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블루>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크로아티아 블루 - 파란 세상의 나라를 구경하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가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한 말입니다. 생전 보지 못한 물건을 사고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멋진 여행의 묘미입니다. 또 자신의 분야와 목적에 어울리는 주제를 따라 ‘순례’를 하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알랭 드 보통은 ‘생각을 만드는 여행’을 권하는군요. 생각을 만드는 여행이라...그러면 이렇게 하면 좋겠네요. 혼자서 되도록 멀리가는 겁니다. 내 집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립’이라는 단어는 뚜렸해집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아침을 맞고 밤을 보내면서 낳은 생각들은 온전히 ‘나 만의 생각’이 되겠네요. 여기에 더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네요(하지만 저 같은 겁쟁이는 죽을 때까지 시도하지 못할 방법이라죠). 

  여기 한 사내가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낯선 땅 ‘크로아티아’로 떠납니다. 저~엉말 낯선 곳이네요. 내 생에 이 단어를 몇 번을 들어봤을까 싶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월드컵 축구를 통해 들어본 것 같네요. 아, 얼마 전 본 영화 <하이레인High Lane>의 촬영장소가 그곳이라 했던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에 걸린 ‘죽음의 다리’를 넘어서면서 끔찍깜찍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세트아냐? 저런 곳이 있단 말이야?’ 생각했던 곳입니다. 아무튼 크로아티아는 제게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가 힘든 나라입니다. 아니 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같은 나라입니다. 이 책을 펼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게 우주같은 곳을 배낭 하나 덜렁 매고 다녀온 사내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거죠. 소개합니다. <크로아티아 블루>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여섯 국가중 하나로 유럽사람들에게도 ‘유럽 속의 아주 특별한 유럽’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슬라브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곳은 이탈리아보다 잘 보존된 고대 로마의 유적이 가득한 곳이라고 하네요. 저자인 김랑은 ‘랩소디 인 블루‘라는 글로 책을, 크로아티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이 나라를 잘 표현하기도 하는 글이네요.

랩소디 인 블루

‘푸름’에는 그 색깔만큼이나 셀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다.  

풋풋한 사랑이 있고,  

햇살 같은 웃음과 위안이 있고,

바다 같은 그리움이 있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아픔이 있으며,

짜디짠 슬픔도 있다.

아드리아가 품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푸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이름조차 파래서 건드리면 생각만 해도 금세 ‘푸름’이 번지는 곳.

나의 감정을 홀로 만나고,

구겨진 기억을 다려 펴고,

사람의 기억을 매만지는 게 여행이라면,

크로아티아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세상의 모든 푸름이 다 모여 있는 곳, 크로아티아. 김랑은 크로아티아가 가진 도시들, 이스트라, 자그레브, 디나라 알프스, 달마티아를 돌면서 푸름을 이야기하고, 푸름 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림에서나 볼 것 같은 낯선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네요. 특별한 색의 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 위엔 늘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디나라 알프스에서 이 사내는 한 일본 여행객을 만납니다. 물론 혼자죠. 영화 비포 선 라이즈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네요. 홀로 떠나는 모든 여행객의 로망이 아닐까요?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사막은 너무 아플 것 같았어요. 난 겁이 많은데. 그래서 여기였어요. 사무실 책상 맞은편에 늘 이곳 사진이 붙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여행사에서 일한 그녀가 이곳을 온 이유는 7년 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회사를 관두고 이곳으로 온 것이 ‘여행의 이유’였습니다. “난 태어날 때부터 반쪽짜리였어요. 그 반쪽을 메워줬던 사람이 떠나고 나니까, 나는 다시 반쪽이 돼버렸어요. 이곳에 오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반쪽일 뿐이에요.” 싸구려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이들은 돌아서 다시 혼자가 됩니다. 새벽녘에 부는 바람은 그녀의 한숨 같았다고 하네요. 그녀에게는 ‘채움’보다는 ‘비움’이 필요한 여행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디서 먹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또 그런 종류의 사진들이었다면 이 책을 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가 생각한 내용들에도 별로 관심은 없었죠. 난 그를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가 담은 사진들은 내 눈을 사로잡습니다.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사진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크.로.아.티.아. 낱말 하나 하나가 맞춰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생각합니다. 난 파랑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인디고 블루를 좋아하죠. 가슴에 ‘콕’ 심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색입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참 가보고 싶어지는 나라더군요. 그의 사진이 절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뽀샵처리를 해도 이렇게 나올까요? 알 수 없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한 보름 정도만 있다가 오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까무러치게 파란 하늘과 터키옥 같은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파랗게 물들여오면 좋겠습니다. 

