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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본문 p.64)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이 없어졌다. 아니 세상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진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 단어인 '남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가슴 속에 살아있는 불꽃을 안고...


  암울한 소설. 너무나 어둡고 암울해서 습기가 눅진거리는 지난 여름의 계절감마저 잊게 했던 소설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초반에 '이건 아니다'는 판단을 내리고 내려놓았다. '좋은 것도 다 못보고 죽는 세상, 싫은 건 억지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는 소신으로 살아온 내게 '우울한 기분'은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왜 였을까? 지리한 장마비가 처량하게 들렸던 탓일까?

며칠 후 늦은 밤 나는 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밤이 하얗게 된 후에야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차라리 죽음이 나을 법한 곳에 어린 자식을 홀로 두고 죽어간 아비가 불쌍해서, 내가 그곳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란 안심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날이, 그런 상황이 내게도 닥친다면 난 어떻게 할까? 좋은 사람이 될까, 나쁜 사람이 될까? 내게도 불꽃이 남아 있을까, 그럼 난 어디로 갈까? 내 옆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소설의 리뷰 -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723
 

  무수한 여운과 자문을 던져준 소설, 로드The Road는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을 기다렸다. 개봉한 첫 날, 그 어두운 세계를 직접 목격하기 위해 다시 <더 로드the Road>를 만났다.
 










 

좀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화 된 소설'은 애써 찾아 읽는 편이다. 그 말은 곧 글 속에 '충분한 영상미'를 가지고 있고, 통속적이지만 무시하지 못할 '흥행성'을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원작인 소설과 각색된 영화 사이에서 그 차이점을 찾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형만한 아우없다'는 말처럼 원작을 따라가는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를 볼 요량으로 소설을 우선 읽지만(영화를 본 후에는 절대로 소설은 읽지 않는다), 잘된 작품을 만나면 영화를 보기가 두려워진다. 원작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낼지 감독이 의심스럽고, 배우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부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원작에 누가 된 영화'를 본다면 그 실망감은 분노로까지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참고로 지난 해 봤던 연을 쫓는 아이와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 <더 로드> 역시 원작이 보여준 영상을 그대로 소화한 보기드문 영화였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개성파 배우 비고 모텐슨의 풍부한 감정연기는 특별할 것 없는 대사를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에게 남은 유일한 감정표현은 울음, 눈물이었다. 그리운 아내가 그리워도 울고, 깊은 밤을 편히 보낼까 하는 두려움에도 눈물이 흘렀다. 우연히 찾은 지하대피소에 그득한 음식들을 대한 그 때도 어김없이 눈물이었다. 아버지의 희노애락을 대신했던 눈물을 비고 모텐슨은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던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가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시종일관 '동일시'하게 하는 묵시록적인 영화였다. 암울한 배경, 두려움이 벗어나지 않는 배우들의 표정에 한기를 느껴 앞섬을 추켜올리게 했다. 그렇다, 동일시同一視. 영화 속에 내가 들어 있었다. 내가 그라면, 저 세상아닌 세상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난 그냥 죽어버릴 것 같아."라는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모두 벗어버리고 떠나간 아내(샤를리스 테론)이 떠올랐다.
 

"그건 아니지. 개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목숨이 있는 한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뭐 할껀데? 아무런 희망도 목표도 없는데 뭐할려고? 오빠도 그냥 남쪽으로 내려가?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데, 왜냐면 답할 말이 없다.

그냥 살고 싶단 말 밖에는...
 



"난 오랫동안 불을 보지 못했소. 그뿐이오. 나는 짐승처럼 살고 있소.

내가 뭘 먹고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을 거요. 저 아이를 봤을 때 난 내가 죽은 줄 알았소.

천사인 줄 아셨나요?

뭔지는 몰랐소. 그냥 다시는 아이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저 아이가 신이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그런 건 다 넘어섰소. 오래 있었거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당신도 알게 될 거요. 혼자인 게 낫소.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오. 마지막 신과 함께 길을 떠돈다는 건 끔찍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

 

  아이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 희망이 담긴 불꽃이 없는 세상이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아비는 평소대로라면 남겨진 자식의 미래가 두려워 함께 가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쪽으로 가거라, 얘야." 바로 살아있음이, 아이의 생명이 '가슴 속에 불타는 불꽃'인 것이다. 신도 포기한 듯한 버려진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은 실존이다. 살아있기에 살아야만 한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 '좋은 사람'으로 살아남는 것이 생生에 남겨진 숙제인 것이다.

