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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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쿠다 히데오는 저리 가라! 올해 만난 가장 재미있는 소설.

  20대엔 세상이 우스웠다. 뜻만 두고 손을 뻗으면 그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새털같이 많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아서였다. 내 안의 변화를 추구하기엔 뜻이 모호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촉觸이 너무나 둔감했었기에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는 것을 안 건 한참 후다. 늘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만큼 범위에서 뒹굴거렸기에 세상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변화없는 뜻뜨미지근함이 세상을 우습게 여긴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나 알 뿐 벌려진 판 속에서 뛰어다니는 놈이 어찌 알겠는가. 설령 그런 느낌이 들거나 훈수를 두는 바깥사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온전히 제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 속에서 뛰어다니는 것만도 하루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었고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연꽃도시An ideal city>의 세 청년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중국의 신세대를 뜻하는 ‘80後 세대‘의 소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붉은 공산주의자의 부모에게 밥을 얻어먹고 집밖을 나오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이후 빠르게 유입되는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서핑을 해야하는 모순의 세대가 80後 세대다. 젊은 모순 세대의 눈에 보이는 제 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꺼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혈액 속에는 과장과 풍자라는 아드레날린이 넘치지 않던가. 사상의 혼잡과 과장된 풍자가 한데 어우러진 중국을 파릇한 젊은이가 ’허구의 장르‘인 소설로 엮었으니 그 자체로 흥밋거리다. 

  이 소설은 ‘80後 세대’의 대표주자 한한韓寒이 쓴 소설이다.

수려한 외모와 파란만장한 학창시절, 그리고 중국고전을 방불케하는 필력으로 중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그는 지난 2006년 2억 6천만 위한의 인세수입을 올려 <포브스>지가 주목하는 유명인에도 든 바 있다. 나는 그의 전작 <삼중문三重門>을 읽은 바 있다. 중국 문단과 교육문제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이를 겪고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애환을 담은 청춘소설인데, 중국고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특유의 해학적 요소를 가미한 줄거리는 국내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다. 책을 읽은 후 저자가 15세에 발표한 소설이란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는 <연꽃도시>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했다. 

  <연꽃도시>를 읽으면서 ‘주성치의 영화’가 떠올랐다.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형식을 걷어내고 우스개 만담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희한한 것은 싱겁지도 지겹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한이 표현한 짧고 엉뚱한 대화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에 걸맞고 가독성을 더해 책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한다.

 두세 줄로 설명되는 근본 없는 태생의 주인공들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그것을 피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돈이 필요할 뿐이다. 주인공들을 보자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학을 간 새내기의 여름방학을 생각나게 한다.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둘 셋만 모이면 여유롭진 않아도 굶진 않는다. 풍족한 것은 오직 시간 뿐이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감지하고 산다.

“내 시간은 젠수의 다리와 손이 회복되는 속도만큼이나 매우 천천히 흘렀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있다 보니 시간이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시간은 천천히 와도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어제 일은 이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야 어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이긴 하지만.” 45쪽 

  소설가는 세상의 풍경과 사람의 말 그리고 행동을 훔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절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한 역시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기억했을 것이다. 개연성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는 이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주인공들이 이야기가 억지가 없고, 꾸밈이 없다. 삶에 대한 생각이 없어 대화의 깊이가 얇고, 앎과 경험이 부족해 수준이 낮다. 그래서 웃기고 재미있다. 독자로서 한한의 소설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특별한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슬프지도 않고 기쁠 것도 없는 날이 태반인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은 평범했다.

 이것은 내가 보냈던 젊었던 날의 뜻뜨미지근함을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한다. 그 시절 내 삶은 이끈 것은 친구와 함께 하는 나날이었다. 부족하고 멍청한 사고뭉치 젠수는 내 친구 ‘대구빡’을 닮았고, 있는 집 자식 반항아 왕차오는 선배 ‘조까치’를 빼다 박았다. 행동하기보다 지켜보면서 즐거웠고, 느끼기보다 보여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꼈던 그때의 이야기가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건사고의 끝에 스치는 생각은 고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깊은 성찰들이다. 이것이 중국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어느 날 주인공들은 대형마트를 찾은 중년의 남자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게 된다. 

 “물건을 사러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뭡니까?”

중년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지난달 우리 회사에서 미국으로 견학을 갔습니다. 그때 가서 보니까 미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살더군요. 우리도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면 바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게 되잖소.”

 “그러면 여기까지 집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나요?”

 “한 이십 분 정도요. 미국 사람들은 ‘워즈더마’인가, ‘워마더’인가 하여든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는데 차로 한 시간씩 걸린다고 하더군요. 우린 그래도 가까운 편이죠. 겨우 이십 분 밖에 안 걸리니까요. 만약 차가 막히지 않고 시속 백이십 킬로미터로 달리면 십 분이면 도착합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죠.”

 “어쨌든 나라가 잘 살아야 됩니다! 미국 가서 보고 느낀 게 아주 많습니다. 알고 보니 미국 사람들은 소매점에서 절대 물건을 사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주말마다 차를 몰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대형 마트로 쇼핑을 갑니다. 지금 우리는 이십분이면 되니까 어떤 면에서 볼 때 드디어 미국을 앞지른 겁니다.”

