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경영수업 - 켄 블랜차드가 최고의 비즈니스 멘토들에게 배웠던 모든 것
켄 블랜차드.돈 허트슨.이던 윌리스 지음, 윤동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 휴가때 딱 한 권만을 읽어야 한다면,꼭 이 책을 챙겨라 !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기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회사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 생기는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그야말로 '황금같은 휴식시간'인데, 회사문을 나서면서부터는 '사회속 인간인 나'라는 명찰이 붙기에 그에 합당한 업무아닌 업무(?)를 해야 한다. 지인들과 어울려야 하고,  경조사를 찾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정작 내게 남겨진 순수한 내 시간은 얼마 되질 않는다. 만끽해야 할 내 시간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책읽기는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큰 일'임에는 틀림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이렇게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세상은 급변하고 그만큼 필요한 지식과 장보량은 늘어만 간다. 나를 뛰어넘는 후배들은 넘쳐만 가고, 조직은 '그렇게 앉아서 쉬고 있으려면, 달리는 후배에게 바통을 넘겨!' 라고 눈치준다. 큰 맘먹고 서점을 가니 읽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 쳐다만 봐도 숨이 막히고 기가 찬다. '뭐 하나라도 읽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들렸지만, '뭘 읽어야 할지 조차 모를 만큼'의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너도 나도 베스트셀러라 외쳐대서 그중 만만한 것을 골라서 읽자니 어렵기만 어렵고, 실제로 도움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는다. 누군가 책을 읽으라고 내게 말한다면, 멱살을 쥐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요구만 하지 말고 시간없는 직장인이 뭘 읽어야 할 지 알려줘 봐!" 아마도 그 멱살잡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일 먼저 켄 블랜차드의 책으로 시작하세요."
 
  세계적인 동기부여 연설가이자 2005년 '미 아마존, 역대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25인'에 뽑힐 만큼 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켄 블랜차드는 비즈니스맨들의 영원한 경영멘토로 유명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는 1994년 [1분 매니저]라는 책으로 소개된 이래 30여 편의 명저들이 소개된 바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열광하는 팬], [겅호]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는 특히 세계적으로 [1분 시리즈]로 가장 유명한데 그가 말하는 '1분의 의미'"우리가 살면서 최고의 조언을 듣는 데 드는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저자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삶의 소중한 교훈은 길고 지루한 장광설이 아닌, 당순하고 간결한 지혜를 통해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1분 the One Minute] 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한 경영우화'라고 이야기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진리에 가까운 명제들을 놓치면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의문에 시선을 두고 풀어나가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써내려 간 것이 그의 특징이다. 활자체는 크고, 페이지 수는 여느 책의 절반 정도로 많지 않아서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지 모르지만, 그가 던지는 메시지 하나 하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경영의 진리들이고, 특별한 기술없이 당장 직장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경제적 효용'측면에서는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봐야겠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그의 명저 [1분 시리즈]와 수십 권의 비즈니스 명저에서 뽑은 '지혜로운 인생과 비즈니스에 관한 핵심적인 교훈들'을 한 권에 담고 있다. 돈 허트슨과 이단 윌리스와 함께 쓴 책으로, '그의 저서 중 최고의, 마지막 결정판'이라고 장담한 책', [1분 경영수업] 이며 원제는 'The One Minute Enterpreneur'이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소중한 한 마디의 가르침을 얻게 된 청년 주드 매컬리는 '동기부여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동기부여 연설가'로 활약하게 된다. 연설회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여인 테리 아비오티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을 하면서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성장일로를 걷던 귿르의 사업은 어느 한 순간 경영상의 문제가 생겨 성장에 따른 고통과 재정적 압박을 당하게 되고 침체기에 접어들지만, 그를 후원하고 기꺼이 멘토가 되어준 사람들의 조언으로 다시 일어나 안정적이고 튼튼한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를 갖는데, 두 주인공에게 조언과 멘토링을 해 준 이들을 실제의 인물들로 기용하여 자칫 한마디씩의 명언이 되었을 법한 소중한 말들이 실제로 비즈니스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말들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책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두꺼운(이야기의 전부는 200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그의 책치고는 두꺼운 분량이다)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책의 구성은 이렇다. '후회없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 한 청년이 선생님이 선물해 준 '1분 지혜'라는 이름의 한 권의 노트를 선물 받고 위기의 상황마다 도와준 주변사람들과 멘토의 지혜를 옮겨 담고 그것들을 숙지해서 곤란한 상황들을 탈출하게 된다. 즉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은 세일즈이고,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연설가'가 어울리겠다는 판단을 서게 하는데는 "몇 년 후 나의 모습은 그동안 읽은 책과 사람들을 제외하곤 지금과 같다." ,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 "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일 뿐, 경력을 쌓는 것은 이니다." 등의 지혜들을 듣게 되면서 확신하게된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인생을 함께할 여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인생의 파트너를 찾을 때는 성격과 외모보다 인품과 가치를 봐야 한다.", "훌륭한 결혼 생활을 위해선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시 시간과 잠자는 시가 외에 배우자와 함께 할 시간을 마련하려 노력해야 한다." 등의 조언들을 통해 지금 만나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반려자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사업을 시작하는 그에게 멘토들은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기 위한 비결로 "사업체를 운영할 때는 지출보다 수입을 많게 하라.","고객의 은행 창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영수증을 제때 모으는 것은 필수다.","고객은 사업의 활려소이다. 그들은 나를 위해 비용을 지불해준다.","직원들을 잘 대접하라. 그들이 모든 것을 이루어 준다. 그들이 없으면 회사도 없다."고 강조해 준다.
 
