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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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가 달라 동조하기 힘든 호모오피스쿠스들의 이야기  
 

  애초의 생각과는 조금 엇나갔다. 물질만능주의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자가 되어버린 윌리 로먼의 이야기를 그린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차이는 시공간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사람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잘 나가던 광고회사 직원들이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는다. 격분한 해고자들의 뜻하지 않은 행동들, 그리고 자신들도 해고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회사생활을 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야기,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 떠오로는 신예 조슈아 페리스의 처녀작이고, 원제는 Then we came to the End 다.  


 

  세계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작금의 경제상황에 이 책을 펼치는 의미는 남달랐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 계속 엇나가고 있었다. 닷컴 붕괴로 실직되는 광고회사의 직원들은 보통 샐러리맨들과는 차이를 갖는다. 그들에게 닥친 해고통지는 패배를 모르는 엘리트들에 대한 사형선고다. 그래서 그들의 광기는 소설속 허구라는 인정하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회사측의 '해고통지'가 마치 의사의 '정신이상판정'을 내리는 순간과 닮아 동조하기가 여러웠다.  

  특별한 대우와 월등한 보수는 엘리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근무태만은 창작을 위한 소일이라 여기는 그들에게 꺼져가는 닷컴의 거품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마치 오늘날의 월가처럼. 월가의 신참내기 직장인이 IT의 떠오르는 강국 한국에 와서 밤에는 육지주림에 빠져 있다가 낮에는 산해진미로 해장하며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수억의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호강을 세상에 알렸다. "난 지금 한국에서 왕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그 또래들의 이야기인듯 해서 그들을 수발하고, 보좌했던 한국인으로서 읽는 내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의 광기와 몰락에 조금은 고소함을 느꼈다. 나도 미쳐가는 걸까? 

  서두에 던진 말처럼 <세일즈맨의 죽음> 속에 등장하는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몰락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험금 몇 푼을 건지려 목숨을 던지는 그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서운하다 하겠다. 파산 위기에 있는 월가의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정부에 그들은 '벌만큼 번 사람'이고, 이번 위기 또한 그들의 '얕은 윤리관'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구제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등장하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의 발버둥을 어떻게 소화할 지 궁금하다. 거품은 붕괴를 예고한 인간재해다.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찍 무너지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거품붕괴의 피해가 고스란히 신의성실에 입각해 열심히 근무했던 선량한 샐러리맨에게만 전가되는 것이 안타깝다.  

  "난...열심히 노력해 이곳에 취직했을 뿐이고, 상사들의 눈치보며 열심히 근무했을 뿐" 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과장하고, 분노하며 광분하고 있었다. 그 책임이 과연 회사에만 있었을까? 스토리의 복잡한 전개와 자잘한 사건과 에피소드의 혼재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이 처한 위기와 불안감의 정신없는 역동성과 닮았다. 애초에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곱지 못한 내게 이 책은 가독성 제로의 답답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눈으로 보는 듯 옮겨 놓은 저자의 묘사와 세밀한 서술은 인정해야 했다. 호好시절에 읽는다면 쓴웃음지을 추억꺼리가 되겠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가 읽기엔 '강제해고시 행동강령'같아 자꾸만 눈감아지게 만들었다. 시절을 못만난 소설, 제자리도 잘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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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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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가 내놓은 인간풍경 가득한 소설들의 잔치상

 
  Web 2.0은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가 봅니다. 작가들이 탈고하기 전까지는 가족들에게조차 보여주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원고를 매일 매일 블로그에 올려서 Webzine이라는 개인미디어로 거듭나더니, 그들이 즐겨 읽은 책의 리뷰를 엮어 책을 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소설가 성석제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이번에 스스로를 '문학집배원'이라 칭하고 자신이 읽은 문학 속에서 즐거움을 준 소설들을 모았고, 그 속에서 정수(자신이 생각한)를 뽑아 소개하고 살짜기 멘트를 넣었습니다. 책 제목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입니다.  

