴롭고 조용했던 사나이 리처드는 책장을 넘길수록 ‘잃어버린 성궤’를 추적하는 해리슨 포드의 액티브 못지 않았다. 한 시도 마음이 조용할 수 없이 혼란한 상태, 하지만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행복과 사람사는 맛은 그 속에 있지 않던가? 

  리처드의 가족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생각나게 했다. 정신없는 LA사람들, 더 정신없는 그들의 대화는 제정신을 반쯤 놓아야 차라리 이해가 빠를 정도다. 무지건조하게 툭툭 짧게 던지는 A.M. 홈스의 글은 마침표의 뒤에서 글맛을 깨우치게 한다. 평범하지만 불안한 사람들의 아슬아슬하고 위태하면서도 재미있고, 작은 감동도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당장 내 인생을 구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모르지...20년쯤 후에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내 인생을 살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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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홍승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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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처럼 상세하고 친절한 두 남자의 내 책쓰기 대작전!

  매일 서점에는 수백 권의 새로운 책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출판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다지만, 출간되는 책의 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기는 산업혁명기의 1년 동안 벌어지는 변화보다 21세기의 오늘 하루의 변화가 훨씬 더 크니 그만큼 세상의 이야기는 많아질 터, 쏟아지는 책 종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 일어나는 출판계의 한 가지 특징은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뉴 페이스new-face'의 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기술의 발달로 책 한 권을 내는데 필요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테지만,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 뉴 페이스들의 공통점은 이른 바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라 해서 특별하게 학위를 땄거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능력면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들,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기술이나, 직업에 능한 이런 사람들의 책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지식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출판시장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 

  오병곤과 홍승완의 <내 인생의 첫 책쓰기>는 이런 ‘전문화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뉴 페이스’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최근 일본에서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직장인들이 책을 출간하는 ‘직장인의 책쓰기 열풍’과 글을 쓰는 이른바 샐러라이터salawriter(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대중적인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들이 국내에도 나타나는 경향을 목격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책쓰기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들 역시 샐러라이터들이고, 그들이 말하는 책쓰기 방법론에 의해 쓰여진 책이 바로 이 책이라는 점이 영화로 본다면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줘서 신선하다. 저자들은 전문가 1.0 시대가 학위나 자격증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면, 전문가 2.0 시대에는 책쓰기에 의해 판별된다며, 오늘날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책을 써야 한다고 이 책에서 강조했다.



 

   책을 펼치면서 저자들의 이력이 주목되었다. 저자들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이다. 이곳 연구원들의 주목적은 구본형씨의 변화경영을 배우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1년 동안 특별한 엄격한 글쓰기 과정을 이수한다. 나는 구본형씨를 경영의 멘토로 삼고 있는 있어서 꾸준히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있고, 연구원제도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데, 연구원들의 글쓰기 과정은 지정된 도서를 일정기간 동안 읽고 일종의 서평을써야 하고 서로 피드백을 통해 ‘변화경영 작가’로서 수련을 하는 제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들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서 꾸준한 수련을 통해 전문가 수준의 습작내공을 쌓은 베테랑들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빈틈없이 짜여진 구성과 알찬 내용, 그리고 글맛나는 필력은 일반인들이 썼다고 볼 수 없었다(저자들은 이미 공저한 몇 권의 책도 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쓰기’ 책들이 소위 ‘책쓰기 도사’, 즉 이미 전문가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후학(?)들을 위해 책을 위한 글쓰기의 요령을 안내한 책이라면, 이 책은 부제를 ‘나의 책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라고 붙여도 좋을 만큼 ‘자신을 완전하게 노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을 읽으며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을 들게 했다. 부록에 실린 [출간일기]는 두 공저자들이 이 책을 쓰면서 느꼈던 소감들을 일기형식으로 꾸미기도 했다. 샐러리맨인 저자들이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껏 배우고 공부한 내용들을 실습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낸 셈인데, 그 주제가 [책쓰기]라니 한편 아이러니 하면서도 독특한 기획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책을 왜 써야 하는가?’하는 화두에 이제껏 전문가로 거듭난 사람들의 케이스와 스스로 경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답을 제시했다. [제 2장 원칙 세우기], ‘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서는 책을 쓰기 위해 공부해야 할 내용들과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갖게 되는 부담감을 떨어내는 방법들을 소개했다. 이 부분은 블로그나 홈피에 서평을 쓰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두고 읽어야 할 대목이다. 실제로 공저자들이 ‘구본형변화경영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체험하고 공부한 내용들이 상세히 기록되고 있는데(현재도 기수별로 연구원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데,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홈페이지( http://www.bhgoo.com/zbxe/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글쓰기 아카데미 수업을 받는 느낌을 준다. 