  흑백의 바다를 바탕으로 그가 쓴 글이 마음에 듭니다.  

  “모든 게 정리됐다고 해도 떠나고 보면

아무것도 정리된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도 분명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내일도 어제와 똑같은 기억을 안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구를 몇 바퀴쯤 돌아온 이곳에서,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카메라 없이 떠나볼까 합니다. 눈과 마음에 담아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채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녀가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기억을 오래 담지 못하는 편이라 결국 아무 말도 못할 거라 흉볼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입으로 말하는 여행담은 거의가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있죠. 기억하지 못하면 꾸며서라도 해야죠. 여행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아무리 사실대로 설명한다 해도 듣는 사람은 또 다시 상상으로 들을테니까요. 결국 떠나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경험‘. 그게 여행이 아닐까요? 잠시 크로아티아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있는 천고마비의 하늘보다 조금 더 파란 하늘을 구경했습니다. 즐거운 상상은 덤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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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져요
모 로지에 지음, 박소진 옮김 / 펼침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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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구에게 위안을 주고 싶을 때 어울리는 책!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물구나무 선 것처럼 머리가 빙빙 돌때…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고,


삶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갖고,


또한 엄마가 껴안아줄 때, 눈을 감고 그 따스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찬바람이 나의 볼을 따갑게 스쳐갈 때 그것을 그대로 느끼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껴요.


그러고 나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가져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괴로움에 빠져 있는 친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뭐라고 말을 건네기가 참 어렵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좀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지켜보기는 안쓰러울 때...그 때 이런 책을 선물하면 좋겠네요. 책 앞 장에 몇 자 적어서 건네준다면 참 좋겠다...싶습니다. 그림이 들어간 동화책 같은 작은 에세이 집입니다.

 

  공간이 넉넉해서 끄적거리기에도 좋겠고, 그냥 두면 넉넉한 공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네요.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것 만큼 좋은 위안은 없습니다. 따뜻한 손길도 좋고, 살짝 안아서 등을 톡톡 두드려 줘도 좋겠죠. 그런 작은 위안같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없으면 더욱 좋겠죠.

 

 



 

 

  남자들에게는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가까운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쐬주 한 병 시켜서 잔을 나누고 그냥 조용히 있는게 더 좋은 방법일 것 같네요. 같이 마시고, 뭐라도 먹이면 그게 장땡인 게 단순한 남자에겐 제격인 위로가 아닐까요? 유독 없던 생각도 생기는 계절, 가을입니다. 주위에 시름에 잠긴 지인이 있다면 이 책 한 번 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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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누구나 바꿀 수 있다! - 아나운서와 함께 하는 하루 10분 목소리 트레이닝 목소리
우지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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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들어 스타일이 좀 더 각론적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외형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자기만의 개성에 치중할 때 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개성을 나타내는 것은 목소리가 아닐까요? 이 책은 목소리 트레이닝에 관한 책입니다. 전 아나운서 출신의 보이스 트레이닝 강사인 우지은 씨가 쓴 <목소리, 누구나 바꿀 수 있다>를 소개합니다.
 

