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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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나버린 자본주의, 지금은 과감한 수정이 필요한 때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왔다. 정말 이러한 욕망의 추구를 배제하고 나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것이 지닌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판단한다.”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책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한 말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의료 장비의 도움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였던 토니 주트가 육성으로 책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30년간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불러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난이었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에는 불평등(不平等, Inequality)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감소하여 부유층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968년, GM의 CEO가 벌어들인 소득은 기본급과 수당을 다 합쳐 GM 일반 노동자의 66배였다. 하지만 오늘날 월마트의 CEO는 월마트 일반 노동자 임금의 900배에 달하는 돈을 번다. 그 해 월마트 창업자 가족의 총재산은 대략 900억 달러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하위 40%, 즉 1억 2천만 명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였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4월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동안 벌어가는 돈은 16.6%로 38조 4천 790억 원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두 번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엉망진창으로 고장이 나버린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속속 출현하는 가운데 40대 초반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단연 화제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유럽 사회와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영문판이 출간된 후에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 유명매체에서 연일 논쟁과 인터뷰를 쏟아내고 있다.

 

   피케티는 책 서문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보다 현저하게 높아지면 부의 집중이 한정 없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능력 중심주의가 급격히 훼손되고 이를 토대로 한 민주사회가 망가진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말에 부의 불평등으로 혁명까지 이어졌고, 21세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나보다 1,000배가 넘게 돈을 버는 부자들은 벌어들이는 1000배 만큼 펑펑 쓰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가진 돈에 비해 오히려 1을 번 나보다 너무 적게 쓰는 편이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 15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1,000벌의 팬티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벌어들인 만큼 충분히 소비해야 경제가 활성화되는 법인데, 쓰고 써도 돈이 남기에 어쩔 수 없이 저축이란 걸 한다. 그리고 그 돈은 이 나라 전체와 전 세계를 돌고 돌며 금이나 부동산, 수많은 투기 상품 등 큰 수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세계 금융 시장의 일부가 되고 결국 큰 수익을 얻어 저축하기 전보다 더 큰 돈이 되어 돌아온다. ‘돈이 돈을 부르는 시스템’ 속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로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자유 시장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막연히 ‘부의 집중이 사회적 폐해를 낳는다’는 주먹구구식 주장에서 벗어나 이 책을 통해 체계적인 연구, 즉 ‘데이터’에 의한 분석으로 대응했다. 무려 300년(1712~2012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경제 자료를 20개 이상의 나라를 대상으로 분석해 냈다.

   그 결과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을 앞지르면서 부의 집중은 심화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는 힘들게 리스크를 감수해 가며 물건을 제조해 판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쌓아둔 돈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국내경제사정은 이런 가설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에게 법인세를 깎아주며 투자를 독려했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고, 기업의 저축이 느는 동안 가계는 빚이 늘었다.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벌어들인 이득을 쌓아두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가계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 속에 가계 빚만 1천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소득이 101만 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피케티는 오늘날 부의 불평등 상황에 대해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치 영역과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구조화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세습자본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렇다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주의를 더욱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조절하는 방법은 무얼까?

 

 

   세금, 즉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이다. 그는 고소득층의 재산에 전면적인 누진세를 부과해야 한다면 불평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인 부의 이동을 공적 감독 아래 두자는 뜻으로 세계 생산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 전 지구적인 금융 재정 자산 등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야만 협력을 거부하는 세금 피난처에 대한 제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분석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장광설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정치 발상”이라고 혹평했지만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로 흘러갈 위험이 현실화된 만큼 방법의 차이일 뿐 적절한 통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기업소득환류세제만 하더라도 세금을 통해 억지로라도 지난 정부 때 이루지 못한 ‘낙수효과’를 거두어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제도가 아니던가. 기업소득의 일정부분을 투자나 배당, 임금증가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벌칙으로 세금을 매긴다는 내용인데, 적용대상이 대기업 그룹사들이 주종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기업과 자기자본 500억원 초과하는 4천여 개의 법인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을 법인(法人), 즉 법적(法的)인 인격(人格)이라 본다면 일종의 부유세이자 보유세의 성격을 띤다.

 

   한편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부의 불평등은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했다”고 역설했다. 절대 다수가 겪는 경제적 곤란은 곧 건강 악화와 교육 기회의 상실, 그리고 알코올 중독, 비만, 도박, 경범죄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우울증 증세의 증가로 이어지고, 실직과 비정규직과 같은 불완전 고용은 노동자들이 지금껏 갈고 닦아 온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려 결국 경제에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은 불평등 해소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빵집주인이자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이다.