  그 밖에도 회사가 경영상 위기에 처했을 때, 열광하는 고객을 만들어야 할 때, 부하직원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요할 때, 직장생활과 가정생활과의 조화가 필요할 때, 안정된 조직을 이끌고 싶을 때,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을 때 등 우리가 비즈니스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주인공 주드와 테리의 이야기를 통해 엮어 내고,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지혜들을 현존하는 최고의 멘토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한데 묶었다. 지금껏 다소 문제가 있었던 나의 비즈니스 생활에 있어 또 한 번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 책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생기는가 하면 '아하~'하는 감탄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라는 것은 비즈니스와 인생이라는 두가지 추가 매달린 장대를 타고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서 두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회없는 삶과 성공은 같은 말이 아니라 이 두가지가 합해져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기본을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켄 블랜차드가 지금껏 펴 내온 책들을 보면 비즈니스의 단편을 주제로 삼아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면, 이 책은 지금껏 나왔던 책들의 핵심을 한데 모아 하나의 성공스토리로 엮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제까지 켄 블랜차드의 책을 읽지 않았거나, 몇 권 읽지 못했다면 이 책 한권을 제대로 소화하기를 권하고 싶다. 곧 다가오는 여름 휴가때 '딱 한 권의 책만 읽어야겠다'고 한다면 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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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소년 2008-08-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현재 읽고 있는 책이라서 서평을 둘러보던 차에 읽고 갑니다.
너무나도 상세하고 객관적인 서평이 짜임새가 있네요.
1분 경영수업, 올 여름,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하여 좋은 참고서적, 인생의 지침서가 될 듯 합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리치보이 2008-08-16 15:18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새우깡소년님, 댓글 감사합니다. 자주 들려주세요^^
 
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절체절명命'의 도망자가 되어버린 세 사람의 이야기 !
 