 

  무서울 만큼 놀라운 영화, 원작에 견줄만한 영화였다.

코맥 메카시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가 그리는 세상을 볼 기회다.

비고 모텐슨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그만의 완벽한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투 썸즈 업Two Thumbs Up !" 최고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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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글쓰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이혜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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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작가作家가 아니라 구도자求道者였다

  “....때때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서 작은 오렌지 껍질을 쥐어 짜 불길 언저리에 떨어뜨리며 푸른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일어서서 파리의 지붕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걱정하지 마, 항상 글을 써왔으니 지금도 쓰게 될 거야.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돼.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이면 돼.’    그러면 마침내 진실한 문장을 하나 쓰게 되고 거기서부터 다시 글을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내가 알고 있거나 누군에게 들었거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진실한 문장 하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장황한 글을 쓰거나, 뭔가를 과시하려는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하면 복잡한 무늬와 장식들을 잘라내고 처음에 썼던 단순하고 진실한 평서문 하나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본문 24-25 쪽

  이 깨우침의 주인공은 하드보일드hard-boiled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다. 하드보일드란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뜻이 변해 ‘비정 ·냉혹’이란 의미로 쓰인 문학용어다.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하드보일드.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글솜씨를 말한다. 군더더기 없이 수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손대면 파삭파삭 부서질 것 같은 문장, 헤밍웨이의 글맛이 그렇다. 그리고 가까이에는 ‘김훈의 글맛’을 생각하게 한다. 

  헤밍웨이는 좀처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일생을 바쳐 글다듬기를 하다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치열한 글싸움을 했던 그였던지라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를 배우고 닮고자 하는 추종자들이 선생을 삼기에는 영 서운한 행실이 아닐 수 없다. 반갑게도 그는 지인들에게 쓴 편지와 다른 글들 그리고 소설 속에 ‘다빈치 코드’를 숨기듯 조금씩 흘린 모양이다. 그것들을 줍고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다니 래리 W. 필립스란 양반이 참 고맙다. <헤밍웨이의 글쓰기>(스마트 비즈니스)를 읽었다.



 

   글쓰기는 수작酬酌이다. 제가 생각한 바를 남에게 알리고 공감을 유도하는 하나의 수사修辭요, 농짓거리다. 말言로 다중多衆에게 농짓거리를 거는 것이 연설이라면, 글쓰기는 미래에 있을 대중大衆에까지 말을 거는 셈이니 글을 쓰는 작가는 연설을 일삼는 정치꾼들보다 더한 수작쟁이들이다(연설이란 것도 결국 글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던가?).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려면 먼저 눈에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불특정다수의 독자로 하여금 상상 속에서 그림과 영상을 보이도록 하려면 글을 쓰는 이가 먼저 보고 적확하게 글로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 문장마다 한 장의 그림이 보이게 해야 한다.    

  세밀한 묘사와 설명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독서는 ‘숨’, 즉 호흡과 깊은 관계가 있어 길이가 길면 숨이 가빠져 쉬이 지친다. 문장이 긴 듯 짧고, 짧은 듯 길어져서 울렁이는 파도를 따라 배를 타듯 운율이 있어야 한다. 묘사와 설명이 길면 구차해지고 함부로 상상할 수 없어 지루해진다. ‘글은 짧되, 마음껏 상상하게 만들기‘ 이것이 글을 쓰는 이들이 가장 원하는 바이고, 영원한 숙제다. 평생을 학생으로서 이 숙제에 바친 인물이 헤밍웨이다. 넘기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던 이유는 그만이 가진 나름의 원칙과 요령이 책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내 글을 모두 짧게 자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모두 없앤 다음, 묘사가 아니라 문장을 만들려고 한 후부터 글쓰기가 아주 멋진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소설처럼 긴 글을 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문단을 완성하기 위해 내내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본문 33 쪽)

  헤밍웨이에게 글쓰기는 투쟁이었다. ‘세 시간 동안 쉼표를 찍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내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잠이 들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처럼 헤밍웨이의 글쓰기 역시 단어 하나 쉼표와 마침표 하나에 각고刻苦 고민의 총합이었다. 그 끝에 탄생한 것이 단출하고 팍팍한 문장들이었고, 그 속에는 팍팍한 세상과 더 팍팍한 우리의 인생이 들어 있었다. 난 과연 문장이란 걸 그려내면서 얼마나 고민했던가 돌아보게 한다. 읽은 책을 말하는 나의 얄팍한 글쓰기가 없던 세계를 만들어내는 ‘글의 창조자’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일테지만...