  성석제님은 책의 시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장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힘찬, 인생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장이 냇물과 도랑을 따라 흘러갈 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냇가를 따라 달리셔도 좋고 도랑에 발을 담그셔도 좋습니다. 문장으로 푸르러진 마음의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든가요." 말씀처럼 감성가득한 글들이 가득합니다. 도시의 매연보다는 소똥 내음 그윽한 시골의 한적함을 느끼게 하는 성석제님의 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소개하시는 소설가들은 과거와 지금, 동양과 서양을 에둘러 등장합니다. 현진스님과 채만식 선생, 루쉰과 빠블로 네루다가 눈에 띕니다. 영원한 어머니 박원서님과 유일무이한 애국자 김구선생님, 황순원님의 백미 '별'도 보이고, 결혼관을 흐려준 박현욱님의 '아내가 결혼했다'도 보이네요. 반갑고, 새롭고 흥미로운 글을 만드신 쉰 두 분을 모두 만났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봄이 올 듯 기분을 붕붕거리게 만드는 글들이었습니다. 소설 하나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두 세페이지 글을 하나 둘 씩 모아 하나로 엮었습니다.

  글 말미에 던지는 성석제님의 해서 역시 프로이트의 꿈해몽을 능가합니다. 인간세상의 모든 상념을 담은 글들에 저마다 어울리는 해설을 놓았습니다. 껍질채 쪄 내놓은 자리돔 이야기를 적은 한창훈님의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에서 성석제님은 내면이 중요하다면서도 껍데기에 절대적으로 가치를 둔 우리 현실을 꼬집습니다. '껍데기를 째고 찢고 올려붙이고 꿰매고 깎고 빛을 쪼이고 점을 빼고 주름을 제거하고 향수를 뿌리고 동물성, 식물성, 기능성,한방, 산삼 성분 화장품을 바르고 때로 남의 껍데기를 먹어서' 껍데기와 그 뒤쪽, 안과 밖의 차이가 나날이 커져 표리부동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존재, 바로 우리들 모습을 꼬집었습니다. 

  이런 책을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습니다. 저자의 서재를 소개하는 듯, 좋은 책의 일부를 맛뵈기로 보여주는 듯 한 '책속의 책', 문학에 있어 문외한인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작은 선물입니다. 하지만 성석제님 필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작품에 대한 예의일지는 모르지만, 거침없이 투덜대고 쏴대는 성석제표 '해설'이 더 맛깔지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제가 뭘 압니까? 그렇다는 거죠. 그래도 즐겁게 읽으며 즐겼습니다. 그럼 된 것 아닌가요? 늦은 금요일 밤에 미친 아헤처럼  낄낄깔깔 대가 시무룩했다가 심각해진 몇 시간을 이 책에서 얻었습니다. 산해진미 그득한 잔치상을 한~상 받은 느낌, 이 책을 덮으면서 받은 포만감입니다. 잘 먹었...아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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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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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바리스타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64세 노인의 감동적인 실화!  



  64세의 노인이 고단한 몸과 마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이 때문에 직장을 퇴직한 노인은 한창 때의 영화로운 삶의 회환으로 막연한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어느 여인의 뜻하지 않는 제안을 받는다.

