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 - 제조, 유통, 서비스의 미래 미래 비즈니스 키워드 4
정지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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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스마트 혁명이 가져올 전통산업의 미래

  SF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미래는 이미 우리가 사는 이곳에 존재한다. 다만 널리 확산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아는 세상은 현재가 되고,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은 미래가 되는 셈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미래는 현실이 되는 세상,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 웹의 급속한 보급은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 생활을 가능케 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공존감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제 미래는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지력이 아니라 검색 능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산업이 IT를 만나면서 펼칠 미래를 전망한 책 <오프라인 비즈니스 혁명>(21세기북스)도 그 결과물이다. 



  저자 정지훈은 현재 미래 칼럼니스트로 활약 중이다. ‘하이컨셉’이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그는 지난 해 <제 4의 불>과 <거의 모든 IT의 역사> <아이패드 혁명>등을 내면서 IT업계와 미래 비즈니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 ‘그동안의 10년이 IT가 만든 디지털 혁명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전통산업과 IT가 만나 비용 절감과 시공간 단축이 실현되는 제2의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과거 에너지와 내연기관에 의한 생산성의 혁신은 철도 등의 교통인프라를 만들었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이끌어내는 인프라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최근의 인터넷, 모바일, 소셜 웹,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도 그러한 인프라로 작용해 파생혁신을 일으킬 거라고 보았다. 

  지난 해 필자는 저자와 함께 공동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강연에서 매일 새벽에 기상해서 즐겨찾기를 해 두었던 세계 주요 신문과 기관의 뉴스들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두 시간에 걸쳐 관련글을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은 트위터에 매일 올리는 그의 트윗을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매일 아침마다 살핀 미래의 총합인 셈이다.  

  우선 저자는 미래의 경제학을 나노nano(10억분의 1)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수많은 개개인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화, 노하우 등을 진보한 인터넷 환경과 기술 플랫폼들을 통해 프로슈밍prosuming함으로써 개개인의 역량이 모여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매시업Mashup 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매스경제에서 아주 사소한 특정 소비자들이 주역으로 부상되는 나노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해서 나노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소비자 경험이 참여로 이어지는 프로슈밍과 오프라인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롱테일, 그리고 웹상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일으키는 일련의 입소문은 기업의 마케팅과 영업활동을 대체하는 바이럴 현상은 나노 경제학을 가능케 하는 세 가지 주요원칙이다. 프로슈밍이 전통적인 소비자와 공급자의 시각과 역할의 새로운 원칙이 된다면, 롱테일과 바이럴은 각각 유통, 시장과 광고, 마케팅의 새로운 원칙이 된다.  

   
  “나노경제학을 굳이 표현하자면 아마도 ‘롱테일 경제학+바이럴 경제학+링크(네트워크)의 경제학+매시업 경제학+알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중략) 소비자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나노경제학의 중요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27쪽  
   

   이 책은 나노경제학을 기반으로 소셜 커머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산업의 부상과 나아가 전통 서비스 산업과 경영방식의 변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폈다. 그 중 저자가 주목한 것은 ‘비용 절감’과 ‘시공간의 단축’, 바로 전통산업이 핵심가치로 여기는 부분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이미 적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우리에겐 다가올 미래가 된다)를 통해 제조, 유통, 광고, 마케팅, 그리고 기업 경영 전반에 IT기술이 적용될 때 ‘비용 절감’과 ‘시공간의 단축’이 이뤄지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소규모 공장들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알리바바, 버스를 개조해 점포로 만드는 햄버거 업체 4food.com, 위치기반 서비스인 포스퀘어를 활용한 뉴욕 패션위크의 특별한 이벤트, 최근 새로운 광고툴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등 주제별로 소개되는 다양한 사례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고 유익했다. 

 미래학자답게 저자는 각각의 사례마다 QR 코드로 볼꺼리를 제공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미래에 대해 기업경영은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까? 저자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눴다.   

 

   
 

1. 총체적 품질관리에서 총체적 경험관리의 시대로 전환하라.

2. 브랜드 관리,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 혁신 플랫폼이다.

3. 기업의 내 외부 모두 소통이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시켜라.

4. 작은 기업을 만들어 변화에 빠르게 즉응하고 협업이 가능하게 하라.

5. 보호와 관리하기보다는 혁신하고 외부와 협업하라.

