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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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딩으로 리드하라 - 잘 정리된 인문고전 독서 입문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보면 크게 두 개의 대답으로 나뉜다. 바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둘 모두 훌륭한 대답이다. 책 한 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으니 무료한 시간을 즐겁고 유익하게 보내는데 책읽기보다 나은 것은 없다.

  또한 깨달음을 얻는 방법 중에도 책읽기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성인聖人들이 경험했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보고, 듣고, 경험해서 ‘느낌’이 있었다면, 그것이 깨달음이 된다. 한마디로 어제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주는 ‘느낌의 경험치’가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깨달음은 ‘알게 되었다’는 기쁨을 준다. 그 기쁨은 처음으로 사탕맛을 알게 된 어린 아이의 커진 눈동자처럼 나를 놀라게 하고, 스스로 배움으로 알았다는 뿌듯함은 묘한 재미도 준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조건이 여의치 못했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활자책이 없던 옛날에는 책이 많지 않아 책 한 권을 읽고 또 읽어서 외울 정도가 되니 깨달음이 컸고, 책이 차고도 넘칠 만큼 많아진 오늘날은 안목만 갖춘다면 깊이가 백 권 정도 되는 책을 쉽게 만날 수도 있다.

  한편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책읽기를 꽤 즐긴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책들이 있으니 바로 고전古典이다. 짧게는 100~200년, 길게는 1,000~2,000년 이상 살아남은 이 책들은 책 중의 책, 인류가 걸어온 역사의 정수이다. 고전古典이 좋은 책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어려워서, 혹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해서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혹자들은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고전古典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고전古典은 과연 훌륭한 책일까? 만약 훌륭하다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는 이런 질문을 위해 태어난 책이다. 이 책은 고전의 위대함을 알리고, 일반인들이 쉽게 고전 읽기에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꿈꾸는 다락방>의 작가이자 다독가多讀家인 이지성이 썼기에 이론을 통한 학문적 접근이 아닌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들을 담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어 읽기가 좋다.

  이지성은 고전읽기를 하다보면 그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분명 이 시대의 천재들이다. 그러나 불멸의 인문고전을 남긴 진정한 천재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기껏해야 머리가 조금 좋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일 앞으로 10년 동안 매일 두 시간 이상 위대한 인문고전을 남긴 진짜 천재들에게 개인지도를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인문고전은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진정한 천재들이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놓은 책이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존 스튜어트 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정수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누구나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다. 

1. 바보 또는 바보에 준하는 두뇌가 서서히 천재의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2. 그동안 억눌려 있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3.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천재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인문고전 독서의 힘

  인류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왜냐하면 인문고전 독서는 나라를 이끄는 힘이자 지배층이 되게 하는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독서가 곧 그들의 업業이었고, 노비들이 책을 들으면 양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엄벌에 처했다. 중국의 지배계급도 인문고전 독서를 지나칠 정도로 중시했고, 일본의 쇼군 계급들은 중국 고전을 마치 비밀문서처럼 귀중하게 여겼다. 유럽의 왕가와 명문 귀족은 평민 이하 계급들에게, 미국의 백인 지배 계급은 흑인들에게 독서는 물론 문자 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은 책의 수준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두뇌가 우수하지 못한 인간은 두뇌가 우수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지배계급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21세기 지구의 지배계금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여전히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다. 미국에는 ‘그레이트 북스 재단’이라는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 및 독서토론 모임이 있어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인문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교와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교육 전통은 전부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엘리트 교육 코스는 아래와 같다.  

1. 가정교사에게 기초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2.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해서 체계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3.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들어가서 그리어서 및 라틴어로 진행되는 인문고전 수업을 듣고,

그리스어 및 라틴어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국가 주도의 인문고전 독서 열풍이 불기 시작해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930년대 일본의 명문 고교와 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독서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고 있었고, 고교와 대학 시절 동안 4,0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사례가 평범한 경우에 속할 정도로 치열하게 독서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의 정계. 관계, 재계는 이미 학창 시절에 그리스, 로마, 유럽, 중국, 인도, 일본의 인문고전을 읽은 인재들을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었고, 국력을 혁명적으로 신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문고전 독서는 나라와 가문과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니 나라와 가문과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뭔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거든 낙담하거나 한탄할 시간에 인문고전을 펴길 권한다. 1,000~2,000년 된 지혜의 산삼을 두뇌에게 실컷 먹이기를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당신 자신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당신 가문에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우리나라와 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리더를 만드는 교육법, 인문고전 독서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독일의 한 시골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뮈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유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해, 저능아인 카를 비테 주니어를 가르쳤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엔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 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로 책을 썼고, 하버드 대학 교수 레오 위너 교수와 보리스 사이디스 교수, 태프트 대학교수 벌 등은 카를 비테의 교육법을 따라 해서 자신의 자녀들을 하버드 대학에 입학시켰다. 인문고전을 통한 교육은 서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치원 황상은 나이 열다섯이 되도록 한문은커녕 한글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유배지로 내려온 정약용을 스승삼아 인문고전을 배운 몇 년 뒤, 황상은 조선의 천재들을 매혹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연암 박지원 역시 열다섯 살이 되도록 문맹이었지만, 처숙 이군문으로부터 인문고전 읽는 법을 배우고 3년 동안 두문불출한 후 천재가 되었다. 