"혹시, 여기서 일하실 생각 없으세요?"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명문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후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하며 이사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였던 그가 자신이 즐겨 찾던 어느 커피숍의 말단 파트타임 직원으로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의 기쁨을 찾아가는 이야기, 마이클 게이츠 길Michael Gates Gill<땡큐! 스타벅스> 이다. 원제목은 How Starbucks Saved Mt Life 이고, 이 책은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영화로 손꼽히는 영화<굿 윌 헌팅>과 <파이딩 포레스터>를 감독한 구스 반 산트가 메가폰을 잡고, 명배우 톰 행크스가 주인공 마이클 역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 책 이야기에 앞서 커피이야기 아니 스타벅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스타벅스Starbucks]와 나의 첫 만남은 공교롭게도 책이었다. 1999년 가을 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라는 책을 읽고 스타벅스의 창업자이자 이 책의 저자였던 하워드 슐츠와 그의 사업체 스타벅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책 내용은 시애틀에서 시작된 스타벅스를 인수하고 프랜차이즈화하면서 큰 성공을 이룬 이야기를 다룬 자서전이었다.그 때는 아직 우리나라에 스타벅스가 입점하지 않았던 때, 프랜차이즈 업체로 사업에 한창이던 갓 30을 넘은 나는 <스타벅스>를 한국에 들여올 생각에 이르렀다. 자금 동원여력을 확인하고 동업자와 파트너를 물색한 후 홈페이지를 찾아 전화를 걸어 사업제의를 했는데, 이미 한 발 늦었다. 신세계측에서 미국본사와 똑같이 100 억원을 공동투자하는 조건으로 <스타버스 코리아>한국지사를 허락한 상태였다. 

그들이 체결한 공동투자 금액의 1/10 남짓으로 한국지사를 추진했었기에 어짜피 성사되지도 않았을 법도 했지만, 어마어마한 '블루오션'을 손에 놓친 허탈감에 난 거의 한 달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듬 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땅 값이 비싼 명동 한복판에 1호점이 서고, 폭발적인 인기를 받으면서 새로운 커피문화를 한국에 퍼뜨리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늘 그 때를 기억하곤 했다. 넘볼 수 없는 적이 되었지만 탁월한 선택을 한 '신세계'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스타벅스>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한국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크게 두 부류였다. 레지들과 응큼한 대화와 끈적한 미소를 나누는 중년 아저씨들의 공간이었던 다방과 차를 채 마시기도 전에 잔을 가져가 버리는 불친절한 웨이츄리스가 있었던 커피숍. 내 아버지 세대에는 DJ가 라디오의 그것처럼 신청곡을 받아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뮤직박스가 있던 낭만적인 음악감상실도 있었다지만 1990년 대 후반의 커피숍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만남을 위한 대화장소 그 뿐이었다. 가격은 쌌던가? 다방에서는 레지 아가씨와 몇 분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커피를 사야 했고, 젊은이들이 몰리는 중심가의 커피숍은 '자릿세'명목으로 상당했던 터, 게다가 한 시간여를 넘기려면 또 한 잔의 커피(재떨이를 행군 것 같은 떨떠름한 맛의 거무튀튀한 색, 딱 그랬다)를 마셔야 했으니 가격은 그 때나 지금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스타벅스의 등장이 그렇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절의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고, 그 시절에 비하면 마시고 트림을 할 정도로 많았으니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진 때문은 아닐까?

  지금껏 마셔봤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경험의 원두커피 맛, 그리고 화사하고 푸근한 공간, 친절한 바리스타의 응대 등 <스타벅스>는 집과 직장과 더불어 '제 3의 공간'을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미국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는데, 그 여세는 한국에도 몰고 와 새로운 커피문화를 만들어 냈다. 수 많은 아류업체들이 생겨나고 원조와 경쟁하면서 2005년엔 하루 종일 밥은 안 먹고 커피만 마시는 사람들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커피를 외쳐댔고, 스타벅스는 세계 제 1의 업체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체인점을 늘려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벅스의 신화>도 Web 2.0 이라는 '소비자 주권 시대'의 대세에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미국 본사에 매년 지급하는 로열티의 액수가 밝혀지면서 국내 커피숍이 등장하면서 동급의 국산체인을 놔두고 값비싼 로열티를 지급해 가면서 마셔야겠냐는 애국심섞인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기계화된 작금의 스타벅스 커피는 예전 바리스타가 뽑아낸 그 맛이 아니라는 고메이틱한 고객의 불만도 쏟아졌다. 또 세계 평화와 인류애를 가진 고객들은 커피제품가격은 비싼데, 원산지에는 거의 덤핑을 치며 커피를 사들인다며 '공정무역'에 의해 커피를 사들이는 업체의 커피를 마셔줘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지난 해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된장녀 신드롬' 지난 해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체인의 매출은 급감하게 되었다. 올해 맥도널드에서 '더이상 커피를 비싸게 마시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며 '맥카페'를 출시하면서 호응을 얻자 최근 스타벅스에서는 1불짜리 커피를 출시했다고 하는데 소비자의 빈 주머니 사정을 읽고자 하는 그들의 경쟁은 앞으도 두고 볼 문제다.