   막연히 시골에 사는 농부를 꿈꾸다 서른이 넘어서야 간신히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한 저자는 동경하던 원산지 허위표기니 뒷돈 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회사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고 퇴사하고 만다. 삶의 진정성을 찾아 헤매던 끝에 그는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고, 마침내 빵집을 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과정, 그리고 균을 통해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빵이 만들어지는 이 모든 것은 균의 작용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음식으로 바꿔버리고 있었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이 이스트였다. 그는 곧 이 부패하지 않는 균, 이스트는 우리가 제일로 생각하는 ‘돈’을 닮았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다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 것처럼 돈 역시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영원히 부패하지 않고 돌고 도는 물건이다. 오히려 돈이 쌓이면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차(금융)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다루마리 빵집의 경영 이념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이다. 그 이유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에서 찾았다.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 가격도 떨어진다. 이러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만 떨어지고 그로 인한 이윤은 자본가만 취한다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장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정당한 가격에 상품을 팔았다. 이스트는 물론 인공첨가물은 절대 섞지 않고 최고의 재료들로 엄선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 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들어 파는 대신 정당한 가격에 빵을 팔고 있다. 시골의 빵집인데 빵가격이 평균 4,000원 정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일본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다루마리 빵집이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등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장이나 종업원의 월급을 제외하고, 그 외에 남는 것은 매달 결산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공평하게 이윤을 나누어 착취가 있을 여지를 없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이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았다. 제빵사가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스스로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두 권의 책 제목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자본론(Capital)’은 다분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제목 아래 결론은 각각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결국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결론지었지만,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 이윤율의 저하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글로벌 부유세’로 고장 난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결론 내렸다. 시골빵집 주인 역시 매월 결산 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착취 없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반면선생(反面先生)인 셈이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불러오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잘못된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손을 본다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명정대해야 점이다.

 

   실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게임이론 중에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게 있다. 게임의 대략적인 내용은 기본적으로 두 명의 참여자가 등장해 돈을 분배하는데, 1번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즉, 2번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분배된다.

 

   만약 독자인 당신이 이 게임에 반응자로 참여하고, 필자인 내게 처음 지급되는 돈이 20만원이라고 하자. 내가 19 대 1, 즉 내가 19만 원을 갖고, 달랑 1만 원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까? 이 게임의 룰을 알고 있는 당신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때려치워! 이 양심 없는 새끼야.

내가 1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너도 땡전 한 푼도 갖지 못하게 할꺼야!”

 

   순수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이든 ‘1만 원을 선택해야’만 한다. 재산이 한 푼이라도 늘어나는 쪽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의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평과 정의에 대한 인식에 의해 사람은 누구나 불공평한 제안을 받으면 두뇌의 뇌섬엽 부위가 활성화되어 먼저 화를 내고, 자신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한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최후통첩 게임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지금 불평등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배분을 제안해야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일까? 최소 12 대 8 정도라고 한다. 이 연구가 주는 교훈은 ‘별 탈 없이 좀 더 많이 갖고 싶다면 적당히 나눠줄 줄도 알라.’일 것이다(듣고 있나, 1%?).

 

   지난 2011년, 우리는 수백만 인파가 거리를 점거하고 자신이 몸담은 억압적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항의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의 월가 한복판에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금융자본의 탐욕을 지탄하고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를 촉구했고, 이 운동은 전세계 대도시에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는 정부가 전복되었고, 예맨, 바레인, 시리아에서는 ‘불평등의 세상을 뒤엎자’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3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실업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지고, 빈부격차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미 도를 넘어버렸다. 게다가 탐욕스럽게 변해버린 금융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금융자본주의는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행복은커녕 수많은 사람들을 파산시키며 분노로 몰아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불 보듯 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최고의 주택에서 최고 수준의 생활을 하는 상위 1%들이 돈을 아무리 써대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자신의 운명이 나머지 99%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도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회는 번영할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고 수백 년 전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해결책은 뭘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슈퍼자본주의>,<부유한 노예>,<미래를 위한 약속> 등의 명저를 쓴 로버트 라이시가 UC Berkeley 에서 했던 <부와 빈곤> 이라는 강의를 영화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에서 얻고자 한다.

 

“바로 99%를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낙수효과로 대변되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대신, 미들 아웃Middle-out 즉 중산층의 소비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경기가 좋은 곳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중산층과 빈곤층에 집중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직업 창출자이자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안정은 강한 중산층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친기업적인 일 역시 중산층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모두를 위한 불공평Inequality for All>이었다.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4호) 특집원고로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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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EBS 다큐프라임
정지은.고희정 지음, EBS 자본주의 제작팀 엮음, EBS MEDIA / 가나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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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생존법을 담은 경제교과서

 

 

 

   몇 해 전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중국의 CCTV가 3년의 노력 끝에 제작한 12부작 프로그램으로 세계 100여 명 석학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견해가 들어 있는 걸작이었다. <대국굴기>가 성공하자 CCTV는 중국의 발전 과정을 되짚어본 다큐멘터리 <부흥의 길>, 중국의 개혁개방 30주년 기념하여 ‘차이나드림의 10가지 표본’을 보여준 <중국이야기> 등을 제작했고, 지난 2010년에는 세계 역사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또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 되짚어보는 10부작 다큐멘터리 <기업의 힘>을 제작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2012년 EBS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큐멘터리의 왕국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아닌, 중국의 CCTV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고 수 년 동안 공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 10부작으로 제작된 <기업의 힘>만 하더라도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위해 제작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등 8개국을 돌며 귀중한 역사 자료들과 유적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유수 대학과 경영대학원, 연구기관을 취재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100명이 넘는 역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 했을 것이다. 이 방대한 작업을 CCTV가 직접 한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교과서가 없어서였다.