  그들이 만드는 독서노트는 블로거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락 살펴보면, 독서노트가 단순히 책을 읽고 느낌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는 책은 나의 책을 위한 재료’라는 생각으로 독서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꼼꼼히 정독한 후 독서노트를 쓸 때에는 저자에 대해 연구하고, 감명을 주는 글귀들을 모두 적는다. 그런 후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느낌이 서술되는데, 마지막 [내가 만약 이 책의 저자였다면]하는 란을 두어 책 속에서 발견되는 아쉬운 점이나 논지등 자신의 의견을 적극 적어두는 형식이다(연구원들의 독서노트를 읽으면 말 그대로 ‘한 권’을 모두 읽는 느낌을 얻는다). 

  후반부에는 책쓰기를 위해 수립해야 할 기획등 전략과, 집필하는 동안 참고해야 할 사항들, 그리고 출판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저자들이 직접 해당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거나 취재한 내용들이 수록되었다.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언젠가는 한 권쯤...하고 ‘작은 소원’쯤으로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고, 책을 모두 읽은 후에는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조금은 과감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출간의뢰를 하면서 제작한 ‘출간계획서’의 내용중 이 책의 콘셉트(다른 책쓰기 책과의 차별화 포인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첫 책’과 ‘직장인’에 초점을 맞춘다

-책을 ‘어떻게’쓰는지, 그리고 ‘왜’써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정보 외에도 감동과 통찰을 준다.

-책을 만드는 현장의 목소리(첫 책의 저자들과 편집자 인터뷰)를 담는다.

-독자들이 ‘나도 이이런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디자인과 편집이 좋은 책을 만든다.

  공저자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콘셉트대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이 책을 통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지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 발견했던 딱히 아쉬운 점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내용과 편집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들의 기획과 노력 그리고 알찬 내용에 ‘잘 만든 첫 책’이라고 박수를 주고 싶다.

 언젠가 읽는 어느 멋진 책의 추천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내가 가진 이 책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고 싶다. 불가능하기에 이 책에 커버를 씌울 것이다. 남에게 알리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추천사를 쓴 이를 두고 욕심이 하늘에 닿는 사람이라고, 능력은 없이 책만 탐하는 탐서貪書주의자라고 말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멋진 책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나도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웬만한 블로거들이나 이른바 서평쟁이들은 모두 갖고 있을게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간접체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내 책 한 권‘을 꼭 가지라고 응원하고 싶다. 물론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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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마크 트웨인 지음, 린 살라모 외 엮음, 유슬기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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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이여, 이 사람에게서 진중권 선생도 울고 갈 독설을 배워라!
 

  침대를 분류한다면 뭐라 말해야 할까? 가구일까? 실제로 몇 년전 한 초등학교에서 시험문제로 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과학’이라고 표기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해당문제를 출제한 교사는 ‘난이도 하’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데, 학생 대다수가 떠억하니 ‘과학’이라 답을 했으니...역시 신뢰감가는 중견 탈렌트가 출연한 광고의 힘이라 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침대를 두고 엉뚱한 주장을 한다.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한편으로 꽤 말되는 소리다. 