 
  "그는 코메디 작가다." 라고 그의 책을 좋아하거나, 익히 읽었던 이들에게 꽤 많이 들어왔던터라 사실 그의 소설에 시큰퉁했었다. 연일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는 한 주만 지나면 장바구니의 무게를 좌지우지(실제로는 가볍게만 한다. 안그런가?)하는 현실이기에 가끔 우연히 보게 되는 TV 에서 30대를 가득 채웠지만 여전히 20대 중반으로 아는 늙수구래들의 실없는 농담에 냉소冷笑 나 가끔 던지는 것이면 되었지,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코메디 작가의 글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터라 책선물로 읽은 [스무살, 도쿄]는 의외였고, 재확인을 위해 읽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는 '오쿠다 히데오가 코메디를 쓰기는 쓴거야?' 하는 의심을 품게 했다. 앞선 것이 사회 정체성에 흔들리는, 하지만 그리 괴롭지 않은 20대를 공감할 수 있게 써 냈다면, 뒤따르는 것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이정도는 해야 되는거야!'라고 말하는 듯 자신의 우상인 [존 레넌]의 숨겨진 몇 년간의 시간을 재구성해 멋들어지게 소설로 꾸며냈던 터였다. 나이 40의 늦깍이 데뷔 작가답게 삶을 한 계단 위에서 조망하는 듯한 기술과 표현은 내 입에 착착 감기는 듯 그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그의 신간 소식에 회가 동해 열 일 제치고 손 안에 넣었다. 600 페이지를 상회하는 두터운 두께. 재미없으면 베개로도 쓸 수 있겠더라.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奥田 英朗 의 신작 [최악], 원제는 [最悪 さいあく] 다. 재팬 아마존으로 확인한 바 이 책은 1999년 2월에 출간된 책이다. 다시 말해 2005년 1월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의 첫 작품 [공중그네]는 2004년 4월에 일본에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국내에서 힛트를 치자 그의 최근작과 과거작품들이 서로 판매유효기간을 두고 엇갈려 쏟아지고 있어서 독자마다 서로 평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최근 그의 작품이 '희극'의 성격을 띠는 것이지 모든 작품이 그렇다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부수를 두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를 이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를 잇는 작가'라고 평가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라이트한 코메디만 쓰는 작가'로 폄하되기는 무리가 있지 싶다. 이 책 [최악]을 읽고 난 후는 더욱 그랬다. 각설하고 책이야기로 간다.
 
   

  이 책은 47세의 영세 철공소 사장 가와타니 신지로, 23세의 평범한 은행창구 여직원 후지사키 미도리, 20세의 떠돌이 양아치 노무라 가즈야 이렇게 세 명의 소시민이 우연한 사건으로 '절체절명命'의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제목 그대로 갈 때까지 가는 '최악最悪'을 이야기한 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를 경험하고 한숨을 돌리는 시점의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인물소개와 사건의 발단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과 세 주인공이 한 사건으로 연류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전형적인 소설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데, 스토리의 치밀함과 재미 그리고 스피디한 전개와 박진감은 여느 영화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위엄있는 가장으로서 신용있는 조그만 철공소의 사장으로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은 가와타니 신지로.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속썩이는 종업원,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원청업체, 게다가 소음으로 시비를 거는 이웃집 '오타씨 부부'의 태클 속에서도 업무량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 폭발하고 마는 그의 모습에서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을 받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지열, LA시내로 들어가는 프리웨이 위에서 햐얀 와이셔츠 차림에 한 손에는 007 가방을 그리고 한 손에는 장총을 매고 서 있는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 분)를 연상하게 한다. 1997년의 영화 폴링 다운 (Falling Down, 1997) 속의 그 역시 헤어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서히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무기력, 그저 반복될 뿐인 일상의 단조로움, 우울하기만 한  한 가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월요일과 월말, 그리고 비 오는 날을 끔찍히 싫어하는 은행원 아가씨 후지사키 미도리. 그녀에게 남자는 무기력과 냉소의 대상이었지만, 어느 날 그녀에게 닥친 한 사건으로 인해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을 우려하고 아꼈던 이의 시선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련의 여인이 되고 만다. 그녀가 사건에 휘말려 남자에게서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는 영화 노스 컨츄리 (North Country, 2006) 에서 조시 에이미스(샤를리즈 테론 분)가 금녀의 구역 탄광에서 남성들에게 부대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이성에 대한 분노가 어디까지인지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영화속의 조시처럼 적들을 무릎꿇리고 당당하게 돌아서는 모습을 기대하는건 미국에서 뿐일까? 내가 사는 이땅에도 후지사키와 같은 피해자는 이시간에도 생기고 있을 거란 생각에 수치감마저 들게 한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아이 노무라 가즈야에게 내일은 없다. 떠돌이 양아치에게는 오늘이라는 단어만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빠칭코에서 하루를 보내며 근근히 하루벌이를 하거나 톨루엔을 훔쳐 목돈을 마련하는 외톨이에게는 누군가 말만 걸어줘도 그 날은 행운인 것이다. 그에게 소중했던 것은 한 조각의 빵이 아니라 푸근한 사람의 숨결이었고, 살가움이었는지 모른다. 스무살의 잘생긴 양아치의 생활을 쫓아보노라면 우리 영화 태양은 없다 (City Of The Rising Sun) 가 떠오른다. 게다가 그에게는 악연인 친구 다카오가 있지 않은가? 도철(정우성 분)과 홍기(이정재 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일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정체성의 확립의 유무를 떠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밖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 끝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라며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웃집 남자 오타 라는 인물에게서 이 세상에 숨어 사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게 되고, 스무 살의 철공소의 종업원 마츠무라와 은행원 이와이의 이상한 행동들은 무기력한 남자들의 끝을 보는 듯했다.
 