  글맛은 장맛이다. 단숨에 써내려갔다는 천재의 글은 멋지고 대단할지 모르지만, 어딘가 경박하다. 깊고 그윽한 장맛 같은 글맛은 표면에 허옇게 곰팡이가 피듯 펼친 흔적으로 심하게 구겨지고, 노출에 색이 바랜 종이에 들어있어야 한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지우고...더 이상을 더하고 뺄 단어가 없을 때 글맛은 생겨난다. 헤밍웨이의 원고가 보고싶어지는 대목이다.

  “그는 세잔이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세잔은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온갖 기교를 구사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부수고 진실한 것을 만들어냈다.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는 최고였다. 언제나 그랬다. 그건 사이비종교같은 절대적 숭배가 아니었다. 닉은 전원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세잔이 그림 속에서 표현했더 것처럼 글 속에 그 전원을 담고 싶었다...(중략)... 성스러운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심각하고 진지했다.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면 할 수 있다. 두 눈을 뜨고 제대로 살아왔다면 말이다.” (본문 40 쪽)

  그가 쓴 <닉 애덤스 이야기> 속의 글을 보면 그에게 글쓰기는 사실寫實이었다. ‘보고 듣고 느끼지 않은 글은 글이 아니다‘고 헤밍웨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짐작컨대 그가 보낸 하루는 관찰일테다. 헤밍웨이의 다리는 삼각대요, 눈은 광학렌즈,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필름인 셈이다. 그 인생을 상상해 보니 몇 초 안되어 팍팍해진다. 날 때려죽인다 해도 그 짓(?)은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팍팍한 인생이란 게 작가의 인생이 아니던가? 작가들에게 경배를... 

  글쓰는 데 사전이 필요하다면 글을 써서는 안된다는 헤밍웨이. 비유법을 혐오하고, 거짓된 글을 기피했으며, 돈벌이를 위해 현실에 타협하고 정치적 성향을 띤 글을 쓰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했던 그에게 글쓰기는 구도자求道者의 수행이었다. 적어도 책 속에서 만난 그는 지겨운 밥벌이를 운운하며 과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글을 넘치는 재주를 주체할 수 없어 휘갈기는 천재의 농짓거리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그도 자신을 칭찬하고 자신의 글에 찬사를 보낼 때가 있으니 <노인과 바다>를 만든 때였다.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입니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고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 본문 35 쪽

  작가라는 업業을 알게 하고, 글이 되는 작업作業을 알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헤밍웨이를 알고 싶게 한 책이었다. 그가 즐기던 칵테일 모히토Mojito마저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책을 덮고 난 기분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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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의 진정한 자유는 스트라이크 삼진아웃으로부터! 

 

  낄낄깔깔.. 내 웃음소리에 ‘누가 왔수?’ 동생 녀석이 문을 열었다. 내가 모를 손님이 올 리가 없다. 동생은 금방이라도 피가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고 다른 손으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포개어진 다리 사이엔 예의 책이 펼쳐 있었고... “만화책도 아닌데...” 심드렁한 녀석에게 ‘이거 한 번 읽어봐라’ 책표지를 보여줬다. “그거, 지금에야 읽는 거에요?” 더 심드렁해져서는 문을 닫았다.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다.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읽은 것 같은 소설, 권하지 않는 책은 절대로 스스로 읽지 않는 동생 녀석도 4 년 전 군대에서 두 번이나 읽은 소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차라리 밥은 굶어도 책은 안 굶는다 생각하는 내가 이 소설을 모를 리가 없다. 신문에서 서평도 본 적이 있고, 이외수의 젊은 시절을 방불케하는 히피와 힙합을 섞은 듯한 스타일의 저자 역시 사진으로 여러 번 봤었다. 만년 조연의 이범수가 첫 주연을 맡았던 ‘슈퍼스타 감사용’의 모티브도 이 소설이란 것도 알고, ‘처녀작 같지 않은 수준급 소설, 하지만 파격이다’는 아헤들의 말은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이다. 그래도 애써 읽지 않은 건 처음 소설이 나왔을 때는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어숩잖은 짓들에 심취해 있었고,

  작은 이유는 ‘장명부’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나’만큼 나 역시 대한민국 프로창단의 원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소년구락부少年俱樂部’를 할 정도로 였으니까.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OB맥주를 신봉하는 아버지의 권유(게다가 물주가 아니던가)에 의해 단 돈 오천 원으로 OB에 몸을 맡겨 회원이란 이름으로 모자와 점퍼를 주워입고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 삼청공원, 장충공원을 전전하며 시합을 뛰었었다, 나도. 

