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CEO - 상추로 매출 100억을 일군 유기농 업계의 신화 장안농장 이야기 CEO 농부 시리즈
류근모 지음 / 지식공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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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낙후산업이 아니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블루오션이다!  

  농업. 이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잠깐이지만 항상 스쳐가는 기억이 있다. 대학 복학 후 대동제를 앞두고 너덧 명이 미팅을 했더랬다.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나름대로의 성장盛裝으로 미팅장소에 들어설 때 새내기시절부터 ‘농민의 자식’으로 자신을 부르던 동기 녀석도 끼어 있었다. 장학금을 타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때마다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한다던 녀석은 학문보다는 ‘학습’에 더 열성적이었고, 강의에 참여한 날 보다 전국에서 진행되던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날이 더 많았던 ‘상비군’급 운동권이었다. 미팅을 유치한 ‘아이들 소꿉놀이’ 쯤으로 여기고 비웃던 녀석이 그곳을 참여한 건 생리학적으로 엄연한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녀석의 파트너가 된 여학생이 ‘농업관련업을 하는 집안의 딸’로 소개하면서부터 였다.

  그녀는 얼핏 봐도 고가를 짐작케 하는 옷차림에 악세서리들, 그리고 행동과 말본새는 그 당시 강남의 멋진 젊은이들을 일컫는 ‘오렌지족’과 많이 닮았다(실제로 그녀는 강남에 거주한다고 했다). “아버님이 농업 쪽에서 어떤 일에 종사하시죠?” 농민의 자식이 던진 질문은 우리도 묻고 싶었던 당연한 의문이었다. “네에, 밭떼기 장사해요.” 

  밭떼기란 쉽게 말해 밭에서 나는 작물을 수확 전 밭에 나 있는 채로 농민에게 돈을 주고 몽땅사는 방식을 말한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아직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를 미리 돈을 받고 파는 것과 동일하다. 이 매매방식은 날씨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농업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농민 쪽에서는 당장 급전이 필요하거나, 풍수해의 자연재해와 풍작으로 가격하락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피해 미리 적절한(과연 해피한 가격일까는 알 수 없지만)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잇점이 있지만, 수확의 결과물을 중간상인 밭떼기 장사꾼의 몫으로 돌아가 ‘영세성’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농민의 자식과 밭떼기 장사꾼의 자식의 미팅이 잘 될 법이 있겠나? 미팅은 고사하고 녀석의 한숨과 푸념을 들으며 밤을 새워야 했다. 

  친구가 밤을 새워 푸념했던 말들의 핵심은 농사를 지어 봤자 이익은 모두 중간상들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품종을 개량하고 수확을 몇 배 수 늘려봤자 직거래를 할 수 있는 판로가 없어 중간상들이 알아서 매기는 가격에 수확물을 넘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높은 값을 쳐달라고 요구하면 ‘다른 곳에서 사겠다’고 발길을 돌리니 시간이 지나면 상해버리는 식물이니 눈물을 머금고 팔 수 밖에 없는 것이 농민의 현실이었다. 친구는 ‘유통구조의 개혁’만이 살 길이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했다. 아무리 차별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봤자 그 판단의 유무를 소비자가 아닌 중간상이 내린다면, 그리고 그 이익을 모두 그들이 취한다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친구의 판단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는 지 벌써 십 수 년이 지난 후 농업 유통의 후진성은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일년 간 땀흘려 일한 농민들의 수고가 소비자를 통해 고스란히 소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을 책 <상추 CEO>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 http://www.ssamnhub.com



 

   이 책은 1997년에 귀농해 유기농 상추 재배로 13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의 유기농 기업으로 성장시킨 류근모 씨가 쓴 것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농업인의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는 류씨가 조경사업으로 실패 한 후 융자금 300만 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장안농장’을 이룩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아울러 농업인과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장안농장을 어떻게 일구었을까. 지난 13년을 돌이켜 봅니다. 어려웠던 많은 순간이 눈앞을 스치지만 무엇보다 다음의 말이 제가 드리 수 있는 성공 비결입니다. ‘편견과의 싸움’

농업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기에, 숱한 밤을 지새우며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어 실행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상추를 소포로 팔겠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혁신인증을 받아서 뭐합니까?”