  그는 또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다는 등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양쪽에 다 내 친구가 있거든요.” 웃기는 친구다. 이 친구는 누굴까?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많은, 아니 너무 많아서 천국이나 지옥 둘 중 한 군데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친구들 만나느라 매일 양쪽을 왔다갔다 할 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바로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문학적 업적을 이룬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다. 오늘 이 괴짜의 글들이 수록된 책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을 읽었다. 원제목은 Mark Twain's Helpful Hints for Good Living이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미지 출처: http://www.davidicke.com/forum/showthread.php?t=11956&page=974

 

 
  웬만한 수식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대단한 문학가인 마크 트웨인의 글을 만난 것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후 세 번째인 것 같다(두 권의 책도 어린이용이었으니 원문과는 많은 차이를 지녔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온전한 그의 글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뭘 하고 살았던건지, 원...) 이 책은 클레멘스 즉, 마크 트웨인이 겪은 생활 속 일화들과, 제안들, 자신의 생각과 후세에 전하고 싶은 훈계 등 직접 써서 발표되거나 발표되지 않은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의 일상적인 예의범절, 제안과 불평, 미국의 식탁, 여행 예절, 어린이, 옷, 패션, 스타일 등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테마에 맞게 글들을 꿰어 맞춘 이들은 캘리포니아대학 뱅크 로프트 도서관의 ‘마크 트웨인 페이퍼스 앤 프로젝트’ 사람들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 대부분이 마크 트웨인에 매달려 30년도 넘게 일하고 있다 하니, 그가 남긴 글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의 글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길래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미 죽고 없지만 남겨진 글로 인해 마크 트웨인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셈이다.

  마크 트웨인은 타고난 글쟁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글로 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것이 소설인지, 어느 것이 실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금시대 The Golded Age>처럼 클레멘스의 실제 삶이 마크 트웨인의 소설로 둔갑한 경우가 있고, 실제로 1900년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단다.

“나는 ...소설을 사실로 전하는 매체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부분의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사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눈에 띄게 익살스럽고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진실된 관점을 널리 알린다.”(10 쪽)

  물질문명과 종교,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불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신랄한 비평을 했던 마크 트웨인이지만, 비평가라기 보다 소설가로 더욱 잘 알려진 이유는 여기에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비평글에 마크 트웨인의 어록을 빌리는 이유는 그의 날카로운 관점에서 비롯된 ‘촌철살인’의 독설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온전한 문장(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은 거의 없다. 거대하고, 지나치게 위장된 표현들은 꼬이고 꼬여 두세 번 거듭 읽지 않으면 온전히 소화시킬 수도 없을 지경이고, 한 단락의 글 속에는 항상 큼지막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한 무엇이 뭍어있음을 느낀다. 정말 기가 막힌 필력의 소유자. 작가를 사랑하려면 소설이 아닌 ‘수필’을 읽으라 했던가? 마크 트웨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마크 트웨인이 이 시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는 ‘초 특급 울트라 파워블로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우선 글로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였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모저모에 깊은 관심을 뒀을 뿐 아니라, 시설이나 행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시나 정부에 직접 제안하기도 했고, 때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그랬다면 주로 침대에 누워 글을 썼었기에 노트북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Baroque in Hackney

   그는 경제학자에 버금가는 경제학적 지식도 가지고 있다. 도표와 숫자를 들이대며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인 ’희소성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내뱉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떤 물건을 몹시 탐내도록 만들려면, 그것을 손에 넣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면 된다.” 또한 공맹孔孟을 부르지 않고도 인간의 훌륭한 삶에 대해 한마디 한다. “우리들의 죽음 앞에서는 장의사마저도 우리의 죽음을 슬퍼해 줄만큼 훌륭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가 블로거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도둑을 맞은 마크 트웨인은 며칠 후에 집 대문에 [다음에 찾아오는 도둑에게 알림]이라는 공고문을 붙였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집에는 도금된 물건밖에 없습니다. 고양이 바구니 옆에 있는 모퉁이 너머의 응접실에 있는 놋쇠그릇 안에서 그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고양이 바구니를 가져가고 싶으면, 고양이들은 놋쇠그릇 안에 집어넣으세요. 소란 피우지 마시고 - 가족들한테 방해되니까요. 고무 제품들은 현관 홀에, 우산 꽂이 옆에 있어요. 서랍장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 걸 페르골라였나 뭐 그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그리고 나갈 때 문 좀 닫고 가세요.