 

 

   공산주의 죽의 장막 속에서 꽁꽁 숨어 살다가 하루아침에 미국에 이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세상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중국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나선 것이다. 세계 선진국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그래서 발로 뛰며 <대국굴기>를 제작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자니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단어가 기업(企業)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힘>을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제작한 콘텐츠는 다시 책으로 만들어졌고,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다.

 

 

   대륙의 성공에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우리나라가 덕을 봤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딱히 국민을 위한 경제교과서 없었던 대한민국은 대륙의 다큐멘터리를 제작되는 대로 공유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은거지?”

 

 

 

EBS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태어난 작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 갈 거라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문득 약 250년에 걸쳐 우리 사회를 지배했으며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과 자본주의를 꽃피운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 역사 그 자체인 영국과 미국의 석학들을 인터뷰하여 현재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5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지난 2012년 말부터 2013년 까지 방송관련 상은 거의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리고 예의 CCTV의 다큐멘터리처럼 동명의 제목으로 <자본주의>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사회와 경제가 복잡해지면 금융 부문이 성장합니다. 단순한 사실이죠. 사회가 더 부유해질수록 보험, 모기지, 신용카드, 다양한 저축, 연금 등과 같은 상품에 대한 욕구가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부유해질수록 금융 부문이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금융이 중요한 세상에 살게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금융이 훨씬 중요하듯이 말이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의 말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21세기 현대인에게 금융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제이자 운명이다.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해도 늘리기는커녕 지키지 조차 못한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기존에 출간된 수십 권의 경제관련서의 엑기스를 합해 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주제에 대해 유명저자이자 세계적인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들로 엮었기 때문이다. 살펴본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체 무엇이고 왜 문제가 생겼는지,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왜 일어났는지, 마트에 가면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사게 되는지 등 요즘 꼭 알아야 할 자본주의 사회의 숨은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실체를 다룬 개론서라면, 후속작인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자본주의의 숨겨진 진실을 알고 난 후 독자들이 현실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도 금융과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금융, 소비, 돈, 금융교육의 각 장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을 등장시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의 유혹과 위협을 구체적이고 실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밀려오는 청구서를 처리하기 위해 왜 투잡을 뛰어야 하는지, 더 깊은 만족감을 위해 잠시의 쾌락을 접어두지 못하고 왜 쇼핑중독에 빠지는지, 금융 시장의 구성 요소를 모른 채 금융 열기에 뛰어들면 왜 안 되는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우리는 왜 뭔가 사려고 하는지 등 현실적인 내용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며 궁금해 했던 것들이다.

 

 

   특히 ‘원 플러스 원 상품의 구입이 과연 합리적 소비일까’에서 합리적인 소비란 그 소비의 현재가치를 고려하고 이 소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는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야 기업의 의지가 아닌 내 의지에 의해 돈을 지출하는 소비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껴 쓰고 싶어도 아껴 쓸 수 없는 사회’에서 프린터가 고장 나는 것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프린터 안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에 의해 ‘1만 페이지’를 인쇄한 후엔 기계 작동이 멈추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 만들 때부터 짧은 수명으로 프로그램 되어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 소비자는 계속 쓸 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에 ‘소비 부추기는’ 제조사에 대해 괴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밖에도 ‘은행에 빚을 갚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속박과 굴레를 벗어남을 뜻하지만 국가 경제로 보면 경제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트에 가기만 하면 계산된 영수증을 보고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산건지 후회하게 되는지도 속시원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는 금융교육이다. 2007년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오바마 정부는 아이들을 위한 금융교육에 힘썼다. 그 중 시카고 웨스트리지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머니 세이비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소비, 저축, 투자, 기부로 칸이 나뉜 저금통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돈이 생기면 저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투자, 그리고 기부도 함께 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돈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이나 금융교육은 학교에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욕구를 참고 저축하며 경제 형편에 맞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재테크 책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경제교과서 정도 된다. 읽어본다면 떼돈 버는 방법은 들어있지 않지만, 내가 과연 현명한 소비자인가, 슬기로운 투자자인가는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런 경제교과서가 많이 출간되기를, 그리고 많은 독자가 읽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 (374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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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 즐거운 요리로 세상을 바꿔 - 공부보다 요리가 더 재미있다고?, 요리사 내가 꿈꾸는 사람 7
최현주 지음 / 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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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이미는 비영리재단 피프틴재단 활동과 함께 학교 급식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사실 제이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가장 큰 이며 다른 요리사와의 차별점을 확실히 드래낸 건 바로 이 저돌적인 학교급식 캠페인 덕분이었어요. 또한, 이 캠페인은 영국 사람들이 제이미를 요리사이기보다 사회운동가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했어요. 

