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컨스피러시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대 테러 전쟁
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8월 8일 오후 8시 이전까지 읽어봐야 할 정치첩보스릴러물 !
 
  우선 이 책은 더위를 잊을 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올림픽이 곧 열릴 베이징에 생화학무기를 투하한다는 테러집단의 계획에 맞서 미 중앙정보부 베테랑 요원 커티스 오코너와 질병통제센터의 케이트 브레이스웨이트 박사가 고군분투 끝에 이를 저지한다는 내용의 영화같은 소설이다. 실제로 첩보부대에서 근무했고,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경찰과 공조 하에 생화학 및 핵 공격에 대비안 보안을 담당했던 이력에 걸맞게 저자 에이드리언 다게는 박식한 생화학적 지식과 실전 첩보전의 내용을 스토리에 접목해 내용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계는 지금 전쟁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유가와 곡물가, 달러화의 약세와 유로화의 강세,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국지전등은 신문을 한 권의 지구촌 전쟁일지로 둔갑시켜 토해내고 있다. 속 모르는 국민들이야 가격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만 뉴스 속에 숨어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암투로 뒤범벅되어 있으리라. 지구촌 어느 곳도 안전하다 할 수 없는 요즘의 정세에 어울리게 이 소설은 테러집단과 이에 대항해 세계보안관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과의 대립에 큰 틀을 잡았다.
 
  현 정치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는가 하면, 세계적인 미항이 폭파되고, 미국 대통령이 암살된다. 그 뿐만 아니다. RNA 바이러스인 에볼라와 전염성이 무척 강한 천연두와 결합된 신종 생화학무기가 등장하고, 세계 각지에 퍼트리는 지구촌을 겨냥한 엄청난 테러음모를 저자는 이 책에서 만들어낸다. 허무맹랑하다 치부할 수 있지만, 9.11을 비롯한 일련의 테러와 그에 대응한 테러와의 전쟁 양상을 미뤄볼 때 확인할 수 없을 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녔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450여 페이지의 두께를 지닌 한 권의 책은 내 손을 떠날 줄 몰랐다(스토리의 전개상 중간에 결코 덮을 수 없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도 그렇지만, 거론되는 수많은 이름을 되찾아 읽기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지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 정말 독특한 힘이에요. 종교 말입니다. 논리보다 믿음에 바탕을 둔다는 것, 그게 바로 종교의 문제죠. 알라를 대신하여 버스 정류장을 날려버려야 한다고 믿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도 그렇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믿는 대통령이나 수상도 마찬가지죠. 어느 쪽이든 제대로 논쟁을 벌일 대상은 아니죠."(p285)
 
  "마지막으로, 그들의 종교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원리주의자드에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신이 10억의 기독교인들과 10억의 이슬람교도들, 40억이 넘는 다른 종교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해놓고 그중 한 그룹에게만 지도를 준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피조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 구하고 나머지는 유황 지옥 속에서 불타게 한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위대함을 무고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무수히 죽이는 것으로 보여준단 말입니까. 그런 신이라면 저는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이 잔혹한 폭력을 승인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원전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는 원전을요. (p436)
 
