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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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고통, 현대인이 느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내 연애소설의 시작은 재미있게도 만화였다. 제목은 이현세의 만화 '까치의 오계절'. 중학교 1학년의 따뜻한 봄이었는데, 시간적 부담이 없는 토요일 오후에 직사각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군것질꺼리를 할 돈을 남겨둬야 하는데,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주머니를 털었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을 감추려 검정색 교복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훌쩍거렸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까치의 오계절'은 나를 울린 첫 만화였고, 첫 연애소설이었다. 그 책은 오혜성과 마동탁 그리고 엄지와의 갈등을 이야기한 만화였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때에 '만화가게 대여 1순위의 초고속 베스트셀러'였고,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후문이 있던 책이다. 이 작품으로 이현세는 만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이관용씨의 작품인 '열아홉살의 가을(이청과 조용원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을 비롯해 박범신씨의 소설과 장총찬이 등장하는 김홍신씨의 '인간시장' 등 시간과 경제력이 허용하는 한 모두 읽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때마침 '사춘기'도 찾아와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려 책에 꾀나 탐닉했던터라 서재에 늘어나는 책의 수량만큼 시험성적은 떨어졌고, 급기야는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독서금지령' 처분을 당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 '가출'을 고려했던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비슷한 스토리에 주인공과 시공간만 바뀌는 '연애소설'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감회는 다른 것 같다. 어릴 땐 '연애란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해 '훔쳐보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들었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주인공의 대사 하나 하나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내가 네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동조하게 된다. 나중에 그것을 집어 들면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어봐서 아는데, 그러는게 아니야'라며 충고하게 될까 모르겠다. 무튼 아직도 이야기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인 것을 보면 그런 글을 써도 시원찮을 나이가 된 내 스스로가 아직도 부족한 어설프니 같기도 하고, 팔푼이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도 팔푼이가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동경만경東京灣景]을 읽었다. 
 
 



 
  소설 [동경만경]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누구든 보낼 수 잇는 잔잔한 하루의 일상을 평범한 필체로 그려낼 뿐이다. 오히려 나의 하루와도 같은 일상 때문에 편안한 일일 연속극을 한편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슴 뭉클하고 애뜻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던 일반적 연애소설과는 다소 밋밋한 연애소설이라 짐짓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경만경]은 삶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중에서 가장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아픔의 기억을 가슴에 남기기도 하는 ‘남녀관계’,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때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 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곳에 독자들을 초대함으로써 각자 해답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입은 사랑의 상처로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가진 료스케와 '그가 단지 몸뿐이기를 바란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단지 몸뿐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질감을 가진 미오. 연애관만 비슷할 뿐 그들이 가진 직업과 삶에선 어떠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그들을 서로 끌리게 만든 것 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너무도 가벼워진 요즘의 남녀관계를 상징하는 한 미팅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다. 료스케는 현재 교재를 하고 있는 애인이 있음에도 빠르게 그녀와의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빠지다' 라는 말과 '탐닉하다' 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P 120)
 
  료스케와 미오는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고 싶어 하지만 단지 서로를 탐닉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고통과 외로움, 사랑에 대한 모호함이 주는 혼란스러움을 제공하는 감정의 사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부정할지 모를 그 사랑의 감정에 빠져 들어간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자기 뜻대로 꿈을 이뤄내는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누군가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ON이 되지 않고 거꾸로 누군가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OFF가 되지 않는 거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기로 작정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 (P 153)
 
  도쿄만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단편적인 삶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그들에게 만남의 계기가 됐던 미팅사이트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가보지 못한 일본의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주는 답답함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늘날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우연을 빙자한 필연'이 되었던, '인스턴트 러브'가 되었던 무엇인가 '대화상대가 필요한 두 사람'의 존재가 있음은 어제와 오늘이 매한가지다. 서로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둘이 만든 세상에는 둘만 존재하니까. 우울한 그들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인류 최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살포시 겹쳐있을 뿐이다. 어제의 날씨와 기분에 딱 어울렸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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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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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랑과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소설!
 