  한창 잘 나갈 때면 몰라도 예전에 비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스타벅스'에 대한 책이라니? 출판사의 선택과 이 책 내용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자사 홍보를 위한 스타벅스의 선택인가? 그런 책을 나름 생각이 심지곧고 흥행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출판사인 [세종서적]이 냈을 법하진 않았다. 아무튼 스타벅스에 관한 책이니 개인적인 애정을 위해서라도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을 처음 든 의도는 책의 내용으로 스타벅스를 흉볼 생각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다분히 얄궃고 사악하기까지 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많은 생각과 감동을 안겨주는 훌륭한 책이었다.

 

  이 책은 한 때는 잘 나가던 백인 엘리트의 64세 노인이 젊디 젊은 흑인 직원으로 가득한 뉴욕의 스타벅스 브로드웨이점에서 말단 파트타임 직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 그래? 그것참 미국이란 나라는 별 짓도 다해.'라며 웃으면서 넘겨버릴 수 있는 가십거리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흑백의 인종문제, 학력문제, 노인복지, 세대차이,그리고 기업문화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의 총합이 들어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저자인 마이클이 커피숍 스타벅스에서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와 스타벅스의 기업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서 읽은 대목은 '스타벅스의 기업문화'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단순히 커피를 사서 마시는 '고객'에 있던 마이클이 고객을 접대하는 바리스타의 위치에 있게 되면서 '그곳'에 가면 왜 기분이 흐믓해지고 푸근한 공간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의 과정을 통해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내용의 근무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클은 나중에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소매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 비즈니스'였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연륜과 성품을 더해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브로드웨이 점에서는 처음으로 본사에서 보낸 '비밀고객(일종의 암행어사)'에 의해 별 다섯의 최고점수를 받는다.

  또 하나 주목한 것은 엘리트 출신의 64세라는 노인이 흑인 젊은이들을 '파트너'로 삼아 주급을 받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근무하는 마이클이 심적으로 갖는 갈등부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난데...'라며 지난 날의 영화를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갈 법한 마이클은 '새로운 도전'에 감행하고 젊은이들과 생활하면서 '제 2의 삶'을 살게 된다.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흑인에 해괴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을 살필 리 없는 백인의 노인은 그들과 파트너가 되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졌던 생각들이 '지극히 단순하고 오만한 편견'이었음을 알게 된다. 스타벅스에서 근무하면서 잘 나갈 때 친했던 친구도 만나고, 자식들을 살피지 않는 아버지라고 외면했던 딸들도 와주어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할 것 같았던 이들과의 만남이 오히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껏 자신이 살았던 삶 역시 자신만의 '편견'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에서 끝은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했다. 늙게 시작한 탓에 느리고, 서투르고, 힘들어 보이지만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노인들이 살면서 쌓았던 삶의 궤적 만큼은 젊은이들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훌륭한 서비스 정신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품성 좋은 노인을 매니저가 채용하는 '현장 채용 시스템'은 세계 커피 혁명을 일으킨 스타벅스다운 '사람 비즈니스'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다. 한 수 톡톡히 배웠다. 이 책은 한 해에도 수십 만의 업장이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소매 비즈니스는 '사람 비즈니스'로 발전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고객을위한 진정한 서비스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 맛이 최고라고 말하지도 않고, 다른 커피숍을 음해하지도 않는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의 이름 한 번 나오지 않고,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자화자찬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이클씨가 스타벅스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탄생한 것 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거꾸로 말하면 훌륭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한국에 있다면 제2의 마이클과 같은 한국사람도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이 땅에서도 탄생했으면 좋겠다.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많은 수의 스타벅스가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책을 낼 때만 해도 걸어서 스타벅스에 출근하고 있다는 마이클씨.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최고의 직업으로 여기는 만큼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은 추호도 없다는 그가 아직도 근무를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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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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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위기를 이겨낼 해법은 '뉴딜정책'엔 없다.  