사실, 제이미는 WKC요리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좋은 음식은 신선하고 윤리적인 재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제이미의 요리 철학인데, 학교급식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이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요. 


‘지금 영국 학교급식 싱황은 너무나 처참해. 학교나 관계 기관, 업체들은 급식의 단가를 낮춰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지. 아이들의 건강은 뒷전이야. 그러니 음식의 질은 떨어지고 영양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어. 신선한 채소와 손으로 직접 만든 빵을 주지는 못할망정 설탕과 소금을 잔뜩 넣은 인스턴트 식품을 성장기 아이들에게 주다니, 건강에 절대 좋을 리가 없어. 더구나 아이들은 점점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지방과 설탕 덩어리인 음식을 먹고 있어. 아이들 세대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미래엔 심장병이나 암, 당뇨병이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거야. 게다가 사탕이나 케이크, 탄산음료등은 아이들의 정신발달과 행동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부모들은 왜 아이들이 난폭한 행동을 허거나 주의력 결핍자애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지만, 사실 그게 음식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현실이군.’ (중략)


이제 제이미에게 남은 과제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의식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금전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제이미는 학교급식 개선 캠페인의 구호를 ‘나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여줘Feed Me Better!'라고 정하고 인터넷을 통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2005년 3월 30일, 런던의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서 시민들로부터 학교급식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사인을 받았어요.


왜 하필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냐고요? 이곳에 총리관저와 정부기관들이 모여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가 자리한 곳쯤 되죠. 학교급식의 문제점을 정부에 알리는 것은 물론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선 총리관저 앞만큼 좋은 장소는 없었어요. 


더구나 캠페인의 내용이 고스란히 TV로 방송될 테니 제이미와 시민들이 모여서 “나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여줘!”라고 외치는 걸 토니 블레어 총리가 본다면 한 번쯤 귀를 쫑긋 세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이미의 게획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무려 27만 1677명의 시민이 청원서에 사인을 해주었어요. 용기를 얻은 제이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탐


날이 갈수록 학교급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었고, 기존 급식제도에 대한 불만도 커졌어요. 별 생각없이 감자칩과 콜라를 찾아 먹던 아이들조차 제이미를 지지하며 “나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여줘!”를 외칠 정도였어요.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과연 제이미와 27만 1677명의 소망이 영국 정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네, 맞아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일명 ‘음식혁명Food Revolution'이라고 불리는 제이미의 학교급식 개선 캠페인을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마침내 토니 블레어 정부는 학교급식에 3년 동안 2억 8천만 파운드(약 487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어요! 이렇게 확보된 돈은 곧장 학교들과 지방차지단체들에 보내졌고, 아이들은 기존의 정크푸드 대신 치킨 카레나 연어 샐러드, 명태구이, 동양식 국수 볶음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갓 구운 빵이나 샐러드는 기본이고, 후식으로 요구르트나 케이크가 나오기도 했어요. 

또 한 가지, 획기적인 변화는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과일이 제공되었다는 점이에요. 맹리 아침마다 바나나와 사과, 귤 등 신선한 과일이 학교로 배달되었고 토마토와 당근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차츰 과일과 채소를 거부감 없이 먹게 되었어요.“ 


<제이미 올리버, 즐거운 요리로 세상을 바꿔, 141~142, 159~161 쪽, 탐>



오늘 ‘감동이 있는 비즈니스북 스토리’의 주인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입니다. 제이미 올리버라고 하면 여성들은 물론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는 남자들도 익히 아는 영국의 젊은 요리사죠. 이 책은 음식에 관심이 많고 끼와 호기심이 넘치던 꼬마 제이미가 스타 셰프이자 음식 운동가로 변신해 꿈을 이루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꿈을 이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입니다.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쇼는 우리나라의 TV에서도 꽤 오랫동안 방송된 바 있습니다. 그의 쇼를 보면 일급 요리사처럼 공을 들이지도 않고, 채소를 자를 때도 칼질도 안 하면서 손으로 대충 찢어서 집에 있는 양념들로 뚝딱뚝딱 만들어냅니다. 주방에서 수다를 떨며 장난하는 것 같은데 나중엔 정말 먹음직한 요리들이 탄생합니다.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제이미 올리버는 실제로 유럽 최고의 맛집을 선정하는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은 레스토랑의 부주방장으로 있을 만큼 실력이 대단한 요리사라고 합니다. 그가 TV에서 쇼를 할 때 마치 일반인이 앞치마를 두른 듯 요리를 하고 대충대충 편하게 요리를 하는 모습은 모두가 의도한 연출이라고 합니다.