 술과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선배가 있다. 대여섯 살(가장 친한 선배이면서도 아직도 정확한 나이차이를 모른다) 차이가 나는 세 학번 위의 선배인데, 내가 선배의 집에서 자야하는 경우는 딱 하나, 그와 밤새고 술을 마셨을 때 뿐이다. 새벽 서너 시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들어갔다간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몽둥이찜질 당할 껀 뻔한 사실, 게다가 그시간에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집을 가려면 필히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돈이 있으면 술로 바꿔먹을 판이었으니 어림없는 소리였다. 선배집에서 잠을 얻어자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게다가 아침밥까지 얻어먹는다는 것은 정말 감지덕지할 일인데, 문제는 정확하게 새벽 6시에 머슴밥을 먹어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놋쇠그릇으로 하나 가득 보리밥이 산을 이루고, 젓갈과 시골된장으로 잘박잘박하게 지진 된장찌게, 어제 담근 듯한 풋풋한 총각김치 그리고 철마다 바뀌는 반찬 두어가지가 전부인데, 해가 꼭대기에 걸쳐진 점심만 같아도 꿀맛이겠지만, 술취해 한 두시간 자다가 일어나 먹어야 하는 선배의 아침식단은 '모래밥'을 씹는 듯 했다. 얻어먹는 주제에 게다가 노구老具를 이끌고 지으신 새벽밥을 물리칠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쑤셔넣고, 물을 마시고 있으면 할머니는 놋쇠밥공기의 절반 정도를 또 담으신다. "됐어요. 할머니, 저 배불러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녀석, 밥 참 잘 묵네..."하시면서 꾹꾹 눌러 담으셨다. 그리고 난 또 꾸역꾸역 모두 먹었고...
 
  "뭘 좋아하세요?" 30대 초반까지 가장 난감해 하던 질문이다. 터지도록 배가 부르지 않다면 뭐든 먹는 것은 다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해서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한다. 타고난 식성食性 과 '없어서 못먹고, 안줘서 못먹었던' 경험으로 키워진 후천적 식탐食貪 덕분에 남의 집을 가면 '남자답게 먹는다 혹은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듣는 그 칭찬에 더욱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가리지 않고 먹었고 되도록 배가 부르도록 먹어 '뭘 좋아하냐' 물으면 '못먹는 것 빼고 다 좋아한다'고 선문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까탈스러워짐을 느낀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말한 바 처럼 "음식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비싸고 좋은 것을 먹기' 보다는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삼신할미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제 밥그릇 숫자를 정해주는데, 한 끼라도 적게 먹으면 그만큼 명命을 줄여서 다시 부른다' 는 우리 할머니의 섬뜩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면서 되도록 '제 때에 잘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음식은 몸을 움직여야 할 남은 시간을 위해 배를 불려야 하는 '연료보충'의 의미도 있지만 맛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욕구충족'의 의미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성異性과 같고, 사랑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과 사랑(섹스)의 묘한 관계, 그것을 이야기 한 소설을 만났다. 요코모리 리카橫森 理香 의 소설 [EAT & LOVE]를 어제 읽었다. 원제목은 EAT&LOVE (イースト・プレスチュチュカラーズ) 이다. 
  
 