경제주체들의 통제력 확보에 달렸다!

 
  IMF 총재 “올 세계경제 성장률은 제로에 이를 것” 이라는 어제자 뉴스를 접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3개월 후에 나오는 차기 IMF 전망은 제로에 바짝 다가설 가능성 있다”며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계속 나빠지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AFP와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프랑스 경제일간지인 ‘러 에코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상황은 매우 분명하다. 2009년은 이미 흐름이 결정이 났으며 몹시 나쁜 한 해가 될 것” 이라고 말하며 일부 국가들의 부도 위기와 관련해서는, “몇몇 국가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2차로 IMF의 문들을 두드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국가가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경제가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2009년에 있어 가장 큰 화두는 '생존 Survival' 이 될 것 같다.
 

  우리 일상생활 중에 순조롭던 일이 한순간에 막히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으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占집'을 찾듯이, 지금 전세계는 경제를 관망하고 맥을 짚어가는 경제석학들의 한마디에 온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라고 불리고 미래 쇼크》, 《제3물결》, 《권력이동》 등 일련의 미래학 도서들을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든 엘빈 토플러가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재미있게도 30 여년 전인 1975년 자신이 쓴 책 <불황을 넘어서 The Eco-Spasm Report>을 다시 내 놓는 것으로 대체했다. 신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밝히며 1975년 이후 다가올 경제위기를 우려한 책이었는데, 그 우려들은 오늘날의 세계경제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려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책을 읽고 놀랐다고 했듯이, 나 역시 그의 통찰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제목, <불황을 넘어서>이다. 원제는 BEYOND DEPRESSION 이다.  
 

 


  이 책의 요지는 저자가 우려한 1975년 이후에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에 있다. 즉 당시(1975년) 경제학자들은 경제문제들을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한 해법들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때와 지금의 커다란 차이점 하나를 말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진행된 1970년대의 경제상황은 경제적 발전 정도, 인구, 노동자 수, 인구 구성, 가족구조, 여성인력 활용도, 노령인구 비중, 보건의료 시스템등 핵심변수들이 모두 차원이 다르게 달라졌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의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의 해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물며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21세기의 경제가 과거와 달라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새로이 변화된 21세기 경제의 주된 특징을 크게 진부해진 경제모델, 지식의 역할 증대, 가속화와 탈동시화, 증대되는 복잡성, 국경의 소멸 이렇게 다섯가지로 나누었다.  

  21세기에는 경제활동에 있어 정량화하기 어려운 지식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산업화시대의 경제모델로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올바르게 제시할 수 없고(진부해진 경제모델), 지식이라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무형요소들은 점점 더 큰 역할을 맡고, 컴퓨터 통신관련 기술, 공장자동화, 정부와 기업의 재정운용에 필요한 금융비중 증대등 다양한 요소로 확산되고 있다(지식의 역할 증대). 한편 지식 산업을 바탕으로한 민간 부문의 발전 속도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할 만큼 빨라지는 반면 공공 부분의 속도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어 사회 곳곳에서 탈동시화[de-synchronization]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가속화와 탈동시화). 아울러 금융, 제조, 법률,과학, 의료, 네트워크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등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져서, 각 분야의 전문가[experts]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증대되는 복잡성).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기업과 정부는 경제활동의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려 하기 때문에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업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국경의 소멸). 

