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 - 삶을 걸작으로 만드는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질문
이재규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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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을 위한 드러커의 명쾌한 질문들 

  “앞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육체적으로 힘이 센 사람이나 숙련공보다는 학교에서 지식, 이론, 개념을 활용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치는 조직의 목표달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1966년에 출간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에서 지식작업(knowledge work),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 등의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면서 위와 같은 글을 통해 오늘날의 지식사회 도래를 예견하였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를 앨빈 토플러와 맥락을 같이 하는 미래학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러커는 자신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으며 또 예언을 한 적이 없다고 단호히 부정한다. 단지 남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이미 일어난 미래The future that had happened already'를 관찰하고 분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질문하는 사람’이다. ‘현대 경영학’을 만들어낸 학자이기 앞서 ‘컨설턴트’였던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의뢰인들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스스로 답을 찾아내도록 유도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통해 ‘앎’이라는 지식의 유한성을 가르쳤다면, 드러커는 보편적 이성주의에 입각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통해 수많은 경영자들에게 ‘인간 본연의 유한성’을 가르쳤다. 그래서 경영자들로 하여금 ‘조직’을 위한 경영이 아닌, 오늘날의 조직원인 ‘지식근로자’를 위한 경영이 ‘경영의 정석’임을 설파했다.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위즈덤하우스)는 드러커의 책 거의 대부분을 번역해 ‘피터 드러커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이재규가 ‘질문하는 사람’으로서의 그를 집중 조명해 편저한 책이다. 드러커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질문, 다른 사람에게 한 질문, 그리고 자신의 저술에 인용한 질문들이 한데 모여 ‘훌륭한 인생을 위한 위대한 질문’이 되었다.  



  

  책을 펴서 첫 장을 넘기면 글 속에서 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하고 매고 서재 의자에 앉아서 오른손에 펜을 들고 자신의 저서 <자기경영노트>를 무릎에 얹어놓고 있던 피터 드러커가 천천히 안경을 벗으며 내게 이렇게 묻고 있다. 

"아침에 면도를 할 때, 또는 아침에 립스틱을 바를 때,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는가?

What kind of person do I want to see when I share myself in the morning, or put on my lipstick in the morning? “

  이 글은 원래 난봉꾼이었던 에드워드 7세가 자신의 만찬에 12명 이상의 나체 창녀가 따라 나올 것을 주문하자 독일대사였던 소비에스키Sobiesky는 대사직에서 물러나며 “아침에 면도를 할 때,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난봉꾼의 얼굴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를 교사이자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드러커는 소비에스키의 이 말을 글이나 말로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거울 테스트mirror test라 부르며 이 말을 통해 윤리적으로 세상에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한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의 내용으로 등장하는 드러커의 질문들은 도를 깨친 학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한가로이 주고받는 선문답禪門答이 결코 아니다. 학자로서 비즈니스맨으로서 체득한 경험들이 녹아든 통찰력 깃든 질문들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드러커의 책들이 경영자들 사이에서 읽히는 이유도 경험에 의한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GE의 잭 웰치가 1981년 ‘GE의 여러 사업부문들 중 1, 2위를 하지 못하는 부문은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면도날 잭’이 되어 구조조정을 감행해서 몰락해가던 공룡 GE를 세계 일류기업으로 만든 것도 “만약 당신이 옛날부터 이 사업을 안 하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래도 지금 이 사업을 새로 시작하겠습니까?”라는 드러커의 질문 덕분이었다.

  드러커가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지식근로자들에게 던지는 공통된 경영적 화두는 아마도 ‘모든 변화를 수용하라’일 것이다. 어제까지 통했던 방법은 오늘의 변화된 환경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늙은 고양이는 어제 익힌 기술로 오늘 쥐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친구를 3일 만에 만나면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라”는 말처럼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는 지식사회에 사는 사람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 역시 빨리 변해서, 오늘 확실했던 것이 내일은 언제나 어리석은 것이 된다는 것이 지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는 경영혁신의 원천이다”고 말하며 변화를 강조한다. 

  또 다른 화두는 바로 ‘시간’이다. 드러커는 먼저 “나는 시간의 주인인가, 시간의 노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네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 “네 자신의 시간을 알라.”고 깨닫게 한다.