즉 맛있는 요리는 6성급 호텔의 주방장같은 요리사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티셔츠 차림에 앞치마만 두르고, 칼질도 대충 손으로 끊고 일반 가정에서도 볼 수 있는 양념만으로 요리를 한다고 하네요. 실제로 방송 이후 그가 의도한대로 많은 사람들이 주방으로 달려가 방송에서 본 요리들을 직접 만들면서 영국을 요리천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Garry Knight/flickr


제이미 올리버는 1975년 5월 27일에 영국의 작은 마을 클레이버링에서 태어났습니다. 8살 때부터 부모님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 그는 16살 때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난관이 하나 있었데요, 바로 그가 난독증이어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난독증은 단어를 정확하게 읽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학습장애의 일종으로, 단어를 기억해 내는 게 어렵거나 문장을 읽는다 해도 뜻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철자를 자주 틀리는 증상입니다. 스파게티를 파스게티로 읽거나, 헬리콥터를 헤콜립터 등으로 발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죠. 그렇다고 선천적으로 지능이 떨어지거나 신체에 이상이 있어서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중에는 난독증을 겪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노트에 기록할 때 거울에 비친 것처럼 글씨를 거꾸로 썼고, 파블로 피카소는 글자와 숫자 외우기를 어려워해 청소년기까지 글씨를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토머스 에디슨은 “선생님은 나의 머리가 썩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정말 저능아 인줄 알았다.”고 고백할 만큼 언어 표현 능력이 엉망이었다고 말합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도 대본을 읽어주는 개인 코치가 있을 정도로 난독증이 심각하다고 하네요.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멋진 대사들은 모두 귀로 들어서 외운 것이라네요. 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이미도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진 요리 분야라 해도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료의 특성을 분석하고 조리과정에서 일어나는 성분 변화 등을 습득하는 식품학을 가장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건 바보여서가 아니다. 빨리 달리지 못하고,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보는 아니니까’라고 생각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즉 자신이 글을 잘 읽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요리 실습 시간에 솜씨로 도와줄테니, 식품학 교재 요약본을 목소리로 녹음해달라고 부탁해서 상부상조 했습니다.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 대신, 소리로 기억하는 방법을 택한 제이미 올리버는 덕분에 요리학교의 전 과정을 무난히 소화해 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할 정도로 난독증이 심했던 그이지만 매일 밤 요리책을 통째로 외우는 열정으로 요리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유분방한 요리법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방송 섭외 1순위가 된 제이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요리 프로그램과 책으로 스타 셰프가 되었고, 광고 모델도 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요리사로 거듭납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었지요.


이정도까지의 이야기라면 제이미 올리버는 ‘난독증을 극복하고 최고의 요리사가 된 사나이’라는 성공스토리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발휘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OFFICIAL LEWEB PHOTOS/flickr


그리고 2002년 피프틴 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 즉 영리기업과 비영리조직의 중간형태의 기업을 만들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이수하게 해 교육의 기회를 주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2002년 처음 교육을 시작한 훈련생의 수가 15명인데서 이름을 딴 ‘피프틴 재단’은 현재까지 졸업생이 200명이 넘고 이들 모두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TV등에 출연하는 등 졸업생의 90% 이상이 요리업계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네덜란드, 호주 등 프랜차이즈를 낼 만큼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이미의 이러한 행보는 영국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인식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불과 스물 여덟살의 나이에 그의 생애 최대의 명예로 기록될 MBE훈장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제이미 올리버는 이어서 학교급식 개선 캠페인에 뛰어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사회운동가가 된 겁니다. 좋은 음식은 신선하고 윤리적인 재료에서 비롯된다는 요리철학을 갖고 있는 제이미에게 학교 급식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영국 학교급식 상황은 너무나 처참해. 학교나 관계 기관, 업체들은 급식의 단가를 낮춰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지. 아이들의 건강은 뒷전이야. 그러니 음식의 질이 떨어지고 영양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어. 신선한 채소와 손으로 직접 만든 빵을 주지는 못할망정 설탕과 소금을 잔뜩 넣은 인스턴트식품을 성장기 아이들에게 주다니, 건강에 절대 좋을 리가 없어. 더구나 아이들은 점점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지방과 설탕 덩어리인 음식을 먹고 있어. 아이들 세대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미래엔 심장병이나 암, 당뇨병이 더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거야. 게다가 사탕이나 케이크, 탄산음료 등은 아이들의 정신발달과 행동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부모들은 왜 아이들이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주의력 결핍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지만, 사실 그게 음식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