(중략)

 우리 셋은 그 방송을 보고 나서 삶의 재미를 만끽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함께 그 마트를 찾아갔다. 209-210 쪽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태어난 청춘은 ‘당연히’ 있는 사상적 기반에 대해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십여 년 동안 사상적 괴리만큼이나 뒤틀어진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여지는 화려한 외형을 따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숭상하면서. 주인공인 나는 여자친구가 들고 있는 자수를 놓은 펜디 핸드백이 오만 칠팔천 위안(우리돈 약 처이백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건강이 안 좋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일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 그 핸드백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가방 값을 알려드린다면 아마 그 분들은 피를 토하고 숨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저자인 한한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보는 중국이라는 정신없는 세상은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일치하기에 그의 표현력에 중국의 젊은이들이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지 모른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고 비웃을망정 그 속에 살고 있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하지도 않는다. 눈도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를 제 깜량만큼 소화하며 허허실실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중국소설이 갖는 매력이다. 관념적인 우리 소설과 허무주의로 도배된 일본 소설과 또 다른 느낌이다. 오쿠다 히데오와는 또 다른 해학을 던져줄 새로운 작가, 한한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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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경영의 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리더들의 마지막 강의
토드 부크홀츠 지음, 최지아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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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대학 경영학도들의 경영입문서로 부족함이 없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꾸준히 한 가지 일만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뤄낸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이 말은 <열자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기주 남쪽과 하양 북쪽에 둘레가 700리나 되는 거대한 두 산이 있었다. 나이 아흔에 이른 우공이란 노인이 산에 가로막혀 멀리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해 산을 옮기기로 했다. 한 삽 한 삽 퍼낸 흙을 발해만까지 한 번 운반하는 데 일 년이 걸리는 무모한 짓(?)에 친구들이 비웃으며 만류했다. 그러자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으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자신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고자 자자손손 운운하며 산을 옮기고자 하는 우공의 깊은 뜻을 전해들은 옥황상제는 감복하여 힘이 센 신하들을 시켜 산을 번쩍 들어 옮기게 했다고 한다.

 

  작금의 비즈니스현장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세상이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현장은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임시방편의 잔꾀나 권모술수로 이른 성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성공의 잣대도 상상할 수 없는 큰 성공이어야 하고, 그것도 최단기에 이룩한 성공이어야 성공이라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폐단은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기업과 CEO를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투자자들의 조급함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투자한 이후 한 번도 배당금을 받지 않고, 다시 재투자하고 있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자들을 본다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원칙에 기초한 경영전략과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듯 성실하게 비즈니스를 펼치는 비즈니스맨을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자’로 매도하는 비즈니스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전설적인 열 명의 CEO들을 한데 모은 책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고 살피면서 비즈니스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이 책은 전 세계 주요대학의 경제학도에게 필독서가 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썼던 토드 부크홀츠가 쓴 책이다. 원제목은 New Ideas from Dead CEOs: Lasting Lessons from the Corner Office 이다.

 

 



 

 

  이 책은 위대한 CEO들의 작은 평전이다. 은행업의 대중화를 이끈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 IBM을 만들어낸 토버스 왓슨 부자父子, 화장품의 대중화의 주역 메리 케이 애시, 화장품의 품위를 높인 에스티 로더, 대중매체를 만들어낸 데이비드 사노프, 맥도널드의 전설 레이 크록, 소니의 아버지 아키오 모리타, 어린이의 우상 월트 디즈니, 할인점의 대표주자 월 마트의 샘 월튼 등 토드 부크홀츠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CEO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게 한 ‘힘’을 찾아내었다.

 

  토드 부크홀츠이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여느 책의 저자와 달랐다. 오늘날의 영광보다는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게 된 여정과 순간에 주목했다. 긴 역사를 두고 봤을 때 승승장구했던 시티은행이 한 해 만에 뉴욕발 금융위기로 사실상 ‘국영화’되는 것처럼 ‘오늘의 영화로움’은 한낱 ‘순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음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등장하는 기업들을 통해 21세기의 트렌드를 생각하기 보다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기업의 CEO(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창업자)들을 통해 ‘기업을 세움’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그리고 평생을 바쳐 기업(회계학상으로는 법적인 인격을 갖춘 법인法人)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알려주고자 했다. 책 속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창업자는 죽고 없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 않은가? 이것만 봐도 죽은 CEO의 영향력이 ‘죽은 관우’ 못지 않음을 알 수 있다.(참고로 오늘날 기업의 평균 수명은 10 년이 채 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100 년을 이어온 기업은 열 손가락 안쪽에 든다)

 

  창업 분야기 각기 달랐던 이들 10 명의 비즈니스 리더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열정이다. 이들 모두 CEO로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했다. 이들은 비슷한 업종에서 최초의 기업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쟁자들의 훼방과 조롱 섞인 비웃음도 숱하게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파산과 빚더미 상황의 위기에서도 굴복하지 않았고, 작은 성공에서도 안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뜻하고자 한 바를 이룩하려는 열정과 자신의 에너지를 믿는 ‘자존감’에 있었다.

 