  오늘날의 지식근로자, 특히 최고경영자는 업무의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연속적인 시간단위’를 사용할 필요가 있지만 목표 달성을 이끌어야 할 조직 자체가 지식근로자가 업무에 몰두하는 것을 방해하고, 또한 지식근로자 스스로 주어진 임무를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혹은 두려움)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드러커는 지식관리자가 시간관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조직이나 가정 나아가 인생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다며 과업이 주어졌을 때 맡은 일이 아닌 가용 시간을 먼저 검토하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다음 꾸준히 시간을 기록, 관리, 통합하고 다른 사람이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은 권한위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 권한위양은 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기 자신이 직접 수행해야 할 과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편저자는 ‘과연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시간의 주인인가?’,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등 인생과 직장생활에서 만나는 38 가지의 흥미롭고 다양한 질문들을 가치와 목표, 학습과 탈학습, 강점관리와 리더십, 비즈니스와 고객, 통찰과 혁신, 기업과 사회 등의 주제로 나누어 주석과 함께 설명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통찰력 있는 드러커의 질문 속에서 일과 인생을 위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드러커의 명저들을 만나는 첫 시작으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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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 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김난도.최인수.윤덕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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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읽으면, 세계시장이 보인다!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베스트셀러 작가인 세스 고딘Seth Godin은 자신의 책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All Marketers Are Liars>에서 오늘날의 마케팅은 제품에 관한 객관적 사실정보만을 제공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진심이 담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케터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사는 대신 원하는 것을 사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는 것은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것이지만, 원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며 주관적인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팔든, 그리고 그 상대가 기업이든 일반 소비자든 간에 이윤과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데 있다.”

마케팅을 뒤흔드는 소비자의 힘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객관적인 '필요'보다는 비합리적인 '욕구'에 의해 선택이 많이 좌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일용품을 만들어 팔면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제품이나 오로지 서비스를 더 좋게, 싸게 만드는 것이 성장과 수익을 향한 확실한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규칙이 바뀌었다. 시장은 커지고 훨씬 더 넓어져서 더 싼 값에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고, 같은 값에 월등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강점은 오래도로고 수익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를 먼저 알고, 한 발 더 앞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만이 살아남는 이른바 ‘소비자 주권’ 시대가 온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소비자가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즉, '화폐 투표'로 어떤 제품이 얼마만큼 생산될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돈을 투표용지처럼 사용해 경제 주권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소비자 주권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만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쓴 책 <제3의 물결>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로서 ‘판매나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용이나 만족을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물건을 파는 기업의 광고물이나 홍보전략이 매우 중요했지만, 이제는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프로슈머들의 콘텐츠가 다른 고객의 물건 구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은 프로슈머의 위상을 한층 돈독하게 만들었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한 소비자가 상품평이나 이용 후기, 리뷰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마케팅의 핵심으로 소비자들의 평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업이 소비자 주권 시대의 프로슈머로 대변되는 깐깐한 소비자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니즈와 욕구’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예가 있다.

  2009년 말 영화 <아바타Avatar>가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다’고 열광했다. 헐리우드에서 7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국내에서도 외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총 1,330만 명을 동원해 국내 최다 관객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아이폰i-phone이다. 애플Apple은 2007년 6월 말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해 3년 만에 5,000만대를 판매했고, 어플리케이션 구매액은 80억 달러에 달해 세계 IT 시장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2009년 11월 조금은 늦게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아이폰은 국내 도입 100일 만에 40만 대를, 그리고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달성했다. 이는 하루 평균 4천 명이 아이폰을 구매한 셈이다. 

  소비자들이 ‘아바타’와 ‘아이폰’에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아니, 아바타와 아이폰은 소비자가 어떤 욕구를 느끼기도 전에, 제품을 내 놓아 소비자가 나중에 스스로 ‘욕구가 있었음’을 알게 했기 때문에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바타와 아이폰은 기존의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바타는 기존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컨텐츠와 테크놀로지 산업이 결합된 3D, 4D의 입체영상으로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아이폰은 통화기능 중심의 휴대전화를, ‘미니 컴퓨터’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으로 변화시켰다.

  다시 말해 소비자를 기술 혁명의 대전환기에 서 있게 함으로써 증인으로서 이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소비자의 욕구와 니즈에 한 발 앞선 혁신적인 기업의 혜안 덕분이었다. 

  아이폰과 때를 같이 해서 국내 전자업체에서도 스마트폰을 만들고, 아이패드i-pad의 대항마로 태블릿 PC를 내놓았지만, 성능과 가격의 우수함을 비교하기에 앞서 국내 소비자들이 국내업체에 아쉬워하는 것은 애플처럼 소비자보다 한 발 앞서 ‘다르게 생각하는think differently’ 혁신innonation의 부재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금 ‘신제품’이 아닌 ‘내가 원하던 제품’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이 한 권의 책에 그들의 생생한 욕구를 담았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한경BP)는 국내 기업들과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책일 것이다. 이 책은 소비자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10억 원이 투입되었고, 데이터 신뢰도 확보를 위해 국내 최대 소비자 패널을 보유한 기업의 58만 패널이 참여하여 도출해낸 소비자 리서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이 방대한 데이터들은 다시 권위 있는 트렌드 전문가로 잘 알려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참여하여 분석되어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간, 비용, 규모 면’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책이다.