“브로콜리를 왜 잘라서 팝니까? 품이 많이 들고 남은 것도 없잖아요?”

농사꾼이 무슨 마케팅을 하느냐, 농사꾼이 왜 빵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 농사꾼이 서비스는 잘해서 무엇 하느냐, 농사에 무슨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하느냐, 남들도 안 하는데 왜 굳이 우리가 하느냐...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중략)

한 물 간 사업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양사업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농사에 뛰어든 이후로 농업이 호황을 구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IMF의 위기 앞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살아남는 단 한 명은 존재합니다. 살아남은 그 사람이 희망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한 명이 되면 됩니다. 미리 한계를 긋지 마십시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살아날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본문 5~6쪽

  장안농원의 유기농 채소들은 마트에 가면 유기농 코너에서 볼 수 있는 채소들이다. 류씨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트렌드를 읽고 유기농 채소를 키우는 농업으로 뛰어들었고, 모두가 괜한 짓이라고 무시하거나 불가능할거라 여기는 일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그가 이 일에서 최고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농사의 달인들에게서 반면선생反面先生으로 얻은 교훈은 세 가지였다. 

 첫째,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연연해서는 발전이 없다.

 둘째,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이 지은 농산물이 어디로 어떤 가격에 팔리는지 몰라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요약해 보면 농사꾼 역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를 CEO가 경영하듯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농사일지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내야 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전자제품을 팔 듯 탁월한 마케팅을 찾아내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류씨는 생각했다. 그는 ‘농사꾼이자 장사꾼이 되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추진했던 사업방식의 대부분은 이전에는 없었던 ‘최초’로 시도하는 방법들이다. 우체국 소포를 이용한 물류 배달로 그렇고, 땅심(힘)을 높이기 위해 지하 암반수에 옥돌과 맥반석 가루를 섞어 물을 준 것 역시 처음이다. 그가 보는 농업은 낙후산업이 아니라 미개척지 즉,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블루오션이었다.   

  “농업이 미개척지라는 사실은, 재배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유통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개척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의 장안농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나는 이 일에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며 살았을까? 번번이 새로운 것을 개척할 때마다 왜 농사에는 이렇게 안 된다는 게 많은 것인지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어쩌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나 싶다.” 본문 101-102 쪽

  그의 농업 경영에 있어 주요 정보 습득처는 바로 책이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유통혁명이 있을 것을 발견하고 인터넷을 통해 대형 쇼핑몰을 공부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장안농장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김영세의 <이노베이터>, 공병호의 <10년 법칙>, 김영모의 <빵굽는 CEO>,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 등 그가 경영을 위해 펼쳤던 수십 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과연 이것이 농사꾼이 읽은 책이란 말인가 놀라울 정도였다. 또한 류씨는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는 것을 이미 감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장안농장을 통해 펼치는 마케팅의 핵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상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기억한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실패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좌절해 있을 때, 그때 누군가 권하는 밥 한 술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어서 평생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만으로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농촌의 향수와 정을 팔아야 한다. (중략)

  ‘마케팅’하고 질문을 꺼낼 때는 도깨비 방망이 따위를 기대하는 것이겠지만 세상에 그런 마케팅은 없다. 별다른 노력 없이 단박에 수익을 거두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머리 좋아서, 잔꾀를 부려서 돈을 벌 방법은 없다. 머리 좋기로 따지면 요즘 소비자를 누가 따라갈 것인가? 잔머리로 돈을 벌려고 하면 그 머리 때문에 망하는 게 요즘 시대이다. 싸게 판다고, 품질만 좋다고 고소득을 올리는 시절은 지났다. (중략)

