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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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하는 첫경험같은 여행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저는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뭐랄까요....

어떤 강렬한 것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책이 노골적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꽤 오랜 동안 책을 읽어왔지만 이렇게 내 눈에 시선을 맞추고 내게 말을 거는 책은 처음 봤다.

난 활자를 보고, <여행의 책>은 수많은 활자 속에서 나를 보고 있다.

제 스스로 살아있다고 말하는 책이 내게 말을 건다니...

묘하고 난감한 기분이다.

 

  진짜일까 싶어 책을 쥔 두 손에 힘을 줘 본다.  

내가 의심하고 의식하고 있는 순간 책은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책>이라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 책은 이름을 얻고, 꽃이 된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은 이제 숨을 쉬고 있다.

 

 



 

 

독자여,

그대는 나를 보고 있고

나 역시 그대를 보고 있다.

그대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고 그대의 얼굴은 반드럽다.

내 얼굴은 작은 굴자들이 촘촘히 찍힌 이 책장들이다.

얼굴이 백짓장 같다는 비유가 생길 만큼

내 얼굴은 해쓱하다



 

  더더욱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이젠 <여행의 책>이 나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 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책>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는 셈이다.

 

책을 쥔 두 손은 <여행의 책>의 어느 부분을 잡고 있는 것일까?

귀 일까? 몸통일까? 그것참... 내가 책을 느끼고 있다니 사알짝 미친 기분이다.

 

 

  이 책은 참 묘한 책이다. 지금껏 책 속의 활자를 새겨넣은 저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겼던 나에게 혼란함을 주었다. 무생명, 즉 죽은 나무의 또 다른 시체에 불과한 종이 덩어리가 첫장을 넘기는 순간, “독자여!”하고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의도된 최면에 걸린 셈이다. 맛을 안 아기가 사탕을 처음 입에 물은 모습을 본 적이 있나? 눈을 똥그레지고 입도 같은 모양이 된다. ‘헉, 이게 뭐지?’ 그 무엇이든 처음은 황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뜨악하고 놀랄 뿐이다. 마치 첫경험처럼. 이 책이 내게 그 기분을 던지고 있다. 당돌하고 어의가 없다. 하지만 페이지를 멈출 수가 없다.

 

  이 책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없다. 단지 그는 <여행의 책>을 만든 창조주일 뿐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위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녀석을 만들고, 독자와 대화하는 것을 감지할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까. 내가 책과 이야기한다고? 말도 안돼! 작가는 날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읽고 있는다면 난 농락을 즐기는 것이다. 바보같다. 그래서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인지된 최면. 그래, 난 의도되고 인지된 최면에 걸리고 있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계속 읽기를 청했다.

 

만일 그대가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겐 계약이 하나 필요하다.

나의 의무는 그대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것이고,

그대가 할 일은 나날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고

되어 가는 대로 완전히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갈라서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반대로, 그대가 이 계약에 도장을 찍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합의의 신호로 한 가지 동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잘것없는 작은 손짓이지만,

그것을 나는 약속의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 그럼 갈까? 라는 문장을 읽거든, 책장을 넘기라.

 

  <여행의 책>은 내게 함께 여행할 것을 제시한다. 독자라는 삼인칭대신 이젠 ‘그대여’라고 말한다. 이제 <여행의 책>과 그대, 즉 나 이렇게 단 둘 뿐이다. 그리고 <여행의 책>의 써진 대로 아니 말하는 대로 둘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부웅 뜨더니 벽과 천정을 뚫고 하늘을 오른다(실제로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으윽~). 대기권과 성층권 위를 오르더니 공기의 세계와 흙의 세계, 불의 세계와 물의 세계를 함께 체험한다. 정말로 난 이 책과 여행을 했다. 믿기지 않는다고? 자신은 속이지 말자. 당신은 벌써 이 책을 읽고 싶다고 느꼈지 않은가? 당신도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은 걸게다.

 

  이 책을 읽고 싶다면 주의할 것이 있다. 대중교통 안에서, 그리고 전화가 울려대는 사무실에서 읽는 것은 곤란하다. 조용히 자신의 방에서 깊은 밤 잠들기 전 한 두 시간 전에 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여행의 책>과 단 둘이 만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난감한 기분에 두어 번 책을 덮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련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펴서 읽는 것도 당연하다. 당신은 최면에 걸렸으니까. 그래도 걱정할 건 없다. 나를 그렇게 했듯이 <여행의 책>이 당신을 제 자리로 귀환시켜줄테니까. <여행의 책>은 당신에게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나는 작은 글자들로 덮인 네모난 종이장이다.