  아, 장명부.

장명부도 싫고 삼미슈퍼스타즈도 싫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어숩지 않은 로고그림으로 나의 우상 첫 우상인 ‘슈퍼맨’을 욕먹였고, 투수 장명부는 조금 덜 무섭게 생겼다 뿐이지 봉준호의 ‘괴물’ 못지 않은 타자 잡아먹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난 장명부가 프로야구의 마운드를 점령한 83년을 끝으로 내 사랑, 야구를 버렸다. 그러니 듣도 보도 못한 박민규가 쓴 젠장 맞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을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란게 어떻게든 맞닥뜨리는 거라면, 그 운명은 어떤 책 때문이었다. 출간된 지 정확히 오 개월 늦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 박민규와 그의 글맛을 알았고, 단골독자가 될 요량으로 전작前作을 뒤지던 중 원수같은 ‘삼미‘를 제목으로한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 옛날의 트라우마로 잠시 망설였지만, 기어이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긴 건 여기에서도 죽은 왕녀.. 속의 ‘요한’이 여기에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조성훈을 찾아냈다. 요한과 조성훈. 이들은 ‘똑똑한 꼴통’이다. 주인공은 아니면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적인 꼴통, 머리에 든 것, 말빨, 그리고 시선이 닮았다. 박민규와도 닮았다(외모는 제발 닮지 말기를). 그리고 요한을 만났을 때처럼 단숨에 읽어버렸다.

  박민규는 기발한 기억력과 기막힌 탐구심을 갖췄다(노트북에 글을 칠 때 원고 말고 대 여섯의 창을 켜고 검색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그보다 기발하고 기막힌 기억력과 탐구심이 없는 나를 매료시킨다. ‘정말 그 시절 그랬던가?’ 더듬게 되고, ‘그랬구나’ 싶어 탄복을 한다. 운 좋게도 박민규는 비슷한 또래여서 그가 ‘아~’하고 말하면 ‘어~’할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척~ 하면 삼천리요, 툭~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니 쉬이 읽히지 않을 리 없고, 재미없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세상의 시각에선 삼미슈퍼스타즈는 시쳇말로 ‘루저’다.

허용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버림받은 사람들. 하지만 조성훈이 보기엔 그건 안反삼미슈퍼스타즈의 판단의 오류일 뿐이다. 진정한 슈퍼맨인 그들은 소위 위너들이 만든 기준에 애써 들지 않으려 한 것 뿐이다.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할 뿐 일본에서 홈리스(노숙자)로 지내면서 사회가 부여한 의무로부터의 자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한 그에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진정 ‘사람답게 사는 방식’으로 보였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 구조조정을 당하고 아내에게까지 버림받은 ‘나’는 그들의 판단대로 스스로를 루저형 삼미슈퍼스타즈로 여겼다가 조성훈의 교화로 다시 깨어난다. 사회로 버림을 받음으로써 그가 얻은 것은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을 나게 하는 자신의 시간을 얻었다.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5 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본문 264-265 쪽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노이즈 심한 흑백 영상으로 영화를 보여주듯 내 삶의 기억을 건들 때마다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 딸려나와 그에 취해 책을 덮기가 일쑤다. 박민규의 소설은 만화만큼이나 웃기고, 재미있다. 하지만 저 깊숙한 곳엔 페이소스가 진하게 뭍어있다. 그의 맛깔난 글 속엔 뼈가 들어있고, 칼이 숨어 있다. 케케묵은 옛날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이야기하고, 야구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 시선은 세상과 사람을 향하고 있다.

당장의 해결책은 없는 문제제기일지 모르지만 그 속엔 국회에서는 절대로 발의되지 못하는 삶 속 저 깊숙한 우리의 고민과 고통들이 짙게 배어져 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제기만으로 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의 믿음은 용케도 맞아들어 가는 듯 보인다. 이 소설을 통해 장명부의 대기록을 보면서 그를 다시 알게 되고, 슈퍼맨을 욕보인 삼미슈퍼스타즈를 용서(?)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기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마.”