2년 전 쯤인가 보컬 파워라는 책이 있었습니다만, 이 책은 더 실용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목소리의 대가들인 아나운서 출신이 저자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직장인들에게 많이 어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사실 전달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목소리는 상대에게 잘 전달되어야 하고 듣기 좋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뭐라고?"라고 자주 묻나요? 그런 분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대중들에게 목소리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업무를 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두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읽기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연습하고 따라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행동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제사한 그림과 설명을 넣어 가독성이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특히 부록으로 CD가 제작되어 따라하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보다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발성에 관한 내용도 실렸지만, 저는 발음교정에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발음교정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방송국 아카데미에서나 배울 수 있는 내용이 함께 포함되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좀 더 정확한 발음을 필요로 하는 건 요즘 더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라 유익했습니다. 이 책이 주는 최대의 장점은 프로페셔널한 저자가 쓴 책이라서 신뢰도가 높다는 점, 그리고 발음교정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목소리 트레이닝을 위한 책, <목소리, 누구나 바꿀 수 있다>로 전달력이 강한 목소리를 갖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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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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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쳐야 미친다>가 과거라면, <한국의 책쟁이들>은 현재의 독서광들이다!

  무슨 책의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움켜쥐었나보다. 책갈피로 머리카락 하나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손으로 치우려고 하다가 ‘아서라, 그냥 둬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 그냥 두었다. 나중에 온통 백발(외가 식구들이 모두 백발인데, 난 외탁이란다. 서른이 막 넘어서자 귀 옆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이 되어 다시 볼까 싶다만 이 책을 다시 본다면 젊은 시절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만나면 새롭겠다 싶었다. 알 수 없다. 있지도 않은 자식이 발견한다면 ‘뉘 머리카락’일지 궁금해 할 것도 같았다. 

  흔적. 내가 읽은 책에는 흔적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집어들었다 끼적거리고, 다 읽고 나면 언제 읽었노라 표시를 한다. 완完 자도 넣고, 주제넘게 서명도 한다. 어떤 책은 이러기를 네 다섯 번을 하고, 어느 책은 시작만 하고 아직 맺음을 못한 책도 있다. 온라인에 책읽은 소감을 적은 리뷰를 하기 전에는 색지가 들어간 앞장에 독후감을 적었더랬다. 어린 동생들이 봐도 좋고, 훗날 생길지도 모를 자식이 읽어봐도 좋겠다 싶었다. 책에서 건진 생각들, 느낌들을 적었다. 그 날의 日記도 조금 넣었다. 흔적. 눈으로 쫓아 표식이 나질 않아 굳이 읽었노라 표시했다. 접고, 줄을 치고, 괄호를 넣고, 행간에 비평 아닌 비평도 함께. 모두 읽고 나면 무게는 그대로일진대 두께는 늘었다. 읽었구나 싶어 흐믓해진다. 세상을 헤엄치는 나라는 물고기의 비늘이 한 개 더 생겨난 것처럼. 책에 흔적을 남기고 나면 내가 책이 되고, 책이 내가 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해 생기는 흔적도 적지 않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는 눈물 흔적이 그득하다. 고등학생 시절 할머니의 장례를 보러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읽은 최인호의 <천국의 계단>보다 눈물 흔적이 더 많은 것 같다. 재채기를 할 때는 내 침이 뭍었을테고, 마른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길 때도 침이 묻었을테다. 라면 국물이 튄 적도 있을테고, 한 여름엔 과일즙도 떨어졌을 게다. 커피가 엎어져 테두리가 염색된 책들도 꽤 많다. 모든 흔적에는 시간이 뭍었고, 사연이 뭍었다. 그리고 그 속에 나도 함께 뭍혀 있다.