 
   

책 전반을 통해 실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신뢰와 경험경제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다양한 IT 기술을 통해 사실과 정보를 보다 빠르고 생생하게 전하려고 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보고 만지듯 경험하게 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충분히 인지한 소비자가 구매욕을 일으키는데 목적이 있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소비자를 어떻게 유혹하는가?’였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비자를 끝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저자 역시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얄팍한 속임수로 돈을 거두려 한다면 통하지 않을뿐더러, 진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과 기업은 일반 대중에게 외면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산업의 미래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QR 코드에 숨은 사례 속에서 당신이 찾던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아이디어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 리뷰는 여산통신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잡지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2011년 5월호)  

<파워블로거 '리치보이' 김은섭의 경제경영서 읽기>에 실린 칼럼 원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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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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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변화무쌍한 21세기에서 위기에 빠진 글로벌 기업이 살아남는 법! 

 

  프랜차이즈업을 시작한 2년차인 1999년 여름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를 읽으며 그 놀라운 성공스토리에 흥분되어 밤을 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몇 명의 투자자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업체 후터스와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때였는데, 이 책을 덮은 다음 날 나는 회의를 소집해 ‘스타벅스Starbucks’를 소개하며 국내에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본사에 연락해 보니 그 때는 이미 ‘신세계’와 자본금 100억 원씩을 투자해 ‘스타벅스 코리아’를 설립한 상태, 명동점 오픈을 앞둔 상태였다. 그 날 후로 나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심순애를 빼앗겨버린 이수일의 심정이 되어 거의 한 달 동안 심하게 낙담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놓쳐버린 정말 아까운 ‘남의 떡’(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았겠지만)이 되었다. 

  그만큼 스타벅스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스타벅스 코리아를 함께 설립한 ‘신세계의 혜안‘에도 큰 인상을 받았다. 그 후 오늘날까지 스타벅스는 트렌드를 보는 나의 안테나 속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타벅스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한마디로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거대한 공룡’ 느낌이 가득했다. 국내에서 외화유출로 비춰진 로얄티 문제라든가, 메뉴판에는 없는 숏사이즈 컵 문제, 심지어 된장녀의 필수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국내 커피전문점으로 인한 문제점에는 항상 스타벅스가 들어 있었다. 국내 커피전문점 1위 업체이기에 어느 정도 ‘구설수’는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뜨악‘ 놀라게 한 것은 답답할 정도로 늦고 미흡한 스타벅스의 대응이었다. 왜 일까? 무엇 때문일까? 내가 책<온워드Onward>를 집어든 이유는 바로 그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이라는 기자가 공저했다)가 CEO로 복귀한 최근 2 년의 스타벅스 재기再起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작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집 그리고 직장과 함께 ‘제 3의 공간‘으로 만들면서 스타벅스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창조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책 전체를 아울러 새로운 디자인의 로고(잘 살펴보면 왼쪽 밤색의 로고는 울퉁불퉁한 수채 그림이다. 마치 냅킨 위에 묻은 커피잔 자국 같다)와 함께 '혁신과 리뉴얼‘을 외치며 스타벅스가 다시 태어났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영자(CEO)에게 자서전을 쓰는 일은 영화 ‘풀몬티’처럼 어려운 일이다. 성공스토리를 썼다고 하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자랑해야 하기에 솔직하게 털어놔야 하고, 순수한 자서전이라고 한다면 ‘과연 내가 자서전을 쓸 만한가?’ 하는 적당한 ‘염치(廉恥)’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자서전’에 대한 국내 시장의 생각이다. 

  외국의 기업가들은 자서전을 통해 ‘CEO로서의 자신과 기업을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잘 활용된다. 미국의 경우는 이 책처럼 소비자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활용되는 경향이 크다. 한편 일본의 기업가 자서전은 자사 임직원과 후학(後學)으로 대변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담아두었던 말을 유언하듯 내 놓는다(마츠시타 그룹의 마츠시타 고노스케,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가 대표적이다).

  반면 국내 기업가들의 자서전을 읽다가 보면(눈을 씻고 살펴봐도 일 년에 몇 권 나오지도 않지만 - 그 이유도 궁금하다. ‘업무에 몰두하느라 바빠서‘라는 궁색한 변명이 아닌 솔직한 대답이 듣고싶다) ‘저자의 자화자찬’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책을 낸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글, 그래서 아무도 감동시킬 수 없는 글들이다. 독자들은 기업의 총수 혹은 CEO의 이야기라고 해서 신문이나 언론에서 만날 수 없었던 솔직하고 유익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어서 책을 집어든다. 하지만 ‘모두 저 잘나서 회사가 잘 되었다’는 식이니(뒤집어서 본다면 CEO가 없어진다면 그 회사는 망한다는 말인가?) 실망스러울 밖에. 



