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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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싼 가격만 좇는 당신은 ‘저가 노예’


  휴일 오후 현관문을 나올 때 내가 사려고 했던 물건은 ‘라면 한 봉지와 1 리터짜리 우유 한 통’ 이었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하던 중 ‘과자와 빵 그리고 주방세제’가 필요하다는 집 전화에 나는 걸어서 십여 분 거리의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이유는 단 하나,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두 손으로도 모자를 만큼 물건을 한아름 샀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야 했다. 내가 사들인 물건들은 모두 오늘 아니면 절대로 그 가격에 살 수 없을 만큼 싼 가격이었다. 대형마트를 나서면서 횡재를 한 기분을 느끼며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도대체 물건 값을 얼마나 아낀 거야?’ 휴일 저녁을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이렇게 흘려보냈다. 

  하지만 보스턴 대학교의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이자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저자 엘렌 러펠 셸은 책 <완벽한 가격CHEAP>(랜덤하우스)를 통해 내게 ‘당신은 결코 절약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절약은커녕 오히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대형마트의 상술에 속아 대책 없이 사들였으며, 택시비를 포함해 황금 같은 휴일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알려준다. 어디 그 뿐인가? 나의 충동적인 대형마트행은 영세 중소기업의 폐업과 단순노동자의 퇴직을 도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이 책의 해제를 통해 나의 할인 매장 쇼핑행태는 ‘착취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할인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집중 탐구한 책으로, 부제는 the cost of discount culture ‘할인 문화가 일으키는 고비용’이다. 



 
 

 어느 정도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나도 알고 있었다. 생산자와 상인을 돕고 나아가 지역경제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재래시장을 찾아야 하고, 영세상인들의 물건을 팔아줘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익히 안다. 내가 대형마트를 찾으면 생산자나 소비자,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하고 유통 자본만이 대부분의 이득을 가져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형마트를 외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쇼핑이 편리하고, 사고자 하는 물품이 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싸기 때문이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는 말도 있잖은가? 게다가 지금껏 모아놓은 포인트는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쇼핑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로 정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독자 역시 만약 완독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소비변화를 위한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저자는 역사, 사회학, 마케팅, 심리학, 경제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를 통해 ‘싼 가격’이라는 시스템이 소비자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심도 있게 파헤쳤다. 또한 대형할인매장의 불편한 진실과 ‘할인’ 속에 숨겨진 비밀도 폭로하고 있다.

  대형마트 업체들이 서로 경쟁을 하며 세워지더니 아예 전국을 덮으면서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지역사회의 재래시장과 소매점들은 문을 닫게 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창조적 파괴 즉, 구 산업구조에서 신 사업구조로의 변화라며 이는 자본주의 본질이라고 말하지만 오늘날 할인 시대의 창조적 파괴는 균형을 잃어버린 파괴만 있을 뿐이다.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대형할인점들은 실은 제조업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하는 21세기 할인시대의 최대수혜자다. 대형할인점들은 영세상인의 설 자리를 빼앗고, 지역사회에서 부를 앗아가고 있다. 자영업자들을 몰락시켰으며 숙련된 근로자들을 단순한 업무의 점원과 계산원으로 대체시켜버렸다. 한편 대형할인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규모의 경제 즉, 대량구매의 기회는 제조업체의 우위를 능가해버려 중요한 것은 생산이 아니라 유통 그리고 판매가 되어버렸다. 

  한편 소비자들은 이들 거대한 괴물이 제공하는 ‘할인’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빠져 벗어나질 못한다. 혹여 할인상품을 구입했다면 몇 푼 아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정작 이보다 중요한 더 좋은 제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다양성과 품질, 그리고 내가 구입을 하기까지 고민하며 들인 시간에 대한 비용은 과소평가 해버린다. 그리고 지갑은 소비를 통해 이미 텅텅 비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얼마를 아꼈다고 자랑하며 뿌듯해 한다.

  또한 나아가 내가 가격 할인을 통해 절약한 몫만큼 다른 누군가의 몫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곧 내 몫이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싼 가격’은 소비자인 우리에게는 이득이 될 수 있지만, 노동자인 우리에게는 손실일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웨그먼스와 코스트코의 성공 사례를 통해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회의 필요에 기여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계몽된 이기주의‘는 순이익을 증대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직원에게 잘해야 고객이 온다는 정신으로 직원의 눈과 귀를 믿고 그들을 신뢰하는 웨그먼스는 이직률이 6퍼센트다. 소비자들 역시 웨그먼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2005년 웨그먼스는 <포춘>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월마트는 적은 임금과 적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창업자인 샘 월튼의 상속자들은 세계 10대 부자에 속한다. 기업철학과 싼 가격,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현명한 소비자가 선택할 몫이다.