조성훈이 그렇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신경이 쓰였다.

“뭘?”

“회사 잘린 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약간의 분노와 패배감, 불안간은 것들이 재구성된 지구의 표면 위로 떠올라왔다.

“처음 널 봤을 때...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본문 235 쪽

  이 글은 새해벽두 ‘정리해고’를 앞둔 수 천의 샐러리맨들에게 던지는 박민규의 격려로 들렸다. 컴퍼니라는 기계 속의 톱니바퀴는 다른 것과 맞물렸기에 안정적이었다. 컴퍼니를 위해 ‘나’라는 톱니바퀴를 들어냈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오래 맞물려 돌았다면 곧 마모되어 정말 쓸모가 없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가 된 바퀴는 더 이상 컴퍼니를 위해 1분 마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제 혼자 마음껏 구를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1분에 열 바퀴, 백 바퀴도 돌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마지막으로 세상 끝까지 깨춤을 추며 구를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스트라이크였냐, 볼이었냐?’ 하는 과거를 놓고 심판에게 항변하고, 컴퍼니를 원망할 것이 아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면 메두사의 저주로 돌이 되어버린다. 단 둘만 남을망정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며 캐치볼을 하며 오늘을 보내는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오늘 ‘지금’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는 듯 했다.

  지난 해 박민규를 만난 건 개인적인 행운이요, 기쁨이었다. 늦었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읽은 것 역시 장명부의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노력이 얻은 소득이었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축구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다. 박현욱이 ‘젠장 맞게도 어쩔수 없는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박민규는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얻고 싶은 남자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축구와 야구가 일상의 기쁨이라면, 두 명의 소설짓는 남자들은 삶의 위안이 된다. 난 이제부터 박민규의 가장 늙은 팬클럽 회원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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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토종 책벌레들의 29 가지 책예찬론 !

  어른스러워질수록 호불호好不好는 줄어든다. 대신 그에 대한 사랑은 더욱 굳어진다(이 말은 극단적으로 변한다는 말도 되겠다). 지극히 어른스러운 스물 아홉 사람이 한 가지 물건에 대해 자신의 사랑을 예찬했다. 물건은 바로 ‘책’이다. 극단적인 그들의 책 사랑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표현되어 또 다시 책을 이뤘다. 책벌레들의 책사랑, <책, 세상을 탐하다>를 읽었다. 

“책은 내마음속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다.” 

-프란츠 카프카



 

   오랜만에 만나는 전유성의 글(책에 관하여 중구난방 스스로 묻고 답하기)은 반가운 친구를 본 듯 반갑다. 그는 안심심하려고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항상 변화를 추구해서 베스트셀러 중 9번, 10번 째 책만 구입한다. 개그를 하듯 얼렁뚱땅 쉽게 받아넘기는 대꾸이었지만 그에게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걸작이다.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처음 책에서 무엇을 얻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작은고모가 읽던 일본 소설<빙점>이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초등학교 여자애가 집에 갈 차비를 잃어버렸는데, 주위 친구들이 차비 잃어버린 걸 걱정해주니까 정작 본인은 ”내가 잃어버린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라고 말하던 대목!

  그래 세상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세상 보는 시각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다. 소설 제목이 ‘빙점’인지 아닌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아기가 한 말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본문 30 쪽

  책을 읽을수록 귀가 얇아진다. 나중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귀 얇은 공자님이 된다. 고집을 피우기 전에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게 되고, 내 입장이 중요한 만큼 네 입장도 중요한 줄도 알게 된다. 주관을 객관화시키기, 전유성이 책으로부터 얻는 소중한 소득이다. 한편 재담꾼 ‘성석제’는 소싯적 책도둑이었음을 책에다 고백했다. 그에 대한 변辯은 의뭉스럽기까지하다.