  전교 꼴찌를 하다가 학습 부진아 반에 들어간 적이 있는 아이작 뉴튼은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인문고전 독서를 배워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가 되었고, 학교를 다닌 기간 내내 전교 꼴찌였던 윈스턴 처칠도 어머니의 권유로 스물세 살에 인문고전 독서를 처음 시작해 죽을 때까지 하루 평균 네다섯 시간씩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역시 교사 출신 어머니의 극진한 인문고전 독서교육 덕분에 이십대에는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리겠다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대로’에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독서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문고전을 읽고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에디슨의 어머니가 치른 것 같은 자신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 철저한 자기투쟁이 따르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는 지식의 축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식은 인간을 변호시키지 못한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있을 때 생겨난다. 그 ‘지혜’를 갖는 것이 바로 인문고전 독서를 통한 ‘변화’인 것이다.

인문고전을 통한 교육을 펼쳤던 카를 비테의 교육방식이 리더의 교육이라면, 우리나라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는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초중고교를 합쳐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는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인 이유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자.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자.  

평범한 이들을 세계최고 부자로 만든 인문고전 독서 

  세계 금융계의 황제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처음 철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에라스뮈스, 마키아벨리, 홉스, 베르그송 같은 천재 철학자들의 철학고전 도서를 통해 사고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 성공 비결을 ‘철학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철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철학 논문을 쓰고, 세계적인 철학자들을 자택에 초대해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금융분석가로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분석 및 가치투자 이론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도 인문고전 독서가로 유명하다.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 졸업하기도 전에 총장으로부터 철학교수로 임명해 줄테니 모교에 남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펀드 운용 능력을 인정받아 20세기 최고의 주식투자자, 영혼의 투자자로 불리는 존 템플턴. 그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라”라고 대답할 정도로 유명한 독서광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펀드 매니’저라고 불리는 피터 린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서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인문고전 도서로 쌓은 사고의 힘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과학, 수학, 회계학 같은 일반 경영학 과목은 필수과목을 제외하고는 피해다녔다. 대신 인문 과목을 주로 수강했다. 역사, 심리학, 정치학을 배웠고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종교학, 고대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다.”
 

  벤저민 그레이엄을 비롯한 진정한 투자의 구루들이 최고의 실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눈앞의 이익이나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뇌 속에 ‘철학하는 세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하는 세포는 오직 철학고전 독서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들은 말한다. “월 스트리트식의 금융시장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탐욕으로 가득 찬 소위 금융 전문가들과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구름 같은 군중의 행렬을 과감히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이 죽는 길이다, 라고 한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만일 누구라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애독한 책을 읽어서 그들 같은 사고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서점에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등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승자들의 투자 비법을 담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의 책을 죽어라고 읽고 그들의 비법을 열심히 따라 한 사람 중에 놀라운 이익을 실현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열한 인문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뒤에 터득한 투자의 비결을 담은 그들의 글을, 인문고전을 전혀 하지 않은 두뇌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투자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오토바이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이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곡예사가 쓴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겠는가? 최소한 중상, 최악의 경우 사망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승자들이 가르쳐주는 비법을 따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자본 생성 능력을 낳은 근본적인 요소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그들의 기법만 따라 하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을 걷는 행위일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

 

1.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세종대왕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백독백습百讀百習 즉 100번 읽고 100번 필사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치열함이 엿보인다. 그는 왜 그토록 힘들게 독서를 했을까? 나는 그가 백성을 애타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이 최고가 되지 못하면 신하들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종은 먼저 자신을 뜨거운 독서의 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한편 세종은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인문고전 독서는 독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인문고전 독서법의 핵심은 천재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2. 맹수처럼 덤벼들어라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태도부터 남달랐다. 그들의 독서태도는 열정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서애 류성룡은 ‘맹자’를 읽을 때 물 긷고 밥 짓는 시동 하나만 데리고 빈 암자로 들어가 전투적으로 독서했다. 남명 조식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자리에 앉아서 독서했는데 온종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서 사람들이 조각상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중국의 천재 시인 도연명은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먹고 자는 일까지 까맣게 잊은 채 책 속에 빠져나올 줄 몰랐다. 유배지에 도착한 다산 정약용은 말 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지만 ‘ 이제야 독서할 여유를 얻었구나’하며 기뻐했다. 성호 이익은 아예 책을 가족을 대하듯 했으니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오랫동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독서하라. 아픈 자식의 치료법을 묻는 사람처럼 질문하고 토론하라.”  

3.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라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 태도를 보면 그들이 결코 태어날 때부터 천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성리대전’을 읽고 책의 의미를 알 수 없다며 집현전 응교 김돈에게 독서과외를 부탁했고, 퇴계 이황은 젊은 시절 인문고전 독서를 하다 그 방법을 알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병까지 얻어 몇 년 동안 책을 읽지 못했던 적이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도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다가 어려워 수시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고 하고, 마하트마 간디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처음 듣고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즉 인문고전을 독서할수록 천재에 다가간 것이다. 이 같은 천재들의 노력을 담헌 홍대용의 말이 잘 대변해 준다. “처음 인문고전을 접할 때 누구인들 힘들고 괴롭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구차하게 편안한 독서만 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내던지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4. 위편삼절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어라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編 義自見이란 말이 있다.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는 뜻이다.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가 한 말로 그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라고 말했다. 반복독서는 천재들의 독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자 천재들이 가장 강조한 독서법이기도 하다.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방법으로 반복독서를 택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던지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위편삼절韋編三絶)고 한다. 또한 주자는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어서 알면 나는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 읽어서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고 말했다. 