  ‘좋은 상품을 만들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상품이 넘쳐난다. 제품 만드는 기술은 금세 공유되므로 따라잡기는 시간문제이다. 좋은 상품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좋은 상품을 넘어 감동을 주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마케팅 방법이다.“ 본문 144-145 쪽

  이 책은 성공한 인물의 한 맺힌 사연을 주저리 밝힌 고백서도 아니고, 자화자찬과 허장성세가 그득한 성공스토리도 아니다. 농사꾼에게는 이룩한 자가 말하는 농업 발전을 위한 계몽서이고, 귀농하여 부농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헛꿈’ 꾸는 것을 경계하는 경험담이다. 류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앤드 그로브의 말과 공병호가 말하던 10년 법칙의 전형적인 사례가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됐다. 1차 산업의 성공사례를 책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저자는 물론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인물을 잘 찾아내고 책을 편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과 더불어 두부를 팔아 주식상장을 이룬 일본의 다루미 시게루의 <두부 한 모 경영>(전나무숲)과 일본의 10년 장기불황기에 100엔 짜리 우동을 만들어 급성장한 '(주)하나마루' 우동 프렌차이즈의 성공기를 다룬 <하나마루 우동집 성공기>(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장사를 하던지, 시골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주변에 다. 그런 친구들이 농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성공은 절대하지 못한다. 내게 이들의 성공여부에 돈을 걸라면 난 차라리 개가 껌을 씹어 풍선을 불고, 풀을 뜯어먹고 되새김질하기에 돈을 걸겠다. 숨막히는 도시를 떠나 귀농歸農하여 넉넉한 여생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한낱 푸성귀 밖에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추일망정 이것으로 밥을 바꿔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감생심 농사를 지어 부농富農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서 너 번은 더 읽어야 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성공의 비밀들이 무수히 숨어있기 때문이다(책의 말미에 따로 적어둔 류근모의 ‘귀농십계명’은 필독해야 한다). ‘죽을 작정’으로 실행하는 용기는 그 다음에 가져야 할 각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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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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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을 인식하면서 노인의 말에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입장과 처지야 다를 테지만 앞서 살아온 시간 만큼의 연륜을 훔치고 싶어서다. 젊을 때는 꿈으로 가득하고, 늙어서는 후회로 가득한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노인의 후회는 내가 살아갈 미래에 적잖이 방향타 노릇을 할 거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말에 경청하는 경향은 책에도 적용되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글들에서 ‘컨템퍼러리 의식’에 동요되어 ‘나도 그들처럼...’을 외치기보다는 앞선 이들의 가르침이 뭍어 있는 책들을 읽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푸른숲)도 그런 이유에서 펼친 책이다.

 

  이 책을 펼친 데 한 몫을 한 것은 제목이었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노인이 되고 싶었다’는 제법 긴 문장의 제목은 여러 ‘뉘앙스’를 던져 주었다. 노인이 된 저자가 시간이 적어졌다는 푸념인지, 만약 시간이 아주 많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원제목은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 원제목대로 였다면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스위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저자의 소개 역시 이 책에 ‘회가 동하게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갖은 기대에는 훨씬 못미쳤다. 아예 내가 작가를 잘 모르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대를 가졌던 셈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에서 노인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던 내 생각은 처음부터 많이 어긋났다. 저자 페터 빅셀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홀로된 남자에게 보이는 주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생각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본 일상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깊이 관찰하는 듯 했다. 그의 관찰은 생각과 더해져 작은 주제가 되어 한 꼭지의 작은 글을 이루었다. 제법 재미있을 법한 글이지만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꽤 많다.