  그 점에서 하워드 슐츠의 이번 책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그는 현재 전 세계를 돌며 이 책에 대한 '북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북미 지역 10개 도시와 캐나다 토론토 및 중국 상하이를 거쳐 내일(27일) 방한해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는 저자겸 스타벅스 CEO로서 스타벅스가 있는 나라들을 돌며 저자 강연과 사인회를 통해 자신의 책과 스타벅스를 알리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그는 국내에 도착해서 덕수궁 내 '정관헌靜觀軒(1900년경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궁중 건축물로 특히 고종 황제가 외교 사절들과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 공간)'에서 언론 대상 브리핑 행사를 열고, 교보문고 저자사인회와 연세대 강연 등을 벌일 예정이다. 내일 그의 행보에 언론과 미디어가 주목할 것은 뻔한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얄밉도록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국내 CEO들이 자서전을 쓸 때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살펴보자. 1982년 9월 7일, 미국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본 아담한 커피바에 반해 1986년 ‘일 지오날레Il Giornale’를 창업해 작은 성공을 거둔다. 그 후 몇몇 투자자의 지원으로 1987년 일 지오날레와 스타벅스를 합병해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0년 가을 현재, 스타벅스는 창업 40년 만에 연매출 100억 달러, 54개국 1만 6,000여 개의 매장에서 20만 명의 파트너들이 매주 6,000만 명 이상의 손님을 맞는 거대기업의 성장했다. 

  창업에 성공한 하워드 슐츠는 2000년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회장직에 있으면서 글로벌 전략과 사업확장에 집중하며 스타벅스의 매장 수를 늘리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2007년, 스타벅스의 매출 기록행진이 멈추고 하향세에 접어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끝없는 추락의 악몽을 겪게 된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성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업의 핵심 가치는 점점 놓치고 있었다. 이는 결코 누군가 한 사람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가 느슨해져 스웨터 전체가 풀어져버리듯,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손실이 커져갔다. (중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부의 상황들마저 회사 내부의 문제들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당시 불어 닥친 세계 금융 위기는 신용 위기와 주택 시장 붕괴, 높은 실업률을 촉발시켰고 결국 전 세계가 불경기의 늪에 빠지게 됐다. 이와 동시에 소비자의 행동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위해 지갑을 여는 일에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을 의식하며, 윤리의식을 중시하는 등 정신적인 가치에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뒤집어진다 할 만큼 빨라진 세상의 변화가 주요원인이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 54개국으로 지점을 넓히는데 주력하는 동안 스타벅스는 정지된 반면 세계 경기가 바뀌었고, 소비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성공을 쫓아 미투me-too 개념으로 등장한 후발업체들의 무서운 추격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21세기의 10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명’에 스타벅스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그에 대한 하워드 슐츠의 답변은 인상적이다. 

  “디지털 혁명 역시 우리에게 위기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정보가 흐르는 방식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온라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가 급증하고 블로고스피어가 출현했다. 이제 전 세계인들은 실시간으로 막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한다. 이는 어느 특정 지역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순식간에 전 세계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40년 동안 지녀왔던 핵심가치 즉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스타벅스 정신’의 본질이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리스타가 있는 안쪽에서부터 풍겨나는 갓 볶은 커피향, 몸을 감싸는 푸근한 공기, 그리고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하는 바리스타들의 친절한 대화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벅스에 실망한 누군가의 말처럼 ‘커피계의 맥도날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선택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커피 바’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그대로 옮기고자 창업했던 일 지오날레의 시절로 돌아가고자 했다. 

  “일 지오날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커피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생활하는 데 활력소가 될 최상의 커피와 그에 관련된 상품을 제공합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고객의 삶을 충만하게 이끄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익만을 위해 윤리와 진실성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일 지오날레는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것이며, 모든 매장에서 품질과 성과 가치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고객의 존경과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CEO로 복귀한 하워드 슐츠가 가장 먼저 스타벅스의 영혼, 즉 핵심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변화를 시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혁신이었고, 그 모델은 비틀즈였다. 그리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걸러줄 필터로 세 가지를 선택했다. 이것은 바로 새로운 핵심가치인 셈이다.


 

첫째,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게 우리의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인가?

둘째, 스타벅스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것인가?

셋째, 고객의 머리와 가슴 속에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강화시켜주는 것인가?



그들이 찾은 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브랜드의 하나로서 인간 영혼을 고취하고 자양분을 공급하는, 영속적이고 위대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일곱 가지 혁신 운동을 확립했다. 

 

1. 논의의 여지가 없는 커피 권위자가 되자.

2. 우리의 파트너들을 고무시키고 참여시키자.

3. 고객들과의 감정적 교감에 불을 지피자.

4. 각 매장을 해당 지역의 중심으로 만들자.

5. 윤리적 원두 구매와 환경적 영향의 리더가 되자.

6. 우리의 커피에 걸맞은 혁신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하자.

7.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제시하자.