  저자는 [종교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를 받은 바 있는 만큼, 이 책에서 그는 대립관계를 단순히 테러분자와 대테러요원으로 놓지 않고, 종교적 차원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테러분자로 치부되는 그들의 항변과 그에 뒤질세라 쏟아내는 미국의 생각을 그는 제 삼자적 측면에서 날카롭게 서로를 지적한다. 곳곳에 저자가 바라보는 서로간의 입장에 대해 피력해 놓은 부분은 현재의 테러양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영상으로 읽는 소설의 흐름을 끊는 경향도 없지 않다. 소설의 진행이 다각적이고 광범위해서  쉬지 않고 완독을 해야 제대로 그 맛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점에서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는 현대인들이 틈을 내서 읽기에는 여간 쉽지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테러전에 대한 세계정세를 이해하고, 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또 다른 테러의 양상을 짐작하는데는 이처럼 잘 해석해 놓은 책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에 강한 흡인력을 지닌 정치첩보스릴러인 만큼 비슷한 장르의 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덩어리일 것 이다. 무엇보다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는 테러 단체와 미국의 전쟁을 보다 생생하게 그리고 새로운 인식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1998년 8월 8일 오후 8시, 베이징 올림픽은 시작된다.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어느때보다 성대하고 안전하게 치루어져야 할 테지만, 작금의 세계정세와 중국을 미루어 볼 때는 가장 불안학 위태한 올림픽이 될 것 같다. 바라건대 무사히 끝나기를, 이 소설 속의 테러집단들이 바랐던 바 처럼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곧 닥쳐올 올림픽에 있을 테러전 이야기인 만큼 그 재미를 만끽하기위한 유효기간은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 달여 남은 올림픽 이전, 주말에 하루를 잡거나 휴가철을 맞아 기나긴 여정에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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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소원 - 살아가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게이 핸드릭스 지음, 이정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잃어버린 꿈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 줄 책 !
 
  "아들아!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버지가 묻자 다섯 살 박이 아들은 큰소리로 답한다.
"대통령!"
 
아들의 원대한 꿈이 대견한 듯 귀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묻는다.
"대통령 되면 이 아버지는 뭐 시켜줄꺼야?"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랑스러운 듯 또 큰소리로 대답한다. "탕수육!!"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의 친구가 한참을 웃더니 묻는다. "그럼 이 아저씨는?"
아들은 시큰퉁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같이드세요~"
 
  나이가 들수록 허구보다는 현실을 찾으려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현실에 비추어 '있을 수 있다' 혹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판단하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들만을 실현가능한 것이라 믿고 그것을 쫓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실수하거나 넘어질 망정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크게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이루지 힘들 것 같은 것들에 대해 여우의 신포도처럼 '허망한 꿈일 뿐'이라 자위하며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현실적이라 믿는 이들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릴 적 꿈꿔 오던 수많은 소원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물질이나 금전적 풍요를 읊조리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지금 당장 내게 '네 소원이 무엇인지 다섯 가지를 10분 안에 답해 보라'고 이야기 한다면 모두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내가 진정 원하는 소원을 다섯 가지 씩이나 생각하고 꿈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바람은 애시당초 쓸데없고 허튼 꿈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왔던 나에게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책을 만났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한 남자에게서 다섯 가지 소원의 비밀을 알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한 남자의 '트루스토리True Story'(그렇지 않았다면 읽고자 하지도 않았을거다. 난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니까)가 그것인데, 심리학자기도 한 게이 핸드릭스Gay Hendricks 의 책, [다섯 가지 소원 Five Wishes] 이다.
 
  20여 년전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한 어느 칵테일 파티에서 만난 점성가이자 영적 스승인 에드라는  남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단 한 번이라도 누려볼 수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 J. 폴 게티의 죽음 앞에서의 소원을 빌어 '오늘 밤이든 50년 후든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당신의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저자는 받게 된다. 그렇지 못한 자신을 이야기하는 저자에게 에드는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력하지 않으면 후회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은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하는 다섯 가지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한 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때 저자가 죽음을 앞두고 완벽하게 성공하지 않아 행복하지 못한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와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생활를 누리지 못했거든요. 그런 여자와 평생 열정과 창조성을 꽃피우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나는 왜 한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걸지 못하는 걸까?)
 
"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에요. 친구들가 가족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를 다하지 못했거든요. 내 비밀을 모두 털어놨어야 해요.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말하고, 딸아이한테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정말 슬펐다고 이야기했어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나)
 
"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에요. 살아오면서 배운 중요한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하지 못했거든요." (포기할 수 없는 꿈 앞에서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에요. 신과 신성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머리로 생각만 했을 뿐, 온몸으로 느끼지 못했어요." (나는 누구인가? 그 영원한 질문에 대하여)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에요. 너무 조급하게 살아왔거든요. 잠시 멈춰 서서 소중한 순간을 음미할 줄 몰랐어요."(지금 이 순간,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
 