  그래서 방안에 그득히 있는 책 중에 흔적이 있는 책은 내 책이요, 아직 흔적이 없는 책은 내 책이 아니다. 잃어버려도 모르고, 누구에게 준다 해도 딱히 상관이 없다. 새 책은 아직 값을 치루지 않은 서점의 쌓인 그것들과 다름 아니다. 책을 펴보지 않아서 그 책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아직 내 비늘도 아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꽂힌 책장을 살피기는 그래서 괴롭다. 이 책을 들자니 저 책이 울 것 같고, 저 책을 뽑으려 하니 바로 옆 책이 함께 달려 나온다. 더 괴로운 것은 모두 읽어내지 못하면서도 계속 해서 새 책을 들인다는 것이다.

 책장에 무사히 분양이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세로로 꼽히지 못한 채 가로 누워 제 배 위에 동지를 맞아들이는 책들이 백 수십 권이 넘는 형편이니 또 괴롭다. 이것이 병病일까, 벽癖일까 고민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읽고 고민하기를 관두기로 했다. 광狂이라 표현해도 부족할 사람들이 그득했기 때문이다. 책고수라 불려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사람들이 책 한 권에 모였다. 임종업의 <한국의 책쟁이들>이다.



 

    책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책을 모으는 재미다. 휑하던 방 한켠에 커다란 책장을 들여놓고 ‘이 너른 곳에 언제 책을 모두 채울꼬’ 걱정을 한다만 세월이 세월을 먹을 무렵이 되면 또 책장 걱정을 해야 한다. 이를 몇 번 하다 보면 책장 값이 책 백여 권은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만나게 된다. 한 권 한 권이 모여 한 칸을 채우는 재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실제로 머리로 가슴으로 그만큼을 소화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그랬기를 바라지만) 흔적이 뭍은 책들이 그득함은 절로 뿌듯해진다. 정도가 심해지면 독서를 위한 책을 넘어 책을 위한 책으로 번지게 된다. 어떤 책이든 초판 1쇄 권을 손에 넣고 싶고, 추앙하는 작가가 생긴다면 그의 모든 책을 손에 넣고 싶어진다. 신간을 파는 서점을 넘어서면 헌책방을 찾게 된다. 값이 헐어서 좋고,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어 귀해져서 좋다. 혹여 저자의 서명이 있다면 더 좋을테고, 항상 생각에 있던 책을 만난다면 산삼을 캔 심마니의 기분이 든다. 이 정도 되고 나면 ‘독서인’이 아닌 수집가, ‘책사냥꾼’이 된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책사냥꾼들의 이야기다. 그것도 한 분야에 대해 궤를 뚫어볼 만큼 탁월한 지식과 독서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가 헌책방을 순례하면서 이들을 발굴하고, 인터뷰를 했으니 르뽀요 다큐멘터리다. 좀처럼 보기 드문 작업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책에 담긴 스물 여덟의 책사냥꾼들은 실로 대단하다. 이들을 논하기는 입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북카페를 차리기 위해 이십수 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 둔 사장도 있고, 결혼도 하지 않고 노년을 책과 함께 보내는 전직 비즈니스맨도 있다. 책을 사느라 재산을 탕진한 사람은 손으로 꼽기도 어렵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장르도 다양하다. 책장이 있는 서재 대신 온라인에 서가를 꾸민 이가 있는가 하면, 낮엔 북카페였다가 밤엔 개인 서재로 바뀌는 전천후 서재도 만나게 된다. 



 