  이러한 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베스트셀러인 파이크 플레이스 로스트 블랜드를 출시했고, 보다 훌륭한 맛을 제공하는 탁월한 에스프레소 기계인 마스트레나로 교체했으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기존의 덩치 큰 커피머신을 버리고, 작은 커피머신 클로버로 교체했다.  한편 고객을 위한 보상프로그램으로 로열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회원들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모으는 온라인사이트인 마이스타벅스아이디어닷컴을 설립했다. 그리고 활발한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사업을 통해 24시간 고객과 함께 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했다. 그 밖에 펼친 다양하고 많은 활동과 마케팅은 세계 커피전문점 재탈환을 위한 고군분투였다.

책 제목이기도 한 온워드Onward는 미래에 대한 스타벅스의 다짐이자 결의다. 하워드 슐츠가 경쟁사와의 전투에 임하는 전투태세였다. 

  “온워드Onward는 핵심 가치와 초심을 잊지 않고 미래에 집중하는 긍정적인 태도로 나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중략) 온워드Onward는 손이 진흙으로 더러워지더라도 결국은 깨끗한 순백색의 결말을 맞는 것, 주주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의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그 무엇이다. 온워드Onward는 스타벅스가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번영하기 위한 섬세한 균형을 뜻한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스타벅스의 제2의 도약 이야기는 속도와 변화의 21 세기에 있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지난 세기를 주름잡았던 글로벌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조망해보면 놀랄만한 성장에 취해 잠시 자만하고 나태하다가 위기가 찾아왔는데 비해 스타벅스의 침체는 놀랍게도 세계 속에 지점을 심는 양적 규모의 확장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디지털 혁명의 도래’와 ‘소비자의 욕구의 변화’ 였다. 여타 기업들 역시 ‘우리는 그들에 잘 대응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스타벅스의 오늘과 내일이 궁금하다면 일독할 만하다. 특히 디지털 혁명의 21세기에 들어 글로벌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살펴야 할지 참고하기 좋은 본보기가 된다. 

P.S. -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스타벅스가 이미 제 2의 도약에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거의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나로서는 여전히 그의 말에 공감하기 힘들다(아마도 미국에 있는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호소한 말일 것이다). 글로벌 스타벅스 컴퍼니는 44%의 순이익을 남기며 성공했다고 하지만 국내의 스타벅스에서는 맛과 서비스에 있어 예전에 비해 탁월하게 바뀐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미 시장에는 커피 전문업체들이 즐비하게 쫓아 오고 있고, 가격과 품질 면에서 스타벅스보다 더 나은 평가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과연 스타벅스가 재기에 성공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의 기간 동안 유효할 수 있을까?

  하워드 슐츠가 이번에 시장 재탈환을 위해 들고 나온 카드 중에는 스타벅스의 인스턴트 커피 '비아Via)'와 캡슐 커피가 있다. 원두커피는 미국에서만 연간 650억 잔의 커피 가운데 고작 4% 정도 밖에 되지 않기에 인스탄트 커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도 스타벅스의 인스탄트 커피의 한국 출시에 대한 논의가 있을거라는 언론의 전망이다. 스타벅스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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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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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밀레니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시되었던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들이 새로운 출판사를 만다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원래 10부작을 계획했지만 갑작스런 사망으로 3부작만을 만들고 저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 그리고 장난처럼 끼적이던 소설들이 북유럽을 비롯한 33개국에 약 5,300만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하며 지구반대편을 뒤흔들었다. 국내 출간 당시 사실혼의 아내와 부친과 인세를 두고 법정다툼이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간 듯하다. 누가 막대한 인세를 받았건 독자에게는 관심밖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소설이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 주 개봉한 <제인 에어>를 빼고는 요즘 볼 영화가 마땅하지 않다. 줄거리가 뻔한 어설픈 영화를 보느니 맛난 커피 한 잔 사서 편안한 카우치에서 밀레니엄과 같은 멋들어진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늘 하는 말이지만 책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반면 책에 몰두한 남성은 어떤지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아내는 매일 보는 모습이라 별로란다. 헐~).  -Richboy

 

참고로 지난 2008년 이 소설 시리즈의 1 부를 읽고 내가 쓴 리뷰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시간을 잊게 만든 최고의 X등급 추리 스릴러소설 !

  한동안 즐거웠다. 유난히 더운 더위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16일을 환호하며 열광했던 북경올림픽을 보며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집합(集合), 기억(記憶), 광희(狂喜) 로 이어지는 채 끝나지 않는 폐막식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하나. '이젠 뭘 한다지?'...