'사람은 어디서 인생이 갈라지는 걸까?'
무심히 내뱉는 미도리의 한 마디가 이 소설의 화두는 아닐지...
 
 





  늦은 밤 잠을 청하려 책을 들었다가 새벽 6시까지 해가 뜰 때까지 가슴졸여 가며, 잔뜩 흥분해 가며 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극한까지는 치닫지 않았지만, 한 번쯤은 경험해 봤던 나의 좌절, 배신, 오해가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지나고 난 후엔 쓴웃음도 지을 수 있는 과거라는 물고기의 비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딱 죽고 싶은 최악의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읽은 이 책으로 그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한 명의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할 영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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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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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보는 분위기의 특이하고 멋진 독서기讀書記 !
 
 
  책을 읽게 되면서 생긴 않좋은 버릇이 한 가지있는데, 그것은 질투다. 마치 말로는 차마 다 할 수 없는 생각과 알게 된 무엇을 쏟아붓는 듯 종이에 빽빽하게 새겨놓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움과 깨달음을 경험함과 동시에 '그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과 가능하다면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황금알을 품는 거위처럼 그 속은 여느 장기臟器 와 다를 바 없음을 뻔히 알지만, 그것만은 나도 알지만 말 그대로 멋진 책을 만나면 항상 느끼는 않좋은 버릇이다.
 