 

  지금껏 소비자의 소비 심리와 시장 트렌드의 흐름에 대해 언급된 책이 없지 않지만, 우리와는 환경이 다른 해외의 통계 자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들 외국 자료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을 어림짐작으로 재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데이터를 도출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이 소요므로 고객의 채 1%도 되지 않는 트렌드 리더(트렌드세터trendsetter라고 불린다)들을 표본으로 조사하곤 했었다. 

   그에 반해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소수의 특정부류가 아닌 전체 시장을 구성하는 일반 소비자mass consumer의 생생한 욕구와 니즈를 담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 환경의 정확한 분석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전문가들답게 심도 깊은 질문과 내용들은 여느 설문지들과 다르고 매우 인상적이다.

  점점 더 까다로워진 소비자와 시장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요즘 정확한 ‘소비자 정보’는 기업과 개인에게 가뭄철 단비와 같다. 수십 만 소비자 패널을 활용한 이러한 ‘소비자 정보’의 데이터는 희망사항이 더해진 예측이 아닌, ‘엄연한 사실fact'이고, 이것은 다시 소비자의 강력한 요구로 해석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군을 IT/자동차, 미디어/여가생활, 건강/라이프스타일, 학습/투자, 소비/행복 등 5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인지 접근할 수 있도록 다시 17개의 아이템으로 세분화해서 질문한 내용과 응답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표와 그래프로 설명했다. 아울러 데이터로 도출된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예측도 할 수 있도록 스토리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항목의 결과 몇 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는 <이동통신>에서 소비자들은 휴대폰은 여전히 전화기인 반면, 스마트폰은 휴대폰이 아닌 ‘미니 컴퓨터’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들은 스마트폰이 휴대폰을 대체하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만약 휴대폰과 스마트폰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양손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환골탈태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서 아이패드는 소비자 역시 스티브 잡스의 생각대로 넷북과 전자책 단말기의 중간으로 여기고 있다. 안방용 아이패드냐, 휴대용이라며 7인치로 줄여 대항마로 등장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탭이냐 세간의 시선이 주목되지만, 아직 소비자의 선택은 미지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소비자의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제품의 ‘지속성’이라면 어느 제품의 ‘어플리케이션’이 우위를 점하는가에 승패는 갈릴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트위터Twitter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스마트폰의 보급에 비례해서 애용될 것이다. 특히 트위터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SNS이기에 더욱 인기를 구가할 전망이다. 한편 양방향의 소통 관계를 전제로 한 SNS가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대한 효과는 온전히 소비자인 유저들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기업은 홍보에 앞서 ‘관계의 유지와 관리’ 그리고 ‘관계의 확장’을 고민해야 한다.



<경차와 에코차>에서는 유가상승과 경기불안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경차와 에코차에 쏠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경차의 경우는 안정성, 에코차의 경우는 높은 차량 가격과 기술에 대한 불신이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 또한 한정적인 경차와 에코차의 종류는 상대적으로 먼저 참여해 다양한 기술력과 종류를 보유하고 있는 수입자동차 브랜드들에게 시장을 잠식 당할 우려감도 없지 않다. 국내 자동차기업의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관리>는 의외로 게으르다. 건강하고 싶지만, 몸과 머리를 움직이기는 귀찮아 한다.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추구한다. 다이어트와 운동대신 굶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보다 쉽고 편리한 건강관리법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커피>에서 커피전문점의 증가는 ‘커피 맛’이 아닌 소비자들이 일으키는 ‘관계의 중요성’ 때문이고, <유통채널>은 인터넷 쇼핑몰과 TV홈쇼핑의 등장으로 구매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들이 가진 한계가 있으므로 대형 할인마트나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더 나은 혜택을 주는 변화가 요구된다.

 

한국 소비자를 읽으면 세계 시장이 보인다

  이 책은 자영업자를 비롯해 비즈니스맨은 물론 기업의 CEO까지 ‘내 고객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만하다. 특히 자금도 없고 방법도 몰라 ‘소비자 조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CEO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기에 권하고 싶다. 5가지 영역에 속하는 17개 분야의 상품군의 소비 조사는 개별적으로도 유익하지만, 서로 복합적으로 결합해 보면 새로운 소비 심리와 시장 트렌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놓고 어떤 독자는 전 세계를 상대로 ‘글로벌 마켓’을 구상해야 하는 요즘 ‘기껏 한국 소비 시장조사냐?’고 과소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 소비자만큼 ‘깐깐한 소비자’는 세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경우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이 크며,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테스트 마켓으로 최적이라는 게 외국 기업들의 평가다. 그래서 외국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Localization)의 일환으로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개발한 제품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로 역수출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다양하다. 