이제 이런 식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그대의 눈길이 나를 쑥스럽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 권의 책인 내가 그대로 하여금

경이로운 일을 하게 했다고

그러나 진정 경이로운 것은

그것을 수행한 그대,

오직 그대 뿐이다.

 

안녕

 

  혹자들이 책에 빠졌다고, 책과 함께 시공간을 거슬러 여행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난 시니컬하게 비웃어 넘겼다. 천 수백 권을 읽어도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겐 이번이 책과 여행하는 첫경험이니까. 분명한 건 난 책과 여행을 확실히 했다는 것이다. 책이 보여주는 세상을 보았고, 피터팬처럼 책을 쥐고 하늘 위로 올랐으며,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아픔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도 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책을 쓰고, 내가 이 책을 쥐는 순간 연결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나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눈을 통해 내 뇌에 주문을 걸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스스로 변화된 것을 느꼈다. 누워있고, 엎어진 책. 그리고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병렬로 서 있는 책들의 무리들도 내게 말을 걸었고, 대화했었다는 것을. 이젠 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난감해졌다. 아니 당장, 살지도 죽지도 않은 <여행의 책>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기가 막힌다. 지금의 내가 기막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주문이 기막히다. 난 지금도 그의 주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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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경영의 지혜 - 88세 샘표 박승복 회장의 인생의 성공, 사업의 성공 이야기
박승복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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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마음이 건강하면 기업도 CEO도 건강해진다!

 

  이 책은 대한민국 밥상에 입맛을 책임지는 기업의 CEO이자,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CEO가 쓴 책이다. 바로 올해로 여든여덟의 미수米壽가 된 샘표식품의 박승복 회장이 일제치하에서는 은행원으로, 박정희 정권 때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공직자로, 그리고 오십대에 이르러는 선대의 가업을 이어받아 샘표 식품의 경영자로서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의 경영론은 한마디로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박회장의 말을 듣고 있으면 경영이란 것이 ‘딱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의 경영이념이샘표식품을 ‘내 집안사람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 말자.’는 신념 아래 63년 동안 무적자 경영을 이룩함은 물론 30년이 넘게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고, 노사분규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기업의 CEO가 말하는 비결이란 것이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경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지나치게 기업을 키울 욕심도 없고, 직원은 남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살피고 있으니 옹골찬 경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88세가 아니라 49세 청년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건강하게 사는 이유도 이러한 경영의 마음가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생각나게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서)경영하는 마음으로 행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안 될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순리에 거스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하지 않고, 내 욕심을 챙기지 않고 묵묵히 하다 보면 돈과 명예는 저절로 따르는 것이다.

경험으로 미뤄보건대 세상은 잘나고 똑똑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만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조금 부족하고 평범해도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주인이고,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발전해가는 것이 세상이치다.“ (258 쪽)