   
 묘하게 엮인 주인공 여섯 명을 음식의 소재와 또 다시 엮어 그들의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 면에서는 조경란의 [혀]와 닮았지만, 주인공 한 명을 제외하곤 주제들이 경쾌하고 라이트해서, 무엇보다 다분히 주인공들이 이국적이라 다름을 감지한다. 주인공 여섯 중에 '라즈베리 무스' 속 주인공, 36세의 노자키 신이치로 한 명만이 남자이고, 그의 주위에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노자키 신이치로가 이 소설의 메인인 듯 하지지만, 실은 그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기 위한 이야기의 핵심소재 역할을 한다. '주제도 모르는 바람둥이에 호색한'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들의 관념이 그러하듯 저자는 노자키를 그런 남자로 등장시켰다. 그럴 법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저자가 여성이었기에 노자키의 깊은 내면을 밝히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웠다(독자는 나같은 남자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40대에서 20대에 걸친 다섯 명의 여자주인공이었는데, 소설의 구성 또한 40세의 에구치 미라이, 34세인 가와카미 야스요, 26세의 나카다 유코, 22세의 고지마 미키, 그리고 이제 갓 20살이 된 가시타 미오를 주인공으로 그녀들과 관계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나이와 직업 그리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그녀들에게 있어 연상하고 찾게 되는 음식은 실로 다르고 다양했는데, 과연 '음식이 곧 사람이다' 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나이마다 다른 여성들의 남성관과 섹스관 또한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과 흥미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세계에서 미뢰(혀에 돋아나있는 자극을 담당하는 돌기)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인의 손에서 비롯된 음식과 사랑이야기이어서 일까 세밀한 묘사와 표현력은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특히 22세의 고지마 미키가 엄마의 유언대로 장례식을 찾은 문상객들에게 최고의 도시락과 점심을 제공하고, 타오르는 듯한 빨간색을 사랑하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빨간 한국 음식'을 저녁으로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픔'를 느끼는 동물적인 인간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에 앞서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되고 싶은 듯 죽음 앞에서 '스시'를 맛있게 먹는 엄마의 모습에서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30대의 남성 노자키는 '라즈베리 무스'를 쳐다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약간 달콤하고, 취한 듯 몽롱하고 둥둥 떠 있는 듯하고, 녹아버릴 것 같고, 먹으면 정말로 입 안에서 금세 눈처럼 사라져버리거든." 라스베리 무스가 먹고 싶어졌다. 정말 맛이 그럴까? 최고의 표현은 20세인 기시타 미오의 파파(나이든 애인)가 인간의 음식과 사랑에 대한 코멘트 일 것이다. "미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지. (...)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야.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 
 
  멋진 말, 하지만 50대가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이란 맛없는 음식을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수많은 먹을 것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음식경험이 풍부한 50대의 추천 요리들이 맛있고, 잘 만들어진 것일테지만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에겐 제 입맛이 길들여진 타인은 그 맛을 모르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 나이에 맞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의 맛도 사랑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뭘지 생각해 봤다. 내겐 '늦은 새벽 사랑하는 여인과 침대에서 함께 떠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통'이었다. 물론 먹은 다음(?) 먹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맛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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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천재는 아니었다
김상운 지음 / 명진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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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두뇌개발을 위한 2008년 최고의 자기계발서!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방문했을 때 제일 곤란한 것은 '먹을 꺼리'다. 아무 곳이나 들려서 소위 말하는 '순대를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더이상 할 말이 없지만, 그 지역에서 맛있는 집을 찾아가 '식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즐겁고 기억에 남는 추억꺼리가 될 수 있다. 이에 좋은 방법이 있다. 택시를 집어 타라. 그리고 기사님에게 여쭤라. "소문난 맛집이 어디에요?" 그 지역의 모두를 아는 사람들이 택시기사님인지라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만약 주머니도 여의찮고, 일정이 바쁘거든 '기사님들이 잘 가는 기사식당'을 가는 것도 좋다. 저렴한 가격에 평균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살 때도 광고나 마케팅에 속지 않고 양질의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선물할 책이라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무엇일까? 우선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생계'에 지장을 받지 않는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다. 이를테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은 억만금을 가진 부자의 책이라던가, 스티븐 킹 이나 조앤 롤링과 같은 초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자신의 전문직으로 성공한 저자 등을 말한다('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는 책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후문도 있으니 제외시키자. 그리고 국회의원도 전문직에서 제외시키자). 그 다음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바로 저자가 자신의 가족에게 쓴 글로 만들어진 책을 사는 것인데,  자신의 가족에게 바치는(?) 글이기에 최고의 정수만을 모았을테고고, 독자에 앞서 가족에게 뒤통수가 따갑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자화자찬이나 거짓말은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을 얻기가 쉽다. 특히 이미 나이들어 부모가 안계시거나, 자녀가 있지만 어떤 가르침을 줄 지 모를 때에는 읽어서 그대로 흉내를 내도 좋고, 아니면 자녀에게 선물로 주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효과가 있다. 책의 첫장에 "너에게 하고픈 말 모두가 이 책에 들어있어 이 책으로 대신한다. 사랑한다, 딸아들아..."라고 말을 덧붙인다면 대대손손 물려줄 '가보家寶'로 여기지 않을까? 그런 책의 예는 찾아보면 적지 않은데,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면 ' 강헌구 교수님의 책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님의 [세월이 젊음에게],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 등이 있다. 이 모두가 자신의 가족과 자녀, 그리고 제자들에게 쓴 글이어서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꼭 참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책 때문이다. 어느 날, 딸아이가 시험성적표를 가지고 아빠에게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왜 나를 천재로 낳아주지 않았죠?" 그것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같으면 집을 박차고 나가 하늘이 노랗도록 술 마시며 괴로워 할텐데, 이 아빠는 "천재들처럼 행동하면 천재처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기가 막힌 딸, 더 기가 막힌 아빠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아빠는 '24시간이 짧다고 세상을 훑어보는 직업', 방송기자다. 저자와 책을 쓰게 된 사연에 이미 흥미는 가득 찼다. MBC 보도국 기자로 23년 동안 일하고 있는 김상운씨의 [아버지도 천재는 아니었다]가 그것이다. 부제는 '방송기자 아버지가 들려주는 평범한 10대가 천재 되는 법'이다. 