  세계적인 주방기기 업체인 테팔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한국형 불고기 그릴을 만들었다. 테팔의 한국형 불고기 그릴은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이제 전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비누가 주력이었던 도브는 샴푸도 만들어 달라는 한국 소비자들의 요청에 따라 ‘도브크림샴푸’를 개발했다. 국내에서 출시되자마자 국내 헤어케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 현재 시장점유율 15%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도브 본사에선 이러한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도브크림샴푸를 글로벌 브랜드로 내 놓았고 현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는 1999년 통고구마 메뉴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역수출한 뒤 김치볶음밥을 응용한 ‘아델레이드 라이스’, 한국식 갈비구이를 변형한 ‘카카두 갈비 스테이크’ 등을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편 피자업체로는 피자 가장자리에 고구마 띠를 두른 ‘리치골드’를 개발한 한국피자헛의 경우 일본과 중국 기술팀이 방한해 기술을 전수해 갔을 정도다.

  이처럼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있는 한국 시장에서 먹힌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도 높을 터, 국내 소비자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과학적인 설문조사로 만들어낸 이 책이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행본이 아닌 매년 시리즈로 출간 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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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랩 - 돈이 벌리는 경제실험실
케이윳 첸 & 마리나 크라코브스키 지음, 이영래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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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실험실, HP연구소가 밝힌 행동경제학의 현주소

  지난 10월 말 부산에 부산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이 행사는 부산국제영화제PIFF와 함께 가장 성대하게 열리는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행사 이후를 평가한 신문기사에 의하면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열린 불꽃축제가 생산유발액 750억 원에, 소득유발액 311억 원, 그리고 1737명의 취업유발효과를 냈다고 하니 부산시가 발표한 부산세계불꽃축제의 ‘경제적 유발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광객들을 볼모로 하는 바가지 상혼이 기승을 부려서 '바가지 축제'라는 오명을 갖기도 했다. 이유는 바로 불꽃축제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뷰포인트 때문이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앞 해변로에 늘어서 있는 식당, 주점 앞문에는 모두 "불꽃축제명당 예약가능"이라는 큰 안내글을 붙여놓고 사전에 예약을 받았다. 인근 호텔은 축제기간 동안 객실요금을 30~40만 원 정도로 평소보다 올렸지만, 비싼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사흘 내내 객실 70여 개가 모두 동이 났고, 호텔 중식당과 레스토랑도 특별 메뉴로 거의 1인당 7만원~10만원 상당의 값을 매겼는데, 현재는 대기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사흘간 펼쳐질 축제로 광안리 일대 상가가 모두 들썩이고 있지만, 정작 관광객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이미 예약이 꽉 들어찬 것은 둘째치더라도 높은 가격 때문에 예약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안리의 어느 호프집은 4인 기준으로 미리 예약금 10만원을 받은 뒤 양주세트 메뉴만 30~40만 원에 제공하고, 다른 메뉴는 아예 판매하지 않기로 했고, 인근의 커피숍은 메뉴는 그대로지만 창가에 있는 테이블은 1인당 자릿세를 3만원 더 내야 앉을 수 있었다. 이는 과연 정당한 조치일까? 당신에게 묻는다면 아래의 네 가지의 답 중 무엇을 선택할까?

1) 전적으로 정당하다 2) 용인할 만한 수준이다 3) 부당하다 4) 대단히 부당하다

   HP(Hewlett-Packard)연구소 소장이자 행동경제학과 실험경제학 분야의 신진 주자 중 한 명인 케이윳 첸Kay-Yut Chen의 책<머니랩 Secrets of the Moneylab>(타임비즈)에 의하면 이와 비슷한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82%가 ‘부당하다(3번 혹은 4번)’고 평가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며 동의는 하지만, 한편으로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비논리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경제학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르면 가게 주인이 굳이 가격을 올리지 않더라도 가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는 여기저기서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만약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해도, 수요가 폭등함으로써 품귀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때로 가격 인상은 품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한다. 공급 부족이 생기면 얼마가 됐든 기꺼이 지불하려 하는 사람이 자연히 ‘전망 좋은 자리’를 얻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러한 ‘수요-공급’ 원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가 꼭 필요한 사람(내일 임종을 앞둔, 하지만 불꽃축제를 보고자 하는 암환자와 같은)이 그것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하고, 꼭 그 자리를 앉기 위해 생계비까지 희생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를 보면, 많은 이들이 ‘가격 인상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바로 소비자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기준을 무시하면, 기업은 별 생각 없이 내린 선택으로 인해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터무니없이 자릿세를 받는 업주는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며 불매운동’을 벌인다던가, 세무당국에 진정을 넣는다면 ‘가격 인상분’보다 더 큰 손해를 잃을 수 있다. 단 사흘뿐인 축제기간에 돈 벌자고 남은 362일을 저당을 잡을 수는 없잖은가?