  “재능 있는 책 도둑은 아무 책이나 훔치는게 아니라 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훔친다. 다른 것이 아닌 책을 훔침으로써 문명과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히며 지식과 감성의 이종교배로 유전자를 개량할 수 있다. 훔친 책은 가슴을 뛰게 하는 긴장이 부작용처럼 곁들여지고 잘 읽히고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나보다 수준 높은 책 도둑의 서고에서 동굴 속의 알라바바처럼 넋이 나가 서 있던 적도 두어 번 있다. 그 정선된 보물을 다시 훔침으로써 우리 책 도둑들은 시대정신을 공유했다.” 본문 46 쪽

  무슨 책을 얼마나 훔쳤는지 궁금하다. 그 책들이 덕분에 의뭉스러운 지금의 성석제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셈이다. 하지만 추억꺼리일망정 할 짓은 못된다. 가뜩이나 위축된 출판시장에 낭만을 빙자한 책도둑마저 횡횡한다면 책 짓고 파는 이들 시름은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요즘 책 훔치다 붙잡히면 대체 벌(형량)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이들의 책예찬에 겸손은 보이지 않는다. 허생전의 허생처럼 딱 10 년 동안 책만 읽고 살라한다면 ‘옳다구나’할 사람들이다. 듣도 보도 못한 ‘책벌레’로 불려도 ‘허허’ 웃고 말 사람들이다. 시인 조병준은 아예 ‘책벌레라서 행복해요!’ 하며 어느 여배우를 흉내낼 지경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책벌레로 인생을 살게 된 건 저주다. 끝없는 배고프모다 지독한 저주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끝없는 저주는 동시에 축복이다. 죽는 날까지 새로운 양식으로, 비록 곧 사라질망정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처럼 놀라운 축복이 또 어디 있는가. 끝없는 포만감과 끝없는 배고픔이 꽉 부둥켜안고 추는 왈츠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본문 149쪽

  이 책은 내게는 위로다. 촌각을 다투며 속도와 변화를 추구하는 이 세상에 묵묵히 한 곳에 자리를 지키고 종이에 새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책 읽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위로한다. 많은 문인과 출판인, 평론가, 음악가, 심지어 개그맨 전유성까지...이 책을 집어든 나를 격려한다. 몇 장마다 숨겨진 붉은 칠된 글자들은 내가 갖던 책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러게, 내말이...’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들 고개가 함께 주억거렸다.

  가장 인상적인 글귀는 시인 이문재의 ‘척추로 읽읍시다’였다. 일주일 날을 잡아 십 수권의 책을 들고 호텔방에 쳐박히는 소설가 김훈, 매주 일요일 아침 마다 정좌를 하고 책을 읽는 황종연 교수, 일 년 중 한달을 ‘안식월’을 두는 빌 게이츠까지 아예 작정하고 자리를 틀고 책을 읽는 이들이 읽는 책은 무엇일까? 제목은 알 수 없지만 자세 만큼은 척추를 곧추세운 정좌의 독서라는 것이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다시 말해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읽은 책이 한두 권 있다면, 당신은 책 속에서 이미 길을 찾았을 것이고, 또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갔을 것입니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읽은 책이, 또는 그런 자세로 읽고 싶은 책이 과연 몇 권이 있는지가 책 읽기의 핵심입니다. 척추로 읽는 책이 진짜 책입니다.” 본문 85 쪽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쫓다 보니 마지막 장이다. 아껴서 읽느라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읽어서 즐겁고 만나서 기쁜 책, 이 책을 두고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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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노볼THE SNOWBALL

- 앨리스 슈뢰더 저, 이경식 역, 2009, 랜덤하우스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959

 

  “만일 제대로 된 눈 위에 서 있다면 눈덩이 굴리기는 이미 시작된 겁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이건 돈을 불리는 이야기만 뜻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문제입니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이 호감을 가지고서 제가 먼저 붙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 촉촉한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잘 뭉쳐지게 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눈을 계속 붙여야 합니다. 갔던 길을 물리고 뒤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덕 위까지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인생이 그런 겁니다.“ 

  워런 버핏에게 있어 스노볼은 투자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사는 방법을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무엇이든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뜻이죠. 이것이 바로 워런 버핏이 살아가는 방식인 겁니다. ‘스노볼‘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화려한 간판보다는 ’제 인생을 온전히 저다운 근성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비춰집니다. 

  이 책을 200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4차 산업이라고 하는 ‘금융산업’시대를 맞아 우리 대부분은 금액에 상관없이 ‘투자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겨운 밥벌이’ 운운하며 우리가 직장을 나가고 사업을 하는 이유는 바로 ‘돈’을 벌어 지금보다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투자행위’ 역시 내 일과 상관없이 ‘돈이 돈을 벌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보다 더 앞당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죠. 당신에게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 즉, 행복한 생활이란게 무엇인가요? 그저 돈을 더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쓰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돈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돈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 필요없어. 돈만 더 주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는 겁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돈‘만을 위해 벼랑 끝일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길을 내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책입니다.