  
   

  
  책은 우선 딸에게 이야기 하듯 '대화체'로 진행된다. 그리고 10대의 자녀에게 하는 말인 만큼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이 책까지 8 권을 저술했던 만큼 놀라운 문장력을 지니고 있어 재미와 배울꺼리를 이야기의 곳곳에 숨겨두었다. 저자는 전부터 관심을 둔 부분은 '천재적 성과', '천재라 불리는 인물들', '발상법', '사고법' 등, 다시 말해 '천재적 뇌 사용법'이었다. "천재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생각할까? 혹시 그들을 따라하면 뭐가 달라지지 않을까? 세상 살기, 꿈을 이루기가 훨씬 더 쉽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은 그를 '천재적 사고'를 추적하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우선 '인류에 큰 일을 이룩한 위인들 중에는 선천적인 천재들은 없으며, 오히려 노력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천재들이었다'고 그동안 그가 추적한 결과를 놓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딸을 비롯한 독자들은 이미 '천재'가 되어 '천재적 인생'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스스로 자신의 천재성을 깨워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숨겨진 천재성을 스스로의 힘으로 깨우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 과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1. 천재처럼 생각하면 천재처럼 이루어낼 수 있다. 
2. 천재적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 - 몰입의 순간
3. 천재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목표의식이다.
4. 천재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쓸 줄 안다.
5. 올바른 심성도 천재가 되는 기술이다. 
그리고 끝으로 '천재처럼 성적을 높이는 공부법'을 심어두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많은 부분 오류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몰입, 끌어당김의 법칙, 노력, 목표의식, 긍정적 사고, 심지어 감사에 이르기까지 작은 요소 하나 하나가 '후천적 천재가 되는데 필요한 절대요소'임을 사례들을 통해 설명해 준다. 저자가 예로 든 사례들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의 그것보다 깊이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을 연상케 하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도 엿보였다. 단순한 흥미에 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폈다가, 연신 줄을 치고 표시를 해야 했다. 어느 자기계발서보다 깊이가 있고, 내용이 충실했던 좋은 책이었다. 특히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과 그에 대한 증거들은 '나도 노력하면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산다면 부모가 먼저 깨끗하게 읽고, 자녀들에게 주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는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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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소장본 - 전2권 - 칼의 노래 + 칼의 노래 자료집 : 김훈을 읽다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김훈의 펜에 의해 오감으로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체험할 수 있었던 소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소설의 글들이 추임새가 되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고, 인종을 불사하고 독자인 내가 만드는 상상의 화면 속에서 나는 감독이 되고, 주인공이 된다. 각본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이다. 그래서 내가 소설을 읽고, 잘된 작품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내가 충분히 감독역할을 하며 그 '각본'을 즐겼느냐 아니냐에 가름하는지도 모른다. 현대물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에 그에 판가름해서 '있을 수 있다 혹은 없다'가 첨가되어 더욱 비평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물의 소설은 '영화 각본'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그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과거 또는 미래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작가의 '각본'에 의존한다. 그래서 내가 갖는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표현과 영상을 경험하게 된다면 '걸작'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걸작'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지만, 내가 사는 '동시대'에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게 있어 행운과 같은 '작가와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이다.   
  