  저자는 ‘언제나 최저가’를 지향하는 소비생활은 초라한 생활 방식이 될 거라고 말한다. 싼 것만을 찾다보면 정체불명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되거나, 혹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제 3국의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거나, 사랑하는 자녀에게 재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짝퉁 장난감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어디서 더 싸게 살까?’를 걱정하는 ‘저가의 노예’가 되지 말고, 과연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렌 러펠 셸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싼 가격’에 대한 미국경제의 현실은 우리의 오늘을 닮았고, 내일을 보는 듯 했다. ‘알찬 쇼핑’이라며 단순히 싼 가격을 쫓는 우리의 소비생활은 부메랑이 되어 지역경제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나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는 심각한 경제행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명한 소비,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진짜 소비생활을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돈과 함께 소중한 시간까지 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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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얼마전에 교보에서 리노베이션 개장 축하 파티에 초대한다는 전화를 받았었는데, 사정때문에 못나간다고 해놓고는 사람들의 리뷰보고 후회했잖아요. 리치님도 오셨담서요?...직접 뵐 수 있었는데 말이죠~^^

리치보이 2010-09-02 15:24   좋아요 0 | URL
ㅎㅎ 안녕하세요, 마기님. 오랜만이네요.^^
북로그가 아닌 여기서 뵈니 이상한데요?ㅎㅎ

사실은 저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닮은 막내동생을 대신 보냈죠.
제가 부산에 있었거든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막둥이가 저인줄 알았을 겁니다. 젊게 봤을 테니..고마울 따름이죠.ㅎㅎㅎ

아무튼 오시지 그러셨어요. 마기님이시라면 북로그 토박이고, 이런 저런 선물도 줬다는데요...^^ 자주 뵐께요. 아, 추천과 댓글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10-09-02 16:11   좋아요 0 | URL
푸히히~~비밀로 댓글 달았더만 무색하게스리 마기님이라고 밝혀주시니...공개로 수정했어요~ㅋ
아니, 그렇다면 그날 리치님을 보았다던 그분들이 본 남자는 리치님 동상?
으미...하긴 사진?(리치님 저서였던가?)으로 뵐 때도 심하게 동안이라고 생각하긴 했어여.
나가지 않기를 잘 했네요.
리치님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림없이 제가 말 걸었을 거거든요.
나를 몰라보고 멀뚱해하는 리치님을 내가 어케 참아요?
푸히히~~
 
경영학 콘서트 - 복잡한 세상을 지배하는 경영학의 힘
장영재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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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콘서트 - 일상사례로 풀어보는 경영과학의 비밀 

  장사꾼과 사업가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업종? 사업규모? 매출액? 아니다. 바로 ‘시스템의 유무’에 달려 있다. 제아무리 5층짜리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장님이라고 해도 카운터에서 금전출납기를 지킨다면 장사꾼이고, 한 평짜리 담배가게 장사라도 직원에게 맡기고 사장님은 아침저녁으로 결산만 보고 밖에서 다른 사업을 계획한다면 사업가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경영’이다.

  사람들은 경영 하면 가장 먼저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번쩍이는 만년필로 결재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사장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경영학 하면 그런 사장님을 꿈꾸는 경영학도들이 공부하는 학문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경영학은 최고경영자(CEO)나 경영학도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경영학은 우리가 업무 중에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매우 실용적인 학문인 것이다.

  <경영학 콘서트>(비즈니스북스)는 경영학이 일반인에게도 얼마나 현실적이고 유용한 학문이 될 수 있는지 잘 설명해준다. 기존의 경영학 도서들이 인문학적 요소를 강조했다면, 저자인 장영재는 현대 경영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임과 동시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 의사결정과 수치화된 모델을 바탕으로 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경영과학’임을 강조했다.