  한편 세종은 ‘구소수간’이라는 책을 1,100번 반복해서 읽었다 하고, 영조는 ‘소학’을 백 번 넘게 읽어 눈을 감으면 언제나 암송할 수 있다고 했다. 정조 역시 주자의 “맹자가 내 안에 들어앉게 하려면 수백 수천 번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독서 좌우명으로 삼고서 ‘맹자’를 읽었다 한다. 

5. 연애편지를 쓰듯 필사하라

  천자들의 필사를 살펴보면 그들의 인문고전의 저자와 어떤 정신적 교감 같은 것을 나누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필요나 의무감 또는 욕심 때문이 아닌 벅찬 감격과 떨림 그리고 기쁨과 설렘 속에서 필사를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자신이 읽은 부분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필사하는 방식도 선호했다. 키케로, 아이작 뉴턴, 존 스튜어트 밀, 니체, 마리 퀴리, 자와할랄 네루, 윈스턴 처질 등이 이 필사법을 따랐다. 필사법 가운데 초서抄書가 있는데, 초서란 인문고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옮겨 적은 뒤 이를 주제별로 분류, 편집해서 책으로 만드는 것인데, 조선의 천재들이 취한 기본적인 독서법이었다. 정조는 ‘일득록’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즐겨한 독서법은 초서였다. 내가 직접 필사해서 책을 이룬 것만 해도 수십 권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효과가 매우 크다. 그냥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한 필사는 종이 위에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인문고전과 내가 하나가 되는 상태, 이 상태를 르네상스의 천재 페트라르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그 것을 외우도록 노력해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여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보게.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6. 통할 때까지 사색하라

  ‘반복독서’와 ‘필사’까지는 낮은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사색’이다. 독서의 완성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사색을 억압하고 소멸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관중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라고 말했다. 사색이 빠진 인문고전 독서는 헛것이요, 가짜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가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다. 한편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말했고, 주자 역시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를 게 없다. 글을 숙독하면서 정밀하게 생각하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색이 없는 독서에 대해 성호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책을 읊어도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장님처럼 되고 만다.” 독서했다면 사색하라.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7.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라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의 핵심인 ‘반복독서-필사-사색’은 ‘깨달음’을 향해 있다. 이는 곧 ‘깨달음’이 있는 독서를 해야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깨달음이 있는 독서란 책을 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요, 그의 정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인문고전의 저자와 동일한 수준의 사고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인문고전 저자의 마음을 아는 경지, 그것은 황홀한 기쁨과 함께 온다. 에라스뮈스, 니체, 헤르만 헤세는 는 경지에 도달한 순간을 “끝없는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괴테에게 있어 그 순간은 ”밝은 방 안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고, 마하트마 간디에게는 ”나를 사로잡고 뒤흔드는 대사건“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감각과 감성을 단번에 사로잡는 영원한 아름다움“이었다. 

  이처럼 진정한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즉 환희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이 한때 평범하거나 심지어는 둔재이기까지 했던 그들을 천재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문심혜두文心慧竇를 여는 것, 즉 아이로 하여금 글쓴이의 마음을 깨닫게 해서 두뇌 속에 숨어 있는 지혜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한 만일 문심혜두를 열지 못한다면, 만 권을 책을 읽게 되더라도 헛된 것이라고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으로 인문고전을 읽고, 필사하고, 사색하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문장 뒤에 숨은, 천재들의 인류를 향한 숭고한 ‘사랑’이. 그 사랑과 만나는 순간 당신의 심장은 위대한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인문고전 독서의 필요성과 함께 독서법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록으로 첨부된 <부모와 아이를 위한 인문고전 독서교육 가이드>와 <성인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 가이드>, 그리고 <대표적인 인문고전 독서가들>들은 인문고전을 고르는데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이 리뷰는 기업의 요청에 의해 작성한 '써머리 형식의 리뷰' 임을 밝힙니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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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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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열정적인 삶과 순수한 영혼이 담긴 곳, 서재

 

  ‘내가 읽는 것이 곧 나.What I read What I am.’란 말이 있다. ‘많지 않은 시간, 가려 읽으라‘는 선독選讀을 권하는 문장일진대 참으로 옳고도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 ’읽다 만 내‘가 켜켜이 쌓여있다. 왜 읽었든가 살펴보니 정말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나를 만날지,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책을 읽으며 변해가는 나,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느낌이 그지없이 즐겁기에 오늘도 책을 읽는다. 

   사람들은 남의 책에 참 관심이 많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남이 읽고 있는 책은 더 재밌어 보이나 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책을 읽다 보면 예의 책을 살피는 시선들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닌데 스마트폰 때문에 더욱 보기 힘들어졌지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주로 그 사람 앞으로 가는 편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어떻게 생긴 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살핀다. 독서하는 모습을 살피는 이유는 몰입해 읽는 그의 표정으로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늠할 수 있어서다.

   만약 심취해서 읽는 모습을 본다면 최대한 앞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세를 만들어 -당연히 눈치를 채겠지만- 제목과 표지 이미지를 살피고 어떤 내용을 담았을지 상상해 본다. 그때 마다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꼭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서점에 가면 자세히 살펴보리라. 그래서 나 또한 저 표정을 경험하리라’ 다짐하지만 십 수 분 후 지하철 환승장에서 사람들과 한차례 씨름을 하고 나면 마치 그들에게 생각을 빨려버린 듯 조금 전 무엇을 생각했든가 조차 잊어버린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잊어버린 읽고 싶은 책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남의 집에 처음 가면 꼭 들리고 싶어지는 곳화장실과 서재일 것이다. 낯선 곳이 익숙해지려면 내가 그곳을 ‘읽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상대를 가늠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 중 많은 것이 화장실과 서재에 노출되어 있다. 화장실에 가는 이유는 그냥 저절로 마려워서다. 낯선 곳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동물적 배설본능에서 비롯한 때문이다. 화장실을 보면 그 집주인의 위생관을 알 수 있다.