  죽은 10인의 CEO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재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고, 그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처음 배우가 꿈이었던 ‘월트 디즈니‘가 그 만의 캐릭터였던 토끼 캐릭터 ’오스왈드‘를 그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미키 마우스로 거듭 창조하지 않았더라면 디즈니 랜드와 디즈니 월드는 없었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에도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게 자란 아키오 모리타가 대대로 내려온 가업인 ’사케(일본의 술) 제조업‘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소리를 전파하는 기계‘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노력한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재능을 죽는 날까지 썩히지 않았다. 그들은 풍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일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일을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공통점은 행운이었다.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된 것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사를 입사하려던 데이비드 사노프는 ‘엉뚱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 무선전신을 발명한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만나 미국을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선두주자로 만들었고, 레이 크록이 캘리포니아 주 사막을 니난 샌버나디노에 있는 괴상한 팔각형 모양의 햄버거 가게을 알게 되어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52 세에 따게 된 것도 거의 평생을 프랜차이즈를 할만한 아이덴티티(identity 유일무이한 고유성)을 찾아 헤맨 덕분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무식하고, 한편으로는 순진한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결코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이 꿈꿔온 일을 할 수만 있다면 <파우스트>의 멤피스트에게 영혼이라도 팔려 했던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보면 오늘날 CEO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독자로서 이를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저자가 죽은 CEO들의 사례를 소개할 때마다 오늘날의 기업과 CEO들의 사례를 비교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즉답형식으로 제시하고 있어 읽어나가면서 답을 얻게 된다. 저자만의 관심에서 대답한 것이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거나 ‘이 사람아, 그건 당신 생각이 틀렸지!’하며 반박하고 싶은 케이스들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부분을 독자가 새로 재인식하게 하는 공간으로 배려해 두었다고 억측한다면 너무 우호적인 시선이 될까?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CEO들의 평전이어서 자칫 지루해지거나, ‘So What?' 즉, ’그래서 이들이 한 일이 오늘날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법한 이야기들을 토드 부크홀츠만의 독특한 구성과 필력으로 재미있고 쉬이 읽히게 했다. 그의 전작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세계 대학 경제학도의 입문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세계 대학 경영학도의 입문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죽은 CEO의 살았있는 아이디어>의 경영인들은 온전히 ‘기술자’ 집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무지렁뱅이라는 것이다(나중에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따로 공부를 한 CEO가 있긴 하다). 하지만 100 년 남짓한 ‘경영학’의 근본이 이들이 만들어낸 기업의 역사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CEO의 근본은 ‘경제 경영학’ 학위를 얻거나, MBA를 취득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몸소 뛰면서 얻어내는 ‘일체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경영학에 있어 진정한 CEO 학습은 책상물림 이론가들의 ‘경영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땀과 노력을 통해 현장’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광우병과 미국을 주축으로한 글로벌리즘의 상징이 되어 최근 10여 년 동안 냉대받았던 맥도널드의 창업자인 레이 크록을 거론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프랜차이즈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요식업의 표준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 크록’을 읽으면 점포수가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천대받는 국내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나아갈 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레이 크록에 집중한다고 해도 리뷰를 쓸 만큼 유익했다). 특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세워 은행의 대중화를 이끈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를 알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일반에게 배포한 데이비드 사노프를 만난 점도 유익했다.

 

  한편 소니의 이키오 모리타에 대한 토드 부크홀츠의 평가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가 10 명의 CEO 중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그러면 그렇지’라고 인정할 법도 하지만 일본을 전혀 가지 않고 일본에 대해 글을 썼음에도 지금까지 가장 일본에 대해 잘 이야기 한 책으로 손꼽히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갈 길을 잃은 소니Sony 호에 대한 저자의 우려에는 같은 공감을 한다. 소니의 오늘같은 부유浮游는 창업자가 가졌던 ‘기술자적 마인드’가 결여된 까닭은 아닐까? 그 마인드를 스티브 잡스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조언해주고 싶다.

 

  이 책은 위대한 경영자들의 작은 평전이자, 살아있는 경영학의 역사서다. 재미있고 쉬이 읽히는 면에서는 최고로 꼽고 싶다. 게다가 경영적 교훈과 가르침을 전하는 친절함에도 여느 경제경영서에 비해 단연 손꼽힌다이 책으로부터 얼마나 깊이 배우는가 하는 점은 이제 독자의 몫이자 역량이다. 토드 부크홀츠가 엮어내는 ‘21세기 살아있는 CEO'의 이야기도 기대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죽은 CEO들의 이야기도 이처럼 엮여진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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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1 -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스노볼 1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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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워런 버핏의 어깨너머로 주식시장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찌라시엔 얼마나 많은 테마주 소식이 떴고, 얼마나 많은 소문과 ‘카더라 통신’이 떴는지...그리고 이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새로운 투자처로 옮겼는지 궁금해진다.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죽어서 천국에 간 어떤 석유 시굴자가 있다. 성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네 기록을 다 살펴보았는데, 너는 천국에 갈 수 있는 모든 자격을 갖추었더구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여기 천국에서는 석유 시굴자는 무조건 천국으로 보내기로 원칙을 정해놓는 바람에 너도 저기 대기소를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서 네가 들어갈 자리가 나지 않겠어.” 그러자 석유 시굴자는 “제가 고함 한마디만 질러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성 베드로는 벼롤 어려운 부탁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석유 시굴자는 두 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지옥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그러자 대기실 안에 있던 석유 시굴자들이 번개같이 바깥으로 뒤어나와서 곧바로 지옥으로 달려나갔다. 이를 지켜본 성 베드로는 “머리를 제법 잘 쓰는구나. 그럼 이제 대기실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천국갈 준비나 하고 있거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석유 시굴자가 잠시 망설이면서 아무 말 하지 않더니 “잠깐만요, 나도 그 친구들 따라서 지옥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소문이 그렇게 나고 사람들이 모두 간 걸 보면 아무래도 진짜로 뭐가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주식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이렇게 느끼고 행동합니다.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진짜로 뭐가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믿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은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다. 그는 IT혁명이라 불리는 1999 년, 세계적인 거부들과 IT업체의 CEO 들이 모인 선 밸리의 앨런 앤드 컴퍼니 컨퍼런스의 연설에서 ‘나쁜 생각보다는 좋은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곤란을 당할 수 있다’는 벤 그레이엄의 말을 빌려 인터넷주를 포함한 기술주 경기들이 너무 높아졌다며 지나간 몇 년 동안 주가가 치솟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섣불리 미래를 예단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워런 버핏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을 예측한 내용이었다. 참가한 귀빈들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주가가 하락한 버크셔 해서웨이가 경기를 놓친 것을 합리화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샴쌍동이(워런 버핏는 그가 가장 친애하는 친구들을 일러 이렇게 말했는데, 그중에는 찰스 멍거와 아들과 같이 여겼던 친구 빌 게이츠가 포함된다) 같이 여기는 빌 게이츠가 기술주의 특혜자인데 어떻게 막차까지 놓쳤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이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인터넷은 브릿지 게임을 위한 도구일 뿐 투자대상이 될 수 없다. 난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책 <스노볼THE SNOWBALL>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워런 버핏을 파헤친 평전일 것이다. 저자인 앨리스 슈뢰더Alice Schroeder는 워런 버핏의 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에 대한 보고서를 썼던 계기로 알게 되었다. 버핏은 자신에 대한 글을 써줄 만한 사람은 그녀뿐이라 판단하고 직접 그녀에게 자신의 '전기'를 써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진술과 주위 사람들의 진술이 다르거든, 주위 사람들의 진술을 써 주시오." 버핏의 겸손함에 저자는 글을 쓸 것을 수락했다. 그리고 무려 6년에 걸쳐 무차별적인 인터뷰와 주위의 증언을 모아 쓴 책은 국내판으로는 무려 2,000여 페이지다. 