  현명한 사업주라면 이런 소비자들의 ‘생각’을 민감하게 감지한다면, 고객들로 하여금 반감이 들게 하지 않으면서도(즉 고객들이 등을 돌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가격 인상 효과를 얻고 실익을 챙길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행동경제학이 당신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롭게 할까How Behavioral Economics Can Improve Your Business 라는 부제를 가진 <머니랩>의 내용은 위와 같이 ‘돈 버는 경제실험(Money+Lab)을 행한 HP연구소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가득 담고 있다. 

  HP(Hewlett-Packard)연구소는 이제껏 실험실과 강의실에 갇혀 있던 경제학의 첨단 연구 결과를 현장에 활용하고, 아울러 비즈니스 경영과 공급망 관리, 가격 책정과 정책 결정, 수요와 판매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한 안목을 제시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휴렛패커드사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을 할 때 투자를 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어떤 의사결정이 가장 합리적인지 실험해 볼 수 있는 가상 연구소를 오래전부터 운영해왔다.

  다시 말해 HP연구소를 통해 경영진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객관성을 제고했다. 보통 이러한 연구소는 엄청난 비용 상의 이유로 구글이나 야후 같은 최첨단 기술관련 기업 몇 개를 제외하고는 운영되지 않는다.  이러한 연구와 실험은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결정한 덕분에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으로 인한 미래의 손해를 엄청나게 줄여왔으며 또한 인간의 행동 패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비즈니스에 접목함으로써 큰 수익을 냈다. 

  저자인 케이윳 첸과 마리나 크라코브스키는 그간 <뉴스위크>,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 타임즈> 등 다양한 매체에 흥미로운 기사를 연재해 왔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실험들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나 <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 등 그동안 우리가 흥미롭게 읽어 왔던 행동경제학 관련서에 언급된 실험들처럼 느껴지는 것은 실험의 시작이 HP연구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를 처음 만들었던 저자 케이윳 첸은 HP 연구소에서 밝혀낸 놀라운 인간행동의 열쇠를 이 책에서 공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이 그동안 HP연구소가 연구했던 15년 동안의 연구결과와 현장의 경험을 총망라했다고 밝혔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연구한 HP연구소의 실험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진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할 때 보여주는 독특한 심리적 패턴에 주목했다. 보복심리, 보상심리, 대중의 흐름에 편승하는 심리, 위험 회피심리, 모험추구심리 등 사람들의 독특한 심리적 패턴들이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그 자체로 비즈니스의 향배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괴짜 경제학>, <상식 밖의 경제학>, <넛지>와 같은 기존에 나왔던 행동 경제학 분야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반드시 행동에 규칙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의 행동이 가끔 아주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실험결과를 통해 알려준다.

  지피지기하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던가?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 패턴이 비슷하다면, 그리고 그것을 내가 알아낸다면 비즈니스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 된다. 비즈니스를 하는 독자라면 몇 장 넘기지 않아 이 책에서 버릴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첫째,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두려워한다.

  만약 당신이 2년 간 차량을 리스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계약 만료 시점에서 리스를 했던 차량을 더 많은 대금을 주고 구입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싼 가격으로 다른 중고차를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웃돈을 주고 리스 했던 차량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이 쓰던 중고차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2년간 리스를 했던 차량의 경우는 이미 장단점을 다 알고 있어서, 다른 동급의 중고차보다 좀 더 비싸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그 값을 치르는 것이다. 우리가 화재나 죽음과 같은 재난에 대비해 보험을 들고, 카메라나 노트북 가격의 1/4-1/3에 달하는 과다한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A/S보증 상품을 구입하는 이유 역시 불확실성Uncertainty에서 오는 위험(리스크)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카지노와 보험사와 같이 리스크를 사고파는 기업들은 회계사와 통계 전문가들을 고용해 이러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그들이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당신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불확실성(확정되지 않은 불안요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현혹시키는지 이해한다면 카지노와 보험회사만큼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다.

둘째, 사람들은 비즈니스에서 공정함Fairness 이나 형평성을 무척이나 따진다.

  사람들, 즉 우리 모두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만큼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로는 ‘공정성’을 쟁취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 점에서 기업이 제품에 대한 ‘가격인상’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에 대해 잘 대처한다면 전보다 실익을 더 챙길 수도 있다.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 대신, 식품의 용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재료비 인상분을 제품에 반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더 이상 용량을 줄일 수 없을 만큼 작아졌지만).