 

  지은이는 오늘날 경영은 과학적 사고능력을 근거로 한 분석적 문제해결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해결 능력 없이 단순히 리더십, 투자 이론, 고객 서비스를 외치는 것은 뿌리 잘린 나무를 땅에 묻은 뒤 물주고 비료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즉 막가파식 리더십이나, 맹목적인 투자, 밀어붙이기식 운영은 오늘날의 경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수학과 과학이 결합된 합리적인 리더십, 논리와 이해가 바탕이 된 투자, 운영, 고객 서비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항공권도 가격이 천차만별인 까닭, 미국 국방부가 빨간 풍선 놀이를 벌인 까닭, 10개의 테이블에서 300명이 아침 식사를 먹는 방법, 월드컵 때 진짜보다 더 불티나게 팔린 짝퉁 빨간 티셔츠, 카지노와 보험회사가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원리…. 경영과학 기법을 이해시키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한 사례들은 다양하고도 재미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비즈니스 현상 속에는 공급사슬망 관리, 도요타 생산 시스템, 수익경영, 고객관계관리 등 경영의 최전선에서 사용되는 경영기법들과 고도로 치밀한 현대 경영의 전략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독자라면 10개의 한정된 테이블을 가진 작은 레스토랑 ‘파라마운트’에 관한 대목을 추천하고 싶다. 이 레스토랑은 매일 아침 300명이 넘는 손님을 맞으며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대기시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야망을 가진 젊은 온라인 사업자들에게는 넷플릭스, 아마존이 블록버스터와 반스앤노블이란 골리앗 같은 전통의 1위 기업을 제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을 밝힌 대목을 권하고 싶다.

  지금껏 경영서에서 다양한 경영기법과 적용 방법론을 겉만 보고 외우기 바빴다면,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어떤 배경과 원리로 탄생했는지 그 본질을 재미있는 사례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전혀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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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100배 즐기기 -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마스터하기
최재용.이강석.박사영.오홍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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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100배 즐기기 - 티지프TGIF族이 되기 위한 입문서!

 

  요즘 누가 TGIF라고 말한다면 이는 ‘Thank God It’s Friday‘가 아닌 트위터(T), 구글(G), 아이폰(I), 페이스북(F)의 조합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말 그대로 TGIF가 대세다. 2-3년 전만 해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고 네이트 메신저로 대화했다면 이제는 TGIF로 이시대의 트렌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긴다.

  하지만 이게 어디 산골짜기에 전기 들어오듯 기다린다고 저절로 익혀지는 것이던가? 결코 아니다. 배우고 익혀서 직접 참여할 때 비로소 SNS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는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SNS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것 역시 마땅히 사용설명서 같은 것이 없어 곤란하다. 그렇다고 매번 얼리어답터인 후배에게 물어서 배울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실용서’다. 최근 SNS 관련서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지난 해 처음 트위터 관련서가 나온데 이어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을 익히기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책들은 SNS를 독학하는데 시간적, 경제적으로 유익하다. 책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아무리 쉬워도 책은 책이라는 것이다. 책이기에 한 번 읽어는 봐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들고 읽는 용기와 실천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책 <SNS 100배 즐기기>(매일경제신문사)도 최근의 출판경향에 맞춰 나온 SNS관련 실용서다. 분야별 전문가 4명이 함께 SNS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서 썼다. 이 책의 강점은 TGIF 뿐 아니라 카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링크나우, 그리고 스마트폰의 활용방법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SNS 툴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반면 단점은 작은 책자에 너무 다양한 툴을 소개하고 있어 깊이가 너무 얕다는 점이다.

  하지만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던 문외한이나 초심자들에게는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TGIF를 마스터하기는 어렵지만, SNS와 TGIF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SNS의 세계에 빠지고 싶다면 일독해보길 권한다. 서점에서 서서 읽어도 될 만큼 쉽고 잘 정리되어 있다. SNS 라는 커다란 성에 들어가기 위해 성문을 여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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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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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거인으로부터 고전과 교양의 의미를 듣다

  “저는 대학 때 읽은 책의 80%가 소설이었습니다. 그러다 문예춘추에 입사했고, 그 이후 소설읽기를 그만두었어요. 처음 배속된 곳이 <주간 분슈운(週刊文春)>이었는데 당시 상사가 소설만 읽으면 안 된다고 충고를 해서 그때부터 소설 이외의 책들을 읽기 시작한 거죠. 그러자 제 자신이 얼마나 현실을 몰랐던가를 통감하겠더군요.(웃음) 허구보다 현실이 더 흥미진진했어요. 그 이후 소설에서 멀어졌어요.”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소설 혐오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직업이 논픽션 저널리스트이고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기에 난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왕팬을 자처하면서 큰 오해를 할 뻔 했다 싶어 다행이었고, 그도 학창시절에는 소설을 읽으며 흥미로운 허구의 세계에 빠졌다는 사실은 그의 독서여정에도 변곡점이 있었구나 싶어 내게 가벼운 안도감을 준다. 오랜만에 지식의 거인을 만났다. <지의 정원知の 庭園>(예문)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독서광 두 명이 펼치는 일종의 대담집이다. 지의 거인으로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와 지의 괴물로 알려진 사토 마사루佐藤優, 일본의 대표적인 두 명은 책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시대와 지성, 교양과 독서의 힘을 이야기한다. 각자가 읽었던 책 중에서 교양을 위해서라면 읽어야 할 필독서 총 400권을 소개하고 비평한다. 원제목은 『ぼくらの頭脳の鍛え方, 우리의 두뇌를 연마하는 방법』이다.