  박승복 회장은 기업을 수십 년 경영해오면서 겪었을 우여곡절은 접어두고 모든 것을 운으로 돌렸다. 지난한 세월들을 서술하는 내용들은 모두 특별한 비법이 없어도, 특별한 배경이 없이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 기업도 사람도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박회장이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대표되는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이 ‘사람다움을 실천할 수 있는 윤리의 장’으로 바뀌는 듯 했다. 그렇다. 장사가 별건가? 고객을 위해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기만 한다면, 고객이 먼저 알고 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훌륭한 경영의 차이는 내가 먼저 먹고자 만드는가, 아니면 남을 먼저 잘 먹이고자 만드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그의 경영론을 읽으면서 워런 버핏이 가장 존경하는 로즈 블럼킨 여사가 떠올랐다. 로즈 블럼킨 여사는 워런 버핏이 사는 오마하에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구 매장인 ‘네브라스카 퍼니처 마트’의 창업자이다. 로즈 여사의 영업 전략은 단 한 가지 ‘좋은 제품을 단 10 퍼센트의 마진을 붙여 판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내걸었던 구호는 ‘싸게 팔자. 진실을 말하자. 속이지 말자. 반품 받지 말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익이 많이 남는 가구업계에 뛰어들어 오로지 ‘10 퍼센트’의 이익을 취하면서 가구를 팔았다. 미국 전역을 돌면서 가장 좋은 가구를 현금으로 구입해 단 ‘10 퍼센트’의 이익을 붙여서 파는데 소비자들이 그녀의 제품에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얼마 되지 않아 기존의 업체들을 물리치고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훌륭한 기업을 모를 리 없는 워런 버핏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매각을 권유하는 러브콜을 전했다. 마침내 로즈 여사가 매각을 결정했을 때 워런 버핏은 채 1 분도 걸리기 전에 그녀가 부르는 가격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녀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업을 인수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기로 소문난 워런 버핏이 그렇게 빠른 시간에 계약을 한 것은 지금까지 전무후무했다.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기업 경영을 맡겼던 아들과의 불화로 그녀가 다시 가구업체를 세워 엄청난 속도로 사세를 확장시키며 아들에게 물려준 가구업체와 경쟁하게 된다. 워런 버핏은 이들을 중재하고 두 손 두 발을 들고 싹싹 빌어서 다시 로즈여사의 두 번째 가구업체를 인수하는데, 두 번째 계약서에는 ‘다시는 자기를 상대로 경쟁하지 못하도록 비경쟁 조항에 합의하고 서명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즈부인이 영원히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영원함에 5년을 보탤 필요가 나한테는 있었습니다.” (스노볼 2권, 66 쪽)

   그 당시 로즈 여사는 아흔 아홉 살이었는데, 워런 버핏은 그녀가 설령 백 스무 살이라고 하더라도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로즈 여사를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손꼽으며 존경을 표하고 있다. 로즈 여사의 박리다매의 경영은 박 회장의 기본과 원칙의 경영과 닮았다. 그리고 먼저 소비자를 위하고 나중에 이익을 취한다는 신념 역시 닮은 데가 있었다. 워런 버핏이 박 회장을 만난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해졌다. 

  그는 건강한 기업‘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이익만 좇는 기업이 아니라 자신의 가야 할 길을 알고, 그 길에 매진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가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거센 파도가 밀려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영업이익에 급급해 구조조정과 편법을 일삼는 기업가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박승복 회장을 언급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은 ‘그의 건강’이다. 국내에서 최고령의 현역 CEO로 활동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건강한 경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대표적인 ‘식초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4-5년 전부터 그는 ‘식초(흑초) 전도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백년 기업 백년 인생, 건강이 최고의 경쟁력이다’에서 그의 건강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샘표식품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다. 그리고 본받고 싶은 훌륭한 기업가를 한 명 더 알게 한 책이다. 샘표식품이 100 년이 되는 그 날,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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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희망, 미래>를 리뷰해주세요.
꿈, 희망, 미래 - 아시아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의 성공신화
스티브 김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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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김의 두 번째 성공신화는 이제부터다! 

  스티브 김의 성공스토리는 TV나 다큐멘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성공스토리다.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환경을 딛고 대학까지 마친 청년이 낯선 이역 미국 땅에서 시급 2달러 50 센트짜리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어학과 학업, 그리고 고된 일을 병행하며 생활하면서 겪는 고초는 ‘눈물 젖은 빵’으로 대표되지 않던가. 마침내 인정을 받은 청년은 대기업에 취직에 성공하고, 회사생활을 통해 자신의 미래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창업에 성공 두 번의 회사를 운영하면서 미국 내에서 억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비즈니스맨들이 꿈꾸는 어른 동화의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스티브 김의 진짜 이야기는 후반부부터 시작된다

  성공한 사업가로 은퇴를 선언하고 누구보다 편안한 미국생활을 하던 그는 고국인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그 후 꿈.희망.미래 재단을 설립하여 장학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을 하며 연간 2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스티브 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목한 대목은 여기다. 그는 부자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일환으로 단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그 행위만으로도 칭송받을 일이지만)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그에 대한 소신을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은 일이라고 하면 그저 ‘돈 버는 일’만 생각하는 것 같다. 돈 버는 일은 열심히 치열히 일하면서도 다른 일은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돈 쓰는 일 역시 돈 버는 일과 마찬가지로 계획성 있고 치열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돈 버는 일은 힘들다. 이왕 힘들여 번 돈을 쓸 바에야 보람 있고 효율성 있게 써야 하지 않을까. 같은 돈을 써도 더욱 효과적으로, 효율을 극대화해서 쓸 수 있도록 계획도 세우고 연구도 해야 한다. 그리고 돈을 쓸 때도 돈을 벌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있어야 한다.“ (234 쪽)