셋째, 사람들은 상호주의Recipocity 혹은 호혜주의를 원한다.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당신이 상대에게 바라는 것처럼’ 상대를 대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상호주의는 사원들의 급여와 생산성과의 관계에서부터 선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상황들에 적용된다. 물론 이는 비단 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상대를 시간당 급여를 받는 일용직 근로자처럼 대하면서 창의적인 결과를 내주기를 바라거나, 가족이나 친구처럼 지내자고 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배제하는 등의 ‘이중 잣대’를 댄다면 결코 상호주의의 관계를 성립시킬 수 없다. 또한 ‘충분히 보상을 하든지 아예 보상을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듯이 자칫 잘못 보상하게 되면 원망을 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충성도 높은 고객이 등을 돌리면 가장 악명 높은 안티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합리적인 인간은 없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앵커링Anchoring, 즉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준점‘을 바탕으로 해답을 도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협상에 성공하려면 절대 먼저 제안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지만, 실험 결과 첫 제안을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찰제가 아닌 상점에서 손님들은 10,000원을 부르는 가게 주인에게 8,000원이라 대꾸하며 흥정한다. 만약 상대가 8,000원을 불렀다면 5,000원이나 6,000원으로 흥정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문제의 핵심과 전혀 ‘연관이 없는’ 정보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로 붐비는 현금인출기 앞에서 장시간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 볼 때 계속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포기해야 할까? 판단의 근거는 내 앞에 선 사람들의 숫자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뒤쪽’도 보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기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줄에서 이탈할 확률은 낮아진다. 답답할 때 마다 뒤를 돌아보며 나보다 더 기다려야 할 사람들을 보며 흐믓해 한다. 

  그리고 호텔이 투숙객에게 ‘타월을 한 번만 쓰고 세탁하는 것은 환경에 좋지 않으니 가급적 재사용 해달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높고, ‘포인트 리워드 시스템’에서 고객들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보다 ‘포인트’의 가치를 더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 검증된 바 있다.

  한편 사람들은 복잡한 숫자로 구성된 가격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인다. 사람들은 큰 숫자들을 반올림해서 부르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뒷자리가 복잡한 숫자를 더 작은 것으로 인식한다. 실제로 부동산 구매자들은 1,476,230 달러와 같이 마지막 숫자에 ‘0’이 하나만 붙은 가격의 매물에 대해 동급의 매물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더 싸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평판Reputation을 믿고 따른다.

  평판은 신뢰를 구축해서 사람들이 미지의 거래 상대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좋은 평판은 ‘리스크 프리미엄’의 값어치를 가지는데, 이는 ‘평판 프리미엄’이라고도 불린다. 조지 애컬로프가 1970년 발표한 ‘레몬 시장market for lemons'라는 논문이 있다. 좋은 차들(복숭아)과 나쁜 차들(레몬)들이 있는 중고차시장에서 판매자는 잠재 구매자에게 보여주는 차가 ’레몬‘이라는 사실을 말해야 할 때 말을 하던, 하지 않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새 차나 다름없는 중고차가 신차에 비해 훨씬 싼 이유를 말해준다. 즉, 가격 자체가 ’차량이 레몬일 수 있는 리스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평판‘에 있다. 자동차 딜러가 판매실적이 좋고, 소비자가 만족해하며 나아가 차량이 진짜 ’레몬‘인 경우 환불도 해준다는 평판을 얻게 되면 시장은 ’레몬시장‘일망정 소비자는 딜러의 평판을 믿고 구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판은 ’양날의 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판이 높아질수록 시장변동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유명인이나 기업은 일반적으로 위기에 취약하며, 엄청난 평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나 개인은 잃을 것이 많아서 리스크를 감수하기가 힘들다. 또한 이러한 평판을 악용하는 잠재적인 함정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상대를 한 번 신뢰하면 계속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때로 ‘한번 믿을 만한 사람은 영원히 믿을 만하다’는 암묵적 룰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신뢰에 대한 배신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상대의 신뢰도와 충성도를 유지하고 높이려면 인센티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또한 높은 수준의 신뢰가 있을 때라도 인센티브가 신뢰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보상과 벌칙을 비롯한 규칙체계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기업들이 이렇게 ‘경제학 실험’을 하는 이유는 비즈니스의 의사결정 순간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그래서 궁극적으로 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인 HP나 구글, 야후 등이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불러 이러한 ‘돈을 잃지 않기 위한,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경제학 실험실’을 두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간이 비합리적이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흔히 만나는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사업진출’ 등의 담대한 결정들 역시 이러한 ‘경제학 실험실’을 거쳐 나온 결정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개의 개인이 이런 실험결과들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 될 것이다(물론 관심이 있는 독자에 한하겠지만). 전에 나왔던 <괴짜경제학> 류의 베스트셀러가 행동경제학을 재미있게 소개했다면, 케이윳 첸의 <머니 랩>은 보다 각론적인 접근해서 행동경제학이 비즈니스는 물론 우리의 실생활에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경제학 공부를 했다는 느낌이 들게 한 유익하고 알찬 책이었다. 