그는 <제이미의 스쿨 디너>라는 TV프로그램 등을 제작 방영하여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자,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해 총리관저와 정부기관들이 모여있는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서 ‘나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여 줘Feed Me Better'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시님들로부터 학교급식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제이미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무려 27만 1677명의 시민이 청원서에 사인을 해주었고, 학교급식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꾸준히 노력한 제이미의 노력에 결국 영국 정부의 마음도 바꾸게 되어, 토니 블레어 정부는 학교급식에 3년 동안 2억 8천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487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확보된 돈은 곧장 학교들과 지방자치단체에 보내졌고, 아이들은 기존의 정크푸드 대신 치킨 카레나 연어 샐러드, 명태구이, 동양식 국수 볶음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갓 구운 빵이나 샐러드는 기본이고 후식으로 요구르트나 케이크, 바나나, 사과, 귤 등 신선한 과일을 먹게 되었다고 하네요. 영국은 이를 두고 ‘제이미가 음식혁명Food Revolution을 일으켰다'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http://tvcast.naver.com/v/128035

 

 
잘 먹어야 성적도 좋다! - 영국의 학교급식 혁명 ⓒ네이버 tvcast



이 동영상의 설명 - 영국의 인기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이슈를 불러일으킨 캠페인이 계기가 돼, 2006년 영국 정부는 학교급식 개선을 위해 3년간 약 4천894억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했다. 이를 통해 콜라와 과자 등 정크 푸드를 학교에서 추방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하면서 영국의 학교급식 혁명은 본격화됐다. 그 선두에 학교 급식 개선과 식문화 개선을 목표로 여러 비영리단체들이 결합해 ‘푸드 포 라이프 파트너십’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급식 개선운동을 펼치며 식생활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한 제이미는 이것이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선을 전 세계로 돌리고 우선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지 못한 나라, 미국’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햄버거와 피자, 감자칩 등을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냉동식품의 나라였습니다. 

미국은 18분에 한 명이 먹는 음식 때문에 비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국 의료보험 비용은 전체 질병의 10%로, 연간 1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66조 8750억 원에 달합니다. 비만 문제가 이 상태로 간다면 10년 후엔 의료보험비가 두 배로 뛸 거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이미는 매년 미국 내에서 가장 비만율이 높은 주나 시티 등을 찾아다니며 ‘미국의 식단 개조’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첨단 의료장비가 아닌, 정보와 교육으로 음식의 힘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영국 요리사 하나가 미국 식단을 바꾼다는 소리에 처음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영국에서 그러한 냉담을 경험한 바 있는 제이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려 7년 동안 ‘식단 개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제이미가 미국에서 펼친 식단 개선 운동은 또 다시 성공합니다. 오바마 정부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특히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어린이들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렛츠 무브Let's Move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며 미국 어린이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http://tvcast.naver.com/v/35532

제이미 올리버의 TED Prize wish : 모든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해 가르칩시다 ⓒ네이버 tvcast
 



제이미 올리버라는 한 명의 요리사가 이뤄낸 일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부자가 된 유명한 요리사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위생적이며 영양상으로 균형 잡힌 음식을 먹기를 바란 요리사는 없습니다. 제이미가 바란 것은 단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요리가 주는 기쁨’을 알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이미는 사람들이 인스턴트 음식에 빠져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스턴트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요리를 잘 할 줄 몰라서’ ‘요리가 주는 기쁨을 몰라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핵가족화가 낳은 세계적인 사회문제라고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일은 위생적이고 안전한 재료로 만든 요리가 얼마나 맛이 있는지, 그리고 만들기는 얼마나 쉬운 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재능기부’가 아닐까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나의 전문 분야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데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문가의 길입니다. 당신이 가진 재능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리뷰는 온라인신문 인사이트에 기고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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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투혼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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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영의 신이 말하는 불황탈출법

 

   주가 1엔. 파산 후 일본항공(이후 JAL) 주가다. 2010년 1월 도쿄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기업회생절차) 적용을 신청했을 때 당시 JAL은 부채가 2조3221억 엔(약 24조3820억 원). 일본의 일반기업으로는 최대의 파산이었다.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한 기업이 주식시장에 재상장한 경우는 138개사 중 9개 회사에 불과했다. 생환율 7%의 확률, JAL의 재건을 위해 뛰어든 사람은 80세를 눈앞에 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재건 실패시 노년에 불명예가 될 수 있다’며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그가 JAL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삼킨 세 가지 명분은 20,000 명 가까운 인원감축을 시행한 후 남은 32,000명의 직원을 지켜내는 것, 일본 항공업계가 ANA의 독점시장이 되는 것을 막는 것, JAL의 파산이 미칠 일본경제의 악영향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가 무보수로 JAL 재건을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JAL이 부패한 기업이라는 것은 일본 국민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부패한 JAL'을 다시 바꿀 수만 있다면, 곤경에 빠진 모든 일본 기업이 ’JAL도 해냈는데, 우리는 당연히 할 수 있다‘라고 분발해줄 것입니다. 그런 영향력이 일본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155일간의 투쟁, 한빛비즈, 15~16)