  워런 버핏은 세계 최고의 부자를 위해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가치투자’라는 뚜렷한 투자관을 정립하고, 자신이 가장 행복한 방법을 통해 투자했습니다. 일확천금을 벌어들일 수많은 방법이 그를 유혹했지만,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인생에 어긋남이 없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클릭Click산업‘으로 대표되는 IT 혁명이 있을 때도 그는 ’브릭Brick산업‘에만 투자했답니다. 당신의 투자관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떻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리고 하나 뿐인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습니까? 이 책을 읽는다면 투자를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오마하 현인‘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평전‘을 내도록 허락한 이유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깨우치길 바란 때문일 겁니다. 책 제목처럼 그래야 행복이라는 복리가 조금 더 빨리 늘어날 테니까요. 스스로가 투자자라면 놓쳐서는 안될 최고의 책입니다.

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2009, 예담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3117

  문학에는 문외한인 제가 올해 얻은 큰 수확이 있다면 아마도 소설가 ‘박민규’를 알게 된 것일 겁니다. 세상의 판단대로라면 저 역시 <1Q84>에게 손을 들어줘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전 두 번째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선정했습니다(저의 뒷통수에 조금 남아있는 반골기질 탓이기도 합니다). 

  저는 소설을 흔들리기 위해 읽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실용서에서 찾는다면 내 마음을 흔들어줄 무엇은 영화나 소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으로부터 흔들리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살 만큼 살았다고, 나름의 ‘개똥철학’이 생겼다고 남의 이야기에 찬동하기 보다는 제 생각을 어거지로 우기는 ‘똥고집’을 피우게 되죠. 소설과 영화는 사고思考를 확장시켜 줍니다. 이 장르의 기본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동일시하게 되고, 그래서 간접경험을 얻게 되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저를 제대로, 그리고 많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파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장형식을 파괴하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파격적인 시도들도 선보입니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방 익숙해져서 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게 합니다.

  소설의 소재는 ‘외모’이고, 주제는 ‘사랑’입니다. 흔하디 흔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구성으로 저를 흔들었습니다. 스무 살 청춘들의 러브스토리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늙어버린 제게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공감과 동감에 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었죠.

  또한 제가 사랑하는 ‘데미안’이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습니다. 소설 속 세 번째 주인공인 요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눈에 밟힐 만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요한은 ‘박민규’더란 말이죠. 그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그의 소설을 추적해 읽어볼까 합니다. 올해 박민규를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3. 주식투자란 무엇인가1 박경철, 2009, 리더스북

리뷰 보기:http://blog.daum.net/tobfreeman/7162747

 

  "주식시장을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하라. 그것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려고 있는지, 내 속을 훤히 꿰뚫어보는 천리안과 같은 무서운 적이다. 시장은 내 머리속에 들어앉아 내 마음을 읽기 때문에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시장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 성공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장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무서운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언컨대 천하의 고수든, 평범한 투자자든, 오늘 처음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든, 이 책을 쓴 나 같은 사람이든 내일의 주식시장을 맞힐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책 속에 있는 이 내용은 개미투자자들의 친구인 시골의사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핵심입니다. 읽어보면 당연한 진리, 하지만 투자자들은 좀처럼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던지기(投資) 전에는 의심하고, 부정하다가도 막상 사버린 후에는 ‘당연히 오를 것’으로 믿어버립니다. 사람이기에 갖게 되는 필연적인 오류죠.

  하지만 정작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이런 오류을 좀처럼 일으키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이 무서운 줄을 익히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대한 ‘시장을 읽은 후’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지수가 오르느냐 내리느냐의 절반의 상황 중에 최소한 51%의 확률을 판단했을 때 그 때 투자를 단행합니다. 51% 밖에 안되냐고요? 찌라시나 소문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10% 확률보다는 한참 높지 않나요?

  투자에 관련된 책을 찾고, 전문가의 강연을 찾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잘못은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책을 찾고, 강연회를 찾을 때는 ‘알려고’할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어디에도 ‘투자처’를 지목해 주지 않습니다. 혹 알려준다 하더라도 모종의 ‘작전의 술수’가 들어간 소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배우려는 마음으로 찾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소득을 얻을 겁니다. 