“실험적 접근법은 이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단계에 있다. 경제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시작된 이 트렌드는 와튼, 하버드, 스탠포드, MIT슬로언 등 유수의 경영대학원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빌리고 투자하는가(행동 금융학behavioral finance),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행동 조정 경영 behavioral operations management), 사람들은 집단 속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조직 행동organizational behavior), 쇼핑객들은 어떻게 구매를 결정하는가(소비자 행동consumer behavior) 등을 잘 이해하기 위한 실험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책의 말미는 이러한 결과들이 이제 시작임을 알려준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야 할 다양하고 실제적인 행동경제학의 분야일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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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 기회를 낚아채는 충동의 힘
닉 태슬러 지음, 이영미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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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 성공의 원동력은 ‘충동’, 그보다 값진 것은 ‘균형’

 

  콤 글래드웰은 명저 <아웃라이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아웃라이어 즉,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성공을 거둔 사람’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어린 게이츠가 들어간 미국 시애틀의 엘리트 사립학교에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시간 공유 컴퓨터 터미널이 설치되었다. 빌 게이츠는 타고난 능력에 더해 이러한 기회가 어우러지면서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컴퓨터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프링>(흐름출판)의 저자 닉 태슬러는 빌 게이츠가 ‘타고난 충동심’ 때문에 성공했다고 반박한다. 게이츠는 선천적으로 모험을 즐겼고, 특히 속도광이어서 1년 동안 끊은 속도위반 딱지가 회의실 전체를 도배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빌 게이츠가 IBM이나 애플과 같은 업계 골리앗을 쓰러뜨리겠다는 의욕을 갖고,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다음 특별한 사업계획도 없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것을 ‘충동’에 의한 모험적 행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았다. 



   ‘기회를 낚아채는 충동의 힘’이라는 부제의 <스프링>은 ‘충동적인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실체를 밝히고, 충동의 힘이 우리 일상생활과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주며, 이러한 ‘충동’이 어떻게 폭발력 있는 성공의 변수가 될 수 있는지 재미있는 사례들을 통해 살핀다.

  우선 저자는 전 세계 인구 네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25%는 ‘충동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괴짜 유전자라고 불리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연구 중에 발견했는데, 도파민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난 이들은 보통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새롭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찾아다니며 과잉보상하려 든다는 것이다. ‘모험추구자’로 불리는 이들이 비즈니스를 하면 조직의 관습에 도전하고 혁신을 꾀해서 종종 큰 성공을 이루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이다. 우리가 늘 ‘범상치 않다’고 말해 왔던 ‘괴짜 CEO(최고경영자)’들이다.

  한편 저자는 나머지 세 명에 해당되는 보통 사람들, 즉 ‘위험관리자’는 신중하고 느리지만 불확실한 시장에 숨어 있는 위험요소를 날카롭게 인지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속한 조직 안에는 항상 이 두 가지 유형의 인간형이 대립하며 존재하는 셈인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위험관리자와 모험추구자를 적절하게 서로 짝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인간형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되면 위험관리자는 용감해지고, 모험추구자는 좀 더 신중해져서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괴짜 CEO 곁에는 스티브 발머와 티모스 쿡 같은 위험관리자들이 있었다. 세계 비즈니스에서 이와 비슷한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소니의 위대한 발명가 이부카 마사루 옆에는 판매왕인 모리타 아키오가, 자동차 회사 혼다에는 천재 기술가 혼다 소이치로와 관리의 달인 후지사와 다케오, MS사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가 있었다.

  저자는 ‘충동’이라는 화두를 통해 21세기의 개인과 조직의 생존 법칙은 바로 ‘균형’에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읽는다면 <아웃라이어>만큼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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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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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이 읽는 책만 따라 읽는 '원숭이식 독서법'에서 탈출하는 법!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다. 좀 심한 말이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데다, 자기만의 철학이나 주장도 있을 리 없으므로 그저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양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남의 행동을 따라 하기 바쁜 것이다.”

  도발적이지만 명쾌한 표현이다.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뜨인돌)에 실린 글인데, 나를 사로잡은 글이자 이 책을 읽게 한 결정적인 구문이다. 책이 ‘꼭 읽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에서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것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정말 그래도 되는가보다’고 여기며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른 사람이 터득한 요령이나 성공 비법을 따라 하기나 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사람은 동물원의 원숭이보다 나을 게 없다. 원숭이도 인간을 곧잘 따라 하지 않는가. 남이 알려 주는 기술에 의존하는 한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힘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저자의 변(辯)을 읽으면서 ‘옳거니~’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한 번에 열권을 동시에 읽는다’는 초병렬 독서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에 열권을 읽는 초병렬 독서법이라...얼핏 보면 ‘뭔가 새롭고, 특별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좀 더 살펴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책읽기 방법이다. 왜냐하면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하면 꼭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한다‘고 여기는, 일종의 강박감이 느껴지는 독서 습관을 가진 사람만 아니라면, 책을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자가 말하는 ’초병렬 독서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자처럼 ’이것이 초병렬 독서법이지‘라고 여기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 정도로 여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 권을 열심히 읽던 중에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했을 때 혹은 분량이 많거나 어려워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읽을 때, 머리를 식히듯 기분전환 하듯 내용이 조금 가볍고, 읽기 편한 책을 찾게 된다. 쉽게 말해 이런 독서 방법은 굳이 ’초병렬 독서법‘이다 뭐다 제목을 붙이지 않더라도 책을 읽다가 보면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습관이다. 