S.L. 클레멘스 백“ (72 쪽)

  마크 트웨인이 ‘초 특급 울트라 파워 블로거’가 될 여지는 그 밖에도 많다. 그는 흰 양복을 입는 멋을 아는 최고의 패셔니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였고, 미국음식과 유럽음식의 맛을 비교할 줄 아는 미식가였으며, 여행을 즐기는 방랑객이었다. 70세까지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웰빙족이었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행동가였다. 다소 까칠한 성격에, 삐딱한 시선, 타고난 잘난 척, 양쪽으로 뻗어내린 콧수염의 캐릭터 역시 범상치 않았으니 어디 하나 빠질 것이 있겠는가? 



이미지 출처: Flickr 

  그가 갖춘 블로거로서의 자질 중 최고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세상을 향해 쓴 문장들은 ‘익살로 버무려진 독설의 총합’이다. 절대로 전투적이고, 혁명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면 짜증나는 일도, 갑갑한 현실도, 암울한 미래도 한바탕 웃음꺼리로 만든다.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절대로 염장지르지 않고, 비아냥대지 않으며, 상대로 하여금 억하심정이 생기도록 막말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독설을 듣고는 떠들며 웃게 만들고,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놀라 깨닫고 스스로 변화하게 만든다. 그는 ‘재치있고 신랄하게, 지혜롭고 날카롭게’ 말하는 법을 알았다. 무엇보다 말과 글로서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고, 변화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네티즌적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약간 뜬금없지만 미국 MIT공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이 학원문제로 인해 학교 측과 협상을 했지만 결렬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하는 문제와 협상을 성사시키는 문제로 고민하던 학생회는 한가지 꾀를 냈다. 협상 다음 날 아침 학생회관 본관에 ‘경비행기 한 대’ 가 오도카니 로비를 점령했다. 학생들이 경비행기를 분해해 좁은 현관으로 들여와 밤을 새워 다시 조립을 해둔 것이다. 일종의 침묵시위인 셈이다. 학생회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이 학생회의 기가 막힌 시위에 적극 환영하며 뜻을 같이 하자, 며칠 후 결국 학교 측은 학생회 측의 조건에 맞게 협상을 타결했다. 몇 해 후에 또 다른 ‘학원문제’로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이자, 어느 날 아침엔 대운동장 한 가운데 네모진 칸막이를 설치해서는 그 안에 총장실의 집기들을 있던 그대로 옮겨놓았더란다. 휴지통까지, 벽에 있는 책꽂이까지. 혹시 학생회 임원중에 마크 트웨인의 자손이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그들의 지혜롭고 재치있는 시위는 마크 트웨인을 닮지 않았나? 

  소년소녀동화 몇 편 쓴 줄만 알았던 작가 마크 트웨인을 미국이 그토록 칭송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세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가 보낸 하루 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고, 코미디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도 훌륭했지만, 먼저 인물이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독특한 인물이었다. 불세출의 재담꾼 마크 트웨인이 궁금하다면, 그의 독설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시길...그리고 절대로 대중교통수단에서는 읽지 마시길.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가, 바지에 오줌을 지리던가 둘 중 하나를 경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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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by 북
마이클 더다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30년 내공의 베테랑 서평가가 버무린 名文들의 비빔밥!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리뷰Review'란 걸 몰랐다. 존재를 몰랐으니 당연히 리뷰를 쓰지도 않았다. 5년 전부터 블로그를 했던 터라 책 속에서 만나는 황금보다 소중한 구절들을 베껴서 옮겨놓은 적은 종종 있었다. 4년 전인가...는 공책에 필사한 글귀들을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너무나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몇 번하다가 말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들었던 소감이야 왜 없었겠냐마는 ’내 주제에‘ 감히 책에 대해 논論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만행이라고 여긴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짧게라도 적으려고 해도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잘 썼건, 못썼건 간에 지금은 500여 편에 이르고 있으니 스스로가 신퉁방퉁하다. 그것참...