 

이나모리 가즈오는 2010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JAL의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영업손실 규모(2009년 기준)도 1337억 엔(약 1조4000억 원)의 JAL을, 2010년에는 1884억 엔, 2011년엔 2049억 엔의 영업이익을 내며 2012년 9월엔 2년 8개월 만에 도쿄증시에 재상장시켰다. 공교롭게도 JAL의 ‘V’자 회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맞물렸다. 같은 달 일본 정부는 경기 침체가 사실상 끝났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일본 경영의 신(神)다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불타는 투혼>은 JAL의 재건 이후 ‘일본 경제를 되살릴 방법은 없는가?’ 하는 일본 재건의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 순식간에 일본을 추월하고 G2의 자리를 꿰찬 경제 대국 중국,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민관협력으로 필사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삼성, 현대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들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에 비해 지난날 융성했던 일본 경제와 산업이 점점 뒤처지는 이유는 바로 ‘마음’에 있다고 진단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산업기반은 물론 사회기반시설 대부분이 초토화된 일본은 폐허에서 몸을 일으킨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던 적도 있었다. 현재 일본 경제와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불요불굴(不要不急)의 의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떠한 장해가 있어도 그것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용기다. 이것이 부족했기에 현재 우리 사회에 절망감이 만연하게 된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대로 질 수 없다’는 강한 마음, 즉 ‘불타는 투혼’이다. 전후 경영자들 모두 ‘절대 지지 않겠다’는 투혼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긴 침체를 지나 이제 점차 경기 회복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기업이 다시 성장, 발전을 이룰 절호의 기회다. 옛날과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충분한 자금과 뛰어난 기술이 있으면 성실한 인재도 있다. 부족한 것은 불타는 투혼, 다시 말해 ‘이까짓 것에 질 수 없다’는 강한 마음뿐이다. 본문 20~21쪽

 

이나모리 회장이 JAL의 재건을 맡았을 때 처음 시작한 일은 ‘정신개조’였다. 파산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JAL 직원들은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즉,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사를 설마 어찌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직원이 스스로를 ‘준공무원’ 정도로 여기는 한 재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에 불러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라’ 노승의 선문답 같은 연설을 계속했다. JAL의 직원들은 아연질색했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도입해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50여년의 경영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아울러 ‘아메바 경영(부문별 채산제도)’을 도입해 3만여 직원을 노선별 세부조직으로 쪼갠 뒤 조종사, 승무원, 탑승권 판매원, 정비사 등이 현장에서 매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채산성과 본인의 기여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파산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새로운 방침에 처음 JAL 직원들은 동요했고, 불만도 많았지만 회사 경영의 가장 큰 목적을 이익을 남기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추구에 있다는 이나모리 회장의 주장에 노조가 먼저 움직였다. 그러자 JAL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종이컵 대신 자기 컵을 갖고 비행기에 올랐고, 권위적이었던 스튜어디스들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JAL은 결국 파산한 지 1,155일만에 ‘V’자로 회생하며 도쿄증시에 재상장 했다. 7%의 생환율을 이겨낸 것이다.

 

한편 이나모리 회장은 현대 자본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며 CEO들에게 올바른 윤리관 회복을 강하게 요구했다. 즉 불타는 투혼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하되, 그 전제로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라는 초기 자본주의의 고귀한 윤리규범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이란, 모든 사원의 협력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경영진의 힘만으로 이익을 달성했다는 착각에 빠져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중략) 경영자의 탐욕이 계속되는 한, 법적 규제와 제도만으로는 성과주의에 근거한 격차 사회의 불공평과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욕망을 제한하지 못하고 더욱 높은 이익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투자기관이 있는 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은 분명히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금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일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본문 115~117)

 

그렇다면 욕망으로 물든 현대 자본주의의 궤도를 수정해갈 때 필요한 사고방식은 뭘까? 이나모리 회장은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고 실행에 힘쓰는 사람은 뜻이 있는 이다.“는 사상을 빌려 만족을 아는 것이라 설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격인 월가를 향해 "Be Enough!"라고 일갈한 월가의 현인(賢人) 존 보글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올해부터 상장 기업들은 5억원 이상 연봉의 구체적 규모와 수령자를 공시했다. 공개된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기업인들은 재벌가로 산하 계열사 중 적게는 하나, 많게는 4~5개 기업의 등기 이사로 등록해 30억 원대에서 300억 원대까지 연봉을 수령했다. 같은 나이 또래 직장인들이 수백 년을 일해도 받을 수 없는 거액이다.