나는 먼저 버핏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생각해 봤다. 우선 시기적으로 앨리스 슈뢰더에게 책을 써줄 것을 요청한 때를 생각해 보면 사실 헤어졌지만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했던 전 아내 수지 버핏이 죽음을 앞둔 시기와 엇비슷해진다. 버핏에게 있어 수지의 죽음은 큰 변화의 전환점이 된다. 게이츠 앤드 멜린다 재단에 거의 전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때도 이 즈음이고, 증여는커녕 돈을 빌려달라는 딸의 요청에도 “돈을 빌리려면 은행을 가야지?”라고 말했던 버핏이 5년 마다 100만 달러의 용돈을 주기로 한 시점도 거의 일치한다. 아마도 버핏은 몇 해전 그의 연인처럼 절친했던 친구 케이 그레이엄의 죽음을 경험했던 터라 전 아내 수지 버핏의 죽음까지 경험하게 된다면...하는 두려움으로 살아있을 때 평전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녀의 죽음 이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그림자같은 연인 애스트리드와 결혼도 했고,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미리 예측했더라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평전을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억측도 해본다. 왜냐하면 독자인 내가 봐도 이것이 과연 ‘생존의 인물에 대한 평전일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신랄하고 객관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이후 저자와 버핏은 서로 소원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후문이 있다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는 지금도 20 년 동안 진절머리나도록 골치를 썩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산 후 후회했던 것 만큼 이 책을 낸 것에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예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스노볼> 덕분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난 워런 버핏에 대해 조금은 알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버핏에 대한 의문 중에 두 가지는 그는 어떻게 ‘투자를 시작했는가?’하는 것과 <스노볼>의 소개에서 언급했던 ‘절도 행각을 벌인 버핏’이었다. 이 부분은 투자의 시작이라는 점과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의 버핏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따로 구분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워런 버핏은 어려서부터 돈을 밝혔다?

워런 버핏은 호승심好勝心이 강했다. 어린 워런이 좋아했던 놀이들은 대부분 승패를 겨루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없을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해서도 승부를 겨룰 정도였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병뚜껑은 모두 모으고 싶을 만큼 수집욕收集慾이 강했다. 이런 취미와 관심은 숫자로 변했다. 여섯 살이 되면서 시간을 초 단위로 정확하게 측정하는 스톱워치에 깊이 매료 되었고, 이후 무슨 놀이든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는 재미에 빠진다. 이러한 놀이와 행동들은 그에서 무언가 소중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바로 확률이었다. 

워런 버핏의 첫 비즈니스는 껌 한 통을 낱개로 나누어 팔면서 생긴 2 센트의 돈이었다. 이 작은 돈의 수입은 그가 가졌던 취미와 관심의 총합이었다. 상대에게 물건을 팔면서 설득시켰다는 승리감과 가치가 있는 돈을 모은다는 수집욕, 그리고 보다 더 잘 팔 수 있는 확률과 방법을 궁리하게 했다. 이렇게 모인 이 작은 돈들은 장차 커다랗게 될 스노볼 속의 최초 몇 개 눈송이인 셈이었다. 열 살짜리 어린 워런의 인생을 바꾼 것은 벤슨 도서관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백동전처럼 반짝이는 <천 달러를 버는 천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복리複利의 마술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어린 워런은 친구인 스튜 에릭슨은 집 현관 앞 계단에 앉아서 자기는 서른다섯 살에 백만장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 년 뒤인, 1942년 11살이 된 워런은 그의 전 재산인 120 달러와 누나인 도리스를 동업자로 삼아 ‘시티즈 서비스Cities Service'의 우선주 여섯 주를 샀다 각자 세 주씩 소유하고 여기에 들어간 돈은 각자 114.75달러였다.” 133쪽

이 때 워런은 자신이 선택한 주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누나인 도리스를 왜 끌여들였을까 궁금해진다. 어차피 세 주씩 나누어 가질 거면 굳이 누나와 동업자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이 때부터 펀드매니저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추천한 주식을 샀으니까 나중에 주식가격이 높아지면 팔 때 이익의 15%을 줘야 해. 알았지?” 이들이 사들인 여섯 주의 주가가 요동을 치자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려고 40 달러의 시점에서 5 달러의 이긱을 남기고 팔았다. 그 후 시티즈 서비스의 주가는 계속 치솟아 나중에는 한 주에 202 달러까지 올랐다. 이 투자에서 워런은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첫투자를 자기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세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교훈은 주식을 사면서 투자한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교훈은 별생각 없이 작은 이익만 덥석 물고 물러나 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교훈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투자할 때와 관련된 교훈이었다. 만일 자기가 실수할 경우, 돈을 맡긴 사람은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말 성공을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돈을 맡아서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134-135 쪽

워런 버핏은 범죄자였다? 