  좋은 책을 쓰는 그들은 날 때부터 재능이 특출했을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잘 배운 것일까? 그들은 무슨 책을 읽고, 어떻게 책을 읽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멋진 말을 만들고,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흔드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이 멋들어진 책을 만날 때면 책 속에 거는 혼자만의 독백이었다. 최소한 그들의 서재만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들을 짐작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사람(그 깊이와 정도는 확실히 차이가 나지만)을 만났다. 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직접 그들을 파헤쳤다. 하지만 그녀 또한 파헤쳐져야 할 또 다른 대단한 독서가다.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 책을 읽는지, 책을 읽기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책과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랑 수다 떨기, 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사랑하기, 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따라 하기, 책에 나오는 음료와 음식 먹어보기, 책에 나오는 음악 찾아 듣기, 책이 알려주는 장소 가보기, 읽었으면 행동하기 등등 '책 행동학'을 즐기며 사는 여인, 정혜윤이다. 침대의 가장자리 네 켠에 책을 꼽아 놓고는 손가는 대로, 닥치는대로 읽으며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의 [침대와 책]이라는 책을 이미 쓴 바 있는 그녀가 이번에는 독서가로 알려진 어떤 이들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 이들의 삶에서 책과 조우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담아 또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침대와 책]에서 그녀와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 하는 책들의 이야기로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면 이 책은 사람과 책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울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엮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책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목 스스로가 책의 서문을 대신하는 듯 하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가 그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독서기다.
 지금껏 나온 여느 독서기와는 다르다. 완전 다르다. 한 순간을 '성공'이라는 한 단어(자화자찬의 성공이라면 절대로 쓸 데 없고, 타화타찬의 그것이라봐야 1분의 가십꺼리가 '성공'이 아니던가? 세치 혀를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빛이 바래는, 그래서 성공이란 단어는 스스로건 타인이건 절대로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머리속에서 느껴지는 단어인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어처럼..) 로 뭉뚱거려진 몇 몇의 인물들을 싸잡아 '나의 성공에는 이러이러한 책이 있었다' 혹은 '최근에 읽은 책은 이러이러하다'고 마구 적어놔 독자를 유린하는 것들과 다르다. 
게다가 녹취록 또한 아니다. 세간의 입에 떠오르는 '화제의 인물'을 찾아 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적는 글로 읽는 인터뷰 또한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의 본업은 라디오 교양프로그램의 프로듀서. 특히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고 있다. 아마도 멋진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책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책을 좋아한 만큼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도 만난 적이 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인터뷰라는 [듣기위주의 일방적인 대화형식]때문에 자신의 소회는 말하지 못했으리라. 그 소회가 쌓이고 쌓여 병이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인물들의 이야기중에 언급되는 책 속에서 떠오르는 자신의 책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 속에서 나는 듣지도 보지 못한 수많은 책들이 소개되는데(정말이지 난 서점에서 그 책을 온전히 내 힘으로 찾으라고 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언급된 생소한 이름의 책속에 있는 글귀들은 멋들어지고, 아름답다. 그들이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이 책은 특이한 평전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은 어떤 이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본 작은 전기 정도가 될 것 같다'고 고백한 것 같이 단순한 독서기는 아니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그리고 저자 11 명인 듯 12명이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책과 책 이야기를 엮었다. 한 권의 책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고,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계기를 던져주기도 했고, 지금의 자신이 있게 했던 책들도 있었다. 평범한 듯 비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새로 고쳐보고, 새로 알아보게도 했다. 무엇인가 이루고 있는 그들의 삶에 함께 동반하고 있는 책들을 만나는 경험은 특별했다. 특히 군인에게 총알일 수 있는 글쓰는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이 사랑한 책이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작가와 글귀를 만나기란 그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행운이겠다 싶다. 내게는 행동하는 지식인 진중권을, 그리고 사랑하는 명배우 문소리를 다시 보게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책 혹은 책읽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껏 먼 산 보듯 그림 훑듯 종이에 새겨진 활자를 눈으로 찍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오롯이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제대로 읽는 Reading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쫓아 단순히 Seeing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지금껏 즐겨왔다고 여겼던 책읽기를 돌아보게 한다. 책 속의 숨겨진 주옥같은 글귀를 기억하고, 저자의 전작全作을 쫓아 그들의 그림자를 따라 밟기도 하고, 책 속의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온몸으로 체감할 줄 아는 그들이야말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들의 소중한 인터뷰 대화들을 약간은 숨겨진 듯 뭍은 듯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는 은빛으로 담았다. 이야기의 무게에 대한 그녀만의 예우로 느껴졌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글귀를 옮겨적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한 권을 모두 옮겨적어야 할 판국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들이 뱉어낸 이미 읽고 소화해 낸 한 권의 책들이 내게는 앞으로 읽고 싶은 180여 권의 화두頭 로 남겨졌다(210여 권의 책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20여 남짓. 그것도 동화와 최근의 책들 뿐이었다. 이 책들은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가?).
 