  이렇듯 전혀 다른 환경에 벌어진 경제위기에 대해 '사례적 측면'에서 예측할 수 있는 규모와 범위를 짐작하게 하는 예로 들고 있는 '1929년의 경제 대공황'을 마치 지금의 세계경제위기와 비슷하게 보고 정부와 언론 그리고 식자들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질없는 누를 범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동시다발적인 세계적인 경제위기인 점에서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또 하나 비교할 빌미를 제공한 것은 미국 새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대통령의 취임사에 나온 '신뉴딜 정책'도 한 몫을 한다.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의 정책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었다. 단지 토목공사 사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자유방임에서 국가개입으로 바꾸고, 소득세 증대를 통해 사회의 부를 재생산하겠다는 정책이었다. 다시 말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미국을 중산층 중심 사회로 만들겠다는 정책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지나치게 자신의 부를 늘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부의 재분배,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 등 사회주의의 강점을 적극 수용한 것들이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25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2009년 1월 20일 취임 직후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단행키로 했다. 오바마의 신뉴딜 구상은 단순한 토목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 효율 개선 및 교육환경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연계돼 있다. 오바마는 우선 연방건물의 난방과 조명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을 전국에 걸쳐 실시, 에너지 예산을 수십억달러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의 노후한 도로와 다리 등 기반시설에 투자할 것을 다짐하면서 예산을 지원받을 주정부들이 신속하게 집행하지 않을 경우 지원예산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는 또 "학교건물 현대화 및 컴퓨터 기자재 확충 등 미국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획기적인 교육환경 개선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특히 "인터넷을 발명했던 미국이 초고속인터넷통신망 가입 순위 세계 15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모든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과 비교해 에너지 효율 개선과 교육환경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며 천연자원 고갈과 지식산업시대를 위한 경쟁력 제고라는 21세기에 걸맞는 인프라 투자 계획이 '신뉴딜 정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기축년 신년초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올 한 해를 ‘4대강 뉴딜정책’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4대강 사업은 2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4대강 유역을 친환경 공원으로 조성하고 전국 곳곳을 자전거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 내리게 할 것이다. 녹색뉴딜정책도 본격적으로 점화하고자 한다. 태양광·풍력·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의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동시에, 건물과 교통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 폐자원 활용 사업은 올해부터 당장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며ㅡ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녹색성장기본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고 발표했다. 이른 바 전국에 ‘망치 소리’를 울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운하식’ 경제 정책인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1930년대의 대공황을 해결한 뉴딜정책을 해법으로 삼는다면 큰 착각이라고 경고한 앨빈 토플러. 한국경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뉴딜정책'을 익히 들었을 법 한데 그는 어떻게 느꼈을까? 예전에 한국에 와서 역설했음직한 그의 대답이 귀에 남는다. "오늘날 산업과 경제는 빨리 발전하는 데 비해 정치와 규제의 속도는 더딘 '탈동시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부는 상명하달上命下達식 관료주의에 빠져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정부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혁신적인 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문제해결 전망에 대해선 낙관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위기의 본질과 상황을 알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며, 최악이 국면을 벗어나는 데만 1년 반에서 2년이 걸릴 것이다." 이어 이번 세계금융위기를 겪는 세계인들의 과제에 대해서는 "이번 경제 위기로 과거의 전통적 세계는 종결된 셈이다. 경제를 '희소자원의 배분'으로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으며 무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이 맺고 있는 연관관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대답했다.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이번 금융위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이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 해답을 단 한사람의 전문가에게서 들으려고 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하면 안되는 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금쪽같은 시간과 비용을 치뤄야 하는 앞으로의 미래에 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찾아야 한다. 위정자와 정부관료들, 특히 우리의 경제대통령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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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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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소설가의 동서고금을 막론한 독서 탐독기!

  남이 써 놓은 책을 읽고 '글로 풀어 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혹시라도 읽을 지 모르는 온라인상의 공간에 글을 쓰기란 정말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깊은 감동과 공감을 표하게 하는 책을 만나면 내가 느낀 감동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추스릴 길이 없고, 혹시라도 어숩치 않은 본인의 글로 인해 작품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쓰면 될 것 아닌가?' 반문하는 이가 있을 지 모르겠다. 이것은 잘은 모르지만 인적없는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대롱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소리친 사람의 이야기처럼 제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주위에 알려서 그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 인지상정(오지랖 넓은 나만 그런지도 모른다)인지라 '전파 싶은 충동'에 참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읽기고 어렵고, 읽은 것을 두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기는 더 어렵다니...이것이 요즘 일부가 말하는 '리뷰쟁이'들의 딜레마일까? 