  그래서 스티브 김은 사회복지사업도 영리기업을 경영해야 할 때의 원칙을 적용했다. ‘기부 마인드’가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것이다. 마치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재단의 사회복지사업을 직접 챙기며 이끌어가고 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책 <리치스탄>에서 말했던 21세기 부자들의 ‘성과적 박애주의’를 목격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 온라인 주식거래시스템인 ‘사이버코프’를 개발한 필립 버버는 2000년에 찰스 스왑에 4억 5천만 달러를 받고 팔은 후 전체 자산의 절반가량인 1억 달러를 들여 ‘글리머오브호프’라는 개인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기업가형 자선모델’이 되었다. 글리머오브호프는 2001년부터 에티오피아에 1천 600만 달러이상을 투자해 1,657개의 우물을 만들어 88만 6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190개의 학교를 지어 11만 2천 명 이상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버버가 이룬 성과에는 어마어마한 사업내용 외에도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 그것은 큰 규모의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비슷한 프로젝트의 절반 수준으로 이룩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깨끗한 물은 한 사람당 5.74달러의 비용, 의료 서비스는 한 사람당 4.01달러의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리치스탄 부자들(21세기형 억대부자)은 자신들의 부로 선행 행위를 하기 위해 반드시 큰 비영리단체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 버버는 이렇게 말했다.   

  “NGO들이 만약 기업이었다면, 아마 대부분 파산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겁니다. 기부자들도 자신들이 기분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고 감독해야 합니다. 이런 자선단체 중 상당수가 기부받은 돈 1달러당 단지 19센트만을 사람들을 돕는데 쓰고 있습니다. 기부자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분명 충격을 받겠죠.” (리치스탄, 더난출판, 226 쪽)

  이 부분에서 ‘기업가형 자선모델’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21세기의 부자들은 기부 면에서 20세기의 그들과는 차이점이 있다. 그들은 뛰어난 학력과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된 부자들이다. 그래서 기부역시 ‘선심’보다는 ‘효율’을 따진다. 그들이 고생해서 이룩한 부인 만큼 올바르게 쓰이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기부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김 역시 이 책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사업을 키우는 것처럼 나는 재단의 사회복지사업을 키워나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고민했지만 이제는 돈을 제대로 쓰기 위해 고민한다는 점이다. 나는 배경이 사업가여서 그런지 모든 일을 사업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항상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기관이나 NGO 같은 단체에서 좀 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면 좋겠다. 그런 분야일수록 귀하고 소중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246 쪽) 

  버버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빌 게이츠가 아내 멀린다와 함께 빌&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자 워렌 버핏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그 재단이라면 내 돈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버버의 ‘기업가형 자선모델’ 방식이 주효하자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이 50만 달러를 기부했다.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역시 “우리는 지속적인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기업의 경영 원리를 사회문제에 접목시킨 그의 독특한 경험을 활용하고 싶다”며 버버의 재단 운영방식에 깊은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사업 중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위대한 사업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업 즉, ‘비영리사업’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기브 앤 테이크Give&Take의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것reward이 있어야 하는데, ‘비영리사업’은 일방적으로 주기만Give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역시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자선사업(구호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스티브 김은 국내에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스티브 김을 보고 있으면 필립 버버를 생각나게 하고 책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인 Room to Read의 존 우드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에서의 비즈니스 성공은 ‘아메리카 드림‘이었다면, 한국에서의 자선사업은 ’코리아 신드롬‘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어쩌면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는 수식어는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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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을 리뷰해주세요.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 - 뒷골목 아티스트들이 이끄는 뉴욕의 예술경제학
엘리자베스 커리드 지음, 최지아 옮김 / 쌤앤파커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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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화의 메카, 뉴욕의 창조적 진화를 잘 설명한 책