어린 워런은 할아버지 집의 차고에서 누나 도리스의 파란색 자전거를 발견했다. 할아버지가 도리스에게 선물한 것인데, 이사를 하면서 가져가지 않고 맡겨 둔 것이었다. 워런은 누나의 이니셜이 새겨진 자전거를 제 것처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이 자전거에 웃돈을 얹어서 남자 자전거로 바꾸었다. 워런이 누나의 자전거를 훔친 행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학교 시절 나쁜 성적, 세금 포탈, 그리고 가출은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시어스 백화점 지하의 스포츠용품점에서 골프 가방과 골프채, 골프공 등을 훔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도행위를 ‘낚기’라고 불렀다. 고등학생인 워런의 이러한 일탈행동을 돌려놓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버지 하워드는 워런에게 돈을 버는 신문 배달을 못하게 하겠다고 겁을 줬다. 그 때에 대해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사회적인 학생이었습니다. 8학년 그리고 9학년 때요. 나쁜 아이들과 어울렸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했습니다. 반역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불행했습니다.” 177 쪽

그의 일탈은 그를 외계에서 온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난 네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안다. 그리고 나는 네가 100 % 완벽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신문배달을 못하게 한다는 아버지 하워드의 협박은 어린 버핏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 지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후 버핏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돈벌이는 계속되었다. 골프장 근처 호수에 빠진 골프공을 잠수해서 건져내어 파는가 하면 낡은 핀볼 기계를 사서 위탁하는 이른 바 ‘자판기 사업’을 통해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천 달러를 버는 천 가지 방법>에서 배운 방법을 실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버핏은 50만 부 이상의 신문을 배달했고,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5천 달러의 눈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350명 가운데 16등이라는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워런 버핏의 투자 방식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하버드 대학에 입학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해 상심해 있던 버핏은 컬럼비아 대학교의 리플릿에서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도의 이름을 발견한다. 1949년에 출간된 벤저민 그레이엄의 책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마치 신을 찾아낸 것 같았다’고 말할 만큼 매료되어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모두 읽은 버핏은 컬럼비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가 벤 그레이엄을 따르며 배운 것은 ‘담배꽁초 줍는 법’이었다. 길거리를 걷듯 주식 종목을 연구하다 보면 담배꽁초같은 종목을 발견하게 된다. 필터에 이빨 자국이 나 있을 수도 있고, 축축하기도 해서, 그걸 주워서 내 입에 넣기가 어쩐지 꺼림칙한 담배꽁초, 하지만 거의 공짜와 다름없다. 어쩌면 연기를 한 모금 잘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담배꽁초 같은 기업을 사들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이익을 추구하면 바로 팔아버렸다. 그 기법이란, 회사의 주식가격이 장부 가격 아래에서 형성되는 동안 계속해서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떤 이유로 주가가 오르면 팔아서 매매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주식을 계속 더 사들여 회사를 장악한 다음 회사의 자산을 팔아 치워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워런은 초기 투자 시기에는 벤 그레이엄의 이러한 여러 원칙들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힘들기는 하지만 절대로 투자액을 손해볼 일이 없는 게임만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찰리 멍거를 만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찰스 멍거는 잃을 가능성보다 벌 가능성이 높으면 기꺼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라고 버핏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샴 쌍둥이라고 불릴 만큼 친해진 둘은 이윽고 버크셔 해서웨이를 투자하는 시점에서는 동업을 하게 되고 버핏의 투자 방식은 지금처럼 더욱 크고 과감한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든 ‘두려움을 아는 투자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에 두려움이 많았지만, 호승심好勝心이 강했던 그는 ‘지는 것’과 ‘타인으로부터의 비난’을 죽을 만큼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이 투자한 주식종목이 항상 이기기를 바라는 만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의 삶은 ‘연구와 공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열정은 버핏을 수천 개나 되는 주식의 세상을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열정이 있었기에 버핏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찾지 않는 자료를 찾아서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수십만 개의 숫자들과 씨름하면서 밤늦게까지 연구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눈이 핑핑 돌아서 집어던지고 말았을 것이다. 버핏은 또한 아침마다 여러 신문을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읽었다. 아침마다 마시던 코카콜라처럼 월스트리트 저널을 그대로 삼키고 소화했다.

직접 회사들을 방문해서 그리프 브로스 코퍼리지의 전진기지를 운영하던 여자를 상대로 배가 불룩한 통에 대해서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보험에 대해서 로리머 데이비드슨과도 몇 시간씩 이야기했다. 또 육류 물품을 구비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프로그레시브 그로서>와 같은 잡지들을 읽었다. 자동차에 <무디스 매뉴얼>을 늘 가지고 다녔으며 심지어 신혼여행을 갈 때도 이 책을 가지고 갔다. 사업의 경기순환을 읽히고 월스트리트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역사, 그리고 현대 기업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백 년 전 신문을 몇 달에 걸쳐서 읽었다. 정치판에도 부지런히 다니면서 정치가 사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경제 관련 통계를 분석해서 통계 수치가 의미하는 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어린 시절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전기는 배놓지 않고 읽으면서 그 사람들의 삶에서 교훈을 찾고 또 배웠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접근해서 친해졌고,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미술, 문화, 과학, 여행 등 사업 이외의 일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아 오히려 자기 열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분명하게 규정했다. 단 한 번도 남에게 큰 빚을 지지 않음으로써 최대한 위험을 줄이려고 했다. 그리고 사업과 회사에 대한 생각을 한 순간도 머리에서 지우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쁜 회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경쟁할까?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줄 수 있을까? 버핏은 또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걸 머릿속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684-685 쪽

이 책에서 그가 주식을 투자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2004년도에 ‘한국 주식시장’을 연구한 부분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그는 환율은 물론 금융용어까지 다른 한국 주식시장을 투자하기 위해 하나에서 열까지 공부했다. 마침내 25 개 정도의 종목을 구분했을 때 비로소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 또한 첫 거래에 100 주를 사들일 만큼 신중을 기했다.