  우선 저자를 모르기에 그가 사는 스위스의 작은 동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가 바라본 사물 역시 내 관심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가 안다는 사람들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연들보다 눈에 띄질 않았다. 소재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어서 아무리 평온한 마음이라 해도 함께 공감하며 읽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아무리 글맛이 있는 작가라지만 번역된 글은 그 맛을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독자가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자, 내가 사는 이곳과 정반대의 땅덩어리에 사는 푸른 눈의 노인이 자신이 사는 동네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내가 지난 봄에 읽은 로버트 풀검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랜덤하우스)와 많이 비교된다. 비슷한 연배라는 점과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사람과 주변 이야기들을 엮었다는 점은 서로 비슷하지만, 서술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인생 후반부를 살아온 달관자적 입장에서 위트있고 재미있게 일상을 구술했다면, 후자는 지극히 평범하게 자신의 주변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곳곳에서 기억이 흐릿하다, 나이 탓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불편했다.

  어쩌면 내가 제목에 너무 혹한 나머지 제목이 던진 화두만을 쫓았기 때문에 깊이 빠져들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다 투덜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작가와 공감할 만큼 깊이나 연륜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와 연륜을 갖춘다 해도 이 작가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와 독자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그 말을 실감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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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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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전통 경제학을 버리고 행태주의이론을 채택하다!

 

  이 책은 경제학관련 분야로는 조금 특별하고 기념비적이다. 미시경제학과 재정학분야에서 대표적인 주류경제학자인 이준구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일종의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간결한 문체와 친절한 설명으로 <경제학원론>,<미시경제학>,<재정학> 등을 펴낸 바 있고 경제학도라면 그가 쓴 이 책들을 최소한 한 권 이상은 읽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잠시 눈을 돌려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에바람이 났다. 기존의 연구에 대해 반기를 든 셈이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이코노미컬한 인간‘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힌 전통적 경제이론의 ’비합리성‘에 질렸는지 모른다. 한편으론 평생을 경제학 교육에만 힘을 쏟던 그가 ’삐딱선을 타고 삼천포로 흘러들어가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더 이상 눈뜨고 못봐주겠다는 마음에 올바른 경제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강단에서 한 발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걸맞게 국내는 물론 국제경제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아진 국민들의 지적 수요를 지금까지 국내 경제학자들이 충족해주지 못했고, ’괴짜 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상식 밖의 경제학‘ 등 외국인 경제학자에 의한 쉬운 ’행태주의 경제학’ 책들이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재 이준구 교수의 ‘커밍아웃’으로 만들어진 <36.5℃ 인간의 경제학>은 독자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가 행태경제이론에 눈을 돌린 이유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현실의 경제정책의 불합리성은 전통 경제이론의 틀에 얽혀 있는 자들이 내린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내려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경제정책이 불합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경제원칙‘에 입각한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즉,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보이는 세상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 교수는 늦게나마 행태경제이론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변辯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틀을 짜야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어떤 결이 있다면 그 결을 따라 움직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짜면 비용만 많이 들 뿐 기대하는 성과는 나오기 힘들다. 바로 그 정이 행태경제이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중략)

행태경제이론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지를 검증해 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해 경제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경제이론에서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36.5℃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본문 7-8 쪽

  이 책은 이준구 교수가 지금껏 자신이 공부한 ‘행태경제이론’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 자신이 행태경제이론에 눈뜬 지 얼마되지 않았고, 현재 신학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책에 고백하기도 했는데, 난 학문적 입지에 있어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탄탄한 위치에 있는 저자가 느즈막히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 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그에게 이러한 ‘변화’는 자못 위험스럽기까지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저자의 이러한 변화의 이유가 경제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는 위정자들 중에는 자신의 제자들이 적잖았기에 이를 통감하고 미래의 경제 정책 입안자들을 위해 새로운 경제학 코드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라면 좋겠다. 