  이 책은 투자서가 아닙니다. ‘주식투자 경계서’라고 해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시골의사가 책 한 권 내내 하는 말은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돈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출간되어 많은 호응을 얻으며 팔려나갔음에도 뒷말이 없는 이유는 아마 이런 내용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면서 자신의 투자성적을 살펴본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오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껏 주식이나 펀드투자를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에 앞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게도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던져준 책입니다. 시골의사가 다시 한 번 경고를 하네요.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된다. 단언컨대 주식투자는 보편적인 개인투자자가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큰 손실이 없었던 사람들은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주식투자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되고, 주식시장이 지금의 10분의 1로 폭락해서 주권 한 장이 담배 한 개비의 가격밖에 되지 않더라도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4. 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 존 보글 저, 이건 역, 2009, 세종서적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976 

  “금융 시스템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가치를 얻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답은 명백하다. 금융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부문일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스스로 지불한 비용 수준과 비슷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유일한 산업이다. 실제로 간단한 산수의 잔인한 법칙에 따르면, 투자자들 전체로 보면 이들은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역설적으로 말해서,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보상을 모두 받을 것이다!).” 

  올해 제가 이 책의 저자인 존 보글을 알게 된 것도 큰 행운 중 하나입니다. 몇 해 전부터 펀드투자를 하면서 가졌던 의문과 불만을 말끔하게 해소해 준 사람이니까요. 존 보글은 투자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인덱스 펀드는 운용비와 수수료가 가장 적게 들고, 가장 안전한 펀드 그래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시대인 오늘날에는 가장 ‘보수적’인 투자수단으로 분류되는 펀드입니다.

  존 보글은 묘하게도 가치투자와 장기투자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워런 버핏의 투자관과 엇비슷하게 맞물립니다. 한마디로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냐?’는 말이죠. 투자에 목숨걸다 인생마저 목숨걸지 말고, 소중한 내 인생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투자방식을 취하라고 두 사람이 전하는 듯 합니다.

  저자가 인덱스펀드를 만들었다고 해서 ‘자화자찬’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간접펀드의 맹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지금의 간접펀드시스템으로는 직접투자만큼 위험하진 않겠지만, 결코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없음을 하나하나 파헤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간접투자에 대한 여러분의 마인드가 바뀔지도 모르게 되죠. 

  중요한 것은 저자가 투자자인 독자들에게 던지는 조언입니다. 존 보글John C. Bogle은 우리에게 “충분함을 알라.”고 말합니다. 우연한 성공에 도취되어 너무 규모를 키웠다가 말 그대로 ‘거지’가 된 사업가, 상자 하나에 가득 담긴 현금뭉치에 현혹되어 평생을 일궈놓은 명성을 날리고 쇠고랑을 찬 정치인, 선무당 즉, ‘초심자의 행운‘인 것을 모르고 마치 행운의 여신 운운하며 가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 이들에게 닥친 모든 화禍의 근원은 ’충분함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인덱스 펀드‘의 장점을 설명합니다. 간접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좋은 책입니다.

 



 

5.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양윤옥 역, 2009, 문학동네 

리뷰 보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3020

  아무리 뒤져봐도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을 찾아볼 수 없네요. 마지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1Q84입니다. 대학시절 ‘상실의 시대’를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 후 제가 그에게 갖는 생각은 항상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소설을 통해 그를 만나고 있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꽤 읽은 편이지만, 매번 읽은 내용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들게 했었죠. 뭔가 더 깊은 뜻 숨은 의도가 있을 법한 소설가, 그래서 그를 추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제껏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알 법 했습니다. 혹자들은 이 소설이 가장 그답게 만든 완성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해하기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제겐 소설이 이렇게 흥미롭던가? 하는 것을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베스트셀러적 문학 요소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 독자의 코드를 잘 이해했다고 봐야죠. 어쩌면 이전의 소설들은 독자들보다 조금 앞선 감이 없잖았습니다.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을 소재로 펼친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고 SF적인 요소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음악, 예술, 라이프스타일적 요소들을 소설의 곳곳에 감추어 독자들의 매료시킵니다. 만약 이 소설이 전자책으로 나온다면, 그래서 그가 말하는 요소들을 바로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면, 책 만큼이나 ‘히트상품’이 될 것 같습니다(전자책이 종이책과 차별화된 점이 이런 게 아닐까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만들어버린 이 소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껏 저처럼 하루키의 소설을 어려워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새로이 버전업된 하루키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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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 전2권 세트-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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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통찰 편, 시장의 거짓을 이기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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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성인의 부자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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