   서재를 살피는 상대(집주인)의 내면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적 심리가 발동한 때문이다. 역시 서재를 보면 그 집주인의 지식수준과 인생관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집주인의 서재를 볼 때의 마음가짐이다. 서재를 단순히 살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기 위해’ 좀 더 확실하게 말하면 ‘부러워지고 싶어서’라는 점이다. 

   남의 서재는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은 내가 읽지 않아서 부럽고, 내가 읽었던 책은 ‘아, 그는 이것도 읽었던가. 나보다 더 깊이 있게 읽었으리라’ 싶어 부러워진다. 어쩌면 그(혹은 그녀)에게 책의 공간, 서재가 있다는 자체가 부러운지도 모른다. 그곳은 집주인이 지금껏 쌓아올린 지식의 장場이며, 생각의 누적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것과 그들의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 그래서 마냥 부럽다.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아니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보이는 족족 그들의 책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고 싶다’는 욕심은 남의 서재를 볼 때 마다 드는 물욕物慾이다. 추잡하다 해도 할 수 없는 내가 갖는 도둑놈 심뽀다. 

   그런 내가 우리 시대 지식인 15명의 서재를 담은 <지식인의 서재>(행성:B 잎새)를 읽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내 맘 속에 품었던 책 욕심을 바늘로 찌르기로 벌한다면 아마도 재봉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도 전기 재봉틀이... 


  책 속에 있는 인물들 중에 이미 알던 사람은 알아서 반갑고, 채 알지 못했던 사람은 알게 되어 반가웠다.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서재 앞에서 책 이야기를 한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장면은 더 없을 것이다. 그 중 유독 관심을 둔 인물은 조국 교수와 최재천 교수, 김용택 시인, 이주헌, 그리고 장진 감독. 평소 흠모하던 사람들, 이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책은 샀을 것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책은 제 정수리에 죽비를 내리치며 자의 한계와 편향을 알려줍니다. 책은 나의 스승이자 동지이고, 친구이자 연인이며, 훌륭한 적이 되기도 하죠.” 따라 읽노라니 조국 교수가 말하는 책에는 맑고 청량한 중저음이 들리는 듯했다. 진화심리학의 늙은 수컷 침팬지 이야기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If everybody is thinking alike, then somebody isn't thinking."는 벽그림만으로 그가 진보를 택한 이유를 스누핑snooping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르게 생각하기, 도전하기, 그리고 멈추지 않기. 이 모든 것이 그가 책을 읽는 이유, 오늘을 사는 이유였다.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란 책을 번역하면서 국내에 최초로 통섭의 개념을 알린 최재천 교수는 서재 역시 ‘통섭원’이라 불렀다. 모든 학문이 소통하는 서재, 그는 차라리 인문학자 같았다. “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는 철학자 베이컨의 말은 그가 책을 읽는 방식을 대신하고, 돈 대신 책이 많아 재벌이 아니라 책벌이라는 그의 말은 책사랑을 가늠케 한다.   

선박 없이 해전海戰에서 이길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책 없이 세상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난 장진 감독이 좋다. 그가 많은 영화보다 그가 더 좋다. 개구쟁이 같은 얄궂은 그의 미소가 좋고, 청량한 목소리가 좋고, 건방진 말투가 좋다. 무엇보다 그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뼈와 칼이 좋다. 그가 생각하는 독서 역시 마음에 들었다. 
 

   “독서는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몸 어딘가에 취향으로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말하는 언어들은 언젠가 내가 읽었던 책들의 영향으로부터 빚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정확히 누구의 어떤 책이다’라고 꼽는 건 우습죠. ‘어떤 책의 어떤 구절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라고 어느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책이란 읽히지 않으면 죽은 나무의 시체일 뿐, 그 물성物性으로는 이루는 것이 없다. 서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서재의 크기와 책의 수량에 관심두기보다 그것들의 주인장이 갖는 서재와 책, 그리고 독서에 대한 의미에 관심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변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중국 현대미술의 대가로 알려진 동양화가 이가염은 자신의 서재를 식결재識缺齋라 불렀다. 부족함을 아는 서재, 이보다 더한 서재의 이름은 없다 생각했다.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닌,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다. 부족함을 알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고자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재 역시 부족함의 크기를 아는 공간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남의 서재를 보고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서재의 책들을 통해 담았을 지식의 규모가 아니라, 그들이 부족함을 인정한 겸손함의 크기가 아닐까.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는 위안이 된다.

- 로마시대의 철학자, 키케로

   나루케 마코토는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에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은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데다, 자기만의 철학이나 주장도 있을 리 없으므로 그저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양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남의 행동을 따라 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면 테러리스트가 되어도 좋다‘고 말했다.

   “책을 열심히 읽고 자기 인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아이가 꼭 정치가나 의사와 같은 화려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테러리스트가 되면 어떠랴. 체 게바라처럼 낭만과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라면 그것도 근사한 일 아닌가.”