  저자는 우선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로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태클을 걸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는다고 다짐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 야식과 함께 다이어트 약을 먹는 여성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별 필요도 없는 상품을 충동구매하는 소비자들 등,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경제행위는 결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새로운 경제학의 대안이다. 행태경제이론의 시작은 바로 우리들은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간디처럼 인내심이 많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을 접하면 주류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들의 경제행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매일같이 직접 경험하면서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어 점쟁이를 만난 듯 놀랍고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에 나온 행태경제이론에 대한 책들과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의미를 둔다면 서 너 권의 책을 종합하고 요약해 엑기스만을 한 권에 담았고, 국내의 경제상황에 맞는 사례를 들고 있어 이해가 쉽고, 잘못된 경제정책들의 원인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지난 봄 펴낸 <쿠오바디스 한국경제>이 국내 경제정책의 모순과 폐해, 그리고 비현실성을 낱낱이 지적했다면, 이 책은 이러한 원인이 주류경제학적 근거에 바탕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나는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이론보다 정책의 측면에서 훨씬 더 빠르게 확대되리라고 본다. 기본 골격을 바꾸기가 어려운 이론과 달리, 정책의 경우에는 기존의 체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넓게 열려 있는 셈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 288-289 쪽

  책의 전반에 걸쳐 행태경제이론에 대해 놀라고 있는 저자를 발견하게 된다. 전작들이 자신이 많은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을 전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은 흥미롭고 즐거운 분야에 대해 공부한 학생이 레포트를 낸 듯 하다. 마치 몇 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은 듯 갈증을 해소한 듯 깨달음에 이른 저자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종전에 아맂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눈 뜨게 되었다. 전통적 경제이론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정책을 보는 내 시각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언제나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밑에 깔고 저액을 보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략)

  행태경제이론 덕분에 이제 나는 훨씬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정책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에 접하고 나서부터 경제학이 더욱 흥미로운 학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경제이론 중에는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없는 것들이 많다. 단지 논리의 유희라고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인간 본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태경제이론을 생동하는 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 학자 인생에서 행태경제이론을 만난 것은 뜻밖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 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지극히 적다. 일반 대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학자들 중에도 이런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아직 적지 않은 형편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일찍 이 이론에 눈을 뜨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본문 289- 290쪽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독자와 함께 ‘행태경제이론’을 공부해 보자는 초대장 역할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 책에 밝혔다. 이 말은 곧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만으로는 경제학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고백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대표 경제학자인 이준구의 미래 연구과제는 ‘행태경제이론’임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교수의 이 언급은 대한민국 경제학에도 ‘행태주의이론’이 많이 채택될 거라는 선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를 계기로 행태경제이론이 단순히 ‘재미 삼아 읽는 경제학’ 정도의 수준을 넘어 경제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발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가 <경제학 콘서트>의 팀 하포트와 <상식 밖의 경제학>의 댄 애리얼리에 버금가는 멋들어진 책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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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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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으로 키우는 힘, 이매지닝에 있다!  



한 사내가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 곳을 응시하던 그는 다급히 펜을 들고 쓸 곳을 찾았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과 냅킨 뿐이었다. 사내는 쫓기든 냅킨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냅킨에 그려진 그림은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리버의 MP3의 초기디자인이었고, 그 디자인에 대한 가치는 12억 원에 달했다. 이 짤막한 이야기는 책 제목 <12억 짜리 냅킨 한 장>의 제목에 얽힌 스토리다. 떠오르는 상상을 주체할 수 없어 냅킨에 디자인을 그려낸 사내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다. 그는 두 번째 책 <이노베이터>에 이어 얼마전 <이매지너>라는 책을 펴 냈다.

 

  사람들은 하루에 약 24,000번 정도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 종일 횡경막이 움직이는 숫자와 거의 비슷한데, 그렇다고 보면 한 번 호흡할 때(약 3초) 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 셈이다. 심지어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뇌는 깨어 무수히 많은 생각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뇌의 메카니즘은 정말 놀랍고 위대하다. 