  우연히 책에 대한 소감을 쓰게 된 것은 온라인 서점 덕분이다. 줄곧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었는데, 업무로 출장이 잦아지자 단골로 가던 서점에 직접 가질 못해 온라인에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하다가 독자들의 ‘리뷰’를 읽게 되었다. 딱히 책을 사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혹은 이 책은 절대로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독자들의 리뷰에 빠져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 그 후로 나도 책을 읽은 후엔 리뷰를 쓰게 되었다. 지금도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리뷰를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난 ‘서평’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로 문학이 아닌 경제경영서와 같은 실용서를 읽는 편이라, 평론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아직도 ‘감히 내 주제에’ 책을 평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읽었는데 참 좋더라, 그저 그렇더라고 말할 정도일 뿐, 반박하거나 논쟁을 걸을 깜량은 못된다. 그래서 말 그대로 다시 보기, ‘리뷰Review’를 하고 있다. 온라인엔(오프라인엔 수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수많은 강호의 책리뷰 고수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에서 만큼은 여느 평론가 못지 않을 만큼 내공과 필력을 갖춘 고수들이 즐비하다(그런 고수들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살펴본 후 책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책을 고르는 한 방법이 된다). 고수들의 리뷰는 ‘서평’이라 할 만하다. 가끔 그들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찾아가 놀기도 하는데, 돌아올 땐 항상 부러움과 질투에 뒤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읽은 책은 ‘서평쓰기 30년 내공의 고수’가 쓴 책이다. 서문에서부터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로 시작해 나를 기죽이게 하는 책, 마이클 더다Michael Diarda의 <북 BY 북>이다. 원제목은 Book by Book - Notes on Reading And Life, 2005년에 쓰여졌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다. 지금껏 저자가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띄는 구절과 인용구를 노트에 적어놓았던 것을 한데 모은 일종의 사화집(詞華集,anthology;아름다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배움, 일, 여가, 사랑, 집, 인생, 감각, 종교, 죽음 등 인생에서 만나는 중요한 삶의 화두에 관련된 책들의 구절을 한데 모아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계절감이 듬뿍 담긴 채소들을 한데 모은 ‘비빔밥’이라고 할까? 그런데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런 ‘금가루가 잔뜩 뿌려진 고급의 비빔밥’이었다. 저자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표현을 빌려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해서 천천히 읽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읽으며, 되돌아서 또 읽는 책’이길 바란다고 했는데, 유익했을지 모르지만, 재미는 없었다. 오히려 겁만 잔뜩 집어먹기만 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 모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더다가 분야별로 생각하는 고전(난 고전엔 정말 문외한이다)을 소개한 책이고, 우리나라에서 변역된 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이 태반이라지만 “이 세상엔 내가 매일 책을 읽는다 해도 평생 다 읽을 수 없을 만큼의 좋은 책이 있다”는 그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괴테가 자신이 죽을 때 즈음 채 읽지 못한 책들을 아까워 했던 이유를 알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려면 펜을 들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저자의 서문 때문이다.

“당신은 연필을 옆에 두고 마음에 드는 구절에 표시를 하거나, 여백에 뭐라고 끼적대고 싶을지도 모른다. 당신만의 사색으로 ‘개인화’하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가치를 더해 당신만의 특별한 책으로 꾸며가야 할 책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도 독자를 위한 독서 안내서를 서보겠다는 의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15 쪽)