그는 또한 ‘기다릴 줄 아는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주식투자를 함에 있어 어쩌면 가장 어려운 덕목이 바로 ‘기다림’인지 모른다. ‘성질 급한 놈이 낚시를 하면 결국 투망을 들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는 말처럼 시시각각 바뀌는 시황, 넘쳐나는 소문과 호재와 악재들 속에서 항상심恒常心을 갖기란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버핏의 인내에는 ‘공부와 연구’라는 베이스가 깔려 있다.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는 확신이 있기에 그는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지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투자자의 비난’이었다. 버핏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불행해하는 것을 보기 싫었다. 이는 역시 기업 인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을 인수하면서 한 번의 크나큰 실수를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투자 원칙을 세웠다. 

1. 내가 알지 못하는 기술이 투자 결정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반도체니 집적 회로니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거의 아는 게 없다. 

2. 아무리 예상 수익률이 눈부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의 주요한 문제들이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은 행위나 활동에는 투자하지 않는다.(‘인간 삶의 주요한 문제들‘ 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가 의미한 내용은 실업이나 공장 폐쇄와 같은 것들이었다) 573 

그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워런 버핏의 투자가로서의 소신이다. 투자가란 이러한 소신을 갖추어야 한다. 투자종목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생각한 바를 토대로 투자한다면 이는 더 이상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된다. 이렇게 투자한다면 잃을 가능성은 적어지고, 설령 잃는다고 해도 또 다른 투자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확신 없는 투자 즉, 투기가 넘쳐난다. 이러한 투기는 구제해줄 방법도 없거니와 구제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 

버핏을 높이 평가하는 두 번째는 ‘펀드 매니저’로서의 소신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일종의 사모펀드이자 동업이다. 버핏의 투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투자금이 함께 투자되기 때문이다. 버핏은 자신의 투자금과 그의 가족(그는 투자자를 이렇게 불렀다)의 투자금을 합해 투자했다. 그리고 그 이익에 대해 일정부분 수수료를 떼었고, 인출하지 않은 채 다시 재투자해서 지분을 높였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금융인으로서 투자자들의 자산을 지키려고 하는 ‘직업적 윤리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버핏의 투자시스템에는 공생共生이 숨어있다. 말 그대로 한 배를 탄 것이다. 그렇기에 투자자들도 버핏을 믿을 수 있다. 버핏은 매년 투자자들을 위한 신년 보고서를 제출했을 뿐 이들에게 어느 종목을 얼마나 샀는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아직도 그를 믿고 따르고 있다.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은 2009년 4월 11일(현재시각) 뉴욕 증시에서 사상 처음으로 주당 15만달러를 돌파해 버크셔 A 주식은 이날 오후 주당 15만8000달러에 거래됐다. 1957년에 버핏에게 1천 달러를 투자한 뒤에 그대로 묻어 두었던 사람은 이 돈이 6,000만 달러로 바뀌어 있는 기적과 같은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워런 버핏은 ‘스노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제대로 된 눈 위에 서 있다면 눈덩이 굴리기는 이미 시작된 겁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이건 돈을 불리는 이야기만 뜻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문제입니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이 호감을 가지고서 제가 먼저 붙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 촉촉한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잘 뭉쳐지게 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눈을 계속 붙여야 합니다. 갔던 길을 물리고 뒤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덕 위까지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인생이 그런 겁니다.“ 689 쪽

이를 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펀드 매니저(금융인)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자. ‘직업적 윤리의식을 갖춘 펀드 매니저(금융인)’이라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투자종목’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수익률이 높게 일어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서 ‘광고’를 하지 않아도 투자자들이 먼저 붙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펀드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투자자들에게 상품을 자주 갈아타게 해서 수수료를 늘려 회사에 이익을 주는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투자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펀드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펀드 매니저란 그런 것이다. 대충 이렇지 않을까?

이 책은 워런 버핏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 이유는 지금껏 워런 버핏에 대해 이야기한 책들은 차고도 넘치지만, 단지 세상에 흩어져 있는 비늘에 불과할 뿐, 그를 설명하는 뼈대가 되는 책은 이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즐겨 마시는 체리코크이 그가 투자한 회사의 제품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세계 제일의 부자가 3만 달러를 주고 산 집에서 아직도 사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입은 남루한 양복이 실은 수천 달러 짜리 제냐라는 것도, 소니 회장의 만찬장에서 베푼 초호화 일식 코스 요리에는 입에도 대지 않은 채 홀로 호텔로 돌아와 햄버거와 프렌치 후라이를 먹은 이유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투자법을 대표하는 ‘복리의 마술’을 뼈속 깊이 배우게 될 것이다. 그가 3만 달러 짜리 집을 처음 산 이후 ‘투자후 복리로 키우면 10년 후면 백만 달러가 될텐데’라는 아쉬움으로 그 집 가격을 늘 ‘백만 달러를 주고 샀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책에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수십 차례 언급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투자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배울 수 있고, 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인들은 ‘존경받는 금융인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워런 버핏’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인터넷을 켜면 ‘워런 버핏’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과 그가 굴리는 스노볼의 크기를 지켜보고 싶어서다. 워런 버핏은 그가 죽은 후 30년이 지나도 ‘버크셔 해서웨이’가 굴러갈 수 있도록 대비를 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를 지켜봄은 독자로서, 개인투자자로서 큰 즐거움이 되었다. 스노볼은 지금 이시간도 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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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 버핏의 평전 스노볼 1,2 권 모두를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스노볼>을 읽기 전에 가졌던 그에 대한 정보와 생각들이 편향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에 대한 미디어의 기사들 역시 큰 물고기의 비늘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재라고 하기에는 어수룩하고,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비범하네요. 확실한 것은 그가 가진 재산보다 그가 가진 생각이 더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들면서 알고 싶은 의문이 여럿있습니다. 
 