책을 펴는 순간 나는 두 사람이 마주 앉은 테이블 뒤에서 방청하는 관객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중 거론되는 책의 절반 이상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었다(대화중 소개한 책 상당수가 국내에는 출간조차 되지 않은 책들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나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등을 읽은 터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책’을 대하기는 낯설지 않다. 나는 관심조차 없던 책, 그래서 나중에라도 읽지 않을 책이기에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훑어 나갔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책 제목과 짧은 책 소개’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인물인 사토 마사루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아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며 책과 세계를 향한 지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관을 조금이라도 더 엿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고전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과 어떤 주제를 놓고 이야기할 경우 전제나 배경이 되는 지식이 없으면 내실 있는 논의가 불가능한데, 그때 전제나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고전입니다. 단, 고전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군요. 메이지 시대에는 메이지 시대의 고전이, 현대에는 현대의 고전이 존재합니다.”

  다치바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최신 잡지나 학술서를 읽으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한 이야기다. 근원에 접근하기 위해 고전을 대하는 태도는 높이 평가하지만, 고전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했다. 제대로 익히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 고전은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한편 다치바나가 생각하는 교양은 무엇일까? 



  “교양은 다른 말로 하면 인류의 지적 유산입니다. 그래서 교양 교육은 지적 유산의 재산목록을 가르치는 것이 됩니다. 지식의 전체상을 그리도록 하고, 지의 세계의 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으로 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 교양 교육이라고 봅니다. …… 현대사회에서 교양이라는 말은 점차 죽은 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만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국 일생에서 최대의 성과를 얻으려면, 생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수밖에 없지요. 그때 지식의 계통수를 머릿속에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역시 종이 매체에 쓰인 것을 읽는, 즉 독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그렇게 해서 뇌를 발달시켰기 때문이지요.”

 


  그는 ‘교양’을 어떤 세트로 이루어진 지식이라고 보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교양을 익히기 위한 속성법이 있는 줄 아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교양을 ‘개인의 정신적 자기 형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이념의 총체’라고 정의하며 부연의 말을 더했다.

   “독일에서는 실학을 ‘빵을 위한 학문’이라고 하는데, 교양은 빵을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교양은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아도 ‘모르면 부끄러운 지식의 총체’, ‘각계에서 교양인이라 간주되는 사람들과 당당하게 지속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이 추천하는 책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국내에는 발행되지 않은 책들이 많아서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두 독서광이 추천하는 책 400권은 리스트와 함께 추천에 대한 짧은 변(辯)이 첨부되어 있다. ‘세 줄 서평’이라 해도 될 법한 이 글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충분했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두 형제를 알고 있다. 어느 날 동생네 사무실에 놀러갔더니 책상에 놓여 있는 책 한 권을 가리키며 이 친구 하는 말이 형이 훔쳐가서 또 한 권을 산 것이란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이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 책을 가방 속에 넣고 사무실을 나와 문자를 보냈다. ”한 권 더 사라.““

  정제원의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를 읽다가 이 글귀에 한바탕 웃었다. 보름 전 나는 이 책을 집어오면서 동생에게 똑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장거리 기차여행길에 오르면서 편하게 읽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바로 덮고는 집으로 돌아와 필기구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책을 폈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아 이문재 시인이 쓴 ‘척추로 읽읍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다시 말해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읽은 책이 한두 권 있다면, 당신은 책 속에서 이미 길을 찾았을 것이고, 또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갔을 것입니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읽은 책이, 또는 그런 자세로 읽고 싶은 책이 과연 몇 권이 있는지가 책 읽기의 핵심입니다. 척추로 읽는 책이 진짜 책이다." 