  그렇다.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은 좋은 글을 만나면 여한없이 밑줄을 치거나, 책장 끝을 작거나 큰 삼각모양으로 접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 놓치기가 아까워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지난 해 초에도 한 적이 있는데 정혜윤의 관능적 책읽기로 알려진 <침대와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노트에 필사를 할까, 블로그에 옮겨 적을까’ 책 진도는 나아가야 할텐데 ‘놓쳐버리면 다시는 못만날 것 같은 글들’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기억,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 서평가의 책인 만큼 좋은 서평의 조건을 말한 H. L. 맹켄의 글을 보자(이글 또한 절대로 서평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독자서평란에 퍼담을 것이 아닌가?).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서평은 깔끔하게 쓰여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 담긴 비평의 정당성은 차후의 문제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를 명확히 결정하기는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불완전한 지성인의 착각이다. 그런 섣부른 판단에는 언제나 도덕적 열정이 개입된다. 그러나 평론가는 독자에게 세련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박식하고 품위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평론가라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쓰더라도 독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185 쪽)

  그 무슨 책을 말하든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선명하다. 나의 리뷰가 한낱 두서없는 개인적 푸념의 덩어리는 아닐지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지금껏 써온 리뷰들이 잘못 기술되어 나의 리뷰가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독자가 읽었을 수도 있는 기회를 빼앗지는 않았던가 고민하게 만들었다. 좋은 글은 읽고, 읽고 또 읽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명문名文들이 가득했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로 끝을 맺었다. 서평가의 독서안내서의 마지막으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문장이다. 독서는 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굴려 종이 위의 활자를 읽어내려가는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활자가 그려낸 글을 눈으로 읽고, 마음과 머리에 새겨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마련하고자 함이다.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달랑 세 권을 읽고 책을 읽고 내 삶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몇 권을 읽었는지 아련할 만큼 책 읽기를 습관으로 만들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각을 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읽었거든 움직여서 삶에 변화를 주어라” 50년 독서내공을 지닌 30년 서평가의 충고였다. 책벌레들을 위한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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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고노스케, 길을 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경영의 지혜
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남상진.김상규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위기상황의 경영은 술수와 책략이 아니다. 원칙과 신념이다!

  “대한민국은 내 나라다.“ 여기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은 네 나라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부르는 데야 무슨 상관이랴(발음마저 비슷하거늘). 무슨 말을 하건 ”대한민국은 우리나라다.“는 생각은 먼저 해야 하겠다. 내 나라다, 내 나라다 쉬이 여기다 보니 ‘온전히’ 제 나라인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땅덩어리만 제 나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제 사람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말 큰일이다. 

  스스로 ‘이 나라 국민들의 머슴’이 되기를 자처 하던 나라님이, ‘깨끗한 정치’만을 하겠다고 외치던 나라님이 국민 몰래 뒷돈을 받아 놓고는 이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구설에 오른 것만도 ‘치욕’일 터인데, ‘얼마나 잘 잡는지 두고보자’는 속셈들이다. 매번 믿고 5년을 맡기건만 매번 속는다. 믿고 표를 던진 국민의 가슴에 멍울이 한웅큼 잡힌다. 믿고 존경받아야 할 자리이거늘, 자리만 앉았을 뿐 그런 깜량은 아니었나보다.

  정치인은 논외로 두자(말 해봐야 입만 아픈 직업군들이니까). 그 뿐만 아니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소비자에게 봉사하겠다는 기업이념은 접어두고, 아이들의 코뭍은 돈을 훔쳐가는 기업가들이 판친다. 가격과 모양은 그대로인데,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모르고 조카녀석은 “삼촌, 내 손이 커졌나봐?” 묻는다. 할 말도, 해 줄 말도 없다. 

  비즈니스맨으로서 믿고 존경할 기업인이 없다는 건 참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업실적과 경영실적이 좋아서 관심을 두면 며칠 되지 않아 분식회계를 했거나, 로비를 펼쳐 따 냈다 하고, 불법경영승계를 했거나, 탈세를 주도 했다 소리를 듣는다. 세상에 알려지면 소비자와 국민에게 석고사죄를 해도 모자를 판에 없던 일로 덮으로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재수가 없어 걸린거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염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들. 아마도 그들이 “대한민국은 내 나라다.” 여겨서 그러는 모양이다. 국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나라에서 널 버리고 싶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길을 열다>을 읽고 난 후 더욱 화가 났다. 