  "오늘의 뉴욕이 결코 돈이 많아서 파리, 런던, 도쿄를 밀어 제친 것이 아닙니다. 뉴욕의 문화가 뉴욕의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그 경제는 다시 문화를 살찌우고 있습니다. 그 논리는 철저히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현재는 경제자산이 더 많은 사람이 부자이지만 미래는 문화자산이 많은 사람이 더 풍요하게 살 것입니다. 제2의 산업혁명처럼, 지식경제사회가 문화비즈니스 사회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재테크 타령만 하고 있다가는 경제적으로도 한참 뒤쳐진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의 금융회사나 로펌이 고객들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통째로 빌려 그림을 보며 파티를 하는 세상입니다. 문화를 모르면 경제도 모르는 시대입니다. 지금가지 경제적 능력이 문화적 능력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문화적 능력이 경제적 능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21세기를 주도할 경제패러다임을 ‘컬처비즈’로 꼽은 유병률은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에서 컬처비즈의 메카로 ‘뉴욕’을 꼽아 논지를 펼쳤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쌓은 미국은 ‘문화적인 상징’을 필요로 하게 되자, 뉴욕을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전략적인 드라이브를 걸게 된다. 피카소를 뉴욕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그가 거절하자 ‘뉴욕에 피카소가 없다면, 새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인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을 국가적 차원으로 후원해 ‘뉴욕의 피카소’로 만들었다. 그 후 뉴욕은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국가가 막대한 자금으로 문화를 후원해 명성을 얻자 전 세계적으로 시선을 모으고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뉴욕이라는 ‘문화도시’는 다시 미국의 부를 축적시키는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유병률은 이러한 뉴욕의 예를 들면서 이제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내게 뉴욕을 단순히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아닌 ‘미래의 부를 창조하는 상징적인 도시’임을 보여줬다. 그 후 지금은 바르셀로나 못지않은 관광명소가 된 스페인의 작은 섬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의 지점을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가 서울을 ‘창의문화도시’로 리모델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나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 모든 것이 오늘날은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뉴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 뉴욕의 ‘예술경제학’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문화 트렌드의 관점에서 오늘의 뉴욕이 있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경제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가는지, 그리고 ‘예술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뉴욕의 현주소는 어떤지에 대해 밝힌 책이다. 도시계획학 박사이자 정책계획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뉴욕의 뒷골목을 직접 발로 뛰며 뉴욕의 하위문화에서 순수예술에 이르기까지 뉴욕 전반을 아우르는 아티스트들과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해 이론과 현장성이 무장된 한편의 보고서였다.

 

  뉴욕은 순수 미술을 포함해 예술의 총체를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모체로 인식했다. 미술은 산업디자인에 모티브를 제공하고, 디자이너가 창조해 낸 상품들은 제품이 아닌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 예술의 경향은 하나의 트렌드로 재인식되면서 이제 예술과 경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적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기술과 자원으로 새로운 문제 해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른바 ‘컬처 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역학 구조가 탄생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산업 디자이너인 A는 어느 미술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패션의 의상을 창조했다. 또 다른 디자이너나 예술가, 그리고 영화배우와 모델 등 이른바 트렌드셰터들이 그 의상에 매료되어 그것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난다. 그 의상을 모티브로 한 길거리 문화가 생겨나고, 많은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은 그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낸다. 이러한 관계는 다시 순환하고 변화하면서 점차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패션은 사회의 반영물이며, 문화현상이다. 패션은 다른 크리에이티브 업계들과 그 역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어느 디자이너의 말처럼 크리에이티브 업계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tole.tistory.com/tag/%EB%89%B4%EC%9A%95 