  우리가 하루 종일 만들어내는 생각의 대부분은 대부분 ‘쓸 데 없는 생각’ 즉, 공상空想, fancy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미지心像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런 생각들은 거의 ‘바라는 것’ 다시 말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그림들이다. 공상空想,이 헛것이라면 상상想像은 날(born, raw)것이다. 수많은 공상 속에서 ‘쓸 만 한 생각’을 걸러내고 ‘쓸 데 있는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상상想像이다. 우리는 이처럼 ‘쓸 만 한 생각’을 아이디어idea라고 부른다면 떠도는 공상에서 아이디어로 도출되는 모든 과정의 총합을 상상imagine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인류를 먹여살리고 지켜내고 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이론의 말대로라면 인구폭발로 인해 인류가 종말을 맞아야 했겠지만, 60억 인구가 넘어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의 ‘쓸 만 한 생각’, 아이디어idea가 있어 유한한 토지와 환경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의 역사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아이디어의 발전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김영세는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해 새롭게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이매지너imaginer'라고 불렀다. 책<이매지너>를 읽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몇 시간째 혼자서 골똘히 빠져 있는 행위, 즉 소위 ‘멍~때리는 상황’을 김영세는 이매지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을 그려내기 위해 마음껏 상상하는 일련의 과정인 이매지닝imagining은 공상이 아닌, ‘전략적 상상’이라고 보았다.  


 “이매지닝의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일종의 ‘전략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한 공상이나 잡념이 아닌,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가공할 힘을 지닌 두뇌 작용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 ‘이매지닝’을 통해 이노(INNO)의 수많은 디자인들을 탄생시켰고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주도해 왔다.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에서, 혹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씩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이매지닝에 빠져든다.” 프롤로그 13쪽

  이 책은 저자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이매지너imaginer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래서 절반 이상이 지금껏 그가 창조해낸 소산물들의 스토리가 상세한 그림과 함께 마치 도록圖錄를 펼치듯 그려내고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하지만 거기서 그 맛에 취한다면 책맛을 절반도 채 즐기지 못한 셈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그가 생각하는 이매지너의 개념과 이매지너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정과 실천방법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온전히 체득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의 결과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그마한 소리상자인 MP3에서부터 각종 가전제품, 나아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로고와 네이밍까지 그가 만들어내는 무궁  무진한 디자인제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디자인 정신이다. 그렇다. 김영세의 디자인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수저통의 둥근 안쪽 테두리를 열 십자(十) 모양으로 파내어 서로 뭉쳐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그의 디자인에는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딸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MP3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바비라인‘ MP3플레이어를 만든 것처럼 직접 꺼내어 보여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랑이 담겨 있다. 김영세에게 있어 디자인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래서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의 대상(소비자)이 만족하고 즐거워했고, 높은 호응도는 제품의 매출을 급상승시켰다. 그에게 디자인은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디자인인 것이다.

  “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그의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의 예는 비단 프로토 타입(눈에 보이는 실제상태의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이베이E-bay'였고, 교내 동료들과 24시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페이스북Facebook'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세상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즉 ‘돈을 위해’ 만들어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영세에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INNO's-Way라고 불러야할 ‘Design First'라는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 방식에 있다. 그는 제품의 디자인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라는 제품에서 불편함을 감지하거나,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그는 먼저 디자인을 서두른다. 그리고 그 디자인을 가장 잘 소화해 낼 기업을 찾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업주의 통제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 ‘과연 기업이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이고 유니크한 디자인이 좌우되겠지만, 미래의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그의 설득력이 한 몫을 할 것이라 짐작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생각하는 'Design'이라는 말에 담긴 뜻, 즉 디자인의 정의였다. 그 속에는 우리가 이매지너imaginer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버리고, 추구해야 할 마음가짐이 담겨 있었다.  