   이 즈음에서 책 수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이 뭔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 과시하기 위한다기 보다는 스스로가 만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편 심리학적으로는 ‘손실 기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그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처참함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손실 기피loss aversion이다. 예를 들어 딱히 필요 없던 물건을 손에 넣는다면 ‘무엇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면 내가 필요가 없음에도 주기는 영 마득찮다. 이렇듯 사람들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대, 동일한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두 배로 큰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기피는 타성, 즉 현재 갖고 있는 것을 고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만약 10년 동안 애용하던 만년필을 경매에 내놓는다면 나는 소비자가보다 더 높은 값에 내놓을 것이다. 소비자가 이상의 가치는 내가 그 만년필과 함께한 세월의 가치가 뭍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그들이 소장한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헌책방을 뒤져 찾아낸 보물을 어떻게 남에게 넘길 수 있을까? 소중한 책을 찾아낸 기쁨은 계속 추구하고 그것들을 잃어버릴 슬픔을 마다하니 책이 모일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도 책은 자신이라는 물고기의 비늘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미쳐야 미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전문가 뺨치는 식견으로 무장하 이들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 인간의 열정’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1800년대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바로 애서광증(愛書狂症)에 일찌감치 푹 젖어버린 분'이라며 젠틀 매드니스Geltle Madness라 표현했다. 책에 빠져버린 점잖은 미치광이, 책에 빠진 점잖은 사람들이 이들이 아닐까. 무엇인가 미치도록 좋아하고 싶거든 이들처럼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미쳐 있기에 행복한 사람들이다. 책을 덮고 난 소감은 그저 미칠 것을 찾지 못해 아쉽고, 혹은 아직 덜 미쳐서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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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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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후회되는 한 가지가 뭔 줄 아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 전해주지 못한 거라네!" 

  봄이 채움이라면 가을은 덜어냄이다. 비우고 또 비워 더 이상 비울 것이 없게 되는 날, 소리 없이 첫눈이 내린다. 마음이 비워지니 추워지는 것 같다. 비워지는 마음만큼 겉옷의 두께가 두꺼워진다. 겨울은 죽음이다. 모든 것이 생장을 멈추고 마지막을 고한다. 혹은 죽은 듯 웅크리고 이듬해를 기약한다. 그래서 눈 내린 신새벽처럼 고요하다. 죽음의 겨울보다 가을이 더 추운 것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덜고, 비우고, 시들어감을 체감하며 목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낮길이가 짧아지는 만큼 추위를 체감한다. 다가올 시듦과 죽음을 예감한다. 가을이 우울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지난 밤 내리는 빗소리를 듣다가 뜬금없이 책장으로 섰다. 몇 해 전 읽은 책 한 권이 ‘잘 있는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유가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 내게 수작을 건 탓 일게다. 반갑게도 아래쪽 한 켠에 잘 있었다. ‘있구나’ 안심하며 책을 꺼냈다. 이 책을 읽던 몇 해 전 가을 꽤 많은 눈물을 훔치던 기억, 눈물을 닦으며 흣하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책을 읽던 그 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엔 없다. 괴로움인지,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 알 수 없지만 드넓은 광야에 혼자 있던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아마도 그 해 가을도 올 가을 처럼 비움을 체감했던가 보다. 알 수 없지만, 내가 비움의 덧없음을 탄식하던 그 때, 이 책은 ‘그 비움은 버림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책장을 펼쳤다. 제목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 with Morrie>이다. 가을 빗소리가 책장 넘기는 소리에 젖어들었다. 



 

    꽤 유명한 스포츠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던 사내 미치 앨봄은 어느 날 한 TV 프로그램에서 낯익은 모습의 노인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코치(그는 교수를 그렇게 불렀다)인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s 였다. 모리 코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 루게릭병으로 잘 알려진 병에 걸려있었다. TV를 통해 본 코치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본 지 16년 만이었다. 대학시절 많은 남다른 가르침과 사랑을 전해줬던 코치와 16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것이다. 미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리 교수님, 저 미치 앨봄입니다. 1970년대에 선생님 제자였습니다. 아마 기억 못하시겠지만요...”

그런데 대뜸 하시는 말씀이,“왜 코치라고 부르지 않아, 인석아?” 