 
소설 [칼의 노래]는 당대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이순신이 백의 종군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명량해전에서부터 이순신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한 이야기인 바탕인 만큼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아닌 한사람의 무관으로서 한사람의 남자로서의 이순신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사학자도 아니고, 평론가가 아닌 독자로서 역사소설을 대하기는 몇년 몇 월 며칠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교과서라도 충분하니까) 그 때에 있었을 법한 사소하고 지저분한 일상의 사건 속에 전쟁을 간접체험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 김훈은 수 백 년 전의 임진왜란을 머나먼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 내가 겪은 듯 혹은 내 바로 위의 선조에게서 듣는 듯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필력에 묘사된 전쟁속에서의 이순신은 나에게 친숙하게만 느껴졌던 영웅 이순신이 아닌 무관으로서,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남자로서 다가오며 그가 느꼈던 절망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
 
  제목 [칼의 노래]처럼 자신의 칼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사지死地)를 찾는 이순신의 면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명과 일본의 조약을 기다려 마지막 싸움을 회피 할 수 있었던 이순신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함, 자식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한, 전쟁을 통해 수없이 죽어갔던 백성들의 한,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 결전을 피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사지를 찾아 그곳에서 죽음을 완성한다. 저자의 실적인 묘사와 1인칭 시점에서의 서술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전개를 이끌어 냈다. 출격과 동시에 승패를 결정지었던 여타의 책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 사실적인 해상전투의 묘사는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의 여자와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장에선 "씻지않은 여진의 몸에서는 오랫동안 뒷물하지 않은 여자의 날비린내가 나고, 자른 목들은 썩은 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장수들은 겨를이 나면 종을 물러 서캐를 잡게 하였으며, 전쟁뒤 떠오른 시체들로 물은 썩어 역병을 일켰다. 죽은 시체들로 인한 악취는 사라지지 않는다."라 표현할 만큼 사실적 묘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 가진 고뇌와 절망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고통을 공유하고자 만든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빼앗긴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임금을 향한 충정심을 보였던 무관이자, 자신의 아들을 반으로 갈랐던 일본의 장수와의 만남에서 떨림과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한사람의 아버지, 하루살이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던 모습들 속에서 한 사내가 만날 수 있는 여러 위지의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머리와 코가 베여지는 전쟁속의 죽음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에 다소 어두웠던 책 속에서 그의 모습은 어떤 미사어구와의 결합이 필요없을 만큼 장대하고 아름답다. 작가의 유려한 문제와 함께 이순신의 삶과 죽음은 다시 재조명되었다.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 될 수 없는 불행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수많은 병사의 시체를 밟고 일어서는 자의 이름이 영웅이라지만, 그 역시 이미 마음은 제 발 아래 깔려있는 병사들처럼 죽었음을 느끼게 한다. 혼란스럽고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제 갈 길을 알았던 한 사내를 나는 만났다.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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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 김훈의 소설!
 