 

구멍가게 담배 파는 아저씨처럼 제 혼자 벌어 이익을 가진다면 누가 뭐라겠는가?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를 구멍가게 운영하듯 하니,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선택의 순간마다 ‘동기가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를 스스로 물은 뒤 경영을 한 이나모리 회장이 세운 경영학교 ‘세이와주쿠’에라도 다녀오라 권하고 싶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2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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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피터스 경영파괴
톰 피터스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5년 3월
평점 :
절판


미친 시대는 미친 조직을 요구한다 - 경영파괴

 

 

 

 

경영파괴는 톰 피터스가 한 세미나에서 이틀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1994년 현재 그가 주장하고 있는 기업경영의 혁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마디로 ‘미친 시대는 미친 조직을 요구한다(Crazy times call for crazy organizations)‘고 말했다. 다시 말해 톰 피터스의 안테나에 감지된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전과는 달리 정신없이 변화하는 큰 흐름을 ‘미친 시대(Crazy Times)’로 본 것이다.

 

 

 

 

“이 시대가 미쳐 있고 더 심하게 미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만약 시대가 미쳤다면 미친 조직으로 그에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만약 그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오늘날 조직문제의 핵심이 바로 우리의 조직이 더 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비정상적인 기업세계에서 정상적인 조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친 시대에 있는 기업들에게는 경영혁신에 관한 기존의 방편들 즉, 분권화, 권한의 하부이양, 리엔지니어링, TQM 등 80년대를 풍미했던 개념들 결코 충분치 않는다고 보았다. 대신 지식화, 정보화에 대비한 기업경영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요구했다. 1994년 이후 다가오는 경영환경 변화 중 가장 분명하고 영향력이 큰 변화를 ‘지식화와 정보화‘로 규정하고 앞으로 부가가치의 원천은 창조성과 열정과 개성과 괴팍한 행동에 있다며 이에 대비한 여러 가지 경영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미친 시대에 걸맞는 단계별 새로운 경영혁신 방법 9가지 중 인상적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최근 어느 기업가가 연설한 내용이라 해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현실성이 있음을 확인해 보시라.

 

 

 

 

 

붕괴를 넘어서 - 명함첩으로서의 기업 이제 자신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며, 대신에 자신의 명함첩, 즉 네트워크에 대한 충성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혼자로는 부족하다. 개인은 더 네트워크화 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최고의 자원들을 즉각적으로 찾아내어 연결하는 것이 사업성공의 관건이 된다.

 

학습을 넘어서 - 호기심 많은 기업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호기심 많은 기업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제는 품질을 향상시킨다는 뜻은 불량품(things gone wrong)을 줄이는 것 대신에 새롭고 놀라운 상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마케팅은 품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움(Wow!)을 파는 것이다.

 

 

TQM(전사적 품질관리)을 넘어서 - 경이로움을 향해 변덕 심한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시장,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경제에서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철저한 자기파괴가 필요하다. 그래서 ‘경이로움을 파는 호기심 많은 네트워크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최대한 변화하라. 그리고 고객을 경탄케 하려고 노력하라. 최대로 사랑하고 그들을 감동케 하라.

 

 

 

 

 

 

 

 

톰 피터스가 간과한 한 가지

 

 

 

 

톰 피터스가 손꼽은 ‘초우량기업(excellence)‘은 묘하게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쓴 경영구루 짐 콜린스(Jim Collins)의 위대한 기업과 닮았는데, 바로 프리드먼의 주주이익 극대화에 근거한 선정기준에 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는 80년치 상장기업의 자료를 분석해서 15년간 시장대비 최소 3배 이상의 누적수익률을 달성한 11개 기업을 소개했다. 주주이익 극대화가 낳은 위대한 기업의 말로가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현재 11개 기업 중 서킷시티는 파산 전 경력직을 해고하고 인건비 낮은 신입을 채용했고, 패니메이는 최근 금융위기 사태의 주인공이다. 웰스파고는 2008년 250억 달러에 해당하는 구제금융을 미국정부로부터 받았고, 알트리아는 세계 최대의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전신이었다.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 선정기준 역시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 못지 않았다. 그는 초우량기업 선정기준으로 우선 세 가지는 1961년부터 1980년까지 과거 20년에 걸친 성장, 장기적 자산 형성 실적 그리고 가치 또는 부의 창출에서 찾았고, 나머지 세 가지는 평균 수익률과 관련해서 선정했다. 그가 놓친 한 가지는 자신이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 가치,사람,스타일,스킬 등 소프트한 측면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위대한 기업, 초우량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그 답은‘포춘 100대 기업에서 배우는 행복한 일터문화’를 이야기한 <최고의 직장>(위즈덤하우스)에서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최고의 직장으로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이 새로운 버전의 위대한 기업이자 초우량기업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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