   <지식인의 서재>를 통해 각각의 인물에 두 걸음 만큼 가까워졌다. 안 그럴 것이라 다짐했건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읽어야 할 늠’으로 따로 적은 것이 또 태산 같아졌다. 나이, 직업, 성격, 취향 모두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책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서재라는 공간에서 뭉쳤다. 난 한 켠 곁에서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그들을 마음껏 훔쳤다. 그들의 서재는 여전히 부러웠지만, 한편 난 책을 좋아하는 열다섯 명의 새로운 동지를 얻었다. 책읽는 사람들이 점점 귀해지는 세상, 제대로 책을 즐기는 이들을 15명이나 만났으니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 있을까(행성B여, 복 많이 받으시라)?어디선가 그들의 글을 만난다면 난 ‘동지여, 잘 있었는가’하고 인사할 것만 같다. 이 책이 날 그렇게 뻔뻔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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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재테크 도서의 변화

재테크하려거든 우선 불신不信부터 하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가까이 ‘재테크’라는 단어는 터부시되었다. 어느 대화에서건 이 말만 꺼내기만 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간이 구겨지고, 입술이 씰룩거려서 분위기가 험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재테크에 대한 이러한 푸대접은 출판시장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 2년 동안 재테크 도서의 매출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경제경영서 매출에서 재테크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이니 경제경영서의 매출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얼어붙는 경기에 국내외 투자수단의 지수들이 하나같이 마이너스를 향해 곤두박질쳐서 ‘재테크’에 이가 갈릴 지경이니 책이 팔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재테크 즉, ‘개인이 재산을 관리하는 기술’은 불황에도 필요한 법, 사람들은 스멀스멀 다시 재테크 코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단 돈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지갑을 열기 전 효용을 따지게 된 그들은 주식-펀드-부동산-저축 상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나열하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용성이 없는 옛날 재테크 도서에는 더 이상 흥미를 두지 않았다.

  또한 이번 금융위기로 수익률에 내포된 리스크(위험)를 배웠기에 무조건 ‘높은 수익률’이 예상된다고 해서 모두 ‘좋은 투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금융위기 이전의 재테크 성향이 ‘꿈이 더해진 공격적인 재테크’였다면, 이후의 재테크는 ‘철저하게 100% 팩트fact에 근거한 보수적인 재테크’로 변했다. 그리고 몇 달, 몇 년짜리 행운 같은 재테크 계획 대신 80년 생애를 생존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재무설계, 즉 재산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재테크 도서들도 재빨리 변화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전 코스피가 2000 포인트를 넘나들던 2007년 11월까지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는 단연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한스미디어)였다. 이 책은 이제 막 취직한 20대 직장인에게 직장 5년 만에 1억이라는 종잣돈을 모으고 싶다면 5년간 미치도록 돈을 모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소비를 할 때는 항상 절약을 염두에 둬라, 지출을 위해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어라, 술값을 절약하기 위해 모임도 줄이고, 심지어 1억을 모으는 5년간은 아예 연애도 하지 말라는 책 속의 뻔한 내용들은 엄마의 잔소리 같았지만, 현가와 복리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상적이고 생활 속에서 목돈 만드는 습관 키우는 요령 등은 실행 가능해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대한민국 2030 재테크 독하게 하라>(미르북스)도 출간되었는데, 대한민국 No.1 재테크 커뮤니티 20만 회원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는 선전에 많이 팔려 그 해 올해의 책이 되기도 했다. 이 책 역시 재테크의 기초 마인드 확립부터 출발해서 금융 지식, 펀드, 주식, 보험, 내 집 마련에 대해 두루 설명하고 성공사례들을 수록했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20대들이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쓴 맛을 톡톡히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투자자들에게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변화를 가져왔다. 부자들은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묻지마식 재테크’ 대신 스스로 재테크에 참여하며 본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모르는’ 자산관리에서 ‘아는’ 자산관리로 트렌드가 변화한 것이다.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적금까지도 늘어났다. 구식 재테크 수단으로 취급받던 정기적금은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속에 증가세를 보였다. 서민들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다시 적금 같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갔고, 2009년 통장만 잘 굴려도 목돈을 모을 수 있다는 <4개의 통장>(다산북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재테크 분야 올해의 책에 올랐다.

   <4개의 통장>(다산북스)은 ‘자동 돈 관리 시스템’이라고 해서 급여 수령 및 고정 지출 관리용인 급여 통장, 변동 지출 관리용인 소비 통장, 예비 자금 관리용인 예비 통장 그리고 투자 관리를 위한 투자 통장, 이렇게 통장 4개를 이용해 돈의 용도를 구분하여 활용하면 자동으로 돈이 쌓이고 불어나게 하는 통장 관리의 기술을 담았다. 아울러 지출을 통제하는 지출 관리, 예비자금을 보유하는 예비자금 관리, 장기간 투자하는 투자 관리의 3단계 돈 관리법을 통해 저축하고, 대비한 후 투자하라고 권했다. 

   <4개의 통장>이 부자가 되기 위해 저축을 통한 충실한 돈 관리를 강조했다면, <부자통장>(청림출판)재테크나 통장관리에 앞서 ‘돈을 대하는 태도’부터 고치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번번이 재테크에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양철냄비 근성’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시작하면 빨리 이루고 싶어 하고, 이루어낸 성과를 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복달하는데 우리의 그런 성향이 재테크에 그대로 적용되어 투자하기만 하면 손실을 본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근시안적 안목대신 일생이 늘어난 만큼 투자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재무설계를 권했다.