  "책을 읽기는 하는데, 머리속에 남은 것 같지도 않고...어떤 때는 읽었던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조금 읽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이 책에서 만난 이들의 글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과연 그들이 인터뷰 속에서 이렇듯 책을 말하고, 소중한 글귀들을 읊조렸단 말인가? 그리고 저자는 그들의 말에 꼬리를 물고 또 이 책과 같은 생각을 했단 말인가?
 20여 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복성고조를 보면 주인공 성룡과 원표가 어마어마한 적을 만나 열심히 싸웠지만, 무참하게 매를 맞는다. 뒤로 물러나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적을 보며 원표가 말한다. "저놈, 고수다." 그러자 성룡이 말한다. "아냐, 고고수야." 그러자 둘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합창한다. "토끼자(도망가자) !" 지금 내 마음이 그와 같다. 이것은 서점에 들렀을 때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은 10년 전과 똑같이 아직도 많구나' 하는 중압감과는 또 다르다. 뒷걸음치며 도망가고 싶다. 그래서 다시 처음 책을 뽑아든 그때로 돌아가 책을 읽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만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책에서 또 다른 책을 배우고,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 중에서 책읽기의 참맛을 느끼게 되었다.
 
P.S : 저자인 정혜윤 님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도서행사의 공식석상이지만, 그녀는 특별히 초대되었기에 식전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터라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청자빛의 무릎 짧은 원피스와 귀여운 모자가 그녀의 모습과 참 어울렸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운치있는 책 표지를 주목하니 랜턴에 비친 책을 무릎을 앉고 쳐다보고 있는 소녀가 아마 저자인 듯 싶다. 표지속 인물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책을 많이 읽는 그녀는 말도 잘하고 책 속의 소녀만큼 미인이었다. 그녀는 많은복을 받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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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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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서울, 경성京城 의 비즈니스 여행!
 
  IMF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의 20세기 마지막해. 컴퓨터 업계는 Y2K ("Y"는 연도(year) "2"는 숫자 둘, "K"는 kilo, 천의 약자로 서기 2000년을 의미한다. Y2K는 밀레니엄 버그The millennium bug즉 1999년이 2000년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컴퓨터 2000년 연도 표기" 문제) 즉 컴퓨터는 2000년이나 1900년을 구별하지 못한다. 2000년 1월 1일 00시 에 우리에게 대혼란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걱정을 했고, 신문지상에는 늘어나는 부도업체의 숫자, 실업자 수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주식은 종합주가지수가 300대까지 내려 바닥을 기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렵사리 취직을 한 직장에서 그야말로 '뼈가 녹을 정도'로 일을 했고, 난생 처음 '보너스'라는 인센티브 형식의 성과급을 받았는데, 그돈을 고스라니 주식에 넣었다. "네가 제일 잘 아는 업종의 유망기업에 돈을 넣어라. 그리고 잊어라."라는 선배의 권유(선배는 삼 년 전에 주식을 시작했는데 깡통구좌로 투자를 했다가 빈털털이로 내 방에서 말 그대로 '기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선배의 실패담에서 나중에400%가량의 수익을 얻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때문이었는데, 당시의 종합지수는 내 생에는 다시 볼 수 없는 '해저 2만리' 의 바닥이라는 그의 판단때문이었다.
 
  경제신문을 보면서 6-8페이지의 주식란은 보지도 않고 넘기면서 '신문페이지 골라서 파는 신문사는 없는거야?' 라고 푸념했던 과거가 있었건만 나의 주식투자의 경험은 '주식란'이 제일 먼저 살펴보는 '주택복권 당첨 번호 코너'가 되었다. 현대건설 계열의 '고려산업개발'을 4,000원 대에 매입했었는데, 잔돈이지만 등산을 하듯 한 발 할 발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면서 만화책이나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내일신문' 즉, 내일의 기사를 미리 알려주는 신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서 읽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정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게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생각했다.
 