  나는 조금 전까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왜 도덕인가?>(한경BP), 그리고 카이윳 첸 HP연구소장이 쓴 <머니 랩>(타임비즈)를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마치 ‘내 현재의 책 읽는 모습’을 말하는 것 같은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 들고는 마지막장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렇다고 제목에 끌렸다 해서 ‘책 열권을 동시에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동시에 열권을? 그게 가능해?’ 같은 의아함이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책 동시에 열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책읽기 방법도 아닐 뿐더러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겠다‘고 결론 지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책 읽기 방법은 절대로 보편화 할 수 없는 방법이다. 나만 보더라도 책 세 권을 읽고 있으면서도 ‘여기저기 너무 기웃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열 권 이라니...절대로 동시에 읽을 수 없는 분량이다. 게다가 저자는 ‘발췌식 독서’를 권하고 있다. 심지어는 서점에 서서 ‘5분 정도 들여다보는 수준도 한 권을 읽어낸다‘고 보았으니, 정독과 완독을 하는 나로서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책읽기 방법이다. ’초병렬 독서법‘이라는 그의 독서법은 ’동시에 열권을 읽는다는 단순한 행위‘에 근거한 것이지 특별한 이론적 근거나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병렬 독서법‘이라는 이름도 저자가 독서습관을 본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이라 하지 않았던가?

  짐작컨대 홋카이도의 평범한 대학을 졸업해 입사한 사원이 35세에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의 사장으로 취임했다면 저자인 나루케 마코토는 그 자체로 화제의 인물 감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성공을 엿보니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라는 점이 두드러져 그를 성공으로 있게 한 독서습관을 굳이 알리자니 이렇게 해괴한 이름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요컨대 그가 말하는 ‘초병렬 독서법’은 딱히 배우고 익힐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다독가’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좋은 말들이 꽤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면, 그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나이기에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우선 마음에 들었던 표현은 ‘독서’를 놀이로 본 것이다. 대학시절 국어교수가 내가 책을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준 한마디가 ‘책은 장난감이고, 독서는 놀이다’였는데, 반가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옮기면 다음과 같다. 

  “독서는 일종의 놀이다. 그것도 가장 편안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소파에 앉아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며 책의 세계로 신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우리는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세상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 멀리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체험할 수없는 일들을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 장소에 가 보지 않으면, 즉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은 그만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나는 가끔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 재미있게 놀다오곤 하는데, 그럴 때만다 세상에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놀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독서를 즐기지 못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책을 ‘교과서나 참고서’의 친구쯤으로 여기지는 않나 먼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책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교과서나 참고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것, 공부해야 할 것, 외워야 할 것’으로 여긴다면 독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가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렇게 여겼다면, 쉽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을 장난감으로, 독서를 놀이로’ 여기는 순간 책읽기는 만만해진다. 서양 사람들이 휴양지로 휴가를 와서 책을 보는 이유, 심지어는 선탠을 하면서 책만 읽다가 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의 원서 - 뒷장에 '타인의 노하우를 따라하기만 한다면 '일생 서민으로 남는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면 테러리스트가 되어도 좋다‘는 표현도 멋졌다. 다독가가 아니고는 결코 쓸 수 없는 감정 표현이다. 다소 극단적이기까지 했지만 부연을 읽어보고 또 한 번 쾌재를 하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열심히 읽고 자기 인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아이가 꼭 정치가나 의사와 같은 화려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테러리스트가 되면 어떠랴. 체 게바라처럼 낭만과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라면 그것도 근사한 일 아닌가.(모든 혁명은 테러로부터 시작되었다)”

  1974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TV 송신탑이 과격파에 의해 파괴되면서 그 지방의 130만 대나 되는 텔레비전이 약 1년 간 먹통이 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극도로 혼란했을 법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되면서 서점의 수입이 늘었고, 어린이들은 바깥놀이를 즐기게 되어 더욱 건강해졌다고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도 늘어나 더욱 친밀해졌다는 것이다. 

  책 읽을 시간이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아마 평생 동안 책 한 권도 못 읽을지 모른다. 책 읽을 시간이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굳이 송신탑을 파괴시키지 않더라도, ‘거실을 서재로’ 같은 캠페인을 벌이지 않더라도, TV를 잠시 끄자. 그렇다고 아예 TV를 보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TV를 켜놓고 멍하니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같은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열권을 동시에 읽는’ 헛갈리는 책 읽기 방법도 필요 없다.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가장 편한 자세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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