  “디자인(design)을 풀어 보면 ‘de+sign'이다. 즉, 기호sign의 구조를 파괴한다destruct는 뜻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변화를 추구한다making a change는 뜻이 될 것이다. 다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본문 120 쪽

  21세기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부른다. 미술가들이 순수예술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 그들의 미술을 심어나가는 시대, 첨단 디자인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아이팟과 맥북을 만들어낸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디자인 CEO라 여기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디자인의 시대라 해서 우리 모두가 펜을 들고 디자인 제품을 그려내라는 말이 아니다. CEO도 디자인경영을 해야 한다고 해서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공부하고, 자신의 집무실을 최첨단의 디자인 제품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 경영이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디자인’에 두고, 모든 기업 활동을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감각에 맞는 디자인을 할 줄 알고, 경영자는 디자인 감각에 맞는 비즈니스를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 경영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불편함을 참지 마라’는 것이다. 자신이 이노디자인INNO-Design과 함께 걸어온 여정을 모두 보여준 것은 자화자찬의 자랑이 아니라, 우선 주변에 있는 사물과 사람을 흘러가듯 보지seeing 말고, 주의 깊에 보라는looking 것이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해주려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편함과 개선점을 발견했거든 누군가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생각하고 상상해서imagining ‘내가 그린 그림이 나오도록 움직여 개선하라’는 것이다.

  김영세는 이 책에서 ‘나 혼자만 이매지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여라. 그러면 당신도 이매지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노베이터>이후 4년 만에 제시한 <이매지너>는 미래의 성공은 ‘디자이너적인 창의력’에 달려 있고, 이런 창의력은 우리 모두가 지닐 수 있는 능력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상상력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거장巨匠의 또 다른 사랑의 디자인으로 비춰졌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늘 반갑다. 만날 때 마다 생각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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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 - 아이디어를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
필 베이커 지음, 조창규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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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낚인 책. 이 책에 '아이팟'은 없다!

  유난히 여색女色을 밝히던 대학 동기 주진이가 자취생 대여섯 명을 제 방으로 불러모은 이유는 ‘찐한 비디오’를 세운상가에서 입수했기 때문  이었다. ‘누나의 행위’ 라는 제목은 한 겨울 야심한 밤에 하릴없어 등이나 긁고 있던 복학생들을 한데 그러모으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졸지에 호스트이자 야한 비디오의 공급책이 된 녀석은 한 명당 얼마씩 관람비를 받아 맥주와 주전부리를 깔아 두었다. 기기묘묘한 소음을 내는 VTR에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녹색 불이 들어오고, 벌개진 열 두 개의 눈들이 브라운관이라는 먹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FBI WARNING'이라는 대문자 경고문과 함께 한참을 읽어야 해석될만한 영문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더니 서서히 페이드 아웃 되더니 요란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I will follow him~Follow him wherever he may go~" 주인공은 수녀복을 입은 코미디언 ‘우피 골드버그’였고 영화의 원제목은 ‘Sister Act'였다.

  외서外書를 번역한 책들을 살피다 보면 가끔 ‘누나의 행위’ 사건이 떠오른다. 엄연히 책의 내용에 걸맞는 훌륭한 제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의 재량으로 제 멋대로 제목을 붙여놓은 사례들을 발견하면 그들이 무슨 생각에서 이런 ‘무모한 짓‘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켄 블랜차드의 책처럼 제목을 바꿔 성공한 케이스도 없잖아 있긴 하다. Whale done 이라는 원제목의 책이 처음에는 "YOU Excellent!:칭찬의 힘"으로 제목을 바꿨을 때 2만 부를 팔았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20만 부 이상을 팔았던 사례는 지금도 출판계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칭찬의 힘이 아니라 제목이 힘’인 셈이다.

  반면 단순히 독자들의 시선을 낚기 위해 책 제목과 내용이 전혀 맞지 않은 실망스러운 책들이 너무나 많다. 책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시그마북스)은 내가 최근에 제목에 낚인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From concept to Consumer 풀어보자면 ‘컨셉에서 소비자까지‘이다.

  책 자체로 보면 특별하고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제품개발의 아이디어부터 제품이 소비자의 손에 넘겨지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구술함으로써 제품개발자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는 고사하고 ‘아이팟’이라는 단어도 몇 번 언급되지 않는다. 올 해 연말 국내에 강타한 ‘아이폰 열풍’에 대한 이해와 애플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했던 나같은 독자는 ‘책제목’에 제대로 낚인 셈이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서두가 꽤 길다’고 느꼈다. 애플과 아이팟이 언제쯤 나올까 묵묵히 지켜보며 페이지를 계속 넘겼고, 중반에 이르러 ‘뭐가 잘못됐다’는 기분에 원문제목을 확인하고 낚인 것을 알았다.