  다행히 그 열광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 섬뜩하게 쳐다보는 여자아이 그림의 심상치 않은 책 표지에 끌렸고, 지금까지 전유럽을 1,000 만 부를 눈앞에 둔 경이로운 숫자로 팔리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포터'라고 불릴 만큼 놀라운 책이라는 소개글에 기꺼이 서재에 꽂게 만든 책을 지금까지 읽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이라고 언급했던 어느 프랑스 독자의 경고를 미쳐 알지 못했다. 폐막식이 끝난 바로 직후 읽기 시작했고, 난 월요일을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워야 했다.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 의 책, [밀레니엄I] 원제목은 les hommes qui n'aimaient pas les femmes (Millénium, T1) (Paperback)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상,하)이다.

  놀라운 작품에 어울리게 작가의 이력 또한 기이하고 신비롭다. 이 작품은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인데, 2005년부터 3년 동안 세 편의 시리즈로 [밀레니엄]을 발표했다. 3부 집필을 마치고 12일 후 2004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5년에 출간되면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는데, 그 인세는 32년을 함께 한 동반자인 그의 아내에게 전해지 못했다는 것.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현재 소송중이라고 하는데, 우습게도 그 시작은 '노후보장' 차원에서 10부작을 계획하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죽음이 정말 유감일 따름이다.

 

 



 

   책을 펴면 시작부터 풋내기 작가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대기업을 상대로 폭로기사를 썼다가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하게 된 베테랑 기자 미카엘 블로크비스트와 천재적인 해커지만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생활을 하는 미스테리 여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스웨덴의 대기업 가문에 숨어있는 미스테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당의 열혈 당원이자 독립 언론사의 기자였던 이력만큼 대기업의 횡포와 하수인으로 전락한 언론사의 비리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면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밀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면서도 범상치 않은 두 주인공의 활약과 매 번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들, 그리고 점점 커지는 스케일은 모래귀신의 늪에 빠지듯 깊이 깊이 빠지도록 만들었다. 현실과 가공을 넘나드는 리얼리티한 전개 또한 매력 중 하나인데, 주인공의 직업이 기자인데 저자도 기자였고, 진보적 성향의 사회고발적 폭로 기사를 주로 다루는 신문사의 이름이 [밀레니엄]이고, 이 책의 제목 또한 [밀레니엄]이다. 그렇기에 필연성과 정교함이 묻어난 생생한 '리얼리티'를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다. 

  장르를 장편 스릴러 추리소설(1, 2, 3부를 합하면 2,000 페이지를 넘는다고 한다)이라고 해야 할까? 1부는 800 페이지 가량.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몰입도가 최고치에 달해서 책의 두께와 시간을 잊었으니까. 반지의 제왕과 같이 주인공을 골자로 다른 사건을 펼치기 때문에 현재 출간된 1부로 하나의 사건은 종결된다. 올 9월에 나올 2부와 내년 2월에 나올 3부가 마냥 기대될 뿐이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라 욕먹을 것 같고, 조금 더 언급을 하자니 가슴만 답답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또 다른 잠재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따름이다. 여름의 끝에서 절대로 놓치면 안될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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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이긴다 - 직선들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
유영만.고두현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나다움을 찾고 싶거든, 먼저 곡선의 삶을 이해하라!

 

  지난 주 토요일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새벽 KTX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는 서초역으로 가는 지하철은 역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올랐다. 2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사당역에 내릴 때 나는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듯 걸어야 했다.

  ‘역시 서울이다’ 하고 감탄하며 걷던 순간, 난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날은 평일이 아닌 토요일 오전이 때문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리기를 하듯 환승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질세라 뒤를 쫓는 사람들. '결국 그들은 환승역 어디에서 만날 텐데, 왜 그리 서두르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한동안 한무리의 사람들을 지켜봤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정장을 입은 직장인은 없고 거의 대부분 평상복이거나 등산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발걸음과 행동은 평일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마치 함께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듯 자동문이 열리면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다렸다.  

  어떤 상황이든 매일 반복된다면 그 상황은 평범한 일이 된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이런 각성은 없었을 것이다. 지방의 지하철은 다르다. 출퇴근을 하는 한 두 시간만 반짝 북적일 뿐, 놀랄 만큼 한산하다. 지하철을 타도 그렇다. 조용하다. 아니 한가하다. 시간이 멈춘 듯, 생각이 멈춘 듯, 움직임도 슬로우 비디오가 된다. 무엇이 정상일까? 한 쪽이 게으른 걸까, 아니면 다른 한 쪽이 유난스레 바쁜 것일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날의 느낌이 통한 걸까.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곡선이 이긴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와 시를 모르는 사람도 기억하는 시인 고두현이 공저를 했다. 이 책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게 있어 곡선은 여자이고 몸매다. 부드러움이고 돌아감이다. 급級이 아닌 완緩이고, 지루함이고 덜 떨어짐이다. 답답한 선이 곡선이다. 그런데 ‘곡선이 이긴다니?’ 어림없는 소리. 그래서 이 책은 ‘읽기’보다는 ‘싸움’이었다. 저자의 말에 실눈을 뜨고 반박하려 했다. 칼로리 소모가 많은 스파링 같았다. 