  이 글을 읽는 미래의 독자 역시 이 책을 어디서 읽든 자세만큼은 척추를 곧추세운 정좌의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내게 400 권의 리스트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난 지식의 거인에게서 고전과 교양을 읽어야 하는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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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왜 어떤 기업은 위대한 기업으로 건재한 반면, 다른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몰락하는가
짐 콜린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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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위대한 기업을 통해 배우는 실패학


  일본 최대의 의류회사 유니클로UNIQLO는 베네통에 비견되는 의류기업으로 ‘잃어버린 1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장기불황 동안 일본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은 ‘국민기업’이다. 고가의 방한복 소재인 ‘플리스(fleece·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양털처럼 부드러운 섬유)’로 중저가의 활동복을 만들어 불황으로 추워진 일본 국민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지켜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사랑 덕에 유니클로의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지난 2008년 경영 능력이 가장 뛰어난 ‘올해의 경영자’에서 2위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와 3위인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그는 2008년 말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자산가 랭킹 1위에도 올랐다.

  그렇다고 야나이 다다시가 항상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를 달고 사는 기업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에게 실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손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나이 회장의 유니클로는 실패를 감지하면 아무리 큰 손실을 입는다 해도 사업을 접어 버린다. 작게는 재고관리 등 시스템 상의 실패에서부터 크게는 외국진출에서부터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브랜드까지 판단이 서기만 하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00년 유니클로가 영국에 매장을 개설하고 영업을 개시했으나 부진하자 5개의 점포만 남기고 철수한 것이라든지, 에프알푸드라는 야채판매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은 ‘1승 9패’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실패할거라면 빨리 실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습니다. 비즈니스는 이론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 성공 비결입니다.” 그는 유니클로를 벤처 패션 회사라고 부르고 이러한 자신의 경영마인드를 벤처정신이라고 부른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를 출간해 세계적인 석학이자 경영의 구루가 된 짐 콜린스Jim Collins는 몇 해 전 잘나가던 몇몇 기업을 포함해, 역사상 가장 위대하던 기업들 중 일부가 왜 몰락했는지 주목했다.

  좋은 기업, 성공한 기업에 주목했던 그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김영사)를 쓴 목적은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기업들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 리더들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일종의 ‘몰락한 기업을 통해 배우는 실패학‘인 셈이다.



 

   저자는 상당한 분량의 데이터(그가 조사한 기업들의 역사는 모두 합해 6,000년이 넘는다고 책에 밝혔다)를 분석해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다섯 가지 단계별 틀을 도출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 -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저자가 기업들의 재무 상황, 비전과 전략, 조직, 문화, 리더십, 기술, 시장, 환경, 경쟁 구도 등 다방면에 걸쳐 몰락한 기업들의 역사를 검토하며 주목한 점은 바로 “하락이 본격화하기까지 어떤 조짐이 나타났고, 결국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하는 점이다.

  짐 콜린스의 몰락의 5단계는 적어도 위대한 기업들도 언제든 몰락할 수 있다는 것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몰락을 예방하고 감지하거나 이를 되돌리려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유용하다. 각 단계마다 등장하는 몰락한 기업들, 그리고 단계별 징조들은 ‘나의 회사는 어떠한 상황인가’ 점검해 보기에 충분할 만큼 제공된다.

 

 



 

  살펴보면 알겠지만 모든 몰락의 원인에는 경영자가 포함된다. 몰락한 기업의 경영자 대부분은 성공에 취해 자만을 했거나, 잘못된 비전을 제시하거나,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판단을 하고 상황이 잘못 돌아가는 것을 감지했으면서도 쉽게 궤도를 수정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지시로 시작한 비즈니스가 실패의 조짐을 보일 때는 그 사업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실패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고 결국은 큰 치명상을 입어 몰락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짐 콜린스가 마냥 부정적인 태도로 기업을 살핀 것은 아니다. 뉴코Nucor, 노드스트롬Nordstrom, 디즈니, IBM 등과 같이 위대한 기업들이 몰락의 4단계까지 쇠락했다가 다시 살아난 기업이 있는 것처럼 어느 기업이든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5단계까지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렵긴 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례들을 통해 밝혀낸다. 짐 콜린스가 제시한 몰락의 5단계로 가는 수순을 경영자가 미리 알고 있다면, 내리막의 시점 어디서든 방향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거의 모든 기업이 언젠가는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배우게 되는 것은 기업의 몰락을 있게 한 원인은 2008년에 있었던 천재지변과 같은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나 망가져버린 자본시장의 메커니즘 등이 아니라 대부분 기업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유지하는 기업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내부가 위대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에게는 혼란스러운 환경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 위대한 조직을 갖추지 못한 경쟁 업체들을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생각으로 사를 운영하면서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변화무쌍한 시장환경과 까다로운 소비자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해야 할 기업이 실패를 두려워해서 주저하거나 안주한다면 정상에는 결코 오를 수 없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몰락의 5단계를 배우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를 몰락이 아닌 실수로 만드는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벤처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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