  한편 반대로도 생각해 본 적도 없잖은데, 지금의 내가 '타임머신'같은 기계를 타고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인데, 현실의 뉴스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곳에서의 나는 미래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현인'이 되는 것이라 현재 상승중인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둔다면, 갑부는 따놓은 당상일게다 하는 얕은 수에서 였다. 마치 울 아버지가 소주잔을 털어놓으시면서 "나 꼬마때는 밭뙤기만 즐비한 강남에서 새끼줄로 영역표시만 해놓고 농사만 지어도 내 땅이었다고... 월급타서 저축하지말고 땅 사 놓을 껄..." 하시던 푸념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릴 땐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십분 아니 백분 이해가 된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자동차는 있었나? 시장이나 점포는 있었던거야? 도대체 장사는 누가 했고 뭘 팔았던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빠진 적도 있었는데, 우리네 옛날은 '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라는 한마디로 대변될 뿐, 그 어디서도 해답을 찾기는 힘들었는데 그 답답함을 어느정도 해소해 준 책을 만났다. 박상하의 책 '경성상계京城商界' 가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문자가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문서화되지 않은 1945년 8.15 해방 이전의 재계사를 살펴본 책이다. 다시 말해 500 년 조선왕조의 몰락에 이은 가혹한 외세의 식민지배와 함께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물밀듯이 밀려들어 온 근대화의 경이, 그리고 광복 전후까지의 격동기를 숨 가쁘게 관통해야 했던, 근대치의 정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 반세기 동안의 기록을 모아둔 책이다.
 


 
  백여 년 전 서울의 풍경을 시작으로 종로 육의전을 설명하고, 당시에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가 하면 전차와 고무신, 활동사진, 그리고 금융업과 광업의 모습을 담아낸다. 경성의 젊은 상인들의 출현으로 부자가 태어나고, 쌀라리맨으로 대변되는 직장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당시의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로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등의 사료史料, 그리고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바탕으로 추적했는데, 자료의 방대함과 상서롭지 않은 당시의 글씨와 내용은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재미를 더해준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은 '이 이야기는 절대로 거짓말이 아냐!'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 전의 책들이 광복후와 6.25 전후를 시작으로 꾸며진 상업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나름의 역사를 지니게 된 기업들의 역사 속에서 얼핏 보이는 당시의 상황을 엿볼 뿐이었는데, 조선말과 합방때의 숨겨진 우리의 상업발전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겠다. 당시에 나왔던 모든 제품과 임금 그리고 봉급이 현시세로 비교도 해 놓았는데, 오히려 체감하기는 더욱 어려운 점을 뺀다면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될 것 같다.
 
  100년이 지난 후 내 증손주는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최첨단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웃음도 나오고, 그 시절에도 힛트상품으로 대박을 낸 것처럼 이시대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고민도 해봤다. 오늘과 내일만 있는 듯한 우리의 '상계Business world'가 이젠 어제와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만큼 여유도 생기고, 안목도 트였는가 하는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변해 역사를 만들고, 사람은 움직여 문명을 만들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는 우리 조상이 있었고, 내가 있었다. 그리고 모습만 바뀌었을 뿐 상업이라는 동물에는 '돈'이라는 피는 100년을 넘게 돌고 있었다.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100년 전 종루거리로 떠나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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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미술관에 가다 - 미술 속 패션 이야기
김홍기 지음 / 미술문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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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패션과 모델들이 미술작품 속에 있다 ?!
 

 


  아담이 금단의 사과를 한 입 깨뭄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알게되고, 출산의 고통을 얻게 되고, 땀의 결과로 생명을 이어가게 되며, 그럼에도 유한한 생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깨문 한 입의 사과가 아담과 이브가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특혜를 잃게 만들었지만, 그 덕에 인류는 태어나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와 함께 '노출의 수치감'으로 인해 성기위에 가려진 나뭇잎은 또한 최초의 의복이 되었고, 지금껏 우리 인류와 함께 하고 있다.
 