  어떤 책일까 살펴보려다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고두현의 시 때문이었다. 이 책을 쓴 유영만 교수 역시 그 시로 인해 시(詩)가 갖는 곡선의 속도감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공감은 따스함이다. <버킷 리스트>를 통해 유교수의 글이 좋아졌지만, 묘한 인연 때문에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은 ‘늦게 온 소포’를 좋아하고 있었다.  



 

   
 

늦게 온 소포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도 하나씩 벗어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공고생 출신의 교수‘라는 수식어가 잘 말해주듯 학창시절부터 교수가 될 때까지 ’생각의 속도‘ 만큼 빠름을 재촉하며 바쁘게 살던 유교수는 어느 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황에 감옥 같았던 그의 병실생활을 위로해준 것은 시집(詩集)들이었다. 그 중에서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는 그에게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대한 감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느 책의 제목처럼 ’속도에서 깊이로‘ 사고하게 되었다. 

  <곡선이 이긴다>는 그 결과물이다. 그는 병상에 많은 시(詩)를 읽으며 이제껏 삶에서 시(詩)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짓는 과정은 오랜 고뇌의 흔적이 기록된 곡선의 여정이고, 시를 음미하는 것 역시 바쁨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관망하는 곡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다. 내달리는 직선뿐, 곡선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 서점가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다. 그 책이 마치 자욱한 안개 속을 걷듯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내딛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곡선이 이긴다>는 30, 40대를 살아가는 청장년들에게 우리가 걷고 있는 오늘과 내일의 길이 과연 제대로운 길인가에 대해 고민한 책이다.  

 

   
    “인생의 곡선을 응시한다는 것은 생생한 꿈을 찾는 행위입니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꿈입니다. 꿈은 직선으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죽 뻗은 직선도로로 쇄도하다가도, 어느 순간 굽이굽이 높은 산을 홰홰 돌고, 비탈길과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다시 한 번 질주를 하는 것이 꿈의 행보 아닐까요?꿈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것의 움직임이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직선과 곡선이 복잡미묘하게 얽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곡선을 살아내는 법, 음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직선을 질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곡선을 산책하며 삶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배울 때, 꿈은 비로소 우리의 가슴에 스며들어 체화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유영만 교수는 지금까지 고찰한 자신의 삶과 자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는 직선이 아닌 곡선에 있더라고 말한다. 나아가 직선화된 대한민국을 살아낼 생존법은 ‘곡선의 마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삶은 End 게임이 아니다 

  그는 우선 우리의 삶은 아주 빠르고 단호하게 결정짓는 End 게임이라기보다는 길고 넓게 봐야 하는 And의 향연이라고 말한다. ‘이게 마지막’이고 ‘이번이 안 되면 끝장’ 난다며 매 순간 마다 안달복달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기에 인생이 행복할리 없다. 유 교수는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나무를 가리킨다. 그리고 대나무의 마디는 ‘쉼’을 뜻하고, 그 마디의 힘으로 세찬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더 높이 자란다며 멈추고 잠깐 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끝장나는 End가 아닌 말 그대로 쉼Pause인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즐기는 여유, 그게 바로 곡선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곡선은 여유를 갖고 속도를 줄이며, 가끔 멈춰 방향을 점검하는 삶, 그리고 쉽을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형 삶입니다.” 48쪽  
   

 



 


에스프레소맨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한편 유영만 교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 우리의 의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즉 ‘나’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에게 규정지어져서 결국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분류하고, 혈액형별 성격이 다르다고 서로에게 딱지를 붙인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그것이 최선일까?’ 

  그렇게 고정된 프레임에 갇혀 남에게 규정되고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에 위너Winner가 아니면 루저Llser가 되는 것이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보면서 나는 어느새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저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미들맨middle man 정현욱 같은 사람, 골은 많이 넣지 못하지만 팀의 등뼈 역할을 하는 박지성 같은 사람, 커피로 따지자면 자체로는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페라떼, 아메리카노에 꼭 들어가야 하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런 에스프레소맨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곡선의 삶’에 주목해야 하고, 그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디스 소로가 ‘삶다운 삶’을 위해 월든 호수로 들어간 후 쓴 책 <월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자.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소로,<월든>에서 

 
   

 

  ‘사돈이 논을 샀다면?‘ 어른들은 배가 아프다는데, 아이들은 보러 간단다. 한 시가 아깝고 소중한 것이 내 삶이거늘, 틈만 나면 옆에 선 사람과 비교하고, 앞선 사람을 쫓아 살아가기 바쁘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수고‘를 담보잡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곧바로 ’달리기‘가 아니라, 잠시 ’멈춤‘이고 ’쉼‘인지 모른다. 터벅터벅 한 발을 내딛으며 ‘내 숨소리’ 한 번 들어보며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도쿄 타워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방법은 돈을 예쁜 엘리베이터 걸이 안내하는 엘리베이터에 돈을 주고 타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타워 바깥에



있는 계단을 공짜로 걸어가는 것이다.