“책을 몇 장 넘기다가 아니다 싶은 책을 만나거든 가차없이 덮어라.”고 일본의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조언을 했었건만, 그에 필적하는 내공도 갖추지 못했거니와 지금껏 읽었던 시간과 공력이 아까워 마지막 장까지 거의 스킵skip하듯 읽어나갔다. 책 속에서 아이팟을 찾은 내게는 아쉽고 어처구니없었지만, 제품개발자와 벤처기술자라면 일독할 만한 좋은 책이다.

끝까지 읽은 덕에 한 가지 건져낸 것이 있다면, ‘제품의 아이디어를 시장까지 이끌어가는데 유용한 10가지 규칙’(부록A) 정도가 될 것이다.   


  1. 단지 훌륭한 제품을 갖는 것만으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만들어놓는다고 고객들이 찾아와주는 법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 강력한 관리자와 작고 집중적인 다기능 팀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해야 하며, 그들에게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3. 발명 자체 만큼이나 개발 과정에 있어서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4. 완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빠른 시장진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잠재 고객들과 얘기해보고, 실제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는 등 간결하고 상식적인 차원의 제품 테스트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6. 잘 할 수 있는 일들은 직접하되, 다른 사람이 잘 하는 일은 외주를 활용하라. 이미 구현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개발할 필요는 없다.   7. 경쟁자와 같이 생각하라. 첫 제품을 만드는 동안 후속 제품을 구상하라. 그리고 당신 제품에 대한 최고의 경쟁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내라.    8. 당신이 활용하게 될 판매와 유통채널을 이해하고, 경쟁력 있는 판매 가격을 가능케 하는 생산 원가를 맞춰내야 한다.    9. 간접 판매 혹은 유통채널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지속하라.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부품이나 제품의 제고를 많이 가져가면 곤란하다. 과잉 재고보다는 부족 재고가 더 낫다.    10. 당신 스스로의 과대광고를 맹신하지 마라.    본문 210 쪽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한 위의 글만 보더라도 일종의 기술자(제품 개발자와 발명가)들을 위한 마케팅 입문서다. “운명이란 바로 그대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 운명을 품고 있으니...”라는 오토 슈토에즐의 말이 있듯 책의 운명은 독자에 따라 변하는 법이다. 즉, 내가 보기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듯 보이는 책도 다른 독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책의 가치는 독자의 소용에 따라 달려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 같은 이 진리는 한 가지 중요한 뜻을 품고 있다. 바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원서는 자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을 법하다. 제품의 개발자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시행착오를 고백함으로써 계몽을 하는 책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발명가나 벤처의 CEO등 자칫 ‘내 제품이 세계 최고의 기술이다’며 제품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날개돋힌 듯 팔릴 거라 생각하는 이른 바 ‘생산자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일반 독자들이 흥미를 갖고 읽고 박수를 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이 책은 '프로토타입'(형태를 가진 시제품)‘의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혹 아이팟이나 아이폰 등에 연동되는 애플리케이션,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를 을 제작하는 개발자가 이 책에 관심을 둔다고 해도 처음부터 '핀트가 나간'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제품들도 사례로 들고 있어서 작금의 마케팅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아이팟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다’라는 제목을 살펴보건대 이 책을 국내로 들여온 출판사는 다중을 상대로 이 책을 읽히기를 바란 것 같다. 그렇다고 보면 이 책은 독자대상의 컨셉부터가 잘못된 케이스다. 잘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책장을 넘긴 내게 가장 큰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의 제목에는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고를 때 제목에 낚이지 말라”. 이 책을 통해 새삼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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