  저자의 '완벽한 성공'에 이르는 다섯 가지 소원을 들은 에드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자신이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이내 그는 그저 무의미하지 않은 삶에 만족하는 것은 너무 낮은 목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든 목표가 실현된 훌륭한 삶을 꿈꿔선 안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만약 운이 좋아 살 수만 있다면 위대한 목표를 실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겠다고 자신과 신께 맹세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스토리의 전체가 저자의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채워진 책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단점과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며 그것들이 죽음앞에서는 꼭 이루고 싶었던 아위움이라는 것을 자신의 깊숙한 곳에서 찾아내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점은 쉬운 듯 하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어려운 문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다섯 가지의 소원을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늘 아쉬워 하면서도 정말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도 찾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자의 솔직한 자신의 고백을 주목하게 된다. 과연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이 완벽한 성공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간절한 소원 다섯가지'는 무엇일까?
 
  책의 후반부에는 '내게 맞는 다섯 가지 소원을 만들기'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만나게 되는 장애물과 '말대꾸'라는 의심과 자기부정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소원을 위한 영화'를 소개한다.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다고, 또는 허무맹랑하다고 포기할 수 있는 독자를 한 명이라도 잡기 위해 자신의 홈페이지까지 소개하는 저자의 노력에서 그가 그토록 노력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이 책은 '성공한 이의 자랑을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의 주인공은 저자가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불특정다수의 '독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찌기 김구 선생은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고 말한 바 있다.
선생의 소원이 이처럼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같고, 간절한 덕이었을까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고, 이렇게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내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나의 소원'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저들의 꿈또한 다를 것이고, 그 크기 또한 다를 것이다. 책은 참 인자한 물질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를 원하는 독자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부를 주기 때문이다. 심심한 이들에게는 이야기를 주고, 괴로움을 겪는 이에게는 위로를 준다. 질문을 갖은 이에게는 해답을 던져주고, 빈곤한 이에게는 최소한 정신적 풍요를 안겨준다. 이 책은 내게 잃었던 꿈을, 잊어버린 나의 소중한 꿈을 다시 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도 이루고 싶었던 내 소원'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를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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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한국의 미래를 살피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대하게 된 것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물론 중고교 시절에 책을 아예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꼭 읽어야지'하고 마음에 두었다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하숙생활을 했던터라 동급생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가 한 두 권 빌려봤던 식으로 책을 읽었다. 당장 생각해 봤을 때 정확히 책제목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뿐이었으니 아예 읽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그렇게 짧은 독서력으로 대학을 들어갔으니 나도 한심하지만, 당시 대학입시제도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다닌 대학교 주변엔 서점이 세 군데가 있었다. 물론 학교내 학생회관에도 한 군데가 있었지만, 그곳은 대학교재와 문방구를 겸한 곳이라 제외한다. 학교 정문앞에 있던 OO서점은 중고책방으로 주로 대학교재와 교양과목의 교과목을 주로 사던 곳이다. 변변ㅎ지 않은 인테리어에 누런 박스에 책을 넣고 바닥에 깔고 파는 방식으로 책을 취급했는데, 박스에는 빨간 매직으로 500원부터 차례대로 가격이 적혀 있었다. 외국서적에서부터 해묵은 잡지 심지어는 무단복제해서 제본까지한 선배들의 책들도 팔았으니 가히 만물상이 따로 없다. 그곳에서 10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A서점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회과학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엔 책들이 있고 반대쪽엔 테이블 두어 개가 있어 사회과학(엄밀히 이야기하면 운동권) 동아리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던 곳이다. 데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경과 형사들이 제일 먼저 급습하는 그곳이라 '오해받을까 두려워' 몇 번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학가의 서점다운 열정과 향기를 풍기던 곳으로 기억된다.
 