  돈을 주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약간의 귀막힘과 울렁거림만 있을 뿐 금방 정상에 오르지만, 돈 한 푼 들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면 정상까지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이 요구된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이렇게 모두 515 계단을 오르면 심장의 맥박수 만큼 다리는 떨리고, 온 몸은 뜨거워진다.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도 많이 흐른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만날 수 없는 좋은 일이 있다. "여기까지 오르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쿄 타워에 근무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반갑게 맞으며 마른 수건과 걸어서 도쿄타워를 올랐다는 인증서를 준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선물은 나선의 원형으로 생긴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360도의 도쿄 전경이다.  

  <곡선이 이긴다>를 읽으며 ‘도쿄타워를 걸어서 가는 법’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빨리 승승장구하며 쾌속질주를 해서 정상에 오르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 뿐, 더 오를 것이 없다. 오래 즐기기엔 너무 심심하다.  

  만약 인생을 도쿄타워의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 하나씩 오르면 다리는 튼튼해지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515계단을 오르면서 타워 전체를 돌며 도쿄 시내를 하늘에서 전부 관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타워 도달'이라는 인생을 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죽어라고 돈을 벌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목적은 도쿄타워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것인가? 답을 알겠거든 이 책을 펴라. 인생을 쉬엄쉬엄 가면서도 만끽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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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팔도를 간다 : 서울편 -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토불이 산해진미를 찾아 그린 대한민국 맛 지도! 식객 팔도를 간다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 만화 시장에 새로운 장을 연 <식객>시리즈 베스트 컬렉션! 

  진수와 성찬이가 엮어낸 요리 이야기가 무려 스물일곱 권이나 되는 장편만화 <식객>에 이어 <식객, 팔도를 간다>시리즈가 경기에 이어 서울에 이르렀다. 그저 허영만 화백(이 존칭을 들을 사람은 작고한 고우영 선생 밖에 없다)의 왕성한 작품 활동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식객을 읽으며 매 번 ‘이번에 리뷰 한 번 해 볼까’ 마음만 한가득. 스물아홉 번째 <식객>에 이르러서야 리뷰를 쓴다.

 



 

  만화<식객>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다. 우선 국내 출판계에서 ‘만화도 돈 주고 사서 읽는 책’의 수준으로 올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아동용 학습 만화를 제외하고). 그 전까지만 해도 만화는 ‘만화방에서 읽거나, 빌려보는 정도’ 였다. 이처럼 만화는 좋아하지만 사서 읽지는 않는 독자들 덕(?)에 ‘한국만화 시장’의 열악성은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독자들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책이라는 물건을 사용개념이 아닌 소유개념으로 여겨 서재나 책꽂이에 모셔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마당에 만화책은 언감생심 책꽂이에 꼽아둘 수 없는 불경한 물건이었다. 만약 볼라치면 만화방에 가서 읽거나 스포츠 신문을 보는 척 몰래 읽어야 했다. 

  또한 만화책을 살 바엔 진짜 책(?) 한 권을 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만화책이 팔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식객>을 비롯해 <부자>, <꼴> 등 일련의 허영만 만화들은 만화와 함께 ‘정보적 요소’를 갖춰 ‘만화로 풀어놓은 전문서’ 형식을 갖췄다. 한국 독자를 제대로 읽은 것이다.

  독자들은 ‘유익하다’는 명분으로 주저하지 않고 만화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최근의 만화 시리즈들은 서재 한켠에 고이 모셔지는 특급대우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음지에 숨어있던 만화가 책 대접을 받으며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허영만의 만화들은 <부자>, <관상>, <한국음식> 등 국민 대다수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들, 그리고 꼭 알아야 둬야 할 주제들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몰래 숨겨서 읽던 만화, 혹 들키기라도 하면 ‘하라는 공부안하고 딴 짓 한다’고 욕을 먹어야 했던 만화가 이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책이 되었다. 또한 그의 만화가 갖는 스토리텔링은 우수해서 TV의 드라마, 영화의 원작이 되어 만화 컨텐츠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auce Multi use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객>의 비밀은 무엇일까? <식객, 팔도를 간다(서울 편)>에서 찾아보자.