  한 통의  전화로 미치Mitch Albom교수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후 매 주 화요일마다 투병중인 모리교수를 찾게 되었다. 모두 열네 번에 걸친 ‘화요일의 만남’은 모리 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교수는 화요일마다 늙은 제자에게 사랑, 일, 공동체사회, 가족이 나이든다는 것, 용서나 후회의 감정, 결혼과 같은 인생에 대한 사려 깊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한편 미치는 녹음기에 그의 강의를 담으며 모리교수의 괴로운 투병을 함께 했다. 

 난 세 걸음쯤 물러나 그들이 함께한 이야기를 지켜봤다. 스산한 가을비 창가에 혼자 앉아 있었지만 이 책을 펴면서 세 명이 되었다. 세 명의 온기는 따뜻했다. 잦은 기침과 불편한 듯 답답한 목소리을 듣는 대목에 절로 내가 헛기침을 하는 것을 빼고는 평온한 순간이었다.

  루게릭 병이란게 참으로 고약한 병이다. 아래에서 위로 차츰 굳어져서 석화石化가 되는 병이다. 얄궃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신체임에도 고통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그 고통을 잠시 생각해 본다. 채무를 갚지 않는다고 신체를 묶은 채로 드럼통에 넣어 잘 개어진 콘크리트를 붇는 어느 깡패영화처럼 온 몸이 돌덩이가 되어간다면, 게다가 덜어낼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된다면 어떨까. 어느 날 하반신이 마비되어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고, 점차 위로 올라와 손가락까지 움직이지 못하더니 목도 움직이지 못한다면...턱을 움직이지 못해 저작詛嚼을 못하고, 혀도 움직일 수 없다고 그랬던가. 마지막엔 눈과 머리만 깨어난 산송장이 된다고 했던가. 얼마 전 본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젊은 배우의 연기를 생각하니 나이 76세의 모리 교수의 병상은 차마 상상하기 힘들다.

  온 몸이 돌덩이가 될 것을 알고, 결국 죽을 것을 아는 그가 제자 미치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사람다운 인생의 의미’이다. 대공황기에 잠깐 경험한 공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으로 가르침의 길을 택한 그이기도 하지만, “땅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걸로 끝이야.”라는 그의 말처럼 아무것도 가져갈 것도 없는 죽음 앞에서 무슨 사념邪念이 있겠는가. 경청해야 할 이유는 곧 흙으로 되돌아갈 가장 순수한 순간의 인간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리 코치는 우리 인생의 덧없는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다구.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77 쪽

또한 사람이라면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봄직 하지만 그렇지 못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미치, 우리의 문화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놔두지 않네.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휩싸여 살고 있어. 경력이라든가 가족, 주택 융자금을 넣을 돈은 충분한다, 새 차를 살 수 있는가, 고장난 난방 장치를 수리할 돈은 있는가 등등.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뭔가 빠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누군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네. 혼자선 그런 생각을 하며 살기는 힘든 법이거든.” 103 쪽

  바로 우리 모두 평생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마치 곧 이 세상에 없을 그가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다 앞선 삶을 산 이들의 도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노인老人. 그들은 우리 생의 스승이요, ‘살아있는 도서관’인 셈이다. 그는 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죽음을 확인하면서도 자신이 당장 죽을 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모두 잠든 채 걸어다니는 것처럼 살기 때문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고 살다는 것은 반쯤 졸면서 사는 것이다. 모리 코치는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운다고 했다. 자기가 언제쯤인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인다면서.