재테크에 있어 1~5년짜리 단기적인 전술이 아닌, 10년 이상의 중장기 전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은 이영권의 <부자가족을 가는 미래 설계>(국일증권연구소)이 먼저였다. 저자는 가정성공학의 관점에서 행복한 노후설계를 위해 직장대신 직업을 갖고, 주가를 관리하듯 가족행복도 관리하며, 부동산보다 든든한 자녀교육에 투자하고, 재테크하기 전에 경제를 배우라고 강조했다.

출생률 저하와 노령인구의 증가로 대한민국은 지금 2005년 이후 8명의 젊은이가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젊은이 4.6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하고, 2050년에는 젊은이 1.4 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40~50대가 자식에게 부양을 의지하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되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 대신 생면부지의 노인들을 세금으로 모시는 첫 세대가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미래가 결코 핑크빛이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한편 <통장의 고백>(더난출판)과 <재테크의 거짓말>(위즈덤하우스)처럼 금융전문가들이 투자자의 편에 서서 ‘당신은 지금껏 돈을 잃는 재테크를 하고 있다’고 고백한 책들도 등장했다. 적은 돈이지만 꾸준히 저축을 하고 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참다못한 주부들이 맞벌이를 위해 저임금의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벌고 있다. 힘들게 모아 만든 주식 부동산 등 피 같은 재산은 인플레와 대출이자, 그리고 세금으로 점점 줄어들거나 금융위기 같은 악재로 10년 동안 오른 가격이 순식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다들 열심히 투자하는데, 돈을 번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저자들은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투자자들이 알기 어렵고 현혹되기 쉬운 금융거래의 맹점들을 지적하며 지금껏 언론과 금융기관을 믿고 투자했던 우리의 재테크는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뻘짓이었음을 밝혀낸다. 아울러 더 이상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금융지식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재테크의 변화 바람은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 25일 한국은행은 “3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 801조 3,9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주택수요가 큰 30~40대의 7가구 중 1가구꼴로는 아파트값 상승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후 빚 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이다. <하우스푸어-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더팩트)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주택 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69만 세대의 하우스푸어들의 실상을 낱낱이 분석해 지난 해 출간되었다.

  2008년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한경BP)와 <위험한 경제학 1,2>(더난출판)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가계대출과 PF 대출로 인한 암울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예견했던 선대인은 주택소유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는 리서처들을 동원해 등기부등본을 열람, 복사하여 철저한 팩트fact를 근거로 치솟는 아파트가격을 둘러싼 거대한 거짓과 음모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아파트는 더 이상 투자 대상이 아님을 역설했다.  

  얼마 전 출간된 <빌딩부자들>(다산북스)은 부동산 투자의 대세는 아파트가 아닌 ‘빌딩(수익형부동산)’이라고 주장했다(이 책에서 말하는 빌딩이란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매달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이다). “남의 돈 천 냥보다 제돈 한 양이 더 가치 있다.”는 말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매 달 천만 원씩 떨어지는 아파트 매매가를 보고 아파트는 더 이상 ‘부동산 불패신화’가 아님을 알았다. 아파트 투자의 대안으로 수익형부동산이 주목되면서 <빌딩부자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들의 음모>(흐름출판)에서 요즘과 같은 불황에는 ‘수익형부동산’을 통해 현금흐름을 위한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부동산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역시 ‘수익형부동산’을 주종목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부동산 투자방식을 우리나라에 대입한다면 ‘사람이 많이 몰리고 있는 수도권의 신흥도시에 연립주택이나 상가를 경매로 낙찰 받아 리모델링을 한 후 임대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재테크 도서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독자이면서 투자자인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투자하려거든 뉴스도 의심하고 신문 기사도 의심하자. 은행, 은행, 주식시장 등 투자대상은 무엇이든 일단 의심하자. 이번에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만 하더라도 피해자는 저축은행을 믿은 ‘순진한 투자자’들이 아니던가? 

  재테크를 하려거든 ‘맡기지 말고, 직접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안 먹고 못 입으며 번 피 같은 돈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지금은 배워서 아는 만큼 돈 버는 세상이다. 저축 상품 하나라도 충분히 배우고 익힌 후에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맡길 바에는 어느 책 제목처럼 차라리 ‘다 쓰고 죽는’ 편이 낫다.

   재테크에 관련된 책들을 실컷 뒤져본 결론이 ‘아무나 믿고 함부로 투자하지 말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아이러니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4개의 통장- 평범한 사람이 목돈을 만드는 가장 빠른 시스템
고경호 지음 / 다산북스 / 2009년 1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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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통장- 가장 빨리 부자가 되는 내 돈 사용법
박종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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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의 고백- 당신만 모르는 금융회사의 은밀한 진실
심영철 지음 / 더난출판사 / 2010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2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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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의 거짓말- 속지 않고 당하지 않는 재테크의 원칙
홍사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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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 KBS 특선 다큐멘터리, 세계 금융의 중심
CCTV 다큐멘터리 <월스트리트> 제작진 지음, 홍순도 옮김 / 미르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월 스트리트WallStreet - 미국 자본시장의 역사와 중국의 미래
   돈만 많던 왕서방이 드디어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경제 개혁, 개방 30년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중국은 어느덧 달러 외환 보유고 세계 1위, 금 보유 세계 1위, 세계 최고의 채권국이 되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굴리지 않으면 저절로 스노볼snow-ball(산꼭대기에서 굴린 주먹만 한 눈이 바닥에 내려올 때는 집채만 한 눈덩이가 된다는 뜻, 복리의 힘을 대표하는 말이다)이 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사실 중국의 일반인들에게 금융은 다소 낯선 개념이다. 신 중국의 자본 시장이 겨우 2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중국의 지식인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중국 국민을 계몽하기 시작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은 달러 대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자고 부추겼고, 예일대 경제학 교수인 천즈우는 “무엇 때문에 중국인은 부지런한데 부유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으로 <자본의 전략>을 통해 본격적으로 금융의 논리를 역설해 중국의 독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도 그들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 CCTV에 의해 제작된 동명의 다큐멘터리 10부작(국내에서는 지난 3월 29일부터 KBS에서 주2회에 걸쳐 5주 동안 방영되었다)을 그대로 지면 위로 옮긴 것이다. 성장을 향한 중요한 시기에 들어선 중국 자본 시장이 보다 건전한 발전을 위한 모델로 200년 역사를 지닌 월스트리트 자본시장의 발전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만든 취지를 알게 되니 흥미로웠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이 바라본 월 스트리트’라는 점은 회가 동했다. 놀랍게도 저자들의 시선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월 스트리트를 둘러싸고 생긴 굵직한 금융사적 사건과 인물은 방대한 사료와 기록물을 동원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잘 정리했다. 읽기 쉬운 만큼 재미도 있었다.  