 



 

  우선 생생한 현장감이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현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수시로 현장에 나가 그 모습을 메모해 둔다면, 허영만은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 사각의 프레임에 옮겼다. 그리고 허영만의 펜 끝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음식이 향기를 품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현장의 모습을 대조하는가 하면 현실과 다를 경우 그 이유까지 설명하고 있어 무엇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가늠하기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요즘 한 시간짜리 음식 다큐들이 많던데, 그에 비유한다면 <식객>은 ‘만화로 보는 음식 다큐여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기획력이다.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맛집을 수배하였고, 장소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찾아냈다. 인상적인 점은 가급적 독자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명 에피소드만을 골라서 엮었으니 <식객>을 읽지 않은 독자는 엑기스를 만나는 셈이고, 애독자에게는 베스트 컬렉션이 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을 어떻게 안 살 수 있을까?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마케터로서 독자를 먼저 읽고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만화의 컨텐츠를 구상했다. 아울러 장편만화의 대가답게 인내력과 긴 숨을 요하는 작품을 토해내며 매 편마다 독자들을 들뜨게 한다. 특히 이번 <식객, 팔도를 가다>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대로, 타향에 있는 대로 그 맛에 취하고,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독자들에게는 고향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럼 구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서민들의 대표적인 보양식 '설렁탕'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실직자인 세 명의 친구가 설렁탕집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서로 주방과 홀, 그리고 식재료 구매를 맡기로 한다. 설렁탕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주방을 맡기로 하고 유명한 설렁탕집에 위장취업을 한 서른 한 살의 청년이다. 

  처음엔 6개월 정도 주방에서 귀동냥을 하면 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25년 경력의 조리장도 아직 설렁탕을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국을 돌며 설렁탕수련을 떠나며 끝을 맺는다. 

  설렁탕의 유래에서부터 설렁탕 상식 그리고 레시피까지 담긴 설렁탕 부분은 웬만한 주방장의 레시피 메모보다 자세하다. 찬찬히 읽고 나면 ‘나도 한 번 창업을...?’하는 용기도 날테지만, 글로 배운 키스가 엉터리인 것처럼, 읽어 배운 요리법은 허당이다. 나는 그 진리를 세 번째 이야기인 ‘타락죽’을 통해 배웠다.  이야기 끝에 소개된 열 두어 줄 짜리 '타락죽 만들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쉬워보였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건방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케빈 씨가 먹은 성찬이의 ‘타락죽’을 먹고 싶었다. 성찬이의 밥상을 받기는 어려우니 혼자 만들어 먹을 밖에. 마침 집에 아무도 없어 잘 됐다 싶었다.

  찹쌀을 충분히 불리고, 선풍기에 바짝 말리고, 믹서에 곱게 갈아, 한지를 깐 프라이팬에 볶는 것까지는 좋았다. 한 컵 분량의 물을 부어 멍울을 풀고 쌀의 5-6배 만큼 우유를 넣는 부분에서 잘못된 것 같았다. 어설픈 쌀죽 위에 우유가 분리되어 훌렁거렸다. 초등학교 시절 급식시간에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아이를 보고 토악질하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채 반을 먹지 못하고 느끼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설탕대신 꿀을 넣은 것이 잘못이요, 많이 넣은 것은 큰 실수였다. 앞으로 수년간 ‘죽’이란 글자가 들어간 음식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다. 

  맛있게 만들지도 못한 타락죽 경험담을 굳이 이야기한 이유는 재미는 기본이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요리들이 직접 해 먹을 만큼 독자로 하여금 먹고 싶게 만들었다 점이다. 정말 기회만 된다면 만화에 언급된 요리 모두를 먹어보고 싶다. 권말에 있는 ‘서울 전통의 별미를 계절별로 즐기자’에 소개된 잣국수, 두부새우젓찜, 전복찜 등 16가지 요리들은 주말마다 만들어 먹을 도전 요리들 되었다. 재미로 한 번 읽고 맛으로 두 번 읽은 책, 진짜배기 서울 맛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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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리 초보
    from 제발 제발 2011-04-20 19:23 
    타락죽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 ^ 설탕 대신 꿀을 넣고, 더구나 '많이' 넣었다면, 님은 확실한 요리 초보십니다. 흐흣..(저도 자주 하는 실수라..^ ^;;)초보는 재료를빼먹기도 하고 더 넣기도 하고설익히기도하고 태우기도 하고, 온갖 실수를 하지만, 그 어떤 실수보다 돌이킬 수 없는건양념을'너무 많이' 넣는실수 같아요.소금, 간장, 설탕, 마늘, 식초, 고춧가루.. 모자랄때더 넣기는 쉬워도,많이 넣은 것을 덜어내기는 어려우니까요. ^ ^;;조금 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