  어릴 적엔 '작문숙제'였던 독후감을 쓰지 않아 매로 때우던 내가 나이를 훨씬 먹은 지금 책 읽은 시간만큼 공을 들여 리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서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머리 속에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채우기 위해서다. 책꽂이에 한 권 두 권 책이 쌓이듯 온라인에 심어놓은 작은 카테고리에 내가 읽은 책의 소감이 하나 둘씩 쌓여가는 재미 또한 맛깔지다. 게다가 '나도 읽었소', '나도 읽어볼라우' 옆에서 추임새를 놓는 블로거들의 댓글이 있으니 그들과 대화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람이 어디 '돈되는 일'에만 매달려 살 수 있겠는가? 이것도 살아가는 재미라는 것을 안 까닭이다.  

  기왕 리뷰를 쓸꺼면 잘 써야 할테다. 그리고 제일 좋은 방법은 '잘쓴 사람들의 글에서 배우는 것'일테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기란 잘쓴 책을 쓰는 작가를 만나는 일만큼 여렵다. 특히 '글쓰는 작가들의 독서기讀書記'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까닭에 역사장편소설로 유명한 김탁환님의 독서열전기 <뒤적뒤적 끼적끼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궈의 책에 관한 기록'이라는 부제는 더욱 입맛을 당기게 했다. 이 책을 집었을 때, 한 마디로 땡 잡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들의 서재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은 독자들의 로망이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었으며, 그 책을 읽은 소감은 어떠했을까? 정말 궁금한 내용이다. 그래서 '저자와의 만남'같은 자리에서 항상 마지막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일게다. 젊은 역사소설가 김탁환은 스스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 같은 질문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그가 말한 100 권의 책을 전체적으로 살피면 역시 역사소설가답게 소설과 역사관련서가 주를 이룬다. 시집도 몇 권 있고, 인문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억만장자 마인드>도 보이고, 10년 전에 나온 미래서 페이스 팝콘의 <미래생활사전>도 보인다. 그 역시 책을 말하는 책도 읽는가보다. 관능적인 독서가 정혜윤의 <침대와 책>,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글쓰기에 관한 책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눈에 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르를 뛰어넘는 그의 독서기록을 살펴보건대 그 또한 천상 독서가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었다."는 말을 새겨주기 위해 이야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정독시킨다는 그. 그도 이 책에서는 글로써 책을 말하는 사람, 북리뷰어가 되었다. 일반 건물의 두 층 높이는 될 법한 100권의 책을 3-4센치의 400 페이지짜리 책 한 권으로 응축시킨(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힘은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그가 소개하는 한 권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없고,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죽은 자들의 기록으로 첨철된 역사서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소설로 만드는 역사소설가인 그의 필력이 충분히 발휘된 듯 했다. 작가가 안되었다면 온라인에서 천하제일의 리뷰어로 활동했을 것이다.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써야 할 글이 넘치기에, 삶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 김탁환

 

  작가들의 독서기로 읽은 책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가 있고, 정혜윤의 <침대와 책>이 있으며,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이 있다. 이들 책이 온라인에서 횡횡하는 북써머리와 다른 점은 오로지 책 내용을 파내려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생각이 더해져 새로이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다른 생각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들을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는 책을 '뒤적뒤적'거리며 읽고, '끼적끼적'거리며 쓴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만난 책이다. 소설가 김탁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느낌, 역사서엔 관심없던 나였지만 소개된 역사서는 읽고 싶게 만들었고, 어쩐지 그를 만나면 반가워져 성큼 다가가 악수를 청할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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