버핏이 가진 부자마인드란 무엇일까?
버핏만의 투자방식은 무엇일까?
그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정말 체리코그와 햄버거 그리고 프렌치 프라이에 열광할까?
... 등등 

마지막으로 그가 가진 인생관은 무엇일까? 이었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책읽기가 한결 편해집니다. 그리고 소풍날, 지도를 가지고 보물을 찾는 아이들처럼 흥미가 생기죠. 이 책은 제가 가진 의문을 여럿 풀어주었습니다. 아니, 기대한 것보다 인생과 투자에 대해 그보다 더 많은 해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도 2,000여 페이지(보통 경제경영서 관련 도서는 페이지당 20-22 줄인데 반해 26줄을 지녔으니, 실제로는 일반 단행본 10 권 분량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를 읽은 보람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중에 얻은 소득은 세 페이지에 걸친 '한국관련 이야기'입니다. 워런 버핏은 이 부분에서 자신의 '주식투자 방식'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비록 2004년의 시기이지만 세계의 시장 가운데 한국의 주식시장이 내재가치가 충분한 시장인지를 직접 말합니다(버핏의 돈을 외국 투자자본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기뻐할 일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주식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게다가 워런 퍼핏이 생각하는 '북한과 대치중인 한국 주식시장'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세계제일의 부자이자 가치투자의 대가로 알려진 그가 70의 나이에 투자에 앞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경제용어들을 따로 배워가며 공부한 내용을 살펴보면 '호랑이는 토끼를 잡는 데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엄선한 25 개의 투자처 중에서도 선택을 한 종목은 우선 100 주를 매입하는 것으로 시장을 참여하더군요.  

  <스노볼>의 내용 중에서 워런 버핏의 '실전 주식투자'를 엿볼 수 있는 이 부분을 다소 길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많은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의 여가시간을 <스노볼>의 리뷰를 쓰는 시간으로 비워둘까 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조만간 리뷰를 통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책은 독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요지경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다른 의견과 생각 그리고 더 많은 배움을 얻으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투자'를 하는 독자분들이라면 꼬옥 읽어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004년 어느 날, 버핏은 자기 주식 중개인으로부터 두꺼운 책 한 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여러 권 포개서 묶어 놓은 것처럼 두꺼운 책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주식 목록도 들어 있었다. 버핏은 그동안 전 세계의 경제 단위들을 훑으면서 저평가된 국가, 저평가된 채로 남들이 간과한 시장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런 시장이 바로 한국에 있었다. 그는 이 책의 한 줄 한 줄을 꼼꼼하게 줄치며 연구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여러 수치와 전문 용어가 낯설기도 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상업 문화를 표기하는 새로운 기업 언어를 완전히 새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책 한 권을 따로 구해서 한국의 회계 방식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들을 모두 파악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식 회계 속에 숨어 있는 속임수에 넘어갈 확률을 줄였다. 

이렇게 한국 시장의 주식 종목들을 완전히 파악한 뒤 분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버핏은 그 옛날 그레이엄-뉴먼에서 글토록 원하던 회색 면 재킷을 입고서 일하던 때를 생각했다. 지금이 그때와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수치들로 가득 채워진 수백 쪽의 회계 자료들을 파면서 버핏은 어떤 주식이 중요하고 또 이 주식들이 어떤 양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파악했다. 처음에는 한국 주식 시장의 수천 개 목록을 가지고 작업했지만, 예전에 <무디스 매뉴얼>을 가지고 그랬던 것처럼 노트에 메모를 해가면서 버핏은 쓰레기더미 속에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 서서히 이 숫자를 줄여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목록의 숫자는 한층 단출해졌다. 

이제는 규격 용지 한 장에 다 들어갈 정도로 검토 대상 목록이 줄어들었다. 기껏해야 스물다섯 개도 되지않았다. 이 가운데는 세계적인 회사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큰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규모가 작았다. 이 목록을 버핏은 한 방문객에게 내 보였다.

  “이걸 보시오. 이것이 내가 하는 방식입니다. 원화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한국의 증권거래소를 가보면, 각각의 주식은 종목 기호 대신 숫자로 표시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우선주가 아니면 영[0]으로 끝납니다. 우선주일 경우에는 5번을 클릭합니다. 2차 우선주는 6번이 아니라 7번을 클릭합니다. 밤마다 특정 시간대에 인터넷에 접속해서 중요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날 5대 최대 매수 증권사 혹은 매수 증권사가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 있는 은행에 구좌를 개설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하면서 배우는 중입니다. 

  나에게 이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새로 한 명 찾아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들은 무척 우량 기업들입니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죠. 5년 전보다 더 싼데, 사실 l 회사들의 자산가치는 그때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이 회사들 가운데 절반은 이름이 마치 포르노 영화 제목처럼 들립니다. 철강이나 시멘트, 밀가루,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물품들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한국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도 상당히 높고, 이런 상황은 가까운 미레에는 바뀌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들 가운데 몇몇은 중국과 일본에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여태 투자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 제분회사를 보십시오. 이 회사가 확보하고 있는 현금은 시장 가치보다 더 많잖아요. 주가 수익률(주가를 1년 수익으로 나눈 비율)도 3밖에 되지 않습니다. 많이는 살 수 없습니다만, 꽤 샀습니다. 