 그에게 가족관은 곧 ‘사랑’이다. 병들어 죽음을 체험하는 그에겐 그 무엇보다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한 어떤 주제보다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가족이 없다면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 안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과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겠지.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중략)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누군가 ‘애인은 내가 보낸 하루를 증언해주는 사람을 갖는 것이고, 배우자는 내가 마지막 죽는 순간의 증인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나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본다 함은 따뜻함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음이다. 가족은 배우자가 목격하지 못한 그 전 시간까지도 증인이 되어주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리고 내가 없고 난 다음에도 그 시간을 증언해 줄 사람인 것이다. 그들이 날 부르면 난 살아나는 셈이고, 그들이 있는 한 난 죽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자식을 갖는 것 역시 ’다음 생에서도 갖고 싶은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나이 먹는 것’, 즉 늙어감에 대한 생각 또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그는 ‘젊음은 차라리 싫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젊음을 강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들어보게. 젊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 난 잘 알아. 그러니 젊다는 게 대단히 멋지다고는 말하지 말게. 젊은이들은 갈등과 고민과 부족한 느낌에 늘 시달리고, 인생이 비참하다며 나를 찾아오곤 한다네. 너무 괴로워서 자살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런 비참함을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둔하기까지 하지. 인생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데 누가 매일 살아가고 싶겠나? 이 향수를 사면 아름다워진다거나 이 청바지를 사면 섹시해진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조작해대는데 바보같이 그걸 믿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어디 있어.”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미치, 난 나이 드는 것을 껴안는다네.” (중략)

“선생님이 어떻게 더 젊고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요.”

그는 눈을 감았다.

  “아니, 부러워한다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헬스클럽에 가거나 수영을 하러 갈 수 있는 게 부럽지. 혹은 춤을 추러 가거나 하는 것이. 그래, 춤추러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부러워. 하지만 부러운 마음이 솟아오르면, 난 그것을 그대로 느낀 다음 놔버린다네. 내가 벗어나기에 대해 말했던 걸 기억하지? 놔버리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그건 부러운 마음이야. 이젠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런 다음 거기서 걸어 나오는 거지.”

(중략)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 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왔으니까. 그때가 어떤지 알지. 어린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 게 즐거워. 또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네. 어떤 나이든 될 수 잇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이해가 되나? 이런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내가 다 거쳐온 시절인데?” 166-171 쪽 요약

  그렇다. 젊은이를 부러워함은 부질없다. 젊은 시절을 거쳐온 지금이 있기 때문이다. 초로의 중년이 탱탱하고 싱그러운 외모를 쫓는다면 세월을 잊고 싶은 것일 뿐, 추할 뿐이다. 부러워해야 할 건 내가 헛되이 보낸 젊은 시절의 시간이다. 하지만 모리 코치의 말대로 그 젊음은 내가 다 거쳐온 시절이 아니던가. 후회가 되거든 지금 하면 되는 일이다. 젊은 시절 공부를 못해 그들이 부럽다면 이제라도 공부를 하면 될 것이다. 여행이 꿈이었다면 그 시절의 마음으로 지금 여행을 떠나고, 뜨거운 사랑이 부럽다면 지금의 동반자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 된다. 심지어 나이트클럽을 이제 한 번 가본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의 이런 변화를 두고 주위가 추하다 말하면 그들이 아직 모른 것이고, 젊은이들이 추태라 흉보면 ‘너희들이 아직 나이듦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보낸 시절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이야 말로 추한 것이고 추태가 아닐까. 사그러짐을 체감하는 이 가을을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이 아포리즘은 간디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하루’에 대해서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모리 교수와 함께 하면서 이 말을 하루를 ‘삶과 죽음의 가까운 거리’로 생각하고 싶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마음껏 사랑하는 법, 그리고 용서하는 법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감수하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기꺼이 나누는 모리를 보면서 인간에게 사람으로 사는 가장 숭고한 마음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랑은 다름 아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해 췌장암에 걸린 중년의 교수가 가족과 학생들을 앉혀두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감동적인 책 <마지막 강의>를 생각나게 한다. ‘다가오는 매일의 ’오늘‘을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시들어가는 모리 코치의 목소리와 오버랩되었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던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이라는 화두는 이것이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이유없는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가을에 모리 코치는 큰 위안이 되었고, 가르침이 되었다. 내년 가을에도 그런 기분이 든다면 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펼 것이다. 이 책은 내게 있어 ‘가을에 만나야 할 스승의 강연집’이다. 내가 느끼는 가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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