 작년에 있었던 도서대전을 통해 작가 김훈을 처음 보았다. 그 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시간이 허락하면 소설보다는 영화를 즐기던 내게 그의 소설은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그 분을 보는 순간 어떤 이유가 동했는지 그의 전권세트를 사들이고 말았다. 그의 정성스런 친필 싸인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최고의 소설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네임밸류는 '언제 이분을 또 뵙겠는가?'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평소 책을 고르는데 장고長考에 장고를 더하고, 또 심사숙고 해서 낙점하는 내게 그의 전집을 구입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그의 눈이었다. 머리엔 하얗게 눈이 내린 듯 반백색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굵은 주름 가득한 모습 속에 빛을 내는 커다란 눈과 흰 바탕의 까만 눈동자는 '추호秋虎'를 연상하게 했다. 그 인상적인 눈매로 쓴 글은 어떨까? 책장 맨 위에 잘 모셔두고 마치 포도주를 숙성하듯 두었다. 그제 [칼의 노래]를, 그리고 어제 또 한 권을 폈다. 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이다.
 
 


 
 
  소설 [현의 노래]는 가야금의 예인(藝人) 우륵과 그의 시대를 그린 소설이다. 김훈선생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우륵을 극한의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려냈다. 무너져 가는 자신의 조국을 한탄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가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가야금의 금을 튕기듯 심금을 울리고, 그의 삶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모호함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책의 주인공 우륵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신라시대의 음악가로  “중국(수나라)에는 악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하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가실왕(嘉實王)의 뜻을 받들어 12현금(絃琴:가야금)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이라는 제목으로 12곡을 지었다. 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항복하였는데, 왕은 그를 국원(國原:忠州)에 살며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등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치도록 했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높게 평가해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 소설 역시 어둡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글 속에 담긴 역사들은 당시의 풍요로움과 태평성대는 찾아 볼 수 없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한 나라의 무관으로서. 또 한 사람의 남자로의 충무공 이순신의 고뇌와 슬픔, 삶에 대한 처절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던 [칼의 노래]와 이 책 [현의 노래]는 무너져 가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궁중악사 우륵의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나 각기 다른 그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멸망을 앞둔 가야국과 명나라의 도움과 일본의 내부적 변란이 없었다면 당시의 조선 역시 멸망을 바라볼 수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단, 주인공의 시점이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전쟁을 이끌었던 무관이 아닌, 궁중 악사라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 즉, 살아있는 것들은,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기에, 살기위해 발버둥친 그 모든 흔적은 [옳은 것이다]는 김훈의 메시지에 의해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로 비춰진다.
 
  우륵과 제지 니문은 가야의 소리와 금琴을 찾아 무너져 가는 가야의 한 복판에서 사라져 가는 각 고을들의 소리를 담아 낸다. 소리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삶의 소리다. 즉, [예술은 무엇인가, 권력은 또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그 권력의 해답은 대장장이 야로를 통해 찾아 볼 수 있는데, 야로는 새로운 신무기와 철을 가야만이 아닌 자신의 조국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신라에 제공함으로써 권력에 삶을 의지하는 가냘픈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명의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 아라가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왕이 죽으면 죽음으로써 왕을 모신다는 의미의 순장제도를 통해 시대적처참함 비합리성을 그려낸다. 순장 직전에 도망을 친 아라는 야로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 하지만 그녀의 삶 또한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없는 가련한 삶이다.
 
  아라는 우륵에게 발견되어 니문과 가정을 이루지만 순장에서 도망쳤던 아라를 찾아 나선 자들에 의해 다시 붙잡히게 되고, 다시금 왕과 함께 제물로 바쳐진다, 그 비참한 죽음 위에서 금을 연주하고 춤을 춰야 했던 우륵과 니문. 권력앞에 그들이 말하는 예술은 단지 삶을 영위할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삶을 통해서만 그들의 음악이 살아있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칼의 노래]에서 자신의 칼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사지死地)를 찾아 마지막을 결정했던 이순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소리는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소리와 음악 역시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우륵과 니문은 가야를 등지고 신라로 새 길을 찾아 떠난다. 한편, 가야를 떠나 아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 야로는 이사부의 칼에 죽게 됨으로써 권력에 대한 그의 야망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죽음과 어두움, 그리고 인간의 애욕칠정이 거침없이 드러나지만 그곳엔 비릿한 상스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순결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김훈 선생만이 가진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계속해서 김훈 선생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다음에 만날 그의 소설은 [남한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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