  여기 또 다른 회사, 유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내 개인 포트폴리오에 한국의 주식들을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외국 통화에 관한 전문가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도 한국의 통화인 원화로 이들 주식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이 주식들이 안고 있는 주된 위험, 그리고 이 주식들이 싼 이유는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위협이 맞습니다. 만일 북한이 남침한다면 전 세계는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전체가 이 전쟁에 말려들 겁니다. 이렇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머지않아서 핵무기를 손에 넣을 겁니다. 나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북한이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상황이 전개되도록 절대로 가만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데 돈을 겁니다. 

  투자할 때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미래라는 건 언제나 불확실하니까요. 내 생각에 이 주식들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주식은 좋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괜찮습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이 주식들을 가지고 있을 참입니다."

  버핏은 새로운 게임 하나를 찾아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새로운 수수께끼였다. 버핏은 한국 주식들에 대해서 다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소년 시절에 아크바센 경마장에서 사람들이 모르고 잘못 버린 당첨된 마권을 찾던 그 열정으로 멋진 투자 기회를 포착하려고 눈을 반짝였다.      <스노볼2, 앨리스 슈뢰더> (랜덤하우스, 2009, 657-65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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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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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요리계 스타 쉐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본토 체험기!

 

  이딸리아 씨칠리아의 어느 시골식당에서 로베르또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청년이 콩 튀듯 팥 튀듯 이리저리 좁은 주방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지중해의 태양이 말 그대로 ‘내리꽂혀서’ 지열이 50도를 넘는 이곳에서 수백 번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불러대는 소리에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옷은 땀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해 서걱거리고,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와 신발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엎어진다. 귓가엔 여전히 이명이 들린다.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젠장, 로베르또!” 죽을 똥 싸는 오늘은 내일도 계속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요리사 박찬일이 이딸리아 삐에몬떼Piemonte의 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한 후 시칠리아의 레스또랑에서 1 년간 죽도록 일하면서 겪었던 고군분투기를 적은 것이다. 국내에 돌아와 청담동의 ‘뚜또베네’와 가로수길 ‘논나’를 거쳐 현재 논현동의 이딸리아 레스또랑 ‘누이누이’에서 셰프로 일하는 그는 원래 중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잡지기자를 하던 그가 요리에 흥미를 느껴 1999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3 년간 이딸리아로 인생의 2막을 위해 떠난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을 방불케하는 현지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잡지사 기자를 했던 문학도의 유려한 문체를 만났으니 글맛은 어림짐작해도 알만하다.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단순한 듯 복잡다난한 이딸리아 요리의 맛을 읽어서 느꼈다고 하면 부족한 설명일까? 더 이상의 표현은 불가하다.

 

  이 책은 특별한 요리 이야기다. 휘황찬란한 화보와 듣도 보도 못한 재료가 레시피가 더해진 요리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급호텔의 스타쉐프가 미사여구로 버무린 요리사의 자서전도 아니다. 유쾌하고 생생한 말잔치로 엉성하고 부족한 듯 풍미가 깊은 이딸리아 요리의 참맛을 전하는 소설처럼 읽히는 ‘이딸리안 아나토미Italian Anatomy'다.

그가 일한 시칠리아의 레스또랑 ’파또리아 델레 또리‘는 중소도시의 일등 맛집 정도 되고, 로베르또를 가르치고 함께 일한 주방장 쥬제뻬 바로네Giuseppe Barone는 평생을 시칠리아풍 이딸리아 요리를 해온 토박이 요리사다. 우리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주 한정식 집에 한식 요리사 자격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푸른 눈의 이딸리아인이 주방에 들어섰으니, 이들이 함께 일하는 자체가 시트콤인지도 모른다. 비좁고 무더운 주방 안에서의 로베르또의 좌충우돌 요리수련기에 책의 두세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미소가 번졌다.

 

 



 

 

  글을 읽으면 난 섹시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했던 영화<말레나>의 바다가 걸쳐진 해안가 마을이 보이고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낮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로베르또가 씨칠리아까지 찾아간 이유는 <지중해>, <씨네마 천국>, <일 포스티노>와 같은 영화의 고즈넉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로베르또가 입을 떼면 비릿하고 짭쪼름한 봉골레(바지락) 스파게티와 크림 향 가득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의 풍미가 읽히고, 후덥지근한 주방의 열기와 주방장 쥬제뻬의 욕섞인 고함과 제스쳐가 오감으로 느껴진다.

 

  로베르또를 통해 이딸리아 요리가 프랑스 요리와는 다르게 투박한지를 알 것 같았고, 유럽인 중에 이딸리아인이 한국인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세중世中의 말도 이해할 것 같았다. 프랑스 요리가 예술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생활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빌딩숲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원시림의 자연이었다. 이딸리아 요리가 세 계단 정도 내게 가까워진 느낌은 이 책을 읽은 큰 소득이었다. 아무런 격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로베르또의 글맛은 잘된 소설 못지 않게 뛰어나다. 그가 만들어낸 요리도 이런 맛일지 궁금해진다. 선선한 저녁 스파게티와 화이트와인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PS : 저자인 로베르또, 아니 박찬일이 직접 출연해서 10가지의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DVD가 초판에 한정되어 선물로 들어있다. 글처럼 맛깔나게 말하지도 않고, 올리버처럼 투박하고 거칠게 요리를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을 만큼 맛있어 보였다. 이딸리아 요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급 쉐프의 요리 솜씨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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