 



 이미지 출처: panasonic.co.jp/founder/story/1-1.html

plaza.rakuten.co.jp/HEAT666/diary/200605070000/

 
  이 책은 1968년에 초판이 발행된 40년이나 된 ‘고전’격인 책이다. 그가 경영을 하면서 틈틈이 쓴 단문집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무쌍한 경제상황에서 경영 현장의 최일선에서 변치 않는 절대적 원칙으로 활용된 마쓰시타 특유의 경영 철학과 인생의 지혜가 담긴 책이다. 원제목은 道を開(ひら)く; 길을 열다. 이 책은 1978년에 발행된 속편과 합해져서 만들어졌다. 

  1894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비즈니스에 발을 들인 그가 1918년 마쓰시타 전기제작소를 설립해 1973년 은퇴하기까지 기업을 경영했으니 거의 70여 년을 비즈니스를 한 셈이다. 경영자로 있으면서 ‘세계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을 치뤘으니 산전수전은 모두 겪은 셈. 그래서일까? ‘뉴욕발 금융위기’의 기운이 남아 있는 지금 마쓰시타 경영의 근간이 된 모든 것을 담았고, 마쓰시타 사상의 원전(原典)으로 통하며, 마쓰시타의 저서중 최고라고 하는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살아있는 왕회장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는 위기상황을 빗대어 “바람이 강하게 불 때야말로 연을 날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쓴다. 우산이 없으면 비를 막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집어서 뒤집어쓴다.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 때 비를 맞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비오는 날 우산이 없는 까닭은, 화창한 날에 방심하여 비올 때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더불어 다음번에는 비를 맞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49 쪽)

  인생에서 고저의 순환이 있는 것처럼, 경제의 국면에서 침체기는 항상 오기 마련이다. 미래를 예측해서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밀려오는 현실에는 부족함이 따르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바닥을 쳤다고 기뻐하기 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살피고, 부족함을 배워야 그 다음 침체기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음에는 피해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경영이요, 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원칙과 신념’, 그리고 이것을 지키고 실천하는 힘과 낙관적 긍정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고 강조했다. 사소하다고 여기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도 새로운 길이 존재하고,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또한 “원칙을 지키니 두려울 것이 없고, 신념이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목이 말하듯 비즈니스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장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가를 알려줌으로써 ‘막힌 곳을 뚫고, 길을 여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지혜들은 순간 순간을 모면하는 책략이나 꼼수가 아니라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원칙을 통한 지혜들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비즈니스맨들이 만나게 되는 화두와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선의의 책략이든 악의의 책략이든 결국 책략은 책략일 뿐이다. 악의로 가득 찬 책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좋은 의도라고 해도 그것이 술수로 타락한다면 악의의 책략과 다를 바 없다. 옛말에 ‘술수를 부리지 않는 것이 술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진짜 좋은 방법은 원리 원칙을 따르는 것이란 의미일 것이다.” (116 쪽)

  제품의 원가가 높아져 크기를 줄여야 했다면 이를 정당하게 고지하고 소비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옳았다. 마케팅이라는 이름 아래 ‘눈가리고 아웅’하는 제조업체들의 판매방식은 소비자를 업신여겼거나, 차마 모를 것이라는 얕은 생각에서 한 것일까.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관행같은 판매방식’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조업체를 신뢰하고 제품을 믿는 소비자에게 이렇게 술수를 부린다면 소비자의 사랑은 ‘한시적’일 수 밖에 없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어려움은 곧 지나간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조금 더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어려운 때일수록 놓치기 쉬운 도리와 원칙을 보여주는 한편 우리가 정말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출간된 이후 지금껏 5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많은 비즈니스맨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 듯 하다. 

  일과 인생에서 시련은 있는 법. 하지만 이를 보다 더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데는 선배나 선인으로부터 위로만한 것이 없는데 본인들도 힘들어 해서 소리를 청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던지는 위로이고 격려여서 더욱 힘이 난다. 오늘을 사는 비즈니스맨들에게 자리를 물려 조용한 곳에서 둘 만의 대화를 나누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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