 마지막 한 군데가 단골집이던 OO글방. 우연히 알게 된 글방사장님 동생과 친해져 주말만 되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꽂이 한 칸 한 칸을 습격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함께 문을 닫고 글방앞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꼼장어를 나누며 책과 인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 행복해 했던 기억이 든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옆 대학 여학생을 좋아해 한 쪽 눈은 책에 한 쪽 눈은 그녀를 보느라 부사장 형님은 날 항상 '도다리눈깔'이라고 흉을 보곤 했다. 그곳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책을 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내 젊음의 휴식처는 책방이었다.
 
 
  

  

 
  이젠 세 곳 모두 편의점과 소주집 그리고 일년 마다 간판을 바꾸는 프렌차이즈 점포로 모두 바뀌어 버렸다. 지난해 오월 대동제에 초대되어 갔을 때 교내서점을 빼곤 서점이라곤 눈씻고 봐도 이젠 없다. 대학가에 더 이상 서점은 없다. 만약 아직 대학교 주변에 서점이 있다면 그대학은 명문대학이라고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 없지만 텁텁한 입맛이 나는 건 감출수가 없다. 
 
  요즘은 모두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듯,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출판사는 자구책을 찾아 파주로 들어가 둥지를 틀었고,서울 청계천에 마지막 살아남은 중고책방 몇군데는 이젠 책을 팔기보다는 추억을 파는 곳이라고 해야 할 듯. 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만 이런 현실에 대해 애석해 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해 부터 일어난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늦은 감이 없잖지만 반가운 일이다. 일본은 초,중,고교생의 67% 아침독서 10분 운동으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고, 영국은 일찌기 1991년부터 영유아들에게 책꾸러미를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이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는 이때에 그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인 정진국씨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하고 신문에 기고한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 6개국 24곳의 책마을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되는 곳 모두가 시골 깊숙히 박혀 있어 그곳을 찾아 헤맨 듯 그의 노력이 곳곳에 뭍어있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책마을이란 단어 자체가 동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멀게 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책 속에 숨어 있는 그림같은 책마을들의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건물 한 쪽에 조그마한 간판과 진열대, 혹은 상자 속에 책을 담아서 주인을 기다리는 서점들의 모습은 우리가 즐겨 찾는 현대화된 대형서점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나이보다 오래된 책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눅눅한 종이 냄새와 빛바랜 표지의 책들, 그리고 수십 년동안 그것들의 주인인 것 같은 넉넉한 서점 주인들의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눈에 보이는 듯 각국 책마을의 셈세한 묘사와 외국도서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의미깊은 인터뷰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생활을 했던 저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박식함과 책에 대한 사랑에 찬사가 연이었다.    
 
 
 
 
 
 
 
  저자는 책을 써낸 저자가 큰 몫을 차지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자와 관계자들의 숨은 공덕, 그리고 그들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쓰는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출판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해줄 수 있는 나라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시작은 높은 집값으로 많은 작가와 출판인들이 농촌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책마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마을 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문화운동의 성격까지 띠게 된 그곳들을 보면서 출판사들이 이제야 지방도시에 자리를 잡은 우리와 비교할 때 책마을이 들어서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자생적인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책마을이 생기지 않는다면, 정부주도적 일환의 사업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시류를 틈탄 베스트셀러의 양산과 그들을 쫓는 독서가들, 그리고 여전히 3D업종으로 여겨지는 중고서점에 대한 편견등은 우리 독서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책마을에 동참하겠다고 짐을 싸서 낙향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도 없잖다. 우선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알 것 같으니 남이 의문이고, 가뜩이나 푸대접받고 있는 우리 출판인과 책관련사업 종사자들 또한 지금의 대우로서는 되지 않을 일로 보인다. 역시 멀고 먼 남의 남의 나라이야기인가?
 
 
 
 
 
 여행하듯 인터뷰하듯 써내려간 저자의 글과 사진을 보고 있자니 깊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지방에 이런 책마을이 생긴다면 난 그곳을 찾아갈까?' 이 책을 통해 정말 책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책을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책이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책들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책이 읽히지 않으면 또 다른 이름의 나무의 시체일 뿐. 나이를 많이 먹은 책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손에서 사랑을 받는 곳,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한 권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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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2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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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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