  책의 구성은 크게 월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 맨들과의 맨투맨 대화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앞의 절반은 다큐멘터리 10부작을 말 그대로 녹취하듯 옮겨놓았다(다큐멘터리를 모두 본 후에 책을 읽었다). 후반부에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 짐 로저스를 비롯해 로스차일드가의 첫 비혈족 CEO인 나이젤 히긴스, JP모건의 증손자 로버트 펜노이어, 천즈우 예일대학 경영대학원 금융학 종신교수, 금융역사학자 존 스틸 고든, 닐 퍼거슨 등 다큐멘터리에 등장해 코멘트를 했던 월스트리트맨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을 옮겼다. 이 부분은 다큐멘터리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부분인데, 이 내용만으로도 책 한 권의 역할을 한다. 또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공통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중국 자본 시장의 미래’인 듯 그들이 말하는 중국의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곳은 인디언의 땅이었고, 400여 년 전 그곳은 네덜란드인들의 벽이었다. 200년 전 그곳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금융의 씨앗이었고, 100년 전 그곳은 미국의 번영을 이루어냈다. 오늘날 그곳은 세계를 향해 금융망을 펼치고 있다. 그 금융망은 강하지만 나약하고, 빛나지만 어둡다. 그 망은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기도 하지만, 경제를 멈춰 서게도 한다. 그곳은 바로 월스트리트다.” 

   뉴욕 맨해튼 남단의 월스트리트는 실제 길이가 6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금융 구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에서 취업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1제곱킬로미터 안에 무려 2,000여 개의 금융 기관과 40여만 명의 금융 종사자들이 운집해 있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다.  

   월스트리트는 그 이름이 가진 역사만으로 금융 시장의 대명사가 될 운명이다. 뉴욕의 옛이름은 뉴 암스테르담. 미국 초기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중상주의 사상뿐 아니라 네덜란드 고유의 금융 혁신 이념을 전파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해상의 맹주가 되어 뉴욕에 위협을 가하자, 영국인의 상륙을 막기 위해 벽을 쌓았는데, 이 장벽은 영국인들의 상륙을 막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장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대로大路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월스트리트Wall Street이다. 

  

   동인도 회사설립과 세계최초로 주식을 발행하고, 최초의 선물거래소를 설립한 네덜란드와 뉴턴의 금 본위제 연구를 통해 최초의 국제화인 파운드화가 실험된 월스트리트, 이처럼 이곳에는 시공을 가로지르는 금융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경제지와 언론을 통해 지금껏 수천 수만 번 들었으면서도 정작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월스트리트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본 것만 같다. 뉴욕 맨하튼의 작은 도시구역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곳이었는지 새로 깨닫게 된다. 한편 월스트리트에 대해 전 세계의 시선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쯤으로 여기며 그곳을 외면하는 이때 저자들이 중국 국민들에게 월스트리트를 새삼 주목하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중국에도 ‘월스트리트’와 자본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리라. 

   천즈우 교수 역시 이번 경제위기는 자본 시장의 단점의 대표적인 모습인데, 자본시장은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모두 지니고 있어서 단점을 두려워한다면 이제껏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최근 미국이 누리고 있는 자본시장의 영광을 누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본시장에서는 형태가 없고 냄새도 없을뿐더러 검사도 할 수 없는 금융 계약을 거래한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을 거래하는 것이 금융 시장과 자본 시장의 기본 특징이다. 자본 시장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이들이 자산이나 증권 시세를 조작하면 자본 시장에 위기가 도래하고 자산이나 증권 시세를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또는 지나치게 낮출 경우 시장에 버블을 형성하고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산 거품이나 금융 위기가 두렵다고 해서 금융 시장과 자본 시장의 발전을 지나치게 억제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 시장의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376쪽

   저자들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가 대신한 것 같다. 그는 세계의 자본은 아시아에 집중되고 있다며 단언컨대 향후 20년 사이에 세계에 큰 변화, 즉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이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확신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책을 완독한다면 당신도 공감하게 될 내용이기도 하다. 

   “투자자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물론 과거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반드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언제나 변한다. 시대 별로 항상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1920년대의 세계와 지금 21세기의 세계가 같은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이 같은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역사를 배우면 이 같은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항상 ”향후 20년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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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 copycats - 오리진을 뛰어넘는 창조적 모방의 기술
오데드 센카 지음, 이진원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하늘 아래 혁신이란 없다. 혁신적으로 모방하라!