  예술은 창조를 거쳐 문화가 되고 이를 선택해 입소문을 거쳐 유행을 일으키면 트렌드가 되어 세계로 전파되는 시스템, 이것이 오늘날 뉴욕의 예술경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예술 장르를 불문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요소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뉴욕에서 생겨나면 경제적 요소가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뉴욕’이기 때문에 ‘예술경제’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스템이 뉴욕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 아이디어와 발상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업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잠재인력 역시 기업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뉴욕 소셜라이프 네트워크는, 바로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뉴욕의 예술경제를 자랑하려고 만든 책이 아니다. 뉴욕이 세계적인 예술문화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이를 이끌어내는 아티스트들의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컬처비즈’는 인프라 구축에 있는 것 뿐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종사자들의 열정이 더해질 때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사람이 뉴욕을 만들었다면, 이젠 뉴욕이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뉴욕이라는 공간적 본질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상상해보라. 골목을 꺾으면 아이디어를 짜내서 만든 작품으로 좌판을 벌이는 젊은이들이 즐비하고, 다시 골목을 꺾으면 전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괴짜들이 자기만의 음악과 악기로 연주한다. 기발한 인테리어와 최첨단의 음향으로 무장한 클럽들에는 스타일리시한 셀러브리티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길거리나 클럽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혹은 그저 놀기 위해서 만나고 충돌하고 다시 흩어진다. 만약 세계 어딘가에 그런 가장 ‘폭발적이고 변화무쌍한’ 곳이 존재한다면,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그곳에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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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는 CEO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읽는 CEO 8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시 전문가 김진애의 세계 도시 이야기 


  "문제없는 도시란 이 세상에 없다.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며 도시에 나타난다. 도시란 온갖 것이 다 모여드는 공간이다. 도시란 삶터이자, 일터이자, ‘놀터’다. 사람들이 모이고 물자가 모이고 정보가 보이고 일자리가 모임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흥밋거리들이 모여 들고, 그 모인 모습이 흥겹고 쓸모 있어서 사람들이 또 모인다.  

그래서 도시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래서 도시는 참 복잡한 복합체이자, 참 헤아리기 어려운 복잡계다. 하지만 그래서 도시는 끝없이 흥미로운 주제다.“ (4-5 쪽)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도시 읽는 CEO>는 ‘인간이 만드는 최고의 문화형태’인 도시와 인간(엄밀하게 말하면 저자)과의 관계를 통해 독자에게 사물이나 당면한 일에 있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자 한 책이다. 다시 말해 도시 전문가가 바라본 세계의 도시들 사이에서 비슷한 성격과 관련성이 있는 도시들을 묶어 그들을 살펴봄으로써 독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발동하고(호기심), 성찰하며 선택하고(선택), 그 속에 깊이 빠져(기쁨) 종국엔 주제를 넘나들며 상상할 수(상상)’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저자의 의도를 떠나 이 책은 딱히 도시를 ‘즐기려고’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세계의 도시가 주는 독특한 개성을 짐작하게 했다. 



 

  
  저자는 도시가 사람과 닮았다고 보았다. 사람이 사는 비교적 큰 영역으로 본 것이 아니라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동성을 살펴 도시를 의인화한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종로통은 낡은 사진의 이미지이고, 자신이 살던 서울을 벗어난 첫 도시 전주는 초록이 주를 이루는 수채화의 풍경이다. 유학차 떠난 이역만리 낯선 땅 미국의 첫 모습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그곳은 황홀했다. 도시 느끼기의 공통점은 어디에나 처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한 번만 본다면 첫 인상으로 각인된다. 하지만 그곳을 자주 가 보고, 오랜 시간 머물며 지내본다면 그곳만이 가진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보는 모든 사물이 그렇고, 대하는 모든 관념과 문제가 그렇듯이...

  이 책으로 도시를 배운다. 내겐 두 세 글자의 이름뿐이던 도시가 흥미로운 대상이 되었다. 평소 가 보고 싶었던 도시는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도시’가 되고, 만약 가게 된다면 필히 들리고 싶은 곳도 생겨났다. 건축과 역사, 그리고 영화와 책을 엮어 풀어나가는 도시의 설명으로 도시들은 이야기를 지닌 유기체로 변했다. 도시를 배움과 더불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저자의 열정도 배우게 되었다. 태어나서 세상을 인지하게 될 때 있었던 것들은 모두가 당연하다. 도시도 그랬다. 그래서 내게 도시는 ‘공존’이다. 하지만 도시 만들기를 꾸미는 저자에게서 도시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할 수 있고, 버림을 받으면 폐허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인간 역시 도시가 갖는 성격에 의해 지배됨을 배웠다. “인간을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는 말처럼...

  낯선 도시로의 여행길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도 같을 것이다. 도시 전문가가 말하는 도시와 사람이야기, 김진애가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건축이야기라서 좋았다. 게다가 산문이어서 세계의 도시 마다 가이드를 받는 기분이 들어 더욱 특별했다. 일반적인 도시 여행기와는 다른 특별한 도시성찰기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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