 
  의복(옷)은 인간의 육체의 보호라는 원초적 기능에서 탈피해 나아가 의복을 착용한 주체의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하나의 코드로 발전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한 개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있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사람의 옷차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의복은 상대방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성격을 짐작하게 하며,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의복은 때때로 그보다 더욱 은밀한 것을 속삭이며,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깊은 마음속의 비밀을 의복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인류에게 역사가 있듯이, 의복의 변천 과정 역시 역사를 갖는데, 여기 미술과 패션을 좋아하여 본업도 아닌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한 남자가 기존의 미술사에 복식사의 시각을 더해 이 두 분야의 서로의 옷을 벗겨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자 펴낸 한 권의 책이 있다. 다음 블로거 김홍기의 [샤넬, 미술관에 가다]가 그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투자수단으로서의 미술작품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문외한인 내가 그것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어려움을 겪던 중에 '패션으로 들여다 본 미술작품' 이라는 시각에 흥미를 느꼈다. 작품의 이해방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주로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을 주로 다룬 이 책은 앵그르와 휘슬러, 티소 등 70여 명의 유명화가의 작품 120여 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책에 소개된 작품들 만으로도 유명 화가의 작품전을 보는 듯 했는데, 저자는 작품 속에 나타나는 복식의 작은 디테일이 그림 전체의 의미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카메라와 사진이 없던 옛날 당시의 패션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미술작품을 통해서 일텐데, 최고의 화가와 최고의 모델 그리고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의상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현재의 의류화보를 버금가는 듯 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나? 작품과 화가 그리고 모델, 그리고 모델이 입은 의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좌우측으로 패션 디자이너와 큐레이터를 옆에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전공을 하지도, 본업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내공을 책에서 마음껏 발산한다. 작품이 표현된 당시의 흐름과 미술가에 대한 디테일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된 참고문헌만 국내외 단행본은 100여 편에 이르고, 논문도 20여 편에 달하니 이 책에 들인 저자의 공력과 복식사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의 현란하고 자세한 설명은 미술작품과 그림속 패션을 한층 빛나게 했다. 
 
 
 


 
 
  이 책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미술작품에 있었는데, 손에 잡힐 듯한 의상들의 표현력과 모델들의 표정 그리고 포즈는 한참동안 넋을 놓게 만들었다. 클로드 모네의 [일본 여인-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에서는 손에 잡힐 듯 튀어나오는 듯한 기모노의 묘사나 금박을 뿌린 듯 빛을 발하는 듯한 표현들은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제임스 티소의 [옷 가게의 젊은 점원]은 마치 점포의 안에서 점원에게 말을 걸어야 할 만큼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검은색 새틴 소재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도발적인 포즈로 정면을 응시하는 콜렌 캠벨 부인의 모습(조반니 볼디니作)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 매력적이고, 마치 헐리우드 배우같은 미모를 지닌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작품들은 시간을 잊은 채 시선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금방이라도 바스락 거릴 듯한 벨벳의 감촉이 느껴지는 [세농부인의 초상]이나 모피의 풍성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검정의 배열- 아치볼드 캠벨 부인의 초상] 작품 속에 살아 숨쉬는 의복들은 시간을 거슬러 그녀들에게도 안겨있었다.
 
 








 
  피부를 덮는 제 2의 피부라 불리는 의복은 그 단순한 기능을 넘어 의복을 입는 주체의 사회적 지위와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나아가 시대의 흐름과 사조를 반영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아름다워 지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 시대성에 대한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사물이나 관념에 미치듯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들어 우리는 '매니아'라고 한다. 저자의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 에 대한 매니아적 사랑은 전문가의 그것을 뛰어넘는 지식과 열정이 이렇듯 훌륭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저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뿌듯함마저 느꼈다. 미술 또는 패션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지식과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줄 책이다. 무더운 여름밤에 더위를 잊고 갤러리를 걸은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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