   지난 3월 2일 와병설이 한창이던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이패드2 공개행사에 참석했다. 언제나처럼 검은 터틀넥 상의 차림에 청바지를 입고 자신감 넘치게 나타난 그는 ‘오늘 행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며 아이패드 2의 장점을 뽐 내면서 “2011년은 아이패드 2의 해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삼성과 휼렛패커드, 모토롤라 등의 로고를 화면에 띄운 뒤 청중들에게 “2011년이 모방꾼Copycat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보느냐.” 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탭에 대한 견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플은 지난 4월 15일 현지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 4G', '갤럭시 탭' 등이 애플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애플은 소장에서 "삼성은 자신만의 기술과 스타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개발하기 보다는 애플의 기술과 사용자환경(UI), 스타일을 베끼는 것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애플의 공격에 당하고만 있을 삼성이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일본 동경법원, 독일 맨하임법원에 애플 코리아를 상대로 총 10건의 특허에 대해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25일 인트라넷을 통해 "애플이 일방적으로 무리한 주장으로 먼저 소송을 제기해 왔다"며 "삼성전자를 `카피캣` 업체로 폄하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휴대폰 선도업체로서 위상과 자존심을 지켜 나가기 위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던 애플과 삼성전자은 카피캣(모방꾼)이란 단어 하나로 원수지간이 되었다. 이 때 한 사람이 뛰어들어 이들의 싸움을 말리며 ‘삼성전자가 카피캣이면, 애플은 더한 왕 카피캣‘이라고 말한다. 

   <카피캣copycat>(청림출판)의 저자 오데드 센카(Oded Shenkar)는 ’카피캣‘을 절대로 곁에 둘 수 없는 수치스러운 단어가 아니고, 또한 모방imitation은 기업의 생존과 번영에 혁신만큼이나 중요하며 또한 효과적으로 혁신을 실행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우선 궁금한 내용은 ‘애플도 카피캣’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그는 과거 애플의 CEO를 지냈던 존 스컬리는 매킨토시 기술 중 상당 부분이 애플 건물 내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며 이에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애플은 ‘조립 모방’의 대가다. 예전의 많은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애플은 기존 기술과 재료를 조합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중략) 애플은 혁신 기업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애플이 가진 진짜 기술은 자체 아이디어와 외부에서 얻은 기술을 함께 묶어서 우아한 소프트웨어와 멋진 디자인으로 조합해내는 데 있다. 간단하게 말해 애플은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들여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항상 그것을 자사에 맞게 수정하며 결과를 내는 기술의 오케스트라이자 완성자이다.” 139쪽


  이 싸움에 대한 저자의 핵심은 ‘모방이 뭐 어때서?’ 였다. 지적재산권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모방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방이 기업들이 피해야 할 부정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방을 전략적, 경영적 차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모방과 혁신은 서로 보완해주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각종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법정 소송을 통해 서로 ‘혁신기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둘 모두 ‘모방기업’인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에게 혁신기업으로 알려진 IBM, 컴펙, 델 컴퓨터, 닌텐도, MS 익스플로러, 포드와 GM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도 알고 보니 모방기업이더라는 점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들 기업의 탄생 역사를 통해 낱낱이 밝혀냈다.



   그렇다면 모방이 과소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시어도어 레빗이 말한 ‘혁신이란 이름의 신’을 배신한 이단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도 만유인력의 법칙과 뉴턴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후 “만약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오늘날 혁신이란 ‘창조적 모방’ 뿐이고, 세계화가 가속될수록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모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에 있어 효율성을 제고하는데 있어 그만한 전략이 또 없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할인점 업계의 선도기업 월마트, 그리고 혁신적인 컴퓨터업체로 알려진 애플의 성공과 이들을 추종한 모방 기업들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저자는 모방을 할 때 ‘모델의 성공 비밀이 담겨 있는 블랙박스를 풀고 해독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달린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대체로 실패한 모방 기업들은 진정한 모방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델 기업의 성과 뒤에 놓인 섬세한 인과관계를 파헤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델 기업을 지탱해주는 핵심 기둥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모방을 후원하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일반적 모방 대상을 넘어설 수 있는 모델 기업을 참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은 모방 능력의 부족으로 모델 기업과 그 기초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221쪽

   저자는 오늘날 기업환경은 혁신과 모방의 융합, 즉 ‘혁신적 모방’만이 복잡하고 빠른 비즈니스 환경을 이겨낼 생존법이라고 강조했다. 모방이 기업들에게 혁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혁신만이 살 길이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부셔놓았다. 아울러 모방이 모델의 외형적 ‘단순 카피copy'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된다면, 결국엔 효과적이면서도 집중적인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반도체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타깃으로 삼아 성공한 스토리, 2002년 머천다이저와 바이어집단을 이끌고 전 세계 마트를 누비며 모방함으로써 이마트를 가장 한국적으로 합리적인 할인점으로 만들어 월마트를 물리친 정용진 부회장 등 외서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국내 기업들의 혁신적 모방 사례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 놓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가 기술해 놓은 기업이 모방 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개발하고 섭렵해야 할 ‘6가지 능력과 프로세스’, 그리고 ‘혁신적 모방 법칙 10가지’는 ‘혁신적 모방가imovators'를 꿈꾸는 자라면 숙지해야 할 사항들이었다. 일독한다면 혁신과 모방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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